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상황은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권력을 잡으며 영조의 어렸던 중전이 수렴청정을 하면서 급변하기 시작한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관리들이 천주교에 대한 탄압과 함께 정약용과 정약전을 유배 보내야 한다느니, 참형에 처해야 한다는 상소문들이 빗발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이는 천주교때문에, 어떤이는 그가 가진 사상만으로 상소를 올려 무고하니 순조 1~2년 즈음에 결국 유배를 가게 된다. 아마 초반은 경상도 쪽이었던 것 같고 후에 강진으로 옮겨 기나긴 유배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강진에서부터 다산초당에서 무려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다니..... 게다가 정약전 둘째형도 흑산도로 유배생활을 떠나 둘은 그때 헤어진 후로 결국 형의 죽음이 찾아올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한다. 이런 크나큰 아픔이 있을수가....
정조시대엔 수원성 축조와 관련된 어마어마한 일까지 해 낸 그에게 어느날 갑자기 내려진 유배생활이라니.....
하지만, 그 아픔속에서도 우리는 또 그 유배생활때문에 어마어마한 유산을 물려받게 된게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 하게도......
긴 유배생활중이었기에 <경세유표>나 <흠흠신서>등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유배의 고달픔은 상상 그 이상이어서 온 가족을 강진으로 이사시켜 곁에 두려는 생각까지 했다는 것은 몰랐던 부분이라 새롭기도 했다. 형 정약전의 준엄한 꾸짖음으로 그 생각을 접었다하니 형님 정약전의 고언을 대단히 깊이 새겨들었던 듯 하다. 게다가 그도 어쩔수 없는 아버지인터라 두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늘 잔소리가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유배생활에서도 찾아와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으니 그의 학식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지은 <아학편>을 몇년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꽤 유용했었던 거 같다. 딱 실생활에 맞게 된 한자들만 추려내 <천자문>이 아닌 <아학편> 그 책으로 아이들이 한자공부를 하면 좋겠더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여진히 지금 한자를 배우는 현재도 <천자문>이 주를 이루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선생이 지은 책들의 내용은 그 책들을 한권한권 읽어야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간단하게 소개된 부분들은 보니 그 시대적에 일찌기 받아들여 말대로 했더라면 외적의 침입에 더 방비할 수 있었고 어쩌면 나라를 그리 쉽게 뺏기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됐다. 그만큼 미래를 보는 혜안 또한 깊었던 것이다.
전기를 읽어보니 한 인간으로서의 정약용 이라는 사람이 더 잘 보여서 역사책이나 국사수업시간에 달달 외우던 그런 주입방식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서 한발짝 더 다가선 느낌이다. 물론, 사대부의 마음가짐을 가진 꼰대스러움도 적잖이 드러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시대는 그러했으니 어쩔수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전기를 읽는게 재밌고, 즐겁고 배울것도 많치만 또 한사람의 인생에 희노애락이 담겨 더 감동있는 듯 하다. 물론 진도가 안나가는 건 무거운 덤이지만 말이다. 이름으로만 외우던 "정약용" 선생을 한발짝 더 다가서게 한 책읽기가 아니었나 싶다.
아..마지막으로 다산과 사암 모두 호인데 호가 꽤 많았던 듯 하다. 이외에도 호가 엄청많았는데 기억이 다 안날뿐..
우리가 아는 다산이 제일 유명하긴 한데 저자는 사암으로 전기 제목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