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al Farm and 1984 (Hardcover)
Orwell, George / Houghton Mifflin Harcourt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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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도 의심해야 하는 세상에서 항시 긴장하며 정신을 챙겨다니는 일이 가능할까. 온전한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그 반대의 상황은 상상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지. 이 세계는 정말 살아가고 살아남는 것이 치욕일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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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조지 셀 - 콜럼비아(소니) 앨범 녹음 전집 [한정반 106CD]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외 작곡, 조지 셀 (George / SONY CLASSICAL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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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녹음이 1969년이라 하는데 어쩜 이리 음질이 수준급인지 놀랍기만 하다. 명반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으나 그동안 계속 고민하고 침만 삼키다 이번에 막차를 겨우 타서 다행이다. 시작부터 드보르작의 경쾌함을 만나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데 남은 리스트들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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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7-05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6CD라는 건 106장이라는 걸까 하고 보니 맞네요 106장 언제 다 듣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루에 한장만 들어도 106일이 걸리니... 음악도 아주 많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7-05 09:50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106장이에요. 셋리스트 보고 있으면 아주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다 들으려면 시간은 좀 걸리겠으나 하루 cd 한장 듣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은오 2023-07-05 0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들썩이는 화가님 상상중

거리의화가 2023-07-05 09:50   좋아요 1 | URL
ㅋㅋㅋ 실제로 들썩거렸는데 몸이 유연하지는 못해서 삐그덕거렸다는 게 맞을 듯합니다!ㅎㅎ
 
토지 18 - 5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8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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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는 온통 전쟁에 관한 기사뿐이었다. 물론 여태까지 신문은 전쟁에 관한 것 일색이었지만 전선이 달라지고 적대국이달라지면서부터 일종의 히스테리처럼 신문지면은 요란해진 것이다. 식량증산, 저축장려, 국방헌금, 유기·기타 금속류의 헌납, 지원병 독려와 아울러 동태 상황에 대한 선전, 각종 단체들은 영일(寧日)없이영미)를 성토하고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연일 진충보국(盡忠報國)과 성전환수를 외쳐대고 있었다. 특히 지식층, 그 중에서도 글 써서 행세해왔던 문인들 문학단체들은 남 먼저, 보다 과격하게 일왕(日)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하고 결사보국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마치 총 든 놈이 뒤에서 목덜미를 겨누고 있기라도 하듯이. - P53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 공격을 일으켰고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격화되었다. 그러나 1943년 2월 1일 일본은 과달카날에서 철수하였고 4월 18일 일본 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비행기 속에서 사망하였다. 2월 2일 독소전쟁의 격전지인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 원수인 파울루스가 항복한다. 7월 25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체포되고 같은 달 28일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이 해체되면서 침략국의 전세는 전체적으로 어두워졌다. 같은 해 조선에는 3월 1일 징병제가 공포되고 8월 1일에 시행되었다. 6월에는 학도 전시동원체제 확립 요강을 결정하고 10월에 실시되었다. 3월에는 친일 문화 단체를 통합한 반도문인보국회가 결성되었다.

8월 9일 조선식량관리령(식량의 수급 및 가격을 조정하고 배급의 통제를 목적으로 함. 정부는 매입한 미맥을 조선식량영단이나 조선 총독이 지정하는 자에게 매도하거나 기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이 공포되어 식량 배급제가 시행되면서 식민지 조선 경제는 더욱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일본은 식민지의 식량을 통제하는 동시에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모두 쓸어갔고 이에 피해를 보는 것은 가난한 대중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대중을 이끌어가야할 지식인이나 경제계 인사들은 일본의 권력에 빌붙어 조선인들을 탄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에 동원하는 데 앞장섰다.
이 무렵 학교에서 하는 교육이라고는 군사 훈련 과 근로 봉사였다. 결국 전쟁 예비 훈련인 셈인데 아이들을 이러려고 교육받게 한 것은 아닐텐데 참 헛웃음이 나왔다. 천으로 무슨 머리를 가릴 것이며 목검으로 무슨 싸움이 되겠는가. 막상 조선 내 전쟁이 벌어진다면 공멸이 아니였을까.

중학생, 그들은 과연 학생인가? 카키색 교복에 전투모를 쓰고 배낭을 짊어지고 각반을 다리에 감고 그들은 등교한다. 운동장에서는 연일 목(木)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 그 지난달 그러니까 팔월에는 드디어 조선에도 징병제도가 실시되었다. 누군가의 말로는 조선인에게는 병역을 실시하지 말 것이며 절대로 무장시켜선 아니 된다 하고 명치천황(明治天皇)이 유언을 했다던가 어쨌다던가. 사실이 그렇다면 얼마나 다급했으면 유언을 무시하고 징병제를 시행하겠는가. 아무튼 앞으로 중학교 군사 훈련에 박차를 가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공부 안 하기로는 여학교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전보다 교련시간이 많아졌고 목검(木劍)이다, 나기나타다 하며 무술시간은 체육이나 무용시간을 완전히 점령했고 모내기에서 보리 베기, 벼 베기에 동원됐으며 폐품수집에서 국채 팔러 다니기, 센닌바리 만들어주기, 공장에서 미완성으로 나온 군테 마무리 작업, 게다가 방학의 십일 간을 반납하고 교사부지 고르는 데 동원된 근로봉사, 그런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고 고통스러운 것이 방공연습이었다. - P222

