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5
박민아.선유정.정원 지음 / 한국문학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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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박민아 외 / 한국문화사

 

 

과학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가 있지만, 19세기에서 찾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자연에 대한 이해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은 19세기에 시작되었다. 'science'라는 용어가 앎이나 학문 전반에서 점차 자연에 대한 앎으로 그 의미의 영역이 좁아진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이 시기에 'scientist'라는 단어도 생겼다.

 

 

학문의 융합을 이야기할 때, 과학과 인문이 만나는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어쩌면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문화는 과학과 인문뿐이 아니다. 과학과 인문학뿐만 아니라 과학과 예술, 과학 내에서도 서로 다른 분야들 간의 협력과 융합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 책은 과학과 다른 분야들 사이의 융합이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현재의 과학과 다른 분야 간 융합의 양상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과학이 철학이나 예술, 그리고 사회전반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오늘날과 같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얻기 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과학이 오늘날과 같이 성장하고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과학이란 학문을 알고, 현대과학과 다른 학문간 융합의 필요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예술, 철학, 사상, 종교, 대중문화와 과학의 관계를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살펴본다. 과학혁명은 16세기 유럽에서 코페르니쿠스같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우주론을 들고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변화는 17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 등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태양중심설과 같은 새로운 이론들이 과거의 이론을 제치고 인정받게 되었다.” 과학혁명을 통해 내용상의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방법론에 입각해서 자연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는 근대과학이 탄생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다.

 

 

과학을 인문사회학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과학학분야에서 가장 빈번히 거론되며, 또 가장 영향력 있다고 평가되는 저술은 무엇일까? 많은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1962년 출간)를 뽑는다. 코페루니쿠스의 천문학 혁명 사례를 연구하며 과학의 변화 과정에 대해 연구를 집중하던 쿤은 역사상 발생했던 과학에서의 큰 변혁, 이른바 혁명의 과정에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는 점을 인식했다. 이를 바탕으로 출간한 책이 과학혁명의 구조. 쿤의 패러다임(paradigm)’은 하나의 이론을 둘러싼 실험 방식, 교육 방식, 가치체계 등을 총괄하는 용어다. 쿤은 과학의 역사에서 하나의 패러다임이 주도권을 쥐고 과학계를 지배하는 긴 시기가 존재하는데, 쿤은 이 시기를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시기라고 불렀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챕터는 우주의 음악을 찾는 물리학자들이다. 물리학자들, 그중에서도 이론물리학자들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유명한 이론물리학자들 중에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들이 꽤 있다. 아인슈타인이 수준급의 바이올린 연주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물리학자가 되지 않았다면 음악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음악을,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를 사랑했다. 또 하이젠베르크는 어려운 피아노곡도 능숙하게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고 한다. 60번째 생일에 전문 음악인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은 방송을 타기도 했다.이론 물리학자들이 음악에도 선천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론물리학과 음악이 역사적으로 같은 기원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고대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은 우주와 음악은 모두 일정한 자연수의 비율로 표현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우주의 행성들 간의 거리가 조화로운 비율을 이루고,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의 현을 나누는 비율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공저자들은 독자들이 과학의 본모습을 더 잘 알고, 과학을 더 좋아하게 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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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던 사이언스 - 무엇이 왜 과학의 무대에서 배제되는가
현재환 지음 / 뜨인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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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던 사이언스』            현재환 / 뜨인돌

 

 

이 책엔 용의자 X’가 등장한다. 용의자 X가 즐겨 다루는 대상은 과학이다. 저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모티브를 잡았다. 주인공인 수학 교사 이시가미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야스코와 그녀의 딸이 전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탁월한 수학능력을 바탕으로 냉철하고 논리적인 계획을 세운다. 그 목적은 모녀의 혐의를 벗기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의 동창이자 라이벌인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가 이를 밝혀내고, 결국 이시가미는 자수한다.

