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서툰 사람들
박광수 지음 / 갤리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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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생각을 추억하다 <참 서툰 사람들 - 박광수>

 

 

 

 

 

 

  어렸을 때 읽었던 광수생각 시리즈를 기억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읽었을 정도로 열풍이었던 시리즈, 그리고 너무나 개성있었던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져버린) 글씨체가 매력있었던 만화 광수생각. 사랑에 대한, 살아가며 소소한 것들에 대해 광수 캐릭터의 모습으로 들려주던 광수생각은 정확하진 않지만 희미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참 서툰 사람들>은 동네에 있는 중고 서점에서 만났다. 어린 아이가 쓱쓱 끄적이고 그린 것 같은 표지 때문에 내 손에 잡히게 되었던 이 책. 처음엔 광수생각 처럼 만화로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만화보다는 그림, 포토 에세이 같은 느낌이다. 그 이유가 책 속 어딘가 빼꼼하게 언급되어있는데, 박광수 작가가 이젠 그림보다 글이 더 좋단다. 그래서 그런지 시, 에세이, 포토 에세이 등 이 책에는 많은 글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사실 그 글 중에선 좋은 글도 있지만 가끔은 보기 민망했던 글도 있다. 하긴, 그래서 서툴다는 표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왠지 계속해서 넘기고 있었던 건, 옛날 광수생각 시리즈의 추억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조금씩 지워져가는 듯 해서 아쉬운 마음이 많았던 이 책. 좋아하는 광수체도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너무 많이 쓰여서일지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참 예쁜 책이긴 했지만 광수생각의 추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겐 왠지 쬐끔.. 아쉬울 것이다. 이 아쉬운 책이 작가의 새로운 도전과 함께 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긴 하지만..

  

 

 

   -  어떤 경기나 승부에서 이기려면 능숙함이 필요한 법인데, 내게는 그런 능숙함이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만일 오늘이 어제와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라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다르게 해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내게 오늘이라는 하루는 늘 생경한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제의 나도 서툴렀고, 어제의 나도 서툴렀고, 불행히도 오늘의 나도 서툴다. (프롤로그)

 

  -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힘들 때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 (친구이거나 타인이거나)이 울 때 같이 울어 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누군가를 걱정해 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진짜 힘든 일은, 진짜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친구가 잘 되었을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주는 일이다. (51p)

 

  - 우정이라는 그릇, 사랑이라는 그릇, 믿음이라는 그릇, 신의라는 그릇. 그 그릇들은 언제나 소중히 다루고, 잘 닦아야 하며 깨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각각의 그릇들은 품 안에 있을 때는 모두 아름답고 견고해 보이지만, 행여 잘못 다뤄 깨지기라도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깨지기 전의 그릇은 아름답고 소중하지만, 깨진 그릇은 여지없이 칼날이 되어 내게 향하기 마련이다. 뒤늦게 후회하며 깨진 그릇을 어떻게든 붙여 보려고 애쓰다 손을 베이면 그제야 비로소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은 품 안에 있을 때 소중히 여길 것. 깨진 그릇에 손을 베이고 나서야 배운다. (서툰 이야기 5)

 

  - 당신과 헤어진 날 마치 군대에서 나눠 준 건빵 두 봉지를 먹은 것처럼 목이 메었다. 목이 메어 어느샌가 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드니 밤하늘에 내가 그동안 흘린 눈물만큼이나 많은 별이 총총히 박혀 있다. 당신과 헤어진 날, 건빵 두 봉지를 먹은 것처럼 목이 메어 온 날, 밤하늘에 걸려 있는 별사탕을 세 개 따 먹는다. 아무도 모르게. (201p 별사탕)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며 체념을 배우는 일이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내가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을 인생에서 쓸쓸히 지워 나가며 스스로에게 체념을 가르치는 일이다. 해를 거듭하며 나이를 먹으며 깨달아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기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지극히 간소한 삶의 정답. 생의 끝까지 가지고 가면 결국 제 스스로 힘들고야마는 지극히 간소한 삶의 정답. (207p 너의 결혼식장에서) 

 

 

 

아마도 이런 모습을, 광수생각 독자들은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런 독자들을 위해 2012년에 광수생각 시리즈가 또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가 하고 싶은 '글'과 독자가 바라는 '만화'가 함께한