"알다시피 요즘 학생들 군사훈련 아니면 군수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 아닌가. 말하자면 노동자들 선동하기, 눈치껏 태업하기, 공장기구 파손, 변소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후미진 곳이라면 어디든 벽면에 낙서하기, 그 낙서의 종류에는 별의별 것이다 있는 모양인데 조선독립만세서부터 귀축 일본 물러가라, 해방의 그날이 오면 너희들 모가지는 추풍낙엽이다. 친일 분자의 모가지부터 비틀어버리겠다 등등 지워도 지워도 끝이 없다는 거고, 하는 수 없이 학교 당국에서는 호주머니 속에 백묵이나 연필 따위가 들어 있는지 조사를 해서 들여보내는데도낙서는 줄지 않는다는 거다. 요즘 애들 결코 정면 대결은 하지 않아."
"신통하군요."
"그 애들 보면 희망이 생겨, 옥쇄가 아니고 지속성이거든." - P334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다. 조선인 아이들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오오 덴노사마." 천황을 부르는 말에 웃었다는 이유로 뺨을 갈긴 일본인 선생에 그 학생은 반항을 했고 조선 말을 쓴다 하여 조선인 선생이 벌을 준 일이 교내에 퍼지자 학생들은 흥분하고 분개했던 일도 있었다. 여러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도 조선인 학생들은 갖은 행위로 학교 당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아이들, 학생들이 희망이다'. 이것이 전쟁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결국 학교 내에는 균열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 많은 학생들을 모두 단속한다는 것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선의 악화로 학교도 예비 군사 훈련소가 되어버린 탓도 있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선생들도 아이들을 억지로 붙잡아 두고 학생들을 일탈하지 못하게 감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18권에서 크게 두 가지의 사건이 있다.

양현과 영광, 윤국의 이야기가 있었다. 영광은 양현이를 열망하듯 사랑했으나 윤국이의 벽을 인식하면 무너져 버렸다. 그렇게 그는 양현의 마음을 끝내 거부했고 양현은 그런 영광의 마음을 알면서도 괴로워한다. 양현은 윤국과 결혼하라는 서희의 말에 고뇌하고 윤국은 또 윤국대로 고뇌한다. 결국 셋 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어서 마음이 짠했다. 양현이의 사정을 안 명희도 그 옛날 통영에서 방황하던 때를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당시 썩은 동아줄을 잡았던 명희는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데까지 갔었기에 양현이가 자신과 같은 상황을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명희는 자신의 감정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양현을 부러워한다. 그런 점에서 명희는 여전히 과거를 털어내지 못한 것 같다. 세월이 지난다고 흉터가 저절로 아무는 것은 아니다.

욕망과 희생의 싸움이었다. 사람 속으로 뛰어들어 자기도 한몫을 하겠다는 충동과 세상을 바라보며 국외자로서 흐르는 대로 흘러가겠다는 에고이즘과의 싸움이었다. 집념과 포기의 싸움이었다. 도덕과 반도덕, 그에게는 윤국이 거대한 성(城)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은 더욱더 자신이 피를 많이 흘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치명적인 것은 믿지 못할 자기 성격적 결함이었다. 제2의 혜숙을 또 만들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은 그의 전진에 제동을 걸었다. 영광은 양현을 사랑했으며 이 세상에 나와서, 가장 강렬한 집념이었다. - P266

팽팽하게 당겨진, 결코 누그러질 수 없는 긴장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양현은 계속해서 울었다. 명희는 저도 모르게 뜨개질하다 만 것을 집어들었다.
‘언제나 그렇게 엇갈려. 왜 그렇지? 그러면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그런 슬픔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은 살아가고, 얼마나 신기한 일이냐? 양현아, 실은 나도 지금 혼란스러워" - P271

불안한 사랑,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랑, 그러나 양현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그 불안한 사랑에 매달려 있는가를 깨닫는다. 외부의 장애보다 영광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이 그 얼마나 큰 것인가를 양현은 새삼스럽게 통감한다. 그것은 그의 처절한 외로움이며 그 외로움을 타고 흐르려는 그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양현은 그를 꽉 붙잡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의 외로움을 녹여주리라! 마치 영광이 옆에 있는 것처럼 그러는가 하면 등을 돌리는 뒷모습에 매달리는 광경을 보기도 하고 영원히자기 앞에서 모습을 감추어버리는, 그 돈암동 거리를 눈앞에 떠올려보기도 한다. - P302

윤국은 차안에 서서 피안의 양현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강을 결코 건너지 못하리라는 것을, 피안에 닿지 못하리라는 것을 윤국은 깊이 깨닫는다. 양현은 양현의 길을 가고 자신은 자기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 P325

김두만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그는 기생인 월화와 바람을 피우는데 정부가 된 서울댁(조강지처였던 막딸은 결국 호적을 팠음)은 이에 노발대발 사건은 터졌다. 그는 진주에서 음식점을 차려 두만이네 식구를 먹여 살린 만큼 지금의 김두만 부는 서울댁의 지분을 무시할 수가 없다. 물론 막딸을 버리면서 부모와도 갈라서고 서울댁은 집안에서 전횡을 부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바람 피운 것이 자랑은 아니지 않나. 그 때 막딸을 때리고 내칠 때도 '미친 놈 개자식!' 욕지거리를 했었는데 정말 끝내 이 놈은 변하지가 않는구나 싶어서 혀를 끌끌 차게 된다.