 

 

정치, 사회면만 부각되던 한국의 일간지는 점점 과학기술과 관련된 문제들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광우병과 촛불 시위, 신종플루 사태, 삼성반도체 백혈병 논쟁, 후쿠시마 원전 사태이후 방사선 문제, 메르스 등등의 이슈들은 더 이상 우리의 일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곳에 용의자 X가 숨어있다. 아니 드러내놓고 활동한다. “과학 논쟁 과정에서 정부, 기업, 언론 등 권력기관이나 반대편의 시민운동가들, 또는 제3의 배후세력이 정치적, 상업적인 이유로 왜곡된 정보를 제공해서 진실을 오도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있다. 이시가미같이 진실을 은폐하거나 오도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는 유가와 같은 이들이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이 책에선 현대 과학기술 논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라는 용어를 빌리고 있다. 본래 언던 사이언스라는 용어는 미국의 과학기술자이자 과학운동가인 데이비드 헤스와 그의 동료들이 정부, 산업, 사회운동의 제도적 매트릭스 속에서 특정 지식에 대한 체계적 비생산이 이뤄진다고 주장하며, 그렇게 생산되지 않은 지식들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 낸 개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이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지금까지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떠한 종류의 지식들이 주로 생산되었는지, 그 결과 어떠한 종류의 지식들이 무시되고 배제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언던 사이언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언던 사이언스,수행되지 않은 과학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과학적 지식이 생산되고 사용되는 과정에서 왜 어떤 것들은 강조되고 어떤 것들은 배제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지식의 정치를 검토한다는 뜻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된다. 1부에선 용의자 X에게 이용당한 과학의 전형적인 사례들을 살펴본다. 유럽과 북미에서의 여성호르몬 연구, 일본제국의 조선인 연구, 나치 독일의 장애인 연구사례를 돌아본다. 2부에선 비록 형태와 양상은 다르지만 현대에도 과학지식의 생산이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들과 교차하면서 특정한 방향으로 전개되며 그럴 수밖에 없음을 보인다. 그리고 과학과 사회가 교차하는 방식을 언던 사이언스의 렌즈로 살펴보는 법을 익힌다.

 

 

 

각종 유전체 프로젝트에서부터 임상시험, 유방암 진단 검사, 가축전염병 관리에 이르는 현대 생의학과 규제과학 영역을 중심으로 유전체학과 인종, 구제역, 임상시험과 지구적 평등, 유방암 연구 및 젠더 정치 등이 언급된다. 3부에선 우리와 우리 주변의 문제들을 언던 사이언스의 시각에서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광우병 논쟁, 대만의 락토파민 논쟁, 대만 RCA암 사례와 한국 삼성백혈병 논쟁 등 산업재해와 관련된 지식투쟁이 담겨있다. 아울러 동아시아 전역에 큰 상흔을 남긴 후쿠시마 원전 해일 사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진 저선량 전리방사선 위험 논쟁을 재고한다.

 

 

과학은 전공자들의 영역에서 벗어나면 문외한 지역이 된다. 요즘 우리의 일상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테러를 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수/진보, 우파/좌파, 자본가/노동자, 거짓/진실 같은 이분법적 세계관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리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첨예한 부딪힘이 발생할 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언던 사이언스의 관점을 적용시켜 보는 방법도 유용하리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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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유 2016-01-2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라뷰 잘 보고 갑니다.^^

쎄인트saint 2016-01-21 15: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평안하신날 되십시요~^^
 
트라키스의 여인들 지만지 희곡선집
소포클레스 지음, 김종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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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6-010

 

트라키스의 여인들 소포클레스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포클레스의 헤라클레스

 

 

, 비참한 내 신세여!

, 슬프구나, 모든 게 끝났어!

완전히 끝났어!

내게 한낮의 빛은 더 이상 없어!

, 내 비참한 처지를 이제 알겠어!

아들아, 네 아비의 임종이 가까워 왔으니

제발 가서 네 형제들을 다 불러 모아라.

헛되이 제우스의 아내가 되신

가련한 내 어머니 알크메네도 불러라.

내가 죽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신탁들을

너희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모두 불러라.

