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지 마세요. 책에 다 있어요. 자연과학책 3천 권만 읽고 나면 질문이 자연히 해소됩니다”
 
좋은 선생님이라면 질문을 유도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박문호 박사님은 다르다. 질문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품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오랫동안 질문을 품으면 그것이 바로 공부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질문을 오랫동안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 질문은 스스로 사라진다고 하신다.
 
얼마 전 정현종 시인의 강연을 들었다.
노시인은 어린 시절 책에서 본 문구에 너무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셨다.

'우리 은하에 천억개의 별이 있고, 우주에는 천억개의 은하가 있다'
 
또 초신성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셨다.
 
'초신성에 대한 기사가 났어요.
별이 죽으면서 내는 흩어지는 것 속에 들어있는 물질들,
그 광물들이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이에요.
우리 몸속에 있는 게 다 지구땅덩어리에 있고,
별들을 구성하는 물질로 우리 몸도 구성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예전부터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하던 얘기가
대단히 과학적인 얘기였구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그때 쓴 시를 들려주셨다.
 
너 반짝이냐 나도 반짝인다
우리 칼슘과 철분의 형제여
멀다는 건 착각
떨어져 있다는 건 착각
이 한 몸이 삼세며 우주
죽어도 죽지 않는 통일 영물

 
우주와 은하가 낭만적이라면 낭만적이지만, 여튼 어린 노시인에게 감명을 준 문구는 천문학자들이 밝혀낸 과학적인 사실이었다. 시인은 그때부터 이미 자연과학을 경이로움의 대상으로 받아들였으리라.
 
이 책은 박문호 박사님이 중학교 때 만난 책의 한 구절로부터 시작된 책이다.
그 구절은 다름아닌 정현종 시인의 다리를 풀리게 만든 바로 그 문장이었다.

'우리 은하에 천억개의 별이 있고, 우주에는 천억개의 은하가 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문장을 만난 박문호 박사님은 언젠가 이 말 뜻을 이해하겠다고 결심했다. 질문을 가슴 깊이 품어 안고 점점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우주, 은하, 지구, 생명, 인간, 뇌... 새로운 질문이 생겨남과 동시에 낡은 질문은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질문은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지고 알아야 할 것은 많지 않았다.
 
낡은 질문을 버리는 방법을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인간의 의식에서 뇌의 발생, 포유류의 진화, 척추동물의 진화, 진핵세포, 원핵세포, 지구 환경의 변화, 초신성의 폭발, 빅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 작업은 심리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 지구과학, 천문학, 입자물리학의 학문 영역을 아우르는 것이다. 문과와 이과의 벽, 학과 간의 벽, 학회 간의 벽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쉽지 않은 통섭의 노력이 30년 동안 계속되었다.

드디어 2004년, 인문학 공부 단체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뇌와 생각의 출현>이라는 강좌를 열면서 수강생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 수강생 중에 출판사 휴머니스트의 편집주간인 선완규 주간님이 계셨나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과학책을 낸 적이 없는 휴머니스트가 박문호 박사님의 책을 내겠다고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2007년 불교TV에서 <뇌와 생각의 출현> 28회 강좌가 방송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경이로운 자연과학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몇 년 전 우리 사회에 '통섭'이라는 화두를 던진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선생님도 통섭의 현장을 주목하셨다.
 
지금 우리는 이제 막 출간된 <뇌, 생각의 출현>이라는 책을 만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풀어내기 위한 한 연구자의 30년 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한 인간의 역사이자 우주의 역사이다. <뇌, 생각의 출현>은 137억년 전의 빅뱅에서부터 의식의 출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한 달음에 내쳐 달린다. 이 책은 이러한 접근이 통섭의 시대에 와서야 드디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재천 교수님도 이 책을 우리 사회에서 '통섭'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재천 교수님이 '통섭의 시대'라는 윤곽을 그려냈다면, 박문호 박사님은 천문학, 생물학, 물리학 등의 자연과학을 하나로 묶어 '뇌'로 통섭한 최초의 연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이해한다. 이 책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주는 책이기도 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뇌, 생각의 출현>은 인간의 의식을 우주적 스케일에서 보는 관점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은 읽는 사람의 뇌를 흔들어 놓는다.

“첫 독자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생명이라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꼈고, 인간임에 감사했다. 또 책을 따라 우주에서 지구로 세포로 다세포 생명체로 인간으로 인간의 뇌와 생각으로 갔다가 다시 우주로 돌아가면서 그동안 나를, 나의 생각을 가둬두었던 고정관념들이 수없이 깨졌다.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자연과학 책을 읽고 마음이 이렇게 여유로워질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 경험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 이 책은 또한 나를 바꾼 책이다.
아마 모든 독자가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 이정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연구원이자, 독서클럽 100북스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박문호 선생님과 함께 뇌 공부를 해왔다.


