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슨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67
S.S. 반 다인 지음, 정광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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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의 주식중개인 벤슨이 자정이 30분쯤 지난 후 자택에서 살해 당한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상태에서 정수리에 총을 맞고 살해 당했는데, 평소 착용하던 가발은 벗어놓았고 틀니도 빼 놓은 상태였다.

뉴욕 지방검사 메컴은 현장에서 여성이 피운 담배 꽁초가 발견된 점, 여성의 핸드백과 장갑이 벽난로 선반에 놓여 있다는 것을 근거로 벤슨이 살해 당하기 직전 함께 식사했던 세인트 클레어라는 여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 시킨다.

하지만 메컴의 친구이자 미술애호가인 파이로 번스는 경찰들이 헛다리 짚고 있다면서 증거보다 우선시 할 것은 심리분석이라며 대립각을 세운다.

세인트 클레어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파이로 번스에 의해 깨어지자 그녀의 약혼자인 필립 리콕 대위가 범인으로 부각되고,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던 그가 마침내 자백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파이로 번스는 그의 자백에는 허점 투성이가 많은 것으로 보아 세인트 클레어가 벤슨을 죽인 것으로 믿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엘빈의 친구인 리앤더 파이피, 엘빈의 가정부인 플래트 부인 등이 차례로 동기와 기회, 증거까지 갖춘 유력한 용의자로 부상하지만 파이로 번스는 전혀 엉뚱한 인물을 진범으로 가려내는데...

 

반 다인에 의해 탄생된 파이로 번스는 동기와 기회, 증거를 중시하는 기존 수사법을 반대하고 심리적 요인에 집중하는 인물로 대단한 미술애호가이며 철학과 심리학, 심지어 골상학까지 두루 섭렵한 박학다식한 탐정이다.

 

파이로 번스는 다분히 반 다인이 살아온 이력이 반영된 인물이다. 반 다인의 본명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Willard Huntington Wright)로 본래 예술 평론가였다. 세인트빈센트 및 포모너 대학에서 수학하고, 1906년 하버드 대학원에서 영어학을 전공한 그는 고고학 및 인류학에 뛰어났고 미술과 오케스트라의 지휘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졸업 후 <로스엔젤레스 타임즈>지의 문예비평 담당자로 일을 시작한 후 여러 신문과 잡지에서 예술 평론과 고전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몇몇 순문학 작품과 평론집을 발간하였는데 그다지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한다.

그러다 1923년에 신경쇠약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데 의사는 일체의 독서를 금지시킨다. 하지만 독서광이었던 그가 책을 못 읽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기에 의사에게 미스터리 소설과 같은 가벼운 소설은 허용해 주도록 요청했고, 의사가 이를 승낙하자 병상에서 일어날 때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출간된 거의 모든 미스터리 소설을 섭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읽었던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마친 후 자신만의 새로운 미스터리 소설 집필 계획을 세운 후 세상에 내 놓은 작품이 바로 <벤슨 살인사건>이다.

 

파이로 번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이 지금까지의 탐정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드러낸다.

 

진실을 아는 오직 한 방법은 범죄의 심리적 요인을 분석하여 그것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일일세. 즉 진실한 단서는 심리적인 것이지 물적인 게 아닐세.

 

파이로 번스에 의하면 범죄는 일종의 예술작품과 같아서 마치 그림처럼 창조적 개성과 착상이 녹아나 있으므로 그러한 특성에 착안하여 수사하지 않고 드러나 있는 증거에 천착할 경우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무엇을 하든 저마다의 성격에 따라 얼마간 독자적인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고, 범죄 역시 그러한 개성의 직접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다소 참신하게 느껴지는 파이로 번스의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증거에 의한 범죄의 입증>이라는 문제에 이르렀을 때는 다소 모호하게 얼버무려 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두번째 작품인 <카나리아 살인사건>과 세 번째 작품 <그린 살인사건> 이후에는 반 다인도 심리적 요인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보다는 다소 완화된 입장으로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12권의 미스터리 소설을 남기고, 미스터리를 '지적 게임'이라고 주장하며 '미스터리 작가가 깨우쳐야 할 20조항'을 남긴 반 다인은 1939년 4월 11일, 51세의 나이에 관상동맥혈전으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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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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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수국꽃 정사(情死)

 

사진학교를 졸업한 후 대형 출판사 사진부에서 이십 년 남짓 일해온 기타무라는 버블이 무너지자 정리해고를 당한다. 가족들에게는 프리랜서 카메라맨으로 나설 것이라 큰소리를 쳤지만, 불가능한 얘기라는 것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디지털 장비를 사서 심기일전해 보려 했지만 오래된 수동식 카메라에 익숙한 몸은 잘 따라주질 않았고, 잔뜩 남은 장기주택불입금과 불투명한 미래가 기타무라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기타무라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경마장을 찾아 도쿄 근교로 떠난다. 경마에서 탈탈 털리고 온천장 여관을 찾은 기타무라는 온천 지역이 자신의 처지처럼 전락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칸센이 생기자 사람들은 여관에서 묵어갈 바에야 집으로 돌아가버렸고, 떠나야할 때 떠나지 못한 사람들만 남아 쇠락해가는 여관과 술집을 지키고 있었다.

