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드 포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레이첼 모랜 지음, 안서진 옮김 / 안홍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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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된 여성이 갖게 되는 온갖 경험들 중 학대와 폭력 등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 ‘인간성의 상실‘이 가장 큰 아픔이라 여겨진다. 자신의 인간성에 대한 믿음과 경험을 잃고 인격과 연결고리를 놓쳐버리는 것이 상실이다. 이 글은 개인의 내밀한 고백을 넘어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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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23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쉽지 않은 책 읽느라 고생 많으셨고 완독 축하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10-23 20: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재독하느라 고생많으셨어요. 좋은 책 함께 읽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10-24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잡이!
끄덕끄덕 공감이 됩니다.
완독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3-10-24 09:37   좋아요 1 | URL
직접 경험한 이가 써서 절절했지만 저자가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을 책이었을 것 같습니다.

모나리자 2023-10-24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일부러 의도하지 않으면 잡기 어려운 책인데, 완독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3-10-24 17:30   좋아요 1 | URL
이번 달 <여성주의책 함께읽기> 책이었기 때문에 읽을 수 있었어요. 아마도 저 혼자 읽을 생각이었으면 쉽게 손이 가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힘들지만 완독할만한 가치가 넘치는 책이었어요^^

건수하 2023-10-25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완독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3-10-26 11:43   좋아요 1 | URL
수하님도 완독 축하드립니다^^
 
역사비평 144호 - 2023.가을
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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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70주년을 맞이한 2023년 한국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남북 관계는 진흙 속에 처박혀 있고 북한은 중국, 소련과 관계가 여전히 공고함을 내비쳤으며 한미일 동맹 관계는 더 굳건해진 상황을 이용하여 일본은 군비를 더욱 확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간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얼마 전 가자 지구를 둘러싸고 충돌이 발생하여 수천 명이 희생되면서 전쟁의 위기에 돌입했다.


평화를 기대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암울하고 각자도생을 하기 위한 셈법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나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나를 둘러싼 세계를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호의 특집 내용은 시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전쟁사나 정치, 경제사가 아닌 사회사를 다룸으로써 북한 인민들의 삶을 돌아보고 이를 통해 미래의 비전을 이야기한다.


북한 인민들은 정전(停戰)의 성립을 폭격의 공포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는 계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북한 사회는 전 사회적 역량을 전쟁 이전 수준으로 산업 시설을 복구, 재건하는 데 집중했고, 모든 직능 분야에서 체제의 요구에 호응하도록 독려했다. 당과 각종 직능단체들은 산하 기관지와 다양한 책자를 통해 전후복구 시책들을 전파하며 조직화에 나섰다. 공장과 농촌과 도시의 주민들은 두려움과 공포, 가족을 잃은 상처를 딛고 토굴과 방공호를 벗어나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 P44

 

정전 후 사회주의 국가였던 북한과 동유럽의 문화 교류가 있을 거라 예상하였으나 그동안은 이와 관련해서 정보를 얻었던 적이 없었다. 다양한 교류 경로가 있었겠지만 해당 글에서는 북한의 월간 『조선문학』에 수록되었던 기행문과 번역문학을 분석함으로써 당시 국가간의 문화교류를 짐작해볼 수 있도록 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친선 및 ‘사회주의 건설‘은 시대적 과제로 대두되었으며, 전후복구의 선행 경험을 지닌 동유럽 국가들은 북한에 대한 원조나 협력의 원천으로서 적극적인 교류의 대상이 되었다. 북한 문학자들은 동유럽 국가들과의 이질성을 넘어 국제주의적 연대를 구현하기 위해, 전쟁·혁명의 공통 경험을 환기하거나 소련이라는 이념적·문학적·산업적 보편항의 매개를 필요로 하는 면모를 보였다. 이러한 조선-동유럽 간 동질성의 모색은 동일한 창작 주제를 공유하는 사회주의 세계문학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전후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일(一) 국가의 시대적 과업을 세계라는 보편적 공간 내에자리매김하기 위한 목적하에 수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개별 작가들의 관점은 1955년 12월의 반소련 캠페인 이후 소련이라는 보편항으로 포용될 수 없는 상호간의 이질성을 발견하거나, 개인의 생각과 내면을 부각시킴으로써 가족애·낭만적 사랑 등의 ‘생활 감정‘을 새로운 보편항으로 발견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이질성이나 ‘보통사람‘의 삶에 대한 주목은 북한 문학자들이 소련이라는 보편항의 중재나 이념 · 국가라는 거시적 프레임의 매개에 매몰되지 않은 채, 동유럽의 다채로운인민들과 마주할 수 있는 위치에 근접했음을 의미한다. - P79~80


