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 우리가 알지 못한 유럽의 속살
원종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한 쪽만 볼 수는 없잖아?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 원종우>

 

 

 

 

 


 역사는 분명히 다른 측면에서 본 단면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 여러 매체로만 남겨진 우리의 과거를 이해하기에 한가지 시선으로 보는 것 만으로는 우리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유럽문화 계열을 공부해야하는 나로서는 새로운 역사에 대한 자료들이 굉장히 반갑다. 이렇게만 보던 것을 저렇게만 보게 되고, 오해했던 것을 새롭게 다시 고쳐 알게 되는 것이다.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는 그 제목 대로 어떠한 편견이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냉정하게 관찰한 과거의 역사들을 자신의 의견과 함께 담아내었다. 그리고 기존의 역사서와는 다르게 유럽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내면들에 의문을 품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를 들면 '히틀러의 로마 따라잡기', '현재도 이어지는 중세적 무지와 편견'처럼 시대에 따라 흐르는 역사적 사실 이외에도 새롭게 관찰할 수 있는 과거의 이야기들 또한 이야기 해준다.

 

 

 

 

 

 전 딴지일보 편집장이었던 이 책의 지은이 '파토' 원종우는 그러한 역사와 논리 이외에도 자신이 여러나라에서 겪어 왔던 현대 유럽에 대한 얘깃거리도 늘어놓았다. 우리나라의 발전된 면과 유럽 여러나라의 모습들을 비교하고 보다 바람직한 문명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하는지 생각할 동기를 준다. 한국과 유럽, 어느 문화가 더 낫다고 말하지 않는다. 분명 장점과 단점이 서로에게 존재한다. 저자는 이러한 장점과 단점을 서로 이해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방식은 온정적이고 따듯한 면은 있지만 그래서 낳는 병폐도 만만찮다. 지금가지 한국 사회의 모습이 증명하듯 자칫 사회 전체가 감정과 핑계, 무책임에 의해 끌려다니는 공정하고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일장일단이 있는 것인데 분명한 점은 그들이나 우리나 아직 가장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 111p)

 

 

삶의 여유는 단지 토요일에 쉬는 식의 기계적인 방법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이런 정책들은 사회 전체의 여유를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끌개에 불과하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여유가 사회 전체에 공유되는 것이다. 내가 시간적, 금전적인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허용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를 한 템포 늦추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늦춘 템포를 일이 돌아가는 속도의 기준으로 삼고 비용을 지불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일의 속도도 느려지고 돈도 더 내야 한다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사회 전체에서 공유된다면 손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34p

문명 차원에서 '발전' 이라는 말을 쓰려면 인간의 존재 양식이 총체적인 의미에서 향상되어야 한다. 전구의 발명은 기술을 통해 어둠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문명적 차원의 개가지만, 이어진 형광등의 발명은 기술적 발전의 의미는 있어도 같은 무게로 평가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 56p

 

낯선 것,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고 소화하지 못하는 문명은 저열하다. 서로 간에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대화와 양보로 조정하지 못하는 문명은 천박하다. 그러나 소화하지 못하거나 조정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총칼을 앞세워 상대를 파괴하려는 문명은 저열함과 천박함에 더해 잔인하고 위험하다. 이런 자들이 강력한 폭력의 권능을 가졌을 때 인류의 미래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 131p

 

슈퍼맨의 훌륭하고 영웅적인 활동을 정치적인 의미에서 한 단어로 규정한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독재'다. 의도 자체는 순수했을망정 임의로 세상을 자기 기준에 맞게 강제적으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며, 그 모든 것이 물리력이라는 바탕하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가 믿는 바와 만든 세상이 진정 옳은 것인지, 복잡한 인간심리 및 세계정치와 경제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그저 유사시에 언제나 폭력으로 변할 수 있는 무한완력이라는 힘을 가진 그가 만들어가는 세상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 329p

 

 

 

