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무한도전 - 카이스트 한동수 교수의
한동수 지음 / 흐름출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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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특허에 관한 책을 한 권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쁘고, 내 일 하기도 버거운데 웬 특허? 하시겠지요. 하긴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특허는 못내더라도 최소한 저자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학문의 응용을 생각해보고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저자에 대한 소개가 먼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재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카이스트 실내위치 인식센터장, 카이스트 위치공학연구회 의장, 지능형교통학회(ITS)이사, 철도기술연구원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한동수 교수는 이외에도 여러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군요. 과학자이면서 60여 편의 시를 발표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3. 저자는 1980년대 초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변의 권유로 의과대학에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 1년 3개월 만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둡니다. 졸업만 하면 미래가 보장된 의사라는 직업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도전 없이 살아가게 될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뒤 과감하게 다시 공부해 공과대학에 들어갑니다. 당시 의과대학 동기생들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도 저자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4. 공과대학을 다니는 동안에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이고 싶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휴일도 반납한 채 도서관에서 지내며 학업에만 매달렸습니다. 덕분에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를 학과 최초로 3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교육부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교토대학 정보공학과에서 정규과정으로는 처음으로 2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5.  저자에게 터닝 포인트가 있었군요.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로 임용된 뒤 10년이 지났을 때 동료 교수가 저자에게 던진 질문이 자극이 되었습니다. "한 교수님, 지금까지 한 일 중에서 어떤 일이 가장 자랑스러우세요?"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에게 던져 볼만한 질문입니다. 저자는 자신 있게 대답을 못했다고 합니다. 이때 들었던 생각은 이제부터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세상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합니다. 필요하다면 나 자신을 바꾸겠다는 다짐을 하는군요. 그 나를 바꾸는 일 중 하나가 그때까지 써본 경험이 없었던 특허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6. 책은 총 5부로 나뉘어집니다. 특허 초보자, 특허 고수가 되다. 특허 그런 거였어?.  특허는 가까이 있다. 특허의 주인공이 되자. 특허와의 동행입니다.  저자는 특허와 관련해서 평균 이하의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고 하지만, 글쎄요 그것은 아닌 듯 합니다. 저자가 특허에 대해 몰입하기 시작한 것은 40대 중반 무렵부터라고 합니다. 거의 매일 특허에 대해 생각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주말마다 남산도서관에 박혀 그 아이디어를 정리했다고 합니다. 


7. 2008년 휴대기기가 있는 장소를 무선 랜 신호를 이용해 인식하고 해당장소와 연계된 프로그램을 그 장소에서 즉석으로 휴대기기에 내려받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수십 편의 특허를 출원하게 됩니다. 저자가 특허 출원한 것 중에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목적지를 입력하면 LED 디스플레이에 자신이 탑승해야 하는 버스와 목적지 정보가 표시되는 스마트 버스 정류소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8. 특허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데는 크고 작은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역발상은 기존의 사고방식을 깨는 것이지요. 고정관념에서 벗어 날 때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이면서 출력 수단이었던 화면을 입력 수단인 키보드로 사용하게 한 아이디어를 역발상의 예로 소개합니다. 새뮤얼 모스의 전신 시스템도 전기선으로 신호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생각에서 출발한 특허기술이라고 합니다. 


9. 그렇다면 어떤 분야가 특허출원에 유망할까? 정답은 없다고 합니다. 모든 분야에서 특허를 출원할 수 있고 언제 어떤 특허기술이 널리 활용될지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마트폰, 전기, 전화, 자동차, 자전거 모두 특허 기술과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특허기술에 뒤덮여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허는 누구나 금세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것부터 복잡한 전문 분야의 지식이 요구되는 것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합니다. 


10. 이 책은 특허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진 않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려고 애쓴 책도 아닙니다. 단지 저자가 특허와 관련해선 거의 백지상태나 다름없음에서 지난 몇 년 동안 특허와 씨름하면서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작은 성공을 맛보며 특허를 알아가게 된 과정을 진솔하게 고백한 글입니다. 비록 특허를 못 낼지라도 저자의 열정을 내 가슴과 내 머리에 담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겠지요. 늘 무심히 보고 지나쳤던 나의 일상에서의 삶을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들여다 보게 되는 자극의 촉매 역할을 한다고 생각듭니다. 일상의 작은 아이디어가 특허로 연결될지도 모르지요. 클립이나 포스트 잇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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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왜 내 편이 아닌가 - 우리의 습관을 좌우하는 뇌 길들이기
이케가야 유지 지음, 최려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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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뇌는 왜 내 편이 아닌가?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편이란 말인가? 단순히 저자가 관심을 끌기 위해 책제목을 정하고 글을 쓰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책을 펼칩니다. 부제는 '우리의 습관을 좌우하는 뇌 길들이기'로 되어있군요. 