* 원고를 제공해주신 이정원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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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의학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 (2)
    from 正中龍德 2008-11-23 19:54 
    뇌, 생각의 출현 - 박문호 지음/휴머니스트 기존에 의학생물학, 생리학, 신경생리학, 해부학등을 배웠거나 현재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 이 책을 지금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일반인에게는 좀 딱딱한 내용이지 않을까 합니다만 중의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선행학습으로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사람의 몸 특히 뇌가 어떻게 진화해왔고 그 작용이 어떤지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일생중에 사용하는 뇌가 아주 적다는 일반적인..
 
 
11$No.25 2008-11-1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상해봐야겠네요.

Sonnyhill 2008-11-21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꼭 한번 도전해 볼만한 가치있는 책입니다.

하이드 2008-11-2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인문학 책인가요? 읽다가 머리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과연, 읽었다..고 해도 좋은 것인가.라는건 차치하구요. ㅜㅠ 와- 페이퍼만 보면 낚이기 십상; 서점에서, 혹은 미리보기로라도 꼭 확인하고 사세요.

MD페이퍼로 여러번 올라와서 보게 되었는데, 진짜 원망이 한가득.

활자유랑자 2008-12-0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No.25 님, 링크 님 / 네, 분명 도전할 가치가 있는 좋은 책입니다. :)
하이드 님 / '낚시'로 느껴지셨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ㅜㅜ 음식이 그렇듯 책도 궁합이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제가 언젠가 "신문 서평처럼 사실 만만치 않은 내용임에는 분명합니다"라고 썼듯 어려운 내용임이 분명한데, 저는 그 '어려움'이 좋았거든요;) 다음에는 더욱 좋은 책을 소개해드릴게요!
 

대학자의 뜨거운 삶과 마주하고
내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울림이 있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이며, 그런 책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또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항상 그 누구도 읽기 전에 따끈따끈한 원고를 독점하는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설레는 맘으로 초고를 읽었을 때 나를 한 사람의 독자로 감동하게 만드는 원고는 그리 많지 않다. 어디를 고쳐야 좋을지,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를 생각해야 하는 편집자 신세 탓이다. 그러나 낯익은 9명의 선비를 삶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선비의 탄생>은 금세 나를 끌어당겨 한 사람의 독자로 만들어버렸다.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나는 몇 번이나 가슴이 울컥했다. 부모의 묘를 3년간 지키는 시묘살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은 진정 사람을 대함에 소홀함이 없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야 사람마다 다르겠냐만은 선비들의 마음은 좀 더 절절했다. 병으로 자식을 잃는 일이 다반사였고 아끼던 친구의 목숨이 정치의 소용돌이에 하루아침에 사라지던 시대였다. 그러나 고통을 많이 겪는다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아픔을 이겨낼 만큼 더 마음이 깊고 넓어야 한다. 선비들도 친구에게 위로받고 가족에게 의지하며 고된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대학자 퇴계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아내를 성심성의껏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처가의 살림도 살폈다. 노년의 남명은 태풍이 몰아치는 길을 뚫고 해인사로 향했다. 평생을 두고 위로하고 독려한 친구 대곡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송강은 친구 율곡이 서거하자 이승보다 차라리 저승이 좋다며 통곡할 만큼 그를 아꼈다. 아홉 자식 중 6남매를 가슴에 묻은 다산은 막내 농아를 잃고 자신이 무능한 탓이라 자책했다.
 
선비들의 애환에 나는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비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기쁨과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큰 선비로 거듭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모르고서 어찌 한 사람을 정치적, 학문적 업적으로만 평가하겠는가. 나는 새삼 선비들이 내 할아버지, 내 스승 같이 느껴져 그들을 좋아하게 돼 버렸다.
 
<선비의 탄생>은 여느 역사서답지 않게 자꾸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진정 마음을 다하고 있는가. 변치 않고 옆을 지켜주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고마웠다. 오랜 시간 심력을 다해 이 책을 집필하고 나에게 원고를 맡겨주신 김권섭 저자님과의 인연도 고맙기만 하다. 부모님, 은사님, 친구... 모두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당신과 나의 인연이 참 소중합니다’라는 고백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다산초당 기획편집팀 이하정 매니저


* 원고를 제공해 주신 다산초당 기획편집팀 이하정 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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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추의 역사>가 출간 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의 역사'를 탐구했던 전작 <미의 역사>에 이어 이번에는 인간의 문화 속에 존재했던 '온갖 추한 것들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딱딱한 미학이나 예술사를 연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술적인 도판과 문학 작품의 인용문, 거기에 에코의 맛깔나는 글들이 어우러진 완벽한 '대중 교양서'라고 할까요.

