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 리쩌허우와의 담화록
리쩌허우 지음, 류쉬위안 엮음, 이유진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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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사뭇 도전적이다. “중국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아무래도 이 질문은 알제리아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에서 꼬리를 잡은 듯하다. 데리다가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에는 철학이 없다’라는 말을 한 후 많은 중국인들이 굉장히 불쾌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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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 리쩌허우와의 담화록
리쩌허우 지음, 류쉬위안 엮음, 이유진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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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 리쩌허우와의 담화록  

리쩌허우 (지은이) | 류쉬위안 (엮은이) | 이유진 (옮긴이) | 글항아리 | 2013-10-28
 | 원제 該中國哲學登場了 

 

 

중국철학의 현주소는?

철학에 대해 많은 분파와 논리가 만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관을 좋아한다. 러셀은 철학이 애초부터 학파들 곧 소수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러셀의 해석에 따르면 철학은 그리스 문명 속에서 과학과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탄생했는데, 이는 두 가지 경향으로 그리스 문화를 지배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사뭇 도전적이다. “중국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아무래도 이 질문은 알제리아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에서 꼬리를 잡은 듯하다. 데리다가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에는 철학이 없다’라는 말을 한 후 많은 중국인들이 굉장히 불쾌해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사실 데리다는 중국에 깊은 관심과 호감을 갖는 사람이다. 데리다가 이 말을 한 것은 ‘중국인들이 철학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데리다가 정의하는 철학은 지혜를 추구하는 사변적이고 이성적인 고대 그리스의 형이상학적인 면에서의 철학을 의미한 것이다. 데리다의 시각으론 그런 협의의 형이상학적 철학이 중국에는 부재중이다. 대신 중국에는 광의의 형이상학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의 가치와 의의를 추구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인터뷰이인 리쩌허우(李澤厚)는 누구인가? 중국의 학자이자 철학자다. 1930년 생으로 후난(湖南) 창사(長沙)사람이다. 1954년에 베이징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 파리 국제철학원 종신회원이다. 독일의 튀빙겐대, 미국의 위스콘신대, 미시간대, 콜로라도대 등 여러 대학의 객좌교수를 역임했다. 1950년대 미학 논쟁에서, 이십대의 나이에 이미 실천미학이라는 미학의 한 유파를 창건했다. 그 뒤 20년을 잠자코 있던 그는 단숨에 『비판철학의 비판』(1979), 『중국근대사상사론』(1979). 『미의 역정』(1981), 『중국고대사상사론』(1985), 『중국현대사상사론』(1987), 『화하미학』(1988), 『미학사강』(1989)을 내놓으면서 사상계의 우상이 되었다.

 
이어서 정통 좌파와 반전통을 부르짖는 급진 청년들의 양면 공격에 시달리던 그는 1992년에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후 『세기신몽』『기묘오설』『역사본체론』『실용이성과 낙감문화』 『인류학역사본체론』등을 꾸준히 내놓았다. 그는 이러한 저술활동을 통해 실용이성, 낙감문화, 무사(巫史)전통, 유가와 도가의 상호보충, 유가와 법가의 호용, 두 종류의 도덕, 역사와 윤리의 이율배반, 문화-심리구조, 서체중용, 누적-침전, 주체성 실천, 제1범주로서의 도(度), 정 본체, 신감성, 내재적 자연의 인간화, 인간의 자연화, 인류학 역사 본체론 등 일련의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인터뷰어인 류쉬이안(劉緖源)은? 작가이자 평론가이자 기자. 1951년 생으로 저장(浙江) 닝보(寧波)사람이다. 『문회월간』편집인, 『문회독서주보』부주간 등을 역임했다. 중국현대문학, 중국사상사, 아동문학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연구 성과를 냈다. 대표작으로 『문학에서의 애정문제』『저우쩌뤈을 해독하다』『금문연원(今文淵源)』『아동문학의 3대 모티프』등이 있다.


현대 철학의 위치

리쩌허우는 헤겔 이후로 사변적 이성철학이 각종 도전에 부딪혔다고 한다. 포이어바흐에서 마르크스에 이르는 이들의 도전이 그것이다. 뒤이어 니체에서 하이데거의 도전이 뒤따른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변적, 절대적인 것에서 ‘생활’과 ‘생명’으로 시선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현실 생활이 칸트와 헤겔의 선험이성과 절대정신보다 더 근본적이라고 생각했다.