2. 저자 이케가야 유지는 도쿄대학교 대학원 약학계 연구과에서 약학박사를 취득했다고 소개됩니다. 저자의 관심 분야는 기억의 메커니즘과 치매, 간질, 우울증 등입니다. 특히 '뇌의 가소성 탐구'를 연구 주제로 삼고 있군요. 가소성(可塑性)이란 외력에 의해서 변형된 물체가 외력을 제거해도 원래의 상태로 환원되지 않고 영구변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아울러 이전까지 뇌에 관심이 없던 일반인을 대상으로 뇌에 관한 첨단 연구를 알기 쉽게 해설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3. 저자는 이 책을 비롯한 모든 저술 활동의 주제를 뇌 과학의 관점에서 '더 나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정리하겠다고 합니다. 즐겁게 기분 좋게 살기. 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뇌 과학의 성과가 활용된다면, 저자로서 그리고 뇌 연구자로서 더 없이 행복하겠다고 하네요.


4.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26 꼭지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1부 '깊이 생각하지 않는 뇌' ,  2부 '내 마음대로 했다는 거짓말' ,   3부 '뇌는 내가 하기 나름입니다'. 저자 스스로 핵심적인 내용을 18~20장에 담았다고 합니다. 그 소제목들은 '뇌에는 자유의지가 없다' , '일단 행동을 시작하면 의욕은 따라온다' , '웃으니까 즐겁다는 역인과관계'. 이 세 가지중 첫 번째 '뇌에는 자유의지가 없다'를 제외한 두 가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듭니다.


5. '빨간색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꼭지를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색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온도가 마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 결과입니다. 콜로라도대학교의 로렌스 윌리엄스 박사팀의 연구입니다. 연구팀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깐 메모를 해야겠는데, 이 커피 좀 들고 있어 주실래요?라며 낯선 사람에게 부탁합니다. 이때 실험용으로 따뜻한 커피와 아이스커피 중 하나를 준비하여 상대방의 반응을 비교합니다. 그 결과 따뜻한 커피를 들어준 사람이 아이스커피를 들어준 사람에 비해서 '의뢰자는 온화하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더 많이 받았다는군요. 너무 시시한 실험인가요? 어쨌든 비가 오는 날보다 맑은 날 첫 데이트를 할 때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높아진다는 점도 드러난바가 있다니까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6. 자, 그렇다면 빨간색이 어떻다는 이야긴가 들어볼까요? 온도뿐 아니라 색깔 역시 우리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있긴 합니다. 이런 통계도 있군요. 권투, 레슬링 경기에서 홍코너쪽이 청코너쪽보다 10~20 퍼센트 정도 승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빨간색이 '파워플한 색'이라는 설명보다는 상대방을 정신적으로 위축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는군요. 다른 팀의 연구결과를 보면 빨간색은 심리적으로 회피적인 경향을 낳고 경계심을 높이는 반면, 파란색은 적극적이며 호전적인 경향을 촉진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빨간색이, 새로운 디자인을 생각한다든지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처럼 창조성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파란색이 좋다고 합니다. 


7. 저자가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언급한 곳으로 관심을 가져볼까요? '뇌에는 자유의지가 없다'. 이 꼭지글 제목이 책 제목하고 부합되는 듯 합니다. 이렇게 시작을 하는군요. '80퍼센트 이상은 정해진 습관을 따른다'. 흥미로운 연구결과입니다.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교 알버트 바라바시 박사팀의 연구결과에 일면 수긍이 갑니다. 바라바시 박사는 복잡계 네트워크 연구의 선구자 중 한 사람입니다.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링크]의 저자입니다. 


8. 바라바시 박사팀이 활용한 것은 휴대전화입니다. 통신사에는 사용자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상세한 데이터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지요. 박사팀은 5만 명의 사용이력을 3개월에 걸쳐 조사한 끝에 각 사람의 이동 엔트로피를 산출해냈습니다. 조사결과를 간단히 설명드리면 평소 행동패턴을 알고 있을 경우 어떤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평균 두곳 이내로 좁힐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변화와 자발성을 간절히 바라지만 현실 생활은 강한 규칙성에 지배된다는 이야깁니다.