술집을 찾은 기타무라는 그곳에서 스트립걸을 만난다. 손님은 기타무라 한 명 뿐이었다. 스트립쇼는 쇼걸이 옷을 다 벗은 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쇼걸과 관계를 갖는다는 식의 프로그램으로 진행 되었다. 하지만 기타무라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고, 여자 역시 기타무라의 마음을 눈치 챈다. 둘은 따로이 술을 마시러 간다.

 

여자의 이름은 릴리였다. 릴리는 기타무라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왠지 기타무라의 분위기가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것 같았다. 릴리는 자신이 어릴 때 유부남을 만나 사랑에 빠진 일, 아이를 낳은 일, 그리고 아이를 빼앗기고 쇼걸로 돌아와 밥벌이를 하다가 손님으로 온 자신의 아이를 만난 기구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놓는다. 그리고 기타무라에게 자신과 함께 죽어달라고 부탁하고, 기타무라는 자연스럽게 좋다는 대답을 건낸다. 장기불입금에는 생명보험이 딸려 있었다.

정사를 위해 둘은 여관에 들고 그곳에서 술을 마신다. 릴리는 기타무라가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며 자신이 그처럼 예쁘게 나온 사진은 처음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관 종업원이 둘이 든 방 문을 노크한다. 릴리가 일하는 술집 주인이 목을 메달았다고 했다.

릴리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기타무라와 나눠 가진 후 닷짱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떠난다. 택시를 잡아탄 기타무라는 젊었을 적 그랬듯 양손의 검지와 엄지손가락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앞 유리를 향해 구도를 잡아본다.

 

o 나락(奈落)

 

12월 어느 날, 신주쿠 동양물산 본사 38층 엘리베이터에서 총무부 가타기리 타다오가 추락해 사망한다. 엘리베이터 문은 열렸지만 실제 승강기는 도착하지 않았는데 기타기리 타다오는 그것을 모르고 발을 내딛은 모양이었다.

가타기리는 처음 입사할 적에는 총망받는 사원이었지만 어찌 된 이유인지 총무부에 들어간 이후 사원들 경조사나 챙기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과장 대리에 머물고 만다. 입사 동료 둘은 그동안 임원으로 차근히 승진해 사장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타기리가 죽고 난 후 그의 죽음에 모두들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 가타기리와 다툰 직원, 그의 청을 매정하게 거절한 동료 등 그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타기리의 죽음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모두들 애써 자위하며 남에게 책임을 미루는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난다. 그 와중에 회사 전체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오고, 동양물산 회장은 가타기리가 회사를 망하게 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여 주도면밀한 계획을 짠 후 자살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마저 든다.

 

o 죽음 비용

 

"만약 죽는 순간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면 자네는 얼마를 내겠나?"

 

오우치 소지는 친구 고야나기를 명부에 보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야나기가 내뱉었던 말을 생각해 낸다. 오우치 소지는 그 말이 못내 가슴에 고여 신경이 쓰였는데, 얼마 후 고야나기의 아내가 오우치 소지를 찾아와 고인의 통장에서 사망 직전 1억엔이 인출되었다는 말을 전한다. 오우치 소지는 그 돈이 틀림 없이 죽음 비용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비서를 시켜 알아보게 한다.

라이프서비스라는 이름의 회사는 곧 사람을 보내 죽음에 이르는 길을 소개한다. 고통없이 즉사하는 방법, 편안하게 잠이 든 뒤에 죽는 방법, 인간의 오감이 전부 완전한 행복감을 맛보면서 나름한 봄날의 햇살을 받는 천천히 생을 마감하는 방법 세 가지가 있으며 각각의 방법에 따른 비용이 다르다고 했다. 오우치 소지는 자신도 죽음과 멀지 않은 처지였기 때문에 사기에 불과하다는 비서의 말보다 라이프서비스 사원의 말에 관심이 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늦게 얻은 후처의 부정, 둘째 아들이 비서를 농락한 일 등 오우치 소지가 원치 않았던 일들이 일어난다. 특히 비서 미야코는 오랫동안 자신을 보필해 오고 있었으며 나이와 격식을 버렸다면 부부의 연을 맺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마침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오우치 소지는 라이프서비스를 기억해 낸다. 하지만 그 회사는 사기업체로 판명되어 경찰 수사가 시작된 뒤였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채 죽어가던 오우치 소지는 비서 미야코가 자신을 안아주자 라이프서비스가 제시한 마지막 죽음의 길이 지금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o 히나마츠리

 

도쿄올림픽을 앞 둔 2월, 야요이는 오히나사마는 2월에 꼭 바람을 쐬어줘야 시집을 갈 수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히나마츠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술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야요이 혼자서 저녁을 차려 먹고 쓸쓸히 잠드는 일이 많았다.

