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의 아침 프로 '웰빙 맛사냥'을 꼭 보고 있다.

어제는 '옛 골목 식당의 정취'인가 하는 소제목으로 오래된 식당 몇 곳을 소개했는데
그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단연, 대전의 30년된 두부두루치기 식당이었다.
멸치육수를 우려 그 끓는 국물에 큼직하고 굵게 썬 두부를 넣어 멸치향을 스며들게 한 후
고춧가루와 설탕 조금, 대파 굵게 썬 것을 넣어 그냥 팍팍 끓이는 것이었다.
두부두루치기 하면 신김치나 돼지고기가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식당은 두부만 넣었다.

요즘은 '웰빙' 바람이 식당에도 불어 육수를 우릴 때 온갖 한약재를 넣고 끓이지 않으면
명함도 못 내미는 분위기다.
족발을 삶을 때도 마찬가지.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온갖 한약재를 큰 솥에 넣고 끓이는 모습을 으시대며 보여주는
식당 주인을 보면 솔직히 그 집엔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예쁘장한 젊은 여성 한의사'(안 예쁘면 안 된다!)가 나와 뭐는 뭐에 좋다느니 하며
한마디 거드는 것도 조금 꼴불견.

오늘 아침만 해도 '웰빙 진귀한 보양식'이라고 하여, 삼계탕용 닭의 뱃속에 복어를,
또 오리탕에 전복을 넣고 펄펄 끓이는 메뉴를  보여주었다.
그런 요리가 몸에 좋다고 하니 그 식당을 찾아 인터뷰에 응한 손님들도
대부분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음식엔 여간해서 구미가 동하지 않는다.

'진귀한 보양식'에 이어 북촌미술관 반쪽이의 폐품이용 작품 전시회 소식과 함께,
감상 후 자녀들과 함께 먹으러 가면 좋은 음식으로  '한국식 누룽지탕'을 소개했다.
손질한 숙주나물에 직접 만든 누룽지와 각종 채소, 몇 가지의 해물을 넣고 팔팔 끓이는 게
아주 간단해 보였는데, 식당 주인장은 "간단한 게 맛의 포인트"라고 소개했다.
재료도 간단하게, 조리법도 간단한 것이 음식 재료의 맛을 최대한 이끌어 낸다는 뜻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해물삼계탕이니 도가니아귀찜이니 듣도 보도 못한 짬뽕 음식들을 보면 신기하긴 하지만
입맛을 다시게 되지는 않는다.
내 입이 그 음식의 맛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희미한 거부감마저
들기도 한다.
어느 날 어쩌다 그런 음식을 먹고 너무 맛있다고  연신 엄지 손가락을 추켜들지는 모를 일이지만......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컴 앞으로 달려와 딸아이와 컴 쟁탈전이 벌어지기 전에 페이퍼를 쓴다.
어제 본 맛집 대전 두부 두루치기 식당(대흥동 진로집)의 정보를 구하다가 운좋게
그 집 두부 두루치기 사진도 구했다.
1인분 4000원.
얼마나 눈물겨운 가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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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8-04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덥다고 툴툴대다 사놓은 두부가 상해버렸는데 저거 해먹었음 좋았을걸 아쉽네요

Mephistopheles 2006-08-04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가끔 TV에서 접하는 음식관련 프로그램들을 보면
얼마나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느냐라는 관점보단 이런 진귀한 재료들로
음식을 만드니까 몸에 좋은 줄 알고 비싸도 사먹어라..!! 라는 느낌이
자주 들더라구요.. 그놈의 웰빙이 음식의 본질마저 야바위하는 듯한
기분에 불쾌해 지더라구요..

기인 2006-08-0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방에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가기는 귀찮고, 시켜먹을 돈도 없고...
애인이 뭐 가지고 올 때까지 굶고 있는 중입니다...
저 두부.. 고문이네요 ㅜㅠ

urblue 2006-08-0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말씀 동감. 쓰읍.

반딧불,, 2006-08-04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올! 역쉬 저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님의 음식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거군요. 딱!입니다.
참, 저는 멸치육수 따로 안내고 멸치 자체를 그냥 넣습니다.게을러서^^;;;

로드무비 2006-08-0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음식 볼 줄 아시는군요.
요즘 다이어트 중이시죠?
두부가 그렇게(건강에, 다이어트에 두루두루) 좋다네요.
그나저나 애인님이 빨리 와야 할 텐데......
조금만 참으세요.^^

따우님, 제가 똑같은 요릴 만들어 일간 올리겠습니다.
저것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메피스토님, 그러니까요.
온각 한약재로 우린 육수나 섞은 소스에 전 별로 흥미 없어요.
음식의 본질마저 야바위, ㅎㅎ 통렬한 표현입니다.
저랑 입맛이 비슷한지도...^^

건우와 연우 2006-08-0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국수면을 삶아서 뜨거운채로 건져 저 국물에 비벼먹기도 해요...^^
고등학교때 친구들하고 우우 몰려가 많이 먹었어요...^^

국경을넘어 2006-08-0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로집이 테레비에 나왔나 보군요. 대전하면 별로 자랑할 만한 음식이 없습니다. 굳이 꼽아보라면 두부두루치기가 유명합니다(묵밥을 꼽기도 하지만). 소개된 진로집은 저도 가끔 가는 곳입니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옆지기가 특히 ^^* 같이 모임하는 녀석의 직장 동료(여 선생님)가 그 집 딸이라서 그 친구하고 함께 가면 잘해줍니다. ㅋㅋㅋ 그 동네에 있는 광천식당(도청 앞)이나 한밭식당(대전역 근처)의 두부두루치기도 먹어볼 만 합니다. ^^

nada 2006-08-0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어제 콩국수에 두부 얹어 먹었는데. 두부 진짜 좋아해요. 두부는 만능이에요, 만능~

