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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길종, 혹은 행진했던 영화 바보
강성률 지음 / 이론과실천 / 2005년 4월
평점 :
<백마 타고 온 또또>(1979, 예조각) 라는 하길종의 산문집을 오래 전 대학 도서관에서
떨리는 가슴으로 읽어내려 가던 순간이 생각난다.
(창가의 넓고 쾌적한, 햇살이 부드럽고 넘실대는 자리였다면 책을 읽으며 가끔 한숨을 내쉬던
그 처자도 꽤 예뻐 보였을 텐데, 하는 뜬금없는 로망이...)
그의 사후 생전 그가 여기저기 발표했던 글들과 친구들의 회고록을 부랴부랴 모아서 실은 책자였는데
나에게 그는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책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한 뛰어난 천재 감독을 잃은 것이었고, 그의 감수성 번득이는 글들과,
수려한 인물, 독설, 예사롭지 않은 인생 행보 등을 읽으며 나 또한 그에게 사정없이
빨려들어 갔던 것이다.
1979년, <병태와 영자>라는 영화가 극장에 걸려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이 영화를 만든 감독 하길종은 38세의 나이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사인은 뇌출혈.
왜 <속 별들의 고향>이나 <병태와 영자> 같은 상업영화를 만드느냐고 주변 사람들이
힐난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나는 그때 그에게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느냐고 따져 물었다는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과 분노를 숨길 수 없다.
이효석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화분>이나, <수절>, <한네의 승천> 등이
얼마나 뛰어난 예술영화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그의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영화를 선택하고 만들었을 것이다.
(신촌의 한 소극장에서 <한네의 승천>을 보았는데 솔직히 컴컴한 화면과 김영동의 음악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나중에 그의 영화 <병태와 영자>, <속 별들의 고향>을 운좋게 볼 수 있었는데
'아깝게 요절한 천재감독'이라는 명성에 기대어 봤을 때는 뭔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전작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나서 그 속편 격인 <병태와 영자>를 찾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주인공 병태보다 관객들이 매료되었던 건 동해 바다로 고래를 잡으러 떠났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병태의 친구 '영철'이었을 것이고 <병태와 영자>에는 더이상 그런 친구가 나오지 않으니까
그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 허무하고 황당하고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친구 영철은 최인호의 원작에는 없었는데
하길종 감독의 머릿속에서 탄생된 캐릭터였던 것이다.
아마 감독의 마음속 풍경이 가장 많이 투영된 친구가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그런데 <바보들의 행진>의 속편 <병태와 영자>의 주인공 병태는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난리를 떨면서 정면승부, 현실 속 영자의 사랑을 그악스럽게 움켜잡는다.
사람들은 의외로 마음이 약해서 은근히 꼴찌에게 격려와 갈채를 보내는 법이니,
이 영화 속의 병태가 점수를 많이 얻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바보들의 행진>과 달리 <병태와 영자>는 최인호의 시나리오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찍은 것이라니,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또 그 점이 너무 아쉬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영악한 작가 최인호, 그의 똘마니 병태 녀석 같으니라구!)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70년대 초, 그가 처음 메가폰을 잡은 작품들은 하나같이 초현실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검열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들은 엄청나게 가위질을 당한다.
그렇다고 평단으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것도 관객들의 호응이 컸던 것도 아니었다.
--도덕적, 사회적 금기로부터 해방시키는 수단인 초현실주의를 통해
그는 현실을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하길종에게 초현실주의는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자 하는 예술적 방법이었다.(81쪽)
그런데 사실 그가 일찍이 생각하고 표방하는 영화는 이런 것이었다.
--나는 영화 미디어가 지향해야 할 길은 현실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추악한 행위를
진실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고 믿는 편이다.
즉, 작가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투시하는 안목과 현실의 내면을 투시할 수 있는 시혼이 깃든
보는 자로서의 냉철함이, 하나의 순수한 의미에서 창작의 목적인 테마를 선명하게 대동하고
코스모폴리탄적 질서를 이루는 데 성공했을 경우 나는 그것을 영화라고 부르고 싶다.
(하길종,<사회적 영상과 반사회적 영상>1982년, 에서 인용한 글)
유신 치하의 암울한 시대 상황, 그리고 천재감독이니 뭐니 하는 주변의 입방정도 입방정이지만,
그는 감수성과 너무 과도한 자의식이란 놈에 깊이 발목을 잡혔던 것 같다.
다음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영화보다 기행과 행적으로 더 유명한 감독이라니, 정말 감독에게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61쪽)
그가 다음 작품으로 준비했던 것이 동학농민전쟁이 무대인 '태인전쟁', 친구 김지하와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편지로 주고받던 중이었다 한다.
그리고 역시 서울대 '산문시대' 동인이자 친구인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을
내정했었다니, 내 생각에는 하길종 연출로 정말 딱인 영화가 아닌가 싶다.
카바이드 불빛의 포장마차를 배경으로 우연히 술자리에 합석한 3인이 하룻밤 제각각 취해
떠드는 소설이니, 감독을 맡을 사람이 하길종 말고 누가 또 있겠는가!
<백마 타고 온 또또>라는 책을 통해 '요절한 천재감독'이라는 다소 도식적인 환상을 품었다면,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읽는 이 책을 통해 나는 그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었다.
<태를 위한 과거분사>라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시집을 대학 3학년(1962년) 때
자비로 냈다는데 그의 동생 하명중이 몇 년 뒤 감독한 영화 <태>가 바로 형의 시집 제목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휙 스치고 지나가고.
평소 하길종 감독과 그의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이 책을 선물해 주신 복돌이님, 고맙습니다. 다음에도 부탁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