그때 요시이 아저씨가 야요이의 집을 찾는다. 요시이 아저씨는 엄마보다 열 살이 어렸는데 예전에 옆집에 살던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엄마에게 구애를 했지만 엄마는 나이차가 너무 많다며 거절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하게 된 후로는 가끔 요시이 아저씨가 야요이를 찾아와 선물을 주고 갔다. 때로는 함께 목욕탕에 가기도 했다.

그날도 함께 목욕탕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전파사 앞을 지나게 되었다. 요시이 아저씨는 텔레비전을 사주겠다고 약속한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야요이는 요시이 아저씨 같은 아빠를 달라고 부탁한다. 삼짓날이 지나버렸고 오히나사마는 2월 바람을 쐬지 못했지만, 야요이는 하느님도 하룻밤 정도는 대충 눈감아 주시겠지 하고 생각한다.

 

o 장미도둑

 

메이프린세스호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아버지에게 '나'는 영어로 편지를 쓴다. 자주 쓰지는 못하지만 기항하는 곳에서 받으실 수 있도록 애를 쓴다.

선생님이 바뀐 일, 옆집 헬렌 패트릭과 좋아 지내는 일, 애써 가꾼 장미가 도둑 맡는 일 들을 쓰는 동안 '나'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해석하는데, 그 와중에 엄마의 불륜 사실이 편지를 통해 전달된다.

 

o 가인(佳人)

 

어머니의 취미는 어머니가 사시는 시골 동네 처녀들을 중매하는 일이었다. 신이치는 자신의 부하 직원 요시오카 히데키를 떠올린다. 훤칠한 키에 운동도 잘했고 업무 능력도 뛰어났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서른 여덟이 되도록 애인이 없었다. 신이치는 그에게 동성애자인지, 혹은 성불능자인지 묻는다. 신이치는 단호히 아니라는 답변을 한다. 흡족해진 신이치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시키는데, 어머니를 본 신이치가 당황하더니 잠시 후 어머니와 드라이브하고 식사를 하겠따며 모시고 나간다. 롤리타 컴플렉스의 반대인 연상(年上) 컴플렉스를 떠올린 신이치와 아내는 어지러운 마음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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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꽃 정사>가 가장 마음에 든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퇴락해 가는 사람과 지역을 배경으로 정사(情死)를 결심하고 여관에 들어 술을 마시는 두 사람. 담담하게 그려지는 그 모습에서 절제된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 외의 작품은 딱히 마음이 가지 않는다. 하나의 소설집으로 묶이기에는 일관성이 부족해 보이는데 국내에서 따로이 선집으로 만든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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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 - 상
토마스 케닐리 / 오월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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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9월 6일, 지그문트 리스트 장군의 기갑 사단이 주데텐란트에서 북쪽으로 진격하여 폴란드 남쪽의 그라쿠프를 점령한다. 모든 유태인에게 강제적인 호적 및 주거 등록, 이주가 명령된다.

오스카 쉰들러는 1908년 오스트리아의 모라비아 산악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즈비타우라는 산업 도시였고 아버지 한스 쉰들러는 50여명의 직공을 거느린 사업가였으며 종교는 가톨릭이었다. 에밀리라는 품격 있는 여성과 결혼 했는데, 사이는 데면데면 했던 것으로 보인다. 쉰들러는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를 굳이 에밀리에게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화려한 옷차림과 좋은 술을 사랑했고, 천성적으로 주목 받는 것을 좋아했다. 초기에는 국가사회주의에 찬성했던 것으로 보이고 나치 당원이었다.

그런 오스카 쉰들러가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크라쿠프로 가서 이츠학 슈테른을 만난다. 그는 유태인 회계사였다. 그들이 처음 만날 때 슈테른은 법에 의해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것을 쉰들러에게 밝힌다. 쉰들러는 대수롭지 않게 자신은 독일인이라고 소개했을 뿐이다.

쉰들러는 레코드라는 이름의 파산한 회사를 슈테른을 통해 인수한 후 유태인 자산가들에게 지분을 나누어 주겠따며 투자를 권한다. 어짜피 모든 재산을 빼앗길 것이 자명한 이치였으므로 유태인들은 쉰들러의 '말'이 지켜지길 기대하며 그에게 돈을 건낸다. 

