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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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 한끼는 혼자 먹는다.  TV를 보면서 밥을 먹기도 하고, 자장면 한 그릇을 배달시켜 먹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 순간 4인용 식탁은 오로지 나를 위한 1인용 식탁이 되는 셈이다. 집에서 혼자 밥 먹는 일은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곧 익숙해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만의 일상을 즐기게 된다. <무중력 증후군>으로 제 13회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윤고은의 첫 번째 소설집 <1인용 식탁>은 그런 일상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외로움, 고독함, 쓸쓸함을 동반한 여유로움까지.

 <무중력 증후군>에서 달의 증식라는 독특한 소재를 선보였던 윤고은은 <1인용 식탁>에서 현대인의 고독한 일상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수록된 9편중 대표적인 단편을 보면 혼자 식사하는 방법을 강의하는 <1인용 식탁>,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백화점 화장실에서 소설을 쓰는 <인베이더 그래픽>, 돈을 주면 원하는 꿈을 살 수 있는 <박현몽 꿈 철학관>, 현실이 아닌 이상 국가를 향한 염원을 다룬 <아이슬란드>은  모두  픽션임과 동시에 논픽션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잘 담아냈다 볼 수 있다. 

 <1인용 식탁>은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 혼자 점심을 먹는 주인공 오인용이 혼자 밥 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에 등록한 이야기다. 강의 내용은 정말 흥미롭다. 분식집, 패스트푸드점을 시작으로 절대 혼자서는 가기 힘든 레스토랑, 고깃집으로 확대된다. 정말 이런 학원이 존재하고 있는건 아닐까.  학원에 다니면서 주인공은 어디서든 혼자 당당하게 먹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결국 그가 원했던 것은 동질감이며 소통은 아니었을까. 

 ‘내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혼자 자유롭게 먹는 방법이었으나, 정작 내가 얻은 것은 수강 기간 동안 내가 혼자 먹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위안이었다. 1인으로 구성된 체인점 같은 것.’ p 43 나만이 군중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오인용은 핵가족을 너머 1인 가족 세대의 표본은 아닐까 한다.  

 등단했으나, 가족들이 모두 실업자 대우를 하는 소설가가 백화점 화장실에서 휴지에 소설을 쓰는 <인베이더 그래픽>은 작가의 내면을 엿보는 듯하다. 소설가의 이야기와 그녀가 쓰는 소설 이야기로 액자형태를 이룬다. 소설 쓰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백화점 화장실은 안락하기까지하다. 화려하고 거대한 백화점의 순찰대와 CCTV를 피해 다니는 소설가의 모습이 슬퍼보이는 이유는 왜 일까.

 <아이슬란드>에서는 반복되는 일상, 고달픈 현실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욕망과 마주한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듯, 아이슬란드는 지상 낙원이었다. 아이슬란드는 추상어였다. 사람마다 번역이 다르고, 정의되는 것도 다른,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단어. 그게 아이슬란드였다. 추상어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반대말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던 나는 아이슬란드의 반대쪽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  p 268 소설을 읽는 동안 검색창에 아이슬란드를 넣었다. 정작 그곳은 화산이 폭발로 공황상태였다. 소설의 주인공도, 윤고은도 아마 그랬겠지 싶어, 헛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른 아이슬란드를 여전하게 찾고 있을 게 분명하다.

 빈대로 인한 두려움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달콤한 휴가>, 무인 모텔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에피소드 <로드킬>은 머지 않아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인간의 자리를 기계가 대신 할 세상에도 한낱 벌레는 거대한 공포가 될 것이다. 

