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란 무엇인가?
제롬 케이건 지음, 노승영 옮김 / 아카넷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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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돌출행동을 하거나 화를 잘 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거나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을 대할 때 정서적 불안정(Emotional Instability)상태라고 표현한다. 정서적 불안정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뇌(brain)의 기질적인 병변에 의해서 오는 것일까? 개인의 성격에서 오는 것일까? 성장과정과 환경에서 누적된 심층심리학적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까? 그렇다면 상대방을 정서적 불안정상태라고 명명하는 나의 정서성태는 어떤가? 이상이 평소 정서(Emotion)에 대한 나의 궁금증이었다. 

저명한 심리학 박사인 제롬 케인건의 책을 읽으면서 [정서]에 대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심리학전공자도 아닌 입장에서 이 책을 대함에 진도가 쉽게 나가진 않았지만 [정서]에 대해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정서]가 뇌 활동에서 비롯되나 각각의 정서는 뇌 활동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심리현상’이라고 한다. 하나의 뇌 프로파일에서 다양한 정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어떤 정서가 실제로 일어나는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개인사와 생물학적 조건이 언제나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요즘엔 교통사고로 뇌 손상을 받은 환자의 정신적 진단을 위해 기본적으로 MRI(자기공명 단층촬영기)를 시행하고 있다. MRI검사 소견의 비중을 어느 정도에 두느냐에 따라 환자의 정서적 장애나 문제점을 찾아내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MRI로 수집한 뇌 프로파일이 감정이나 정서 상태에 해당하거나 이를 대리한다고 기술하는 현재의 일반적 관행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첫째, 이들 기계는 자극이 제시된 지 몇 초 뒤에 뇌 부위로 흘러드는 혈류변화를 보여주는 반면, 정서 반응 중에는 즉시 일어나 2초 안에 끝나는 것도 있다.  

둘째, MRI의 자기장 세기에 따라 자극으로 활성화되는 부위에 대한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어떤 부위가 강력한 자기 MRI에서 활성화된다고 해서 덜 강력한 기계에서도 반드시 탐지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자극에 대한 특정 뇌 활동 프로파일은 당시의 상황과 개인사, 기질이 달라짐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MRI에 누워 실험자에게 평가받는 새로운 경험에 따른 불안은 일반적으로 코르티솔 분비량을 잠깐 늘린다. 이는 피험자의 뇌 상태와 심리상태를 바꿀 수 있음을 의미한다. (p.131) 

흥미로운 것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감정표현이다. 물론 동, 서양이 여러 분야에서 차이를 나타내지만, 저자는 동양인은 동사형을 서양인은 형용사형을 사용하는 감정 표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중국인 응답자들은 다정하거나 자비로운 사람을 기술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이렇게 말 할 것이다. “페이는 파티에서 친구를 안아줘요.” “징은 거지를 보면 돈을 줘요.” 미국인이라면 이렇게 말 할 것이다. “메리는 정이 많아요.” “빌은 너그러워요.” 앞의 문장들은 뒤의 문장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다정하다’라는 형용사는 사람의 고정된 특성을 강조하는 반면 ‘파티에서 친구를 안는다’ 라는 동사구는 성격유형의 제한된 성질을 가리킨다. 중국인들은 동사구를 더 즐겨 쓰기 때문에 행동이나 정서가 드러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표현 할 수 있다. (p.192) 

저자는 한 개인의 정서라는 것은 시대적, 환경적, 인종적, 혈통적 또는 부모의 영향, 남녀차이, 연령별 등 무수히 많은 요인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본인의 이름이 그 일생의 정서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내 동료였던 데이비드 매클리렌드(David McClelland)는 어릴 적에 자기와 이름이 같은 성서의 영웅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감에 찬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1926년에 독일에서 유대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역사가 프리츠 슈테론의 이름은 질소비료를 처음 합성한 저명한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하지만 하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약과 독가스 성분을 합성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 결과, 슈테론은 자부심과 수치심이 결합된 혼합적 대리 정동을 느꼈다고 회상하고 있다.   (P.214) 

저자의 깊은 학문에 경의를 표하며, [정서]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보다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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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란 무엇인가?
제롬 케이건 지음, 노승영 옮김 / 아카넷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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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란 단어가 주는 다양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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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 개념과 역사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5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광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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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실험을 편집한 TV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화장실 앞에 남녀 표시판중 그 모양은 그대로 두고 색깔만 바꾸었습니다. 우리 눈에 익숙한 것은 남자 화장실은 청색, 여자 화장실은 적색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 두 그림의 색깔을 바꾸자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거의 50% 정도는 색깔만 보고 바꿔 들어갑니다.

