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의 함정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9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지음, 지정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o 신데렐라의 함정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아가씨가 병상에서 깨어난다. 손과 얼굴에 화상을 입고 기억을 잃었지만 목숨은 건진 것이다. 의사들은 그녀의 집에서 화재가 일어났고, 함께 지내던 돔므니까 로이(도)라는 아가씨는 안타깝게도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미셸 이졸라(미)라고 했다. 보모 잔느 뮈르노가 미의 신병을 인수하러 병원으로 온다.

미는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보려 하지만 잔느 뮈르노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면서 꺼리는 태도를 보인다. 보모를 따돌리고 기억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미는 과거의 자신이 방탕하고 제멋대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보모와 언쟁 중에 묘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는 자신이 사실은 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는 억만장자 상드라 라페르미의 양녀였다. 그녀에게는 도라는 사촌이 있었는데 미의 처지를 부러워했다. 도는 상드라 라페르미에게 편지를 보내 아첨을 떠는 한편 미의 흠을 일러바쳤다. 만약 미가 죽는다면 모든 유산은 도의 것이 될지도 몰랐다.

그때 미의 보모 잔느 뮈르노가 도에게 접근해온다. 그녀 역시 미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도는 미와 외모가 흡사했으므로 미를 죽이고 도가 얼굴에 화상을 입은 후 미인척 행세한다면 사람들은 속아 넘어갈 것이었다.

이제 깨어난 아가씨는 자신이 미가 아닌 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프랑소와 샹스라는 청년이 접근한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가씨를 다시 혼란에 빠뜨린다. 그는 깨어난 아가씨가 미일 것이라고 말한다. 청년은 우체국에서 일했는데 우연히 도와 잔느 뮈르노의 계획을 엿듣게 되었고 이를 미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가 오히려 선수를 쳐서 도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깨어난 아가씨는 이제 자신이 도인지, 아니면 미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이자, 증인이었다. 또 피해자이자 범인이기도 했다. 유서가 공개되어 유산을 받을 사람이 미가 아닌 도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미가 도를 죽인 후 도 행세를 했을 가능성도 커진다.

 

o 살인급행 침대열차

 

마르세유 발 열차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화장품회사 외근 사원인 조르제뜨 또마라는 이름의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경찰은 같은 침대차에 탄 가로디, 까브르, 봉방, 리보라니, 달레스 등을 참고인으로 조사하려 하는데 참고인들도 차례로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조사 중 침대차에 사실은 한 명이 타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군가 그 자리에서 잤다고 증언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여자였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남자라고 증언했다. 그 자리에서 잤던 사람은 시의원의 아들 다니엘로 가출하여 기차에 몰래 탔던 것인데 다니엘이 살해 현장을 목격했었다. 범인은 누구인가?

 

나는 20살 처녀, 억만장자의 상속인입니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교묘하게 위장된 살인사건 입니다. 나는 그 사건의 탐정입니다. 또 증인입니다. 그리고 피해자입니다. 게다가 범인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네 사람 모두입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요?

 

부알로&나르스잭을 거느리고 있던 '크라임 클럽'에서 1962년 5월 <살인급행 침대열차 The 10:300 from Marseille>로 데뷔한 자프리조의 두번째 작품 <신데렐라의 함정 Trap for Cinderella>을 소개하는 이 선전문은 당시 미스터리 팬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했고,  책이 나온지 48시간 만에 영화판권의 권리가 팔렸다. 자프리조의 본명은 장 바띠스트 로시(Jean Baptiste Rossi)로 미스터리 소설을 쓰기 전에는 일반소설을 썼다.

함께 실린 <살인급행 침대열차>는 살인의 모티프 측면에서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 사건(1936년 발표)>의 아류작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62248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o 빵가게 재습격

 

어느 날 '나'와 아내는 참을 수 없는 공복감 때문에 깨어난다. 당시 '나'는 법률사무소에 다니고 있었고, 아내는 디자인스쿨에서 사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친구와 빵가게를 습격했던 이야기를 꺼낸다. 꼭 그 이야기를 해야 할 필연성 따윈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얘기가 나온 것이다.

