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0 - 5부 5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0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1권부터 20권까지 근 1년여 기간 동안의 독서 대장정을 끝마쳤다. 뒤로 갈수록 대강 훑어 읽은 느낌이 들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뭉클함이 있었던 것을 보면 작가의 필력과 내공은 역시 대단했다 싶다.


20부는 무엇보다 조선인이면서 앞장서서 조선인들을 징용으로 끌고 가게 만든 장본인이 심판을 받아서 후련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그 한 사람의 무게가 징용 인원 몇 십명 또는 몇 백명의 무게와 어찌 견줄 수 있겠는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미래이지만 사람은 당장 내 앞가림을 위해서 누구보다 잘 살고 싶어서 내 동포를 팔아넘기는 유혹에 굴복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유혹을 이기고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것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인류는 여전히 나, 개인, 그리고 자국의 이익에 우선하여 돌아가는 모습만 보아도 이것은 역사를 넘어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강두매와 홍이는 만주에 온 영광과 한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이상현 씨 말이야. 인생이 시궁창인 걸 모르겠어?
하는 일 없이 땀 흘려 만들어낸 곡식이나 축내고."
"나도 이선생을 곱게 보는 사람은 아니다. 자네 말대로 나 역시 프롤레타리아니까. 하지만 인간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그것에는 동조 못 해! 인민은 일하고 밥 먹는 기계 아니야!"
"기계가 되어야만 미래가 열린다. 그때까지 고생을 해야 해."
"인간은 기계 부속품같이 그렇게 해체되는 게 아니야. 이 만주 벌판 눈구덕 속에서 수많은 우리 조선인들이 죽어갔지만 그들은 심정적으로 죽어갔어. 고귀한 마음으로 죽어갔단 말이야!"

강두매와 홍이는 한 바탕 설전을 벌인다. 송영광은 진심으로 싸우는 줄 알고 놀랐고 홍이는 별 일 아니라 했지만 왠지 슬퍼보였다.

"서로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강두매는 깨끗하다. 깨끗한 정열이지. 사심이 없다. 그런 면에서 친구지만 나는 그를 존경한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거부감이 있어. 획일적인 그것이 맘에 안 들어. 주의와 주장이 어떻게 다르다고 하더라도 결국 정치나 조직은 다수를 통제하는 것, 보다 이상적으로는 전부를 통제하는 것 아니겠어? 나는 정치나 조직 같은 게 생리적으로 싫어. 당장 시급한 것은 내 터는 찾아야 하고 억압하는 왜적은 물리쳐야 하고, 싫고 좋고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저는 뭡니까? 돼지군요."

영광의 '돼지' 타령은 이상현과 이어진다. 머리도 몸도 굴리지 않고 그저 한탄하며 사는 삶, 본인을 비하하는 동시에 나아가 이상현도 그런 사람의 일종이라는(강두메의 주장처럼)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시대 룸펜들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영광은 뒤에 정석과 이상현을 만난다. 송관수의 아들인 송영광을 보면서 이상현은 그가 자신과 비슷한 동족임을 느꼈는지 동질적인 감정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송영광도 전쟁이 끝나더라도 조선으로 돌아갈 지 어떨지 결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서 이상현과 같은 방향일지 모른다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사람도 그 감정도 정리하지 않은 채 도망치듯 떠밀려 만주로 온 송영광, 그리고 몇 십년째 만주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상현, 둘은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만큼은 공통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조병수가 지리산 절로 아들인 남현과 함께 발걸음을 했다. 길상이 그린 관음탱화를 볼 겸 스님이 된 소지감도 만날 겸 해서다. 둘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의 삶을 돌아본다.

"불구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나비같이 살았을 것입니다. 화려한 날개를 뽐내고 꿀의 단맛에 취했을 것이며 세속적인 거짓과 허무를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내 이 불구의 몸은 나를 겸손하게 했고 겉보다 속을 그리워하게 했지요. 모든 것과 더불어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물과 더불어 살게 되었고 그리움 슬픔 기쁨까지 그 나뭇결에 위탁한 셈이지요. 그러고 보면 내 시간이 그리 허술했다 할 수 없고..." - P96

아비인 조준구가 없었다면, 불구의 몸이 되지 않았다면 병수는 더 행복했을까. 병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가 비록 신체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자유로운 신체를 가졌어도 그 아비는 남을 해치고 욕을 먹는 비루한 삶을 살았다면 그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그런 망나니 같은 아비를 탓하지 않았으며 아비가 돌아갔을 때도 진심으로 울던 이가 그였다. 누구나 조병수처럼만 산다면 이 세상은 희망적일텐데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홍이는 한복이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홍석기라는 청년을 만난다. 그는 낯선 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징용 갔다가 어느 할머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망할 수 있었다고 자신의 처지를 술술 내뱉는다.

"할머니가 따라왔기 때문에 별 탈이 없었지요. 부처님한테 너가 무사하기만을 빌겠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그 할머니 얼굴이 바로 부처님 같았십니다."
"세상에 일본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다 있나? 하 참."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동쪽을 보고 절을 합니다. 할머니한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장가든 지 한 달도 못 되어 잡혀간 홍석기. 징용에서 도망나온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일 것이겠지만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감행했을지, 그리고 끝내 징용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다치거나 죽어서 돌아온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하면 뼈아프고 숨이 가쁘다. 그런 그의 사연을 듣고 홍이는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홍이는 그 때문에 곤욕을 겪는다. 조그마한 일로도 정치, 사상범으로 몰아 잡아 가두던 시절이었으니 오죽했을까.


김두수는 만주를 떠나 서울로 아예 들어온다. 이제 나이도 들었고 더 이상 만주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대받으며 살아온 것이 어디 나라 탓이오? 아버지 죄업 탓이지."
"반가에 태어나서 시정잡배만큼의 대접도 못 받고 능멸과 하시 속에서 살았다. 왜 그랬지? 어떤 놈은 만석 살림으로 떵떵 거릴 적에, 나라도 살인했겠다! 하고말고, 아버지 잘못인가? 이놈의 땅, 세상 때문이지."
"딱하요. 세상에 그런 억지가 어디 있소?"