 

 

 

영웅 헤라클레스의 생애 마지막 부분의 절규이다. 아들 힐루스에게 쏟아 내놓는 그의 마음이다. 트라키스의 여인들은 에우리토스 왕의 딸 이올레에게 향하는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다시 자신에게 되돌려 놓으려는 데이아네이라의 노력과 자살로 시작된다. 데이아네이라가 헤라클레스에게 보낸 옷(히드라의 독이 녹아들어있는 네소스의 피 묻은 옷)이 그의 사랑을 되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헤라클레스)를 죽이고 마는 이야기는 계속 비극을 몰고 간다.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 받아왔다. 제우스와 미케네의 공주 알크메네 사이에 난 아들이다. 제우스는 알크메네의 남편 암피트리온이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그의 모습으로 변신해 알크메네를 속이고 그녀와 동침한다. 진짜 남편인 암피트리온이 귀향해 알크메네와 동침하자 그녀는 쌍둥이를 잉태한다. 제우스와의 관계에서 헤라클레스를, 암피트리온과의 사이에선 이피클레스라는 아들을 낳는다. 헤라클레스가 탄생하자 제우스는 그에게 불사의 생명을 주기 위해 잠든 헤라의 젖을 물렸다. 아기가 젖을 빠는 힘에 놀란(어려서부터 남달랐다) 헤라가 아기를 뿌리치면서 흘러나온 젖이 은하수가 되었다고 전한다. 아마도 헤라클레스가 헤라의 젖을 충분히 먹었더라면 이 작품(트라키스의 여인들)도 안 나왔을 것이다. 불멸의 존재에게 무슨 이야깃거리가 있겠는가? 스토리도 죽어야 생긴다. 그 남긴 흔적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성인이 된 헤라클레스는 아테네 여신의 도움으로 테베를 승리로 이끈다. 그러자 테베 왕 크레온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딸 메가라를 헤라클레스와 결혼시킨다. 헤라클레스와 그녀 사이에선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그러나 헤라가 술에 취한 헤라클레스를 광증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아이들과 메가라를 적으로 착각하고 죽여 버리게 만든다. 헤라클레스는 이 죗값을 치르기 위해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의 신하가 되어 12년 동안 그가 시키는 노역을 한다. 열두 가지 노역이라고도 부른다. 그 열두 가지 미션 중에는 네메아의 사자를 퇴치하는 일,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청소하는 일, 레르나의 독사 히드라를 퇴치하는 일 등등이 있다. 특히 이 작품 트라키스의 여인들과 관련된 것은 레르나의 뱀 히드라를 퇴치하는 일이다.

 

 

 

내 아들아 어디 있느냐?

나를 잡고 날 들어 올려다오.

그렇게, 그렇게! , 슬픈 내 운명이여!

 

고통이 다시 덤벼들어

나를 죽이려고 해!

아무도 맞설 수 없는 이 사나운 재앙!

 

, 팔라스, 아테나 여신이여,

그것이 다시 날 고통스럽게 합니다!

아들아, 이 아비를 불쌍히 여겨다오!

 

비난받을 리 없으니, 제발 칼을 빼어

내 쇄골 아래 가슴을 찔러 다오!

그리하여 네 불경한 어미 때문에 겪게 된

이 지긋지긋한 고통을 치유해 다오!

네 어미가 고통 받는 나처럼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 좋으련만!

 

 

제우스의 아우이신 하데스 신이여!

제게 안식을 주소서!

빨리 죽게 하여 이 고통을 끝내 주소서!

 

 

 

 

 

헤라클레스의 영웅적인 삶속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는 이 희곡은 그리스 비극이라 불릴만하다. 소설 후반부의 키워드는 정념(情念)이다. 이올레에 대한 정념의 불길은 헤라클레스뿐만 아니라 데이아네이라까지도 고통과 질투의 불길로 타오르게 만든다. 그 정념은 데이아네이라를 자살로 이끌고, 헤라클레스 자신의 영혼과 육신마저 태우게 만든다. 정념은 고통이 된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살아있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 고통이다. 연민과 두려움도 뒤섞여있다.

 

 

소포클레스(BC 496~406)는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괴테는 소포클레스를 다음과 같이 칭찬하고 있다. “소포클레스 이후 그 어떤 사람도 내게 더 호감이 가는 사람은 없다. 그는 순수하고 고귀하고 위대하며 쾌활하다. 현존하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몇 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몇 편의 작품일지라도 이 작품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게 느껴진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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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물리학 - 복잡한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계물리학의 아름다움
김범준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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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물리학김범준 / 동아시아

 

 

세상물정너무 잘 아는 물리학자의 이야기

 

 

다른 학문에 비해 물리학은 보편성을 생명으로 한다. 한국에 있는 전자(electron)나 러시아에 있는 전자가 다를 수 없다. 물리학자인 저자 김범준은 특히 통계물리학연구에 관심이 많다.전통적인 통계물리학의 주제는 수많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기체나 고체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마찬가지로 많은 수의 무엇인가로 이루어진 커다란 시스템으로 볼 수 있는 사회, 경제, 그리고 생명 현상 등으로 연구의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보편성을 추구하는 학문의 성격상 라는 주어를 가지고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본, ‘지금, 여기의 세상물정 이야기들이다.