로드무비 2006-08-04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제가 제일 많이 사는 식재료가 두부와 양파, 달걀입니다.
배고파요.
아이 학원 간 새 열나게 사진 찍어 포토리뷰 올렸더니, 꼬르륵.^^;

폐인촌님, 묵밥집은 논산 어딘가 봐뒀어요. 몇 년 전에...
봐두기만 한 데가 수십 군데.ㅎㅎ
진로집 꼭 가보렵니다.
우연히 마주치면 소주 한잔 해요.^^

건우와 연우님, 국수사리 1000원.ㅎㅎ
식당 위치까지 파악해 뒀습니다.
대전 쪽에 사시나 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8-0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를 대전에서 다녔어요...^^

로드무비 2006-08-04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그러셨군요.
고등학생이 두부두루치기를 좋아하다니, 일찍부터 맛을 아셨군요.^^

로드무비 2006-08-0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하늘바람님,
제가 깜빡했어요.
저도 조금 전 약간 표면이 끈끈해진 두부 1/3모 버렸어요.
구워 먹으려 킁킁거리다가 불안해서.
오늘 새 두부 사서 맛나게 해 먹자고요.^^

에로이카 2006-08-04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살을 빼려면, 두부를 먹어야 하겠네요.. 음.. 오케이..
그건 그렇고, 오늘은 로드무비님께서 컴퓨터 쟁탈전에서 완전 승리하신 걸로 보이네요.. ㅎㅎ

로드무비 2006-08-0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실패했습니다.
컴 앞에 얼씬도 못했거든요.
두부 정말 맛있어요.
제가 만든 두부 두루치기 사진도 일간 올릴게요.^^

sandcat 2006-08-1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멸치국물에 고춧가루, 대파, 설탕 넣고 팍팍 끓였는데 맛이 안 나오더라구요. 양조간장 두어 숟가락 넣고 나서야 계우 먹을 수 있었음. 나중에 로드무비 님이 만드신 두루치기 사진 올릴 때 요리법도 자세히 써주시면 좋겠어요. 두부를 좋아하지 않지만 두부 요리는 잘하고 싶습니다. -_-
 
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문득 생각날 때마다, 눈에 띌 때마다 펼쳐서 계속 읽는 책이 네다섯 권쯤 된다.
오늘은 그 중 두 권(<도쿄기담집>과 <예술가의 거리>)을 해치웠다.

종아리와 장딴지가 너무  뻐근하여 오늘 하루는 쉴까 하다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서
땀냄새가 풍기길래 좀더 물씬한 땀냄새를 맡고 싶어 '계단 여행'(플레져님의 표현)에 나섰다.
자전거와 유모차와 재털이로 쓰는 분유깡통과 버려진 미니 콤포넌트가 어제 오후 그대로였다.
한 가지 새로운 건 8층  계단 밑에 일직産  방울토마토 택배 상자가 모습을 보인 것.
일직이라면 권정생 선생이 사시는 곳인데, 하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는 <도쿄 기담집>에 실린 작품 중 한 편의 제목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미국 작가(레이몬드 카버)의 <우리가 사랑에 대해 말할 때...>)
풍 제목이랄까.
오늘 낮, 읽던 단편을 마저 읽고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이야기의 배경이
아파트 24층과 25, 26층 사이의 계단이다.
주인공은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싫어해 평소 26층 집까지 걸어다니던 마흔 살  증권거래인.

남편이 죽은 후 신경과민이 된 어머니가 사는 24층에  슬리퍼를 끌고 내려갔다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올라갈 테니 팬케이크를 바로 먹게 해달라고 전화를 건 후
20일 동안 감쪽같이 사라진 남자.

너무나 흥미로운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층층이 소파까지 놓여 있다는 호화 계단인 것은 소설과 달랐지만,
에헴, 나로 말하면 어제부터 우리 아파트 계단 꼭대기(21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걸어서 내려온 사람이 아닌가.

이 소설과 비슷한 에피소드가 또 있다.
아내의 진술에 의하면 그의 남편은 결혼 후 10킬로그램이 쪘다.
아침에 즐겨 먹었다는 팬케이크와 바삭 구운 베이컨 탓?
너무 소소한 걸 붙잡고 늘어지는 것 같지만 내 남편도 결혼 후 10여 킬로그램 쪘다.
혼자 오래도록 자취하느라 아침을 안 먹는다는  사람에게 결혼 후 아침마다
가정의 행복을 맛보게 해준답시고 출근 전 참치마요네즈 샌드위치와 달걀야채범벅 샌드위치를
강제로 먹여댔던 것. 
고문이 따로 없었다.
가정의 행복은커녕 얼마나 결혼을 후회했을까.

표지에 적힌 "불가사의한, 기묘한,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을 모았다는
이 단편집 속의 이야기들은,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먼 나라의 기담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부터 시작하여, 현실은 더욱 불가사의하고 기묘하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일들로 넘쳐난다.
며칠 전 서래마을 어느 집 냉동실 속에서 영아의 시체가 발견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부지런한 민족으로 어릴 때부터 막연히 알았던 국가는
걸핏하면 이웃의 힘없는 나라를 명분 없이 무차별 공격
어제 아침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16세의 정신지체아 소녀를
아파트 경비원과 교회 봉고 운전수와 그 외 몇몇의 남자들이 성추행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제 그런 소식을 접하면 잠시 눈살을 찌푸릴 뿐, 사람들은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상어에게 잡아먹힌 아이를 찾아나선 중년의 여인 이야기('하나레이 만')도 놀랍지 않다.
지난주 영화 <괴물>을 안 봤으면 또 모를까.