지난 학기 프랑스 혁명에 대해 정말 골치아팠던 시간을 보냈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에 대한 부분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유럽문명의 시발점인 로마 이야기와 외전으로 등장한 프리메이슨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특히나 소소한데 재밌게 보았던 부분은 이야기가 끝나고 난후 한 문장으로 들려주는 자잘하고 잡다한 지식들이 재미있었다. 공포스럽게만 보이던 단두대, 기요틴이 죽일 때 고통을 주지 않게 한 기구라니.... 또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중세시대, 마녀의 고발 사유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당시 마녀로 잡혀가는 이유는 얼토당토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큰소리로 웃는 사람, 많이 웃지않는 사람,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 몽유병, 낮잠자는 사람..... 현재가 중세시대였다면, 어휴 끔찍하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저자의 냉정한 태도를 가장 많이 엿볼 수 있었던 부분이 친일파에 대한 내용이었다. 제국주의에 대한 이야기 중이었는데, 작가에 의하면 친일파 중에는 실제로 기회주의자이자 파렴치한도 많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명분을 믿고 지지했던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특히나 유명한 '내선일체 : 일본과 조선은 하나다'에 대해 일부 고위 친일파들은 체제와 사고를 강요한 것으로 비판받는 이 사상에 대해 '조선인이 일본인과 똑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차별받는 현실을 두고 비판했다'고 한다. 조선인의 이익이라는 입장에서 내선일체를 준수하라고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본인의 독점욕에 대한 터무니 없는 명분이었고 친일파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아직도 치가 떨리지만 '내선일체'라는 사상에 대해 이렇게 느낄 수 있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다.(물론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ㅡㅡ)

 

문명은 그저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건설하는 것이다. 문명의 발전을 위해 빌딩을 건설하고 다리를 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명인으로 부끄럽지 않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노력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 150p

어쨌든 저자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을 스스로 빛나게 하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가꾸고 스스로의 생각을 제대로 자리 잡히게 해야 한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독도의 경우도 그렇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치면서도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어필할 수 있는 근거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현재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는 아직 너무나 작다. 발전된 것이라 여겼는데 아직 한국이란 나라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더불어 세계에서 차별받기를 원치 않는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보다 낮아보이는 사람들에게 차별을 하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성장해야 한다. 지금가지 역사는 인간으로 대변되어 왔다. 작가의 말처럼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우리 하나하나의 의식이 제대로 자랐을 때 우리 나라의 위상이 세계에서 더욱 큰 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좋은 역사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홈즈가 보낸 편지 -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윤해환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홈즈가 보낸 편지 - 윤해환> 2013년 시작과 함께 한국추리소설을!

 

 

 

 

 

 

 

 

 제목에서 보시다시피 이 소설은 셜록홈즈 '패스티쉬'소설 입니다. 패스티쉬라고 하니 뭔가 생소해서 찾아보았는데 원작과의 유사를 드러내면서 풍자나 해학이 들어가있지 않은 기법이라고 합니다. 만약 여기에다가 풍자가 들어간다면 패스티쉬가 아닌 '패러디'물이 된다고 하네요. 패스티쉬란 소재라서 그런지 작품 내에서 셜록홈즈에 나왔던 인물이 나오고 셜록홈즈의 대사들이 가끔 등장합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 홈즈 패스티쉬지만 주인공은 새로운 인물이라는 거! 실제 인물인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가 '김내성'입니다. <홈즈가 보낸 편지>는 이 '김내성'이란 작가를 주인공으로 그가 어떻게 추리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셜록홈즈 이야기와 연계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이 책은 이웃인 '특급변소'님이 쓰신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책으로 6회 디지털 작가상을 수상하셨다는.. 예전부터 홈즈가 보낸 편지에 대해 약간씩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주셔서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드디어 출간이 되어서 읽게 되었어요. 출간 직후 인터넷 서점에서 꽤 순위가 높아서 너무 궁금했는데 그동안 바빴던 터라 2013년의 첫 독서를 이 책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홈즈가 보낸 편지>는 2013년의 시작에 꼭 맞는 추리소설이었습니다.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소설들을 생각해보면 셜록홈즈 단편 몇편과 한국 추리단편, 한국작가의 장편소설한권, 일본 유명작가의 소설 몇권..ㅋㅋ 이렇게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아서 한국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뭐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추리소설 초보(?)가 단순히 재미에만 맞추어 평하자면 이 소설 정말 신선했답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요소를 갖고 있어서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의 배경(근현대사 무척 좋아한다는..)과 '김내성'이란 인물이 그 이유인데요. 예전에 봤었던 고전 배경의 추리소설 단편은 조금 실망한 감이 있었는데 <홈즈가 보낸 편지>는 새벽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와 계속해서 나오는 우리 고유의 소품들(ex. 방갓)이 나오면서도 셜록홈즈와 외국인 친구, 그 당시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추리소설 작가의 이야기가 위화감없이 잘 들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긴장감 넘치는 3.1운동 배경의 오프닝! 꼭 셜로키언(셜록홈즈의 열성팬들)이 아니더라도 흥미를 일으키기는 충분했습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서대문 형무소의 1081호 이야기. 이 부분 덕분에 더욱 긴장감 극대화!!

