토지 15 - 4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천하무적의 군비, 일본의 심장은 그것으로 뛰고 있는 것이다. (P92)

1931년 9월 18일, 선양(당시에는 펑톈) 부근의 철로에서 폭탄이 터졌다. 만주에 체류 중이던 국민정부의 미국인 고문 로버트 루이스는 중국 외교부에 전보를 보냈다.
9월 18일 금요일 밤 군용 열차 7량에 가득 탄 일본군이 조선에서 단둥을 경유하여 만주로 들어왔다. 9월 19일 토요일 밤에 4량의 열차에 탑승한 일본군이 증원되었다. (...) (일본인들은) 학교 관리자를 체포하고 쑨원의 삼민주의 교육을 금지시켰다. (...) 병사들과 생도들은 체포되어 무장 해제되었다. 일본인들은 신형 소총과, 기관총, 군용차량 등 중국군 병기고의 무기와 탄약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중일전쟁 - 레너 미터, P61)

토지 15권은 시기의 범위가 가장 넓지 않나 싶은데 1931년 만주 사변 이야기를 하다가 중후반이 되면 훌쩍 시간을 넘어 1938~1939년이 되어 있다. 때문에 그 시간만큼 인물들은 나이가 들고 있던 공간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도 있어 이거야말로 시공간을 뛰어 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15권 인물들 중 가장 놀라운 변신을 한 인물은 유인실일 것이다. 14권에서 유인실의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힘들게 읽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반전 케이스가 된 것인지 놀라웠다. 반전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가. 마지막에 또 16권을 기다리게 하는 그 어떤 사건이 터져서 또 나를 궁금하게 한다. 어떻게 흘러가고 풀릴지 말이다(꼬이지는 말아주길).

15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면 역시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꼽을 수밖에 없다. 중국 국내의 사정, 그리고 일본 국내외 사정은 국민을 전쟁으로 몰고 가는 현실, 조선이 중국과 일찌감치 함께 합세하여 일본에 대항했다면 그에 대응할 수 있었겠느냐 생각해보면 솔직히 회의적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중국 땅 내부까지 그 여파가 미쳤고 이는 중국 북부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과 독립군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후 중국인들의 시선도 조선인들에게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아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일본 군벌이나 헌병에 고발하는 사례 등이 증가).

장학량이가 작년에 공산당하고 결탁해서 장개석이를 납치한 서안사건(西安事件), 그게 멸망의 징조였던 게야. 서안사건은 노구교사건(蘆溝橋事件)의 원인이지. 일본을 상대해서 중국은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이제는 만주가 문제 아니야. 멀잖아 일본은 중국을 손아귀에 넣을 거다. 이런 판국에 조선이 독립을 해?"
"중국을 손아귀에 넣는다구……… 그게 쉬울까요? 소련이 있고 미국, 다른 나라들이 보고만 있겠습니까?"
"만주를 보아라. 군말 몇마디 듣고 끝나지 않았나. 그나마 그 귀찮은 소리 안 듣겠다고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를 했거든 아무튼 일본은 지금 욱일승천이야. 기세가 하늘을 찔러. 장개석이 군대가 허약하기도 하지만 공산당을 경계해서 힘을 다 쓰지 않는 것도 일본의 전과가 오르는 이유의 하나고, 공산당이 아주 숨이 끊어져서 장개석이 강화되어도 안 될 거고 물론 공산당이 국민당을 아주 내몰아도 일본은 난감할 거고 말하자면 시기를 잡는 데 일본은 묘수(妙手)를 쓴 셈이지. 만주사변하고 꼭 같은 길을 가는 게야. 참말로 세상은 눈부시게 변하고 있어. 만주만 하더라도 기가 막히게 변했지. 내가 만주땅에 온 것이 삼십 년 꽉 차고 넘었는데 변해온 꼴을 보니 마치 처음에는엉금엉금 얼음판을 기듯, 다음에는 간신히 걷고 그리고 뛰는데 지금은 날고 있어. 허허벌판, 신경의 저 대동광장은 몇 해 전만 해도 허허벌판 아니었나? 그런데 지금은 어때? 사오 층의 어마어마한 건물이 가득 들어서 장관이지. 오랑캐의 땅이 그리 번창할 줄은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P322)

남경 함락 후 전선의 확대가 불가피해진 일본은 내심 당황하고 혼란에 빠진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띄운 것이 화평이라는 기구이며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 중재해줄 것을 은근히 요망했다. (...) 갖은 지랄을 다한 일본의 모든 행동이 도로(徒勞)로 끝나는 그 조건이나마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의 사정, 그러나 그들이 첫째 봉착한 것은 정부나 군부 이상으로 전쟁에 들떠 있는 국민에게 뭐라 할 것인가, 총동원하여 전쟁의 열기로 몰아붙여 놓은 국민들을 납득시킬 방법이 있는가. 남경 함락후 전승에 취한 국민들은 날이면 날마다 일장기 행렬, 등불 행렬로 법석을 떨고 있었으니, 그러는 동안 각 파의 반목과 대립은 오기를 자극하고 고조시키면서 화평 조건은 차츰 강경한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제국정부 성명을 발표하면서 그들 스스로 내놓은 화평안을 그들 자신이 막았고 일본은 비극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데 그 후안무치한 제국정부 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국정부는 남경공략 후 계속 중국 국민정부의 반성에 최후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민정부는 제국의 진의를 모르고 함부로 항쟁을 책동했으며 안으로는 도탄에 빠진인민의 괴로움을 무시하고 밖으로는 동아전국(東亞全局)의 화평을 원치 않았다. 하여 제국정부는 이후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며 제국과 진실로 제휴하기에 족한 신흥 지나정권의 성립발전을 기대하며 이들과 양국 국교를 조정하여 갱생 신지나설에 협력하기로 한다. 물론 제국은 지나의 영토와 주권을 위시하여 재지 열국의 권익을 존중하는 방침에는 추호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동아 화평에 대한 제국의 책임은 보다 무겁다. 정부는 국민이 이 중대한 임무 수행을 위해 한층 더 분발해줄것을 기망(望)하여 마지않는다. (P448~449)