"허무해서 아마 그러실 거다. 돈이 많아도 쓸 곳이 없고."
"허무해서 그렇다는 말엔 나도 동감이다. 자네도 알다시피 사업은 올스톱, 돈의 가치는 날로 떨어지고 부동산 매매나 된단 말가, 땅에서는 공출로 몽땅 나가버리니, 전쟁은 불리하고………… 현재를 실감하는 데 여자밖에 더 있어? 나 역시 그래.
마음 붙일 곳이 있어야지. 나는 출발에서부터 야망 같은 것 없었으니까, 자네들 수재하고는 형편이 달랐어. 한순간 순간을 즐기다가 가는 거지 뭐. 어차피, 땅속에 들어가 썩을 몸 아닌가." - P346

"네년이 나한테 칼을 들이대 놓고서도 그 자리가 온전할 것 같나? 독사 같은 년, 내가 그거를 모리고 이날까지 살았제. 만정이 떨어진다." 또 서울네는 새우같이 등을 꾸부리고 앉아서 눈을 치뜨고 두만을 노려본다. 힘이 다 빠져서 입도 몸도 뜻대로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이래가지고는 어디 마음 놓고 집이라고 찾아오겠나? 저년은 서방 밥그릇에 비상 타고도 남을 년이다. 생각해보믄 저년으로 인해서 부모 형제하고 등졌고 죄 없는 제집 민적까지 파고 자식 놈은 저 모양..…………."
새우처럼 꾸부리고 있는 서울네 등이 튀듯 움직였다. - P352

어느덧 1943년을 지나고 있다. 19권은 보나마다 더욱 각박해진 전황 때문에 암울한 일들이 줄줄이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도시에는 가을이 머물고 있었다. 물들기 시작한 가로수 아래, 얼음 갈라지는 소리라도 들려올 것 같은, 서늘하고 푸른 하늘 아래,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는 군상들, 누더기 같은가 하면 곤충 같기도 한 군상들이 서로 방향을 달리하며 혹은 같이하며 가고 있었다.
낡은 상자 같은 트럭이 달리고 짐 실은 우마차도 지나가고 있었다. 여인을 신이 만든 꽃이라 했던가, 자연의 열매라 했던가. 꽃으로도 열매로도 볼 수 없는 몸뻬 차림의 우중충한 모습들, 남자들은 한결같이 카키색, 사람들에게는 계절이 없었다. 배급소에서 식량을 달아주고 배급표를 챙기는 그 현실만이 있었을 뿐이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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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7-02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생들한테 군사훈련까지 시키다니, 그게 오래 남았던 것 같네요 지식인은 전쟁에 나가야 한다고 하고... 일본 사람보다 더 일본 사람 같은 조선 사람도 있었겠지요 그런 사람은 조선이 독립했을 때도 달라지지 않았네요 학생들이 일본에 반항하기도 하다니 대단하다 싶기도 해요 제가 학생이었다면 그러지 가만히 있었을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7-02 21:18   좋아요 1 | URL
얼마 전에 읽었던 ‘제국의 소녀들’이란 책에도 40년대 무렵이 되면 군사 훈련하고 농촌 봉사 하고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조선인이 세운 학교가 일본인 교장, 일본인 교사가 대부분인 곳으로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이렇게 반항하는 모습이 아슬아슬하기도 하면서도 대견하더라구요. 어른들도 독립운동을 접고 친일로 전향하는 마당에… 그래서 아이들이 희망이다 싶더라구요^^*

독서괭 2023-07-12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읽었네요! 18권, 학교 이야기 재밌었어요. 똥 싼 이야기에,, 심각한 학교 상황인데도 큭큭 웃었네요. 아휴.
양현이 너무 안됐어요. 윤국이도 안 되긴 했지만, 양현이가 여러모로 훨씬 힘든 상황이겠죠. 그래도 말못하고 결혼해버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우리 이제 두권 남았어요~~으흐흐~~^^

거리의화가 2023-07-13 08:53   좋아요 0 | URL
똥싼 이야기는 상황은 심각했을지라도 조선인 입장에서는 사이다일 수밖에 없죠! 19권 읽고 있는데 양현이랑 영광이 이야기가 또 나오더라구요. 영광이는 환국이와도 관계가 애매해지고. 윤국이는 다시 휙 떠나고 안쓰럽습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괭님도 남은 분량 화이팅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 게르망트 쪽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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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살롱 사이에는 현실이 끝나는 분리선이 놓여 있었다. 게르망트댁에서의 저녁 식사는 마치 오랫동안 욕망해 오던 여행을, 머릿속의 욕망을 내 눈앞에 지나가게 하여 꿈과 친해지는 여행을 시도하는 것과도 같았다. 집주인들이 누군가를 초대하여 "오세요, ‘완전히‘ 우리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친구들이 자기들 사이에 섞인 그를 보며 느낄 두려움을 그 배척받은 자의 탓으로 돌리는 척하면서, 지금까지 그들의 내밀한 친구들에게만 부여해 오던 특권을 본의 아니게 비사교적이고 조금은 호감을 사고 있는 그 따돌림 받는 자에게도 부여하여, 그를 남들이 부러워하는 특권적인 사람으로 변모시키려고 애쓰는 그런 저녁식사 중의 하나라고 나는 믿었을지도 모른다. - P109

'게르망트 쪽'(5,6권)을 읽고 나선 몸도 마음도 어지러웠다. 차라리 찰스 디킨스의 작품처럼 '빈민가와 뒷골목 이야기가 더 나았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음울하고 비참해서 읽기 힘들었는데 말이지).

화자가 청년이 된 뒤 사교계 모임에 하나 둘 참여하게 되고 나서 이런 모임이 이야기의 배경으로 줄곧 등장하는데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현대에도 이런 부와 명예를 가진 자들의 모임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고 이런 세계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문제는 이 배경이 19세기 유럽 프랑스라는 사실! 나는 대략의 프랑스 역사를 알 뿐인데 이 책은 당시의 문학과 예술 전반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대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도통 모르는 대화가 이어지니 지루할 수밖에(하필 이 부분이 제일 길다). 관찰자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재미가 있을 터인데 말이다. 아무튼 그만큼 힘들게 읽었다는 넋두리였다.