10년도 전에 친구와 빵가게를 습격했을 때 빵가게 주인은 바그너의 <서곡집>을 틀어놓고 있었다. 가게 주인은 자신과 함께 레코드를 끝까지 들어준다면 가게 안의 빵을 마음껏 가져가도 좋다고 제의했고, '나'와 친구는 별다른 생각 없이 <탄호이저>와 <방황하는 네델란드인>의 서곡을 들은 후 빵을 가방에 쑤셔넣고 나왔다.

아내는 지금 느끼는 공복감은 분명 당시의 기묘한 상황에서 온 저주라고 하며 다시 한번 빵가게를 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은 24시간 운영하는 빵집을 열심히 찾지만 끝내 못 찾고 맥도날드를 습격하여 빅맥 서른 개를 강탈한 후 적당한 빌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말없이 먹어치운다. '나'는 꿈 속에서 보았던 해저 화산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음을 깨닫고, 보트 바닥에 누워 밀물이 적당한 곳으로 실어다 주기를 기다린다.

 

o 코끼리의 소멸

 

마을 교외에 있던 작은 동물원이 경영난을 이유로 폐쇄되자 마을에서 코끼리를 떠안는다. 함께 온 사육사는 와타나베 노보루라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노인이었는데 코끼리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별일 없이 1년쯤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날 코끼리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나'는 그 코끼리에 관해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신문기사를 빠짐 없이 스크랩하고 있었고, 때로 코끼리를 보러 뒷동산에 오르기도 했었다. 코끼리는 발자국도 남기지 않았고, 족쇄가 풀린 흔적도 없었기 때문에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옳았지만 모두들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고 열심히 코끼리를 수색했다. 코끼리는 끝내 발견되지 않는다.

 '나'는 코끼리가 소멸했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받아 들이고 있었고, 가전 제품을 파는 세일즈맨이 된 후에 이 이야기를 호감을 갖게 된 여자에게 들려준다.

 

o 패밀리 어페어

 

여동생과 그런대로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며 평화롭게 살아왔지만, 그녀에게 와타나베 노보루라는 이름의 남자 친구가 생기자 평화가 깨어진다. 여동생은 '나'의 시각이 편협하다고 비난했고, '나'는 여동생의 남자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동생이 남자친구를 소개시켜 주는 자리에서 '나'는 최소한의 할 도리만 한 후 여자를 만나 술을 먹고 관계를 맺는다.

어느 날 밤 늦게 집에 돌아가자 여동생이 와타나베 노보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나'는 '나쁜 사람 같진 않고 집 안에 한 명쯤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괜찮다'는 평이한 답을 내놓는다. 여동생은 오빠를 아주 좋아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오빠와 같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겠지'라는 답을 한 나는 주름 하나 없는 시트에 누워 너무 지쳤다는 생각과, 눈을 감으면 잠이 어두운 그물처럼 머리 위에서부터 소리 없이 내려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o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쌍둥이와 헤어진 지 반년 정도 지났을 즈음에 '나'는 그녀들의 모습을 우연히 사진 잡지에서 발견한다. 잡지를 깨끗이 잘라내 주머니에 넣은 후 사무실에 돌아오니 동업자 와타나베 노보루는 나가고 없었다. 어질러진 사무실을 기계적으로 치운 후 옆 치과에서 일하는 메이라는 아가씨와 잡담을 나눈 후 그녀에게 저녁이라도 함께 하지 않겠냐고 제의하지만 그녀는 선약이 있다고 했다. '나'는 처음본 여자와 잠자리를 한 후 꿈 이야기를 한다. 매번 꿈의 내용은 엇비슷했는데, 어떤 인부가 벽 앞에 또 다른 장식벽을 쌓고 벽과 벽 사이에 쌍둥이가 있다는 내용이다. 여자는 꿈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만은 참을성 있게 들어준다.

'나'는 결국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스스로를 동화시켜 가고, 아무리 선명한 꿈도 결국은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 소멸해 마침내 그런 꿈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떠올릴 수 없게 되리라 생각한다.