 

기호학 책을 보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기호학이 이런 그림이나 색깔이야기만 한다면 머리 아플 일이 없는데,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참, 화장실 이야기 한 김에 한 가지 더. 인터넷 서핑 중 보게 된 사진 한 장. 보신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지방의 어느 등산로 초입으로 보이는데, 화장실 입구 흰 벽에 커다란 그림 한 장이 걸려있습니다. ‘똥’그림입니다. 화투에 있는 그 ‘똥’입니다. 일본 사람들까지는 알아보겠지만, 서양인들의 눈엔 무엇으로 보일까요? ‘화랑’으로 보여 지진 않을까요? 이 역시 기호는 기호인데, 글로벌화하지 못한 기호라고 생각이 듭니다.

 

움베르토 에코 - 이 분의 작품을 한, 두 권 읽어본 사람은 얼마나 박학다식맨(?) 인줄 알 것입니다. 이 분 출생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드라마틱하지요. 에코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소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에코라는 성은 〈ex caelis oblatus (천국으로부터의 선물이라는 뜻의 라틴어) 〉의 각 단어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시청 직원이 버려진 아이였던 그의 할아버지에게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그 선물의 대부분을 차지 한 것 같습니다. 학자로, 소설가로 큰 족적을 남기고 있지요.

 

이 책은 저자가 기호학 관련 책을 여러 권 펴냈음에도 불구하고, 기호학 입문서로서 꾸준히출판,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세 가지 특징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첫째, 현재 기호학이 다루는 모든 주제보다는 다양한 기호의 개념을 분석하고자 했다.

둘째, 하나의 이론을 정립하기보다는 다양한 기호 이론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였다.

셋째, 기호의 개념이 특수 기호학이나 언어학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는

의미에서 철학 사조의 전체적인 역사를 훑어 보고자했다.

 

책은 크게 5개 섹터로 구성되었습니다. 기호학적 과정, 기호의 분류, 구조주의적 접근방법, 기호의 생성양식 그리고 기호의 철학적 문제들이 그것입니다. 기호는 앞서 이야기한 그림이나 문양은 물론 광범위하게는 언어, 문자, 몸짓 등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것〉입니다. 이 책은 〈기호의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흔히 기호학은 기호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소개되지만 기호란 특정한 커뮤니케이션 체계에 기초하여 인간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작동하는 과정이자, 과정의 원료가 된다고 합니다. 기호학적 과정을 보면,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요소로서 기호와 의미과정의 요소로서 기호로 나눠지지요. 한 권의 책은 다양하게 조합되는 기호들의 길고 긴 연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두 가지 기호 즉, 〈인공기호〉와 〈자연기호〉를 구분했습니다. 인공 기호란 정확한 규약에 따라 (인간 또는 동물일수도 있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전달할 때 사용하는 기호들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단어, 그래프 기호, 그림, 음표 등) 이런 기호의 근원에는 항상 〈발신자〉가 있다. 자연 기호에는 의도적인 발신자가 없으며, 자연적 근원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징후나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간염으로 진단하게 되는 피부의 반점들,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 비를 예고하는 먹구름 등). 환희와 같은 무의식적인 기호들처럼 자연 기호들이 특정한 심리 상태의 징후로 나타날 때는 〈표현적 기호〉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기호들이 묘사될 수 있다는 사실은 표현적 기호들조차도 사회화된 언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그런 언어로서 분석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후각기호, 촉각기호, 미각기호, 시각기호, 청각기호 등의 범주가 〈의미군 〉으로 불리어진다.”