5권 마지막에 할머니가 발작을 일으켰다. 병명은 요독증(신장 기능이 떨어져 소변 배출이 잘 안 되고 체내에 노폐물이 축적되어 각종 합병증을 일으킨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할머니의 통증은 더해 가고 본인의 아픔도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고통도 그만큼 커진다.
나중에 할머니는 눈이 안 보였다가 귀가 안 들리고 언어장애까지 오게 되는데 그 때 가서는 자기가 하는 말을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며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을 지경이 된다. 프랑수아즈는 신문 광고를 보고 전문의를 찾아 데려오는데 할머니는 진료를 거부한다. 그리고 끝내 얼마 후 할머니는 가족들 곁을 떠난다.
이 모습을 보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 병증과 고통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죽더라도 비참한 모습을 보이며 죽고 싶진 않았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다를 것이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든 함께 해서 아픔이 덜어질 수만이라도 있다면 하고 생각할 것이다.

베르고트 역시 몸이 아팠고 누군가는 그가 단백뇨에 걸렸다고도 하고 종양에 걸렸다고도 했다. 점점 그의 몸은 쇠약해졌으나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은 위상이 커지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그 무렵 화자에게 관심이 가는 신인 작가가 생겼는데. 이때부터 그는 베르고트를 그다지 찬미하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부족함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오랜동안 우상이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는 경험은 누구나 할 것 같다. 그 우상에게는 어쩌면 잔인한 일일 수도 있으나 이것이 또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 않나 싶다. 세월에 따른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 유행은 바뀌고 세상에 사람은 많으니까.

10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셨던 적이 있다. 그러다 회복이 어느 정도 되려니까 몇 년 전 또 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항암 치료-재활하는 기간이 이어졌다. 그 때는 무신론자인 나도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었던 것 같다. 열심히 사셨던 분들이어서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다행히 두 분 다 회복이 되셨다. 물론 계속 관리해야 하지만). 두 분 다 이후 독실한 교인이 되시기도 했는데 사람이 크게 앓고 나면 신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인 중에서도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있으시고 췌장암으로 사망하신 분도 있다.
이런 각종 일을 겪다 보니 사람이 아픈 것이 쉬운 것이구나 나만 피해갈 순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죽음의 시간이 불확실하다고 말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면 그 시간이 뭔가 막연하고도 먼 공간에 위치한 것처럼 상상하는 탓에, 그 시간이 이미 시작된 날과 관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또 죽음이 ㅡ 혹은 우릴 먼저 부분적으로 차지하고 나서 그 후엔 결코 손에서 놓아주지 않는―이렇게 확실한 오후, 모든 시간표가 미리 정해진 오후에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달 동안 필요한 신선한 공기 전부를 마시려고 산책하기를 열망하면서도, 입고 나갈 외투나 우리가 부를 마부를 고르면서는 망설이고, 그런 후 합승 마차에 오르면 하루가 당신 앞에 온전히 놓인 듯 보이지만, 여자 친구를 맞이하려고 때맞춰 집에 돌아가기를 바라기에 하루가 짧다고 느끼고 다음 날에도 날씨가 좋기를 바라곤 한다. 그리하여 다른 쪽에서 당신을 향해 걸어오던 죽음이, 무대에 등장하기 위해 바로 그날 몇 분 후 마차가 거의 샹젤리제에 도착할 바로 그 순간을 선택하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한다. 어쩌면 보통 때는 죽음 특유의 기이함 때문에 그 공포에 시달리던 이들은 이런 종류의 죽음에서 - 처음으로 맞이하는 죽음과의 접촉에서 - 그것이 우리가 아는 일상의 친숙한 모습을 띤다는 사실에 오히려 어떤 안도감 같은 걸 느낄지도 모른다. 죽음은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찾아오기도 하고, 건강한 사람의 외출길에 찾아오기도 한다. - P11~12

생루 어머니는 생루와 애인(라셸)을 헤어지게 했고 생루로 하여금 라셸을 잊게 만들려고 모로코로 보내버린다. 생루는 어느 날 짧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프랑스에 도착할 거라는 소식을 화자에게 전한다.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만나야 하는데 자기 대신 파리에서 그를 만나 달라 부탁한 것이다(이것은 나를 잡아두기 위한 생루의 작전이었다. 생루는 여전히 라셸과 나의 사이를 의심하며 질투했고 그는 라셸을 여전히 자신에게서 떼어놓지 못했다). 

우리의 말과 생각을 닮지 않게 하는 것은 욕망 뿐이다. 시간은 촉박한데, 우리는 마음을 사로잡는 주제와는 전혀 무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벌고 싶어 한다. 입 밖에 내는 말에 이미 어떤 몸짓이 따를 때도 ㅡ 즉각적인 쾌락을 얻기 위해, 또 그 몸짓이 초래할 반응에 대해 느끼는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ㅡ 우리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어떤 허락도 구하는 일 없이, 마치 그 몸짓을 하지 않은 척 가장하면서 얘기를 계속한다. - P74

알베르틴이 화자의 집에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더는 예전처럼 알베르틴을 사랑하지 않는다 느끼면서도 신체적 욕구를 넘기지 못한다. 화자는 이제 알베르틴이 자신에게 여자가 아님을 깨닫는데 그가 더는 붙잡아두기 어려운 여자가 아니며 금방 소유할 수 있는 여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여자를 소유한다는 고정 관념은 벗어던지시지!)
화자는 스테르마리아 부인에게 육체적 욕망을 느꼈고 불로뉴 숲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으나 거절의 편지를 보내며 바람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는 절망과 분노를 느끼고 칩거하는 상황에서 생루가 자신을 찾아온다.
생루는 화자의 애정에 대한 갈증(?)을 조금은 이해했을 것 같다. 그는 부모님의 반대로 라셸과 억지로 떨어져야 했으니 말이다. 어른들이 원하는 스타일과 자식이 원하는 스타일은 왜 이다지도 다를까.

