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노석미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지즈 네신이라는 이름이 요즘 여기저기서 들린다.  내가 읽고싶어하던 몇몇책의 작가인걸보고 반가운 맘이 들었지만, 실제로 내가 그의 책을 접한적은 한번도 없는것 같다.  사실 터키의 작가라는 것도 이번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약력을 보고 알았다.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하는 호감도에 비해 실제 그에 대해 아는게 전혀 없었다.  

이번책은 제목에서부터 너무 끌렸다.  "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하하, 눈치가 없냐니.  과연 직설적인 저 화법은 누구에게 날리는 말일까?  혹여 시사적인 문제를 지닌 책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져 들었다.  그런데, 책을 넘겨보니 정작 나의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얇으면서도 금방금방 읽을수 있게 돼 있는 이책은 아지즈네신 자신이 어릴적에 겪은 일들을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이게 그려내고 있었다.  

가난속에서 자랐지만, 옳고 그름을 잃치 않고, 무언가를 욕심내기 보다는 없는 것에서 얻어지는 행복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책은 어릴적 가난해서 구루병에 걸린 여동생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묘지에 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때쯤 병이 낫기를 기대하는 가난한 이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실제 여동생은 결국 죽고말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의 병을 고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잘 나타나있었다.  그러나, 결국 돈이 웬수인 것이다.  잘 먹고 영양을 충분히 보충해야하는 결핵에 걸린 어머니마져도 자신을 위해 어렵사리 구해온 고기나 캐비어를 아들에게 좀더 주기위해 먹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의 모든 부모는 누구나 비슷함을 느끼며 가슴아려왔다.  물론, 이런 어렵고 가난한 얘기속에서도 미소를 띄게 하는 일화들도 많았다.  특히 제목이기도 한 일화는 아지즈네신이 생선을 먹으며 너무 맛있자 "이렇게 맛있는 생선은 처음 먹어봐요"를 몇번이나 되뇌었으면서도 어른들이 그저 "응, 그래" 라는 뚱한 반응만을 보이자 그렇게 말을 어려번 했으면 자신에게 좀더 달라는 말인걸 모르느냐고 그렇게 눈치가 없냐고 하는 부분에서는 푸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영악스런 아이같으니라고......
가난하지만, 가난함보다는 삶의 의미를 먼저배운 아이다움이 드러나면서도 또한 아이같지 않음이 공존하는 내용이었다고 할까?

아지즈네신에 대해 잘 알지도 그리고 그의 책을 처음으로 접했지만 웬지 매력속으로 빠져든것 같은 기분이다.  신랄하면서도 따듯함과 다정함이 묻어있다.  그리고, 거기에 웬지 모를 웃음까지 묻어있다.  뒤늦게 그를 알게돼 아쉬움이 크긴하지만, 앞으로 그의 책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랫만에 만난 따듯한 에세이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대어 -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요시다슈이치의 "동경만경"이라는 책을 접하고 한동안 멍했었던 기억이 난다.  잔잔하면서도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의 이야기인데도 웬지 뭔가가 불편해 지는듯한 기분을 주는거 같아 한동안은 요시다슈이치의 책을 피했었다.  그러나, 워낙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고 일본작가라는 자체가 호기심 유발을 하기에 그후에도 그의 책을 몇권 접했었다.  물론, 여전히 내가 좋아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웬지 이책은 다른느낌으로 와 닿았다고 할까?  같은 작가이고 오히려 초기작인데도 불구하고 더 내 입맛에 맞는 기분이었다.