깊어 가는 가을(秋), 에코와 함께 추(醜)의 역사 속으로 떠나 보시는 것은 어떨지…

아래 인터뷰는 2007년 10월, 이탈리아 현지에서 <추의 역사> 출간에 맞춰 진행된 인터뷰를 옮긴 것입니다. 인터뷰 자료를 제공해주신 열린책들 편집부에 감사 드립니다.


---------------------------- 이탈리아 주간지 '오지Oggi'와의 인터뷰 (2007년 10월 24일) ----------------------------

진행자: 추의 역사를 쓰게 된 이유는?

에코: 진부한 대답일 수 있지만 저는 졸업 논문에서 미학을 다루었고, 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름다움과 추함은 내 직업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직접적인 이유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1961년에 봄피아니 출판사와 일하고 있었는데, 그때 <미의 역사>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산 등의 문제로 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는데, 모든 자료들을 서랍 속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한번 시작한 일을 끝마치지 못할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조금 실망스러웠죠.

그러다가 40년이 흐른 뒤에 CD로 만들 만한 주제를 찾아 달라는 요청받고, 비록 새로운 기술들로 예전의 화보들이 더 이상 쓸모없게 되기는 하였지만, 그때 생각했던 것을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CD에 담긴 <미의 역사>가 나오게 되었고 뒤에 책으로도 나오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미의 역사』가 27개국에서 번역되자 출판사가 그것과 유사한 책의 출판을 요청하였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추의 역사>입니다.

진행자: <추함은 아름다움의 반대말이다>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에코: 아니지요. 무엇보다 아름답지 못한 것이나 사람이 반드시 추한 것은 아니니까요. 삶은 <그렇고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추함은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다양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루벤스의 그림 속의 한 여인이 오늘날 패션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항상 몇 가지 기준을 따라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아름다운 코(비록 브리지트 바르도의 코와 그레타 가르보의 코가 다르기는 하지만)는 일정한 길이를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반면 추한 코에 대해서는 피노키오의 코에서부터 넓적코, 콧구멍이 셋인 코, 종기가 많이 난 코, 술주정뱅이의 붉은 코 등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상이 가능하지요. 따라서 추함의 이미지는 아름다움보다 어마어마하게 풍부합니다. 이 책을 펼쳐 보면 그것을 알게 될 겁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추함의 유형은 얼마나 되나요?


에코: 비슷한 말을 사전에서 한번 살펴보세요. <추하다>라는 단어의 비슷한 말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불쾌하다>, <끔찍하다>, <역겹다>, <비위에 거슬리다>, <그로테스크하다>, <징그럽다>, <혐오스럽다>, <밉살스럽다>, <추잡하다>, <더럽다>, <역겹다>, <거부감 들다>, <음란하다>, <흉측하다>, <욕지기나다>, <구역질나다>, <구리다>, <기분 나쁘다>, <무시무시하다>, <천하다>, <천박하다>, <비열하다>, <공포스럽다>, <나쁘다>, <볼품없다>, <흉하다>, <몰골사납다>, <색다르다>, <찌그러지다>, <일그러지다> 등등이 있습니다. 혐오감을 불러오는 추함이 있는가 하면 연민을 불러오는 또 다른 추함이 있는 것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당신의 책에 있는 추한 사람이나 상황들에 대한 수많은 묘사들이 실상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던데요.

에코: 우리는 추함 자체의 표명(똥, 썩은 시체, 악취를 풍기는 주름투성이의 생명체)과 형식상의 추함이라 부르는 것, 예를 들면 추하지는 않지만 이가 빠진 모습의 얼굴과 같은 불균형에서 빚어진 추함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 종류의 추함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있지요. 이미 옛날 사람들은 <악마도 잘만 묘사된다면 아름다울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추함이라도 그것에 대한 충실하고 효과적인 예술적 묘사에 의해서 만회될 수 있습니다. 중세에 (이 시기는 고통과 괴로움, 죽음, 악마의 묘사가 매우 중요하였던 때였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악마의 추함이 잘만 묘사가 된다면 그 이미지는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이 책이 일종의 예술사를 다룬 것이라고 보아도 되나요?

에코: 그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추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의 역사입니다. 다만 과거에는 이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록들이 사람들이 추하다고 여기던 것을 묘사하였던 예술 작품이었던 반면에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진 등과 같은 다른 소재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진행자: 왜 추함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서양 문명에만 국한시켜 분석하게 되었나요?

