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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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Jimi Hendrix Live At Woodstock> 비디오 클립을 우연히 보았는데 그 연상작용 때문이었는지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주말 동안 읽게 되었다. 언젠가 <카스테라>가 지미 헨드릭스의 앨범 <Are You Experienced?> 와 같은 열 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써놓은 것을 봤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기에 수록된 대부분의 단편이 연극배우나 기타리스트, 소설가 등 지인에게 헌정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밝히고 있다. 

 

박민규의 소설을 읽을 때면 언제나 자연스럽게 고개를 드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번째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우리나라 젊은 소설가들에게 미친 영향력과 모방에 대해서 동종 업계 종사자들이 왜 함구하는가 이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 역시 독창적이라기보다는 그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레이먼드 챈들러에게서 빌어온 것이니 비단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은 없다' 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할 말은 없다.

어쨌거나 박민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노골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의 소설들이 작품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외수(그가 소설가로 자처할 수 있는 시효는 몇십년 전에 끝났거나 애초에 없었다고 생각하지만)나 김영하는 박민규의 독창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두번째 의문은 박민규는 68년생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들에서는 73~75년생 정도의 문화적 코드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전략적인 것인지, 아니면 특수한 사정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지만 흥미로운 부분이다.

 

수록된 열 개의 단편은 모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하루키 소설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자체가 모호한 반면, 박민규는 언제나 현실로 되돌아오기 위한 환상을 그린다는 점이다. 그의 환상은 현실에 대한 오마쥬로서의 환상이다.

박민규 소설에 나오는 젊은이들은 어떤 '전형'은 될지언정 '전망'을 그리는 인물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점 덕분에 박민규 소설에 우호적인 독자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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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시스터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5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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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말로의 사무실에 오파메위 퀘스트라는 아가씨가 찾아와 오빠 오린 퀘스트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촌스러웠고, 돈이 별로 없었으며, 청교도적인 도덕에 얽매인 아가씨였다. 말로는 20달러에 그녀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오린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아파트에 도착한 말로는 그곳이 마약 거래와 관련된 장소임을 알게 된다. 돈을 세고 있던 똘마니를 쫓아낸 후 오린의 방에 올라가봤지만 그는 이미 어딘가로 사라진 뒤였다. 대신 엉뚱한 자가 오린의 방에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힉스였다. 적당히 겁을 준 후 내려와보니 관리인이 얼음송곳에 뒷목을 찔려 죽어 있었다.

얼마 후 말로의 사무실에 햄블턴 박사라고 자칭하는 자가 전화를 걸어온다. 그는 무언가 말로에게 맡길 것이 있다면서 100달러를 제시한다. 말로는 햄블턴 박사가 힉스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그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간다. 하지만 그 역시 시체로 발견된다.

현장에서 한 여성이 얼굴을 가린 채 빠져나가려다가 말로와 맞닥뜨린다. 그녀는 말로를 권총으로 위협한 후 사라진다. 말로는 그녀가 자신에게 총을 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범인은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온통 어질러진 현장을 보고 그들이 힉스에게서 무언가 찾으려 했음을 알고 힉스의 가발에서 사진 보관증 하나를 찾아낸다.

찾아온 사진에는 더 댄서스라는 식당에서 식당 주인 스틸그레이브와 유명 여배우 메이비스 웰드가 식사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말로는 스틸그레이브가 들고 있는 신문을 자세히 관찰한 후 그 사진이 스틸그레이브를 곤란에 처하게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얼마 전 범죄 조직의 두목 서니 모 스타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위피 모이어가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그는 경찰에 의해 체포당해 있었으므로 알리바이가 완벽했다. 위피 모이어가 스틸그레이브로 행세하는 것이 분명했는데, 그 사진에 찍인 신문 날짜는 공교롭게도 모 스타인이 살해당한 날이었다. 따라서 그 사진은 위피 모이어(=스틸그레이브)의 알리바이를 깨는 증거였던 것이다.