광수생각 : 오늘, 나에게 감사해. 이 책은 조금 더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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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부터의 혁명 - 우리 시대의 청춘과 사랑, 죽음을 엮어가는 인문학 지도
정지우.이우정 지음 / 이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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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탄탄한 지도를 갖기 위한 <삶으로부터의 혁명 - 정지우, 이우정> 

 

 

 

  청춘, 가장 파란만장한 꿈을 꿀 수 있고 '청춘을 지나보낸 이들이 그리워 하며 바라보는' 계절이다. 요즘에 나오는, 흔히 청춘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청춘 조언서'들은 집채만한 파도같은 현실에 휩쓸리는 청춘들에게 감정적인 위로를 던지고 부드러운 손길로 다독인다. 한번쯤은 그런 위로도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혼동되는 청춘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하지만 넘쳐나듯 쏟아져나오는 그런 류의 책들. 그리고 그 책들을 비판하는 책들.. 청춘은 어떤 말을 들어야할지 갈 수록 갈팡질팡하다.

 

  <삶으로부터의 혁명>은 책과 영화, 많은 사상가들의 말과 함께 '삶을 중심에 두고 현실을 성취하는' 일에 대한 중요함을 강조한다. 현실과 삶 그 둘을 둘 다 버리지 않고, 대신 삶에 무게를 조금 더 두어 살아가는 방법을 많은 예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청춘의 문제적인 모습인 잉여, 허무, 스펙에서의 강박..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었던 현실의 많은 장애물들에 넘어지지 않을 힘을 깨우쳐준다. 저자들은 강조한다. 자아에 대한 세 가지 인식틀을 확실하게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세가지 인식틀은 우리 내부의 현실에 반응하는 부분인 '주인자아'와 그가 내린 명령을 충실히 수행할 '노예자아', 그리고 그 관계속에 갇혀있는 우리에게 그것이 옳은 것인지 항상 묻고 있는 '제3의 자아' 분류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완성도는 그 셋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그리고 마지막 '제3의 자아'가 얼마나 발전된 모습으로 함께하는지에 따라 높아진다. 그 중요한 '제3의 자아'의 결단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책, 영화, 위인들의 삶 등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우리의 삶은 결국 내 자신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삶을 향해 열려있는 우리 자신을 만들어나갈 때만이 우연처럼 행복한 삶이 만들어질 것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나'를 가장 먼저 바라보고 사는 것. 그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가장 큰 인생의 해결점이다. 가끔은 흔들리고 부정적이고 서투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자신을 바라보고 '매일을 인식하고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실한 지도를 가진다면' 우리의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때 탄탄하게 그려진 과거의 길을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 청춘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찾아나가기를 바라는 열정 멘토들의 말들 속에서도, 청춘은 함정에 빠진다. 웬만해서는 청춘도 곧장 '맹목적인 자기계발'에만 매달리는 현실주의자나 세속주의자가 되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들은 대신 조금 다른 꿈을 꾸고 싶어 하고, 자기만의 열정을 가져보길 원한다. 그것이 설령 현실에 의해 녹초가 될지라도, 갈기갈기 찢어질지라도 한번 뿐인 청춘 속에서 무언가 남다른 것에 자기를 바쳐보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렇게 청춘 안에 머물게 되는 '꿈'이나 '열정'과 같은 단어는 멘토들의 응원 속에서 변질된다. (31p)

 

  - 우리가 흔히 '현실의 압박을 느낀다'라고 할 때 현실은 우리의 바깥 보다는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즉, 현실은 우리를 바깥에서 억압하고, 공격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나 혹은 우리가 거기 참여하는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 안에서 우리를 채우고 있는 어떤 것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 언제든 우리 안에서부터 우리를 향해 오는 것, 우리를 삼키며 내부로부터 분출하는 것에 가깝다. 실제로 현실이 정말로 우리의 밖에서 우리를 압박해 들어노는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54p)

 

  - 길을 걸으며 언제나 의식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이다. 그 타자는 진짜 사람이 아니며, '우리 안'에서 만들어진 어떤 집단적 형상의 시선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시선에 시달린다. (150p)

 

  - 서구는 언제나 활동성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해왔는데 20세기에 이르러 동양을 발견하면서 동양적인 것이란 오로지 정적이고, 고요하고, 활동하지 않는 초월적 차원을 지향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노자만 하더라도, 과연 정말 교외에 물러서서 바라만 보는 삶을 숭상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오히려 노자가 주장했던 것은 '현실의 활동성'이 아닌 다른 활동성, 즉 '삶의 활동성'은 아닌가? 노자의 무위(無爲)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세상의 자연성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노자는 무위에만 빠져있는 게 아니라, '무위를 통해 행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는 오히려 그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흐름을 타는' 어떤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 새로운 활동의 가능성에 대한 추구라는 여지를 더 강하게 품고 있진 않을까? (203p)