회사를 인수한 쉰들러는 좋은 술과 담배, 소시지, 갖가지 과일과 통조림 등 블랙 마켓에서 사들인 물건으로 두루 환심을 사고 회사를 법랑 공장으로 변모시킨다. 군부에 줄이 있었고, 특히 군부에 같은 성을 쓰는 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종종 쉰들러가 장군의 인척이라는 고마운 착각의 혜택도 누린 덕에 쉰들러는 군부에 식기를 독점 공급하는 계약을 따낸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유태인에 대한 처우가 점점 나빠지더니 공공연한 학살이 자행되기 시작한다. 쉰들러 공장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은 유태인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 살도록 강제되었는데, 나치 친위대들은 수시로 유태인 지구에 들어가 병든 노인과 어린아이를 사살했다. 그들이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쉰들러는 그들이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숙련노동자이며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런 기술이 없는 자들에게도 카드를 발급해 주었다. 쉰들러의 법랑 공장에 일하러 오는 유태인들은 공장에 와서야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수용소장으로 아몬 괴트가 임명된다. 그는 국가사회주의를 맹신했고, 유태인은 지구상에서 멸종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자였다. 그는 수용소 내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저격 총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유태인을 쏴 죽였다. 쉰들러는 그의 광기를 조절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뇌물을 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의 진정한 사용이 어떠해야 하는지 대해 반복적 주입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일시적인 효과만 발휘했을 뿐이다.

쉰들러는 유태인들을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한다. 바로 공장 내에 자신만의 수용소를 짓는 일이었다. 아몬 괴트에게 오랫동안 공을 들인 끝에 쉰들러는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어 낸다. 쉰들러 공장의 유태인들은 2천 칼로리 이상의 식사를 했고 담배를 피웠다. 친위대원들은 쉰들러의 허가 없이 공장에 들어올 수 없었다. 유태인들은 쉰들러의 공장으로 가는 것이 곧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 들자 유태인들을 대량으로 아우슈비츠에 이송시켜 독가스로 살해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법랑 공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쉰들러는 자신이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들여 고향에 포탄 공장을 짓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숙련 노동자들의 충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장에 데려갈 유태인 명단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쉰들러 리스트' 이다. 리스트의 작성 과정에서 끊임 없이 수정과 변경이 이루어진다. 이송 중 착오로 여자들이 아우슈비츠행 기차를 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쉰들러의 노력으로 유태인 1천명 이상이 포탄 공장에 안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포탄과 탄피들은 모조리 검사에서 불합격 된다. 쉰들러는 그런 상황을 유쾌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포탄들이 합격한다는 것은 곧 살상 무기로 사용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 이상을 쉰들러 공장은 쓸모 있는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했다. 검사에 계속 탈락할 경우 가해질 조치들에 대비해 다른 공장에서 반제품을 사다가 검사를 맡는다.

처칠의 음성으로 전쟁이 종료되었음이 라디오를 통해 선포되자 쉰들러는 공장 노동자와 친위대원들을 모아 놓고 긴 연설을 마친 후 도피길에 오른다. 떠나기 전 유태인 노동자들 중 한명이 자신의 금이빨을 뽑아 녹여 만든 반지를 선물한다. 그 반지에는 히브리어로 '한 사람을 구함은 세계를 구함이로다'라는 탈무드 경구가 세겨져 있었다. 그리고, 쉰들러가 잡혀 전범 취급 당할 것을 우려하여 그를 두둔하는 편지를 쥐어준다.

 

작가가 1980년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의 한 가방 가게에서 우연히 '쉰들러 생존자'인 레오폴트 페페르베르크를 만나 오스카 쉰들러에 대해 듣고난 후 흥미를 느껴 각국에 흩어져 있는 50여명의 생존자들을 면담하고 쿠라쿠프 등을 답사한 후 르포르타쥬 형식으로 구성한 소설이다. 소설은 다양한 일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담고 있다. 소설적 상상력은 개연성 있는 선에서 억제되고 있다.

쉰들러는 나치 당원이었으나 적극 동조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가 사회주의적인 사상이나 그 밖의 특정한 정치적 신념을 훈련받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성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돈과 술, 그리고 여자를 좋아한 어찌 보면 속물적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태인들의 생존을 위해 네 번의 체포를 감수했고 끝내 자신의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구출한다.