'우연한 여행자'의 주인공이 겪는 책이나 책을 읽는 장소와 관련된 '우연'도
알라딘에서 서재활동을 1년 정도만 해보면 알게 된다.
우리는 어느 날 이상한 인연으로 간절히 기다렸던 책들을 만나고, 잊지 못할 사람과 마주친다.
<도쿄기담집>에 관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으로는 의외"라는 식의 평을 많이 보았는데,
나는 그냥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되어서 깨달았지.
이류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보다는 일류 조율사가 되는 게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우연한 여행자' 42쪽)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랜만에 발표하는 작품들을 통하여 이루지 못한 꿈이라든가,
직업이든 사랑이든 최상이 아닌(때로는 말도 안되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을 슬쩍슬쩍 비유를 통해 언급하지만
별로 씁쓸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담담한 어조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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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8-03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존말코비치되기'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어디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수상하고 일상적인 여러 장면들. 어쩌면 열정이나 악착에서 벗어나는 게 그냥 무던히 잘 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정말 운동 삼아 계단을 오르내리시는 건지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지만 ^^ 앞으로도 슬슬 오르내리시길요.

Mephistopheles 2006-08-03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이 4개뿐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urblue 2006-08-03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하루 하나씩 며칠 동안 읽었는데, 재미없었어요. 빌려 읽었기에 망정이지, 돈 주고 샀으면 아까웠을 법한 책. -_- 최근 몇 년간 읽은 하루끼는 어째 죄 재미가 없네요. 제 취향이 변한건가.

로드무비 2006-08-03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아이가 방학중이니 서재활동이 여의치 못합니다.
댓글 다는 것도 쉽지 않네요.
어찌나 못살게 구는지...ㅎㅎ
별 네 개는, 다섯 개를 주기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미는 있었는데 미진한 부분이 약간.^^
(님도 리뷰 쓰셨나요? 읽은 것 같은데...)

FTA 반대 나어릴때 님, 영화 존 말코비치 너무 흥미로웠죠?
그 이상한 복도와 꼭대기층의 방.
운동삼아가 아니라 명실공히 운동입니다. 믿어주시와요.
아니면 제가 왜 이 더위에 그 짓을 하겠습니까요.^^

2006-08-03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8-0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감사!ㅎㅎ
전 재밌던데요?
님이야 뭐, 어떤 책이 신혼처럼 흥미로울까요.=3=3=3

플레져 2006-08-03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단 여행이라고 쓸 때, 이 소설이 생각났어요. 재밌게 읽었거든요.
제목이 잘 생각이 안나 생략했는데! ㅋㅋ
남편의 몸무게는 늘어났는데 저는 그대로에요............. =3=3

nada 2006-08-03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산책하는데, 평소 아무도 없는 호젓한 길인데 맞은편에서 누가 걸어오는 거예요. 슬며시 반대쪽으로 넘어가려는데 이 아저씨가 제가 가려는 쪽으로 건너 오시려는 움직임을 보이시지 뭐예요? 난 아저씨 때문에 건너가려는 게 아니라는 몸짓으로 애매하게 중간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후다닥 지나쳤죠. 계단에서 누굴 만나면 약간 무서울 듯.. 물씬한 땀냄새가 주는 쾌감! 저도 때로 킁킁거려요~

에로이카 2006-08-04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따님 방학이라서 서재활동이 뜸하셨군요... 바쁘시겠네요. 운동도 하시고, 책도 보시고, 집안일도 늘었을테니... 더운 여름날 건강하시고, 운동도 빼먹지 말고 열심히 하시기를...

로드무비 2006-08-04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아이 남자친구까지 집에 상주하다시피 하니 말입니다.
그래도 어제 낮 님이 올리신 페이퍼 몇 개는 급히 읽었어요.
댓글은 못 남겼지만.
운동이라야 뭐 15분 남짓인데.
고비입니다.
걷기도 힘들 정도로 아파요. 다리 전체가.....
님도 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나시기를!

꽃양배추님, 안 그래도 그런 생각했어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혹은 내리는 식당 배달원이나 택배사 직원,
그 층의 집주인과 마주치는 건 아닌가.
맞아요. 사람 없는 곳에서 사람과 딱 둘이 마주치는 것 좀 무서워요.
땀냄새에도 등급이 있는데, 오늘은 마치고 나니 좀 괴롭더군요.
물씬 정도가 아니라서.

플레져님, 흥=3 그 섬섬옥수 손을 보면 모르겠습니까.
님도 잘 드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체질인개벼요.ㅎㅎ
('계단 여행' 에피소드가 제일 재밌었나 봅니다?)



kleinsusun 2006-08-2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정말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 제목 같네요.^^ <내가 전화를 거는 장소> 이런...
곧 올라갈테니까 팬케잌을 구우라고 하고 행방불명이 되는 설정도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과 상당히 "필"이 비슷하네요. 레이몬드 카버를 좋아하는 소설가들은 정말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거 같아요.
저 요즘 레이몬드 카버한테 '필' 받아서 책을 6권이나 났어요.ㅎㅎㅎ

2006-08-24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 휴가에 부산의 여동생과 동주네와 남포동 광복동 일대를 한 바퀴 돌았다.
최종 목적지는 자갈치시장 꼼장어구이 노천식당.
남자 둘은 뻘쭘한 표정으로  뒤떨어져 여자들을 따라오며 어서 빨리 이 염천의 쇼핑이
끝나기만 바라는 눈치.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눈을 빛내며 상점들의 진열장을 훑었다.