게르망트 부인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때, 나는 마치 파브리스가 자신의 고모 집에 도착하면서 느꼈던 그 보랏빛 아름다움과, 모스카 백작에게 소개되었을 때의 그 기적 같은 일을 떠올리면서, 그녀가 가진 최상의 것을 내게 음미하게 하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금요일에 혹시 시간 되세요? 아주 작은 모임이에요. 마음에 드실 거예요. 파름 대공 부인께서 오실 텐데 아주 매력적인분이랍니다. 기분 좋은 분들과의 만남이 아니라면 당신을 초대하지도 않을 테지만요." - P110

게르망트 부인 댁에 초대에 응한 화자는 그 곳에서 많은 이들과 교류를 갖는다. 대부분은 귀족 가문들이 많은데 자신의 가문의 이력을 드러냄으로써 '나 이런 권위(뼈대) 있는 집안이야!' 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참석자들 대부분 자신의 가문 이력을 자랑하고(저 먼 곳까지 거슬러 가는) 거기에 물론 문학과 예술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급에 맞지 않는다 싶으면 설왕설래 논변이 이어진다.
유독 많이 거론되는 두 사람이 톨스토이와 바그너다. 바그너는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던 인물인 것 같다. 나는 그의 개인사는 별로지만 그가 관악기를 잘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톨스토이는 아직은 제대로 된 작품을 읽어보지를 못해서 언급하기가 좀 그렇다. '부활'만큼은 읽어보고 싶다.

게르망트 사람에게 있어(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적인 존재란 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악의적인 말을 할 줄 알고 논쟁에서 이긴다는 걸, 또 그림이나 음악과 건축에 관해 상대방에게 맞서고 영어를 말할 줄 안다는 걸 뜻했다. - P217
"제가 맹세해요. 그들은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겨요. 그런데 실은 가진 의견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처음에는 우리의 의견을 묻는 데 인생을 보내고, 다음에는 그 의견을 우리에게 다시 전해 주는 데 허비하죠. 그들은 기어코 이건 좋은 연주였다, 저건 좋지 않은 연주였다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니까요.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테오도시우스의 동생이(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네요.) 한 오케스트라의 모티프에 대해 그게 무언지 제게 물었죠. 그래서 전 대답했어요."라고 공작부인은 반짝이는 눈과 아름다운 붉은 입술로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아, 물론 그건 오케스트라의 모티프라고 불리는 거죠.‘라고요. 사실 그는 내 말에 만족하지 않았나 봐요. " - P468

이런 사교 모임이 화자에게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같으면 기가 빨렸을 것 같은데... 그는 몇 차례나 기회를 살피다 막판에 빠져나온다. 노르푸아 남작이 찾는다는 소식에 갔으나 '내 마음도 몰라주고 서운했어!'를 표현하는 듯 '내 말대로 따르지 않았던 너를 버릴 거야!' 계속 여지를 남기다가 결국 꼬리를 자르지 않는 모습이 웃펐다. 좀 애처롭기도 했고. 결국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무렵 화자는 게르망트 대공 부인의 초대를 받는다. 게르망트 대공 부인은 왕족에서 기원하는 배타성과 엄격함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왕족과 공작들만을 우선시하는 그런 사람이 자신을 초대하다니 화자는 도무지 믿지 못한다. 사교계 인사들은 대공 부부가 더 현대적이고 똑똑한 데다가 지적이라며 말들을 내놓으니 초대장의 주인을 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게르망트씨 부부가 파리에 왔다는 소식에 화자는 일부러 찾아간다. 게르망트 사촌이 오늘 내일 하여 들여다보려고 한다는 거였다. 나는 대공 부인의 초대장의 진위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있었다. 스완은 건강이 좋지가 않았다. 의사가 몇 달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도 뒷 시리즈는 스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프루스트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고 잘 알고 있지 않으면 난해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숨겨진 의미가 많다고도 하는데 이야기 자체도 이해 못하면서 무슨 숨은 의미까지를 해석하겠는가. 내겐 무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물의 실재를 추구한다. 그러나 실재는 지속적으로 우리 곁을 빠져나가고, 온갖 시도도 헛되이 우리는 허무를 발견하고, 그러나 그 자리에 뭔가 단단한 것이 남아 있으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던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별하고 인식하면서, 설령 인위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는 그것을 구하려고 노력한다. 믿음이 사라지고 나면 옷이 의도적인 환상이라는 수단에 의해 그 믿음을 대신한다. - P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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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6-30 0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게르망트가에서의 오랜 대화는 저도 많이 지루했어요. 부르주아계급의 사람들이 끝까지 귀족 계급에 들어가려는 것도 이해가 잘 되지 않고요.
그 당시는 지금처럼 정보를 공유할 수 없던 시절이라 살롱이 출세를 위한 정보를 얻고 세상의 소식을 듣기 좋았던 곳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5권 마지막과 6권 초반, 할머니의 고통을 서술한 문장들이 저는 넘 맘에 와 닿았어요.