김두수는 애초부터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라곤 한복이 밖에 없었다. 결국 김두수는 한복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부모를 두었지만 김두수(김거복)와 김한복의 삶은 어쩌면 이리도 다른지. 한 사람은 세상 탓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러지 않고 주어진 운명을 감내하고 욕 안 먹으며 살아왔다. 한복이는 형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데 이 감정은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명희가 마음을 먹고 내 놓은 거금을 둘러싸고 운동 세력 간에 충돌과 갈등이 발생한다. 충돌의 중심에는 이범준과 몽치다. 이범준은 극렬한 사회주의자인 반면 몽치는 그런 이념과는 거리를 두었고 어찌 보면 신분제에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도 있음에도 그 세계에 부합하며 사는 측면이 있다. 이 무렵 지리산에는 이범준을 받들며 모여든 많은 청년들이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모두 동학의 교도라 할 수는 없지만 계급 타파에 대해서는 이론보다 심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이 땅 식으로, 말하자면 토종, 순종이라 할 수 있는데 자네는 그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결국은 민족주의 얘기로군요. 그것은 반통합적이며 세계혁명으로 가는 길에는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혼돈하지 말게."
"이 말 저 말 할 것 없고, 지금이야말로 적기입니다. 무너져 가고 있는 일본, 느슨해진 후방, 이때야말로 우리가 나설 때 아닐까요? 후방을 교란하는 유격대를 조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해외파들에게 국내에서도 체면이 서는 일이며 민심에도 크게 고무될 것입니다. 앉은뱅이 늙은이도 아니겠고 암죽 받아먹는 갓난아기도 아니겠고 이 산에 있는 사람들은 피 끓는 청년들입니다. 넘쳐나는 힘, 열정에 불타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 생광스러운 힘을 산속에 사장하려는지 도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전력들이 범상하지 않은 여러분께서 이렇게 무기력해도 되는 겁니까? 저는 여러 번 실망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살아 있습니까? 죽어 있는 것입니까? 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까?" - P384~386

이범준의 말은 과격하지만 분명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방향이 다른 것일 뿐인데 이러한 갈등과 충돌을 보면서 해방 후 극렬한 좌우대립의 미래가 그려지는 건 비단 나뿐이 아닐 것 같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독립이 되면 우리 나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미래상을 떠올려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테지. 눈을 뜬 몇몇 사람들은 사회주의자들이 많았고 사회주의 안에서도 분파들이 많았다. 나는 이런 잠재적인 불안 요소를 작가님께서 미리 배치해두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은 났지만 뒤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이 많다. 주갑이 아저씨는 살아 계시는건지, 인실이는 어떻게 되었으며 오가타와 쇼지와는 만났는지, 윤국이와 성환이는 살아 돌아오는건지 등등... 그러나 그 많은 인물들의 소식을 다 담기란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은 상상하는 묘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독자의 기호에 맞게 그들의 미래가 어떠했을지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어쨌든 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뭔가 시원하기도 한데 섭섭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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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8-01 1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권 완독하시다니 대단합니다~!
오늘부터 토지의 화가로~!!
이런 엄청난 장편을 완독하셔서 시원섭섭하실거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3-08-02 09:07   좋아요 1 | URL
토지의 화가ㅎㅎㅎ 새파랑님이 그동안 응원해주셔서 더 지치지 않고 잘 읽을 수 있었다고 하면 오버인가요?ㅋㅋ 작년 8월부터 읽기 시작했었더라구요. 딱 1년만에 완독의 결실을 맺을 수 있어 뜻깊습니다. 이 책은 재독, 삼독해도 좋을 책임에는 분명한 듯 싶어요. 감사합니다^^

은오 2023-08-02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누가 저한테 토지 읽었냐고 물어보면 아니 안읽었지만 내 친구분들 중에 토지 완독하신 분이 있어! 하고 대답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축하드려요 화가님!! 1년의 대장정 마무리라니 크!!! 😆

잠자냥 2023-08-02 22:0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아 나도 그래야겠닼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8-03 09:34   좋아요 1 | URL
오디오북으로 들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막판에는 초반 회상 장면 나올 때 사건의 기억이 가물거릴 지경이었다는ㅠㅠ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2 : 강남·유배길 편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2
김성곤 지음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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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한시기행 2권 후속편은 '강남' 지역과 '유배길' 편으로 묶여 있다. 1편에 이어 읽었더니 자연스레 흐름이 이어져서 좋았다. 오히려 1편을 묵혀두었던 게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강남'은 대체적으로 장강 중하류 지역의 강소성 남부, 절강성 북부, 안휘성 남부, 강서성 동부 일대를 가리킨다. 넓은 평원과 나지막한 구릉이 주를 이루는 이 지역은 장강과 전당강, 파양호와 태호와 같은 수자원이 풍족해서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했다. 남송 때 강남의 경제력이 급상승하면서 자연을 조경적 차원에서 경영할 수 있었던 까닭에 자연과 인문이 결합된 최고의 풍경이 만들어졌다(P5). 중국의 당송시기 역사를 읽고 마침 이 책을 읽으니 인문, 역사와 지리가 결합되어 활자가 눈 앞의 현실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예로부터 강남 지역은 물이 많아서 수나라 이전까지는 오히려 문제가 되었는데(범람, 질퍽한 땅) 대운하 건설을 시작하면서 관개 용수가 원활해져 농사 짓기에 좋은 땅이 된다. 게다가 남송 시기가 되면 남쪽으로 도읍이 옮겨져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작가가 방문한 지역 중 인상적인 곳은 첫 번째로 항주다. 정치적 격변기에 호북성 황주에서 5년의 생활을 마치고 복권되어 항주 태수로 오게 된 소동파는 항주를 최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병원을 만들고, 상하수도 시설을 개량하고, 빈민을 구제하고 고아들을 돌보기 위한 사업에 나서는 등 여러 부문에서 탁월한 행정가의 면모를 과시했는데, 특히 그가 힘을 쏟아부었던 건 서호를 준설하는 일이었다. 서호는 오랜 세월 퇴적된 토사로 인해 수심이 얕아져서 걸핏하면 물이 범람하여 백성들에게 큰 시름을 안겨 주었다. 소동파는 조정에 특별 지원금을 청하고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서 항주의 많은 백성을 동원하여 서호를 대대적으로 준설했다. 그리고 퍼올린 엄청난 분량의 흙과 모래로 서호를 남쪽으로 가로지르는 제방을 쌓았다. 제방 중간중간 여섯 개의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어 호숫물이 서로 통하게 만들었고 길을 따라 버드나무와 복숭아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품종의 나무와 꽃을 심어서 서호를 감상하는 최고의 산책로로 만들었다(P23~24). 지금의 항주의 모습은 소동파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백성들을 생각하는 관리의 마음이 절로 느껴지는데 오늘날의 관광객도 소동파에게 감사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소동파의 음식 하면 다양한 것이 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동파육이다. 동파육은 황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탄생했다. 이 요리를 만들어 먹을 때만큼은 힘든 유배 생활 중 유쾌함을 느끼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가 황주에서 지은 시 <식저육食猪肉>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동파육 레시피가 적혀 있다.