 

소설은 반전을 거듭한다. 오파메이 퀘스트의 가면이 벗겨지고, 메이비스 웰드가 오파메이의 언니라는 것이 밝혀지며, 돌로레스 곤잘레스가 행한 범죄가 드러난다. 그래서 소설을 끝까지 읽기 전에는 각각의 범죄를 행한 사람이 누군지 알기 어려운데, 끝까지 읽더라도 모호함은 남는다. 레이먼드 챈들러 식의 결말이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남긴 6권의 말로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작품인 <리틀 시스터>는 챈들러가 헐리우드에 뛰어든 이후에 쓴 작품이다. 영화 속 헐리우드는 비정하고 추악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말로는 노쇠하고 체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빅 슬립>에서 시종 일관 경쾌한 농담을 주고 받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리틀 시스터>는 <말로우(Marlowe)>라는 이름으로 1969년에 영화화 되었다. 폴 보가트가 감독이고 제임스 가너가 말로우 역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출연진에 이소룡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소룡은 이 작품에서 말로가 조사를 그만두도록 종용하는 깡패 역으로 나온다고 한다.

또 한가지 일화로 레이먼드 챈들러가 헐리우드에 뛰어들어 제일 처음 했던 작업이 제임스 M.케인의 <이중배상> 각본 작업이었다고 한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제임스 M.케인을 매우 노골적으로 싫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인이 만지는 것은 하나같이 숫산양처럼 냄새가 아주 지독합니다. 그는 내가 싫어하는 작가의 모든 점을 갖추고 있지요. 얼렁뚱땅 넘어가버리는 순진성, 기름 냄새 나는 작업복을 입은 플루트 연주자......그런 인간은 한마디로 문학의 비곗덩어리입니다. 더러운 것을 쓰기 때문이 아니라, 더러운 것을 아주 더럽게 쓰기 때문이죠'

 

이와 같은 지독한 험담을 했으나 막상 돈을 위해 헐리우드에 뛰어든 뒤에는 그의 작품을 각본화 했고, 좋은 평을 얻는다. 제임스 M.케인 역시 만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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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를 보는 남자
임영태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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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아내와 헤어진 후 비디오 대여점을 차려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니지만, '충일함' 이 있는 삶을 사는 남자이다.

비디오 가게는 안산 초입에 간판도 없이 덩그러니 있었지만 경쟁 업체가 없어 그럭저럭 밥벌이는 되었다. 비디오 가게에는 사흘 돌이로 한번씩 '소주 사먹게 삼백원만' 달라는 거지가 출근했고, 때로는 일탈을 꿈꾸며 '문화 비디오'를 틀어 달라며 유혹하는 아줌마도 출입한다. 비디오 테이프를 죽자고 반납하지 않던 카페 여종업원은 술값으로 비디오 테이프를 변상하려 하는가 하면 한밤중에 깡패들로부터 도망쳐오는 대학생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날 비디오 반납기에 비디오테이프 대신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남자를 향한 연서였다. 연서는 어느 순간 남자의 참여를 종용했다. 편지를 읽은 것이 틀림 없다면 파란색 종이를 문에 붙여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남자는 편지가 끊기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파란색 종이를 붙인다. 

다음 번 편지에는 무선호출기번호와 이름만 적혀 있었다. 호출기 번호로 연락을 할 마음까지는 없었던 남자가 어느날인가 혼자 술을 마시다가 노래방에 간다.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다 울컥한 마음이 든 남자가 호출기로 연락을 하고 여자와 안양에서 만나게 된다. 여자는 단아함이 베어 있었는데 단아함이 절제에서 비롯된다고 할 때 그 여자가 절제해 온 것은 삶의 일탈에 대한 절제와 고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운명과 같은 일탈을 꿈꾼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운명을 느꼈다고 생각했기에 편지를 보냈을 터였다. 그날 밤 남자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여자는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