 

 

내성과 카트라이트는 조금 전 처음 만났다. 공통점이라고는 주근깨와 '엿=캔디'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셜록홈즈와 왓슨,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양인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 25p

나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관찰력, 글쎄. 추리력, 모르겠다. 지식, 없다. 그에 비해 카트라이트는 대단해. 어쩜 저리도 영특하지? 카트라이트가 부러웠다. 어떻게해야 그리될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카트라이트처럼, 아니 카트라이트가 존경하는 셜록 홈즈처럼 되고 싶어! - 56p

내성은 대동강 저 멀리 사라지는 동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저 이는 실존하는 인물일까, 혹시 이게 모두 꿈은 아닐가, 내일이 오긴 할까 고민하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89p

갑작스러운 호통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내성 자신조차 놀랐다. 자연스레 이야기하려 하였는데 감정이 조절되지 않았다. 사방에 가득한 박하향 때문이었을까, 생각과 달리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 183p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계획을 구상해야 했다. 소설이라면 트릭이 실패해도 괜찮다. 책이 안 팔리면 그만이다. 현실은 다르다. 치졸하다 비웃는 저들보다 못한 처지에 떨어지리라. 카트라이트가 이야기한 토막민처럼 몰락하리라. '도망쳐' 내성의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꿈틀거렸다. - 229p

과거의 사건도 현재의 고민도 미래의 정체도 모두 잊어버리고 그저 지금처럼 흐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박힌 오래전 기억이란 이름의 바늘이 따끔따끔 가슴을 건드리며 조바심을 낸다. 우동 한 줄기 또르르 말아 입속에 넣으며 기억을 달랜다 이제 곧이다. 곧 모든 것이 해결될 테니 지금을 즐겨라. 한 그릇의 우동을. - 266p

 

 

 

 

책의 특이한 점은 작가가 '모른다고 본문을 읽는 데 딱히 큰 문제는 없지만 안 읽으면 섭섭할 매우 편협하고 사적인 주석들'이라고 적어둔 맨 뒷편의 10장 정도의 푸짐한 주석인데요. 사실 이렇게 뒷부분에 따로 정리해둔 주석들은 잘 읽지 않게 되는데 작가가 안 읽으면 섭섭할 매우 편협하고 사적인 주석들이라고 써놓으니까 '아, 왠지 엄청 비밀스런 이야기가 있을것 같다. 안보면 후회할것 같다ㅋㅋㅋㅋ' 하고 꼬박꼬박 읽게 되더라구요. 근데 재밌는 정보들이 가득! 혹시나 귀찮다고 넘어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래도 '혹시나'하고 읽어보길 바라요. 아마 추리소설의 팬들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정보가 될 것이고, 저같이 추리소설과 많이는 친하지 않은 독자들은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듯 해요.

 

"You're the one! You're my Sherlock Holmes!"