에코: 이 문제는 미의 역사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고대 문명과 미개인들에게서도 예술적인 유물들을 발견하였지만 이러한 것들이 미적인 즐거움을 유발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종교와 관련된 두려움 또는 환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인지를 말해 주는 이론적인 문서들을 이용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괴물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벽화나 가면, 조각들이 원래의 이용자들에게 같은 의도나 효과를 보여 주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시적이고 철학적인 문헌들이 풍부한 다른 문화들(인도나 중국, 일본 문화와 같은)에서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들과 형태들을 볼 수는 있지만, 문학이나 철학 서적들을 번역함에 있어서 비록 어떤 개념들을 <아름답다> <추하다>와 같은 서양의 어휘로 번역을 하는 데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개념들이 얼마만큼 우리 것들하고 같은 것인지를 확립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미개하거나 원시적인 이미지가 서양인에게 무섭게 비칠 수 있지만 원주민에게는 자비로운 신을 묘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채찍질을 당하고 피를 흘리는 예수의 굴욕적인 모습이 기독교인에게는 호감이나 연민,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반면에 이러한 끔찍한 모습이 비유럽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흉측하게만 비칠 수 있습니다.

진행자: 책을 보면 아름다움과 추함은 결국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데요.

에코: 그렇습니다, 이 책은 추함과 아름다움의 이론이 아니라 이러한 개념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분명 아름다움과 추함의 개념은 문화와 시대를 통하여 변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크세노파네스는 <황소나 말과 사자 등이 손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인간처럼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말은 말과 비슷하게, 황소는 황소 비슷하게 신을 그려 낼 것이다. 그리고 신들에게도 자신들과 똑같은 몸을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볼테르는 <두꺼비에게 미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 두꺼비는 작은 머리에서 튀어나온 왕방울처럼 아름답고 둥근 두 눈, 넓고 납작한 목, 노란 배와 갈색 등을 가진 암컷 두꺼비가 아름답다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미의 인식에 대한 시대를 초월하는 변하지 않는 기준들은 없는 것인가요?

에코: 우리는 아름다움과 관련하여 늘 비율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율에 대한 생각은 바뀌어 왔죠. 비율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중세의 철학자는 고딕 성당의 형태와 면적을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이론가는 1500년대의 교회를 생각하였습니다. 중세의 인물에게 르네상스 시대의 교회는 적절한 비율을 벗어난 것이었던 반면,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고딕 성당의 비율이 부조화스럽고 야만적으로 비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름다움의 정의 속에서 아름다움의 즐거움이 소유욕(비너스와 사랑에 대한 욕구가 없을 때 밀로의 비너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을 배제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거의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함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상황이 보다 복잡해집니다. 감정적인 동조 없이 평온하게 감상할 수 있는 추함이 있기는 하지만 추함은 종종 역겨움이나 거부감 같은 감정의 반발을 불러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때문에 추의 역사는 보다 흥미롭고 다양합니다.

진행자: 예술과 일상생활에서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에코: 우리는 상반되는 모습을 한 모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도처에서 듣게 됩니다. 이제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대립이 더 이상 미학적인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죠. 영화와 텔레비전, 잡지, 광고, 패션은 고대의 모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아름다움의 모델들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한 화가에 의해서 그려진 브레드 피트나 샤론 스톤, 조지 클루니, 니콜 키드만의 얼굴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미학적, 성적) 이상들과 일체감을 보여 주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에게는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을 행동을 하는 록 가수들에게 열광하고 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매릴린 먼로보다는 매릴린 맨슨의 모습과 닮게끔 화장을 하고 문신을 새기며, 자기 살에 피어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대중매체들에 의해서 과장된) 이러한 행동들이 (전 세계 인구 전체와 비교할 때) 소수에 의해 행해진 그렇고 그런 현상들이 아닌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피상적인 모습들을 통하여 우리를 엄습해 오는, 알고 싶지 않은 보다 근본적인 추함을 떨쳐 버리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끔찍한 장면들을 늘 접하게 됩니다. 우리는 부풀어 오른 배에 해골 같은 모습의 아이들이 배고픔으로 죽어 가는 이미지들과 침략자들에 의해서 강간을 당하는 여인들의 이미지, 가스실을 향하는 뼈만 앙상한 사람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연상시키는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 각자는 이러한 것들이 역겨움과 두려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단지 도덕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우리들은 주저 없이 추함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끝내 이것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바꾸어 내지 못합니다. 따라서 예술이 일그러진 얼굴들과 흉측해진 신체들을 묘사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들을 위협하는 추함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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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추의 역사>는 혐오감에 관한 깊은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깊이에서 부족한 부분을 백과사전적인 풍부함과 생생한 묘사의 넓이로 만회한다. 이 책은 서구 미술과 문학에서 찾아낸 수많은 추의 예들 사이사이에 짤막한 역사적, 철학적 해설을 곁들이면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의 대중문화와 아방가르드 문화까지, 그 주제를 한눈에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독자들은 요란하거나 음란한, 또는 역겹거나 끔찍한 그간의 형태에서는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던 추의 한 측면을 발견하느라 몹시 바쁠 것이다. ― 『뉴욕 타임스』