 
데리다에게서 정점을 이룬 포스트모던은 ‘철저한 해체’를 주장한다. 세계에는 확정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리쩌허우의 말을 들어본다. “푸코와 데리다의 반이성을 따르는 포스트모던의 특징은 모든 것을 해체하자는 거죠. 불확정성을 강조하고 본질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요. 모든 것은 현상이고 파편이며 비연속이라는 겁니다. 자아 역시 파편인거죠. 거대서사에 반대하고 총체성에 반대하지요. 모든 것이 부분적이고 다원적이며 상대적이고 표층적이며 어지럽게 뒤섞여서, 규칙을 찾을 수도 찾을 필요도 없어요. 이렇게 이성에서 감성(실천, 경험, 생명)으로 그리고 다시 감성개체(죽음, 현존재)로, 또 철저한 허무(포스트모던의 ‘뭐든지 괜찮다’로)로 이행한 겁니다.”

리쩌허우는 포스트모던 철학이 현재 인류생활의 곤경을 표현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긴 모든 것이 찢기고 모든 규칙이 와해되긴 했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했고, 푸코는 인간도 죽었다고 했다. 총체로서의 인류나 총체로서의 개체는 없고, 자아조차 존재감이 사라졌다. 그럼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대해야할까? 개체뿐만 아니라 인류와 민족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마주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들은 현실생활이자 철학 그 자체이기도 하다.


독서에 대해

리쩌허우는 젊은 시절부터 독서광이었다. 속독이 주특기였다. 이점은 나와 공통점이기도 하다. 고전처럼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은 빨리 읽었다고 한다. 그는 독서에 두 종류를 든다. 하나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독서, 다른 하나는 무목적의 합목적성을 지닌 독서. “독서하면서 판단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식별 및 평가 수준과 능력을 길러내고 단련하는 것이니까요. 독서하면서 제대로 판단해야만, 각종 문제를 대하는 자신을 더 예리하고 뚜렷하게 좀 더 이성적으로 변화시켜서 권위의 노예나 유행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답니다. 많은 학자가 평생 판단능력을 결여한 채로 살아가죠.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 누가 낫고 누가 수준이 떨어지는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채 늘 조류와 유행을 좇기에 바빠요.”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의 생각(책)을 많이 대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속독을 통한 다량의 독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책에 따라선 정독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내가 요즘 틈틈이 정독을 하는 책은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읽을 만한 책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 할 책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엔 절대 공감이다.


인간, 도구의 사용과 제작


 마르크스는 도구를 생산력과 결부시켰다. 나중에는 인문학적 사유로 연결시켰지만 그 말이 그 말이다. 리쩌허우는 도구의 사용과 제작이 인류의 심리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한 연구에 역점을 두었다. 도구의 사용과 제작으로 인해 형성된 문화-심리구조, 즉 인성문제이자 ‘누적-침전’에 대한 연구이다. 누적-침전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주는 심리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를 내재적 인성의 측면이라고 표현한다.

 누적-침전이라는 단어는 리쩌허우의 생각을 표현해주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의 역자 이유진은 이를 이렇게 풀이하며 보총 설명을 해주고 있다. “리쩌허우는 누적과 침전을 결합한 단어로 적전(積澱)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그가 조어해낸 미학용어다.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심층 문화심리와 관련된 적전(積澱)은 리쩌허우 미학 이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정 본체 (情 本體)

리쩌허우가 언급하는 ‘정 본체’의 개념은 그 범위가 무척 광범위하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광역대의 흐름이다.  그가 1994년에 쓴 『철학탐심록(哲學探尋錄)』에 실었다는 서정시 비슷한 글이 ‘정 본체’에 대한 이해력을 도와준다.

 
“천천히 걸어요. 감상하면서 말이죠. 살아가는 건 쉽지 않아요. 인생을 음미해야죠. ‘그땐 그저 일상이라 여겼거늘..’ 사실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거랍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모든 일이 슬프기 짝이 없다’ 할지라도, 그것을 정감에 녹여내고 현존재를 충실히 해야지요.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죽음과 싸워 이길 수 있고, ‘근심’, ‘걱정’,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해야만 ‘일상의 인륜 가운데 있는 도(道)가 도덕 법칙, 초월적 신(神), 멀리 떨어져 있는 정신, 부동의 이데아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따뜻함과 기쁨의 봄날이 됩니다. 그래야만 그것은 정신이자 물질이며, 존재이자 의식이고, 진정한 삶과 생명과 인생일 겁니다. 이 우연들을 음미하고 아끼고 추억하세요. 생의 황당무계함을 슬퍼하며 즐겁게 지내세요. 자신의 정감의 생존을 소중히 여기세요.”