널다리골 교회의 살인이야기 궁금하시졍?! (어머, 널다리골 교회 실제로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밤 0시 5분
황동규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나도 이런 '눈'을 갖고 싶다 <겨울밤 0시 5분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앞구절만 들어도 귀 안에 오래도록 맴돌았던 말인양 가깝게 들리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로 꼽을 정도로 애송되고 여기저기 쓰여지는 시이다. 그리고 <겨울밤 0시 5분>. 이 시집은 황동규 시인의 열 네번째 시집이다. '겨울밤 0시 5분'. 시리지만 따스한 이 시집에 있는 보물같은 시들은 그가 말했던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그런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별 하나가 스르르 환해지며 묻는다. '그대들은 뭘 기다리지? 안 올지 모르는 사람? 어둠이 없는 세상? 먼지 가라앉은 세상?

어둠 속에서 먼지 몸 얼렸다 녹이면서 빛 내뿜는 혜성의 삶도 살맛일 텐데.' <겨울밤 0시 5분>中

 


 

 

 

 

'세상에 헛발질해본 사람이면 알지. 저 소리, 밖으로 내놓지 않고 마냥 안으로 끌어만 당기는 저 음성 "이 저녁 견딜만 하신가?" <늦가을 저녁비>中

 

 

 

 

 

'몸과 주위가 온통 환해지는 순간을 두 눈 크게 열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림이 없으면 끄트머리도 없지요.

공기 속으로 채 풀어주지 못한 말이나 소리 같은 것 제멋대로 터지지 않게 목구멍 속 어디엔가 묻어두고 살다가 저절로 싱거워진 기쁨 같은 것도 새로 싹 틀까 않을까 걱정말고

몸속 어디엔가 심어두고. 화성이든 그 어디든 뇌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비칠 항로의 끄트머리를 기다리겠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갈 준비 돼 있다>中 (첫 여성 우주비행사 발렌티나가 꿈을 이야기한 한 마디)

 

 

 

잠깐!

삶이 잠깐 동안이라는 말이 위안을 준다.

잠깐이 몇 섬광(閃光)인가? <잠깐동안>中

 

 

 

 

줄기 하나가 휙 몸을 틀며 팔을 아프게 친다. 추억 조각 하나가 튕겨나와 반짝인다. 눈 감고 한없이 눈발에 몸 맡기고 누웠다 일어난 서해안 바닷가.

팔다리와 몸통에서 빠져나갔던 감각들이 하나씩 돌아오고 바다는 천천히 움직이는 한 덩이 빛 감춘 황홀한 색채였다...

다시 감았다가 풀어주며 몸 전부를 내어놓을까? 깨어지는 색유리의 반짝임과 찌름을 한 느낌으로 지닌 저 엉겼다 튕겨 나오는 추억 쪼가리들! <추억은 깨진 색유리 조각이니>中

 

나도 이런 '눈'을 갖고 싶다. 아무것도 아니어보일 사소한 추억 쪼가리들, 계절의 환희들, 그 대상들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다시한번 특별하게 재구성해볼 수 있는 눈.

황동규의 시들은 글감이 다양하다. 각각의 계절들 속에 파묻혀있는 소중한 글귀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인 홀로움(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을 그의 많은 시에서 드러내지만 시집을 읽은 나는 외롭지 않았다. 외로움을 통한 환희를 느껴버린 것일까? 겨울밤 0시 5분, 지나버린 혹은 새로운 시작.

 다가올 빛이나 어둠을 기다리는 지금, 2012년의 끝을 <겨울밤 0시 5분>과 함께해서 행복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쿠코츠키의 경우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7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이수연.이득재 옮김 / 들녘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쿠코츠키의 '특별한' 경우 <쿠코츠키의 경우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이 모든 것은 환상이자 기만이며, 곧 누군가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그녀에게 올 것이라고. 그 귀띔을 통해 엘레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의미야말로 삶 자체보다 더 절대적인 진실을 알게하는 열쇠라는 것을. -23p

 