 

  - 여행은 많은 이들에게 '삶에 대한 새운 기대'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여행은 그 자체로 '삶을 향한' 작은 시도이며, 거기에서 우연히 만날지 모르는 타인은 기적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우연'이라는 게 단순히 '우연 그 자체'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내부로부터 촉발되는 어떤 것임을 알게 한다. 즉, 우연은 우리가 여행에서처럼 '삶을 향해' 열려있을 때, 그리고 삶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향해갈 때, 어느 순간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244p)

 

 

 사실, 읽는데 순탄치는 않았던 책, <삶으로부터의 혁명>

 거창한 제목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져올지는 모르고 읽었지만 지금 고민하고 있는 20대들이 이 책을 정독하고 가슴에 담아둔다면, 

 자신이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하는지만큼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청춘들에게 필요한 건, 해답이 그대로 제시되 있는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 아니라 그 해결책을 직접 찾아나갈만한 용기를 주는 이런 인문학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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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나라
가쿠타 미츠요 지음, 임희선 옮김, 마츠오 다이코 그림 / 시드페이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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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꺼내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 - 가쿠타 미츠요> 

 

 

 

 

언제 어디서 없어졌는지도 모를, 그런 것들을 도통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내 경우에는 양말 한쪽, 머리에 꼽는 실핀, 고무로 된 머리끈들이 그런 것들이다. 도대체 그런 것들이 어디에 있는 거야 .. 하고 생각했을 때, 천계영의 만화책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모여사는 공간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심어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보니 그 만화의 온갖 잃어버린 소품들이 둥둥 떠다니던 장면이 떠오른다.

 제목을 보고 상상하는 것처럼 책에는 다소 판타지스러운 요소들도 함께한다. 주인공 나리코가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다던지, 지독한 사랑때문에 생령이 된다든지 혹은 '진짜'세상에 있는 것과는 다른 분실물 창고 같은 것들이다.

 

 잃어버린 것들.. 주인공 나리코에게 그 잃어버린 것들의 모습은 단순히 사물이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세하고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도 포함된다. 그것을 찾는 여정을 보면서 왠지 모를 공감이 들었고 가끔은 아련하고 찡한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토록 담담하게 써내려가던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조금씩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분출하는 것 같았다.

 

 세상을 살다가 우리가 가끔은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두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가슴 속 작은 방에 살고 있고, 언젠가 꺼내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들의 자리에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이다.'

 

 

- '응? 난 어디서 여기까지 멀리 온 걸까?' 아주 멀리서 여기 온 기억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니까 어디 먼 곳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여기까지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사랑을 하게 되면, 아아 그렇구나, 바로 이것 때문에 내가......." (40p)

  - 쓰레기 버리는 곳에 버려져 있는 곰 인형도, 나뭇잎들도, 야채가게 앞에 진열된 형형색색의 야채도, 새들도, 고양이도, 밥그릇도, 문고리도, 이제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가끔씩 나는 가다가 서서 "저기......" 하고 작게 말을 걸어보았다. 무언가 나에게 대답을 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고, 처마 밑에 달린 풍경은 산들바람에 맞춰 '딸랑'하고 울릴 뿐이었다. (51p)

  - "어, 안 보이네, 어디 갔지? 했던 것들이 실은 모두 사라져버린 게 아니라 거기로 옮겨져 있는 거야. 거기 가면 틀림없이 내 카메라도, 네 왕관도, 그리고 어쩌면 유키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 (76p)

  - 언젠가 이게 그리운 추억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간이 오래오래 흘러서 내가 생령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내가 빙의했던 사람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게 되어버린다 해도 말이다. 그래도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한밤중 육교에서,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중요할 수도 있고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알사탕처럼 아름다운 달을 다 같이 올려다보았던 일, 바로 이 순간을 틀림없이 그리운 추억으로 떠올릴 것이다. (145p)

 

 

책의 일러스트가 굉장히 예쁘고 몽환적이라고 느꼈는데, 알고보니 그림을 먼저 그리고 거기에 글을 덧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과 글의 분위기가 너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이 책도 읽어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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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서재 -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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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 <카프카의 서재 - 김운하> 