1936년 2월 26일 육군의 '황도파' 청년장교들이 일으킨 이른바 '니니로쿠' 쿠데타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들은 '국가개조를 막는 통제파를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부대를 이끌고 수상관저 등 국가 주요 기관을 습격, 당시 내무대신 사이토 마코토, 오쿠라대신 다카하시 고래키요(1854~1936) 등 정부 요인을 살해했다. 사건은 이들을 3일 만에 진압함으로써 마무리됐으나 군부는 숙군을 핑계로 정계 요로에 군부세력을 크게 강화했다. 이같은 진통을 겪은 군부는 대중 매체나 교과서, 나아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해 국민에게 '대일본 정의'를 믿도록 선전했다. (도쿠토미 소호, P256~257)
황도파는 1932년 무렵 아라키 사다오(1877~1966), 마자키 진자부로(1876~1956) 두 대장이 위관급 청년장교들을 규합하여 형성한 육군내의 한 파벌로 텐노 천황의 권위를 이용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텐노 중심의 국체 지상 주의를 신봉하였다. 통제파는 일본 육군성 중앙막료 등 영관급 장교를 주체로 형성된 군부 파벌로 재벌과 관료들과 결탁하여 군부세력을 신장시키고 전시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군부 내 통제를 주장하였다. 만주 사변 이전에 군부와 내각이 갈등을 겪었다면 이후에는 군부 내 파벌들이 나뉘며 갈등이 심화되었다. 문제는 이것을 국민들에까지 전시, 강요, 확대했다는 데 있다.

홍구사건 이후 조선 혁명당이 중국 요녕 구국회와 합작하여 항일전선을 구성함으로써 양 민족 간의 공동보조는 구체화되었고 조선 독립군과 중국 의용군이 합세하여 쌍성현(雙城縣)의 점령을 위시하여 사도하자(四道河子)에서 일만연합군(滿聯合軍)을 격파했고 동경성(京城)을 점령, 동만(東滿)의 대전자령에서 일본의 나남(南) 72연대를 대파하는 등 행동으로 나타났다. (P387)

1937년 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유럽에서는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에 이은 두 번째 세계 전쟁이 시작되었다. (...) 일본의 전쟁 준비에는 일본으로의 소규모 엘리트 이주와 대규모 수사법이 수반되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군사고문관을 초빙하고, 전쟁 준비를 범아시아적 이익, 다시 말해 유럽 제국주의에 맞선 일본의 팽창으로 합리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수사법이었을 뿐 일본의 진정한 속셈은 중국의 원자재와 사람을 비롯한 자원 그리고 (전후의) 시장을 장악하려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1937년을 시작으로 일본은 상하이를 장악하고 중국의 많은 지역을 점령했다.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뒤에는 일본군이 학살, 강간, 약탈도 자행했다. 그때 죽은 사람이 30만 명이었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1870~1945, P650)

만주사변 후 만주국이 세워지고 1937년까지 6년간의 기간이 있다. 하지만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루거우차오 사건이 있기 전까지 중국 내에서 끊임없는 중일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중국 내 공산당과 국민당 간의 사정과 맞물렸고 일본은 이것을 이용하려고 했던 측면이 있다.
만약 중국 내의 그 복잡한 사정이 아니었다면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세운다는 것이 조금은 어렵지 않았을까.

"아무튼 얼마나 시체를 묻었는지 자동차가 가는데 땅이 흐물흐물 떠가는 듯 하더라는 게야." (P432)

당시 난징에 대한 상황 묘사인데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 묘사가 있지만 도저히 옮기기가 어려워서 이걸로 대신해야할 것 같다. 일본이 중국에 저지른 가장 잔악무도한 사건들 중 하나이다. 일본군은 민간인을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 이유 불문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 국민, 일본 정신, 일본 문화는 대체 무엇이냐는 가장 나를 괴롭혔던 주제였다. 쉽지도 않고 지금 당장 답안을 내놓을 수도 없는 문제라서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결국 황도주의를 생각했고, 황도주의 하면 대표되는 인물, 도쿠토미 소호를 떠올렸다.

일본 국민의 제일 의무는 일본국을 아는 일이다. 일본국체가 세계에 탁월한 까닭을 아는 일이다. 일본은 세계에 비교할 수 없는 국체를 갖고 있다. 만세일계의 황실을 원수로 받들고 있는 일이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 찾아도 우리와 같은 체제는 없고 버금가는 모양조차 아직 볼 수 없다. 그리고 만세일계의 황실은 우리 야마토 민족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체제이다. 황실은 야마토 민족의 중심이자 근본이며 주축이다. 동시에 야마토 민족이라는 대가족의 본가(本家) 본원(本元)이다. 황실은 이른바 군부(君父)라는 두 자로 대체할 수 있다. 임금이면서 아버지인 것이다. 이 군민 일가족이라는 생각은 일본제국의 자랑이다. (...) 일본의 원수와 인민은 머리와 몸통 관계이다.(...) 황실이 야마토 민족의 근간이고 인민은 그 곁가지이다. (...) 우리 제국은 나라가 곧 가정이고, 가정이 즉 국가이다. (도쿠토미 소호, P195~197)
일본제국헌법은 황실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국민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동시에 묶는 존재로 신격화하고 있다. 도쿠토미는 이 '일본제국헌법'을 구체화한 이론으로 '황실중심주의'를 만들어냈다. 그가 이것을 일본 국민에게 호소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일본의 국체(國體)를 재확인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혼란, 한탕 주의 또는 패배 주의로 흐르는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희박해지는 충군애국 정신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오가타는 일본과 만주국이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일본군과 일본인을 욕하지만 자신도 일본인이니까(자신을 탓하기도) 마치 끝없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그는 코스모폴리탄을 지향했으나 그러기엔 자신의 출신, 상황은 한계로 몰고 간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도 패배주의 또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이것이 아니라면 국가가 선전하는 군국주의를 택해야 할 수밖에 없는가)

