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의 반대겠지요. 우리는 어떤 것을 알거나 혹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똑 부러지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 혹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는 어떨까요. 둘 다 그냥 모르는 것? 전자는 아는 것이고 후자는 모르는 것? 재미 없는 문제라고요? 그렇다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경우는 어떨까요?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물론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는 것이기도 해요. 말장난입니다. 하지만 사실이기도 해요. 단지 위 문장에 '모른다'와 '안다'가 포함되었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브리태니커와 구글에도 안 나오는, <무지의 사전>

저자는 '앎'을 육지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명확하게 아는 것들로 이루어진 넓고 단단한 (물론 코페르니쿠스나 다윈 같은 '지진'의 위험에는 항상 노출되어 있는) 땅.

이때 '모른다는 것 조차 모르는 것'은 저 멀리 지평선 너머의 어둠으로 존재하는, 짐작조차 할 수도 없는 그런 지점이겠지요.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그늘에 가려진 땅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런 '앎의 육지'에서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바로 육지의 가장자리를 뜻합니다. 앎의 끝에서, 아는 것은 여기까지이지만 분명 눈앞에 펼쳐져 있는 무언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간 알아내고 싶은, 모험을 자극하는 그런 것.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과학적 탐구가 시작됩니다!

자,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무지의 사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들을 드러냄으로써 역으로 수많은 모험가(과학자)들이 넓혀온 앎의 영토의 끝, 즉 '지식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것! 어때요, 근사한가요?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마세요. 실제로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과학이 이렇게 진보했(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일상적인' 것들을 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잠을 자지만 잠이 정확하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술에 필수인 마취제, 하지만 마취제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지는 미지수" 어때요, 놀랍지 않으세요?

결국 독서의 의미도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흔히들 '앎의 즐거움'이라고는 하지만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의 즐거움이아닐까, 라고. 그것이 우리의 독서가 실생활에 무용한듯 보이는 잡다한 지식들의 축적에 그치지 않는 이유겠지요. 사실 우주가 10차원이나 11차원이나 비전공자들에게 어떤 큰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생각도 못했던 곳으로 빛을 비추어주는,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알게 되는 쾌감이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이번 주에는 또 어떤 책들이 앎의 가장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줄까요? 자, 배 출발 합니다~ 


1. 근대 문학, 죽었니 살았니? <역사와 반복>

<근대 문학의 종언>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셨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에 한국에도 불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풍'의 열풍을 기억하시나요. 오에 겐자부로는 어떠신가요. 오에 겐자부로가 작품의 구조 속에서 싸우려고 했던 것이 미시마 유키오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자, 두서 없지만 어쨌든 가라타니 고진입니다. 제가 할 말은 페이퍼 "근대 문학의 종언, 그 이후"에 적어 놓았습니다.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만약 소설을 쓴다면 그의 비평을 받아보고 싶다, 정도?)




2. 탯줄로 잡아낸 인류의 문화사 <탯줄 코드>

"그는 의사로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탯줄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체험을 신화와 상징의 근원으로 끌어올린다. 그에 의해 탯줄은 뒤르켐의 집단의식, 융의 집단무의식,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에 필적하는, 혹은 그 이상의 권자에 오른다." - 조현설(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금 호들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추천사들. 하지만 현직 개업의이자 '재야 학자'인 저자의 <탯줄 코드>에 현직 교수등 제도권 학자들이 보낸 찬사를 모두 호들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저작이라면 제도권에 의해 외면 당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흔히 생각하기 마련임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공통으로 간직하고 있는 출생의 과정, 무의식에 녹아있는 그 신비한 과정이 어떻게 신화로 창안되었는지를 탯줄이라는 코드를 통해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신화, 민속, 종교를 탐색하는 저자는 '탯줄'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무시무시하게' 잡아내내요. 우리에게 신화와 상징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이런 저작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요.