드디어 자갈치시장으로 건너가는데 지하상가에서 여동생이 나를 다짜고짜 잡아끌더니
트레이닝복과 나이키 운동화를 한 켤레 고르라고 했다. 
쪄도 너무 쪄 못 봐주겠다며 앞으로는 운동을 하라는데, 거의 협박과 애걸에 가까웠다.
할 수 없이 가벼운 운동화만 하나 골랐다.

동생이 비싼 운동화를 사준다고 기다렸다는 듯 당장 운동에 나서는 건 쪽팔리지 않나?
그래서 어제까지는 딴전을 부리다가 조금 전에야 운동화를 신고 문 밖을 나섰으니
아파트 꼭대기층까지 한 번 걸어서 올랐다 걸어서 내려왔다.
뭐든지 처음부터 너무 무리를 하면 안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엘리베이터 앞이나 계단에 내놓은 자전거나 재활용 쓰레기,
유모차 같은 걸로 그집 가족 구성원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603호인지 604호인지는 아기에게 모 사의 분유를 먹이고 있고 그집 아빠는
분유깡통을 재털이로 아예 계단 구석에 내놓고 담배는 xx.를 피운다.
그 층의 모퉁이를 지날 때 던힐의 희미하고 부드러운 향이 코끝에 맡아지는 듯했다.

16층 왼쪽편 집 여인은 꼼꼼함이 지나쳐 강박 증세가 좀 있는 듯.
초등학교 아이의 두 발 자전거에 검정색 매직으로 아이 이름과 동호수를
도배를 해놓다시피 써놓았다.
아무도 거들떠 볼 것 같지 않은 낡은 자전거인데......

18층의 어느 집에선 미니 오디오를 내놓았는데 xx사의 것으로 겉은 멀쩡했다.
내려오는 길에 집에 들고 가서 연결해 볼까나 하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랐다.

10층을 지날 무렵 약간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이 있었지만 1분여 멈춰서서
심호흡을 해주고 나니 괜찮았다.
건너편 아파트 복도의 창에 마침 담배를 피러 나온 시인이 있어
건너편 아파트의 모든 계단을 헉헉대며 걸어 올라가는 뚱뚱한 아줌마의 모습을 지켜본다면
시가 한 편 나올 것인가?
제목, 고독한 여인.

계단을 내려올 때는 너무 수월해서 그런지 아파트 복도와 상관없는
제법 다른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번 휴가 때 문경의 한 휴게소에 들렀더니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잡상인은 연민의 대상이 아닙니다"였다.
그 구호는 이상하게 시도때도 없이 눈앞에 나타난다. 헛것으로.

우리들이 자갈치의 한 노점에서 꼼장어구이를 먹을 때 입성이 초라한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
소주를 반 병만 먹을 수 있겠는가 하고 주인 여자에게 물었다.
안주 없이.......
우리 꼼장어를 조그만 접시에 담아서 드리고 소주든 맥주든 한잔 대접하고 싶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를 그냥 보내는 주인 여자가 너무 냉정하다고 투덜거렸더니
모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할아버지를 도와주는 거라고......
글쎄, 과연 그럴까?

사흘째, 한여름에 문을 꽁꽁 걸어닫고 방학(어린이집도 학원도 며칠간의 방학이 있다)을 한
아이들과 세 끼를 챙겨 먹으며 지내다보니 비상식량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결국 어제 저녁에는 모 홈쇼핑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바비큐 폭립을 주문했다.
오늘 보니 아파트의 복도에는 홈쇼핑의 빈 택배 상자들이 2, 3층  걸러 한 집 꼴로 나와
재활용품을 분류하고 담아놓는 상자로 쓰이고 있었다.
사람들 사는 모습이 어쩜 그리 빤한지.......

집에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마흔 두 집 중에 어떻게 문을 연 집이 한 집도 없다냐?
나를 포함하여 모두 무슨 꿍꿍이로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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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아파트를 오르락 내리락 하시면서
주변사물을 관찰하시는 모습이 마치 미스마플 같습니다...^^

하루(春) 2006-08-02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집어졌다가 일어나서 눈물을 훔쳤어요. ^^;
운동하고 싶으신 생각이 없으신 거로군요.

로드무비 2006-08-02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TA 반대 하루 님, 어느 대목에서 뒤집어지셨는데요?
고독한 여인, 부분?ㅎㅎ
운동을 좀 하긴 해야 할 텐데, 우선 하루 한 번 복도나 오르내리려고요.;;

메피스토님, 미스마플이 누구죠?
관찰한 게 아니고 그냥 눈에 띈 대로 지껄인 것에
불과하다니까요.

Mephistopheles 2006-08-02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한명이에요.^^
할머니인데 뛰어난 관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캐릭터..라더군요..

