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사다 - 환자의 마음을 공유하는 의사들 이야기
셔윈 B. 눌랜드 지음, 조현욱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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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들에겐 자기 성찰의 계기, 비의료인들에겐 임상의 에피소드를 접할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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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 노천명 시인에서 백남준 아티스트까지
강인숙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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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작품세계까지도 이해해볼수 있는 편지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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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 노천명 시인에서 백남준 아티스트까지
강인숙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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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군에 입대한 친구의 아들이 훈련 중 특별히 허락을 받고 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집에 편지를 쓰라고 하는데 비효율적이야. E-mail로 하면 간단한데..”

이 녀석 막상 편지를 쓰라고 하니까..막막했을 것이 틀림없다. 손 편지와 E-mail은 편지라는 성격은 같을지라도 그 과정 중에 벌써 분위기가 달라진다. E-mail 뿐이랴, SNS는 분, 초단위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같이 있는지, 현재 기분 상태가 어떤지 서로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기록이 대부분 흔적 없이 사라진다. 계속 새로운 정보와 소식이 그 자리를 메운다.  


손 편지를 마지막으로 써본 것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편함에는 각종 청구서와 DM만이 쌓여간다. 달포 전 딸을 시집보내고 난후 다녀가신 하객들에게 손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역시 마음뿐이었다. 딸 내외가 아예 인쇄물로 감사 편지를 뽑아왔다. 하객들에겐 너무 사무적이고 의식적인 느낌이 들겠지만, 시간 없다는 핑계로 그냥 보내 드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본다는 것은 흥미롭다. 아마도 인간의 마음속 자리 잡고 있는 내밀한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궁금증이 한 몫 하는 것으로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총 49편의 예술가들의 편지글이 편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편저자인 강인숙님은 “편지는 수신인이 혼자서만 읽는 호사스런 문학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혼자서 듣는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같다. 이 책의 독자들도 모두 수신인이 된 기분으로, 그런 호사를 누려보기를 권하고 싶다.” 라고 쓰고 있다. 


많은 편지글 중 특히 마음이 머무는 것은, 고인이 되신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이해인 수녀님께 보낸 편지이다. 두 분 모두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탓도 있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신이다.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했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1년 작고 했다. 저서로 『엄마의 말뚝』『아주 오래된 농담』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등이 있다. 

이해인 수녀님은 1945년 강원도 양구 출생이다. 1964년 수녀원에 입회했으며 필리핀 성루이스대학 영문과,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새싹문화상, 여성동아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민들레의 영토』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사랑할 땐 별이 되고』『기쁨이 열리는 창』『희망은 깨어 있네』등이 있다.  2008년에 직장암 판정을 받아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고 2009년 4월부터 부산에서 장기휴양을 하고 있다.


책에 실린 편지는 2005년 11월에 이 해인 수녀님에게 보낸 글이다. 해인 수녀님은 완서 성생님이 가시고 난후 모두 그분을 잃은 애통 속에 잠겨 있을 때 이 편지를 공개하셨다고 한다. 

“......『민들레의 영토』가 출간된 지 30년이 됐다는 소식에 접하면서 제가 수녀님을 알고 지낸지 몇 년이나 되었나 새삼스럽게 꼽아보니 어쩔 수 없이 그 힘들었던 88년이 기점이 되는군요.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예

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수녀님이 가까이 계시어 분도수녀원으로 저를 인도해주신 것은 그래도 살아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은 과연 계실까, 죽은 후에 영혼이 갈 곳이 있기나 있나. 죽으면 먼저 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온통 사후세계 저 하늘나라 가는 일에만 가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수녀님의 존재, 수녀님의 문학은 제가 이 지상에 속해 있다는 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죽어서 어떻게 될지는 죽어보면 알게 아니냐, 땅을 보아라, 땅에서 가장 작은 것부터 민들레를, 제비꽃을, 봄까치꽃을…….  마치 걸음마를 배우듯이 가장 미소한 것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지상에 속했고, 여러 착하고 아름다운 분들과 동행할 수 있는 기쁨을 저에게 가르쳐준 수녀님 감사합니다!!”