쉰들러의 행동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가 이츠학 슈테른을 만나 나눈 대화에 있을 지도 모른다. '법에 의해 제가 유태인임을 밝히고자 한다'는 슈테른의 말에 쉰들러는 심상히 '나는 독일인이니 유태인과 독일인이 이제 대화를 나누고 있군요' 라고 답한 대화 말이다. 그는 상대편이 유태인이든 자신이 독일인이든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둘 다 인간이고 욕망하는 것은 누릴 권리가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쉰들러는 그 이외의 구분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동의하지 못했고 심상한 태도로 유태인들의 보호에 자신의 재산과 안위를 희생했다. 그는 유태인을 구조한 자신의 행위를 구태여 기록으로 남겨 과장한 적이 없다. 훈련된 정치적 신념이나 도덕적 당위에 메달린 행위가 아니었고 본능적인 행위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쉰들러는 전 후 아르헨티나로 가서 10년간 들쥐를 키우고 농사를 짓는다. 사업들은 모두 실패한다. 아내 에밀리와 헤어진 후 다른 여인을 만나는데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쉰들러의 생존자들은 그를 위해 모금을 벌였고, 그가 독일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애 쓴다. 1974년 10월 프랑크푸르트 철도 역 근처 자신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쉰들러는 숨을 거둔다. 예루살렘은 쉰들러를 '정의로운 사람' 으로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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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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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는 남편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자살한 후 삶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남편은 미로를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맸고, 시댁 쪽에서는 미로를 비난했다. 미로가 바람이 났다는 소문도 돌았다.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남편과 미로는 언젠가부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심약한 남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온 미로는 홀로 삶을 추스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버지는 탐정 일을 하다 은퇴한 후 낙향했는데, 야쿠자 쪽 조사 일을 많이 했었다.

어느 날 밤 새벽, 전화가 울리다 끊기고 다음 날 친구 요코를 찾는 남자들이 들이닥친다. 나루세라는 남자는 요코의 남자친구로 중고 외제차를 판매하는 업자였고, 동행한 남자는 야쿠자쪽 똘마니였다. 그들은 요코에게 1억엔을 맡겼는데 그녀가 그 돈을 들고 종적을 감췄다고 했다. 사라진 1억엔의 출처가 수상쩍었던 까닭에 그들은 경찰에 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요코가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걸었던 전화번호의 임자가 미로였기 그녀를 의심하고 찾아온 것이다.

미로가 요코와 공모했다는 증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요코가 또 다시 전화를 걸어올지도 모른다며 미로의 삶에 틈입하여 뻔뻔한 감시를 계속했다. 미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요코를 찾는 일을 함께 하기 시작한다.

미로는 요코의 행적을 추적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요코는 논픽션 작가로 최근 페티쉬물로 작은 성공을 거뒀는데 그녀는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그럴싸한 작품으로 상을 타고 싶어했다. 그래서 머리를 염색하고 야한 옷을 입은 채 동독으로 날아갔는데, 동양인 창녀가 동독에서 겪게 되는 일들을 르뽀 형식으로 써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코는 그곳에서 우연히 신나치들이 연관된 보복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범인 일당 중에 동양인 여자가 끼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상은 요코의 취재 노트 등을 통해 알아낸 것이었는데, 미로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된 추적으로 요코의 어시스턴트 유카리가 도벽이 있어 요코의 집에 물건을 훔치러 들어 갔다가 1억엔이 든 가방을 발견하여 후지무라와 공모해 돈을 훔쳐냈다는 것이 밝혀진다. 하지만 미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익사한 것으로 보이는 요코의 사진이 페티쉬 그룹 사이에 돌았던 것이다.

 

요코가 우연히 목격한 동양인 여자의 정체와 나루세가 운영하는 중고차 판매업 사이의 관계를 파헤친 미로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아 탐정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 <얼굴에 흩날리는 비>는 미로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고,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다. 에드거 엘런 포 상의 최종 후보까지 올랐으나 아깝게도 수상은 하지 못했다. 1998년 <아웃>으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1999년 <부드러운 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다. 

<얼굴에 흩날리는 비>는 시종일관 음산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미로의 남편은 동남아시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고, 페티쉬 그룹들의 그로테스크한 행위들이 묘사되고 있으며 시체 애호가들은 익사체의 사진을 교환한다. 비가 끊임 없이 내리는 신주쿠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과 악이 교차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독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판단을 유보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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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비
아사다 지로 지음, 김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o 성야(聖夜)의 초상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하여 남편은 치사코에게 오모테산도에 나가 사진을 찍자고 한다. 남편의 유일한 취미라고는 카메라였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어느 순간 사업을 물려 받아 건실하게 성장시켰고, 치사코와 아이들에게도 충실했다. 하지만 치사코는 그런 남편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치사코는 더 이상 남편을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오노 준이치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편은 다른 사람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치사코의 말을 듣고도 괜찮다고 했다. 치사코는 남편과 만난 시점이 그 사람의 아이를 지운 직후라고도 털어 놓는다. 한결같이 자기만을 쳐다보는 바보같은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나쁜 여자인지 폭로하고 싶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상처받는 짐승처럼 낮게 신음하면서도 자신과 상의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건부로라도 자신을 사랑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말한다.