솥을 깨끗이 씻고
물은 조금만 넣고
땔감을 덮어 불꽃이 일지 않게
절로 익을 때까지 뒤적이지 말고
불 시간 충분하면 절로 맛나게 된다네
황주는 돼지고기가 좋은데
값은 흙처럼 싸다네
귀한 사람들 먹으려 들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요리법을 모른다네
매일 일어나 한 그릇 뚝딱
내 알아서 배부르게 먹나니 그대 상관 마시게

돼지고기 값이 흙처럼 싸다니 그만큼 돼지가 풍부하다는 것인가. 일어나자마자 뚝딱 하기에는 기름기가 많을 것 같은데 상관 말라고 하는 걸 보면 동파육에 소동파는 진심이었던 것 같다.
항주에 동파육이 유명해진 것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 서호 준설이 되자 가난한 백성들이 너도나도 값싼 돼지고기를 들고 와서 태수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람에 관저에는 돼지고기가 가득 쌓이게 되었다. 소동파는 5년 전 황주 유배 시에 개발한 동파육을 백성들에게 다 돌려보내 맛보게 했다. 동파육을 맛본 사람들은 그 맛에 환호했고 마침내 거리 음식점에는 '동파육'이 상품으로 만들어져 팔리기 시작했다(P34).

두 번째로 꼽을 곳은 황산이다. "오악에서 돌아오면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에서 돌아오면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오악귀래불간산五嶽歸來不看山, 황산귀래불간악黃山歸來不看嶽)." 흔히 오악을 묘사할 때 웅雄, 험險, 준峻, 유幽, 수秀라는 글자를 써서 "동악 태산은 웅장하고, 서악 화산은 험하며, 중악 숭산은 높고, 북악 항산은 깊고, 남악 형산은 수려하다"라고 구분하는데, 각각 모두 '천하제일'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이런 대단한 오악도 황산 앞에서는 그 존귀한 지위를 순간 잃어버린다. 앞서 황산을 예찬한 이 유명한 구절은 본시 명나라의 유명한 여행가 서하객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유복한 관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평생 천하 명승을 찾아 떠돌며 방대한 여행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황산의 최고봉은 연화봉蓮花峰이다. 중심부의 큰 봉우리를 여러 작은 봉우리들이 겹겹이 옹위하여 솟아오르는 형세인데, 한 송이 연꽃이 하늘을 향해 막 피어나는 것 같다 해서 연화봉이라 멋지게 부른 것이다(P102). 다종다양하고 수려한 봉우리와 그 봉우리마다 기이하게 자리잡은 소나무가 구름의 출몰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연출하여 황산의 또 다른 별칭은 '운산雲山'이다.

선계의 연뿌리를 뉘 심었는가
대지는 이곳에서 연꽃을 피웠네
곧게 솟아 하늘의 이슬을 마시고
높이 손들어 오색의 노을을 받드네
사람들 향기의 나라에서 맴도는데
길은 연꽃 송이로 난간을 세웠네
연밥은 어느 해 맺으려나
은하수 가는 뗏목으로 쓸 수 있을 것을

선근수수종 대지차개화
仙根誰手種, 大地此開花。
직음반천로 고경오색하
直飮半天露, 高擎五色霞。
인종향국전 로차옥방차
人從香國轉, 路借玉房遮。
연자하년결 창명대범사
蓮子何年結, 滄溟待泛槎。
- 청淸, 매청梅淸 <제화연화봉題畵蓮花峰>

중심 봉우리를 둘러싼 봉우리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정말 신선계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묘한 풍경이었다. 더군다나 황산에는 비래석이 있다. 장방형의 거대한 돌 하나가 우뚝 서 있는데 절벽 가까이에 자리한 평평한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있다. 기울어진 각도로 서 있는 품이 금세라도 자리를 박차고 날아오를 기세라 날아서 온 돌, 비래석飛來石이란 이름이 붙었다.


중국 지역의 많은 곳 중 가까우면서도 풍경이 뛰어나고 먹거리가 많은 지역인 강남은 한국 여행객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를 못했다. 다 가보지는 못하더라도 소주와 항주만큼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유배길 편은 호남성, 광서장족자치구, 광동성, 해남도를 아우르는 중국 남부의 광대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배지를 대상으로 한 여정이다. 중국의 유배지는 주로 남쪽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지금도 가기에 쉽지 않은 길을 당시에 가는 길은 무척이나 어려운 여정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유배길 아닌가. 언제 돌아올 지 모를 슬픔의 길을 따라가자니 고개가 숙여졌다.

첫 번째로 꼽은 곳은 영주다. 영주는 호남성을 흐르는 주요 하천인 상강과 소수瀟水가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호남 지역을 소상瀟湘이라 이름하는데, 풍경이 빼어나고 운치가 넘쳐서 당송 이래로 그림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으니 이른바 '소상팔경瀟湘八景'이다. 소상팔경은 그림의 소재 뿐 아니라 시의 소재로도 널리 활용되었는데, 원나라 희곡 작가인 마치원이 소상팔경을 노래한 <수양곡>이라는 작품이 유명하다. 팔경 중에서 '소상야우( '소상야우'는 상강과 소수가 합류하는 영주 평도를 가리킨다)'를 노래한 작품이다.