 
리쩌허우의 신관(神觀)

리쩌허우의 신관(神觀)은 어쩌면 중국인들의 보편적 신관(神觀)이 아닐까? 리쩌허우의 견해로는 인류는 신에게 의지해서도 안 되고 외계인에게 의지해서도 안 되고 하나님에게 의지해서도 안 되고 오로지 자신에게 의지해서 운명을 파악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이러한 점이 중국 철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덧붙여진다. 그 이유로 중국에는 서양과 같은 종교와 신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하나의 세계만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세속세계라는 것이다. 그가 표현하는 세속세계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뚜렷이 양분되는 두 개의 세계가 아니라고 한다. 중국에서 믿는 것은, 명령을 내리고 전지전능하고 인간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매우 불확정적인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천도(天道)와 천명(天命)에서부터 민간의 온갖 귀신 신앙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다는 것이다.

 
리쩌허우의 이러한 생각들이 중국인들의 심성을 대변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밝힌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아울러 그는 천(天). 지(地), 국(國), 친(親), 사(師) 에 대한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세계가 이런 중국의 신앙을 받아들일 필요를 조만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는데, 글쎄올시다! 리쩌허우 선생 너무 앞서가진 맙시다.

  
중국 문자는 곧 ‘매듭기록’ ?

 리쩌허우는 중국 문자의 기원을 ‘매듭기록’이라고 한다. 최초의 문자는 발생한 역사경험을 기록하기 위한 부호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점차 변해서 문자가 되고, 마지막에 음성언어와 결합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중국 문자를 ‘역사’라고 까지 개념 붙인다. 문자는 역사와 경험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엔 다분히 그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데리다 이야기를 다시 거론하면 이 부분 역시 데리다의 영향을 받은 느낌이 든다. 데리다는 언어의 속박을 깨고자 언어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음성언어 중심에 반대하면서 ‘문자’의 팔을 들어주었다. 데리다가 말하는 문자는 음성언어의 복사가 아니고, 중국 문자처럼 표의문자라는 것이다.

 
류사오펑(劉小楓)의 기독교 교의에 대한 리쩌허우의 견해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리쩌허우의 기독교관은 앞서 그의 신관(神觀)과는 상반되는 듯하면서 호의적인 부분이 보인다. 중국의 종교학자, 고전학자인 류사오펑이 ‘기독교 교의’를 통해 중국 전통을 비평한 몇 가지 중요한 논점은 굉장히 정확한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뜻밖이다. 류사오펑이 ‘중국에서는 인간의 지위가 무척 높았다.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한다’고 표현 한 부분에 시선이 머문다.

 
류사오펑의 비판은 1980년대의 사상 해방과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이 막 지나간 때였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 때 사람들은 ‘두려움’을 몰랐다고 한다. 사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너무 두려워서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인간 내면에 가라앉아 때만 노리고 있던 증오, 보복, 폭력 등이 고스란히 표출된 것이 문혁이 아니었을까? 문혁은 중국인들에게 감추고 싶은 진실 중 하나이다. 어쨌든 이 시기엔 두려움 뿐 아니라 당연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도 상실했음에 틀림없다. 류사오펑의 『우리 세대의 사랑과 두려움』이라는 책은 사람들 마음 깊숙한 곳의 자기 결함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1990년대에 류사오펑은 대학생들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독교 정신이 중국의 불충분한 점을 보충해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아울러 리쩌허우는 기독교의 전파가 중국의 마음, 즉 문화-심리 구조에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다.

 
리쩌허우의 삶을 들여다보면 근, 현대의 중국의 모습이 보인다. 이 책을 통해 리쩌허우는 물론 그 주변의 사상가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기독교 관련 견해는 현재 중국에서의 기독교에 대한 관점을 참고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중국철학이등장할때가되었는가    #리쩌허우    #류쉬위안   #이유진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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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기쁨을 길들이다 - 존재의 가장 강력한 경험, 기쁨으로 성장하는 지혜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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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각자의 삶에 기쁨을 초대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을 강조한다. 주의력을 강조한다. 하긴 우리의 일상에서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지금 느끼는 감각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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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기쁨을 길들이다 - 존재의 가장 강력한 경험, 기쁨으로 성장하는 지혜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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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기쁨을 길들이다- 존재의 가장 강력한 경험, 기쁨으로 성장하는 지혜

_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은이) | 이세진 (옮긴이) | 와이즈베리 | 2016-10-07

원제 La Puissance de la Joie (2015)

 

 

1.