작년에 민병래 작가의 <송환>이라는 책에서 한국 사회의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 알게 되었었다. 여기서는 '강제전향'한 장기수들을 인터뷰 발췌한 내용을 실어 그들이 출소 후 남한 사회에 어떻게 정착하고 살아왔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들은 감옥에 몇 년째 수감되어 강제로 고문이나 협박, 회유 등을 통해 전향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 출소했더라도 사회안전법(보안감찰법)에 의해 끊임없이 감시를 당했다. 어딜 가도 내 궤적을 추적하고 추궁받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사람을 피말리게 할까 상상만으로도 힘겹다. 


연재기획 시리즈인 '현대 중국의 공간과 이동'에서는 군사화학공장에서 고급 리조트로 변신한 ‘809공장’ 공간의 역사에 대해서 다룬다. 중국이 개혁 개방 후 발전 경제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탄생한 '809공장'은 고무를 생산하는 곳이었으나 최근에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고급 리조트로 변모하였다. 


마침 기획인 '20세기 동아시아 농어업과 사회'가 있어 연재기획 시리즈와 자연스레 연결하며 읽을 수 있어 유익했다. 

해당 글은 1950년대 마오쩌둥 시대 초기 고무 생산이 핵심 자원으로 부상했으나 냉해 피해가 발생하면서 해결 방법론(기상 상황과 위치에 따라 환경을 바꾸어야 하느냐 기후 조건을 바꾸어야 하느냐)을 두고 '과학적’ 환경 개조관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오늘날 '근대'라는 산물로 이루어진 과도한 개발로 인해 기후 위기라는 직격탄을 맞은 지구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후로도 기획으로 다루어진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역비논단에서는 특히 누에 연구를 한 농학박사 계응상을 알게 되어 수확이 있었다. 그는 북한에서 리승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과학자로 인식된다고 한다. 북한으로 가서 아마도 대중 뿐 아니라 연구자들에게도 이 이름이 낯설 수 있겠다 싶다. 

계응상은 식민지 조선인의 신분으로 양잠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우수한 여건을 갖춘 일본(1920년대 일본은 세계 생사 시장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므로 연구 환경이 갖춰져 있었다)에서 안정된 과학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식민지 조선인이 감히?라는 불평등한 조건). 그는 일본의 제국대학에서 양잠학에 관한 교육과 연구 경험을 쌓았음에도 중국으로 건너가서야 연구 활동을 활발히 벌일수 있었다. 해방 후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그의 자리는 보장되지 않았고 그를 둘러싼 연구 여건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 무렵 요청을 받고 북한으로 올라간 후에야 국가적 지원을 받으며 양잠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김일성의 후한 지원을 통해 북한의 누에고치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고 잠업과학연구소를 설립하며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의 방문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는 죽어서 애국열사릉에 묻히는 영예를 누린다. 그렇지만 그는 시대적 한계로 연구를 위해 여러 번 국가를 이동해야 했던 사람이었다. 