 

 

 

 

 

 가끔은 어둡고 캄캄한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외로울 때, 모든 것에 허무감이 밀려올 때, 더이상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질 때 다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김운하 작가가 딱 내 나이쯤이었을 때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한 것이 '책과 독서'였다. 그는 그 책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하나하나 깨우치기 시작했고 '나'에 대한 존재에 대한 사유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기 시작했다. <카프카의 서재>는 그가 힘을 얻고 자신의 존재를 탐구할 수 있게 한, 그가 사랑했던 십여권의 책의 목록이다. 쿤데라, 카뮈, 니코스 카잔차키스, 몽테뉴... 그 밖에도 많은 작가들의 책 속 부분부분 문장들이 그에겐 힘든 삶의 과제의 해답이 되어 주었다.

 

 '우리 머리 위에 있는 별의 심연처럼 위대하고 오묘한 것이 인생' 카프카가 삶에 대해 했던 말이다. 작가가 카프카가 남긴 글들을 읽고 동요했듯이 (그가 제목에 카프카의 이름을 넣은 것도 카프카에 의해 상상할 수 없는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나도 김운하 작가의 책을 거쳐 들어온 카프카의 글들에 동요했다. 어느하나 정확한 것 없이 지나가는, 그래서 답이 없고, 그래서 더 오묘하고 뒤죽박죽이며 순식간에 빠르게 가는 인생. 그 인생을 사는 법을 지금 나도, 책으로 배우고 있다. 나중엔 작가처럼 그 목록에 저마다 소중하고 귀중한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시간에 대한 관념을 두 가지로 나누어말했다고 한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크로노스는 우리의 육체를 지배하는 시간이자 물리학적인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시간이다'(181) 카이로스란 작가에 의하면 '목표물을 향해 화살을 당기는 순간'이다. 그 결정적인 시간이 삶을 살면서 몇번이나 나에게 왔을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그 시간들을 손에 잡을 수 있었고 얼마나 손 사이로 놓쳐버렸을까? 그러나 지나간 놓침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 '카이로스'의 시간들을 제대로 잡아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를 뿐이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그 시간들이 서로 꽉 채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길 뿐이다.

 삶 속의 모든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서있는 나. 그것을 파악하는 철학적 깊이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힘든 만큼, 뼛속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교훈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실제의 삶은 일관된 주제가 없는, 다양하고 서로 무관한 에피소드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인생이라는 소설에서 무엇이 에피소드이고 아닌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지극히 상대적인 관점에 따르며, 불순물처럼 취금될 수 있는 사소한 에피소드 하나가 실은 운명을 좌우하는 열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더 나쁘게는 자기 인생이라는 소설을 써 나가는 작가에게 그런 에피소드의 주도권이나 결정권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 25p

 

시간이 우당탕 소리 내며 깊은 계곡을 세차게 흘러내리는 강이라면, 인간은 거기에 실려 떠내려가는 작은 나뭇잎들이다. 그러므로 운명이, 인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예비해놓았는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놓을지는 미리 알 수 없다. 그저 방황하며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이 아이러니의 법칙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한, 삶은 어리석고 오만한 열광으로 시작되어 씁쓸한 회한으로 마감되는 덧없는 것이다. 저 경이로운 아이러니는 우리의 삶을,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광대가 연주하는 가락에 맞추어 춤추는 서커스의 곰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고는 모든 진실을 깨닫게 된 연후에야, 우리는 비탄에 젖은 목소리로 아이러니를 운명으로 탈바꿈시키며 스스로를 위안할 뿐이다. - 37p

 

청춘이라는 짦은 터널을 다 통과한 후 뒤를 돌아볼 때, 그때 가서야 청춘의 방황이 방황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그렇게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보아야만 방황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 - 42p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행위는 이미 그 자체로 사회적인 행위이다. '의미'라는 언어적 범주는 이미 나를 포함한 타자들의 세계를 전제로 한다. 의미는 오직 사회 속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는 자들과 그 질문을 이해할 수 있는 자들이 없다면, 세계에는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98p

 

나는 이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내 삶을 생각할 때마다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왜냐고? 세상에 희극도 이런 희극이 없어서다. 하긴 니체도 고뇌가 너무 많은 인간만이 웃음을 발명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을 때 우리는 웃음을 터뜨린다. 우리 인생이 꼭 그렇다. - 120p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들은 실은 이 사회의 속박이며 굴레에 불과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책들은, 나를 결박하고 있는 문법들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사랑, 독서, 글쓰기, 음악, 밤의 어둠, 침묵.... 이런 것들은 우리를 익숙한 세계와 결별하도록 요구한다. - 162p