전 시대를 아우르는 미학의 핵심적인 두 개념 사이의 상호 연관성에 대하여 정통한 에코는 추의 역사가 미의 역사의 반대 면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 「일 솔레 24 오레Il sole 24 ore」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추함이 우선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끌어들였다가 그 뒤에 곧바로 내쫓아 버린다고 이야기하였다. 결국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매력을 끄는 것이 아름다운 것'처럼, 추한 것이 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추한 것이다. 추함은 아름다움의 반대가 아니라 그 일부이다. ― 「라 스탐파La Stam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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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보위를 들으며 아이라이너를 그리던 남자. 멀대 같이 큰 키에, 어딘가 풀린 눈을 하고 있지만 실은 그리 위험하진 않은. 워즈워스의 시를 외우고, 뉴욕에 가고 싶어하고, 시와 소설과 노랫말을 쓰던 남자. 낮에는 고용센터에서 일을 하지만, 밤에는 발작적으로 춤을 추며 노래를 하던, 댄스 댄스 댄스 댄스 투 더 라디오, 라며 팔을 휘젓던 그 남자.

영화 '콘트롤'과 그 안에서 그려진 이안 커티스 얘기다. 안톤 코뷘의 이력에 비추었을 때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무난한 영화였지만 그렇기에 감동적이었다면. 밥 딜런을 그렸던 영화 '아임 낫 데어'와 비교하면 명확하게 갈리는 지점. 여기에서 불거지는 것은 역사와 그 재현의 문제다. 일어났던 사건으로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 역사를 다시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 라는.

(물론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영화를 보며 든 생각은- 아 정말 어떻게 저렇게 똑같은 배우들을 캐스팅 했을까, 노래는 누가 하는 거지?, 버나드 섬너는 (웃음), 피터 훅은 분쟁이 해결되지 않아 '후키'라고만 나온걸까, 그렇다면 New Order의 새 앨범은 당분간 요원한 걸까 같은…)

그래서 일단은, 역사와 그 재현에 관한 몇 권의 책들로 시작하는 이번 주의 만선.

 

 

 

 

 

 

 
지난 금요일이 10월 혁명의 91주년이었다고 한다. (10월 혁명은 당시의 구력 기준으로, 현재의 역법으로는 11월 7일이라고) 그에 맞춰 나온 책이 바로 <10월 혁명>이다. 부제는 볼셰비키 혁명의 기억과 형성. 기존의 연대기적 서술을 탈피, 새로운 역사 서술을 시도하는 책은 그러나 표지의 '요즘 취향'(?) 글자체와는 달리 그리 녹록한 책은 아니다.

 "러시아 10월 혁명이 어떻게 해서 '성공한 혁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 그 형성적 측면을 '기억'과 '내러티브'라는 테마를 통해 살피는 책이다. 또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모더니즘적 역사 서술을 피하고 사건의 주체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구술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혁명으로서의 사건'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러시아 혁명사 서술과 다른 차별점 및 신선함을 갖는다." - 알라딘 책소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혁명이지만 역시 '기억'의 문제로 혁명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책은 <문화 대혁명 - 또 다른 기억> 이다. '문혁'이야말로 엇갈리는 평가의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혁명임이 분명할텐데, 그 '사이'를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문화대혁명 시기 저자가 노동자의 신분으로 조반조직을 전두지휘하면서 경험한 일을 서술한 회고록이다. 조반조직의 세력 확장으로 열여덟의 나이에 당시 회사 혁명위원회 부주임까지 올라가고, 후난성 치안 업무까지 담당하게 되지만, 결국 문혁이 끝나면서 그도 숙정당하는 처지가 된다. 그는 문혁 10년간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문혁이 단편적이라고 반박하며, 노동자들과 홍위병.중앙.당시 기층 민중들과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 알라딘 책소개

이번엔 <폴 포트 평전>이다. 킬링 필드의 기억. <체 게바라 평전>으로 유명한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의 26번째 책은 킬링 필드를 다시 한번 소환하면서, 그 중심에 섰던 폴 포트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한다.