3. 철학 책 3종~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 <이진경의 필로시네마> <빈 중심>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은 '이데아와 시뮬라크르'라는 부재에서도 알 수 있듯,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는 전통 존재론과('신족') 베르그송.하이데거,들뢰즈.데리다 등 니체 이후의 현대 존재론('거인족')의 투쟁을 그립니다.

투쟁이라고 하자니 어딘지 거창하지만, 서양철학사가 플라톤주의와 반플라톤주의의 대립을 통해 발전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거창한 표현은 아니겠지요. 결국 이정우 씨가 말하고 있는 것은 시뮬라크르의 시대를 살고 있는 21세기, 우리의 존재론입니다.

이정우 씨를 이야기하자니 어쩐지 이진경 씨가 떠오르네요. (제가 이 두 분을 함께 생각하게 된 것은 몇 해 전 있었던 노마디즘 관련 논쟁 때문인 것 같아요) 마침 책이 나와 함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뭐, 이런 기회에…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필로시네마 혹은 영화의 친구들>의 개정판입니다.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7편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고, 당시 영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라면 거의 필독서처럼 읽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이 개-개정판에는 모두 10편의 영화가 들어 있습니다. (<친구들>도 10편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제목의 책이에요. (이를테면 켄 윌버의 <무경계>처럼) 그리고 또한 제가 전형적으로 "재미있는 것 같은데 조금 어렵네"라고 생각하는 류의 책이기도 합니다. 하여 책소개의 한 문구로 소개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

"예술과 타자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러한 ‘관계의 사건’, ‘빈 중심’에 다다르고자 했던 과정의 궤적이다. 니체, 데리다, 메를로-퐁티, 블랑쇼, 바타유, 레비나스 등의 철학자와 말라르메, 사드, 소포클레스 같은 문학가의 예술에 대한 사유를 오가면서, 예술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타자의 목소리'를 살핀다." 어떠세요? 



4. 한국에서 살아남기! <주권 혁명> <시대와 소통>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손석춘 씨의 <신문 읽기의 혁명> 또한 대학 시절 선배들이 권해주는 (<필로시네마>와는 다른 의미에서) 필독 도서였어요. 표지의 촛불이 앙증맞으면서도 시의적절한 <주권 혁명>의 부제는 '피의 나무에서 슬기의 나무로'. 그렇습니다. '민주주의' 이야기이지요.

민주주의를 조명하며 시작하는 책은 한국 민주주의를 분석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에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을 해방하는 주권혁명의 철학과 정책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손에 들린 작은 촛불 하나하나가 꺼지지 않기를 바라시는 모든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시대와 소통>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월례회 강연을 엮은 책입니다. 최장집, 백낙청, 한홍구, 정수일, 김민웅, 이영미, 오한숙희 등 강연자들의 면면을 보자면 어떤 책인지 감이 오실 것 같은데요.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으로부터 되돌아보게 되는 것', '시민참여형 통일운동 제안',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가', '문명은 충돌하는가', '법의 세계, 상상력은 유효한가', '대중예술 속에 나타난 법', '섹스로 풀어보는 부부 이야기' 등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통'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는 직접적으로 한국의 현실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경제학 교수였던 저자가 어느날 대학에 사표를 던진 후 5년 간 미국 전역의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며 노동 계급과 함께 생활하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의 이면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영원한 '워너비' 미국의 실태는 결국 우리의 내일을 위한 반면교사가 되지 않을까요? 미국 아마존 서평에도 간혹 '여행 정보는 하나도 없다'는 별 하나짜리 리뷰가 보이는데요, 당연하겠지만 '미국 싸게 여행하기' 같은 책을 기대하셨다면 조금 곤란하실듯.

 
그리고… <촌놈들의 제국주의>
 
오늘의 마지막 책이자, 바로 오늘 들어온 우석훈 교수의 신작입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라니, 어쩐지 벌써부터 웃음이 나오지 않으세요? 너무 뜨거워서 오늘은 일단 소개만 드리고 말겠습니다. 노란 뒷표지에 써있는 말을 가져올게요.