 

o 로마 제국의 붕괴, 1881년의 인디언 봉기, 히틀러의 폴란드 침입, 그리고 강풍세계

 

기상도에는 어디에도 태풍 표시 따윈 없어서 전성기 로마제국처럼 평화로워 보였지만 강풍이 불어온다. 2시 36분에 전화가 걸려 와서 '나'는 여자친구일 거라 생각하고 받았지만 전화기 속에서는 "휘이이이이이잉" 하는 바람 소리만이 1881년에 일어난 인디언의 봉기처럼 일제히 수화기 속에서 날뛰고 있었다. '나'는 어제 메릴 스트립의 <소피의 선택>을 보았는데 영화 속에서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입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어제의 일이라고 착각한다. 3시 48분에 또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엔 여자친구다. 여자친구는 굴 전골 재료와 눈가리개를 가지고 우리 집으로 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일기를 쓰기 위해 오늘 하루 일어난 일을 간단히 메모한다. ① 로마제국의 붕괴 ② 1881년의 인디언 봉기 ③ 히틀러의 폴란드 침입

 

o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스파게티를 삶고 있을 때 여자가 전화를 걸어 온다. 그 여자는 막무가내로 10분만 얘기하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이런 저런 핑계로 전화를 끊는다. 당시 '나'는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가 그만 둔 상태였고,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아내는 고양이 와타나베 노보루를 골목에 가서 찾아보라고 했었다. 다시 여자가 전화를 걸어온다. 여자는 '나'에 대해 잘 안다고 했고 음담패설을 늘어 놓았다. 전화를 끊은 후 골목을 탐험하던 나는 오토바이 사고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아 다리를 저는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고양이를 보았다고 말한다. 잠시 소녀와 잡담을 하던 나는 소녀의 권유로 낮잠을 잔다. 일어나보니 소녀는 없었고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나'에게 '당신이 고양이를 죽였다'는 억지를 쓰고, 나는 뭔가 항변하려다 그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만둔다. 와타나베 노보루와 태엽감는 새에 관해 생각하던 차에 전화가 울린다. 음담패설을 늘어 놓았던 그녀 같다. 아내도 나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읽는 내내 들국화의 노래 <오후만 있던 일요일> 가사가 떠올라 흥얼거렸다. 단조로운 피아노 선율과 전인권의 한숨 같은 목소리가 자꾸만 머리 속을 맴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 눈을 뜨고 하늘을 보니
짙은 회색 구름이 나를 부르고 있네
생각 없이 걷던 길옆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하얀 강아지 이유 없이 달아났네
나는 노란 풍선처럼 달아나고 싶었고
나는 작은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네
작은 빗방울들이 아이들의 흥을 깨고
모이 쪼던 비둘기들 날아가 버렸네
달아났던 강아지 끙끙대며 집을 찾고
스며들던 어둠이 내 앞에 다가왔네
나는 어둠속으로 들어가 한 없이 걸었고
나는 빗속으로 들어가 마냥 걷고 있었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예쁜 비가 왔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포근한 밤이 왔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59764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하오 미스터 빈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정규교육은 5년 밖에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글씨와 그림에 힘을 쓴 결과 어느 정도 예술가연 할 수 있게 된 샤오 빈의 직업은 정비공이다. 그와 아내 메이란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집이 너무 좁다는 것. 단칸방에서 두 살짜리 딸아이와 생활하며 예술적 성취까지 이루기에는 무리가 있는 넓이었다.

빈은 자신이 6년간 근속했으므로 새로 지은 아파트가 자신에게 배정되리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예상을 빗나간다. 겨우 3년간 일한 호우 니나에게는 아파트가 배정된 반면, 자신은 명단에 없었던 것이다. 당서기 리우와 공장장 동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른 결과 편파적인 배정이 이루어진 것이 분명했다. 빈은 당장에 지역 신문에 리우와 동의 부패를 고발하는 그림을 그려 그들을 압박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한다. 하지만 리우와 동 역시 만만치 않아 빈을 도리어 공장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인격장애로 몰아간다. 빈은 자신이 갈고 닦은 모든 예술적 기예를 총동원에 신문과 잡지에 투고와 고발을 시작하고, 그럴수록 리우와 동의 반격도 거세진다.