 

근엄 강직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치사코는 이십 년 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오노 준이치로를 만났다. 둘은 서로 사랑했고 함께 살았다. 돈이나 미래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덜컥 아이가 생겼다.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며 파리에 쫓아와 오노 준이치로를 다그쳤다.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 따져 묻는 아버지의 서슬에 오노 준이치로는 변변한 대답도 못하고 우물거렸고, 이에 실망한 아버지는 헤어지라고 명령한다. 다음 날 히사코는 오노 준이치로가 늘 이젤을 세워두던 자리에 그를 만나러 갔지만 그는 없었고, 그의 친구가 히사코의 초상화를 전해주며 준이치로의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돌아 온 히사코는 아이를 지우고 함부로 살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한다. 하지만 그 후로도 히사코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오노 준이치로가 남아 있었다.

 

히사코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남편은 아내에게 초상화를 하나 새로 그리라고 말한다. 히사코는 노변에 이젤을 세워둔 화가들을 가늠해보다가 한 사람을 지목하여 초상화를 부탁한다. 화가는 히사코를 몇 번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나름대로 그림을 그려 나간다. 잠시 후 남편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돌아온다.

화가가 건낸 그림 속에는 이십대의 히사코가 그려져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날, 성야(聖夜). 남편은 화가에게 자신의 아내 히사코와 저녁을 함께 먹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화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지난 이십 년 동안 늘 그녀와 밤마다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한다. 이천엔을 건내며 히사코가 말했다. "메르시 보쿠, 무슈" 고마워요, "즈 부 장 프리, 마담" 천만에요.

준이치로가 "아듀, 사요나라" 라고 말하고 떠나자 히사코는 이제야 오노 준이치로와의 이야기가 끝났다고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 남편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o 달빛 방울

 

콤비나트에서 짐꾼으로 하는 마흔 셋의 다츠오는 게딱지 같은 집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오래 앓아 병치레를 하느라 돈을 모으지 못했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빚을 갚고 나니 묘자리를 살 수가 없었다. 성실하게 일을 했지만 요령이 없어 여자를 꼬시지 못했고 그날 그날을 살아갈 뿐이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남자와 여자가 다투는 것을 목격한다. 벤츠에서 내린 둘이 잠시 티격태격하더니 앗 하는 사이에 남자가 여자의 따귀를 때렸고, 남자는 열린 창문으로 돈 뭉치를 집어던지며 떠나버린다. 여자는 다츠오가 보기에 너무나 미인이었다. 돈이 차도에 휘날리자 다츠오는 돈을 집어들어 모은 후에 아가씨에게 건낸다. 여자는 필요 없다며 가지라고 말하지만 다츠오는 그럴 수 없다며 사양한다. 여자가 무언가를 밟아 다리를 다쳤고 택시도 다니지 않는 길이었기 때문에 다츠오는 여자를 집으로 데려간다.

다음 날 다츠오는 동료들에게 여자 이야기를 한다. 동료들은 여자를 어떻게 했는지만 궁금해했으므로 다츠오는 그녀와 나눈 정사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동료들을 재미있게 해주기 위한 거짓말이었을 뿐, 다츠오는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재워주었을 뿐 몸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한편 리에는 다음 날 일어나 게딱지 같은 집을 신기해하며 둘러본다. 남자 혼자 사는 방은 온통 어질러져 있었다. 리에는 부자인 남자를 꼬드겨 결국 이혼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남자가 이혼한 후에는 실증이 나고 말았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드는 남자의 습성도 싫었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말했더니 남자가 불같이 화를 내며 따귀를 때리고 돈을 집어 던지며 머리가 식으면 다시 찾아오라고 말한 것이었다. 딱히 갈 곳도 없던 리에는 방을 치우고 꽃도 꺾어다 꽂아 놓는다.

술을 먹도 들어온 다츠오는 집에 불이 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리에는 집을 깨끗히 치워 놓고 다츠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리에는 다츠오에게 남자와의 일들을 언뜻 언뜻 들려준다. 그리고 지금 자기 뱃속에는 아이가 들어있고, 그 아이를 지우러 병원에 갈 때 다츠오가 보호자로 같이 가서 사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날 밤 리에는 다츠오에게 안아달라고 말하지만 다츠오는 그럴 수는 없다며 리에를 껴안기만 하고 잔다. 리에는 따뜻함을 느낀다.

다음 날 다츠오는 가불을 해서 백화점에 간다. 그 남자가 사주었다는 리에의 시계와 같은 걸 사주면 리에와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계는 다츠오가 가불해간 돈으로도 턱없이 모자랐다. 겨우 싸구려 시계를 사가지고 돌아온 다츠오는 리에에게 아이를 낳아달라고 말한다. 리에가 불같이 화를 내며 모욕적인 말을 내뱉고 시계를 내던진다. 다츠오가 일어나 어머니의 유골 상자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간다. 어머니와 바다를 보러 간다고 말했다. 한참을 울던 리에가 일어나 남자의 뒤를 따른다.