"이제 한국 자본주의는 내적 불균형과 모순의 악화로 필히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DJ노믹스에서 씨앗이 뿌려지고 노무현 정권에서 싹이 틔워졌다. 북한을 일종의 내부식민지화하면서 대외적으로 제국주의 팽창의 길로 들어서는 한국은 중국의 제국화 및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러한 조짐의 현실적 근거들을 경제학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보여준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적어도 30년 안에 한.중.일 3국 사이에 전쟁이 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방지할 동북아 평화체제를 지금부터라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중.일 각국의 국민경제에서 생태적 전환이 시도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은 건설자본형 제국주의에 국민경제를 맡겨두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 책은, 이를 도모할 평화경제 세력을 지금부터 공동으로 가꾸어 가지 않으면 전쟁은 필연이라는 무서운 경고를 담고 있다!


유후, <무지의 사전>에서 <촌놈들의 제국주의>까지 오늘도 쉴틈 없이 달려 보았네요. 역시나 오늘도 배가 꽉 찬 걸요.
아참,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항의 인문학>도 출간되었습니다. 아직 웹상에 등록이 되지 않아 소개는 다음 기회로 연기 해야겠네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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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 2008-06-1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소남자 2008-07-1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짤막한 책소개지만 MD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나는 작가에게 '문학'을 되찾으라고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가 오락작품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근대소설이 끝났다면, 일본의 역사적 문맥으로 보았을 때 '요미혼'이나 '닌죠본'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만화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그것이 가능한 작가는 미스터리계 등에 상당히 있습니다. 한편, 순수문학이라고 칭하고 일본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됩니다.
" (<근대 문학의 종언> 중)

'사상가' 고진과 '비평가' 고진을 따로 두고 생각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상가로서의 사유를 따라 읽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좋게 말하면 '국문학도'의 입장에서 그를 읽어온 입장과 자조적으로 말하면 '얼마나 팔리는 저자인가'를 두고 그의 저작을 대해온 입장이 합치된, 이번에 출간된 <역사와 반복>을 두고 '비평가'로서의 고진에 대해 몇 마디 하는 것으로 이 페이퍼를 한정지으려 합니다.

"야 정말 죽이는 책" 이라는 수식으로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을 소개받았을 당시에는 사실 그의 이론이 얼마만큼의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어요. 다만 조금 어려운데, 어쩐지 재밌네, 라고 생각했을까요. 뭐 물론 이건 제가 대개의 책에 품고 있는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는 평가입니다만.

하지만 그 후 읽게된 <근대 문학의 종언>은 그야말로 다른 이야기였지요. 시종일관 조곤조곤 '당신들이 생각하는 문학이란 것은 이제 생명력이 다한 것 같네요. 아쉽지만 이제 헤어져야겠지요. 그 동안 수고했던 문학을 위해, 자, 웃으며 안녕~' 이라고 말하던 <종언>은 충격 그 자체였으니까요. (사실 돌이켜 생각하면 <기원>에서 이미 <종언>이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 일었던 여러 논쟁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읽은 몇몇의 '비판'들은 그들이 비판하고 있는 고진의 '비약'보다 더 심한 비약으로 점철되곤 했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물론 그렇지 않은 비판도 많이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진의 주장의 많은 부분에 공감했습니다. 분명 근대 국가에서 소설이 해냈던 역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주장은 논리적/정황적 설득력이 있었으니까요. 그것을 '문학의 위기'만 운운할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학의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하지만 고진이 내린 것은 사실상의 '사망선고'였습니다. 그렇게, 근대 문학의 사망 이후의 문학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는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어요. 과연 근대 문학 이후의 문학이란 대중적인 오락 작품일 뿐일까요? 어쨌거나, 비판하는 입장에서나 옹호하는 입장에서나 <종언>이 조금 '두루뭉술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겠죠.