 

저는 별도로 영어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이 책에서 낯익은 용어들을 대하며 그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구조주의, 음소계열, 음의 변별적 특징을 갖는 최소단위인 음소, 대립, 변별적 자질, 음성학 등. 굳이 어문계열이 아니더라도 기호학에 대한 개념 정립과 소통의 배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에코에 대한 단상 하나 - 90년대 중반. 국내에 에코의 ‘푸코의 진자’가 처음 번역 소개되었을 때부터 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코 - 푸코 - 사이코.'  교정을 보던 편집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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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 개념과 역사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5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광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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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을 접하기 위한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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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우주 - 말에 숨은 그림, 오늘을 되묻는 철학
우석영 지음 / 궁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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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을 돌아보며 잊히지 않는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국민윤리 과목을 맡고 계셨지요. 한자 교육을 자청해서 맡아서 해주실 정도로 열심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조령모개(朝令暮改)의 달인들이 포진해 있는 문교부(교육인적자원부 전신)에선 ‘국적 있는 교육’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한자를 없애느니, 마느니 설왕설래(說往說來) 할 무렵이었습니다. 결국 제 3년 후배들부터는 한자의 스트레스에서 일순간 벗어났지요.

 

그 선생님이 텍스트로 삼아 주신 책은 을유문고판 「명심보감(明心寶鑑)」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첫 시간에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가면서 책을 읽을 때마다 한자를 모르면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것이다. 만화책이나 들여다보고 살 것 같으면 한자를 몰라도 된다. 그러나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서적은 한자를 모르고는 그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선생님의 이 말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제가 한자 공부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명심보감은 중학교 때부터 가방에 넣어갖고 다니며 버스 안에서도 틈틈이 봤던 책이기도 했기에, 그 선생님 시간이 많이 기다려졌지요.

 

선생님의 열성적인(?) 지도 덕분에 우리는 한자 공부에 게으름을 부릴 수 없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기 5분전쯤..쪽지 시험을 치룹니다. 공포 그 자체입니다. 저도 그랬지만 다른 친구들도 한자의 음과 뜻은 그럭저럭 두드려 맞추는데 거꾸로 한자를 쓰라고 하면 거의 그림 수준이 되고 맙니다. 한자 이야기를 쓰다 보니 저와 비슷한 세대님들은 알고 계시는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간지 1면 톱기사는 대통령 자리였지요. 이승만 정권 때 1면 톱기사에 “이승만 大統領 ~ ”해야 하는데 대(大)자에 점 하나 떡하니 올라앉아서 “이승만 견통령(犬統領)”이 되었지요. 지폐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던 초상이 반으로 접을 때 지엄하신(?) 얼굴이 구겨진다 해서 초상을 한 쪽으로 옮긴 그 시절이었는데, 개통령을 만들었으니, 그 신문의 편집자와 식자(植字)담당은 얼마나 혼이 났을까 짐작되시지요?

 

이런..한자와 관련된 책이야기를 리뷰 올려드리다 보니 잠시 옛 기억이 스몰스몰 올라왔습니다. 어쨌든 저는 고교시절에 한자를 배운 것이 참으로 행운이었습니다. 한의대를 입학한 제 후배는 일부러 한자 학원을 다니면서 별도 공부를 해야 했으니 그 당시 문교부 관계자들은 한학자들의 밥줄을 당겼다 풀었다 한 셈이지요.

 

이쯤에서 저자 소개를 간략히 하고 나서 책 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자 우석영은 연구보다는 시서화 창작(즉, 놀이)을 더 좋아하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자이자 문필가로 적혀있습니다. 국내외 여러 대학, 대학원을 유랑하며 사회학, 문학, 철학(세부전공:창조성의 존재론)분야의 내공을 쌓았다고 하네요. 그러나 물리적, 심리적 시간으로 학교보다는 산중에서, 도서관에서, 서재에서 홀로 연마한 독학자에 가깝다고 합니다. 특히 이 대목에 맘에 듭니다. [독학]. [독학자]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 책에 모인 글들은 본시 글쓴이가 노트에 적어본 일기의 일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출간을 전제로 집필한 것들이 아니라 일기 노트에 ‘그냥 한번 되는 대로 적어본 것 들’이랍니다. 그렇다고 잡기(雜記)정도로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이것은 일기가 아니라 차라리 에세이가 아니냐 하실 분들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일기를 이런 식으로 쓰는 사람이다.”