그나저나 혼자서 잃.시.찾 읽어 나가시는 모습에 감탄, 감동 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06-30 09:02   좋아요 1 | URL
저도요. 페넬로페님 마음과 딱 같아요. 부르주아 계급이 굳이 귀족 계급을 열망하며 그들에 합류하려는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네요. 당시 중상류층은 그만큼 폐쇄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사교 모임에 굳이 끼여들면서까지 만남을 가지려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할머니에 대한 서술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뒷 시리즈에서도 많은 죽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전조로도 읽히는 듯 합니다.
긴 시리즈라서 단 번에 읽어야 하는데 역시 쉽지 않은 책이라 한달에 한 권을 겨우 읽어내고 있네요. 페넬로페님이 꾸준히 응원해주셔서 힘을 내봅니다. 감사합니다.

미미 2023-06-29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렵고 알아야할 배경 지식도 많아보이지만 그럼에도 또 그래서 재독을 부르는 책이라는건 분명하네요. 다른 분들 리뷰만 봐도요ㅎㅎ 화가님 완독향해 가시는 길 응원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6-30 09: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려워서 재독을 할 수밖에 없는 책인 것 같아요. 속에 담긴 의미까지 알려면 몇 번은 읽어야 가능한건지...ㅎㅎ 미미님 응원 고맙습니다^^

다락방 2023-06-30 07: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 왜이렇게 읽고 싶죠? ㅋㅋㅋ 부르주아들의 사교모임 같은 건 저랑도 거리가 멀고 그래서 아마 읽다가 어떤 지점에서 분노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되게 읽고 싶네요. 늙거나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고 또 한편에선 사랑하는 혹은 사랑이 식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 도전이 쉽진 않겠지만 도전해보고 싶긴 하네요.

거리의화가 님, 화이팅!!

거리의화가 2023-06-30 09: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다락방님은 왠지 저보다는 덜 지루하게 읽으실 것 같아요. 사랑과 죽음이라는 테마가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데 프루스트만의 세밀한 묘사로 표현되어서 이 책을 읽어나가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락방님도 이 책을 도전하시게 되실 듯!ㅎㅎ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3-06-30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해놓고 혼자 꾸준히 읽어가기 쉽지 않은데 대단하십니다.
살롱에서 하루에 일어나는 일을 이렇게 세세하고 길게 쓸 일인가 싶었습니다.
예민함이 그의 병인듯!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6-30 09:08   좋아요 1 | URL
올해부터 읽기 시작해서 한 달에 한 권 읽기를 놓치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다행한 일입니다. 세밀한 묘사가 어쩔 때는 지치기도 하는데 이것이 또 프루스트 글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응원 감사합니다^^
 
한국전쟁의 기원 2-2 - 폭포의 굉음 1947~1950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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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안한 시기에는 늘 그렇듯 대립과 음모의 흔적이 없는 주말은 없었다. 전형적인 여름 날씨와는 대조적인 기사, 그러니까 "(미)군 전투부대는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승선항으로 얼마나 빨리 이동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대기 상태에 있었으며 그 검증은 7월 1일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기사가 묻혀 있는 것을 주의 깊은 독자만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미국과 일본에 있는 미군 전투부대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검증을 위해)경계 태세에 있었다. 이것은 우연일 가능성이 컸지만, 중국이 타이완을 침략할 수 있다는 예측과 관련된 것이었다. 6월에 세계에 배치된 미군 병력은59만1000명이었다. 거기에는 미국 국내의 10개 전투 사단 36만 명과 가장큰 규모의 해외 파견부대인 주일미군 10만8500명이 포함됐다(독일에는 8만명이 파병됐다. 일본에는 4개 사단-제7사단, 제24사단, 제25사단, 제1기갑사단이 주둔했다. - P243




한국전쟁 발발 한 해 전 1949년 6월 무렵 38도선을 둘러싸고 수많은 전투가 일어났다. 전투는 한국전쟁의 개전 초 작전과 복사판이었으며, 시간만 다를 뿐이지 특징은 같았다. 1949년 북한은 전투를 벌일 준비가 덜 되어 있었지만 1950년은 그렇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1949년 전투는 남한 정부가 주도적으로 일으켰는데 이는 한국 정부 지도층의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들은 미군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하며 자신들의 이익과 영토를 지켜주길 원했다.

1950년 1월 5일 트루먼과 애치슨은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로서는" 타이완 방위 계획은 없다 밝혔다. 흔히 애치슨 라인은 남한이 범위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으로 오해되어 스탈린이나 김일성에게 청신호를 켜주고 한반도를 분열로 몰고 간 외부적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일본은 방어되며, 위협받는 그 밖의 국가(한국 같은)는 공격받을 경우 처음에는 스스로 방어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상황은 다시 평가될 것임을 암시한 것이었다(P70). 애치슨의 방위선은 정치와 경제적으로 "거대한 초승달 지대"를 만들어 일본부터 인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확보해 발전시키려는 구상이었다. 평양은 미국이 이승만 정권을 유지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믿었고 애치슨의 이런 의도는 북한 정권의 동요였다고 판단했다.