어둑한 배 불빛
나그네 꿈도 깨어
떨어지는 빗소리에 마음 부서진다
외로운 배는 오경을 넘고 고향은 만 리 밖인데
떠나온 사람 가슴 적시는 눈물 같은 빗줄기
어등암 객몽회 일성성적인심쇄
漁燈暗, 客夢回, 一聲聲滴人心碎。
고주오경가만리 시리인기항정루
孤舟五更家萬里, 是離人幾行情淚。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그네가 희미한 등불 너머로 바라보는 빗줄기는 가슴 시린 눈물이다. 유종원은 이 곳 영주에서 10년 간 유배 생활을 했다고 한다. 유종원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세족 집안의 자제였다. 스물한 살 진사 시험에 합격한 뒤 정치혁신 운동을 주도했다가 환관과 번진의 눈 밖에 나 실패하였다. 개혁을 이끈 왕은 폐위되고 함께 이끌던 세력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유배를 가게 되었다. 예부원외랑이라는 높은 직급에서 하루 아침에 사마라는 낮은 직급으로 강등되어 갔으니 그 신세가 얼마나 한탄스러웠을까. 유종원은 영주에서 우계愚溪라는 곳을 사랑하여 시냇가 부근에 살림집을 짓고 지냈다. 우계라는 이름도 유종원이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윽이 흘러가는 시냇물 우계를 보며 마음이 좀 안정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우계는 비록 세상을 이롭게 할 능력은 없지만, 만물을 거울처럼 비추어 맑고 투명하고, 음악 소리처럼 높게 울리며 흐른다. 그래서 어리석은 나를 즐겁게 해주나니 그곳을 떠날 수 없게 만든다. 나는 비록 세속에 부합하지 못하나 글로써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으며 세상 만상을 다 끌어안을 수 있으니, 어느 것도 내 붓끝을 벗어날 수 없다. 내 어리석은 문사로 어리석은 시내를 노래하리니 혼연일체의 무아의 경지에서 노닐게 될 것이다.
- <우계시서> 중

우계시서를 통해 유종원은 어리석은 자신의 삶이 나아갈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유종원은 정치적으로 실패하여서 비록 이곳에 내려와 있으나 우계처럼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겠다는 다짐이 엿보인다. 그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다. 오히려 그의 글쓰기는 유배 생활로 깊어진 면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전체 시문 540편 중에서 영주 시기에 쓴 것이 무려 317편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벼슬에 매여 있던 내 인생
행운이런가, 남만 땅 멀리 유배 왔네
한가로이 농부들과 이웃하며 살아가니
간혹 산속의 은자처럼 보인다네
새벽에 밭을 갈아 이슬 풀 뒤집고
한밤중 노를 저어 시냇가를 울리네
오고 가며 사람 하나 만날 일 없어도
길게 노래하면 초 땅 하늘이 푸르러진다네

구위잠조루 행차남이적
久爲簪組累, 幸此南夷謫。
한의농포린 우사산림객
閑依農圃隣, 偶似山林客。
효경번로초 야방향계석
曉耕翻露草, 夜榜響溪石。
내왕불봉인, 장가초천벽
來往不逢人, 長歌楚天碧。

'시냇가에 살다'라는 뜻의 <계거溪居>라는 시이다. 비록 멀리 유배를 왔으나 농부나 은자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의연함을 엿볼 수 있다.

유배길 중 두 번째로 꼽은 곳은 광동성에 있는 혜주다. 혜주는 주강의 삼대 지류 중 하나인 동강이 흘러가는 곳으로 현재 중국 경제를 견인하는 경제 중심 도시 중 하나다. 당송 시기에도 광동성의 중심 지역이었고 거대한 물류의 집산지였다고 한다. 혜주는 아열대 지역이라 사계절 초목이 있고 맛좋은 과일이 풍부한 곳이다.

혜주와 인연을 맺은 이는 소동파다. 혜주는 특별히 인상적인 장소가 있다기보다는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더 재미 있었다. 소동파는 '여지'라는 과일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과 그의 여인 3명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동파가 여지에 관해 남긴 유명한 시가 있는데 <식여지食荔支>다.

나부산 아래는 사계절 봄날
노귤과 양매가 차례로 새로 익어가네
매일 여지 삼백 알을 먹을 수 있다면
영원히 영남 사람 되는 것도 사양치 않으리라

나부산하사시춘, 노귤양매차제신
羅浮山下四時春, 盧橘楊梅次第新。
일담려지삼백과, 불사장작령남인
日啖荔支三百顆, 不辭長作嶺南人。

여지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매일 300알을 먹을 수 있다면 영남 사람이 되겠다는 소리가 나올까. 대단한 사랑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하루에 300알을 먹으면 당수치가 너무 높아지지는 않을까나.

이제부터는 소동파에 대한 여인의 이야기다.
소동파는 19세 되던 해 사천성 미산 남쪽 청신에 살고 있는 왕씨 집안의 16세의 왕불王弗과 결혼한다. 왕불은 아름답고 총명한데다 시서에도 능해서 천제 시인인 동파도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곤 했다.
왕불은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어서, 매사 넘치는 자신감으로 속말을 가리지 않고 내뱉는 동파를 늘 걱정하며 시시로 적당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손님들이 동파를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왕불은 병풍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고 손님이 떠난 후에 적절한 평을 내려 동파에게 조언하곤 했다. 지혜롭고 신중한 왕불의 내조 덕에 동파는 개봉에서 직사관이라는 내직을 맡게 되었다. 동파의 명성이 이제 뻗어나가는 시기 왕불은 돌연 병을 얻고 만다. 결혼한 지 11년,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 일곱 살 어린 아들을 남기고 갔으니 동파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동파는 왕불을 고향에 묻고 10년이 지나 이런 사를 지었다.

십 년 세월 삶과 죽음으로 갈라져 아득한데
생각지 않으려 해도 잊기 어려운 사람
천 리 길 떨어진 외로운 무덤
그 처량함을 뉘에게 하소연하랴
설사 서로 만난다 해도 알아볼 수나 있으랴
얼굴은 세상 풍파에 시들고
머리는 서릿발이 하얘졌느니

십년생사량망망 불사량 자난망
十年生死兩茫茫, 不思量, 自難忘。
천리고분 무처화처량
千里孤墳, 無處話凄凉。
종사상봉응불식 진만면 빈여상
縱事相逢應不識, 塵滿面, 鬢如霜。
- <강성자江城子>

부인과 사별한 지 10년 세월이 지났으나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던 소동파는 꿈속에서 부인을 만나 눈물을 흘렸다. 아득한 그리움이 듬뿍 느껴지는 사가 아닐 수 없다.