"저자는 타인을 배려하던 젊은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끔찍한 정권의 지도자로 변해가는지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어떻게 캄보디아를 도탄에 빠뜨리는 최고기획자가 되었는지 냉정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일의 기획자는 폴 포트만이 아님을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폴 포트를 캄보디아 현대사와 아시아 전체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조명함으로써 다각도로 해부한다." - 알라딘 책소개

<사회 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은 위의 세 책과는 조금 다르다. 속칭 <사사방>으로 불리던 책은 사실 우리 세대의 책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이진경'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렸던 책이 다시금 '개정증보'라는 형식으로 우리 곁으로 되돌아 온 것. 이진경은 물론 끊임없이 노력하는 학자이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함의는 무엇일까? 이 '사회과학서적'을 둘러싼 기억,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1980년대 사회구성체논쟁을 대표하는 저작이었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의 증보판. 초판 이후 20년간의 한국사회 변화를 보여 주는 새로운 글 4편을 더했다. 사회과학의 방법론으로서의 '사회구성체론'에 대한 논의를 직접적 주제로 삼았다." - 알라딘 책소개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은 제목 그대로 심리학을 통해 조선왕들의 내면을 분석하고 있다. 옛말처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면, 결국 왕 또한 사람일 터. 오히려 범부 보다 복잡하면 복잡했지 결코 편안하지만은 않았을 그 속을 심리학의 틀을 통해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경성, 사진에 박히다>는 '사진'이라는 신문물을 통해 우리의 근대를 들여다 보는 책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박혀있는 '근대'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사진에 찍힌 근대'와, 그 자체로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채 바꾸었을 '사진'이라는 당대의 신문물과 그로 인해 바뀌어 가는 근대. 생각만큼 도판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럼에도 의미있는 작업임은 분명하다.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선비의 탄생>은 위의 두 책과 비교하면 그리 멀리 나가지는 못한 책이다.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는 말이다. 물론 새로운 것만이 의미있는 것은 아닐 터. '사람다움'이 점점 사라지는, '선비 정신'이 도대체 뭥믜? 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요즘, 옛 선비들의 사람됨과 그들이 제시한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살피는 것도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두 바퀴 탈 것>은 제목과 표지에서 드러나듯 자전거에 관한 책이다. 제목과 표지에서 잘 느껴지지 않지만 자전거에 대한 '거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다. 자전거라는 탈 것이 어떻게 발전했는 가에 관한 과학사 일뿐만 아니라, 자전거의 발달과 보급에 따라 우리의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나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고급스런 교양서라는 것. 실물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하드웨어 적으로 '그럴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내용도 좋다) 자전거로 출퇴근 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왜 자전거냐?"라고 물을 때, 단지 "건강에 좋아서"라고 하는 것보단 훨씬 폼나지 않겠는가.

<추의 역사>는 <미의 역사>에 이은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다. 시각 문화와 예술 작품 속의 '추'의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을 탐구하며, 역사 비평을 통해 '추'의 기호학을 구축하고 있다. 품질 좋은 도판에 에코의 글. <미의 역사>를 읽었거나 읽지 않았거나, 군침 도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앨피 출판사의 Critical Thinkers 시리즈 16번째 책, 바로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다. 이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의 하나다.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표지에 내용 또한 훌룡하다. (시공 로고스 총서 또한 균형잡힌 입문서로 손색이 없는 시리즈이지만, Critical Thinkers 쪽이 훨씬 더 압축되고 일관된 주제 선택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로고스 총서는 전부 절판 상태이다)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푸코의 삶과 사상에 대한 최적의 입문서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 주말에 읽은 모리스 나도와 바르트의 대담 중 인상 깊은 구절이 있어 옮겨 놓는다. 일테면 '겨우 존재하는 인간' 으로서의 '나'와 그 '조건'을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말.

모리스 나도 : "모리스 블랑쇼가 비평가란 비非 독자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잡지나 신문의 편집장은 이런 면에서 제곱의 비독자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독서'하지 않으면서 '독서'합니다. 실제로 진정한 독서란 전자의 독서를 말하죠. 그런데 이 전자의 독서, 현재 내가 종사하고 있는 직업 속에서는 나는 그걸 할 수 없습니다. 요컨대 나는 독서할 의무가 없는 순간에만 진정한 독자가 됩니다."

롤랑 바르트 : "통상 사람들은 극히 잘 다듬어진 완곡어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책을 보았다고 말하죠. 그들은 그것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현재 내가 종사하고 있는 직업 속에서' 나는 아마 세제곱 정도는 되는 비독자일 것이다. 결국 이것은 내가 '본' 책들의 목록이고, 그것을 옮기기에도 실은 벅차다. 쌓여있는 책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꽤나 가혹한 일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지만, 그것은 '제곱'의 '목숨을 건 도약'이 된다!