러시아 여류작가의 작품입니다. 700페이지가 넘는 이 묵직한 책이 '박경리 문학상 수상'이라고 적힌 띠지를 단것을 보고 처음엔 갸우뚱했었습니다. 어라? 러시아 작간데 박경리 문학상?... 알고보니 2011년부터 매년 세계문학 발전에 탁월한 업적을 세운 국내외 작가 중 1명을 선정해 수상한다는 네이버님의 말씀. 아하, 그렇구나. 앞으로도 박경리 문학상의 인지도가 조금씩 더욱더 올라갔으면 좋겠네요. 여하튼 이 두꺼운 <쿠코츠키의 경우>는 이름부터가 특이합니다. 쿠코츠키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생소할 뿐만 아니라 '경우'라는 낱말이 제목에 오니 조금은 어감이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쿠코츠키의 경우>는 파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철저히 금욕적인 생활로 내면투시를 갖게된 산부인과 의사 파벨은 어느날 엘레나라는 환자의 자궁을 모두 들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홀리게 됩니다. 그녀에겐 이미 두살난 딸이 있었는데도요.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해온 가정부 바실리사, 그리고 시간이 지난후 만난 소녀 토마와 함께 가족을 이루게 됩니다.

 

 

 

 

책이 워낙 묵직하고 두껍다보니 이야기는 4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 중 2부는 가장 놀라우면서도 몽환적인(?)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2부는 엘레나의 의식세계로 이루어져 있죠.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보는 듯한 느낌도 났습니다.

 

 

타냐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타인의 요구, 가장 약한 형태이기는 했지만 외부의 강제력에 맞닥뜨린 셈이었다. 조금전까지는 주위사람들이 바라는 것과 자신의 바람이 행복할 정도로 잘 맞아, 다른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타인의 요구에 복종하는 것, 그것은 어른이 되는 과정일까? -67p

 

이렇게 각자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었다. 한 사람에게 세상은 물질적인 것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물질적인 것 외에 다른 무엇인가가 세상에 있다는 것을 믿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것은 상대방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지식에는 그 나름의 진위성과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76p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무섭고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일이 바로 이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경계란 일상적인 생활과 뭔가 다른 세계, 마치 죽음처럼 알고는 있지만 설명이 불가능한 그런 세계 사이에 놓인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죽지 않은 사람이 과연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잠깐의 순간, 조금이나마 죽음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계를 넘는 일에는 이동은 있지만, 어떤 법칙에 따라 그것이 일어나는 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166p

 

무엇을 이야기했는지는 기억할 수가 없다. 다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때 깨달았던 것이다. 그것은 꿈속에 있을 때 모든 일상적 삶이 꿈으로 변한다는 것, 곧 현실과 꿈은 한 천조각의 앞면이자 뒷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의 상채,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제도 작업을 할 때 위에서 보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190p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소비에트와 전쟁시대입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쿠코츠키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새로운 만남으로 만들어진 가족이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찾고, 만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이상적인 가족이 어떻게 자리를 잡는지 무척이나 긴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소재가 많은 편입니다. 일단 전쟁 배경이며 낙태, 내면투시, 삶과 죽음의 중간단계, 의식의 변화, 히피, 톨스토이 주의 등. 수많은 페이지와 글자들 속에서 자칫 지루해질때마다 새로운 흥밋거리가 되어준 것 같습니다.

 

 

 

 

 

가장 행복한 상황은 일상의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진다. 물론 일상의 요소들은 어떻게든 공존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것들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갈라놓는다. - 678p

 

고차원적인 이야기들과 새롭게 접하는 '러시아 문체(번역투?)'에 대한 생소함들 때문에 읽다가 부담이 될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삶과 가족의 모습에 조금은 이해할만한 요소들이 있어서 다행히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서로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가족의 구성원인 파벨과 엘레나, 타냐, 토마, 바실리사는 핏줄은 다르지만 그렇게 맞물리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간 것이었습니다. 정치, 종교적인 탄압의 세파속에서도 그들 누구하나 나가떨어지지 않게 한 것은 가족이란 틀이였지 않을까요. '가족'의 의미가 그들 개인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것이 아닐까요.