완서 선생에게 1988년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는 것을 지은이 강은숙 교수에게서 듣게 된다. 88올림픽으로 전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을 때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완서 선생은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그래서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이라고 적고 있다. 이때 이해인 시인이 다가와 박완서 선생의 손을 잡아 주었다. 분도수녀원에 데리고 가서 해인 수녀님은 자식을 잃고 쓰러져 가는 니오베(Niobe.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테베 왕 암피온의 왕비. 자식을 잃고 상심하여 슬픔으로 날을 보내다가 돌이 되었는데, 돌에서도 계속하여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를 붙잡아 일으킨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에 사람이 있어야한다. 의지할 수 있고,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강교수는 문화부장관을 역임하신 이어령 교수의 아내이다. 이 책에는 편지마다 필자 강은숙이 「편지를 말하다」라는 글이 첨부되어 있다. 필자는 “해설이라기에는 일관성이 없고 감상문이라고 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글이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작가를 알리고 그가 살던 시대를 젊은 독자들이 헤아리게 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편지를 말하다」를 읽는 재미가 솔솔찮다. 수,발신인의 관계는 물론 편지의 상황적 배경까지도 짐작이 가게끔 하는 부분이다. 물론 사생활이 지나치게 노출되는 편지글은 볼 수 가 없다. 이미 작고하신 분들의 편지도 있지만, 현재도 대학 강단에서, 창작생활이나 다른 예술 활동을 하시는 분들의 육필 편지를 볼 수 있다.  


글을 읽다가 서늘한 깨우침을 주는 구절이 있었다.

해가 바뀌면서 이곳저곳에서 새해 인사 주고받느라 바쁜 요즈음이다.

소설가 정연희가 시인 김영태에게 보내는 편지다. 

“...새해가 따로 있겠습니까마는 지니고 계신 모든 것이 새롭게 비춰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렇다. 새해라는 것은 그저 사람세계에서 편하자고 만든 시간개념이다. 해는 떠오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한결같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문득 손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문구점에 들러서 맘에 드는 편지지를 골라봐야겠다. 누구에게 쓸지는 아직 못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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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사다 - 환자의 마음을 공유하는 의사들 이야기
셔윈 B. 눌랜드 지음, 조현욱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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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머 한 꼭지가 생각납니다. 어느 환자가 수술을 앞두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담당의사에게 이야기합니다. “저 태어나서 수술이 처음이에요. 겁이나 죽겠어요.” 의사가 하는 말 “너무 걱정 마세요. 저도 처음이니까요”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 실제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의사가 있다면, 천하의 멍청이 같은 의사가 될 것입니다. 어느 누가 처음 집도를 하는 의사에게 자기 몸을 맡기겠습니까? 그러나 어느 의사에게나 첫 수술환자는 있게 마련입니다. 환자는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지요 . 단지 의사와 그 주변 동료 몇몇만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의료 임상의 현장은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진료를 통해 얻어진 환자에 대한 정보를 밖으로 유출시키지 않는다는 의료윤리와도 관계있지만, 굳이 밖으로 이야기가 나돌아서 좋을 것은 무엇이냐는 담합적(?) 분위기 탓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의 내용은 우리네 실정과 비교하면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국내에 몇 권의 메디컬 에세이집이 소개된 저자 셔윈 B. 눌랜드 교수는 이 책을 일종의 의학판 『캔터베리 이야기』라고 부릅니다. 캔터베리 이야기. 잘 아시지요? 영국의 이야기 문학으로, 제프리 초서의 걸작입니다. 총 30명 내외의 사람들이 런던의 어느 여관에 모여, 순교자 토머스 베켓을 모시는 캔터베리의 유명한 사원으로 순례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여관집 주인이 자진하여 안내자가 되어 왕복길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순례길이 되기 위해 한 사람이 두 가지씩 이야기를 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리하여 순례자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중세에 한창 성행되었던 말하자면 이야기집(集)입니다.