물만두 2006-08-0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관문 닫으세요~!!! 요즘같은 세상에... 시절이 하수상하잖아요 ㅠ.ㅠ

mong 2006-08-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는 아파트는 복도식이거든요
일요일에 문 열어 놓고 있으면 다른 집 애들 혼나는 소리며
반찬 종류며 다 알수 있어요 히힛

라주미힌 2006-08-02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소한 일상인 듯 하면서도 소소하지가 않네용...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욤. 흠.. 저도 살 빼야 하는뎅..

ceylontea 2006-08-0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무슨 꿍꿍이로 사는지 이 더위에 모두 문을 꽁꽁 잠가 놓고 있지요..--;

urblue 2006-08-02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뱃살 빼는 데는 역시 줄넘기가 최고라고 해서 오늘부터 줄넘기 할까 생각중이에요.

조선인 2006-08-0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이 더위에 어떻게 문을 닫고 견디죠? 놀랍네요.

nada 2006-08-0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던힐의 희미하고 부드러운 향의 세계를 아신단 말이어요? 남을 돕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 나를 돕는답시고 한 일도 내겐 황당할 때가 있는 걸 보면.. 그래도 할아버지랑 술 한 잔, 괜찮을 거 같은데.

로드무비 2006-08-02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모두 무슨 보물단지라도 숨기고 사는 것이면 차라리 좋으련만....
우리 집은 저층인데도 모든 창문은 에브리데이 활짝활짝입니다.^^

FTA 반대 조선인 님, 어쩌면 옷차림이 너무 민망하고 그래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덥다보니 다들 벗다시피......^^

블루님, 할까 생각중이면 안 되고요,
저처럼 실천을 하시는 게 중요합니다.=3=3=3
(흥, 날씬하기만 하더만.=3)

실론티님, 굳게 닫힌 문들 앞에서 절로 '꿍꿍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더군요.;;

FTA 반대 라주미힌 님, 이것저것 모두 언급하면 너무 잡다해져서.
어쩌면 소소한 일상이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라주미힌님도 떽끼!! 뺄 살이 어딨다고.=3)

mong님, 저녁 무렵 어디선가 반찬 냄새가 풍겨오면
코를 벌렁거리는 것도 한 즐거움.
깻잎 간장에 졸이는 냄새랑 잘 끓인 된장국 냄새가
참 좋더라고요.
그 대신 치고 박고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면 가슴이 조마조마.;;

FTA 반대 물만두 님, 30 분 만에 문 닫았어요.
좀 거시기해서....^^;;

메피스토님, 뛰어난 관찰력은 좋은데 할머니라굽쇼?ㅎㅎ
언제 읽어봐야겠군요.

로드무비 2006-08-0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제가 모르는 게 어딨다고.(거만거만.)
왕년에 음주가무('무'는 빼고...)의 세계에서 저도 한 가닥 했다고요.ㅎㅎ
내가 할아버지라면, 하고 처지를 바꾸어 보면 됩니다.
선행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어떤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전 먹고 죽자 쪽이거든요.

해리포터7 2006-08-0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상인은 연민의 대상이 아닙니다'ㅋㅋㅋ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는 감상적인 문구군요.ㅎㅎㅎ 이더운날에 계단을 올랐은 님을 생각하니 제가 다 호흡이 가빠집니다.^^

로드무비 2006-08-02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7 님, '잡상인'에 다른 단어들을 넣어봤어요.
노숙자, 전과자, 기타 등등.
2년 전에도 한 번 계단 오르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오히려
숨이 덜 차더라고요.
책을 읽으며 계단을 오르내리면 심심하지도 않고
괜찮을 것 같다 했더니 깜짝 놀라서 말리더군요 남편이.
굴러떨어져 다치면 어떡하냐고.ㅎㅎ

해리포터7 2006-08-02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말리고 싶어요..제가 책보며 가끔 계단 밟다가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ㅎㅎㅎ

로드무비 2006-08-02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청,하는 경우는 양반이지요.
말려주셔서 고맙습니다.^^

2006-08-02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6-08-0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단 오르내리는건 무릎관절에 무리가 많이 간다 하더이다..^^
평지 걷기로 바꾸시지요...

야클 2006-08-02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서재이미지의 진공청소기 든 아줌마 정도는 아니겠죠? ^^

니르바나 2006-08-0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로드무비님을 엄청 사랑하시는
남편자랑, 동생자랑 하시려는 꿍꿍이는 아니겠지요.^^

에로이카 2006-08-03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저는 거울을 보다 너무 뚱뚱해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마음을 먹으면, 갑자기 볼 책도 많아지고, 할 일도 많아지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많아지는 걸까요? ^^ 운동 꾸준히 하시기를 빕니다.

플레져 2006-08-0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계단 여행 다녀오셨나요? ^^
우리 층에는 자전거가 무진장 많아요. 정작 자전거가 자리를 비우는 건 한번도 못 보았네요. 오늘은 뭐 발견하셨나 궁금!

반딧불,, 2006-08-03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 무비님 페이퍼는 달콤해.(이건 중독증세)

건우와 연우 2006-08-0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아파트의 닫힌 창문들을 베란다에서 물끄러미 바라다보면 다들 무슨 생각들을 하며 사는지...할때가 있어요.
그러면서 사는게 외로워지기도하고 또 사는것에 단련되는 느낌도 들고...
로드무비님은 사는 여러모습들을 문득문득 깨우쳐주시네요...^^

로드무비 2006-08-03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도 문득.
그런데 '깨우쳐 준다'는 말은 거두어 주세요.^^

반딧불님, 호호, 말씀도 달콤하셔라.^^

플레져님, 계단 여행 오전 열시에 다녀왔습니다.
다리가 아파 죽갔시요.
뭘 발견했는지는 <도쿄기담집> 리뷰에 썼답니다. 읽어주세요.^^

에로이카님, 그러니까요.
살을 좀 빼볼까 생각하면 맛난 음식 먹을 일이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ㅎㅎ
운명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계단 오르기 당분간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님도 찌셨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3=3=3)