저자는 덧붙여 이 글들이 새벽에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글쓴이와 새벽과의 관계가 이 글들의 탄생의 배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책이냐고 물으시면, 한자어· 한글의 옛 뜻풀이, 말의 소리를 담은 책이라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끝내기엔 좀 아쉽습니다. 그 이유는 깊이 있는 인문철학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 한자(漢字)에 알레르기 사인이 있으시던가, 아님 그 반대이시든 상관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단지, 단순히 한자 관련서적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대로 인문철학서 한권을 마스터 한다는 심호흡이 필요합니다. 전체쪽수는 색인 포함 760쪽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된 110여개의 한자풀이가 정답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자도 그리 이야기하네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에 등장하는 한자어들이 사색을 위한 디딤돌이었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정(精). 쓿은 쌀알 정. 낱말 精은 파릇파릇(靑) 돋아난(벼, 밀, 보리 따위의) 곡식의 아람(米)을 그린 것이다.(....)고대 중국인에게도,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쌀알의 제1상징이란 사람 생명의 존속을 가능케 하는 근원 물질로서의 상징이다. 精은 정령(精靈), 혼령(魂靈)이기도 하다. 정신(精神)이라는 말에 쓰이는 낱말 역시 精이다. 정신, 靈의 다른 말은 얼이다. (......)

精은 또한 깊은 것, 세밀한 것, 깊고 세밀한 것에 도달하려 함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정박(精博)은 지식의 깊고 넓음이요, 정려(精慮)는 깊이 생각함이요, 정해(精解)는 깊고 정밀하고 면밀한 해석이다. 정연(精姸)은 정묘하고 자세한 아름다움이요, 정련(精練)은 세밀히 단련함이요, 정사(精舍)는 (자세하고 깊은) 학문을 가르치는 곳 혹은 불도(佛道)를 닦는 장소인 것이다.

 

 

독(讀). 읽다. 읽기를 지시하는 讀의 원형적 뜻은 ‘비의를 풀어 이해함’이다. 이를 텍스트에 적용해보면 텍스트를 읽는 일이란 그 표면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실체 또는 속뜻을 이해함이다. (....) 읽기(reading) 는 봄(seeing) 이라는 지각행위 없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동시에 봄 이상의 것이 관련된다. 그 이상의 것은 물론 정신의 활동인데 사르트르는 이 활동을 ‘창조(creation)라 부른다. 그에 따르면 읽기는 시지각(視知覺)과 연동되며 시지각과 공속한다는 속성보다는 창조라는 속성이야말로 ‘읽기’라는 활동의 비밀을 푸는 핵심 열쇠가 된다. (......)

바슐라르는 독자가 텍스트(또는 작가)를 만나며 느끼는 공감을 두 종류로 나누어 깊은 영혼의 차원까지 건드리는 공감 작용을 울림(reverberation)으로, 그렇지 못하고 표층에 닿고 마는 것을 반향(resonance)으로 개념화한다. 말할 것도 없이 독서-창조의 기쁨을 강렬히 일으키는 것은 앞엣 종류의 공감 작용이다. 내가 늘 생각해왔던 것, 내가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어렴풋이나마 느껴왔던 것처럼 생각되는 것, 그러한 것이 보다 명징하고 아름다운 글의 꼴로 내가 모르는 남에 의해 구체화된 것을 나는 홀연 발견한다. 그러나 이 발견은 그저 펜이나 인형을 거실에서 발견해내는 것과는 다른 발견이며, 오히려 우리가 ’창조‘라 부르는 과정과 동시에 발생되는 발견인 것이다.

 

P.S : 아전인수(我田引水). 바슐라르가 이야기한 부분. 책을 읽으며 느끼는 공감에서 나아가 리뷰를 쓰는 것은 역시 한 ‘울림’에서 텍스트의 작가와 창조의 순간에 함께 서게 됩니다. 어느덧 독자이자 창조저인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 됨’을 이룩합니다. 그것은 본디 나 아니었던 것과의 자발적이고 순종적이고 절대적인 하나 됨이니, 이러한 독서 경험은 사랑의 경험과 유사할 것입니다.

 

바슐라르에게 묻습니다.

리뷰를 쓰는 것도 작가의 창조 작업에 동참하는 것 맞지요?

맞답니다. 그러니까 딴 생각 말고 열심히 읽고 쓸 일입니다.

우리는 창조 군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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