6월 7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남북 정치 지도자들의 회담을 촉구하는 발표를 하면서 6월 19일 38도선에서 만날 것을 제안했으며, 8월 초 한반도 전체에서 선거를 실시해 평화통일을 이루고 해방 5주년 기념일에 새로운 통일 국회를 소집하자고 요구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남한의 무소속 의원들에게 특별성명을 발표해 호소하면서 여운형을 "조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조선 민족의 애국자"라고 불렀고, 김구가 암살된 것을 애도했으며 김규식의 통일 노력을 칭송했다. 그들은 인민위원회의 복구를 요구했다. 무초는 북한이 이런 요구와 관련된 선전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았다고 말하면서, 그 주장은 "겉으로 보기에 합리적이며 "아직도 38도선의 철폐를 갈망하는 남한 여론 대부분과 국회의 "혼란스러운 자유주의 세력"에게는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방의회가 구성될 가능성은 없겠지만, 한국 전역에서 그로 인해 초래될 결과는 "전면적 내전의 전초단계"가 될 수도 있다고 무초는 지적했다. - P160~161

북한은 6월 19일 남북 의원의 회의를 개최하고 8월 15일까지 남한 국회를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에 통합할 것을 요구했다. 물론 이는 선전 책략이자 공격을 은폐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남한에서는 5월 30일 총선 결과 이승만 세력이 아닌 중도파와 온건 좌익이 승리했기 때문에 북한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조만식과 남로당 지도자인 김삼룡, 이주하를 교환하자는 파격적인 제안도 내건다. 하지만 교환 방식에 합의를 찾지 못했고 6월 23일 북한은 6월 26일 정오에 교환하자고 제안했다(교묘하다). 이건 대놓고 전쟁 전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장제스가 직면한 난제는 타이완섬을 지키려는 국제협력주의자들과 총통을 옹호하는 반격론자를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공군력은 나라를 구할수 있는 만능의 수단으로 생각됐기 때문에 국민당은 중국 본토의 연안 도시들을 폭격하고 남한에 공군기지를 확보해 만주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제스가 주력한 것은 미국 정치를 조종해 자신의 정권을 보호할 수 있는 지원을 얻는 것이었다. 미 해군은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 P190

타이완은 설탕, 바나나, 원자재를 일본으로 수출하고 일본의 기계와 기관차, 옷감 등을 수입하며 1948년 무렵부터는 미국의 태평양 영해에서 전략적 가치이자 경제적 효용 가치가 있는 땅이었다. 하지만 1950년 초 장제스는 벼랑 끝에 내몰려 있었다. 하이난섬은 4월 셋째 주에 속수무책으로 함락되었고 워싱턴은 지원을 끊으면서 국민당은 수렁으로 빠지고 있었다. 장제스는 쿠데타/암살 위기에 직면하고 필리핀과 한국에 망명을 신청하기까지 한다. 미국은 중국 정책이 위기에 빠졌다 판단했고 6월 초 타이완 문제는 유엔 위원회로 넘어간다. 하지만 6월 22일 무렵 맥아더는 타이완이 연합국에 갖는 가치가 크기 때문에 장제스의 권한은 유지시키고 타이완은 유지되어야 한다 주장한다. 러스크 장관은 장제스에 대한 쿠데타 계획을 애치슨에게 제안했고 트루먼에게 그 사안은 상신되었다. 트루먼이 결정하기 전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장제스 정권은 한국 전쟁으로 존속될 수 있었다.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가? 저자는 세 가지 모자이크를 제시한다. 세 가지 모두 음모론(또는 가설?)이며 소련과 북한이 침공을 은밀히 준비했다는 설, 남한이 이유 없이 기습했다는 설, 남한이 전쟁을 유도했다는 설을 이야기한다.

널리 제기되는 주장 가운데 하나는 북한이 지도부의 파벌 다툼 때문에 침공했다는 것이다. 박헌영과 그 세력은 남한에 있는 자신들의 기반을 잃을까 우려했고 전면 공격을 일으키면 대중이 호응해 봉기해 공산주의의 승리를 신속히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런 가설은 CIA, 김일성 지도부, 일본에서 작성된 한국 관련 자료 그리고 미국의 중요한 일부 학자가 동의한 특이한 사례다. 그 가설의 장점은 6월이라는 시점에 공격이 시작된 까닭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에 있던 유격대가 1950년 봄에 정말 소멸되고 거기에 토지문제가 더해졌다고 가정하면, 그 가설은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될 수 있다. - P116

또 다른 학설은 북한은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하기 전에 통일을 추구하려고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지금 독자들은 이것을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미묘한 시점이라는 요소가 있다. 몇 년 동안 북한은 이승만이 "북침해 한반도를 강제로 통일시키려고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은 1945~1946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요구와 1948년 5월 총선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분단주의가 아니라 북침의 기반을 놓으려는 행동으로 언제나 해석했다. 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1950년 5월에 처음으로 북한 문서는 이승만이 한국의 영구적 분단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쟁 이후 상투적 표현으로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이것은 전쟁 이전 북한의 표현에서 중요한 변화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앞의 주장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어떻게 남한이 한반도의 항구적 분단을 바라는 동시에 북한을 공격하려고 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 P120

6월 25일 이른 아침 전쟁이 서부에서 동부로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첫 번째 모자이크, 다시 말해 잠들어 있고 준비를 갖추지 못한 남한을 38도선 전역에 걸쳐 갑자기 전면적 침공을 개시했다는 판단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조지프 대리고는 전투가 시작됐을 때 38도선에 있었던 유일한 미군이었다. 그는 누군가의 포성에 잠을 깼다. 초기 전투에 관한 그 밖의정보는 모두 한국군 정보원에서 나왔으며, 1949년 여름에 얻은 증거가 보여주듯, 그것은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증거조차도 전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몇 시간에 걸쳐 번져나갔으며, 한국군 제6사단은 적어도 하루 정도 먼저 경고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문산·춘천이나 동해안에서 그리 좋은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남한 부대들이 저항으로 보기 어려운 반격을 하거나 싸움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군은 개성과 의정부를 돌파할 수 있었다. 북한이 투입한 병력도 군사전략 측면에서 보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존미어 샤이머는 치밀한 논리를 전개한 저작에서 전격전술을 사용할 때 "전략적 돌파"를 성공시키려면 공격 측의 병력이 3대 1 정도 우세해야 한다고 서술했다. 6월 25일 이후의 전투 과정은 고전적 전격작전과 비슷하다. 하지만 전투 데이터의 순서를 따라가보고 증거들에 살펴보더라도 이는 비슷한 규모이거나 더 큰 규모의 적을 상대로 진행된 전격전이었다. - P296~297