 

 

 

대한민국은 20156월초부터 7월 말까지 메르스(MERS)에 붙잡혀 지냈다. 인명 손실은 물론 남아있는 이들의 삶의 양식까지도 바꿀 정도로 메르스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 사태를 돌아보며 저자는 메르스 후진국 물리학자의 뒤늦은 한마디’(연결망 과학이 이야기하는 감염의 전파)를 한다. 감염률이 높지 않아 크게 걱정할 것이 없고, 건강하고 면역력이 강한 사람이라면 보통 감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증상만 느끼면서 며칠 고생하다 낫는 별것 아닌 병이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진단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문제는 병원이었다. 처음부터인정한다. 병원이 문제였다. 전례를 살펴봐도 치료제가 없는 감염병은 주로 병원의 병동에서 전염되었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의료진과 환자가 대부분이다. 환자는 면역력이 낮다. 누워있는 환자 외에 이동이 가능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은 모두 병원균을 옮기는 전령들이 된다. 저자는 이 메르스 사태를 설명하기 위해서 물리학자답게 감염자들의 집합, 방문한 장소들의 집합, 질병 발생 초기 감염자 수에 대한 지수함수 등을 들어 설명해준다. 그런데 의외로 복잡하지가 않다. 이해가 잘 되는 편이다. 부득불 통계물리학적 시각으로 풀이를 하다 보니 전문 용어가 들어갔으리라 생각한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지역감정에 대한 이야기, 인터스텔라와 허니버터칩의 성공비결, SNS의 영향력, 교통정체, 한국인 성씨 분포, 확률로 본 윷놀이 필승 전략,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 사춘기 딸 이야기, 뇌 크기와 영장류종 집단 크기는 비례한다는 등등 모두 세상 돌아가는 속 이야기들이다.

 

 

저자의 연구물 중 그 초록이 신문지상에 더러 소개가 되었지만 과학 면이 아닌 스포츠 면에 실린 연구가 하나 있다. ‘프로야구팀 이동거리 차이를 최소화하라’ (공평한 경기일정표의 비밀, 몬테카를로 방법에 있다)는 글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보따리장수가 부산, 대구, 수원, 대전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팔려면 각 도시를 어떤 순서로 방문해야 할까. 서울 - 수원 - 대전 - 대구 - 부산 순서로 방문하는 것이 좋다. 만약 순서를 바꾸면 이동거리가 길어진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대선후보가 선거구 250여 곳을 도는 유세 일정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짜야 한다. 시간도 줄이고, 힘도 덜 들어야 한다. 컴퓨터과학 분야에선 이를 돌아다니는 판매원 문제라고 부른다.

 

 

(프로야구에서) “어떻게 하면 공평한 경기일정표를 만들 수 있을까.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에너지를 정의하는 것인데, 간단하다. 각 팀 이동거리가 얼마나 다른지 재는 이동거리의 표준편차를 에너지라고 부르면 된다. 그리고 매번 주어진 제약 조건을 만족시키는 경기일정표를 조금씩 바꿔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에너지를 줄여나가면 된다.” ‘간단하다는 표현이 결코 간단하진 않다. 이 말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의 전공을 세상물정과 멋지게 결합시켰다.