그날 헤어질 때 남자는 여자가 다시는 자신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 느낀다. 이유가 무얼까 고민하던 중 남자는 자신의 삶에 '충일함' 이 있기 때문에 일탈이나 모험이 요구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자가 원하는 '운명'과 자신의 '충일함'은 함께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며칠 후 갑작스러운 치기에 남자는 여자의 호출기에 가게 번호를 남긴다. 잠시 후 걸려온 전화는 '가게 문이 아직 열렸는지' 묻는 손님의 전화였다. 얼마간 기다리던 남자는 가게 셔터문을 닫는다. 가게 안에서 다시 전화가 울린다. 남자는 보나마나 '가게 문이 열려있는지 묻는' 전화일 것이라 애써 생각한다.

 

임영태의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를 읽으면서 포복절도했던 기억이 난다. 군 제대 후 이렇다할 직장도 없는 세 명의 반건달 이야기였는데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잠깐 얹혀 살았던 자취방의 풍경이었다. 그 자취방에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세 명의 반건달들이 어엿한 성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청소년은 더더욱 아닌 상태로 삶을 희롱하고 있었다. 그 세명의 반건달들이 살던 자취방에 나는 대학 입학 전까지 한달을 얹혀 살았다. 큰형과 큰형의 친구들이었다.

<비디오를 보는 남자>를 읽으면서도 나는 크게 웃었다. 꼭 그 대목에서 웃으라고 작가가 써놓은 글이 아니었는데 그냥 포복절도했다. 삼류 주간지 기사가 온통 말초적이고 적나라한 내용인데도 끝에 가서는 꼭 한 마디는 일장 훈시를 붙여 놓았다는 대목이다. 이를테면 사촌 형제가 작당을 하고 지나가던 여자를 성폭행 했다는 기사 끝에,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살기 힘들지라도 지킬 것은 지키고 옳지 않은 일은 서로 충고해 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마무리가 된다는 식인데, 주간지 기사가 죄다 그런식이라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해야 하지 않을까?'로 끝난다. 남자가 '너나 잘 해라!' 하는 대목에서 나는 뭐가 웃기냐고 물어보면 딱히 답변할 말이 없는데도 혼자 박장 대소를 했다. 임영태의 소설은 그런 대목이 있다. 뭔가 나를 웃기게 만드는.

고열은 가라앉았는데 목은 여전히 부어 올라 잠이 오질 않는다. 회사에 나가야 하는데 소견서에 떡 하니 '5일 이상의 격리 유지' 라고 쓰여 있어 부쩌지를 못하겠다. 한 이틀만 지내보고 증상이 가라 앉으면 마스크 쓰고 가서 견뎌 보는 수밖에.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7548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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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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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재능을 지닌 어린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기대 속에 주시험을 치른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2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한 한스는 그곳 생활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한스는 유약한 성격 때문에 신학교 생활이 주는 압박을 잘 견뎌내지 못했고, 친구 하일너와의 우정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된다. 더 이상 모범 학생이 아니게 된 한스는 선생들에게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고 친구 하일너 마저 학교를 쫓겨나게 되자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

신경쇠약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한스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죽음을 생각하던 한스가 잠시나마 엠마라는 여성 덕분에 삶의 활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한스를 유희의 대상으로 여겼을 뿐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이 금새 드러난다.