일본 아이들이 중국인은 모두 모두 죽여라! 하더라는 찬하의 말을 들었을 때 오가타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며 전쟁놀이를 하는 것을 그 자신이 목격한 적이 있었다. 만주사변이 군의 몇몇 미친놈들의 독주였었다는 것을 일본인인 오가타는 심정적으로 변명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심약한 그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한테 그럴 필요 없어요. 관동군의 단독 행위건 정부는 무관했건 나한테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어디 조선인이오? 일본이 뼛속까지 젖어들어 나는 이 동경에 있질 않소. 하하핫…………" (P251)

사람의 수만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잠들거나 깨어 있을 밤은 서산에 태양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다가올 것이다. 해가 차츰차츰 가라앉고 있다. 동굴 깊은 곳의 눈 먼 귀뚜라미처럼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온다. 전쟁은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눈 먼 귀뚜라미처럼 도시라는 크나큰 동굴 속을 끊임없이 오고 간다.
‘내가 가는 곳은 무엇이냐. 히토미를 그리고 진실을 찾아 헤매는 길인가. 도피와 망각의 길인가. 무라카미 선배는 삶의 목표가 없어졌다 하고 말했다. 나는 뭐라 말했나? 목표가 없기론 다 마찬가지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그래왔을 거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해서 옛날의 사람들은 그렇게들 돌을 많이 쌓았는가. 엄살이지 엄살, 나도 엄살이긴 매일반이다.
눈 먼 귀뚜라미는 생존을 위해 오고 간다. 호두(虎頭)의 그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죽어갔다. 생존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끌려간 그들의 생존을 말살한 채찍과 총구는 무엇이냐! 운명도 아니요 신도 아니다. 채찍을 휘두를 때 총구에서 불을 뿜을 때 그들, 또 다른 눈 먼 귀뚜라미의 무리는 생존을 구가하고 미래를 약속한다. 인간이여! 그대들은 초인을 기다리는가? 인간의 최고 목표는 과연 무엇이냐? 초인을 만나는 것이냐, 초인이 되는 것이냐.‘ (P484~485)


문화에 대한 키워드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건과 관련된 역사의 책을 읽어야겠다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책들이다. (문화와 해석, 중일전쟁 관련사들)
토지를 읽으면 마치 무한 확장되는 사물처럼 내 머리가 다양한 생각들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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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5-02 0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다음 권을 읽고 싶게 만드는 일이 나와서 다음으로 바로 넘어 가겠습니다 이 책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좋은 거겠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02 09:06   좋아요 0 | URL
네. 제게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주지만 공부가 되는 책이기도 해요. 읽고 싶은 책이 많아졌습니다^^ 희선님 감사합니다.
 
사기열전 2 - 개정2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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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 2권은 1권보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하다.


초반에는 한나라 초기 공신들이나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이 나온다. 물론 왕에게 아첨했거나 전투에서 공은 세우는데애만 목적이 있어 비판을 받을 만한 인물들도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주창이나 역생, 육가, 유경은 호(好) 쪽에 가깝다면 부관, 근흡, 주설은 한나라 고조 곁에서 신하로 봉호를 받았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숙손통은 초한 전투 때 항우를 따랐다가 유방에게 투항한 사람이고 계포도 그 싸움에서 유방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장수였는데 나중에 유방에게 투항했다.

이 중 긍정적 평가를 받는 인물들은 직언과 간언을 한 아래와 같은 이들이었다.

역이기(역생)은 출신이 가난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낮추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유방을 처음 만났을 때 예의가 없다고 한 방 먹였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 때 패공은 침상에 걸터 앉은 채 발을 씻고 있는 상태였다. "진실로 사람들을 모으고 의병들을 합쳐서 무도한 진나라를 쳐 없애고자 하신다면 걸터앉은 자세로 나이든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패공은 바로 발 씻던 것을 그만두고 의관을 정제하고 상석에서 그를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역생은 관직에 등용되었고 사신으로 제나라 왕과 재상을 상대로 협상해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꿇리지 않고 지략과 담대함을 보여 설득해서 이익을 얻어내었다.