서평에서는 읽었던 책(『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이 포함되어 있어 반가웠다. 근대를 일본으로부터 상당수 받아들인 우리로서는 근대와 번역의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백제와 관련된 책(『백제의 이주지식인과 동아시아 세계』)이 오랜만에 보여서 반가웠다. 이주지식인으로서의 백제인이 고대 동아시아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론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강만길이다. 내가 이 학자의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는 확인해봐야겠으나 어쨌든 이미 갖고 있는 책이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 70년대 『분단시대』를 거론하며 본격적으로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한 연구와 관련한 책을 쏟아내셨다. 그 중 역시 '분단시대의 역사 인식'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대중을 위한 역사를 저술하셨고 그런 글쓰기를 지양하셨다는 것에 존경심이 이는 분이었다. 얼마 전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시간을 내어 관련 책들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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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가을하다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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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과 포장지 보는 귀여움은 있다만은 그래도 아쉽다. 새로운 원두랑 드립백 내달라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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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경성 -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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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한국 근대문화(예술)사에 관한 신간을 여러 권 읽었다. 그 중 이 책은 특히나 읽으면서 놀라움을 많이 느꼈는데 작가 자체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고 작가의 주변 친분 관계, 그리고 뒷 이야기들을 위주로 다루고 있다. 

최근 들어서야 나는 작가와 작품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작가의 주변 관계를 알면 작가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작품 세계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과거에서부터(작가 자신) 현재(후손)까지의 흐름까지 알려줘서 여러 번 놀라움을 느끼게 했다. 


이 책은 쉽게 읽히지만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이 정말 많아서 정리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매 챕터가 거의 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리뷰를 쓰기가 오히려 더 난감한 책이었다.


1부는 작가와 친분을 가진 관계를 다루는데 구체적으로는 미술가와 작가의 만남이다. 이상과 구본웅, 박수근과 박완서, 이태준과 김용준 같은 알려진 관계들도 있지만 정지용과 길진섭처럼 정지용은 잘 알지만 길진섭은 물음표이거나 김광균과 최재덕처럼 둘 다 생소한 경우도 많았다. 


김광균은 그림 같은 시를 쓴 시인으로 유명한데 대표시 ‘와사등’이 있다. 아래 잠시 살펴볼까.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雜草)인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皮膚)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悲哀)를 지니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와사등’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시라는데 나는 그 시를 이번에 처음 보았으며 심지어 김광균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봤다. 어쨌든 그림 같은 시를 썼다는 게 무슨 말인지 시를 읽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김광균은 전쟁이 났을 때 후배 예술가(이중섭 등)들을 많이 챙겼다고 한다. 

최재덕은 이중섭처럼 김광균이 아끼는 화가였다고 한다. 그가 김광균에 대해서 이야기한 묘사가 있다. 

경주 박물관 추녀 및 제일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지나는 바람 같은 미소를 띤 부처님이 최재덕인 것 같다. …. 그의 그림은 행복한 색채로 덮인 나이브한(순수한) 풍경이 많다. 가을 추수 때 시골로 내려가 그린 들판의 <원두막>, <포도>, <한강의 포플러 나무>, <금붕어> 등 대단히 독창적이고 부드러운 형상이 서려 있는 서정을 나는 이중섭과 맞먹는 것으로 생각한다. - 김광균, ⌜30년대의 화가와 시인들⌟, 계간미술 1982년 가을호


김광균이 왜 이중섭과 최재덕을 아꼈는지 그의 말을 보면 이해가 될 것 같다. 둘의 작품이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시골 감성? 향토성을 지닌 풍경이라고나 할까. 


아래 그림을 보자. 최재덕의 <원두막>인데 마치 이중섭의 <소> 그림과 비슷한 느낌이 연상된다.


심지어 최재덕은 자신의 서명으로 소를 즐겨 그렸다고 한다. ‘최재덕’이라는 한글 글씨를 분해해서 소 모양이 되게 했다. ‘덕’이라는 글자가 소의 다리 모양을 만드는 식이다. 왜 소 모양을 서명으로 했을까 생각해보면 일제강점기 소는 조선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은유의 대상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일견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최재덕의 이름이 생소한 것은 그가 월북을 했기 때문이다. 


2부는 화가와 그의 아내를 다룬다. 생각해보라. 화가에게는 언제나 그의 파트너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 파트너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 파트너가 조력자이기만 하지 않다. 그 자신이 예술가인 경우도 많았다. 가장 놀랍기도 하고 재밌었던 주제가 아니었다 생각한다. 