 

책은 의학 에세이집입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수집된 이야기입니다.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평균 연령과 기대수명이 높아지는 요즈음에 관심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노인의학 전문의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노인의학은 의학의 역사상 가장 오래 되었지만, 또한 가장 새로운 것’이라고 표현한 것에 공감합니다. 노인병 전문의를 노인을 위한 가정의라고 표현하고 싶다는군요. 소아과 의사가 어린이들을 위한 가정의 기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노인의학전문의가 환자를 진찰하는 과정이 의학의 선배들이 주로 해왔던 진찰 과정입니다. 조심스럽게 살피는 신체검사는 히포크라테스 시대 의사들 이후로 시행한 검사와 촉진이 주가 됩니다. 문헌에 의하면 이들은 맥박의 질과 횟수를 적는 것에 더해서 피부의 탄력과 색, 모발의 특징과 분포도, 혀와 구강 점막의 외관을 비롯한 유사 요소들, 그리고 간과 비장의 크기를 기록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다소 아날로그 시대로 넘어간 감이 들지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진찰과정입니다. 시진(視診),촉진(觸診), 문진(問診), 청진(聽診)등의 과정이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감을 형성하고, 의사에겐 보다 정확한 환자의 상태를 확인 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와 첨단의 진단 기구를 활용해야 한다는 부담감 사이에서 의사는 갈등을 느낍니다. 물론 현대식 진단장비, 첨단화로 무장한 검사 장비가 환자들에게 큰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만 기계의 역할이 사람이 할 일을 모두 처리 할 수는 없지요.

 

“신체검사는 진단 방법이지만, 좀 더 미묘한 작용도 한다. 특히 의사와 환자가 접촉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 그러하다. 손을 올려놓는 행위는 서로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발견을 위해 서로 매개하는 두 사람이 접촉하게 해준다. 이 행위에 의해 관계의 양상이 바뀌는데, 그 방향은 친밀감과 신뢰가 커지는 쪽인 경우가 흔하다. (………) 그리고 신체검사를 세심하게 수행하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음은 물론이다. 외모, 유연성, 감촉, 내장기관의 크기와 형태, 경련, 그리고 청진기 검사로 드러난 사실은 진단으로 이어 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어떤 검사가 적절한지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는 경우가 흔하다. 후자는 광범위한 마구잡이식 추측에 의존하는, 오늘날 그토록 널리 퍼져 있는 행태와 비교된다. 예컨대 전형적인 복부 CT 촬영을 보자. 이를 통해 분명한 정보들이 이것저것 드러나기는 하지만, 실상 이들 중 많은 부분은 신중한 복부 검사를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단순한 복부 엑스선 촬영을 병행하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p.170,171)

 

 

‘금지된 약물의 재발견’이라는 글에서 위험하다고 폐기되었던 약품이 재발견 된 것에 대해 저자 스스로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며 적고 있습니다. 베체트병이라고 있습니다. 베체트병은 1937년 터키의 피부과 의사인 훌루시 베체트가 발견,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국내에는 1961년에 첫 환자가 문헌 보고된 이래 현재 약 5,000∼1만명의 환자가 투병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베체트병은 입안과 성기가 자주 헐고, 심한 경우 눈의 포도막이나 장에 염증을 일으켜 시각 및 소화기 장애, 말기엔 신경장애까지 일으키는 희귀성 난치병입니다.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발생하며 병의 진행이 심하고 빠른 경우 1∼5 년 내에 실명, 혹은 내부 장기 손상으로 생명을 잃게 되거나 심한 후유증을 앓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병의 원인과 발생과정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유전병은 아닌 것으로 지적됩니다. 저의 가족 중에도 이 환자가 한 사람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증상은 혈액 내 염증수치가 상승되는 것과 입 주변과 입속에 궤양이 자주,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것, 피로감이 빨리 오는 것 등입니다. 이러한 베체트병 환자(남)가 저자를 찾아옵니다. 이런 약, 저런 약을 다 써봤지만, 효과를 못보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베체트병 관련 웹사이트에서 찾아낸 제안을 가지고 진료실에 들어와 그를 놀라게 합니다. 그의 상태에 ‘탈리도마이드’가 효과가 있다는 내용 이었습니다.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는 1957년 독일에서 처음 시판, 의사의 처방 없이도 구입할 수 있는 일명 "무독성" 진정 수면제로 판매된 약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본래 목적보다 임산부의 입덧을 완화하는데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럽 전역의 의사들은 임산부 입덧 완화용으로 탈리도마이드를 처방하고 전 세계 48개국의 임산부들이 이 약을 복용했습니다.