총 세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열대어"는 그중 첫번째 단편의 제목이었다.  목수라는 직업과 고무기라는 딸을 하나둔 마미와 동거를 하며, 한때 이복동생이었던 마쓰오와 어울려 사는 주인공은 그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호의를 베풀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실상 자신은 호의라 생각하지만 받아들이는 그들은 웬지 불편해 하는 호의.  그들을 위해 무리하게 푸켓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주인공에 비해 마미와 마쓰오는 푸켓여행자체를 달가와 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되어지는 주인공.  이웃에 사는 대학교수와의 사이 역시 무척 자연스럽지만 간혹 그들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기느낌에는 호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불편으로 다가오는것이 과연 호의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주인공은 당연한 친절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주인집 어린여학생을 꼬드겨 사고를 칠뻔했을때도 주인공은 웬지 죄의식이 없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그가 나쁜사람은 절대 아니다.  단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뿐 그러고 지나간 사건이 자연스럽게 흐를뿐이다.
두번째 "그린피스"라는 단편 역시도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고 완두콩 한통을 애인에게 전부 던져버리는 주인공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도덕의식이 결여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정말 떠나버린 애인을 기다리며 자신의 잘못됨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답답해 보인다고 할까?  솔직히 그런 남자친구 없어도 되련만 그의 애인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여전히 그와의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참 이해할수도 없는 커플이지만 그역시 웬지 자연스럽다.  결국 그렇게 될거라는걸 다시한번 확인한 것 밖엔 없다.
세번째 "돌풍"은 휴가기간을 이용해 팬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주인아주머니와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불륜을 향해 가던 마지막 순간 그녀가 거의 넘어왔다고 생각하자 웬지 그는 그녀를 과감히 떨쳐내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사실 세 주인공 모두 일상적인 인물들이며 크게 특이할것도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어찌보면 약간의 히스테리를 껴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오히려 더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우리네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웬지 그 뒷맛이 씁쓸하다.  그들 세사람 모두에게서 외로움이 전해져 오기 때문인가?  평범한 일상들이지만 끝이없는 외로움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고 그들의 행동을 전부 이해할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이해하기 힘든부분이 태반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것은 무슨 느낌인지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건이 있지만 여전히 흘러가듯 자연스러움이 빛을 발하는것이 요시다슈이치의 글이 아닌가 싶다.  그 자연스러움이 무엇보다 신선함으로 다가왔던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기타노 다케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기타노다케시"라는 이름 역시 접하게 됐다.  일본에서 유명한 코메디언이자, 영화감독이며, 배우등등 그의 이름뒤에 붙는 직업은 여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실지 그를 접한건 "하나비"라는 일본영화의 배우로서가 먼저였다.  물론, 그 작품을 감독도 했다고하니 영화감독도 겸해서 만나게 됐다고 해야할까.  그런반면 그가 또 굉장한 우익(?)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우리나라에 대해 비하까지는 아니더래도 그다지 좋게 얘기하지 않는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었다.  그런 그에 비해 그가 낸 책은 "위험한 일본학"이라고하니 사실 매치가 되지않기도 했다.  어째꺼나 소문으로 들리는 그의 그런 성향을 떠나 영화배우로 각인된 그의 이미지가 강렬해 좀더 알고싶은 욕심이 생겼다.

"위험한 일본학" 이책은 현재시점에서 씌여진 책은 아니었다.  2000년대를 지나 2001년쯤을 기준으로 씌여진 책이기에 지금의 상황과 일본은 좀더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적 배경은 뒤로하고, 몇년 뒤쳐진 책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크게 변한 느낌은 없으니 지금 읽으나 그때 읽으나 "기타노다케시"만의 생각과 시선을 따라잡는데 무리는 없을거 같다.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웬지 책을 읽어갈수록 '어? 기타노다케시다운데?' 라고 생각했다면 오버일까?  신랄하게 일본을 파헤치고 일본의 단점에 대해 과감없이 직설을 날리는 것이 내가 느끼던 그의 모습과 별반다르지 않은거 같아서 더 그런 느낌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자기 마음가는대로 고른 20세기의 인물 50명과 일본인물 50명.  우선 일본인물들에 대해선 내가 그다지 아는것이 없기에 뭐라 할수 없지만, 세계적 인물 50명에서는 자유로운 사상으로 유명인들을 선정한 것이 재밌게 느껴졌다.  나도 따라해보고픈 생각이 든다고 할까?  물론 그런인물을 선정하기에 나의 지식이 너무 짧아 많은 인물들을 빠트릴것이고 시덥잖은 인물을 넣어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재밌지 않은가.  책을 깊이 들어갈수록 현재 일본이 처한 가정붕괴에 대해 아버지의 부재를 들며, 아버지들이여 가출을 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렇치 않다면 아버지가 자신의 자리를 찾기위해 아내나 자식들에게 크게 어깨를 펴고 야단을 치라고 했다.  
자신의 방이 없는 아버지들은 부지기수지만, 자신만의 방을 가진 자녀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꼬집는 그의 시선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공감을 표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특히나 요즘 사회문제가 되어가는 히키코모리나 무작위 살인등은 그런 아버지의 부재속에서 드러나는 현상임을 그는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청소년범죄에 대한 그의 신랄한 비판까지.....
우리나라도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는 길을 걸어가고 있기에 그의 말들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점점 청소년 범죄는 늘어나고, 아버지로서의 힘은 잃어가는 것이 현실인만큼 그가 제시한 해결점들이 엉뚱하고 어쩌면 실현불가능할지라도 어느정도 공감이 가는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외 현재 나약해진 일본외교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었는데 사실 이부분은 우리와 엄청난 생각의 차이를 가지고있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  일본인의 관점으로만 바라본것이기에 일본인들의 생각을 엿본것으로 만족해야할 거 같은 기분이랄까....