그래서 이 <역사와 반복>을 받아들고 꽤나 설렜어요. 한동안 관심사에서 멀어진 주제이기도 했지만(마치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던 친지가 3년이 지났는데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고, 어느 순간 그의 건강에 대한 근심을 잊게 되는 것처럼), 그럼에도 책을 보는 순간 순식간에 떠오르는 흥분, 이랄까요.

'종언'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관점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1부 역사와 반복을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그보다는 미시마 유키오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분석, 비평하고 있는 2부 근대일본에서의 역사와 반복에 관심이 있어 그 부분만 읽었어요. 3부 불교와 파시즘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어쩐지 궁금한 내용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왜 제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한때 그렇게도 좋아했으며(다시 말해, 왜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 그를 좋아하지 않게 된 이후로 오에 겐자부로를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는지(이를테면 무의식의 보상작용), 또한 미시마 유키오는 주는 것도 없이 왜 그리 싫었는지(이건 약간 복잡한 이유에서;)를 너무나 자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종언>이 어쩐지 부족하다고, 주장만 있고 논거는 부족하다고 느끼신 분들은 이 책을 보면 아마 굉장히 많은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고진의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입장은 부정적이고, 그로 대변되는 근대 이후의 문학에도 부정적이지만, 그것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언어로 쓰여 있다는 것. 하루키의 작품이 그리고 있는 세계와 그 언어가 우리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철저하게 해부하고 있달까요. <종언> 만큼 선언적이진 않지만, '비평가'로서 고진의 진면목을 드러내 주는 책입니다.

* 이런 분께! : 고진의 '종언'에 공감/반발 하셨다면, 문학의 미래가 궁금하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오에 겐자부로/미시마 유키오/나카가미 겐지 중 한 사람이라도 좋아/싫어하신다면
* 이 책도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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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쓸쓸한 뉴스가 많은 요즘입니다. 분노하고, 소리치고, 뛰어 나가고, 당당하게 따져야 할 뉴스들이건만, 그저 '쓸쓸하다'고 느끼는 것은 가만히 앉아 있는 자신 때문일까요, 움직일 수 조차 없게 만드는 사회 때문일까요?

와중에 우스운 뉴스를 보기도 했습니다. 전의경의 폭력진압사태와 관련, 몇몇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전의경 출신은 뽑지 않겠다"고 공언했다는 것. (오늘도 역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전경 출신입니다. 12사단 훈련소에서 육군 발령 받은 친구들이 A급 군복을 두 벌 받는데, 저는 한 벌 밖에 주지 않아 알게 된 사실.

우스웠지만 이 또한 쓸쓸하기는 마찬가지. 하여 양심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원치도 않은채 끌려와 구타가 난무하는 비인간적인 근무환경에서 생활하다, 역시 원치 않는 작전에 동원되어 나온 친구들에게 양심이란 어떤 것일까. 그 상황에서 개인의 양심이 얼마나 무게를 지닐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전의경들의 '인성' 혹은 '양심' 문제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양심이 없는 사회이거나 양심이 아주 하찮게 팔려나가는 사회입니다. 젊은 이들의 '양심'과는 상관 없이 법적으로 모두 군대에 때려 넣고(그 와중에 몇몇 귀한 자식들은 불법적으로 가지 않고), 진정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한 이들은 감옥에 넣는 사회니까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요? '국민의 건강', '중산층 이하 계급의 생존권' 등이 이미 헐값에 팔려나갔거나, 팔릴 예정이듯이.

잡설이 길었네요. 오늘 제 앞에 있는 책은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2001년 12월 오태양씨를 시작으로 감옥에 갔거나, 지금도 여전히 감옥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30명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편지나 수기 등 그들이 직접 쓴 기록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닿는 글들은 우리를 더더욱 부끄럽게 합니다. 홍세화 씨의 추천사나, 각각 한 장을 맡아 쓴 박노자, 한홍구 씨의 글은 보너스 정도로 느껴질 만큼.