철학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면은 다양하다. 존재감에 대한 인식, 자기 성찰,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등 철학은 철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의 삶 자체는 스스로 인식을 하던 안 하든 간에 이미 철학적이다. 단지 그 사유에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2.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이자, 세계적 철학자, 종교사학자로 소개되는 저자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이 책에서 특히 기쁨을 이야기한다. 기쁨을 생각하려면 반대쪽에 웅크리고 있는 슬픔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기쁨이나 슬픔이나 우리의 내면을 흔들어놓는 점에서는 같다. 슬픔은 모든 것을 허망하게 만들고, 몸과 마음을 주저앉게 하지만, 기쁨은 우리 내면에 파고 들어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충만감을 준다. 슬픔이 삶의 부정이라면, 기쁨은 긍정이다. 슬픔은 그나마 내 안에 존재하던 생명력의 불씨를 꺼버리지만, 기쁨은 어찌 보면 생명력 그 자체이다.

 

3.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기쁨이 떠오르게 할 수 있을까? 기쁨을 길들일 수 있을까? 기쁨을 걸러낼 수 있을까? 기쁨의 역량에 바탕을 둔 지혜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을까? 저자의 질문은 그 자신이 어느 정도 답안지를 채워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러한 질문들을 함께 생각해보고 각자의 마음에 답을 써보자는 이야기다.

 

4.

답안지를 채우기 위해 동양과 서양의 지혜를 참고한다. 사실 철학자라는 호칭이 붙은 존재감들은 기쁨이라는 것에 그리 깊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기쁨을 세속적인 쾌락이라는 범주에 집어넣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송 같은 저명한 철학자들이 기쁨을 사유의 중심으로 삼았다.

 

5.

저자는 위에 언급한 철학자의 입장에서 쾌락, 기쁨, 행복을 구별하고 기쁨의 경험을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이 책의 첫 걸음을 내딛고 있다. 아울러 저자 자신의 경험도 소개한다.

 

6.

지혜의 결과는 끊이지 않는 기쁨일지니.” _세네카. 역시 철학자들이 언급하는 기쁨은 느낌이 다르다. 베르그송은 이런 말을 남겼다. “자연은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분명한 표시로 알려준다. 그 표시는 바로 기쁨이다.” 기쁨과 동의어로 오해 받기도 하는 쾌락은 한계가 있다. “쾌락의 일시성과 양면성을 넘어서서 오래도록 지속되는 만족이 과연 존재할까?” , 지속시간에 제한이 없고, 외부 상황에 좌우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해로운 효과를 미치지 않는 만족이 과연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행복이라는 개념이 태어났다고 한다. 동서양의 현자들은 쾌락이 없으면 행복도 없지만 진정 행복해지려면 쾌락을 분별하고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점에 마음이 모아진다.

 

7.

저자는 각자의 삶에 기쁨을 초대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을 강조한다. 주의력을 강조한다. 하긴 우리의 일상에서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지금 느끼는 감각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다.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집중과 현존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훈련들 중 하나로 명상을 추천한다. 나도 여러 차례 시도해봤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것이 명상이다. 명상을 해보자고 앉아 있다 보면, 어찌 그리 잡념이 많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지나간 일, 앞으로 만나게 될 일 등에 대한 생각들이 뒤범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명상은 필요하다. 영적 재충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8.

인간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하다. 단지 그뿐이다. 그게 전부다. 전부란 말이다!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당장 행복해지리라!”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의 한 대목이다. 이 부분은 키릴로프가 자살을 택하면서 부르짖는 소리다. 아이러니하다. 자살을 앞두고 이렇게 행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9.​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살아가는 기쁨을 되찾아야만 한다. 내면의 자유를 얻고 관계를 다시 맺으려는 노력 말이다. 우리는 오래 살기를, 영원히 죽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것보다는 잘 사는 법, 매순간을 영원처럼 충만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철학기쁨을길들이다 #프레데릭르누아르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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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이렇게 어려웠던가 - 관계 맺기 심리학
옌스 코르센.크리스티아네 트라미츠 지음, 이지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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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관계에만 국한시킨다면, 이런 나의 처방은 어떨지?
“‘핫’한 만남, ‘쿨’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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