어떻게든 공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빈은 대학에 지원하고, 운 좋게 예술대학 입학원서가 날아오지만 리우와 동은 그마저 꼼수를 부려 무효로 돌리자 빈은 북경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사태는 일파만파가 되어 전국적으로 배포되는 잡지에 빈의 딱한 처지가 게재되고, 결국 인민공사의 당서기 양 첸의 중재로 빈은 인민공사 본부의 선전일을 맡게 된다.

 

1956년생 하진은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브랜다이스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2차례 오르기도 했다.

<니하오 미스터 빈>은 평이한 문장으로 빈의 악전고투를 그리고 있는데 소소한 사건들이 독자를 웃음 짓게 만드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여린 부분을 잘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우와 동은 빈을 박해하지만 그들의 부정이란 실상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사건에 견주어 보면 소박할 정도이고, 빈이 악의에 차 손자들에게 해꼬지 하겠다고 했을 때는 내심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등 여린 심성을 지닌 필부들이다. 양 첸 역시 결과적으로는 빈을 박해했지만 사실 관료적 속성 때문에 빈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했던 행동들이다. 그래서 소소한 사건들도 궁둥이를 빈이 깨물어 멍이 든다든가 하는 해학적인 양태를 띠고 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제 읽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와 <미스터 빈>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이고, 왕은철이 번역했다. 왕은철은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로 접하고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두 소설도 번역이 만족스럽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5721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우수한 성적으로 프린스턴을 졸업한 파키스탄인 찬게즈는 기업 재정을 평가하는 언더우드샘슨에 입사 지원서를 낸다. 사장 짐은 찬게즈의 능력을 높이 사 그를 채용하고, 찬게즈 역시 회사의 기대에 부응해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럴싸한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안정된 미래를 약속받은 찬게즈는 자신이 미국에서 꽤 잘해냈음을 인식하고 우쭐해진다.

한편 찬게즈는 미국인 여성 에리카에게 매혹되는데 에리카 역시 찬게즈의 이국적인 면모에 호감을 느낀다. 에리카는 첫사랑 크리스를 잊지 못해 한동안 불안한 생활을 했었는데, 찬게즈를 통해 그런 아픔을 치유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즈음 찬게즈가 필리핀의 기업을 평가하기 위해 출장을 떠난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평가 대상 기업은 언더우드샘슨의 칼질 아래 난도질되기 직전이었다. 그때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된다. 찬게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되는 뉴스를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통쾌함을 느낀다. 그것은 찬게즈에게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는 미국식 교육을 받고 미국이 약속한 안정된 미래를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붕괴를 보며 미국인들의 죽음을 슬퍼하기 전에 미국을 무릎 꿇린 사람들에게 환호를 보낸 것이다.

사건 이후 미국은 강력했던 과거로 되돌아가기 위한 구호로 넘쳐나기 시작한다. 찬게즈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공항 검색이 강화되고, 인종적인 위협도 늘어난다.

파키스탄의 이웃 나라인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폭격 아래 놓이고, 인도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지원을 받아 파키스탄을 침공하려는 듯 보였다. 찬게즈는 자신이 파키스탄인임을 자각하게 되고, 미국이 제공한 것들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부사장과 함께 칠레의 기업을 평가하러 간 찬게즈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고 네루다 시인의 집을 방문한 직후 사표를 던진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에리카를 찾아 갔지만 그녀는 자살한 뒤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되돌아 온 찬게즈는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대학 강사 자리를 얻은 후 자신이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찬게즈는 반미분자로 분류되어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소설은 찬게즈가 파키스탄을 방문한 미국인 관광객에게 자신의 과거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독자는 찬게즈가 단순한 호객꾼으로 관광객에게 차와 음식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떠벌이고 있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점차 그의 이야기가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게 된다.