 


탈리도 마이드 베이비로 사지결손증을 갖고 태어난 

영국의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가 모델로 선 

「장애엄마의 모성애」를 주제로 한 포스터 

(사진 출처 : 엘리슨 래퍼 홈페이지.  www.alisonlapper.com )



그러나 이 일은 재앙에 가까운 사상 최악의 약화사고를 낳게 됩니다. 임산부의 입덧 완화에는 효과적이었으나 태아에게는 참담한 결과를 불러온 것입니다. 이 약을 임신 3~8주에 복용한 임산부들은 예외 없이 일명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로 불리는 사지가 짧거나 없는 기형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임신 중 복용한 탈리도마이드가 태아의 혈관 생성을 억제, 사지결손 기형아라는 운명을 쥐어준 것입니다. 1961년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그리고 1962년 일본에서 서둘러 판매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탈리도마이드는 세상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 약이 무방비로 노출된 5년 동안 출생한 아기가 유럽에서만 8,000명, 전 세계 46개국에서 1만2,000여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 약을 환자가 써 보고 싶다고 합니다. 약을 좀 구해서 시험 해봐달라는 이야기지요. 그러면서 (남)환자가 하는 말..“어쨌든 아시다시피 내가 임신 중인 건 아니잖소.” 이 대목에서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노인의학전문의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요즘도 약이 계속 개발되어 나오니까 다른 약을 써 봅시다. 하고 넘길 내용입니다. 그러나 의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숙제를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1960년대 초반의 비극이후 관련된 모든 용법이 모두 폐기된 상태입니다.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프랭클린과 담당의사는 약 6개월에 걸쳐 인간 연구 윤리 위원회(HIC,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연구가 이루어질 때 피 실험자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위원회) 와 FDA의 허가를 받기 위해 복잡한 서류작업을 계속하게 됩니다. 결국 약을 사용하게 되었고,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요법을 시작한 지 여러 주가 지난 뒤 프랭클린의 궤양이 낫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그리 머지않아 나는 끔찍한 스테로이드 약물과 그로 인해 자주 일어나는 합병증으로부터 그를 해방시킬 수 있었다. 나는 이 약을 다른 환자 몇 명에게도 시도해봤는데, 모두 증상이 호전되었다. 그의 경우가 가장 효과가 좋았지만 말이다. 10년이 지난 현재 프랭클린은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모든 약물들을 끊고 잘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의료 센터에서 이루어진 여러 연구들의 결과 이 약이 다수의 소집단 환자들에게 잠재적인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p.166)

 

 

이 책은 저자가 수집한 이야기를 1인칭 화법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읽다보면 마치 저자 본인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임상에 있는 사람들에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다른 독자들에겐 의료 현장의 안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됩니다. 단지 대부분의 이야기가 미국의 1970년대가 무대입니다. 저자는 이 시기가 전통적인 직접 해보는 방식에서 초현대의학의 생체공학적 기적으로 점차 대체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표현 합니다.

 

첨단 의료장비가 병을 잡을 수는 있겠지만, 환자의 마음까지 잡지는 못할 것입니다.

임상에서 환자를 돌볼 수 있는 한, 아날로그 마인드를 잊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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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24 17:57 
    '두통에는 진통제', '우울증엔 항우울제', '불면증엔 수면제'라는 것이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의 두통과 학습우울증에 걸린 청소년의 두통이 과연 같은 질병일까. 또 시댁과 갈등을 겪는 주부에게 어깨 결림,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생리통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이는 각각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따로 해결해야 할 병일까. ─강용혁,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12쪽 예전에 손발이 너무..
 