니르바나님, 아이참, 저의 그런 꿍꿍이를 노출시키시면
어떻게 한답니까.ㅎㅎ

야클님, 뭐 비슷합니다.^^

날개님, 그, 그, 그래요?
요즘 더워서 걷기는 좀 그런데, 핑계김에 운동 가을까지 미룰까요?ㅎㅎ

시작이 반 님, 가끔 댓글 남겨주시와요.
모처럼 제 페이퍼에서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요.^^

2006-08-03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평범한 인간들의 내면에 괴물이 한두 마리쯤은 숨어 있다고 늘 생각한다.
수효가 문제일 뿐, 없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구불구불하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깊고 깊은 지하실로 내려가면
좁고 더러운 감방 안에 추악한 괴물 하나가 웅크리고 앉아
내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김영하 <포스트잇> 책 맨 앞에...)

영화 <괴물>을 보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게 한강 둔치 어드메쯤의,
주인공 가족이 생계를 의탁하는 손바닥만한 매점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조그만 콘테이너 박스 안 진열대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었다.
바람개비와 풍선, 뻥튀기, 캔맥주, 음료수, 과자, 컵라면, 유동골뱅이, 캐러멜, 막대사탕, 껌......

시도때도 없이 추리닝 하의 속에 손을 넣어 북북 긁어대는 양아치스럽기 짝이 없는 송강호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은 손님의 주문으로 오징어를 굽다가 아버지 몰래
오징어 다리를 하나 떼어먹는 모습, 그리고 들켜서 아버지 변희봉에게
잔소리를 듣는 장면에서 나는 그만 뒤집어지고 말았다.

그런 소소하고 퀴퀴한 일상 속으로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는 것이다.

미군 부대에서 한강에 몰래 방류한 독극물이 씨가 되어 올챙이 같은 모습으로
낚시꾼의 시야에 잡히다가, 약 2년 후 엄청난 괴물로 출현한 것.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덮치고 닥치는 대로 해치는 장면보다
수면 속에서 부글부글 거대한 생명체로 자라고 있는 것을 암시하는 영화의 앞 장면이
가장 무서웠다.

매점과 함께 내 눈에 눈물겹게 보여진 곳이 동네 변두리의 작은 세탁소.
쫓기는 박해일과 몰래 접선한 선배가 세탁소 앞에 걸린 양복을 몰래 훔치는 장면에서
그 불켜진 세탁소의 아늑함이라니.....
세탁소 주인은 증기를 팍팍 뿜으며 손님이 맡긴 드라이크리닝이 끝난 옷을 다리고,
그의 아내는 재봉틀 앞에서 누군가의 바지 밑단을 줄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고단한 노동과 남루한 일상도 <괴물>이라는 영화 속에서는 파라다이스로 보였다.

봉준호 감독, <플란다스의 개>에서 작은 문방구를 따분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지키는 
뚱뚱한 처녀의 일상을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한강 둔치의 손바닥만한 매점 안이다.

조금전, 김영하의 산문집 <포스트잇>을 꺼내들었는데 이 작가  다짜고짜
서문을 괴물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평소 군것질과 싸구려 소소한 장난감 사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나는
봉준호 감독이 괴물을 통해 전달하려는 어떤 메시지보다 매점 풍경에 그만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밥통까지 갖추고 뜨신 밥을 지어 소년과 마주앉아 밥을 퍼먹는 장면은 얼마나 정겹던지.

그러고 보니 오래 전 한 초등학교 내의 작은 문구 코너에서 두어 달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구나.
어쩐지 그 초라하고  작은 공간이 몹시 땡기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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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6-07-3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어디서 저런 아늑한 사진을 구하셨어요, 그래.. 사이를 비집고 부스러기를 긁어모으시는 무비님 시선이 참 좋습니다.

날개 2006-07-3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다운 시각이로구만요..^^ 매점이 참 따뜻해 보입니다..

해리포터7 2006-07-31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마지막에 보고 참 마음이 편해졌어요..그 아이와 딸을 잃은 아빠가 행복해보여서요..TV에서 아무리 그 괴물에 대해 떠들어대도 관심조차 없는 그들의 모습에...그 매점에 소복히 내리는 눈을 보며 행복할거라고 다 그런거라고....

로드무비 2006-07-31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 7님, 어머, 반가워서 악수하고 싶어요.^^

날개님, 영화 <파이란>에서는 또 그 개판인 방이 저는 좋더라고요.
취향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아요.
<괴물> 속 매점 보러 가세요.^^

꽃양배추님, 부스러기밖에 쓸 수 없어서 고민입니다.
저도 초대작 심오한 글을 쓰고 싶은디.....
아무튼 님이 좋다고 하시니 저도 좋구만요.^^

Mephistopheles 2006-07-31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저 매점에서 주로 밤에 폭죽을 산 기억이 나는군요..^^

로드무비 2006-07-31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강에서 내 몫의 남자랑 폭죽 터뜨려 보는 게 저의 로망이었건만....
메피스토님다운데요? 그 다음 품목은 캔맥주?^^