동파가 다시 부인으로 맞아들인 사람은 왕윤지王閏之라는 여인이다. 왕윤지는 전처인 왕불의 사촌 동생이였다. 동파와는 열두 살 차이가 났는데 왕윤지는 왕불처럼 시서를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성품이 온화하고 후덕했다. 살림살이를 잘 돌볼 줄 알아서 동파는 늘 고마워했다고 한다. 동파의 정치 생활의 부침과 영욕을 함께했던 것은 왕윤지였다. 황주에서 유배 생활을 함께 했고, 항주 태수, 병부상서, 예부상서 등 고위 관직을 섭렵했던 시기에도 함께 지냈다. 왕윤지는 결혼 25년, 향년 46세, 동파 나이 58세 때 숨을 거두었다. 동파는 그녀를 추모하는 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함께 가자 했거늘, 고향 전원으로 함께 돌아가자 했거늘
그대 나를 버리고 먼저 떠났구려
누가 문 앞에서 나를 반겨주리오
누가 밭으로 내게 참을 보내주리오
끝이로구나, 무엇을 어찌하랴
눈물도 다하여 눈이 말라 붙었구나
낯선 도시에 그대를 임시로 안장하려니
나는 참으로 박정한 남편이구나
내 그대와 무덤을 함께하리니
이 언약을 이루어 그댈 다시 만나리다

8년의 세월이 지나고 소동파는 세상을 떠난다. 그 때 곁에 있었던 여인은 시첩 왕조운이다. 동파가 왕조운을 알게 된 것은 항주에서 통판 벼슬을 할 때였다. 당시 왕조운은 관청에 소속된 악기樂妓였다. 연회 자리에서 동파는 가무에 뛰어나고 시서에도 밝은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소동파는 왕조운을 기적에서 빼내어 자신의 몸종으로 들였다. 왕윤지는 비록 현숙한 내조자였지만 소동파의 예술적 동지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를 절감하던 왕윤지가 왕조운을 첩실로 들이기를 적극 권하였다. 왕조운은 예술적 동지로 동파의 삶의 한 축이 되었다.

59세 소동파는 광동성 혜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만년의 고단한 귀양살이를 함께 한 왕조운에게 종종 아름다운 시를 써서 고마움을 표현했다.

나는 백발의 창백한 얼굴, 정히 유마거사의 경지라
빈 승방에 천녀가 꽃잎을 뿌려도 아무렇지도 않다네
붉은 입술 사랑스럽고 빛나는 머리 탐스럽다네
이렇게 천생 만생 인연이 이어지기만을 바랄 뿐
착한 일 좋아하는 심성은 모습 속에 절로 드러나는데
한가한 창가에서 단정하게 앉아 불경을 읽네
내일은 단옷날, 난초꽃 엮어 그대 허리춤에 채워주고
좋은 시 찾아내어 그대 치맛자락에 써주리라
- 소식, <증조운>

왕조운은 30대 초반, 불행하게도 혜주에 도착한 이듬해 말라리아에 걸려 동파 곁을 떠난다. 소동파는 그녀의 소원대로 서호 주변 산기슭에 그녀의 무덤을 만들었다.


여름의 뜨거움을 녹여버릴 정도로 즐거웠던 한시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여름 더위의 한복판에서 멋드러진 풍광을 마주하고 한시를 읊으니 또 하나의 좋은 피서법이 되었다. 역시 더위 쫓는 데는 여행기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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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7-31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급관심이요
어릴때 한시 읽을때랑 느낌이 너무 다른 순간이 많아요.
중국어로 읽는 분들도 꽤 되시더라구요.
거기에 이 책까지 읽으면 너무 좋을듯 하네요

거리의화가 2023-07-31 15:1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말처럼 어릴 때 이 책을 만났다면 결코 지금처럼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 시기 역사를 알고 인물을 알고 만나면 더 좋을 것이고 무엇보다 삶의 깊이가 좀 쌓이고 만나면 더욱 좋을 책입니다.
마치 여행하는 느낌으로 만났어요. 중국어로 한시를 읊으며 책을 읽으면 한층 더 좋겠죠. 직접 이 책을 들고 그 장소로 가고 싶더라구요!ㅎㅎ

미미 2023-07-31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남에 저런 풍광이 있나보군요? 중국에서 사진에 나온 저런 곳... 사는동안 꼭 가보고 싶어요!
올려주신 한시들 아름답네요.^^

거리의화가 2023-07-31 15:22   좋아요 1 | URL
네^^ 강남은 물이 풍부한 곳이라 아주 아름다운 풍광이 많습니다. 저도 다른 곳은 몰라도 소주, 항주는 꼭 가보고 싶더군요(한국에서 2시간 밖에 안 걸린다고 하네요^^;).
한시는 사연을 알고 보면 더 깊은 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 백 년 전 「데파-트」 각 층별 물품 내력과 근대의 풍경
최지혜 지음 / 혜화1117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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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근대 시기 백화점은 모든 유행의 집결지이자 집합소 기능을 하는 곳이었다. 1920~1930년대 경성의 백화점에서 팔았던 각종 물건들의 유래를 통해 당시의 풍경을 엿본다. 백화점에서 팔았을 법한 물건들과 광고에 등장하는 단골 아이템들을 통해 그 당시 어떤 것이 유행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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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 장강·황하 편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1
김성곤 지음 / 김영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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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종종 읽는다. 직접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간접 경험도 제법 유익하기 때문이다. 다만 몇 년마다 개정되어 나오는 여행 가이드는 한 번 보기에는 좋지만 그 이후 다시 보면 재미도 없고 옛 정보를 보게 되는 거라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여행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엮은 여행 에세이는 좋은 선택이 된다.

이 책은 발간 당시 사서 앞 부분만 조금 읽고 끝을 맺지 못했었다. 여행기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역사에 관련된 인물과 사건이 많이 나오는데 당시만 해도 사전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잘 읽히지가 않았다. 이제는 읽을 만하겠다 싶었는데 마침 2권도 얼마 전 나왔기 때문에 적절한 독서 타이밍이었다.