 
 
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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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소파에 나를 눕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카우치입니다. 카우치는 소파와 비슷하지만 머리 쪽이 경사지게 올라가 있어 누우면 아주 편안합니다. 금방이라도 잠이 올 것 같은 느낌입니다. 분석가는 내 머리 쪽 가까이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내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입니다.”  (p.17)


마음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 정신분석입니다. 정신분석학은 지그몬드 프로이트 박사가 만들어 낸 학문이자 방법입니다. 프로이트는 빈 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신경정신과 의사가 되었지요. 의사가 된 후 진료를 하면서 히스테리 환자가 몸이 마비되는 증상을 설명할 수 없어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1885년 파리로 가 유럽에서 가장 저명한 신경과 의사였던 샤르코(Charcot)에게 최면술을 배웠습니다. 다시 빈으로 돌아온 프로이트는 최면술을 환자에게 써봤으나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다른 방법을 찾으려 고심하다가, 환자 자신이 고통 받는 이유를 자유롭게 말하도록 시켜봤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이 환자의 증상과 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평소에 환자가 마음 깊은 곳에 억누르고 있던 것이 터져 나와서 말로 표현되면서 증상이 없어진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이 태동되는 시간이기도 했지요. ‘억누르고 있다’, 즉 ‘억압’하고 있다는 말은 ‘산 채로 매장’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아니 답답하다 못해 질식할 것 같고, 두렵기까지 했을 겁니다. 무의식에 억압돼 있던 것이 움직여서 의식으로 나오는 것은 곧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이를 정신 역동(力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에 기반을 둔 정신치료를 역동 정신치료고 합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마치 복병과 같아서 숨어 있다가 불쑥 불쑥 나타나곤 하지요. 화가 난 김에, 술김에 또는 공개석상에서 쨘~하고 나타나서 돌이킬 수 없는 말실수를 하게 하거나 본인도 이해 못하는 행동으로까지 번집니다. 프로이트는 처음엔 지형 이론으로 마음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무의식의 감옥 속으로 유배를 보내서 가둬 놓은 갈등의 뿌리를 찾아 쇠사슬을 풀어주고 그들을 의식으로 다시 불러오면 정신 장애가 쉽게 치료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기 위해 생각나는 것을 가능하면 전부, 거르지 말고 정신분석가에게 말하는 자유연상기법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자유연상법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정신 분석에서 중심적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프로이트는 지형 이론이 완벽하지 못함을 깨닫게 됩니다. 지형 이론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고심 끝에 1923년 `구조 이론(structural theory)` 을 내어놓게 됩니다.


구조 이론은 인간의 마음을 마치 세 명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봅니다. 내 안에 다른 나..너무 많은 나. 이쯤 되면 조성모의 ‘가시나무’가 생각이 안 날수가 없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음악이 듣고 싶으시면..주소 복사후 클릭~)

http://dc245.4shared.com/img/349684778/d124e007/dlink__2Fdownload_2FXqQ30Fa4_3Ftsid_3D20111210-162849-798e96a/preview.mp3

 


구조이론 가족을 좀 더 들여다볼까요? 그들의 이름은 이드(Id), 초자아(Superego), 자아(Ego)라고 부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들에게 별명을 붙여 놓았네요. 이드는 욕망의 대변자, 자아는 중재자, 초자아는 자아 이상(ego ideal), 도덕, 윤리, 양심의 대변자등입니다. 

또한 이들의 역할은 또한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드는 욕구를 주장하고, 초자아는 금지된 일을 못하게 막아서거나 이상을 추구하고, 자아는 타협점을 찾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드를 무의식속에 억압되어 있는 성적이거나 공격적인 소망 덩어리로 보았습니다. 이드는 충동적인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원초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이드를 움직이는 힘은 쾌락원칙입니다. 따라서 쾌락은 중독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참을성이 없습니다. 생각이 나면 당장 해치워야합니다. 지름신이 강림하사~도 사실은 이 이드가 강세를 보일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프로이트는 이 이드를 의식해서 한 마디 보탰습니다. 