 <무중력 증후군>이 미완성의 조각이었다면, <1인용 식탁>은 거의 완성에 가깝다 하겠다.  장편과 단편이 갖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윤고은의 단편은 훨씬 좋았다. 터무니 없는 상상이 아닌 현실을 바탕으로 확장된 상상은 매력적이었다. 이제 윤고은의 상상 세계에 서슴없이 발을 내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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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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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제임스 설터, 처음 접하는 작가다. 1925년생, 그러니까, 2010년 현재 제임스 설터는 한국 나이로 86세의 고령이다. 분명, 대가일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의 소설은 어젯밤이 처음 번역된 것이다.  단 네편의 소설만 남긴 ‘너새네이얼 웨스트’에 비하면 다행이지 않은가. 앞으로 제임스 설터의 소설을 계속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표제작인 어젯밤을 포함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제일 먼저 어젯밤을 읽었다. 간결한 문장은 매끄러웠고, 솔직했다. 암에 걸린 아내는 아름다운 죽음을 원한다. 남편은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고, 안락사에 동의한다. 두렵고 떨리는 순간, 가족도 지인도 아닌, 그저 아는 사람을 손님으로 초대한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최고의 식사를 마치고 죽음을 실천한다. 아내의 팔에 주사를 놓고 남편은 손님과 사랑은 나눈다. 손님은 바로, 남편의 내연녀였다. 세상에나, 이런 일이. 그러나 놀랄 일은 이제 부터. 은밀한 어젯밤이 지난 다음, 아내가 잠에서 깬다면 어떨까?  제임스 설터는 이렇게 모두의 허를 찌른다. 

 <어젯밤>을 시작으로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은 <포기>, <귀고리>,<플라자 호텔>, <혜성>, <뉴욕의 밤>순이다. 자신의 생일날 한 집에 사는 시인과 남편의 관계를 알게 되는 아내,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결혼생활에 정답이 있을까 묻고 있는 <포기>는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이런 문장은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가끔 했다.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도 바꿀 수 없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 말하자면 어떤 경험이나 책이나 어떤 인물이 그들을 완전히 바꾸어놨다고들 하지만, 그들이 그 전에 어땠는지 알고 있다면 사실 별로 바뀐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p 99 

<귀고리>의 주인공은 성공한  50대 남자,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재혼한 아내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아내를 배신하고 정부와 사랑에 빠진다. 위험한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설령 남자에겐 그것이 사랑이었다 해도 젊은 정부에겐 잠깐의 쾌락일뿐. 아내의 귀고리를 하고 파티에 등장한 정부는 장인과도 아는 사이였다.  모든 게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부와 권력을 가진 어리석은  욕망에 빠진 남자들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통쾌한 웃음을 감출 수 없다. 

 <플라자 호텔>의 주인공은 투자 전문가로 성공했지만, 사랑은 실패했다. 여자가 기회를 주었지만, 남자는 확신이 없었다.  20년이 흐른 뒤 여자가 이혼을 하고 나타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이제 늙고 뚱뚱한 모습이다. 남자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약혼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돌아선다. 거침없이 솔직한 여자처럼 남자가 솔직했더라면 어땠을까. 

 남편이 바람핀 사실에 슬퍼하는 한 여자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 비슷한 욕망을 떠올리는 여자의 이야기<혜성>, , <뉴욕의 밤>은 다른 단편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하다. 세 명의 여자 친구들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둘은 이혼을 했고, 성에 적극적이며 자유롭다. 나머지 한 명은 연애도 사랑도 경험이 없다. 욕망을 따르는 삶과 절제의 삶을 우리의 일상에 대입시켜도 좋을 단편이다.    

  제임스 설터의 단편들은  거침없는 표현으로 솔직한 욕망을 드러낸다. 남녀간의 사랑, 집착, 배신, 진부한 소재를 고급스럽게 그려냈다. 그러나, 뭔가 다르다. 그가 그린 욕망의 끝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나 독자를 놀래킨다. 그 놀라움이 매력적이다. 단편 속 인물들은 모두 여유롭고, 화려하다. 하여, 사랑에 대한 욕망뿐,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대한 안타까움에 연민을 느낀다. 때문에 내게는 해가 지는 저녁에 슬그머니 스며드는 슬픔이 밀려왔다. 

 제임스 설터는 ‘이야기의 탄생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어떻게 소재를 얻었는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친절하게 이야기 한다. 소설을 먼저 읽고 이 글을 읽었지만, 반대의 경우라도 좋을 것이다. 강결한 느낌의 단편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어젯밤>은 신선함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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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정도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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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인생을 흔히 막을 건너는 일과 바다를 항해하는 일로 비유한다. 인생이라는 게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사막의 끝엔 지평선이, 바다의 끝에 수평선이 있을 꺼란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지평선과 수평선을 마주하는 일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일까. 
 