"공통 규칙을 갖지 않은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교환)은 반드시 '가르치다 - 배우다' 또는 '팔다 - 사다' 관계가 될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 <탐구 1> 중)

'가르치다 - 배우다'는 고진의 논리에서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즉 그것은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나와 '타자'의 비대칭성을 전제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조건'인 것이다. (언어와 비극!) 물론 그것은 마르크스를 빌자면 '목숨을 건 도약'이다. 그렇다면 내가 쓰고 있는 이런 글은 (고진 적인 의미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는 동시에 '팔기'를 시도하고 있으니 분명 '목숨을 건 도약' x 2 이 아닌가?

(계속 이런 헛소리를 하다간 정말로 목숨이 남아나지 않겠네요… )

* 헛소리는 그만두고 배는 떠납니다; 추운 월요일 아침이네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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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berry sport 2011-12-2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제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조건`인 것이다. (언어와 비극!) 물론 그것은 마르크스를 빌자면 `목숨을 건 도약`이다. 그렇다면 내가 쓰고 있
 

정민 교수의 새 책 제목이 <아버지의 편지>라니, 무언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 본 기억은 없지만, 그 말은 내게 한 작가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는 가끔 그렇게 형광펜으로 줄을 그은 신문기사를 편지봉투에 넣어 보내오곤 했다. 언젠가는 편지봉투를 뜯어보니 조선일보 기사가 나왔다. 그때까지 나는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거나 조선일보에 글을 실은 적이 없었다. 펼쳐보니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유미리에 관한 기사였다. 아버지는 유미리라는 이름에, 그리고 '방황과 절망이 빚어낸 문학성'이라는 홍사중씨의 칼럼 제목에 각각 붉은 형광펜 칠을 해놓았다.

동봉한 편지에 아버지는 "나는 너를 믿는다. 네 소신껏 희망을 갖고 밀고 나가거라. 어차피 人生이란 그런것이 아니겠냐"라고 써놓은 뒤, '아니겠냐'의 '겠'과 '냐' 사이에 'V자'를 그려놓고 '느'를 부기했다. 그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나는 '아니겠냐'라고 쓴 뒤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중간에 '느'자를 삽입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이가 생긴 뒤에야 나는 그게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알게 됐다.

- 김연수, '뉴욕 제과점' 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p.74)

그리고, 바로 그 작가와 얼마전 만난 인터뷰 자리에서 잠시 틈을 타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저희 과 행사에 오셔서 뵌 적이 있는데, 작년에도 또 오셨다면서요?"

"아… 정민 선생님이 전화를 주셔 가지고요. 시간 있냐, 하시는데 아마 그 몇해 전에 제가 갔었다는 걸 모르셨던 모양이에요. ("아, 그때는 안식년이셨을 거에요") 네… 그래서 뭐 못간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웃음)"

그렇다. <아버지의 편지> - 김연수 작가 - 정민 교수로 이어지는 이 '크리'의 동시성(synchronicity)! 그것이 이 좋은 금요일에 꼼짝없이 이런 페이퍼를 쓰게 만든 것. 아 이 가혹한 운명이란…


어쨌거나 정민 교수에게는 그런 면이 있는 모양이다. 거절하기 힘든 면이. 그에 더해, 여느 대학 강단에서 보기 드물게 조는 학생들의 꿀밤을 때리기도 하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학생들(?)을 준엄하게 꾸짖기도 하는, 그런 모습이. 그러니까 '아버지 같은'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그래서 내게, 대학 내내 요리조리 빠지며 그 분의 수업을 듣지 않도록 만들었던 모습이.

하지만 자식은 언젠가 자라 또 다른 자식의 아버지가 되고, 제자는 어느새 자라 스승의 책을 판다. "그게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는 온전히 알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그의 책을 눈앞에 놓고 있는 오늘, 그 마음만은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을 것만 같고(그래야 할 것 같고), 그래서 부질 없는 말을 자꾸만 늘어놓게 되었다는 이야기. ('왜 이 페이퍼는 개인적일 수 밖에 없나'에 대한 길고 지루한 변명!)

너무 늦었지만 각설하고 들어가면,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편집장의 선택'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이다)

"선인들의 생동하는 삶과 사유를 오롯이 담은 글을 우리에게 소개해 온 정민 교수가 이번엔 옛 아버지들의 편지를 소개한다. 오늘날 부모들이 자식의 대학입시에 목을 매듯 자식의 과거 급제를 위한 노심초사에서부터, 직접 담근 고추장을 보내니 사랑채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함께 먹으라 이르는 자상함에 이르기까지. 이황, 유성룡, 박지원 등 우리에겐 그저 역사 속 인물로만 남아 있는 인물들의 자식 사랑이 우리의 부모와 다르지 않아 더욱 애틋하기만 하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편지의 주인공들은 이황, 백광훈, 유성룡, 이식, 박세당, 안정복, 강세황, 박지원, 박제가, 김정희- 총 10명의 인물들. 눈익은 인물도, 조금 눈설은 인물도 있지만 시시콜콜하고 노심초사하며 사려깊기도 한 편지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모두 낯익은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것.