중국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시인이 있고 또 그만큼 한시가 많다. 1권은 장강과 황하 길을 따른 풍광을 마주하며 역사를 이야기하고 장소에 걸맞는 한시를 소개해준다. 한시는 묵독보다는 소리내어 읽으면서 읊으면 더 그 느낌이 살아난다. 직접 그 풍경을 마주하지 않아도 그 장소를 상상하며 한시를 읊으면 더 그 흥취에 빠질 수 있는 것 같다. 책을 읽고 유*브에 관련 영상을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장강 여행에 앞서 중국의 시인 '이백', '두보', '소동파'의 연고지를 찾아간 것은 독자로서도 반가웠다. 이백의 고향 강유江油, 소동파의 고향 미산眉山, 두보가 약 5년 가까이 머물러 살았다는 성도成都 초당草堂, 이들 모두 사천성 경내에 있다. 이백은 25세가 될 때까지 강유시 청련진靑蓮鎭에 있는 집에서 살았으나 벼슬길을 찾아 나선 뒤 6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했다고 한다(고향을 내내 그리워했다고). 성도에는 두보초당杜甫草堂이 있는데 안녹산의 난을 피해 들어와 집을 짓고 가족과 함께 살았던 곳이다(이 때만큼은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는지 여유로운 정취를 담은 시들이 나왔다). 미산은 소동파를 비롯하여 그의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삼소三蘇)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당나라와 송나라에서 가장 글을 잘 쓴 8사람인 '당송팔대가'에 삼부자가 모두 들어가 있으니 중국 문학의 대표 家이라 할 만하다.

약 6,300킬로미터의 길이로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장강은 청장고원의 탕구라산에서 발원하여 티베트, 운남, 사천, 중경, 호북, 호남, 강서, 안휘, 강소, 상해를 거쳐 동중국해로 흘러간다. 사천성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온 민강의 탁한 물과 청해성과 운남성을 굽이굽이 돌아 흘러온 금사강의 맑은 물이 서로 만나 비로소 장강이라는 이름을 얻고, 동쪽으로 수천 리 길을 흘러가는 것이다.

장강 여행 중 인상적이었던 두 곳만 꼽아본다면 도원과 황강의 동파적벽이다.

도원은 도연명(위진남북조 시인)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라는 글에 나오는 무릉의 복사꽃 물결이 흘러내려온 근원지라는 이상향의 세계이다. 글을 읽은 사람들이 무릉군에 속한 여러 지역을 찾다가 이 글에서 묘사하는 지형과 비슷한 곳을 찾아냈는데 그곳이 호남성 상덕시常德市에 있는 도원桃源이라는 곳이었다.

어부가 심히 기이하게 여겨 다시 앞으로 나아가 복숭아나무숲 끝까지 가고자 했다. 숲은 물이 흘러나오는 수원지에서 끝나고 그 위로 산 하나가 솟아 있었다. 그 산에 작은 동굴이 있는데 희미하게 빛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어부는 배를 버려두고 입구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극히 좁아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어부가 다시 수십 보를 더 가니 환하게 트이고 밝아졌다. 토지는 평평하고 넓으며 집들은 가지런하고 기름진 밭과 아름다운 연못과 뽕나무 대나무 등속이 있었다. 밭길이 사방으로 통해 있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가운데 왕래하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복장이 다른 세상 사람과 같았다.
사람들이 어부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그 들어온 경유를 묻고는 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술을 차려 내고 닭을 잡고 밥을 지었다.

동파적벽은 황강시黃岡市에 있는데 소동파가 남긴 최고의 작품 <적벽부>가 탄생한 곳이다. 황주는 소동파가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다가 옥에 갇혀 고초를 겪고 하루아침에 태수의 신분에서 미관말직으로 좌천되어 간 유배지다. 이 곳에서 소동파는 뛰어난 자연 풍광에서 쇠약해진 심신을 명상을 하며 보냈다.

임술년 가을 7월 16일 밤
소식이 객과 더불어 배를 띄워 적벽 아래에서 노닐었더라.
맑은 바람이 천천히 불어 물결이 일지 않는지라
술을 들어 객에 권하며 명월의 시를 노래하였더라.
이윽고 달이 동산 위로 떠올라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니
흰 이슬이 강에 자욱하게 내려 물빛이 하늘에 이어졌더라.
일엽편주를 배가 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더니
아득히 넓은 망경창파를 건너가는구나.
넓고 넓구나, 허공을 날아올라 바람을 타고 가는 듯
어느 곳에 멈출지 알 수가 없구나.
가볍게 나부끼는구나, 속세를 버리고 홀로 우뚝 서서
날개를 달고 선계에 오른 듯하구나.

<적벽부>는 <전적벽부>와 <후적벽부>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대목은 <전적벽부>의 첫 단락이다. <전적벽부> 후반에는 청풍과 명월에 대한 생각이 그려져 있다.

천지 사이의 모든 사물은 각기 주인이 있는 법
내 것이 아니라면 털끝만 한 것이라도 사양하겠노라.
오직 강 위에 불어가는 맑은 바람과
산 사이에 뜨는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아름다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네.
취하여도 금하는 이가 없고
쓰고 써도 다함이 없는 것이니
바로 조물주가 주신 끝없는 보배가 아닌가.


황하는 청장고원에서 발원해서 아홉 개의 성 청해, 사천, 감숙, 영하, 내몽고, 섬서, 산서, 하남, 산동까지 5,464킬로미터를 흘러 발해만으로 흘러드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중국인에게 황하는 어머니의 강으로 불린다. 황하 중하류 지역의 비옥한 땅에서 중국 문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황하는 산지 위주의 상류, 황토고원 위주의 중류, 평원과 구릉 위주의 하류로 구분되는데, 중류의 황토고원 지대를 지나면서 대량의 황토를 함유하여 누런색의 탁한 강물이 된다. 

황하 여행에서 인상적이었던 곳을 꼽아 본다면 호구폭포壺口瀑布, 화산 동봉 하기정下棋亭이다.

호구폭포는 황하의 제일경으로 불리는 곳으로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폭포이며 황색 폭포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폭포는 마치 강물이 거대한 병의 좁은 주둥이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해서 병 주둥이란 뜻으로 '호구'라 붙인 것이다. 좁고 깊은 협곡으로 앞을 다투어 쏟아져 들어가는 물줄기들이 저마다 내지르는 함성으로 귀가 먹먹할 지경이라고. 황하를 묘사한 시구로 유명한 것은 이백의 <장진주> 첫 구절이다.