 사막을 걷고 있는 기분으로 낙타를 읽었다. 게르에 누워 별을 보는 상상을 했고, 모래 바람을 생각하며, 양고기로 만든 음식은 무슨 맛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사막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 그저 소설의 주인공 ‘나’의 그림자가 되어, 그와 아들 ‘규’의 뒤를 따를 뿐.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은 짧은 유서를 남기고,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중학교 3학년, 그림을 잘 그리는 열여섯 살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힘들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너무 어린 나이였다. 인생의 절망과 고통보다는 기쁨과 행복만 알아야 할 나이였다. 그러나, 삶의 고단함은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아들을 보내고, 나는 고비 사막으로 온다. 그곳에서 규를 만난다. 사막을 건너는 일은, 아들을 떠나 보내는 일이었던 것이다. 잠깐, 이건 꿈일까, 현실일까. 책을 읽는 나는 몽롱해졌다. 그러니까, 규는 소설 속에서 어디에나 존재하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인 동시에 부재였다. 

 아들과 여행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고, 유목민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일부가 되어 게르에 누워 별을 보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양을 모는 그들의 낙후한 삶이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신이 만든 피조물이라는 동질감이 소설을 읽는 내게도 가깝게 느껴졌다. 유목민 소녀 체첵과 규가스럼없이 감정을 나누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테비시에 있는 암각화로 향하는 여정은 주술사를 만나고 싶어하는 체첵때문에 지체된다. 한국에서 아픈 몸으로 살고 있을 엄마에 대한 소식을 알고 싶은 것이다. 사막의 하루, 언제 어떤 바람이 불지 모르는 삶에 대한 불안을 주술사가 희망으로 바꿔줄 꺼라는 믿음. 정말 주술사는 희망만 이야기 해줄까? 

 
체첵과 규의 모습을 통해 나는 규에 대해, 잊고 있었던 지난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규가 살아온 열여섯 해를 떠올리며 나는 유년의 기억과 청소년기의 방황, 혼란했던 20대와 사랑했던 사람과 아들과 아내를 떠올린다. 나를 돌아보고, 규를 기억하는 시간이다. 삼천 년 전 누군가가 거대한 바위에 혼신을 다해 그렸을 암각화. 반복되는 풍화에도 삼천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하게 존재한다. 그것이 삶일까. 

 사막에 숨겨진 오아시스처럼 암각화 속의 낙타를 타고 규가 떠나면서 나의 여행은 끝이 난다. 사막을 건너는 여행의 끝은, 규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인지 모른다. 남겨진 나는 규의 부재를 인정하면서 계속 살아갈 것이다. 주인공이 지나온 사막은 누군가가 지나온, 이제 걸어아야 할 길이리라.  작가의 말에 이런 글이 있다.  ‘지상에 평등한 삶은 없습니다. 삶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합니다. 낙타와의 여행은 그것을 깨닫는 길이었습니다. 불평등한 삶을 더욱 불평등하게 몰아 세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영혼의 나태를 경계해야 합니다. 무한경쟁에서 승리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타자를 배려하면서 자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사막, 모래 바람을 피해 다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인 낙타를 떠올린다. 
정도상의 <낙타>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게 했다. 그러나, 끝내 그 답을 이야기해주진 않았다. 다만, 계속 가야하는 길이라고 나즈막이 일러주는 듯했다. 내게는 그랬다. 낙타엔 어디에나 존재하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실과 슬픔이 있었고, 존재와 부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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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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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작가’란 말에 생동감이 넘친다. 동시에 젊은 작가의 소설을 읽는 나는 젊은 독자인가, 묻는다. 파릇파릇한 새싹을 연상시키는 연두의 글씨체와 일러스트로 표현한 작가의 얼굴이 읽기도 전에 즐거움이 몰려온다. 젊다는 건 크기를 잴 수 없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며, 편협한 사고가 아닌 창의적인 발상이 있다는 말이 아니던가. 여하튼 이 책을 읽기도 전, 나는 충분히 그 젊음에 전염되었고, 흥분하였다. 

 책은 문학동네에서 신설한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으로, 제1회의 수상작인 김중혁의 소설을 비롯해, 편혜영, 배명훈, 김미월, 이장욱, 정소현, 김성중 7작가의 단편을 수록했다. 특별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들의 소설을 만나는 설렘과 익숙한 이름의 작가지만, 처음 만나는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배로 커진다.