아버지의 모습이야 사실 설명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장 즐거웠던 편지 한 토막을 옮기는 것으로 부족한 설명을 대신하려 한다. 역시나 연암 박지원의 '고추장 편지'. 사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 편지이고, 책 속에는 연구자가 아니라면 모를, 그렇지만 멋진 다른 편지들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아쉬움이 커서.



직접 담금 고추장 한 단지를 보낸다 - 안의에서 종의에게 보낸 편지


'아동기년(我東紀秊)' 2권을 지었다. 실로 소략한 점이 많으니 탄식할 만하다. 비록 그렇긴 해도 상고하여 살피기는 좋으니, 모름지기 뇌아(차남 종채)에게 주어 때때로 자세히 살피게 하는 것이 좋겠다. 어려서 총명할 때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박씨가훈(朴氏家訓)' 1권은 올라갔더냐? 선조의 휘자(諱字)는 푸른색 종이로 가리면 어떻겠느냐? 이 책은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소학감주(小學紺珠)'는 간신히 베낀 것인데 잃어버렸다니, 어찌 애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네가 서책에 대해 성의 없기가 이와 같으므로 늘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나는 문서를 살피는 여가에도 오히려 한가한 일에까지 미쳐 때때로 책을 저술하고 혹 법첩을 임서하며 붓 글씨 연습을 한다. 너희가 1년 내내 무슨 일을 일삼고 있는 게냐?

내가 4년 간 '강목'을 열심히 읽어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 세 번 되풀이해 읽었어도, 늙고 보니 책만 덮으면 문득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작은 책자 하나를 만들어 초록했지만 전혀 긴요하지 않은 책이 되고 말았다. 나는 비록 손발이 근질거려 한 것이라 스스로 그만둘 수는 없지만, 너희가 심심하게 날을 지내며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는 생각을 하니 어찌 매우 애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젊을 적에 이와 같다면 장차 늙어서는 어찌 지내려는 게냐? 허허!

고추장을 작은 단지로 하나 보낸다. 사랑에 놓아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겠다. 이것은 내가 손수 담근 것인데, 아직 잘 익지는 않았다.

말린 고기 세 접
곶감 두 접
볶은 고기 한 상자
고추장 한 단지.

(본문 200~201페이지, 편지 전문)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아버지의 마음, 그러니까 "'아니겠냐'의 '겠'과 '냐' 사이에 'V자'를 그려놓고 '느'를 부기"하는 마음 같은 것이 애틋하고 또 절절하게 다가와 자꾸 자꾸 곱씹게 된다. 그리하여, 대학 4년 내내 그 분의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는 스스로의 치기를 조금 뼈아프게 반성하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반성처럼, 이 또한 너무 늦은 것이 되어 버렸지만. 사실 이 늦은 반성조차 꽤나 부족한 것이겠지만.

"내게 보낸 편지에서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아버지는 쓰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겠냐'와 '아니겠느냐'가 어떻게 다른지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세월이 흘러서 나도 내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편지를 쓸 때쯤이면 그 차이를 알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나도 왜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는지, 왜 세상의 모든 불빛은 결국 풀풀풀 반짝이면서 멀어지는지, 왜 모든 것은 기억 속에서만 영원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던 어떤 작가처럼, 나 역시 깨닫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라고 스스로 위로 하는 수밖에.



* 그런데, 정민 선생님의 좀 '어려운 면',  그러니까 내가 위에서 '아버지 같은'이라고 표현했던 그 면이, 실상 손아래 사람한테만 보이는 모습은 아닌 모양이다. 정민 선생님의 스승인 이승훈 선생님은 언젠가 (그러니까 정민 교수가 안식년이었던 그 해) 학생들과 함께 갔던 학술 답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전해진다.

"아이고, 민이가 안오니까 이렇게 편하네"

** 그렇지만 그 사제지간은 또한 애틋하기도 한 모양이어서 지난 2004년에 출간된 이승훈 선생님의 시집 <비누>의 말미에, 정민 교수가 아래와 같은 멋진 글을 남기기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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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말하셨지 "○○○ ○○○" 라는 이상한 제목에 들어갈 아버지의 말씀은, 이 책을 읽으실 독자 분들의 몫으로 남기며 마무리 하겠습니다(;). 너무 개인적인 페이퍼가 되어 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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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이 2008-11-03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이라 더 재밌네요 ㅋ

활자유랑자 2008-12-01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탱이 님 / 이만치 시간이 돌아 다시 보니 역시나 부끄럽네요 ;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