원앙은 강직한 성품으로 간언을 많이 하였다. 강후 주발이 황제 앞에서도 위아래 구분을 못하고 교만함을 보이자 그가 공신이지 사직의 신하는 아니라며 따끔히 일침을 가했고 회남왕이 시무의 태자의 모반에 연루되자 그를 촉 땅으로 보냈을 때 강직한 성품에 문제가 될까 염려된다고 간언했다(결국 회남왕은 가는 길에 병을 얻어 죽었다). 이에 마음 아파하는 황제를 보며 회남왕의 세 아들을 왕으로 삼게 하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로 주변에 적이 많았다고 한다. 권세를 누렸지만 그만큼 질시를 많이 받았을 것을 짐작케 한다. 최후도 정적이 보낸 자객의 손에 의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장석지는 한나라 문제 때 법 집행을 맡고 있었던(정위) 신하다. 문제가 수레를 타고 지나가다 어떤 사람이 갑작스레 다리 아래에서 뛰어나와 놀라는 상황이 발생했다. 장석지는 그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벌금형에 내렸는데 황제는 "이놈이 내 말을 놀라게 했고. 내 말이 온순하였기에 망정이지 다른 말 같았으면 나를 떨어뜨려 다치게 하였을 것이오. 그런데 벌금형?" 그 말에 "법이란 황제와 천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법은 한쪽으로 기울면 백성은 그들의 손과 발을 어느 곳에 두겠습니까?" 라는 말로 폐하를 납득시켰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오늘날 한국의 법을 실행하고 집행하는 이들은 공정하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순리 열전'과 '혹리 열전'에서는 순리(청렴한 관리)와 혹리(포악한 관리)를 비교함으로써 관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당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관리 태도 지침서 같은 것이 아닐까?
한 무제 때 중앙 집권이 강화되면서 관리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전쟁으로 나라는 혼란한데 지나치게 엄격한 법을 적용하면서 관리들이 뒷주머니를 차고 도적이 횡행하였으며 농민 봉기가 폭증하였다. 법령과 형벌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적당한지,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인상깊게 본 주제들을 묶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먼저,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있다면 한나라 주변의 땅에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흉노 열전'은 개인적으로 사마천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편이 아닐까 생각한다. 흉노 정벌은 한 무제의 치적으로 주로 이야기되지만 사마천은 기본적으로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포함되어 있지만 무제가 관리를 잘못 기용했다는 비판도 들어가 있다(물론 이 때 활약을 한 위청, 곽거병 장군 같은 인물도 있다).
'남월 열전'은 진나라 말기에 조타가 자칭 왕이라고 나섰던 곳인데 무제 때 한나라에 편입되는 남월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동월 열전'은 남월의 동쪽이라고 해서 동월 지역인데 지금의 복건성 지방의 이야기다. 진나라 말 반란 세력이 들고 일어설 때 이 지역도 반기를 들었고 한나라가 진나라를 멸할 때 이 지역에 왕을 봉하게 되었다.
'조선 열전'은 기자 조선에 연결되는 이야기로 위만이 평양에 들어가면서 한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남이 열전'은 '서이'와 '남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의 운남성, 귀주성, 사천성 등 서남쪽인데 중원에서 먼 데다 소수 민족으로 중국 전체에서도 멸시의 대상이 되는 집단이어서 문화적으로 황무지라 여기기도 한다. 다양한 민족이 섞여 있고 부락의 개수도 많다. 한 무제 때 확장 정책을 이 곳도 피해갈 수 없었다.
'대원 열전'은 지금의 티베트 분지 지역으로 한혈마 생산지로 유명했던 곳인데 한무제가 이광리를 보내 정벌의 대상으로 삼은 곳이다. 장건의 서역 행로와 겹치기 때문에 관련하여 읽을 수 있다.
이 열전들의 특징은 이 곳 땅과 사람들의 특징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고대사를 공부할 때 중원은 사실 영역의 범위가 넓지 않은데 진/한나라를 둘러싼 다양한 지역의 땅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인 듯하다(물론 오류도 있겠지만).

의술과 점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편작 창공 열전'의 편작과 창공은 명의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특히 편작은 진나라 때 전설적인 명의였고 침을 놓는 일, 탕약을 짓는 일 모두에 뛰어났다고 한다. 창공은 편작에 영향을 받았고 그에 버금가는 명의였으나 편작의 끝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둔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 편은 이 시기 한의학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데 당시 실제 환자의 상태로 맥을 짚고 병명을 진단하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놀라웠다.

이어서 '일자 열전'과 '귀책 열전'도 흥미로웠는데 바로 점술에 관한 이야기다. 고대 역사에서 점술 기록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주제인데 아마도 고대 사람들은 하늘, 거북이 등껍질, 시초 등으로 운을 점치면서 미래에 대한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자'는 하늘의 상태를 관찰하여 길흉을 점치는 것이고 '귀책'은 거북 껍질과 시초로 점을 치는 것이다. 일자는 한나라 때 아주 성행했고 귀책은 은/주 나라에서 성행했다(갑골 문자를 생각해보셔도)

협객과 장사꾼 이야기도 있다. 사마천은 둘을 모두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협객 이야기는 '유협 열전'에 실려 있다. 사마천이 생각하는 협객은 내가 생각하는 협객보다 범위가 더 컸다. 통치 계층의 악행을 도와 개인의 영달을 취하는 자도 협객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정의의 편에 서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만 협객이라고 생각했었다. 협객(유협)은 춘추전국시대 혼란한 사회상을 타고 일제히 터져 나왔지만 진한 통일기가 되면 타도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존재가 되었다.
장사꾼 이야기는 '화식 열전'에 실려 있다. 돈을 버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수단으로 벌어들인 것이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이야기들에 담겨 있는 다양한 장사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마천이 상업을 나쁘게 보지 않았고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장려되던 시기에 이런 주장은 파격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중국 전역의 나라 별로 땅의 특성에 따라(습기, 바람 등) 어떤 산업이 발달했는지 기술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로써 중국 진한 시기를 마무리하고 다음의 역사로 넘어가려고 한다. 넓은 땅,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가 여전히 필독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 그리고 사기 열전이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분명히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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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5-02 0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 이야기를 담았네요 역사책 하면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 더 많기도 하잖아요 사마천 열전은 그런 사람만 있는 게 아니어서 더 재미있겠습니다 그렇게 쓰기 쉽지 않았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02 12: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있어요. 사람들 사는 것은 지금과 비슷하구나 느낄 수가 있어요. 특히 관리들의 자세를 보면서 정권의 수뇌부들이 좀 보고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울목 2023-05-05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한나라를 위해 대책을 세운 사람은 조착이었지만 누명을 씌운 사람은 원앙이었다.그리고 오초칠국의 난으로다급하니 조착의 온 집안을 몰살시킨이는 한경제였다. 한경제는 오초칠국의 난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그 아들 한무제와 아울러 잔혹한 황제였다.황제는 강후 주발과 그 아들 주아부는 한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음에도 그만한 대접을 하지 않았다.
장석지는 한문제에게 말을 놀래킨자를 그 자리에서 처형했으면 그것으로 끝났다는 말도 했기에 반은 잘하고 반은 잘못한것이다. 애당초 처형할만한 잘못이 아님에도 장석지 본인이 판결하기전에 황제가 처형했으면 그만이라는 말은 인명을 경시하는 말이 아닌가싶다.
전진왕 부견은 비수대전의 패배로 비난받지만 인명을 소중히 한 사람였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기에 그 최후는 너무 안타까왔다. 후연의 모용수도 그 신하에게 과거 부견이 대해준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라고하였으니말이다.
역사에서 나라가 혼란스러울때 그나마 나라를 나라답게지탱하는 것은 법을 판결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정의로움으로만 있는 사람인줄 알았던 좌파정권때의 사람들을 보면 공자가 말을 교활하게 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한다는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박근혜정권시절에 그 다음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서 우파를 털고 그다음엔 다시 우파가 정권을 잡아서 운동권 사기꾼 좌파를 털어서 서로 혼이 나야만 선을 넘는 짓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의 좌파를 보면 전태일 열사나 박종철, 이한열 열사를 사후에 만나면 과연 떳떳할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김유신장군과 그 부인은 패배하고 살아남은 원술을 만나지 않았는데, 뇌물을 받은 아들을 둔 김대중대통령은 5.18영령들을 바라보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여담으로 고위직의 여성분이 정권이 바뀐후에 제자들을 초대해서 지난정권의 김**님의 자식인 김~~의 교육을 어머님이 잘못시킨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한다.세월이 흘러 고위직 여성분의 아들 셋이 전부 뇌물관련하여 문제가 생기자 ,그때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지 아들들은‘하며 빈정대었다한다.
 