기인 2006-07-3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괴물 유쾌하게 봤어요. :)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단편 빼고는 3개 다 봤는데 정서가 잘 맞는 것 같아요. 일상과 역사(초월적 순간?)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점도 좋고요. 살인은, 괴물은, 일탈은 그렇게 일상의 연속 속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구나, 라는 것이 무서웠어요. 설득력도 있고요. ㅎㅎ 386정서이기는 하되, 굳이 후일담계 소설처럼 분노하거나 비아냥되거나 냉소하거나 섣부른 반성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풍자와 위트를 섞는 것. 아직은 그 정도가 괜찮은 것 같아요 ^^

물만두 2006-07-3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물 안본 분들이 없네요^^ 한강 매점은 가본적이 없어서리^^;;;

치니 2006-07-3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 오는 매점 장면, 참 좋았어요. ^-^

플레져 2006-07-3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점 씬, 정말 좋았어요. 밥 먹는 강두의 등 뒤 창문으로 괴물이 나타나진 않을까... 괜히 또 공포 영화 법칙을 떠올리면서 긴장하고 그랬어요 ㅎㅎ
강두가 밥 다 차린 다음에 밥 먹자, 그러니까 자고 있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잖아요.
그 장면에서 정말... 자지러지게 웃었어요 ㅋㅋ
로드무비님에게서 피어난 괴물 이야기는 한 떨기 꽃 같습니다 ^^

nada 2006-07-31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님은 부스러길 모아서 맛난 경단을 빚어내시는 걸요. 그나저나 위에 플레져님 표현이 참 이뿌네요. 한 떨기 꽃...^^

2006-07-31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7-31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쓰는 로드무비님이 쓴 글을 다 읽으면 보아야 할 영화의 재미가 반감될까봐
건너 뛰며 읽습니다.
김영하의 괴물 서두가 재밌군요.,.

mong 2006-07-31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님도 보셨군요~
괴물은 저런 디테일은 디테일 대로 살아 있으면서
괴물같은 사회가 흠칫 무섭게 느껴지도록 잘 만든 영화 같아요
그리고 세탁소 씬에서 그 뒤로 보이는 빌딩이 어찌나
어둡고 기분 나쁜 이미지로 잘 살아 나는지 말이죠 ^^

야클 2006-07-3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들 부지런하시네. 전 한 일주일 정도 더 있다가 한가해지면 보려고 했는데. ^^

하루(春) 2006-07-3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랑 보셨어요?

국경을넘어 2006-07-3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매점, 컨테이너, 골방, 구석텡이 저 같은 폐인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마음의 고향이죠 ㅋㅋㅋ

waits 2006-08-01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로드무비님의 시선은...^^
마지막 사진은 꼭 이명세 감독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건우와 연우 2006-08-0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천히 보러가려고 했검만 로드무비님의 글을 읽으니 서두르지 않을수가 없군요...^^

로드무비 2006-08-01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꼭 볼 영화면 빨리 보세요.
너무 나중에 가면 재미가 좀 반감되지 않을까요?ㅎㅎ

올리브님, 우와, 좋으시겠습니다.
영화도 보고 멋진 시간 되시길 바랄게요.^^

FTA 반대 나어릴때 님, 이명세의 <첫사랑>?^^

폐인촌님, 저 역시, 문간방 이런 데가 마음이 편하더이다.^^

FTA 반대 하루 님, 책장수님과 남동생요.^^

야클님, 휴가 마지막 날의 행사로 서둘렀습니다.^^

mong님, 우와, 세탁소 뒤편으로 보이는 빌딩까지 잡아주시는군요.
님의 레이더에 안 잡히는 게 뭡니까?^^

달팽이님, 김영하의 서문 덕분에 페이퍼라도 하나 남기게 되었습니다.
<괴물> 재미있습니다. 달팽이님은 어찌 보실지 궁금합니다.^^

따우님, 요 위에 해리포터 7님의 댓글 보세요.
마지막 장면인데......^^

염치불구님, 오오, 화전민이셨군요.=3=3=3

꽃양배추님, 경단 빚는 모습이라니 너무 안 어울린다. 저랑.ㅎㅎ
넙적한 파전을 부치는 거라면 몰라도.^^

한 떨기 꽃같은 플레져님,
님이야말로 그런 찬사에 합당한 분인걸요.
그런 매점에서 사흘쯤 아르바이트를 하며 숙식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치니님, 그죠? 그 따뜻한 불빛.^^

FTA 반대 물만두 님, <괴물>나중에 꼭 챙겨보세요.
매점 나오면 잠시 제 생각 해주시고요.^^*

기인님, 그의 단편 <지리멸렬>도 괜찮았어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풍자와 위트, 거기에 페이소스까지 곁들이면......
으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니르바나 2006-08-0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준호감독은 영화속 배우들을 편애하는 모양입니다.
이 영화 저도 한 번 꼭 보고 싶어요.
매점속 인물이 로드무비님으로 겹쳐보일 듯 싶어요.^^

비로그인 2006-08-0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 싶어요 ㅜ.ㅡ 마지막 사진이 너무 귀엽습니다.

로드무비 2006-08-02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nci님, 침 흘리고 자는 송강호 배우는 안 귀엽습니까?ㅎㅎ

니르바나님,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수사반장의 변태 혹은
범인으로 나오는 변희봉 씨를 좋아했다는군요.
자신의 영화에 변희봉 씨가 나오는 게 꿈만 같다고 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편애'는 아무리 공정하고 올바른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는
부분 같아요.
그리고 영화 보러 가셔서 송강호의 모든 행동에 저를 대입하시면
틀림없습니다요. 헤헤^^

따우님, 제가 님 방에 가서 귓속말로 갈챠드려야 되겠군요.^^
 
MBC 베스트극장 - 늪 [dts] - [할인행사]
김윤철 감독, 박지영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드라마 <늪>을 DVD로 보고 나서 모처럼 영화 리뷰(비슷한 것)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진을 한 장 구해야지, 하는 생각에 모 영화잡지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창에 친 것이 '덫'.
드라마를 본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늪'을 '덫'으로 착각하다니 어이없어 하다가
가만 생각해 보니 '늪'을 '덫'으로 바꾸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지 싶다.
재미있는 건, 검색 중 '덫'이라는 이름의 여성 의류 매장 사이트가 눈에 띈 것.