9. 자, 그렇다면 '자유의지'라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의지가 뇌에서 생겨나지 않고, 주위 환경과 신체의 상황으로 결정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평소의 습관이 들어가겠지요. 착각이라는 표현도 나오는군요. 심리학자 허태균은 [가끔은 제정신]이라는 책을 통해 "착각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당신과 우리"를 향한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했지요. 저자의 실험 결과와 논리를 모두 소개하기엔 리뷰라는 공간이 너무 확대되기 때문에 생략하렵니다. 어떤 사항을 결정하려 할 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결에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따라서 (나의)뇌가 내 편이 아닌 경우가 매우 자주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10. 나의 지난 기억을 더듬어볼 때 그런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군요. 뇌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저자의 조언을 옮겨봅니다. "그러므로 나는 좋은 경험을 쌓아서 좋은 '반사'를 할 수 있도록 전념하는 삶을 제안한다. 이것이 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최선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좋은 경험을 하고 그 이후는 뇌의 자동적 반사에 맡길 뿐, 이만큼 긍정적이고 건전한 생활이 또 있겠는가?".  여기서 '반사'를 '결정'으로 바꿔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직관의 힘'을 키우는 방법이 되겠지요. 나중에 시간이 허락되는대로 '직관'에 대한 책도 몇 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리뷰가 좀 길어졌군요. 뇌에 관한 책이지만 여러 실험 결과가 실려 있어서 읽기에 지루함이 없고, 문장이 쉽게 쓰여져서 권해 드릴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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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케 & 카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지식인마을 7
조지형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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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에게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된다. 역사와 철학을 전공한 헤이든 화이트는 그의 저서 [메타 역사]를 통해 역사가들의 저작을 분석하면서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역사 서술에 나타난 이미지의 패턴과 사료의 설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역사 서술에서 역사가들의 시각을 반영한 이미지, 상징, 알레고리를 찾아 분석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2. 이 책에서 저자 조지형 교수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레오폴드 폰 랑케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정의한 에드워드 카 (E. H. 카)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이런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역사로 기록된)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혹은, 우리는 정말 사실을 알 수 있을까?" 


3. 아울러 실증사학에 대한 편견을 우려하고 있다. 실증사학 역사가를 사료에 얽매여 있는 노예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학문적 경향으로서의 실증사학을 지지하지 않지만, 근대 역사학을 열었던 실증사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역사 입문자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 있다. 


4. 저자는 자신이 지내온 역사와 자신이 속한 집단(지역, 국가, 세계 등)의 역사를 보다 명확하고, 깊이 있게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읽어 낼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와 식견을 함양하는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5. 랑케는 평민으로 태어났지만 귀족이 됐다. 1865년 랑케는 독일의 역사학에 기여한 공로로 귀족의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공헌은 독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당시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청년들이 몰려왔고, 공부를 마친 이들은 자신의 모국으로 돌아가 그의 가르침을 전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들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거쳐 '랑케사학' 혹은 '실증사학'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정신적 세례를 받았다. 


6. 랑케는 1824년 [라틴 및 게르만 제 민족의 역사 1494 ~ 1514)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랑케를 일약 세계적인 역사가로 만들었다. 이 책으로 랑케는 학문적 자질을 인정받아 김나지움의 고전학 교사 생활을 접고 베를린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책 하나 잘 써서 고등학교 교사에서 대학 교수로 올라가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중요성과 가치는 그 이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존경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역사학이 존재하는 한 존경과 비판이 계속될 중요한 책으로 자리매김한다. 


7. 랑케의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책의 서문이 보여주는 상징성 때문이다. 그의 유명한 서문은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역사에는 과거를 판단하거나 윤택한 미래를 위해 교훈을 제공해 주는 기능이 있었다. 이 책은 이러한 고상한 과업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려고 할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가의 일차적 임무는 과거 사실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를 밝히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8. 그렇다면 랑케보다 좀 더 친숙한 이름인 카는 역사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갖고 있을까?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는 40년 넘게 전 세계적으로 역사학 입문서로 각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선 1964년 길현모 교수가 처음 번역, 출간 이래, 지금까지 대학의 역사 전공생들뿐 아니라 일반 지성인들의 필독서가 되어왔다. 그의 역사 이론은 다른 역사학자의 이론보다 도구주의적이며 실용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9. 카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언급한 것은 사실의 구분에서부터 시작한다. 1) 과거에 대한 사실. 2) 역사상의 사실. 3) 역사적 사실이 그것이다. 아울러 그는 "사실들의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충고한다. 역사책을 읽고 있으면 그 이면에서 속삭이듯 그 책의 저자(역사가)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그 저자의 속삭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를 먼저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10. 그렇다면, 리뷰 초두에 언급한 헤이든 화이트는 랑케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가? "랑케의 역사 개념은 낭만주의의 부정 이상의 것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것은 그 밖의 많은 다른 부정, 즉 헤겔의 선험적인 이론화, 물리학과 당시의 사회이론으로서의 실증주의학파를 통해 일반화된 기계론적 설명 원리, 그리고 공인된 종교적 교리에 나타난 독단론에 대한 부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요컨대, 랑케는 역사가로 하여금 일차성, 특수성, 선명성을 통해 역사의 장을 관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것을 배격했다. 그가 올바른 사실주의적 역사 연구 방법으로 간주한 것은 낭만주의 예술과 실증주의적인 과학, 그리고 당시의 관념론 철학의 방법을 부정한 후에만 달성 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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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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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 기억 속 도깨비들의 이미지는 이렇다. 우선 머리 위에 뿔이 하나 있다. 눈은 하나다. 키는 대체적으로 자그마하다. 상체는 벗었고, 아랫도리는 치마 아니면 반바지다. 어려서는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귀엽다. 아, 뽀글뽀글 튀어나온 방망이를 하나 들었다.