생각해 보면 양심의 문제가 비단 병역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고 살자니, 까라니 깐다"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나는 까라고 깠는데 너는 뭐가 잘났다고 그러냐?"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이지요. 많은 예비역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바라보듯.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또 덧붙이자면, 그것은 바로 사회의 책임입니다. 자꾸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하게 만드는 것 역시)

("여기에 나는 없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만들었을 때, 테이크 아웃 커피점에서 카페라떼를 만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이게 무슨 경영시스템인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매뉴얼 경영이었던가 뭐 그런 거겠지.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라! 회사는 움직일 몸을 요구하고 그 몸이 가야 할 길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 정재훈, '버스기사와 촬영기사' 273~274p)

너무 재미없는 얘기만 했네요. 사실 이런 이야기가 제 취향은 아닙니다. 행여 그런 너의 양심은 얼마냐, 라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양심의 문제에까지 '취향'을 들먹이는 인간의 양심이 그리 비쌀 것 같진 않지만, 죄송하게도 '비매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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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6-03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꾹.

Narcolepsy 2008-06-05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이나 절판은 아닌가요. 어휴.

활자유랑자 2008-06-0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 님 / 아프락사스 님의 촛불 집회 관련 페이퍼들 잘 보고 있습니다. :)
narcolepsy 님 / 재출간 알림 신청이라도 해야할까요..;

Narcolepsy 2008-06-0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자서비스로 넣어주세요. 훗.
 

책이 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커다란 책이 보기에도 좋으니 더 좋은 책일까요, 작은 책이 들고 다니기 좋으니 더 좋은 책일까요. 책이 무슨 고질라도 아니고 "크기가 문제다!"라는 건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글쎄요. 결국엔 취향의 문제겠지만,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큰 책은 좋은 책이기 쉽다"라고. 어쩐지 말장난 같기는 하지만.

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그 내용입니다. 하지만 '연장'의 속성을 갖고 있는(!) 물질로서의 책,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상품인 책이라면 그 외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겠죠.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은 그대로 '보기 좋은 책이 읽기에도 좋다'라고 쓰일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책의 크기는 생각보다 미묘한 요소들을 품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작비(따라서 가격)-보관상의 난점-오프라인 서점에서 진열-온라인 서점에서 배송 같은 것들. 그럼에도 '큰 책'을 내기로 결정했다면, 출판사 측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책'이란 야심찬 판단이 있지 않았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디까지나 이건 저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제 앞에서 책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세 권의 '커다란 책'은 좋은 책이라는 것. (사실 이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일반화에도 불구하고…)

* 크기 두 배, 기쁨은 서너 배?









 

 

  

      일반 단행본(신국판) 대비 2.6배                          2.4배                                                 2.3배
 

이 책들이 커다란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 같은 문외한도 절로 감탄하게 되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사진들 때문. 하지만 이 책들이 좋은 이유는 비단 그것만은 아니에요. 사진과 어우러지는 글 역시 보는 우리의 마음을 좋게 하니까요. 아름다운 사진과, 재미있는 글, 그것을 받치고 있는 만족스러운 하드웨어까지. "지·덕·체"를 겸비했다고 할까요? (하하;)

<세상에서 가장 큰 중국책>은 사진집도, 여행 가이드도 그렇다고 여행 에세이도 아닙니다. "오랫동안 난 서양 친구들에게 내가 태어난 곳을 설명해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 책으로 가능해졌다.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중국인이 아니지만 그들은 내 조국의 정수를 잘 잡아냈다"는 (공동저자 중 한 명인) 민안치의 말이 가장 좋은 설명이 될 것 같네요.