국내와 국외에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던 이승만과 장제스는 봉쇄를 먼저 실시한 뒤 반격을 추진하기를 바란 반면, 애치슨은 한국과 타이완을 모두 방어하기로 결심하고 장제스를 축출하려고 했으며 봉쇄 지역 주변에서 공산 세력이 먼저 공격하기를 바랐다. 당시의 모든 상황은 이처럼 긴장되고흥미로웠다. 1950년 여름 헨리 월리스는 딘 애치슨에게 분노가 담긴 서한을 보내 이승만이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애치슨은 격렬히 반대하는 답장을 보냈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무의식적 실언 가운데 하나가 담겨 있었다. "진지하고 성실한 학자라면 거기에 아무 의문을품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 공산군은 도발을 받기는 했지만 경고도 정당한 이유도 없이 대한민국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증거도 1950년 6월 25일 새벽 남한이 먼저 공격했음을 여전히 입증하지 못한다. 남한이 먼저 공격했다면 다음 두 사항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첫째,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그런 도발을 이용해 남한을침략할 태세를 갖췄다는 명백한 증거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북한의침공을 정당화해주는 한국적 맥락일 뿐이다. 둘째, 정말 남한이 38도선을넘어 공격했다면, 1년 전 한국군 2개 대대가 월북한 것을 감안할 때 도발은북한에 동조하는 내부의 적이 일으킨 자작극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침공은 북한이 일으킨 것이 된다. - P320

북한이 명분 없는 공격을 시작했다는 판단은 한반도가 놓인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바로 2년 전 38도선을 "국제적 경계선으로 만드는 데 유엔이 이용됐다(이승만을 포함한 어떤 한국인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5년 전 미국은 고대부터 이어진 통일국가를 분열시키기 시작했고 소련의 큰 도움을 받아)때 이른 "냉전"을 심화했으며, 반동·친일 세력을 후원해 한국인들의 열망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국무부의 정책에도 역행하면서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했다. 이런 일이 모두 이뤄지면서 한국인들이 한국을 침공하는 최악의 역설이 가능하게 됐다. 진실은 남한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는도발이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 P341

저자는 세 모자이크 중 두 번째 모자이크의 가능성이 그나마 높다고 이야기한다. 2권 첫번째에서도 의견을 냈지만 어느 것도 100% 증명할 수 있는 설은 없다고 생각한다.

1950년 6월 시작된 전쟁은 1953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스탈린이 더 이후에 죽었다면 미소 지도부의 교체가 늦어져 전쟁이 더 길어졌을지 모르겠다. 한반도의 내전은 군인들 뿐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의 사상이 잇따르고 주요 기반 시설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분단 체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뼈아픈 현실이다.

이 책은 미국과 북한에 대한 자료를 검토하여 그 부분은 세밀한 반면 중국, 특히 소련에 대한 검토는 상대적으로 많이 약하다. 그래서 소련에 대한 입장은 빈 공간이 많은데 소련의 기밀 문서는 나중에 해제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이조차 여전히 기밀 자료들이 있을 것으로 판단). 이와 관련해서는 다른 한국 전쟁 책들로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내부적 입장을 이만큼 잘 다룬 책은 드물 것이다. 궁금한 독자들은 일독을 권한다.

『타임』지는 소련이 "미국의 시간"을 잘못 계산했음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가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그들은 36시간 동안 ‘침묵‘했던 것이었다. "미국의 행동을 예측했다면 소련은 말리크를 유엔으로 보내 미국이 주도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게 했을 것이다. "이것은 최근 소련이 저지른 최악의 실패였다. 달리 말하면 스탈린은 은밀히 침공을 계획했고, 물질적으로 소련을 능가하는 초강대국과 세계 전쟁을 벌일 위험을 각오했으며, 전략과 전술 모두 차례로 큰 실패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는 소련의 전략에서 남한이 지닌 가치와 전쟁이 일본과 서방의 재무장에 줄 영향 그리고 미국의 참전 의지를 잘못 판단한 것이다. 그는 시간조차 잘못 계산했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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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6-26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빠른 시간에 대작을 완독하셨네요! 거리의화가님 완독 축하드리고,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3-06-26 18:20   좋아요 1 | URL
가능한 이달 내에 읽으려고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희선 2023-06-29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북이 갈라지고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이제는 통일을 바라는 사람은 적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정보가 별로 없기도 하네요 북한은 남한 정보를 얻는다고도 하던데... 한 나라가 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죠 오랫동안 따로따로였으니... 나라를 빼앗긴 것도 나라에 힘이 없어서였고, 독립을 하고 다른 나라 간섭을 받았네요 그런 게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둘로 갈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독립운동 한 사람이 중국쪽 일본 미국으로 나뉘었으니... 전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6-29 09:15   좋아요 1 | URL
통일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좀 어색하게 느껴지죠. 남한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어색한 듯 합니다. 한국이라는 국명이 자연스러워졌고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한을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북한학을 전공한다든지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북한도 많은 것을 과거 자신들도 희생했던 전쟁인만큼 이제는 더 신중해지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