유영국은 한국 추상화의 대가다. 몇달 전 전시회에서 유영국의 <산>이라는 작품을 만났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화사한 색과 절묘한 배치를 이용해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유영국은 화가 몬드리안을 존경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을 생각해보니 왜 그가 몬드리안을 존경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화가 몬드리안은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이 일어난 것은 인간이 낭만적인 서사에 빠져 분별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예술가는 그런 우매함에서 빠져나와, 수학적 직관을 통해 자연이 지닌 완전한 균형과 질서를 표현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추상화는 시장성이 없었다. 그런데도 잘 팔리지 않는 추상화에 일생을 걸겠다고 유영국은 다짐한다. 평생 알아주는 이가 없으며 돈을 벌지 못할 지 모르는 일에 뛰어드는 결심, 지금 생각해도 무모하리만치 놀라운 도전이다. 그런데 그 무모함의 태도에 김기순 여사는 이끌렸다고 한다. “만약 그렇게 열심히 해서 만들어놓은 것이 바가지라 하더래두요. 그건 그냥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건 아니죠.” 유영국이 환갑이 다 되어가던 1979년 삼성의 이병철이 그의 그림을 알아보기 시작한 뒤로 삼성가에 그의 작품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살아생전 그의 그림이 인정을 받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유영국은 “내 그림은 살아생전 팔리지 않는다”라고 했다는데 김기순 여사는 안정된 작업 환경을 만들어주고 반복되는 리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그의 뒷바라지를 톡톡히 했다. 


3부는 화가와 그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다. 시대를 관통하여 온몸으로 살아낸 선구자들이다. 


이들 중 나는 오지호의 작품과 생애에 주목했다. 


그의 작품 중 국가등록문화재가 있다. <남향집>이라는 그림이다. 


그림자의 표현이 일품이다. 처음에 이 그림을 보고 오히려 나무보다 그림자가 더 눈에 띈다라는 생각을 했다. 빛에는 그늘이 있듯 앞면이 아닌 뒷면에 주목하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처음 죽음의 위기는 1935~1937년 무렵이었는데 혼탁한 경성의 생활을 접기로 하고 개성의 송악산에 간 그는 1년만 머물 생각으로 갔다가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10년간을 머물게 된다. 그런데 하필 위출혈이 발생하여 죽음의 문턱까지 가 5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고 퇴원 후에도 재발과 졸도를 반복한다. 오지호는 더 이상의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단식, 일광욕만으로 자가 치료를 했는데 다행히 정신력의 승리였는지 나아졌다고 한다. 두 번째 위기는 한국전쟁 때다. 그는 1950년 말 고향에서 빨치산에 납치되어 남부군 활동에 끌려다니게 된다. 그는 해방 후 조선대 교수를 역임했고 예술가여서 부대 내에서 반동분자로 몰려 내내 감시생활을 받았다. 1952년 1월 오지호 부대가 백운산에서 군경 토벌대와 대치하다 낙오되어 국군에 붙잡혀 즉결 처형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한 장교가 그를 살려준 덕분에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재판을 거쳐 무죄로 풀려났다고 한다(진짜 생각할수록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왔더니 작품 3백점이 몽땅 소실된 뒤였고 이는 작가로서는 최악의 결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좌절의 순간에도 그는 그림을 다시 그리겠다 결심하고 무등산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5.16 쿠데타가 벌어졌을 때 그는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활동과 과거 빨치산 이력 때문에 검거되어 빨갱이로 몰린다. 서대무형무소에서 10개월간 옥살이를 하면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겨우 나올 수 있었다. 생각할수록 인간승리가 아닐 수가 없다.


오지호는 “고난이 와도 삶은 총체적으로는 환희”라고 이야기한다. 예술은 환희를 표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지호의 밝고 환한 작품은 결코 어둠을 피하거나 외면해서 얻은 것이 아닌 고통을 직면해서 얻어진 결정체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4부는 예술가로 살아갈 운명, 고통과 방황 속에서 만난 구원을 담았다.