풍경, 역사, 인간, 문화, 건축이라는 5개의 키워드로 각각의 상황에 맞는 사진과 글을 담아낸 책은, 중국을 좋아하시는 분이나 중국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신 분, 혹은 중국을 다시 보고 싶으신 분들께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바로 제목. 이미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 - 중국의 세기>라는, 이 책보다 손톱만큼 더 큰 책이 나와 있어요)

많은 분들이 넋을 놓고 보았던 동명의 BBC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살아 있는 지구>가 마음에 드신다면 아마 <한국 곤충기>도 마음에 드실 듯 합니다. 제목 그대로, 표지 그대로 한국에 살고 있는 곤충들을 다룬 자연 도감입니다. 도감이라면 아이들만 보는 것 아니냐고요? 에이 설마요.

각 계절별로 정리된 곤충들의 사진은 25년 동안 곤충을 연구하신 저자 김정환 선생께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직접 찍은 것이라고 해요(마지막의 인덱스에서 해당 곤충을 찍은 시기와 장소를 적어 두는 꼼꼼함까지). 그야말로 곤충의 달인. 또한 '곤충기'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단순한 도감을 넘어 한국 곤충의 생활사를 담고 있습니다. (방바닥을 기어가는 이름 모를 벌레에게도 나름의 인생 아니 충생이 있다는… 먹고 살기 참 힘들겠죠


* 역시 커다란 책이 좋으시다고요? 그런 분들을 위한 또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고대 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는 과거 오늘의책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책을 다시 출간한 책인데요, 화려한 도판들과 함께 '모세와 출애굽 : 신화인가, 사실인가',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는 어떻게 세웠을까?' 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브라이언 M. 페이건의 팬이시거나, 절판되었던 책을 찾아 다니셨던 분들은 이번 기회에 장만하시면 될 듯.


* 커다란 책은 잘 모르겠지만,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권해 드립니다. 일본의 권위 있는 상인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한 교양 과학서로, 생명과학의 경이로운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고 있습니다. ("스릴과 절망 그리고 꿈과 희망과 반역이 빚어내는 흥미진진한 책" 이라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추천사가 눈에 띄네요)

 
 
* 크기보단 두께로 승부한다! 
 







        587쪽            598쪽             578쪽            463쪽 

두께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책의 두께라는 '외향적 결과'는 순전히 '내용'에서 비롯하는 것. 하여 두꺼운 책들이 뿜어 내는 포스는 이렇습니다. "어때, 읽을 수 있겠어?" 그렇지만 그런 책은 또한 젖과 꿀이 흐르는 피안을 약속하니, 다 읽어 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지요. 그것이 바로 독서의 묘미!