코스타리카 라 알퀴미아 #2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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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하고 다크한 원두를 선호하는지라 사지 않으려 했다가 ‘청사과‘라는 말에 끌려서 주문했다. 헌데 사실 ‘청사과‘는 내 미각에 전달되지 않았다. 향을 말하는 걸까? 대부분 아침에 마시기 때문에 산미가 강하면 곤란한데 적당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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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4-26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사과라니 혹하지만, 저는 요즘에 원두 내려 마시기가 너무 귀찮아서요. 원두 주문 안한지 오만년 된 것 같아요. ㅎㅎ
청사과.. 사볼까..흐음...

거리의화가 2023-04-26 11:1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는 머신이 있는데도 드립은 또 다른 맛이라 아침엔 거의 드립으로 먹어요. 너무 귀찮으면 드립백으로!ㅋㅋ 청사과가 왜 안 느껴질까요ㅎㅎㅎ

잠자냥 2023-04-26 12:06   좋아요 1 | URL
부장님 청사과는커녕 냉동부사 향도 안 납니다...

다락방 2023-04-26 12:12   좋아요 1 | URL
다들 안난다고 하시는데 어째서 내가 한 번 마셔보고 싶은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4-26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랑 똑같아요. 저도 다크한 원두 사려고 하다가 ‘청사과‘에 이끌려 이걸 구매했으나,,, 청사과는 어디에? 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4-26 12:55   좋아요 0 | URL
역시 원래대로 다크한 원두를 샀어야 했나 싶었어요. 진짜 청사과를 느끼신 분이 있긴 한걸까요?ㅎㅎㅎ

수이 2023-04-26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사과맛 안 나, 알라딘아 환불해줘 해도 될까요? 사서 마셔보고 싶은 강렬한 호기심!!

거리의화가 2023-04-26 12:57   좋아요 0 | URL
장사법상 환불은 안되겠지만 어쨌든 마셔본 저는 좀 허탈했어요! 수이님 마셔보시면 그 맛 공유해주세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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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연은, 그 안에서 우리 삶을 구성하기 위한 조직과 노력의 효시 같은 걸 우리가 식별할 수 있기에 아름답게만 보인다. 우연은 마치 우리가 몇몇 이미지들을 소유하도록 예정되었다는 듯이, 이런 이미지들의 소유를 쉽게 하고, 불가피하게 만들고, 또 때로는 기억하는 걸 멈출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그런 정지의 순간 후에 잔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우연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우리는 다른 수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이미지들을 쉽게 망각했을 것이다. - P306~307

3권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 베르고트와 질베르트였다면, 4권의 중심 인물은 엘스티르와 알베르틴이다. 두 사람 다 발베크에서 만났으며 엘스티르는 화가, 알베르틴은 화자의 마음을 훔친 사람이다.

엘스티르는 화가이므로 창조가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것, 그게 화자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갔을 것 같다. 그림도 글도 작업하기까지 분투하는 과정이 있고 결과물이 나오면 끝이다. 끝이라는 것은 생각했던 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내 손을 떠났다는 의미다. 내가 살구를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살구 비슷한 다른 과일이 된 것처럼, 아니면 꿈틀거리는 파도를 그렸는데 그 느낌이 덜 살게 나왔다거나.
알베르틴은 어떤 사람인지 사실 정확하게 모르겠다. 화자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나도 좀 당황한 결말이었다(소설이라 결과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직접 읽어보시길). 어쨌든 화자는 그를 자유로운 사람으로 생각했음이 분명한 것 같은데 이게 끝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프루스트의 작품은 후에도 계속 인물이 등장하고 연쇄 반응처럼 작용하기도 하니까.

엘스티르의 아틀리에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일종의 실험실 같아 보였고, 그곳에서 그는 모든 방향으로 놓인 다양한 직사각형 캔버스 위에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혼돈으로부터 꺼내어, 이쪽에는 모래사장 위에 라일락 빛 물거품을 터뜨리는 노기 띤 파도를, 저쪽에는 갑판 위에 팔꿈치를 괸 흰색 리넨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를 그려 넣었다. 젊은이의 윗도리와 부서지는 파도는, 이제는 아무도 입지 못하며 더 이상 아무것도 적시지 못한다는, 다시 말해 그것이 가졌다고 여겨지는 속성으로부터 벗어났지만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새로운 품격을 획득했다. - P322

3권에 이어 화자의 꿈과 이상을 인물과 사건을 통해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소년기와 청년기의 화자의 모습을 따라가며 독자도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을 느낄 수가 있다.
3권에서는 문학과 연극에 주목한다면 4권은 이미지, 그러니까 미술과 사진에 집중한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림과 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방문지를 가건 예술과 관련된 곳을 찾는다. 그 지역의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곳은 역시 박물관, 미술관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록 많은 곳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직접 가본 곳은 잔상에 오래 남아서인지 후에 이미지 검색을 할 때 익숙하면 그 때의 기억이 스치면서 흐뭇해지곤 한다.