 우선, 수상작인 김중혁의 <1F/B1>은 허를 찌르는 공격을 받은 듯, 정신이 번쩍 든 느낌이었다. 제목 그대로 1층과 지하 그 사이, 과연 무엇이 존재할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김중혁은 그곳에 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상상했다.  일상속에서 흔히 만나지만, 그냥 지나쳐 버리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을 사물과 공간에 대해 이토록 관심을 갖는 김중혁의 소설을 빨리 만나야 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그의 섬세함과 통찰력에 놀랐다. 김중현의 단편은 2009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만난「C1+y=:[8]:」의 연상전에 있는 듯했다. 「C1+y=:[8]:」이 크게 서울의 숨겨진 공간을 묘사했다면, 1F/B1은 그 보다 더 가까이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도시 속 건물을 통해 인간이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건물 관리자들의 공간,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들. 

 “사람들은 각자의 층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사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하1층과 1층 사이, 1층과  2층, 2층과 3층…… 층과 층 사이에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슬래시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을 격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미미한 존재들이지만 꼭 필요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p 42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를 통해 조심스레 새로운 편혜영을 기대한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 전 장편 <재와 빨강>이나, 전작 <사육장 쪽으로>에서 접할 수 없었던 다른 소설이었다.  화원을 운영하는 한 남자가, 오래 전 알고 지냈던 어른의 장례식에 조화를 배달하려 낯선 도시로 향한다. 그러나 어른은 죽지 않았고, 남자는 그가 죽기를 기다린다. 낯선 도시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남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충분히 죽음을 생각할 게 분명하다.  물론 <저녁의 구애>에서도 불투명함은 여전했다. 뚜렸한 사물, 도시,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채, 삶과 죽음에 대해 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의 잔혹함과 그로테스크함은 보이지 않았다고 해도 괜찮을까.  

 이장욱의 <변희봉>은 놀라운 힘을 가진 단편이었다. 오랜 병수발 끝에 돌아가진 아버지, 아내와 이혼을 한 주인공은 연극배우다. 무기력한 그의 삶에 등장하는 배우 변희봉의 존재는 큰 의미를 지녔다. 지하철에서, 시자에서, 결혼식 주레자의 모습으로 주인공 앞에 등장하는배우 변희봉. 그러나 주인공외엔 아무도 변희봉을 알지 못한다. 실존하는 유명 배우를 소설의 제목으로 삼았으나, 소설속에서 변희봉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하여,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 우리가 사실과 진실로 믿고 있는 모든 것에 의문을 갖게 하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배명훈은 <안녕, 인공존재!>를 통해 처음 만났다.  우주선을 타는 남자와 신기기를 발명하는 여자. 둘은 한 때 연인이었고, 오랜 우정을 나눈 사이다. 여자가 그간에 만든 신제품은 모니터 없는 컴퓨터, 말로만 길을 알려주고 애매한 대답을 일삼은 내비게이션, 정확한 시간을 말해주지 않는 시계같은 이상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반응과 판매는 대단했다.  여자는 갑작스럽게 자살을 하고, ‘조약’이라는 신제품의 품질검사를 남자에게 부탁한다. 돌덩어리, 설명서에는 ‘존재’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남자는 신제품을 이해할 수  없었고, 우주로 나가는 길에 조약이자 존재인 돌덩어리를 우주에 던져버린다. ‘조약’이 사라지자, 설명서의  ‘존재’를 어렴풋이 이해하는 것일까.

 “존재라는 게 제자리에 놓여 있을 때는 있는지 없는지 눈치도 못 채던 거였는데, 사라지고 나서 그게 차지하고 있던 빈자리의 크기가 드러나니까 겨우 그게 뭐였는지 감이라도 잡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주 밖으로 던져버리면 저게 뭐였는지 알게 되겠죠.” p 160 

 정말 독특한 소재의 소설로 배명훈의 첫 느낌은 아주 명쾌했고, 산뜻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주를 개척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잊고 ,잃어버리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상기시키는 듯했다. 이렇게 관심 가는 작가가 늘어난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 같은 시각 만나는 익숙한 타인에 대한 시선을  이야기로 담아낸 김미월의 <중국어 수업>, 동양자수가였던 할머니와 함께 단둘이 살아온 집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정소현의 <돌아오다>, 고즈넉한 단조를 듣는 듯한 김성중의 <개그맨>은 지나간 사랑 이야기, 일곱빛깔 무지개처럼 각각 자신의 색을 가진 7명의 작가의 다양한 소설을 만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책은 각각의 단편마다 작가 노트와  젊은 평론가의 평론이 있다. 작가 노트를 읽는 동안 떨림과 흥분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리라. 그림과 짧은 메모 형태의 김중혁, 한 편의 그림이 소설로 이어진 편혜영, 친구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김미월, 첫 독자에게 재미 없다는 평을 들었다는 배명훈의 작가 노트를 읽으면서 소설가의 일상을 상상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독자는 소설과 작가에게로 더 가까워진다.