이 중 나는 역시 이성자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지난 번 전시회에서 이성자 말년에 주로 천착했던 우주에 관한 그림이 떠올랐다. 작품을 보고 나니 그녀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이성자는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경성제대 의학부 출신인 외과의사 신태범과 결혼한다. 그는 이성자와 마찬가지로 자존감 높은 인물이었고 계속되는 관계의 악화로 결국 이성자는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그녀는 파리 화단에 빠르게 주목을 받으며 진입했고 회화 공부한지 3년 만에 <국립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평론가의 호평을 받았다. 1964년에는 이성자 개인전이 열리면서 프랑스 문화부 관계자의 주목을 받고 작품이 프랑스 정부에 영구 소장되는 쾌거를 낳는다. 한국에는 세 아들들이 있었는데 이성자를 지원하는 든든한 후원군이 되었다고 한다. 몇 년동안을 떨어져 지내면서 보지 못했을텐데 아들들의 인품도 놀라웠던 지점이었다. 


말년에 이성자 작품은 우주를 향해 나아간다. 우주의 하늘과 별과 행성들은 수많은 점처럼 흩어져 있다. 우주를 보고 있으면 인간은 너무나 작고 미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뜻일까. 작가의 중심성을 찾아가는 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이상하리만치 슬픔이 느껴진다.




한국 근대 예술가들을 꽤나 팠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르는 인물들이 이렇게나 남아 있다는 것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쁨을 느끼게도 했다(앞으로 더 눈여겨볼 예술가들이 있다는 것이므로). 


다채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책이다. 한국 근현대 미술에 관심이 없다 해도 이 책의 인물과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물 하나쯤은 궁금해서 파게 되는 욕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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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지 - 몽골제국이 남긴 '최초의 세계사' 라시드 앗 딘의 집사 1
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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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는 몽골의 지배를 받던 이란에서 칸의 최측근으로 재상의 직책을 수행한 ‘라시드 앗 딘’에 의해 쓰여졌다. 집사는 몽골 군주의 칙령과 후원을 받아 집필되어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원자료를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원제목은 ‘연대기의 집성’으로 몽골 제국을 건설하고 통치한 군주들의 연대기를 종합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 인도, 아랍, 투르크, 유럽, 유태 등 여러 민족의 역사들이 집대성되어 가치를 더한다. 집사가 ‘최초의 세계사’라고 불리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한다.


라시드 앗 딘은 이란 중부 하마단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제약과 의술을 익힌 뒤 몽골 군주가 ‘일 칸’인 시기에 궁정에 나아가서 ‘가잔 칸’ 시기 이후에는 문관으로는 최고직인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 인물이다. 안타깝게도 1318~19년 일 칸국의 군주를 시해했다는 고발로 처형되고 말았다. 


가잔 칸은 라시드 앗 딘에게 몽골제국사만 집필하도록 하였는데 가잔 칸이 사망할 때까지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후 즉위한 울제이 투 칸이 기존에 집필하던 몽골제국사의 내용은 ‘가잔 사’로 명명하고 자신의 치세 이후 벌어진 일과 세계 각 민족의 역사를 넣어 2부 내용으로 삼고 각 지역의 지리적 특징을 3부 내용으로 하도록 함으로써 집사의 내용이 처음과는 달리 확장되었다. 


‘집사’ 제1부 원문의 제목은  ⌜투르크 종족들의 흥기에 관한 역사와 그들이 여러 부족으로 갈라지게 된 상황에 대한 설명•각 부족 조상들의 정황에 대한 전반적인 서술⌟로 되어 있지만, 편의상 학자들은 이를 ⌜부족지⌟라고 부른다. ⌜부족지⌟는 배치상으로도 ‘집사’의 첫머리에 나올 뿐만 아니라 집필 시기 면에서도 다른 부분들에 비해 가장 먼저 집필된 것으로 보인다. - P35


당시 일 칸국의 몽골 귀족들은 선조의 이름이나 업적을 대부분 아는 경우가 드물었고 이를 위해서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내용을 기록할 필요가 있었다. ⌜부족지⌟는 2권에 나오는 몽골 제국의 역사에 관한 인물에 대한 배경 지식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 


⌜부족지⌟의 내용은 유목집단의 구성에 따라 오구즈족, 몽골이라 불리게 된 투르크족, 투르크족, 원래부터 몽골이라 불리던 종족 이렇게 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구즈족은 노아의 증손자라고 하는 전설의 인물 오구즈가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 그와 함께한 집단과 그 후손들로 이루어져 있다. 투르크족은 오구즈와 연합하지 않은 이들 중 스스로를 몽골이라 부른 집단이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이 지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애초부터 몽골이라 이름불린 집단이 있다.