한스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기계공이 되기 위해 견습공이 된다. 친구 아우구스트 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한 날 밤 한스는 물에 빠져 죽는다. 그가 자살한 건지, 아니면 실족하여 물에 빠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초기작으로 자전적인 소설이다. 헤세는 열 세살 난 해에 부모 곁을 떠나 라틴어 학교에 들어갔고, 이듬해에는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인 재질과 신학교의 인습에 얽매인 생활이 서로 맞지 않아 무단이탈을 하기도 하고 신경쇠약에 걸려 휴학을 하기도 하다가 결국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 후 고향에 돌아온 헤세는 견습공으로 일하며 나름대로 적응하려 하지만 우울증에 걸려 여러 해 동안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아주 어렸을 적에 계몽사 문고에 이 책이 있었다. <수레바퀴 밑> 이라는 이름의 축약본이었는데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던 한스가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적응을 못하고 돌아와 자살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제 목이 너무 심하게 부어서 병원에 갔더니 독감이라고 했다. 작년 이맘 때에도 독감에 걸려 <보호주의자들>을 읽었었는데...... 의사가 회사에 갖다 내라며 소견서를 써 주었는데 5일간 격리가 필요하다고 써 놓았다. 덕분에 미뤄둔 일이 쌓여 있는데 원치 않는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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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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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강의를 하며 근근히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20대 초반에는 시를 썼고 소설에서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한 번 바닥을 드러낸 문학적 감수성은 되살아나주지 않았다.

배롱나무가 있는 폐교에서 우연히 시우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나게 된 '나'는 그녀가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선 대처로 나가야 한다'는 어머니 말에 이끌려 험한 부두일을 하다가 알코올중독이 된 끝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꼭 대학엘 가야 겠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대학 보내기 위해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다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시우의 아버지는 그녀가 스무 번 째 생일을 맞는 날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 찾기에 흥미를 갖는다.

 

시우가 스무 번 째 생일을 맞는 날,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가 눈이 내리는 거리를 걸어 오다가 급히 되돌아 간다. 시우는 아버지가 생일선물을 깜빡했기에 가지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아버지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라지자 어머니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든 결정을 어머니 마음대로 하며 아버지를 압도해왔기에 그런 어머니의 변모는 세 딸들에게 의외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한달 후 죽고 만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시자 경제적 압박이 세 딸들을 찾아온다. 아버지는 회사 공금에 손을 댔다고 했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회사는 가진 돈보다 빚이 더 많은 허울뿐인 회사였다. 차압이 들어오고 지하 단칸방으로 밀려나자 큰언니가 남자친구와 미국으로 떠나겠다면서 두 동생과 의절을 선언한다. 둘째 언니와 시우 역시 아버지 친구인 전무에게 돈을 타쓰고 몸을 주는 과정에서 갈라선다. 가족은 조각조각 해체된다. 시우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일을 하는 한편 아버지를 찾으러 다닌다. 강경에서 아버지를 봤다는 말에 내려왔다가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친구 텁석부리가 특이한 사람을 소개해준다. '선기철소금'을 파는 사내였는데 김승민이라고 했다. 그는 한대수에 빠져 지냈다면서 노래를 곧 잘 했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듯 했다. 가족은 절름발이 아내, 곱사등이 딸과 실명해가는 막내 딸, 운신을 못하는 처남이 있었다. '나'는 그가 한대수에 빠져 지냈다는 시기가 김승민 나이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따로이 조사를 해본 결과 선명우의 아버지 이름이 선기철임을 알게 된다. 김승민은 선명우가 분명해보였다. 얼마 후 김승민, 아니 선명우가 '나'에게 모든 사정을 이야기해준다. 

 

선명우의 아버지는 염부였다. 큰형은 망나니였고, 작은형은 폐병을 앓았다. 아버지는 선명우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공부를 시켰다. 선명우가 성공하면 아버지와 큰 형, 작은 형 모두를 책임져야 할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아버지가 걱정 되어 100리 길을 걸어 집에 왔는데, 아버지는 살기가 번득이는 눈으로 선명우를 쫓아낸다.

그 날 왔던 길을 되집어가던 선명우는 노상에서 기진하여 쓰러지고 만다. 선명우를 구해 준 것은 중학교 3학년 되는 세희였다. 신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는 선명우에게 죽을 먹이고 재워준 그 날 밤에 공교롭게 세희의 할머니가 죽는다. 세희와 함께 할머니 임종을 지키고 상을 치룬 후 세희는 젓갈 공장을 하는 친척집에 맡겨진다. 둘은 종종 왕래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 여름, 젓갈 숙성실에 더위를 피해 들어 갔던 둘이 갖히고 만다. 숙성실 온도가 0도 내외였기에 세희가 자신의 동복 교복을 벗어 선명우에게 입힌다. 그날 본 세희의 늘어나고 헤어진 메리야스가 선명우의 뇌리에 각인된다.