우리도 '모두 속의 그냥 개인'이 아니라 '모두 속의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것. 새롭게 접한 <쿠코츠키의 경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p.s 들녘출판사의 '상처를 주는 소설:일루저니스트'. 이 책이 왜 이렇게 분류되었는지는 더욱 생각해보아야겠네요 ㅜ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들에게 희망을 (반양장)
트리나 포올러스 지음 / 시공주니어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꽃들에게 희망을 - 트리나 포올러스> 짧지만 값진 이야기

 

 

 

 

 
 

주인공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입니다. 세상이 어떤지 모를 갓태어난 줄무늬 애벌레는 우물안 개구리입니다.

우물 속에서 힘겹게 빠져나왔지만 세상은 낯설고 험난한 것으로 가득차 있는 상황이죠.

 

 

 

 

 

 

각자 자기 먹을 것을 채우려 바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던 애벌레는 이제 자기만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먹고 자라는 것만으로는 그에게 삶을 살만한 가치가 없어 길을 떠나게 됩니다.

 

 

 

 

 

길을 가던 줄무늬 애벌레는 어느날 하늘까지 높이 솟아오른 기둥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세히 보니 그 기둥은 수만 혹은 그보다 많은 애벌레들이 서로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애벌레들은 궁금합니다. 도대체 그 끝에 뭐가 있을까 하고요.

"그 애벌레들은 굳이 꼭대기에 오르려고 - 안간힘을 쓰며 애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꼭대기는 구름 속에 가리워져 있었으므로 그곳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줄무늬는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둥을 타고 올라가던 또다른 경쟁자인 노란 애벌레를 만나고 도저히 그녀를 밟고 올라설 수 없어 힘겹게 올라간 기둥을 내려오게 됩니다.

수많은 애벌레가 그들을 밟고 올라갈 때면 그들은 서로 꼬옥 붙어있었습니다. 그들을 둘러싼 주위는 질식할 것 같았지만 그들은 함께 있으므로 행복했고,

아무도 그들의 눈과 배를 밟을 수 없도록 커다란 공 모양을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 40p

 

 

 

 

 

 

줄무늬 애벌레와 노란 애벌레는 사랑하며 함께합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줄무늬 애벌레는 이런 삶에 회의를 느끼고 또다시 기둥위에 올라가려 합니다. 노란 애벌레는 말릴 수 없고 그를 보내줍니다. 그리고 노란 애벌레는 고민합니다. '무엇인가 보다 좋은 것이 있을거라고'

 

 

 

 

 

 

"노랑 애벌레야!" 그녀의 모습이 그의 온 마음에 가득찼습니다.
"너는 뭔가 알고 있었지? 그렇지? 기다림이 <용기>라는 것을"

 

노란 애벌레는 '기다림'과 인내로 많은 것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엊그제 친구와의 약속시간 전에 중고서점에서 남는 시간을 이용해 읽은 짧은 책입니다. 위시리스트에 담아놓고 잊혀진 책이었는데 우연히 '오늘 들어온 책'코너에서 발견해서 반갑게 읽었네요. 우리에게 무언가 메세지를 던지고 있고 그 메세지도 그닥 어렵지 않게 직관적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인생을 그렇게 많이 산건 아니지만) 우리의 인생도 이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결과가 보이지 않는 삶에서 미래를 향해서 선택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단념하고 일어서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기도 하고 밟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치유를 받기도 합니다. 가끔은 남들이 하고자 하는일에 홀리듯이 함께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참된 자신을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소신있는 선택은 분명 좋은 결과를 불러올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감사한 사랑을 받아 넘어졌다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실패한 인생이란 없습니다. 그 인생의 작은 실패도 또다른 시작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는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들은 제게 어떠한 자기계발서보다도 더욱 희망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 나비에 관한 믿음을 갖도록 도와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참된 자신이 되고자 애쓴 한 애벌레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나 자신 -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 사랑을 드리며, 트리나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