"기타노다케시" 다운 글을 읽으면서 그의 엉뚱한 해결책들이 결코 장난으로 와닿치 않음을 느꼈다.  분명 실현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하지만, 조금 과격하지만 그의 방식이 어쩌면 속시원할거 같은 기분도 느껴진다.  순수 일본인의 관점으로 바라본 일본의 모습을 되새길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거 같다.  모든글에 공감을 표할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일본을 다시보는 계기가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덕여왕
신진혜 지음 / 창해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하면 "선덕여왕"이 떠오른다.  지금도 최고의 자리에 여자가 오르기는 쉽지 않은데, 삼국시대중 유일하게 신라에서는 여왕이 두명이나 나오니 대단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유교를 떠받들기 전 시대에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힘이 나름대로 괜찮았던 듯하다.  특히나, 남자들만이 첩을 두는것이 아니라 여자들 역시 어여쁜 남자들을 가까이 하는것이 그다지 큰 흠이 아닌듯 하니, 여자들이 삼종지도라 하여 조선시대 집속에만 갇혀지낸 그런 답답한 시대가 아닌게 분명한 삼국시대 같다.

어째꺼나, 여왕으로 자리매김해서 나쁘지 않은 정치역정을 보인 선덕여왕이 어릴적부터 이름을 들어 알고는 있지만 실제 한여인으로써, 그리고 왕으로서 해낸 일들은 자세히 모르는것도 사실이다.  첨성대와 황룡사 9층 석탑 같은 위대한 건물 양식을 남긴건 알겠지만 그외의 부분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웬지 출판계 뿐만아니라 드라마로도 제작되는 것이 "선덕여왕"이다 보니, 갑작스레 이런 바람이 부는것이 의아하긴 하다.  나야 비록 알지 못하는 임금에 대해 자세히 알수 있는 기회라 기쁘기 그지 없지만 선덕여왕에 대한 해석과 바람이 왜 이렇게 이는것인지 의문은 든다.  그동안 잠잠했었는데 새로운 여왕의 탄생을 바라는 것인가?

역사학도라 자처한 저자는 몇년간을 이책을 쓰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는 후기를 남겼다.  하긴, 한여인의 인생을 그려내는게 그렇게 쉬운일이겠는가.  게다가 역사적 사료도 그다지 많치 않을 터인데......
이책은 선덕여왕이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물론, 여자로서의 사랑, 고뇌, 그리고 정치등이 총망라돼 있는 일생을 담고 있다.
진평왕의 둘째딸로 태어나 왕의 자리와는 거리가 먼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으나 정치에 뜻이없는 큰딸의 사양으로 그리고, 미실의 직,간접적인 힘으로 부군이라는 자리에 오르며 왕에 대한 발판을 닦는다.  하지만 어릴적부터 왕궁의 속박을 싫어하고 비형을 사랑하는 그녀는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운명이란 어쩔수 없는법.  담대하고 자신의 주장이 곧은 그녀는 그누구보다도 왕의 자리에 적합했다.  단지 여러가지 사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어지지 못하고 후사를 두지 못하지만 삼국통일의 발판을 닦는 초석이 되는것만으로도 그녀의 업적은 대단하다 하지 않을수 없다.  약간은 신파적으로, 그리고 한여인의 일생으로 초점을 맞추다보니 조금은 연애소설 느낌이 날 정도지만 인간으로서의 "선덕여왕"을 만난건 나름 괜찮은 소득이 아닌가 싶다.