이틀 전 영화 <괴물>을 보았다.
올케는 그 시간 아이 둘을 데리고 애니메이션 <카>를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화가 무서웠니 어쨌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카>보다는 <괴물>을 그렇게 보고싶어 했던 딸아이가 한마디 끼어든다.

"엄마, 나는 피가 흐르고 팔다리가 잘리고 그런 장면은 안 무서운데, 어떤 사람이 도망 다니다가
경찰이나 괴물에게 잡히는 그 전의 순간이 제일 무서워!"

아이의 그 말이 나의 공포를 정확하게 꿰뚫는 것이라 깜짝 놀랐다.
한마디로 드라마 <늪>은 영화 <괴물>보다 100배로 무서웠다.

사랑이 변하는 것,  '애욕'이 사랑을 넘어뜨리는 순간,
입술만 웃고 싸늘한 눈으로 나를 보는 누군가의 시선,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점점 변해가는 나,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나......

'복수'가 무서운 게 아니라,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가 무서웠다.
특히 윤서(박지영)를 언니라고 부르며 믿고 따르는 채원이 평소 그녀에게
마음속으로 갈아온 칼날.
그래서 입술은 웃으며 싸늘한 시선으로 내뱉는 말.
그리고 남편과 바람난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뒹구는 것이 도리어 얼마나 인간적인 건지
보여주는 윤서의 침착함.

인간의 심연은 정말 끝이 없다.
무서워라,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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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7-29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베스트극장을 보다가 깜짝 놀랐던 드라마예요. 제법 작정하고 만들었던 드라마였던 것 같아요. 근데, 주하는 어찌 그걸 벌써 알았을까요. 심지어 저는 나쁜놈이 잡히는 것도 싫어요. 늘 도망자 쪽에 감정 이입을 해버리거든요.

로드무비 2006-07-2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저도 항상 쫓기는 자의 입장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봐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박지영의 징징거리지 않고
단칼에 해치우는 식의 복수가 통쾌한 면이 있더군요.
아이가 자신의 느낌을 그렇게 표현할 줄 아는 게 신기해요.
아이들은 이미 모든 것의 감을 잡고 있는 듯.
인생에 대해서.

달팽이 2006-07-29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가끔은 아이들을 나이로 또는 그들의 지위로 대하기보다는
우리와 대등한 하나의 영혼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거겠죠...
불교를 비롯한 자아의 윤회에서는 우리의 영적 동반자들이 이번생에선 부모로 다음 생에선 자녀로 그리고 배우자로 태어난다고 하더군요.
어쨌거나 두 모녀가 아주 특별한 인연이란 생각, 페이퍼 읽으면서 드는군요..

플레져 2006-07-2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주하의 그 느낌, 저도 그게 정말 정말 무섭거든요.
~하기 직전의 그 무엇! 오싹하죠.
잘 만든 드라마였어요. 박지영의 연기가 참 좋았어요. 그 섹시한 입술에 서린 공포라니.

로드무비 2006-07-29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박지영도 그렇고 그 하주희라는 배우도 그렇고,
연기 너무 리얼했어요. 적역이었고요.^^

로드무비 2006-07-2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아아, 엄마와 아이는, 부부는 그렇게 세상에서 만나는군요.
맞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인연이죠.
아이를 아이라고 무시하여 건성으로 대하면
귀신같이 알고 울먹울먹하더라고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항상 자신이 없습니다.
기본이라도 해야 할 텐데......^^;

하루(春) 2006-07-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거 보고 싶어서 사신 거예요? 저는 본방송 보고, 나중에 상탄 후에 앙코르로 해주는 거 또 봤거든요. 무섭죠. 으음.. 주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맞아요.

kleinsusun 2006-07-29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오랜만이예요^^ 전 <괴물>도 <늪>도 못봤어요.
근데....차라리 머리채를 잡고 뒹구는 것이 "인간적"이란 말은 참...와닿네요.
그건 아마츄어들의 복수? ㅎㅎㅎ

2006-07-29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7-3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구대학생님, 반갑습니다.
표지 보며(안 샀고요!) 저자의 헤어스타일이 멋지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소장함 오픈했습니다.
나중에 참고해 주세요.^^


수선님, 저도 언젠가 누군가의 머리채를 잡고 뒹구는
다이나믹한 싦을 살아보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결혼 전에요.
ㅎㅎ 지금은 그런 일이 생길까봐 무섭습니다.
전 아무 말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쪽이 좋아요.
복수든 뭐든. 그것이 프로?^^

FTA 반대 하루 님, 출시 소식 접하자마자 주문했어요.
마침 싸게 팔더군요.
두 번이나 보셨군요.^^


산사춘 2006-07-3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현력 좋은 주하양입니다. 역시 유전은 못속이는군요.

로드무비 2006-07-3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유전 쪽으로는 뭐든 자신이 없어서
모든 것이 후천적인 노력과 학습의 결과이길 바랄 뿐이랍니다.
이 맴 아시남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