한동안 세희와의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는 봉제 공장 일을 하고 있었다. 선명우는 그녀를 찾아가 단추를 달아주거나 실밥을 뜯어주는 일을 하면서도 기쁨을 느낀다. 따로이 데이트라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선명우를 쫓아다니던 혜란이 사단을 일으킨다. 갑부집 딸 혜란은 자신이 봉제일을 하는 여자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에 못견뎌했다. 선명우의 실수로 생긴 아이가 빌미가 되어 선명우는 혜란과 반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그후로 세희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대학 졸업식 날 아버지가 염전에서 쓰러져 돌아가신다. 아이러니하게도 소금밭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몸에서 염분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그후로 혜란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선명우는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 사우디에서 5년을 돈을 벌었고, 음료회사에서 소소한 부정을 저질러 가며 승진을 했다. 혜란과 딸들의 소비 규모는 점점 커져만 갔고, 선명우는 자신이 '통장'에 불과하고 혜란과 딸들이 자신의 몸에 '빨대'를 꽂고 있다고 느낀다.

시우가 스무번째 생일을 맡던 날, 생일선물을 깜빡하고 왔기에 되돌아가다가 선명우는 소금을 실은 트럭이 김승민을 덮치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는 잊고 지냈던 자신의 아버지 죽음을 떠올렸고, 김승민이 결국 운신을 못하게 되자 자신이 김승민으로 살아가게 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선명우는 자본주의적인 강압으로부터, 그 생산성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 이야기를 더듬더듬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희누나를 찾아간 이야기도.

세희누나는 이미 죽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 남은 혈육인 딸이 그에게 상자를 건낸다. 상자 속에서는 선명우가 세희누나에게 보냈던 편지들과, 선명우가 봉제 공장에서 단추를 달아주었던 바늘 등속이 들어 있었다. 세희누나의 딸은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고, 세희누나는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시우가 나에게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다. 나는 시우에게 결혼을 하고 싶지도, 아버지가 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시우는 아이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느 날 선명우의 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빈대떡을 굽고 하던 잔치가 벌어졌는데 파장 때 얼핏 시우의 모습이 '나'의 눈에 띈다. 시우는 언젠가부터 선명우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듯 싶었다. 그리고 나의 팔짱을 끼어오는 화해의 몸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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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는 세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시간적으로 가장 앞선 이는 선기철이다. 선명우의 아버지 선기철은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해 염전에서 일하다가, '염분이 부족해져' 죽고 만다.

다음으로 '나'의 아버지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아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라면 힘든 육체노동을 감내하라'는 어머니의 채근에 못 이겨 대처로 나갔다가 알콜 중독이 되어 언뜻하면 어머니를 패다가 결국 사고로 죽고 만다. 아버지는 '나'에게 '꼭 대학에 가야겠냐' 라고 묻는다. 그 말이 내내 '나'에게는 꼭 '아버지를 죽여서라도 네가 출세길을 가야겠니'로 들렸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선명우가 있다. 선명우 역시 앞선 두 아버지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길을 걷는다. 아버지라는 명칭이 주는 막연한 책임감을 곧 당위로 내면화시켜 소소한 부정도 저지르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김승민의 교통 사고가 일어나고 가족을 떠나게 된다. 특이한 점은 작가가 선명우를 끝내 되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빨대'와 '깔때기' 이야기를 하며 자본의 폭력적 구조가 가족 내에 어떻게 침투해있는지를 그려보인다. 자본의 폭력적인 힘은 '가족'이라는 당위의 영역을 파괴한지 오래이므로 새삼 선명우가 가족으로 돌아갈 여지는 없어 보인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75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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