이야기가 계속 됨에 따라 독자는 찬게즈가 미국인이 무엇 하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점차 긴장이 고조된다. 미국인의 양복 안주머니에 권총이 있을 수 있다는 암시 이후에 찬게즈가 반미인사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다시 미국인이 찬게즈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일 수 있다는 암시가 계속된다.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서 미국인이 권총을 꺼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가 권총을 꺼내 찬게즈를 암살하게 될지, 아니면 그들을 따르던 파키스탄인들이 역습을 가할지는 알 수 없다. 긴장은 끝내 해소되지 않는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은 에리카와 찬게즈의 연애담이다. 에리카는 America에서 취한 알레고리적 이름이고 찬게즈는 Chingiz Khan에서 따온 알레고리적 이름이다. 에리카는 찬게즈에게 호감을 갖지만 크리스라는 첫사랑을 잊지 못해 병을 얻는다. 에리카가 크리스를 잊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과거 경찰국가로 세계를 호령하던 시기를 끝내 잊지 못하는 것으로 읽힌다. 에리카는 끝내 찬게즈에게서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고 크리스로 화한 찬게즈에게 몸을 열 뿐이다. 반면 찬게즈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한 채 크리스의 가면을 빌려 쓰고 에리카의 몸에 들어간다. 따라서 둘 사이에 최초의 성적 결합이 있은 직후 헤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공상 속에서 맺어진 관계가 현실 속에서 이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리카가 정신적인 붕괴 속에 자살하는 것은 미국이 곧 그러하리라는 작가의 예견일지도 모른다. 에리카가 이미 죽어버린 크리스 때문에 현실의 자기 몸과 정신을 망치듯 미국도 팍스 아메리카나의 환상 속에서 국가 지반의 붕괴를 못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붕괴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팍스 아케리카나의 환상을 지속시킬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찬게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붕괴에 통쾌함을 느꼈다고 술회하는 자신을 불쾌하게 바라보는 미국인에게 묻는다. "당신도 미국의 무기가 적의 건축물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비디오클립을 보면 즐겁지 않나요?" 모신 하미드는 이 질문을 통해 미국적인 시각이 절대선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절대선인 것처럼 통용되는 것은 미국이 전세계를 집적이며 반대 시각을 가진 곳에 폭탄을 떨구어대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9.11.테러와 관련된 여러가지 음모설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사건으로 가장 이득을 얻은 사람은 부시와 보수우익들이다. 그들은 엄청난 부를 거머 쥐었고, 원하는 모든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그들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었지만 이에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덮어 씌우기 위해 눈을 빛내는 부시와 보수우익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이 진보진영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5697147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파 2015-05-1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면으로 맞설힘이 없어서 라기 보다는 비겁해서 용기가없어서 그랬죠. 모신 하미드는 무슨힘이 있어서 이런 얘기한게 아니잖아요. 힘이 없으면 말이라도 해야되는데 침묵했었죠. 그때는.. 테러는 안좋다는둥,미국도 너무한다는둥 분명하게 얘기하지않았고 대다수사람들의 판단에 명확한 일침을 놓아주지않았습니다.
 
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o 철도원

 

하루 세 번 기차가 서는 호로마이 역장 오토마츠는 45년을 철도원으로 근무했다. 이제 호로마이 역은 타산이 맞지 않아 오토마츠의 퇴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었다.

오토마츠와 오랜 세월 함께 일하다 이제는 비요로 중앙역장이 된 센지가 정월을 함께 보내기 위해 호로마이 역을 찾는다. 오랜 지기인 둘은 함께 술을 나눠 마신다.

오토마츠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었다. 십 칠년 전,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자신의 딸 유키코를 평소 하던 그대로 수신호를 하여 기차에 태워 보냈고 그날 밤 기차로 유키코가 싸늘한 몸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그날 아내는 죽은 아이까지 깃발을 흔들며 맞이해야 하냐며 울었다. 그리고 아내도 얼마 전 죽어 오토마츠는 쓸쓸해지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어린 아이들을 보면 오토마츠는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날 밤 어린 꼬마 여자 아이가 호로마이 역을 찾는다. 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한참을 놀다가 돌아갔다. 다음 날 그 꼬마 아이의 언니인 듯 싶은 여자아이가 놀러 온다. 오토마츠는 마을 주지의 손녀인가보다 하고 그 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 다음 날이 되자 놀러 왔던 아이들의 언니인 듯 싶은 여자 아이가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역을 찾는다. 그때서야 오토마츠는 자신의 딸 유키코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러 자신을 찾아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토마츠는 유키코에게 '네가 죽었을 때에도 플랫폼의 눈만 쓸고 있었고, 책상에서 여객일지에 아무 이상 없다고 쓰고 있었다'며 울먹인다. 유키코는 '아버지 직업이 철도원이니까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며 오토마츠를 위로한다. 둘은 저녁을 함께 먹는다. 다음 날, 호로마이 역 홈 끝의 눈더미에 손깃발을 꼭 쥔채 쓰러진 오토마츠가 발견된다.