라시드 앗 딘에 의하면 이들 네 집단은 모두 아불제 칸의 아들인 딥 야쿠이의 후손이라고 한다. 아불제 칸은 성경과 코란에 나오는 노아에 해당되고, 딥 야쿠이는 야벳에 해당된다. 따라서 ⌜부족지⌟에 보이는 종족 관념은 노아의 아들 셈이 아랍 유태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함이 흑인들의 조상이 되었으며, 야벳이 투르크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아시아 주민들의 전통적인 이해방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37


⌜부족지⌟를 통해서 이 네 부족에서 배출된 중요 인물들과 후손들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각 부족의 계보가 무척 복잡하기 때문에 인물들의 계보를 단 번에 그려낸다는 것은 무리다. 그저 참고서를 하나 얻었다 여기고 2권 이후 다양한 역사적 일화들을 확인할 때 도움을 받는다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각 부족은 칭기스칸이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 동참한 집단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았던 집단이 있기 때문에 칭기스칸을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오구르 종족은 무함마드 무스타파의 시대에 무슬림이 되면서 유일신을 믿는 집단이 되었다. 오구즈와 그의 아들 이후 오랜 동안 그 종족으로부터 많은 군주들이 나왔고, 각 시대마다 24개의 지파로부터 강력한 군주가 출현하였으며, 군주의 자리는 오랜 기간 동안 그의 가문에서 떠나지 않았다. (…) 그들의 통치와 지배는 이란 땅에도 미쳤다. (…) 또한 위구르족 역시 이 투르크 집단에 나왔고, 거주지가 몽골 지방의 경계와 가까우며, 그들이 오구즈의 사촌들에게서 나왔다. - P122~123


오래 전에 몽골화된 투르크족들은 저나름의 별칭과 이름을 갖고 있었고, 독자적인 지도자와 아미르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잘라이르 오이라트 타타르와 다른 종족들처럼 그 각각에서부터 지파와 부족이 다시 갈라졌다. 그들의 목지와 거처는 정해져 있었고, 그들의 외모와 언어는 몽골의 외모와 언어와 흡사했다. 그때는 몽골의 지파가 투르크에 속하는 한 종족이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성공과 막강함과 용맹함으로 인하여 다른 종족들도 모두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 P125


투크르족들은 각각의 종족에 군주와 지도자가 있었고, 정해진 목지와 거주지가 있었으며, 그들은 각기 몇몇 종족과 지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앞에서 설명한 또 다른 투르크인들과 몽골계 투르크인들은 오늘날 이 종족에 대해 별다른 경외감을 느끼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몽골의 군주인 칭기스 칸의 일족이 지고한 주님의 힘에 의해 그들을 정복하여 눌러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이 종족들이 투르크의 [다른 어떤] 집단들보다 더 중요하고 웅대했으며, 강력한 군주들도 있었다. - P195


니르운 몽골은 알란 코아가 남편인 도분 바얀이 죽은 뒤 출산한 자손들에게서 나온 종족이다. 알란 코아는 남편이 죽은 뒤 빛에 의해 임신하여 세 아들을 출산했다고 한다. 칭기스칸은 6대 선조인 카불 칸의 손자이자 칭기스칸의 아버지인 에수게이 바하두르의 아들이다. 

칭기스 칸의 부친인 이수게이 바하두르의 자식들은 ‘보르지킨 키야트’라고 불리는데 투르크어에서 ‘보르지킨’은 회색빛 눈을 지닌 사람을 뜻하며, 그들의 피부색은 누런 빛을 띤다. 그들이 얼마나 대담하고 용맹했는지, 그 용맹함은 본보기로 이야기될 정도였다. 종족들이 서로 전투를 벌이게 되면 그들에게 매달려 청원하고 공납과 선물을 바치면서 그들의 힘과 용맹을 [보태 줄 것을] 간청했고, 그들의 지원과 도움으로 강력한 적을 정복하고 패배시켰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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