어떤 곳에는 선덕여왕이 첫째딸이라고 하는데, 이책엔 둘째딸로 나타난다.  게다가 선화공주와 호동왕자 이야기도 흐르고 있고, 도대체 역사가 이러니 제대로 알수가 없는 혼란한 사태가 오는게 아닌가 싶다.  어째꺼나 다른 선덕여왕과 관련된 책도 찾아 읽어보고 좀더 자세히 알고싶은 욕심이 생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붕 위의 신발
뱅쌍 들르크루아 지음, 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스 소설들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그들이 전하는 메세지를 찾아내는게 생각만큼 쉬운건 아니라는 느낌이 들지만, 그 깊이를 하나하나 되짚어 찾다보면 새로운 것들이 다가오는 기분이 든다.  특히나 프랑스는 영화에서부터 이미 그 깊이를 가늠할수 없을정도의 메세지를 전하는 나라이다보니, 책에서도 그런 느낌이 강한것 같다.  어쩌면 고리타분하고, 어쩌면 복잡하고 머리아푸지만, 그 매력의 깊이에 빠지다보면 그들이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이나마 감을 잡고 기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거 같다.

뱅쌍 들르크루아라는 작가의 이름은 "지붕위의 신발"이라는 책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웬지 귀에 익숙한 느낌이 든다.  "뱅쌍" 이라는 이름 자체가 영화주인공으로 프랑스 사람들의 이름으로 많이 불리워지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때 조금은 미소가 지어졌다.  지붕위에 신발이 있다니, 과연 무슨 이유란 말인가.  "지붕위의 바이올린" 처럼 그다지 운치있거나 멋있지도 않고 무슨 코메디마냥 신발이 올려진 지붕은 내용을 들여다보기전까지 웬지 우습다는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신발이 상징하는 바는 실로 어마어마하다는걸 책을 읽다보면 느끼게 된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딸아이의 얘기를 들어주는 복사기판매원은 딸아이가 지붕위에 있는 천사를 봤다는 말에 어이없지만 귀기울여준다.  하지만, 잠을 자야하는 자신과 계속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딸을 보면서 만사가 귀찮기만하다.  지붕위에 신발한짝을 놓고갔다는 천사는 과연 어떤 인물이란 말인가.  그리고, 자신을 버린 여인과 그 동거남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예전살던 집을 무단침입한 남자는 강한 복수를 이루지 못하고 소심하게도 동거남의 신발한짝을 지붕위로 던져버린다.  마치 그 신발한짝에 모든 원한과 저주를 실어 날려보내듯이......  동화적 환상을 지니고 살면서 우연히 한번 스친 여인이 나타나기만을 바라며 그녀가 버려둔 신발을 지낸채 자신에게 현재 주어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동화증후군을 지닌 남자는 그렇게 찾아헤매던 이상적인 여인이 친구의 연인이 되었음을 알고 과감히 신발을 떨쳐낸다.  그외 모든 에피소드들에 신발이 여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얘기는 하나같이 전부 이어져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살거나, 연관된 사람들.  누가 던졌는지도 모른체 지붕위에 나뒹구는 신발.  그 신발은 그야말로 에피소드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외로움을 대변하는 큰 얘깃거리다.  신발하나에 모든것을 실어 던져버리거나, 신발이 그 지붕에 놓여있음으로 아무것도 할수없는 신경증으로 발작하는 할머니등은 세상과 단절해버린 고통속에서 그 자신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같이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는 등장인물들 모두 외로움과 고독에 찌들어 있다.  모두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듯하지만 각자 개인의 공간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뿐인것이다.   

신발이 지붕으로 던져져 쳐내지듯 자신들의 모습도 지붕위에 올려진 불안함처럼 어쩌지 못하고 그자리에 굳어져버리는 것처럼 신발을 던지고, 던져진 신발을 보면서 어쩌면 스스로를 떠올리는 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게다가 그 신발을 찾고자 하는 의지들은 어디에고 없다.  자신들의 외로움을 떨치지 못하고 그 외로움에 그저 안주해 버린다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지붕위에 비를 맞고, 썩어가는 신발을 보면서 현대 지금 우리의 모습이 떠올려진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듯하다.  우리모두 지붕위에 외로이 썩어가는 신발같은 존재인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