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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1950년 여름 일흔다섯 살의 한 노인이 아내와 딸을 데리고 3주간 일정으로
취리히에 있는 '돌더 그랜드 호텔'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결혼한 지 45년이 되었으며,
슬하에 여섯 명의 자녀를 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였다.(26쪽)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랑을 생각하다>에는 소개되는 첫 문장만 읽어도 그가 누구인지
짐작되는 노작가가 등장한다. 바로 <마의 산> <베니스에서의 죽음> 의 작가 토마스 만이다.
아내의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또 중요한 집필과 인터뷰를 위해 호텔에 묵고 있는 이 작가는
어느 날 티타임에 19세의 호텔 웨이터에게 시선을 빼앗기는데......
쥐스킨트는 책의 앞부분에 토마스 만과 함께 모두 세 가지의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도로에서 만난 차 안의 젊은 연인들, 파티에 초대되어 와서도 집어삼킬 듯이 서로만 바라보다
식사도 마치지 않고 택시를 불러 내빼버리는 70대의 연상녀 50대의 연하남 커플.
'그들은 연인에 대한 사랑 이외에는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37쪽)
쥐스킨트는 묻는다.
그렇게 남은 안중에도 없이, 맹목적으로 상대에게 빠져버리는, 이성을 상실한 상태가 사랑인가?
그리고 이어지는 또다른 질문.
사랑과 배설물은 어떻게 다른가?
사랑을 비교할 적당한 말이 없어서 '배설물'을 가져다 썼을까?
쥐스킨트의 이 용어 선택에서 사랑에 대한 그의 극단적이고도 아주 복잡한 심리를 유추해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을 정의 내리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노력인지 그가 모를 리 없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일반화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편적인 것과 구별되는
차별점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14쪽)
책의 뒤에는 완벽하고 허점이 없었던 나사렛 예수와 그에 비해 허점이 많고 실수투성이였던
신화 속 인물 오르페우스를 대비시키고 있는데 사랑과 죽음의 화해에 대한 언급이다.
그런데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그리하여 사랑을 되찾는 일에 실패했던 오르페우스에 대한
그의 경도는 이해할 만하지만, 예수를 그와 일일이 비교하며 에로스도 없고 너무나 용의주도하여
실패도 없었던 인물로 몰고 간 것은 좀 무리하고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생각에 이렇다 저렇다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내게 있어 좀머 씨와 쥐스킨트는 같은 사람이니까.
그는 '나를 제발 그냥 좀 내버려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는가!
플라톤부터 시작해 스탕달, 괴테, 바그너, 오비디우스 등을 넘나들며 그가 인용하고
자신의 견해와 조합한 부분도 흥미로워 단숨에 읽혔다.
그러나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2005년 1월 독일에서 개봉된 영화 <사랑의 추구와 발견>의
해설서라 할 수 있는, 그리 길지도 않은 쥐스킨트의 에세이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건 좋지만,
분량에 비해 책값을 너무 높게 책정한 것은 아닌가!
아무리 그의 팬이 많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