<지젝이 만난 레닌>은 2006년 출간된 <혁명이 다가온다>의 일종의 완역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두 부분 중 레닌의 텍스트에 기반을 둔 지젝의 사유만을 엮은 것이 <혁명이 다가온다>라면, 지젝이 직접 편집한 레닌의 텍스트까지 포함한 것이 바로 <지젝이 만난 레닌>인 것. '좀 더 부자'가 되고픈 개인의 욕망에 밀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모두의 꿈이 사라진 지금, 많은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만물의 척도>는 '프랑스 혁명보다 위대한 미터법 혁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계의 발명이 근대 이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듯, '절대공간'의 개념을 인식시켜준 미터법 혁명이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지, 과학이 세상과 맺는 관계는 무엇인지를 흥미진진하게 추적합니다. 프랑스 혁명보다 위대하다라, 조금 과장된 듯하지만 실은 전혀 과장되지 않았는지도… ("정복은 순간이지만, 미터법은 영원하리라!" - 나폴레옹)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라는 책,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테지요.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은 조선시대 과거 시험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왕이 직접 내는 '책문'과 그에 대한 선비들의 답인 '대책'을 담고 있었습니다. <율곡문답>에는 바로 그런 책문과 대책의 형식을 빌어 풀어낸 조선유학의 최고봉, 율곡 이이 선생의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16세기 조선에 대한 율곡의 17가지 화두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신 지식의 최전선>은 다른 세 책에 비해 조금 빈약해 보입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각각 평균 이상의 몸집을 가진 시리즈가 4권까지 함께 출간 되었습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지식의 최전선>(700여 쪽)이란 제목으로 과거 출간 되었던 책이, 변화된 세상에 걸맞는 새로운 지식들로 무장한 채 돌아 왔습니다. 각각 인문, 문화, 사회, 과학 분야를 다루는 네 권의 책은, 모두 21세기 현대학문의 최신 화두를 품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리고 이번 주도 역시, 참 많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심리학의 고전 <마음의 해부학>이 번역 출간 되었습니다. <나를 찾는 셀프 심리학>에서는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왜 사는지도 모른 채 그냥 남이 바라는 대로 사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삶을 찾을 것을 요구하네요. <경성상계>, <한국사傳 2> 등 다채로운 역사 신간들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크고 두꺼운 책들을 너무 많이 담았더니 벌써 배가 꽉 찬 걸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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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berry watches 2011-12-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학의 최고봉, 율곡 이이 선생의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16세기 조선에 대한 율곡의 17가지 화두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생각을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몇 가지 사실을 밝혀 두겠습니다.  

1. 7살, '여름 성경 학교'에 가서 나시티와 반바지를 입고 '캔디바'를 먹음. 23살, 뒤늦게 간 군대 훈련소에 자리한 교회에서 활동복을 입고 '핫브레이크'를 먹음.

2. 산타를 믿은 건 9세, 12월 15일 경까지. (결과적으로 그 해,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음)

3.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감명깊게 읽음.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이다. 그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었을지 생각해보라' 하는 부분)

4. 시간이 난다면 읽어 볼 '책'들 중 가장 앞부분에 <성경>이 자리하고 있음.

5.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등을 즐겁게 보았음. 그 외 일당들의 저작 역시 재미있게 즐기는 편. (가끔씩 일반화의 오류 혹은 흑백논리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음)

대략 이 정도로.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오늘 소개시켜 드릴 책은, 샘 해리스의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나, 기독교 에세이집(?) 같은 표지를 하고 있지만 실은 어마어마하게 논쟁적인 책이지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작가의 전작은 <종교의 종말>. 그 무시무시한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샘 해리스는 "리처드 도킨스, 다니엘 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함께 종교적 도그마와 지적 설계론을 비판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논자"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작년 여름 <만들어진 신>의 뜨거운 논쟁부터  올 초 출간된 <신은 위대하지 않다>와 <자비를 팔다>를 거쳐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까지 오게 된 것. 어떤 내용인지, 무엇이 뜨거운지는 굳이 여기서 다시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다른 책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 편지 형식을 빌고 있습니다. "이 형식은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니면서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라고 옮긴이는 밝히고 있습니다. 악마 삼촌이 조카에게 보내는 '인간 유혹법',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굉장히 쉽게 읽힙니다.

2. 제목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독교 국가', 그 중에서도 53%가 창조론을 믿고 있는 '미국'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C.S. 루이스의 말을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도대체 미국이 기독교 국가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야말로 덜덜덜 하지 말입니다)

3. 얇습니다. (마찬가지로 들고 다니기 즐거운 사이즈의 <자비를 팔다> 보다도 15페이지가 적습니다) 따라서 한 문장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펀치를 날리는 날렵한 복서처럼.

공통점은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논쟁적이라는 것! 어때요, 뜨거운 논쟁의 한 가운데로 함께 가보실래요? (Shall we?)

* 이런 분께! : 기독교신자(무신론자/불교신자/이슬람교신자/제수이트교신자 등등)라면, 현대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한 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종교 관련 논쟁의 뜨거운(Hot!) 맛을 보고 싶으시다면
* 이 책도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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