그의 운구를 위해 오래된 기차가 동원되고, 기차의 운전대를 손에 쥔 지기 센지는 눈물이 나려 할 때마다 경적을 힘차게 울린다.

 

o 러브 레터

 

가부키 거리에서 이십 여년을 쓴맛 단맛 다 겪은 다카노 고로가 포르노 숍 전무직을 맡아 일한 죄과로 경찰에 잡혀 갔다가 풀려난 날, 뜻 밖의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그는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빚에 쫓긴 중국 여자들을 정식으로 일본에 입국시키기 위해 호적을 빌려주는 일에 오십만엔을 받고 동원 되었을 뿐, 그 여자와는 일면식도 없었던 것이다. 여자의 이름은 칸 파이란(康白蘭) 이라고 했다. 여자는 죽기 전 다카노 고로에게 서툰 일본어로 편지를 써 보냈고, 그 편지가 다카노 고로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편지에서 여자는 다카노 고로에게 몇 번이고 결혼해 주어 고맙다고 했고, 주변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했다. 그 서툰 일본어와 고맙다는 말이 다카노 고로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조직의 똘마니와 함께 치바의 치쿠라로 간 다카노 고로는 그곳에서 파이란의 시신을 대하고 오열한다. 그리고 또 한 통의 편지. 파이란은 야쿠자에 걸려 몸을 팔면서도 자신의 호적상의 남편인 다카노 고로를 생각하며 미안해 했고, 자신이 죽으면 고로의 묘에 합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고로를 사랑한다고 서투른 글씨로 말하며 몇 번이고 고로의 이름을 편지에 쓰고 있었다. 그리고 슬픈 인사, 짜이쩬(再見).

짜이쩬은 '다시 보자'는 의미지만 다시 볼 수 없는 파이란을 생각하며 다카노 고로는 오래 오래 울었다. 그리고 유골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한다.

 

<철도원>은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 다카쿠라 켄과 히로스에 료코 주연으로 영화화 되어 성공을 거두었고 <러브 레터>는 <파이란>이라는 제목으로 송해성 감독, 최민식과 장백지를 주연으로 국내에서 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둘 다 영화로는 접하지 못했다.

<러브 레터>는 무척 아름다운 작품이다. 애틋함은 언제나 이루어질 수 없음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루어질 수 없는 것 보다 더욱 애틋한 것은 '뒤늦게 알게 되는 것' 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의 애틋함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운명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인간은 울 수밖에 없다.

그 밖에 가정교사가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나 한 집안을 풍비박산하게 만들어 그를 비난하지만 막상 가정교사 말고 거대한 쥐가 집 안에 있었다는 괴기스러운 내용의 <악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자기를 살뜰히 거두어 돌보아준 아저씨 내외,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츠노하즈에서>, '캬라'라는 뷰티크샵을 운영하는 신비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세일즈맨의 시각으로 그려내는 <캬라>, 바람이 난 남편과 그런 남편을 두둔하는 시댁 식구들에게 한 마디 하기 위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찾아온다는 내용의 <백중맞이>, 구치소에서 알게 된 어리벙벙한 도금업자의 식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을 사가지고 가는 소매치기 이야기 <메리크리스마스, 산타>, 별거 중인 부부가 어릴 적 함께 가곤 했던 극장이 폐업하기 전 마지막 영화 상영을 하자 고향으로 내려 갔다가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오리온 좌에서 온 초대장> 등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48310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