 

o 류리(琉璃)에 대한 추억

 

자수성가한 구레바야시가 사보의 화보에 '귀향'이라는 기획을 제안한다. 고향 북경을 찾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는 그 자신도 잘 몰랐다. 구레바야시와 함께 동행한 카메라맨 니시오카는 전쟁터를 누비며 사진을 찍어온 베테랑 사진작가였다.

원래는 비서 미즈노 야스코도 함께 동행하기로 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 직전 미즈노가 더 이상 구레바야시와의 관계를 계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내가 있는 구레바야시를 계속 사랑하는 것이 괴롭다면서 니시오카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니시오카와 미즈노는 둘 다 불행하게 자랐고, 그런 공통 분모가 둘을 친근하게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그런 이유로 니시오카만 데리고 여행을 온 것이다.

북경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었는데 고향 부근에서 노인 한 명이 구레바야시를 보고 홍따런이라고 했다. 구레바야시(紅林)는 중국말로 홍린이고, 홍따런은 紅大人 이었다. 하지만 구레바야시는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또 다른 노인이 구레바야시를 보고 홍따런이라 외치며 중국말을 했다. 잘 돌아왔다는 말이었다. 구레바야시는 자신이 중국말을 알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나오면서 꼭 쥐고 나온 총탄 하나와 여동생 류리코에 대한 기억이 하나 하나 돌아오기 시작한다.

노인은 아마도 구레바야시를 그의 아버지와 착각한 것 같았다. 구레바야시는 샤오홍(小紅)이라 불렸다. 상인으로 기억하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조금씩 떠올랐다. 아버지는 상인이 아니라 군인이었던 것 같다. 전쟁이 나자 아버지는 말을 타고 구레바야시 앞에 나타나 전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좋냐는 구레바야시에게 아버지는 너도 남자니까 그런 것은 스스로 정하라며 총알을 하나 빗속에서 던진다. 동생 류리코를 업고 일본으로 향한다. 중도에 동생이 죽었지만 구레바야시는 동생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거라고 생각했다. 팔로군 병사가 구레바야시에게 다가와 죽은 사람은 잊어버리라며 만두를 먹고 살아남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야기 한다. "왕러, 왕러, 왕이치에러. 왕더이콩얼진" 전부 잊어버려라, 전부, 전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구레바야시는 살기 위해 중국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려 했고, 실제로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그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해 낸다.

구레바야시는 니시오카에게 미즈노와의 일을 이야기하며 사과한다. 니시오카는 구레바야시가 미즈노를 사랑했었는지 묻는다. 사랑했었다고 구레바야시가 대답하자 그걸로 됐다고 말한다.

 

o 은빛 비

 

신문보급소에서 일하다가 수금한 돈이 틀리자 가즈야는 보급소를 뛰쳐 나온다. 아무도 가즈야가 횡령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또 틀리면 곤란하니까 잔소리를 한 정도였다. 하지만 가즈야는 자격지심에 뛰쳐나오고 만 것이다. 무작정 도쿄로 올라가려고 역에 갔다가 기쿠에를 만난다. 기쿠에는 엄마가 물장사를 하던 때에 알게 된 여급이었는데 가즈에보다 두어 살 위였다. 그날부터 기쿠에의 집에 들어간 가즈야는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기쿠에는 가즈야를 학교에 계속 다니게하고 싶었지만 기쿠에도 방법은 잘 몰랐다. 그래서 낮에는 학교에 나가게 하고 밤에는 야쿠자들이 운영하는 도박장에 심부름꾼으로 일하게 주선해주었다.

어느 날 마사 형님이 낯선 사내를 데려온다. 그 사내의 이름은 이와이, 야쿠자들끼리 전쟁이 일어나자 사람을 몇이나 죽였다고 했다. 그런데 경찰이 개입하여 전쟁이 끝나자 도주길에 오른 것이다. 마사 형님은 이와이에게 굽신굽신하며 기쿠에를 계집으로 삼아 그녀의 집에서 편히 지내라고 했다. 그리고 가즈야를 심부름꾼으로 쓰도록 권한다.

가즈야는 이와이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이와이를 끝까지 도피시켜줄 목적이었다면 자신과 같은 똘마니를 시중꾼으로 배치시켰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와이와 외출하던 날, 그가 싸구려 지포 라이터를 산다. 까르띠에 라이터는 자신과 같은 촌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가즈야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기쿠에를 안고 난 후에 가즈야가 기쿠에의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그후로 이와이는 기쿠에의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며칠 후 마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곧 경찰이 들이닥칠테니 기쿠에와 조용히 집밖으로 나가라는 전갈이었다. 가즈야는 이와이에게 피신하라고 말하지만 이와이는 조용히 권총을 집어들어 자살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한 알 뿐인 총알은 기쿠에가 빼두었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경찰 앞에서 가즈야와 기쿠에를 위해 하지 않은 일도 모두 했다고 시인한 이와이가 면회 가겠다는 가즈야에게 그저 재수없는 비를 맞았을 뿐이라 생각하라고 말한다.