그대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내달리듯 흘러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화산의 '화華'는 꽃이란 뜻으로 '꽃 화花'와 통하여 꽃같이 아름다운 산이란 말이다. 화산은 오악 중에서 서악으로 유명한데 오악은 수도를 중심으로 오방을 따져서 명명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화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화산은 황하와 함께 중화민족을 잉태한 성지로 여기기 때문이다. 화산은 동봉, 서봉, 남봉, 북봉, 중앙의 중봉 이렇게 다섯 주요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북봉과 서봉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하기정은 동봉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정상에는 돌로 된 작은 정자가 있고 돌판으로 만든 장기판이 조성되어 있다. 도사들이 이곳에서 장기, 바둑 등 여러 놀이를 하며 즐겼다고 한다. 그런 경치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다니 신선 놀음이 따로 없었을 것 같다. 문제는 그곳으로 가는 길이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직 하늘만이 위에 있을 뿐
어떤 산도 나란한 곳이 없구나
고개 드니 붉은 해 가깝고
고개 돌리니 흰 구름이 낮구나

위 시는 송나라 명재상이었던 구준이 이곳에 올라 지은 <영화산咏華山>이다. 화산을 설명하기에 이만한 시가 있을까 싶다.

사실 화산 이외에도 숭산, 태산 등이 있지만 그럼에도 역시 화산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기에 주저 없이 엄지손을 들게 된다. 다만 직접 체험을 불가할 것 같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곳을 어찌 올라가겠는가. 사진으로 보는 것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중국의 지리를 따라 역사를 만나고 문학을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2부도 바로 이어서 읽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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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7-28 0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에 있는 돌로 만든 정자에 사람이 갈 수 있을까요 정자는 사람이 만들었을 텐데... 저거 만들 때 사고는 나지 않았을지... 장강과 황하를 즐겁게 만나신 듯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7-28 09:42   좋아요 1 | URL
저 정자 관리를 하려면 어쨌든 사람이 올라가지 않을까요. 근데 사진으로만 보는데도 너무 후달려요ㅠㅠ 화산 구조물들 만들면서 사고 났을 듯 합니다. 예전에 대만 타이루거 협곡에 갔을 때도 인부들이 목숨을 많이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장강, 황하 중국을 대표하는 두 강줄기니 이야깃거리가 역시 넘쳐나더라구요. 즐거웠습니다^^
 
성의 변증법 -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지음, 김민예숙.유숙열 옮김 / 꾸리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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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은 한계가 뚜렷했다. 계급과 위계(권력)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기원은 설명하였는지 모르지만 가부장제에 따른 성의 불평등까지 주목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가족 구조 안에서 아이는 돌봄의 대상이 되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밥과 빨래를 해야 하는(가사 도우미를 쓴다면 그 여성이 존재하는 가정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 그래서 사회주의 혁명은 애초부터 실패할 운명을 지닌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파이어스톤이 나아간 곳은 성적 해방의 길이다.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했던 권리 동등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성적 계급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세계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생식조절에 대한 점유, 인공생식에 대한 주장은 현재로서도 놀라워 보이는데 당시로서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자연스럽게 성의 불평등은 인종 불평등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파이어스톤은 인종차별주의가 권력의 분배에 따른 불평등에서 기인했다고 이야기한다. 성별에 따른 계급이 존재하듯 인종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종차별주의는 성차별주의가 확장된 것이다.


앞선 성적 해방을 제외하고 특히 인상적이었던 챕터는 '아동기를 없애자'의 4장과 6장의 '사랑', 7장의 '로맨스 문화'였다. 


'아동기를 없애자'는 주장은 제목만 봤을 때는 와 닿지 않았었다. 페미니즘과 아동기를 없애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동기라는 명칭이 근대의 산물이라고 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그런 구분 자체가 없었다고. 이렇게 근대에 들어서 생긴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등의 구분은 억압을 만들어내는 기제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했던 적이 많았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 시기엔 뭘 해야 하고 이 시기엔 뭘 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심지어 이것이 계급과 맞물리니 피곤해진다. 사교육은 부모의 경제력과 연결되고 아이들은 또 그것에 맞춰 힘겹게 살아가야 한다(거기에 끼고 싶어도 낄 수 없는 아이들은 불평등한 세상과 목도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제도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유지하는 핵심 산물이다. 


여성은 남성이 원하는 모델로 정형화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공감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집착하고 화장으로 얼굴을 덧칠하며 그도 안되면 성형까지 가는 것이 아닐까.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는가. 나는 이것이 자기 만족이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그런가요?" 남성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니까 신경을 쓰는 게 아닌가. 나이가 들고 운동을 안 하니 옆구리에 살이 삐져 나오고 뱃살이 울룩불룩해지는 것을 나도 모르게 신경을 쓰게 된다. "살 좀 빼라!"는 소리가 주변에서 들리는 것 같고 맨 얼굴로 나가는 게 자신이 없어진다. 하지만 결국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데도 이런 구속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 한심해진다. 이전에 나오미 울프의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과 구속에서 우리는 더욱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마르크스/엥겔스 관련 책과 스노우의 <두 문화>를 읽어보자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러지는 못하고 밑줄만 많이 긋고 내 생각을 책에 간단히 적는 것으로 이번에도 대신하는 것 같다. 

페미니즘 책은 읽어도 여전히 나의 언어로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진다. 아무튼 파이어스톤의 핵심 저서를 초독이지만 읽어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적이고 유물론적인 분석 방법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회주의 선두주자들을 능가했다. - P15

엥겔스는 때때로 역사적 변증법의 성적 하부구조 sexual substratum 어렴풋이 인식했으나 섹슈얼리티를 오직 경제적 여과기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경제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면서 어떤 것이든 그 자체로 평가할 수 없었다. 엥겔스는 본래의 노동분업은 자녀양육의 목적을 위하여 남녀 간에 존재했으며, 가족 안에서 남편은 소유자이며 아내는 생산수단이고 자녀는 노동이라는 것, 인간 종족의 생식 reproduction은 생산수단과 구별되는 중요한 경제체계라고 보았다. - P17

학교(전문화된 기술만을 위한)는 나이와 상관없이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배움을 전했다. 도제제도는 어른에게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열려 있었다. 14세기 이후, 부르주아지와 경험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이 상황은 서서히 진전하기 시작했다. 아동기라는 개념이 현대 가족의 부속물로 발달된 것이다. 아이들과 아동기를 묘사하는 용어들이 만들어졌고(예를 들어 불어로 ‘아기 lebebé‘), 그리고 특별히 아이들을 지칭하는 다른 용어들이 만들어졌다. [children에 ‘성질‘, ‘상태‘, ‘성격‘을 나타내는 접미사 -ness을 붙인] childreness’는 17세기 내내 유행어가 되었다.(그 후로 그런 용어는 예술과 생활방식으로 확장되었다. - P117