 제1회를 맞이한 젊은 작가상이 회를 거듭할수록 발전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젊은 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더불어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영원히 젊은 독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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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걸
페터 회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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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천적 장애나 후천적 장애로 인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소리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하여, 일반적으로 그 소리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지 않는다. 물론 그 소리가 소음인 경우는 다르지만 말이다. 때로 목소리를 통해 상대의 심리를 짐작하기도 한다. 불안한 경우엔 목소리는 떨리고, 흥분한 경우엔 자신도 모르게 커지기도 한다. 비가 내리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경쾌한 하이힐 소리, 피아노 연주 소리처럼 세상엔 얼마나 많은 소리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소리를 듣는 일과 고유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건 정말 신비하고 오묘한 일이다. 그런 소리를 남다른 재능으로 내면의 감정까지 읽을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콰이어트 걸>은 천부적인 청각의 소유자로, 놀라운 재능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페터 회를 기억한다면, 분명 설레일 것이다.  주인공 카스퍼는 유명한 서커스 광대로, 작은 벌레의 움직임, 전화선 너머 누군가가 어떤 마음까지 소리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카스퍼에게 어느 날 여자와 남자가 클라라마리아란 소녀를 데리고 온다. 소녀는 자신이 유괴되었다고 말하며 영수증을 건네준다. 영수증 뒤에는 소녀가 그린 그림이 있었고 두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운명의 끌림이었을까. 카스퍼는 클라라마리아를 찿아 나선다. 소녀를 구해줄 카드는 영수증이 전부였다. 

 영수증의 전화번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추리가 시작된다. 그 과정에 만나는 많은 사람과 그 사람들의 소리를 통해 카스퍼는 놀라운 사실과 마주한다. 클라라마리아도 자신과 같이 소리에 대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어, 멀리 않아 지진이 일어날 꺼라는 것과 그 사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스퍼가 사랑했던, 자신을 떠난 여자, 스티나가 그 중심에 있었다. 

 “모든 사람의 심장에서는 소리가 나죠. 그 소리에는 근사한 울림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린 그 기를 꺾어버리죠. 지금 여러분 모두의 소리는 정말 훌륭해요. (...) 여러분이 매일 10분만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면. 그리고 긴장을 풀면, 그 파동이 계속해서 퍼질 겁니다. 정말이지, 여러분에게선 바흐와 같은 소리가 날 겁니다.” p291

 모호하며 몽환적인 분위기, 소리로 만나는 과거와 현재, 카스퍼가 찾는 사람들과 그를 쫓는 사람들의 소리를 상상하게 한다. 소설엔 내내 음악이 흐른다. 카스퍼가 좋아하는 바흐의 선율이 함께한다. 하여, 독자는 카스퍼처럼 바흐를 듣고, 그 소리에 색과 형상을 입힌다. 여타의 추리소설과는 확연하게 다른 소설이다. 소설은 무척 난해했다. 인물의 관계는 복잡했고, 현재와 과거 회상의 구성과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공간도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스티나는 왜 떠났을까. 카스퍼는 소녀를 구할 수 있을까. 안개처럼 음악이 깔린 세계로 독자는 깊이 들어간다. 

  ‘사랑은 상대를 알아보는 것이다. 미지의 것에 매료되고 끌릴 수는 있지만, 사랑은 신뢰 속에서 천천히 자라나는 것이다. 해변에서 처음 스티나를 봤을 때부터 그는 신뢰와 믿음의 소리를 반복적으로 들었다. 지금도 그 신뢰와 믿음은 존재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지금처럼 뭔가 다른 것, 마치 미지의 대륙처럼 낯설고 정복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았다.’ p 514

 누가 이렇게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카스퍼에게 그 소리는 아마도 바흐가 아닐까. 아, 소리로 느끼고 기억되는 사랑이라니. 음악이 흐르는 추리소설이라 말할 것인가, 소리로 그려낸 사랑이라 할 것인가. 그건,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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