4권을 읽으며 핵심적으로 떠오른 이미지 두 가지는 모네의 <해돋이>와 터너의 <카르케튀트> 항구였다. 두 사람의 그림 기법은 정말 다르다. 모네가 인상파의 대표 화가로 점묘법 등의 기법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면 터너의 그림은 세밀하고 사실적이다.

화자는 할머니와 함께 발베크에 가기로 한다. 이동 수단은 기차다. 당시의 기차는 역시 혁명적인 운송 수단이였다. 증기를 내뿜고 힘찬 소리를 내뿜으며 빠르게 앞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는 도시 이곳 저곳을 빠르게 이어주었고 마차나 배로 몇 날 며칠을 가야 하던 시절에 비교하면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를 느끼게 했을 것 같다. 물론 이는 거의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시계가 등장했다는 것과도 연관이 된다.



둘은 기차를 타고 가면서 해돋이를 본다. 해돋이를 보면서 빛과 시간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사물들을 그림 같이 묘사한다. 마치 모네가 그린 해돋이처럼 선연히 번지는 붉은 태양이 그려졌다.


나는 창문에 눈을 붙이면서, 마치 빛깔 자체가 자연의 심오한 삶과 관계된다는 듯 더 잘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선로가 방향을 바꾸면서 기차도 방향을 틀었고, 그러자 아침 경치는 창틀 안에서 달빛 비치는 푸른빛 지붕이 있는 밤의 마을로, 온갖 별이 뿌려진하늘 아래 어둠의 유백색 진주 빛 때가 낀 빨래터 있는 밤의 마을로 바뀌었다. 내가 분홍빛 하늘의 띠를 잃어버리고 슬퍼했을때, 그 띠는 다시 반대편 차창을 통해 그러나 이번에는 붉은빛이 되어 나타났고, 선로의 두 번째 모퉁이에서는 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진홍빛을 발하는 변덕스럽고도 아름다운 아침의 그 불연속적이고도 대립되는 단편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화폭에 담기 위해, 이런 단편들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과 연속적인 화폭을 가지기 위해, 이 창문에서 저 창문으로 계속 쫓아다니며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 P31


이제 카르케튀트 항구 그림을 비교해 보자.


같은 카르케튀트 항구를 그렸는데 앞의 두 그림들은 너무나 세밀하여 마치 사진 같이 사실적인 느낌이 든다면 마지막 그림은 마치 잔상처럼, 이어진 색채를 통해서 장소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인상파의 그림에서 사실성은 중요하지 않다. 관찰하는 사람의 눈에 비친 빛을 포착해서 그리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문장 기법이 인상파의 그림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는, 흐릿한 이미지와 모호성 때문인 것 같다.

사진이 단순한 현실의 복제이기를 그치고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 우리에게 보여 줄 때, 사진은 나름대로 그것에 부족한 약간의 품위를 지니게 됩니다. - P210

엘스티르가 얼마 전에 끝냈으며, 내가 그날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카르케튀트 항구를 그린 그림에서 그가 도시를 그리기 위해서는 바다의 요소만을, 바다를 그리기 위해서는 도시의 요소만을 사용하면서 관람자의 정신에 예고한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은유였다. - P324

터너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마치 사진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사진이 등장한 19세기에 화가들은 자괴감에 빠졌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는 뭘 먹고 살지? 저런 혁명적인 아이템이 등장했는데?' 이런 생각이 아니였을까. 마치 오늘날 AI가 등장하여 우리 미래의 삶을 위협하듯 당시의 화가들은 사진의 등장으로 자신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디지털 카메라도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지 않나(아무리 레트로가 인기를 끈다 해도 그 수요가 많지는 않는 듯하다).

현실인 듯 이미지인 듯 구분되지 않는 모호함은 여전하지만 조금씩 이 묘사 기법에 익숙해지고 있다. 3, 4권의 부제는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였다. 화자에겐 발베크에서의 기억이 소녀들(!)의 모습으로, 그러니까 덩어리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이 알베르틴과의 결과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존재를 회상한다는 건 실은 그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한, 망각했던 모습이 다시 나타나면, 우리는 그 모습을 알아보고 그 빗나간 선을 수정한다. - P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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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4-25 09: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4권까지 완독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전 점점 이 <잃.시.찾>의 줄거리를 알기가 어려워지네요.
3권이 통 진도가 안나갑니다. ㅠㅠ
다시 또 읽어야겠다 다짐을 하게 되네요^^

거리의화가 2023-04-25 12:42   좋아요 3 | URL
한 번 흐름을 끊기면 이어나가기 쉽지 않은 책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단번에 읽기도 어려운 책이구요^^; 저도 3권이 앞의 두 권보다 좀 어려웠는데 예술적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워서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은하수님 잃시찾 읽기 응원합니다^^

그레이스 2023-04-25 12: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경계를 없앰으로 은유를 한다는 엘스티르의 그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4-25 12:44   좋아요 3 | URL
오! 저도요. 그레이스님^^ 인상파의 그림들이 대부분 경계가 흐릿하잖아요. 엘스티르의 아틀리에의 분위기, 그리고 그가 그리던 그림들도 비슷한 느낌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희선 2023-04-26 04: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은 사진이고 그림은 그림이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도 예전에는 달랐겠습니다 AI 나중에 어떻게 될지... 사람이 하는 일이 줄어든 건 오래되기는 했네요 그래도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일도 있겠지요 인상파 그림 같은 프루스트 글이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26 08:55   좋아요 2 | URL
사진과 그림은 다르지만 어떤 그림은 너무 사실적이라 사진 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AI의 힘이 무섭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도 확대될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AI가 논리나 사고를 할 수는 있겠지만 사람의 미세한 감정 터치나 그런 것까지 접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새파랑 2023-04-26 14: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가님은 작품을 읽고 그림을 떠올리시는군요. 화가가 맞으십니다~!!