 

 

 

각 순간과 마주해 우리는 언제나 마치 그것이 영원인 것처럼 여기고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각 순간은 우리에게서 다시 덧없는 것이 되어버리기를 기다린다. - 모리스 블랑쇼 <기다림 망각>

 

가장 좋았던 한 부분. 발췌문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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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뺄셈 - 버리면 행복해지는 사소한 생각들
무무 지음, 오수현 옮김 / 예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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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덜어냄의 미학, 행복한 삶을 위하여 <오늘, 뺄셈 - 무무>

 

 

 

 

 오늘, 우리는 덧셈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허우적댄다. 나에게 많은 것을 더해야, 그제서야 풍족한 기분을 느낀다. 계속되는 덧셈에 지칠 때쯤 후회가 밀려온다.

이런 세상에 대해 어디사는, 누구인지도 알지못하는 무무(木木)라는 은둔형 작가가 짤막한 에피소드들로 그의 뺄셈의 철학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버리면 행복해지는 사소한 생각들'. 에피소드들은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로 되어 있다. 나도 모르게 지나치고 있는 일상의 문제들, 고민들에 대해서 작가는 교훈과 생각할 여지를 동시에 준다.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우리가 만나는 이 답 없는 고민들은 흔하디 흔한 이야기들이라 여겨질 수 있지만, 때때론 답을 내지 못해 실패하고 후회하는 것들이다. 시종일관 '빨리 빨리'의 세상에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뺄셈'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뺄셈의 미학에서 요점은 지나간 것에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매일 지나간 것에 후회를 거듭하는 나에게 '미련'을 없애는 것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행복한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하나 빼나가는 습관을 기른다면 마음만은 충만해지지 않을까.

 

지금 덧셈으로 지친 세상에서 내가 하나씩 빼나가보자. 그러다보면 언젠가 균형(=)이 맞춰진 내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 덧셈으로 가득 찬 세상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는 온갖 물욕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7p)

 

- 우리의 삶을 이루는 근간인 '어제'란, 따지고 보면 이미 쓴 돈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반면 '내일'은 아직 계좌에서 찾지도 않은 돈이다. 내일이 오면, 또 내일이라는 하루를 우리 인생 계좌에서 빼내야 하지만, 그것은 내일의 일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일 예정된 뺄셈'을 미리부터 걱정하며, '어제'에 대한 미련과 근심에 빠진다. '어제'가 이미 쓴 돈이고 '내일'이 아직 은행에서 찾지도 않은 돈이라면 '오늘'은 가장 가치가 높은 '수중의 현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이라는 현금을 아낀다고 해서 인생 계좌의 잔액이 늘어나는 일은 없다. 자정이 지나면 아무 곳에도 쓰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현금이 바로 '오늘'일수도 있는 것이다. (47p)

 

- 뺄셈과 덧셈은 단지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일반적인 수단일 뿐이다. 남을 위한 배려는 일단 '뺄셈'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올 만족감은 '덧셈'이며 결국에는 '균형'이다. 대가를 기대하지않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봉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인격을 닦을 좋은 기회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56p)

 

- '비움'은 과거를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과거에 품었떤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호흡을 할 때, 먼저 날숨으로 묵은 공기를 뱉어내야 들숨으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것과 같다. (120p)

 

-  뺄셈은 복잡한 인생을 최대한 단순한 상태로 바꾸는 것이자, 내면의 소리에 경청하고 거기에 충실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며, 번잡함을 단순함으로 바꿔 행복을 얻는 경로다. 우리는 뺄셈을 통해 욕망과 집착, 번민 등 우리 영혼에 부담을 주고 압박하는 것들을 덜어내야 한다. (258p)

 



   우리의 삶이란, 본래 '새는 양동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거든. 아무리 많은 것을 담아서 지키려고 한들, 어딘가는 새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야. 그 이치를 받아들이면, 전에는 몰랐던 귀중한 가치들이 새롭게 보여. 반면에 모든 걸 장악하고 지켜내려 집착할수록 고통과 불행은 더 가까워질 뿐이야. (80p)

 

돈, 취업, 자리, 소유.. 이제는 더이상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듯 하다.

모든 걸 가지려 집착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들에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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