“공격적 성향은 인간의 본질적이고 독립적이며 본능적인 기질이다.” 


이 책의 저자 정도언을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국제공인 정신분석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학계는 물론 각종 미디어에서도 정신과 분야의 대한민국 최고 명의로 꼽힙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교수로 재직 중, 어느 날, 충분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물음을 안고 미국 샌디에이고로 수련을 떠납니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국제정신분석학회가 인증한 프로이트 정신분석가가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정신분석연구회 회장, 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정신분석학은 ‘갈등의 심리학’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래서 잘 듣고 잘 해석하는 것이 기본이 됩니다. 치료에서 해석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므로 ‘해석학(Hermeneutics)`이라고 합니다. 요즘처럼 일조량이 풍부하지 못하고 추위 때문에 바깥나들이를 자제하거나 꼭꼭 싸매고 다니는 겨울 날씨엔 우울증 환자가 급증합니다. 현대 정신의학에선 심한 우울증을 뇌의 생화학적 불균형에서 찾고 항우울제를 투여하는 것으로 치료적 기본을 삼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지금 우울증이 찾아 왔다면, 왜 이 시점에서 그러한 일이 생겼는지 의미를 찾는 일을 약이 대신 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정신분석학의 입장이지요. 그래서 해석을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긴 요즘 우울증 환자가 많이 생기다보니 감기만큼 흔하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합니다.  


“우울은 초자아의 작품입니다. 내 마음의 초자아는 늘 나를 야단치고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방심하고 있으면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소리를 높입니다. 평소에 체력 단련이 안 돼 있던 내 자아는 힘이 약합니다. 그래서 항변도 못하고 초자아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슬프고, 의욕이 없고, 몸이 둔해집니다. 열심히 하던 일에 흥미를 잃고 혼자 있으려합니다. 세상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무인도에 혼자 남겨진 기분입니다.”  (p.108)

저자는 이렇게 권유합니다. “우울한 것을 부끄러워 마세요. 우울은 흔해 빠진 증상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시샘이 다르군요. 

남성의 시샘은 거칠고 어수룩하다고 합니다. 남성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환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실감 없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스윙 폼, 억만장자 빌 게이츠의 재산, 바람둥이 영화배우의 여성 편력을 시샘합니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었을 텐데”하며 남자다운 어리석음에 빠집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여성의 시샘은 세밀하며 일상적인 면이 많다고 합니다. 고급 식당이나 특급 호텔 로비에서 여성의 시선은 바쁘게 움직입니다. 남이 입은 옷과 들고 있는 가방의 브랜드를 즉시 파악합니다. 결혼하면 남의 부인과 나를, 남의 남편과 내 남편을 비교합니다. 아이가 생기면 남의 아이들이 내가 낳은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공부를 더 잘 하는지가 시샘의 대상이 됩니다.


저자가 권유하는 ‘무의식을 대하는 다섯 가지 치유법’을 소개하면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첫째, 현재 시간에 집중 할 것.

둘째,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 즉,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자신만의 목소리로 나를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셋째, 스스로에게까지 거짓말 하지 말기.

넷째, 용서 받으려고 애쓰지 말 것. 보충설명을 덧붙이면 이렇습니다.

    ‘용서는 남에게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구하려는 자세를 가질 때, 자신의 무의식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습니다.’

다섯째, 꿈과 환상을 잘 이용하자. 환상은 숨겨진 욕망이라고 합니다. 

“정신분석은 꿈, 공상, 환상 모두를 존중합니다. 분석가는 분석을 받는 사람이 그것들에 말 걸기를 기다립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물어봅니다. 그리고 듣고 알아내고 이해한 것을 분석을 받는 사람에게 돌려주려고 노력합니다.”


간혹 자신의 꿈을 곰씹어 보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것을 알아내거나 마음에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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