이대로 쭉 가시면 곧 다 읽으실거 같아요 ^^

거리의화가 2023-04-26 14:19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13권만 남겨두고 계시지 않으셨나요? 흐름을 끊기면 시리즈는 완독이 어렵더라구요. 너무 늘어지지 않게 부지런히 읽어야 할텐데 읽을 책들이 많아서 참... 어렵습니다ㅋㅋ

새파랑 2023-04-26 14:21   좋아요 2 | URL
저 13권도 다 읽긴 읽었는데 리뷰를 어떻게 쓸수가 없어서 그냥 놔두고 있습니다 ㅋ 너무 어렵습니다 ㅡㅡ

거리의화가 2023-04-26 14:26   좋아요 2 | URL
완독은 다 하셨군요^^ 잃시찾은 1번에 이해하긴 역시 어려운가봅니다. 저도 이제 4권인데 점점 더 어려운 느낌이 드네요ㅠㅠ
 
사기열전 1 - 개정2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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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만에 다시 읽은 사기 열전은 또 읽어도 왜 이리 재미날까. 수면 아래 잠자던 나의 지각 세포를 깨우듯 활자를 읽어나가며 그래, 이런 인물이 있었지. 아무리 오래 전에 읽었어도 읽는 순간 새롭지 않다는 경험을 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처음에 사기 시리즈를 읽을 때는 '열전'부터 읽었었다. 재미를 보장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중국 고대사에 대한 얼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읽어서 그냥 이런 인물이 있나보다 하고 넘어간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헌데 책을 보니 내가 무척 열심히 읽었는지 밑줄까지 벅벅 그어가며 읽은 흔적을 발견했다(물론 기억은 없다).

본기는 '항우'를 제외하고는 당연시되는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고 세가나 열전과는 다르게 정제되어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을 했다. 세가와 열전은 실려 있는 인물들만 봐도 사마천의 입김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또 대화문이 중심인 경우가 많아 역사를 모르고 사건과 인물에만 집중해도 읽기에 수월하여 그런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열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자객 열전'이다. 처음에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무슨 자객의 일화가 역사에 실리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들은 춘추 전국 시대에 활동한 자객들로 무려 다섯 명의 활약상이 실려 있다. 이 중 인상적인 이는 역시 '진시황'(이 때는 황제가 아닌 왕자 시절)을 공격한 형가(연나라 출신)다. 형가 뿐 아니라 진시황은 수시로 노리는 자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마천이 자객들의 일화를 열전에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이 죽이려고 했던 대상은 결국 개인적으로 보면 원수다. 그러나 자객의 활동으로 죽을 뻔 한 사람은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잘못 하고 있구나.' 개인들이 모여 집단이 되는 것처럼 이들은 때로 다수의 원수가 된 사람들이었고 이를 처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객들은 뛰어든 것이다. 사마천도 그저 개인의 원한으로 뛰어든 자객보다 집단의 원한을 갚기 위해 뛰어든 자객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 전국 시대 대표 공자들인 맹상군,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의 4명의 열전도 실려 있다. 이 중 신릉군은 '위 공자 열전'으로 실려 있다.
이 네 명의 공자들은 집 안에 식객을 많이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데 유독 맹상군의 식객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는 사마천의 평가가 부정적이었던 것이 후대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 아닐까. 명성과 이익을 쫓았던 인물평이 악수로 작용한 경우다.그렇다고 해도 선비를 집안에 들이려 한 것은 자신의 이득만은 아니고 배움에 대한 열정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지.
평원군은 다른 사람의 간언과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나라에 충성했으며 이웃에도 잘 했기에 명망을 떨쳤으나 때론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춘신군은 초나라 재상을 20년 간 지내면서 합종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진나라에 대항하고 노나라를 접수하면서 초나라를 부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4명의 공자들 중 위나라 공자인 신릉군 무기는 가장 어질고 능력까지 출중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사람이다. 무엇이 달랐을까. 똑같이 빈객과 선비를 집 안에 초대했어도 초대받은 이들로부터 충성과 존경을 얻고 아니고의 차이였다고 생각한다. 또 신릉군은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났다고 한다. 전쟁과 기아 등으로 혼탁했던 시기에 이 능력은 비범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질이었을 것 같다.

전국시대 유명한 군사가였던 악의와 정치가였던 염파, 인상여는 조나라에서 활약한 사람들이다. 조나라는 춘추전국시대에 은근한 강자였다. 서쪽에 진나라가 있었고 남쪽에 초나라, 북쪽에 연나라가 있었고 또 조나라가 있었다. 지리적으로 조나라가 이 중간에 위치해서인지 외교와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인물들이 오가고 탄생하는 곳이 아니었을까.
악의는 위나라 출신이었지만 조나라에서 벼슬을 했고(물론 그 후에 활약은 연나라에서 제나라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염파와 인상여는 약화되었던 조나라를 부흥시키는 데 활약했던 인물들이다. 경쟁자였던 염파와 인상여가 나란히 다루어졌다는 것이 후대의 독자로서 놀라운 지점이다. 사마천의 평가는 인상여에게 좀 더 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도덕적인 면(너그러움, 인)에 대한 평가 때문인 듯하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를 찾아가 변설하는 장면은 어디에도 꿇리지 않는 기개와 용기를 느끼게 했고 자연스레 조나라의 국격까지 높이는 모습이었다.