 

2. 이 책의 주인공은 도깨비다. 100년을 살아왔다. 그의 몸엔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그가 존재한다. 그의 이름은 공윤후다. 있는 것 같으나 없는 것인 '공(空)', 있지만 없는 날인 '윤',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시간인 '후'. 그의 외모는 출중하다. 전형적인 도깨비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매력있다. 끌어당김이 있다.

 

3' 당연히 이 소설은 환타지 스토리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남긴 코드는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도 있다."이다. "너 좋을대로 해.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인간인 거야. 혼자가 무서우면 둘을, 둘이 무서우면 혼자를 택하는 거야. 하나는 불행, 둘은 다행이라지만, 어느 쪽이든 거기엔 반드시 대가가 따르지."

 

4. 도깨비가 왜 이 땅에 나타났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걸까? 그는 마술사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살아가며 마술사의 그것처럼 마술같은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묘사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선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그저 기적처럼, 마술처럼 무언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5. 산해음허(山海陰虛)의 기(氣), 초목토석(草木土石)의 정(精)이, 옮겨 물들고 섞여 합쳐져서 이매로 화하니, 사람도 아니고 귀(鬼)도 아니고 유(幽)도 아니고 명(明)도 아니나 또한 일물(一物)이다.  [해동잡록 권6]에 나오는 이야기다. 도깨비를 표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도깨비에게도 역사와 전통이 있다.

 

6. [혹부리 영감]은 도깨비 스토리의 백미다. 처음 시작은 신경섬유종이 얼굴을 뒤덮고 있는 어느 불운의 여인을 행운으로 바꿔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딱 혹부리 영감이야기다. '활'이라고 있다. 윤후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다. 그가 중간 중간 공윤후를 설명해준다. '활'이 깨어난 것도 윤후의 영향이다. 우정국이 문을 열던 1884년, 윤후가 말을 거는 바람에 잠에서 깼단다. '활'은 윤후곁을 지키며 그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7. 사람은 눈으로 봐야만 믿는 존재이다. 아니 눈으로 보고도 안 믿는 경우도 있다. 내 눈에는 보이나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일 수도 있다. 그 반대일 경우도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전한다.  "늙어서 눈이 어두워지면 별수 없이 손과 코로 세상을 보고 거기에 내가 기억해둔 색을 입혀야 하지. 그러니까 눈이 밝을 때 부지런히 세상을 봐둬야 많은 색을 기억해둘 수 있단다."

 

8. 도깨비도 찾아갈 것이 있나보다. 사람만 무엇엔가 홀려서 사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 무언가를 찾으러 인간 세상에 왔다. 강제로 뺏어갈 수도 있지만, 조건을 내걸고 찾아가려 한다. 이 과정이 스토리의 전체적인 흐름을 리드하고 있다.

 

9. 다시 공(空) 이야기로 가본다. 사실 공은 비어 있는 것 같으나, 꽉 차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병이나 어항에 물이 꽉 차있으면 마치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리의 기억 어느 한 곳에서 자리잡고 있는 의식이 너무 꽉 차 있어서 존재감을 못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가 책 말미에 남긴 말이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느림이 필요 할 때 지금 있는 시간과 장소 밖으로 눈을 돌려 오래 된 것들을 뒤적여봅니다. 내 머릿속 한구석에 묻혀 있는 오래된 것들도 꺼내봅니다. 그 안에서 진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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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의식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조르주 풀레 지음, 조한경.이현진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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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스개소리로 넘길 이야기지만, 작가의 꿈을 접은 사람이 비평가 또는 평론가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책이 있으면 작가가 있고, 독자가 있고, 비평 또는 평론가 그룹이 있다. 이 책의 키워드는 비평, 비평가이다. 이 책에선 일관되게 '비평가'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서 독자는 모두 비평가이기도 하다.