아이들은 깨어있는매 순간 억압당한다. 아동기는 지옥이다. 그 결과는 불안한 사람, 따라서 공격적-방어적이고, 흔히 우리가 아이라고 부르는 몹시 불쾌한 작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경제적, 성적 그리고 일반적인 심리적 억압에 의해 그들은 부끄러워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악의적인 정체를 스스로 드러낸다. 이러한 불쾌한 특성들은 결국 아이들을 나머지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을 강화한다. 그래서 그들의 양육, 특히 인격 형성의 가장 어려운 단계에서의 양육은 기꺼이 여성에게 양도되는데, 여성들은같은 이유에서 그러한 인격적 특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 그러므로 (과거에 아동이었고 여전히 억압받는 아동 여성인)혁명은 페미니스트 혁명가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한 어떤 기획에도 아동 억압을 포함시켜야만 한다. - P151

초기 시민권 운동은 너무 오랫동안 진실을 은폐해 왔다. 기존사회에 적응되고 속박되어 ‘검둥이 문제 Negro Problem‘에 관해 아주 조심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즉, 흑인들은 ‘유색인종이고 그들은 백(비유색)인들이 원하는 것과 똑같은 것만을 원한다는 것이었다.("우리도 사람이야.") 그 결과 백인들은 명백한 육체적·문화적·심리학적 차이점들을 가리기 위하여 친절하게도 그들의 시각을 걸러냈다. ‘검둥이nigger‘와 같은 단어들이 사라졌다. - P154

‘해방된‘ 여성들은 남성들이 따르고 모방할만한 ‘훌륭한 사내들‘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남성의 성적 패턴을 모방함으로써(여기저기에 추파를 던지고, 이상을 추구하고, 육체적 매력을 강조하는 등), 해방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포기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것에 빠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도 아닌 질병을 스스로 주입했다.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멋‘이 천박하고 무의미하다는 것, 그 뒤에서 그들의 감정이 메말라 가고 있다는 것, 그들이 나이 들고 퇴폐적이 되어 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P209

여성은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성적 매력의 이미지이다. 여성에 대한 정형화는 확장된다. 그리고 에로티시즘은 이상성욕erotomania이 된다. 극한까지 자극되어 역사상 견줄 데 없는 광적인 것에 이르렀다. - P223

이 고도로 효과적인 선동 체계의 내적 모순 중 하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여성이 겪는 정형화 과정을 노출시킨다는것이다. 그 생각은 여성들에게 그들의 여성적 역할에 더 익숙하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TV를 켠 남성 역시 최신형의 복부 보정, 가짜 속눈썹, 그리고 바닥 광택제("그녀는 합니까. 하지 않습니까?")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교차하는 성적 유희와 폭로는 어떤 남성이라도 여성을 혐오하도록 만드는 데 충분하다. 그가 이미 혐오하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 P224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주의 혁명은 똑같은 이유로 실패해왔거나 앞으로도 실패할것이다. 현재의 사회주의하에서는 어떤 최초의 해방이라도 항상 억압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그 이유는 가족 구조가 심리적·경제적·정치적 억압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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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7-24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동기를 없애자‘ 부분은 저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런 환경이라서 모짜르트가 나올 수 있었겠구나 싶고
요즘 유,초등 아이들은 나이 별로 구별해서 놀게 한다는 친구의 말도 떠올랐고요.
저도 혼자서는 완독할 수 없었을거예요.ㅎㅎ 화가님 완독 수고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7-25 09:01   좋아요 2 | URL
학교라는 제도 자체가 저 어렸을 때도 문제가 많다는 의식이 있었는데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더 심해진 듯 합니다. 제도라는 것이 받는 사람에게 효과적이어도 끌고 갈까 말까 할텐데 그닥 그런 것 같지도 않아서 의미도 없어 보여요. 부모와 아이들만 죽어나는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미미님은 재독이시라서 더 의미있는 시간이셨을듯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3-07-25 0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외모에 마음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도 여성이 더하겠지요 자기 만족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사람 눈을 하나도 마음 쓰지 않는 건 아닐 것 같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7-25 09:03   좋아요 1 | URL
누구를 위한 외모 지키기인지 모르겠어요^^;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운동과 적절한 식이 요법이 더 중요하겠죠.

다락방 2023-07-25 06: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고생 많으셨고 완독 축하합니다. 저도 아동기를 없애자 는 제목만보고 당황했었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파이어스톤은 여성 해방에 진심이었구나 싶어욬 정말 해결하고자해서 급진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3-07-25 09:05   좋아요 1 | URL
네. 정작 파이어스톤 본인 해방은 이루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더군요. 초독이라 얻어간 것이 별로 없는 듯하지만 함께 읽기가 아니었다면 역시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7-25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독이라...😳
리뷰를 읽으며 흐름을 대충 잡고 열심히 읽겠습니다.
늘 모범생 화가 님!🤞🏾

거리의화가 2023-07-25 11:00   좋아요 2 | URL
7월도 얼마 안 남아서 지난 주말 남은 분량 다 읽었네요. 늘 읽고 나면 제가 얻은 게 부족한 듯하여 찜찜합니다만 거르거나 포기하지 않고 읽어내는 것에 자축합니다. 앞으로도 모범생 컨셉으로 쭉 가지 않을까 싶네요!^^ 나무님도 함께 해주셔서 늘 든든합니다^^

건수하 2023-07-26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댓글을 뒤늦게 답니다. 길게 후기 써주셔서 다시 한 번 정리하는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제 후기 너무 짧네요). 파이어스톤이 워낙 이상적인 사회를 그렸으니 좌절도 더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15명 내외로 구성했다는 단체가 일종의 ‘가구‘였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그 단체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도 궁금하더군요. Airless Spaces도 번역되면 좋겠는데.. 언젠가는 번역되겠지요? ^^ 더운 날 읽고 쓰느라 고생하셨어요. 남은 여름 건강하게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3-07-26 14:13   좋아요 1 | URL
저는 페미니즘 책 리뷰 쓸 때가 가장 어렵고 힘드네요. 리뷰 쓸까 말까 몇 번을 고민한답니다ㅜㅜ
파이어스톤의 주장은 지금 봐도 큰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많은 여성들의 노력으로 조금씩은 개선이 되고 있지만 그 이상향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그래도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 놀라운 지점이겠죠!(더군다나 그 어린 나이에ㅠㅠ) 독서하기에는 오히려 덥고 추울 때가 더 좋은 듯 싶습니다. 남은 여름 수하님도 건강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