조나라 왕은 염파 대신 조괄을 장군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했다.
"왕께서는 명성만 믿고 조괄을 쓰시려 하는데, 이는 거문고의 괘棵를 아교로 붙여서 고정시키고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그저 자기 아버지가 남긴 병법 책을 읽었을 뿐 사태 변화에 대처할 줄은 모릅니다."
그러나 조나라 왕은 듣지 않고 마침내 조괄을 장군으로 삼았다.
조괄은 스스로 어릴 적부터 병법을 배워 군사에 대해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자기를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일찍이 그는 아버지 조사와 함께 군사적인 일을 토론한 적이 있는데, 조사는 그를 당해 낼 수없었다. 그러나 조사는 그가 잘한다고 하지 않았다. 조괄의 어머니가 조사에게 그 까닭을 묻자 조사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거요. 그런데 괄은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하오. 조나라가 괄을 장군으로 삼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만일 괄을 장군으로 삼는다면 틀림없이 조나라 군대는 파멸당할 것이오." - P538

언제나 함께 따라다니는 소진과 장의는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소진이 합종을 주장했다면 장의는 연횡의 대표주자다.
소진 열전에는 소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소진의 두 동생인 소대와 소려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소진이 합종에 성공해 육국의 재상이 되어 13 년간이나 자리했다는 것은 평가를 떠나서 그의 능력에 출중함을 엿보이게 한다. 소진은 진나라에 갔다가 거절 당하고 나서 육국을 차례로 돌면서 유세를 한다. 그의 유세법은 탁월한데 각 나라에 맞춰 그럴 듯한 설득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나라에 가서는 닭부리가 되라'고 하고 위나라에 가서는 '싹을 잘라라'라고 하고 제나라에 가서는 '실질적 이득을 생각하라'고 한다. 사실 어디에든 통하는 말일 수 있지만 이것이 먹혀 들어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설득하는 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소대와 소려는 연나라를 위해 계략을 꾸며 제나라를 물리친다.
장의 열전에도 장의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라이벌이었던 진진, 서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은 모두 연횡을 주장했다.
장의는 진나라 재상으로서 제나라, 초나라를 이간시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이 때 장의가 진나라를 가도록 만든 배후 인물이 소진이었다는 것은 놀라웠다(가신으로 하여금 장의를 화로 정신차리게 한 것). 위나라를 시작으로 초->한->제->조->연을 차례로 돈다. 진나라 혜왕이 장의를 지지했다면 뒤를 이은 무왕은 장의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때문에 제후들은 이 때 눈치를 보다 연횡에서 벗어나 합종을 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 이 사건 해결을 위해 자신이 가겠다 단언하며 위나라로 갔으나 간 지 1년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진진은 장의와 함께 혜왕의 총애를 함께 다툰 인물이고 서수는 장의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장의가 죽고 나서 장의의 자리를 차지하여 활약한 인물이다.

합종에 참가하는 나라들은 양떼를 몰아 사나운 호랑이를 공격하는 꼴과 다르지 않습니다. 호랑이와 양은 서로 적수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한데도 왕께서는 사나운 호랑이와 손잡지 않고 양떼 편에 섰습니다. 신은 왕의 계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천하의 강한 나라는 진나라가 아니면 초나라이고, 초나라가 아니면 진나라입니다. 두 나라가 서로 다툰다면 그 형세는 양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 P282

합종은 초나라를 위한 일이지 조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제 주인이 앞에 있는데 저를 꾸짖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초나라 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참으로 선생의 말씀이 맞소. 삼가 나라를 받들어 합종하겠소."
모수가 물었다.
"합종이 결정된 것입니까?"
초나라 왕이 대답했다.
"결정됐소."
그러자 모수는 초나라 왕의 좌우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가져오시오." 모수는 구리 쟁반을 받쳐 들고 무릎을 꿇은 채 초나라 왕에게 올리면서 말했다.
"왕께서 먼저 피를 마셔 합종을 약속하셔야 합니다. 다음 차례는 제 주인이고, 그 다음 차례는 접니다."
이렇게 하여 어전 위에서 합종 약속을 맺었다. 그러자 수는 왼손으로는 구리 쟁반의 피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열아홉 명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당 아래에서 서로 이 피를 마시시오. 그대들은 범속하고 무능하며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루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 P408

열전은 총 70명의 인물을 다루는데 1편은 딱 절반인 35명의 인물을 다루었다. 900여페이지에 달함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2권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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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4-24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괄의 어머니는 정말 현명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어요. 안다는 것과 실제로 활용한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으니까요. 멋진 서평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04-25 09:04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경지인 듯해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3-04-25 0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읽을 때 더 재미있으셨군요 그동안 중국 역사를 공부해서 여기 나오는 사람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그때 사람을 보고 배울 것도 많겠습니다 반대로 그러지 않아야겠다 생각하는 것도...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25 09:05   좋아요 1 | URL
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맞아요. 물론 역사를 몰라도 이야기만으로 재밌지만 역사를 알면 훨씬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인물만이 아니라 찌질하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함께 실음으로써 다양한 사람이 역사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인간에게도 다양한 면이 있듯이요.

그레이스 2023-04-25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읽고 싶네요^^

거리의화가 2023-04-25 09:06   좋아요 1 | URL
재독 가시나요? 재독하니 더 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래서 재독, 삼독 하는 건가봐요ㅎㅎㅎ

페넬로페 2023-04-25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을 때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거리의화가님은 중국문학쪽 체질이신가봐요~~
저도 재독 가야할듯요^^

거리의화가 2023-04-26 09:23   좋아요 1 | URL
역사인데 문학(!) 같은 느낌이 나는 책이긴 하죠^^; 근데 역사적 배경이 없었다면 재미를 이만큼 갖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저는 아무래도 사실을 기반한 문학이 더 읽기 수월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