 

 

누가 물리학자를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 누구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고 보편타당성 있는 좋은 생각을 최대한 쉽게 풀이해주려고 애쓴 흔적이 이곳저곳에 담겨있는 흥미로운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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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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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6-009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키타가와 에미 / (다산북스)

 

 

인생이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1.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이런 경우 그 요일은 수요일이나 목요일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샐러리맨이 월요일을 어찌 무심히 지나 가리요. 화요일은 월요일에 바로 이어지는 날이니까 기억이 가능하다. 금요일은 주5일 근무자들에겐 불금의 날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토요일 역시 해피하다. 일요일인줄 모르고 출근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 중독자나 집보다 직장이 편한 사람 아니라면 일요일도 기억할 수 있다. 앞뒤로 다 빼고 나면 수, 목요일이 남는다. 그러니까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은 이미 영혼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수요일, 목요일이라는 이야기다. 이 소설(제목은 자기계발서 같지만 콩트 같은 소설이다)의 주인공 아오야먀가 입사 한 달째에 현실 도피를 위해 만든 노래는 절절하다. ‘월요일 아침에는 죽고 싶어진다. 화요일 아침에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수요일 아침에는 가장 고되다. 목요일 아침에는 조금 편해진다. 금요일 아침에는 조금 기쁘다. 토요일 아침에는 가장 행복하다. 일요일 아침에는 조금 행복하다. 그러나 내일을 생각하면 되레 우울해진다. 이하 반복

 

 

 

 

 

2. ‘그만 두고 싶다. 이런 회사인 줄 몰랐다. 채용설명회에선 좋은 점만 말해놓고, 열심히만 하면 돈을 벌수 있는 시스템은 무슨, 실력을 바르게 평가하는 환경은 개뿔, 지금 당장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입사 반년도 안 되어 어떻게 그만둔단 말인가. 어떻게 들어 온 회사인데. 그리고 이렇게 그만두기 시작하면 나는 근성 없는 놈이라고 찍힐 수도 있다. 이번 달은 벌써 2주 동안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되자 잠이 오는지도,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뭘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다. 최근 반년 동안 간신히 집에 도착해도 몇 시간 뒤에 또 회사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는다. 그런 현실에 눌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이 몰려온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전찰 승강장, 누군가 엄청 반가워하면서 아오야마(주인공)에게 달려든다. 초등학교 동창이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브레인 메모리에서 떠오르지를 않는다. 스트레스가 쌓이니 기억력 전선에까지 영향이 갔나? 어쨌든 둘은 짧은 시간 안에 절친이 된다. 그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동창은 아오야마의 멘토 역할을 하게 된다. 아오야마는 힘들다. 어느 순간 그는 직장 내에서 왕따가 된다. 무능력자가 된다. 월급이나 축내는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무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캐릭터였다. 스스로를 위해서 성실하게 한 발 한 발 나아갔지만, 복병이 있었다. 사수 역할을 하는 직장 선배가 아오야마의 계약을 가로챘다. 그 황당한 이유 좀 들어보세. “잘 들어, 여기는 숫자를 놓고 서로 뺏고 밀어내는 세계야. 입사한 지 반년 된 신입이 대형 계약을 따내면 사람들은 나한테 그 두 배의 숫자를 기대해. 너한테는 긴장감이 부족해 누구든 금방 믿으면서 듣기에 좋은 말만 늘어놓지. 그렇게 해 나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란 말이야.”

 

 

 

 

 

3. 아오야마는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다. 마침 야마모토를 만났다.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야마모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나서 웃는 얼굴로 똑 부러지게 말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줘. 지금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이 대사가 제목으로 쓰이긴 했지만, 사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아오야마가 회사 사무실에 들어가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카타르시스 만점이다. 그저 소리 지르고,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재주 밖에 없는 부장에게 앞서 몇 마디 던졌지만, 계속 건드리자 이런 말을 차분하게 내놓는다. “내 인생은 댁을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딴 회사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야. 내 인생은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있는 거라고!” 이 무슨 난리야 하는 마음과 함께 아오야마가 내뱉는 한마디 한 마디가 자신들의 마음을 대신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직원들은 무심한 척 그를 주목하고 있다. “아무리 형편없다고 평가받는 사람일지라도, 한 가지만은 바꿀 수 있어요. 바로 내 인생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어쩌면 주변의 소중한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것과 이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걸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있어요. 제게는 친구도 있어요. 걱정해주는 부모님도 계세요. 아직은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뭘 하더라도 좋아요. 그저 웃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겁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으며 살아갈 겁니다. 부모님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겁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지금의 제게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 후, 아오야마는 어찌 되었을까? 해피 엔딩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 성취감을 느끼는 일을 찾았다. 그런데, 야마모토. 당신의 정체는 뭐야? 당신 사는 곳이 진짜 공동묘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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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9 16: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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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9 18: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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