가즈야는 신문 보급소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기쿠에에게 가끔 찾아가도 좋냐고 묻는다. 기쿠에 역시 재수없는 비를 맞았다고 생각해 달라고 말한다. 가즈야는 전보다 기쿠짱이 더 좋아졌다고 말하려 했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않는다.

 

o 꽃과 밤

 

유부남과 오년 째 연애하고 있는 사와무라 마치코는 생일 날 남자가 아이가 열이 난다며 약속을 취소하자 비참한 심경이 되어 술을 마시고 전철을 탄다. 전철에서 흐느끼던 끝에 잠이 든 마치코는 내려야 할 역을 훨씬 지나 야마나시까지 가고 만다. 막차는 끊겼고, 택시는 다니지 않았다.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다카기 요시오, 별볼일 없는 영업사원이었지만 유미라는 이름의 사내 톱 디자이너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유미가 부장과 불륜 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는데 다카기와의 관계를 알고 질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출세에 지장이 생길 것 같으니 이만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말하며 떠난다. 

둘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가 부끄러웠기 때문에 애인이 있는 척 하거나 결혼한 여자인 척 했다. 마침 여관이 보였다. 둘은 방을 하나만 잡는다. 창을 열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상처 입은 두 사람은 상대방이 거짓말로 상처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에 취해 사랑에 빠질 것 같다는 예감을 느낀다.

 

o 후쿠짱의 잭나이프

 

후쿠모토 유키오가 본래 이름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후쿠짱이라 불렀다. 후쿠짱은 영화배우 유지로를 좋아해서 그를 흉내내며 남자답게 살고자 했다. 어느 날인가는 잭나이프를 사기도 했다.

후쿠짱은 아르헨티나로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거기 가서 출세하겠다고 했다. 여자친구 스미코와는 헤어지리라 했다. 기다리게 만들거나 데리고 가는 건 유지로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하지만 후쿠짱이 이민자 사기에 걸려 돈을 모두 날리고 스미코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자 스미코는 후쿠짱이 아르헨티나로 갈 수 있도록 몸을 팔아 돈을 번다. 사람들은 후쿠짱이 후안무치하다고 욕했다.

후쿠짱이 떠나던 날 전송나온 스미코가 신파조의 약솔을 큰소리로 외친다. 배가 떠나기 직전 후쿠짱은 배에서 내리고 스미코에게 돌아가자고 말한다.

 

o 피에타

 

도모코의 엄마는 여섯살 때 도모코를 버리고 떠나면서 착한 아이가 되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고 도모코는 자신이 착한 일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모코는 이를 악물고 착하게 살아가려고 애를 썼다.

이제 잘나가는 잡지의 부편집장이 된 도모코가 이탈리아에 엄마를 만나러 간다. 함께 간 미스터 리는 빈상의 중국인으로 자그마한 가게를 꾸려가고 있었다. 미스터 리 이전에 멋진 남자와 사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프로포즈하자 도모코는 도망치고 말았다. 행복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에 행복해지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런 모습을 엄마가 알게 되어 가슴 아파하길 바랬다. 그래서 미스터 리에게 결혼하자고 했고, 엄마와 재회하는 자리에 데려간 것이다.

엄마는 이탈리아에서 바람둥이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가 죽어버렸고 남편도 떠나갔다고 했다. 그날 밤 도모코는 몸이 좋지 않았고 다음 날 깨어보니 미스터 리가 도모코가 감기에 들까 걱정되어 옷을 벗겨 침대에 뉘어 놓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스터 리는 도모코가 속옷만 입고 있는 것을 가급적 보지 않으려 했다며 우물 우물 말한다. 도모코는 미스터 리가 바보같다고 생각했고, 혹시 여자를 안을 수 없는 병이라도 있는 것 아니냐며 그를 상처주려 했다. 미스터 리는 도모코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좋지만 진심을 알아달라고 호소한다.

다음 날 다시 엄마를 찾아간 도모코는 엄마가 자기에게 보낸 한다발의 편지 묶음을 보게된다. 어쨌든 착하게 살아가려 노력한 결과 엄마 없이도 훌륭하게 성장한 자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하면서 엄마를 용서한다. 그리고 미스터 리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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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에는 체육행사가 있었는데 비가 내렸다. 작년에 포천에 갔을 때에도 비가 내렸고, 그 전해에도 그랬다고 하니 체육행사가 열릴 때마다 비님이 내리고 있는 셈이다.

가을비 치고는 꽤 거세게 쏟아졌는데 마니산 입구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은 나 뿐이었고, 단풍으로 물든 산자락을 차안에서 호젓이 쳐다보며 책을 읽었다. 왠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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