 

2. 서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진정한 비평적 사고의 귀착지라고 할 수 있는 독서 행위는 독자의 의식과 작가의 의식이라는 두 의식의 일치를 전제한다." 그러나 두 의식의 일치를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있다. 우선 텍스트를 이해해야 하고, 그에 앞서 열렬한 독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비평이 가능하다. 이제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고뇌하며, 행동하게 된다.

 

3. 저자 조르주 풀레는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프루스트를 들고 있다. 프루스트에겐 글을 쓰는 창작 행위에는 독서가 필요하며 독서를 통한 문학의 비평적 발견을 전제한다. [장 상퇴유], [희열의 나날들], 그리고 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기 전 그(프루스트)는 단순한 비평가이자, 단순한 독자였다. 그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가 무엇보다도 먼저 꿈꾼 것은 훌륭한 독자! 보기 드문 독자가 되는 것이었다. 나의 도전 의식이 꿈틀댄다. 목표로 할 만하다.

 

4. 프루스트는 작가이면서 비평가였다. 월터 스트로스는 비평적 활동이 그의 부차적인 활동이였다고 했지만, 샹탈은 반대로 프루스트가 비평의 첫걸음을 내디딘 다음에야 비로소 소설에 손댈 수 있었다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작가와 비평가의 행보를 같이 했다고 생각된다. 그의 작품 [장 상퇴유]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서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작품에 몰두한 독자다. 독자는 독서에 골몰하다가 작품 세계에 빠진다.

 

5. 프루스트는 이런 말을 했다. "독서를 하다가 발자크 또는 플로베르의 리듬에 순치된 우리는, 우리의 내밀한 목소리는, 독서를 마치고 나서도 그들의 소리를 내려고 한다." 이런 느낌이 나도록 책을 읽어야 하고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과 보조를 맞추는 일보다 독자와 작가를 가깝게 해 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독자와 작가를 하나 되게 한다. 독자에게 작가의 가장 내밀하고도 은밀한 사고방식, 감각방식, 삶의 방식을 경험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독서란 "자기 안에서의 재창조다."

 

6. 한 작가의 작품 하나만 읽어보고 그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이다. 저자는 한 작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한 작품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비평에 관한 한 확인이 없는 인식이란 없다. 그래서 '전작주의'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졌다.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섭렵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다양한 모든 작품에서 그들 전체에 대한 어떤 공통된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자체가 무리 일 수 있다. 그것은 한갖 꿈으로 그칠 수도 있다. 작가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보면 총체적 우주의 조각난 이미지에 불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런 면에선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적 독서는 필요하다. 그 조각들을 서로 결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럴 때 진정 훌륭한 독자, 보기 드문 독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7. 저자 조르주 풀레는 비평가이다. 스무 살 때부터 비평가의 소명을 절감했다고 한다. 시간, 공간이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의의에 대해 몰두했던 조르주 풀레는 비평의 업적으로 20세기 사상의 흐름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주로 교제한 비평가들로는 마르셀 르몽, 장 루세, 장 스타로뱅스키 등이 있는데,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스위스, 특히 주네브였기 때문에 그 일단의 비평가들을 주네브학파라고 부른다. 이 책은 비평의 비평서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보들레르, 프루스트, 가스통 바슐라르, 사르트르 처럼 작가와 비평가로 두 집 살림을 한 인물들과 순전히 비평가 그룹에서만 활동한 여러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8. 저자는 [비평적 의식의 현상학]이라는 챕터에서 책과 독자, 독서에 대한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텅 빈 방, 책상 위에서 책이 독자를 기다린다. 모든 문학작품들은 그런 상태에서 최초의 상황을 맞는다.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 책은 종이로 만들어진 무기력한 하나의 단순한 대상으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책은 누군가가 자신을 그러한 무기력과 물질성에서 구해주기를 도서관 서가나 서점 진열장에서 기다린다.(...) 진열장에 꽂힌 책들은 내게 구매자가 나타나 선택해주기를 안타깝게 기다리는 시장의 동물들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의심할 여지 없이 동물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안다. 인간이 개입하는 순간, 동물은 사물 취급을 모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독자가 관심을 보이지 전까지 책은 모멸을 안은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 우리는 이따금 책들이 희망에 차 있음을 본다. '나를 읽어 주시오'라고 금방이라도 말하는 듯 하다. 나는 그들의 요구를 저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 책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다." 공감한다. 특히 내 체온이 전해지면 더욱 그러하다. 이젠 책이 더 이상 그냥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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