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만화의 한 컷인데, 알프스를 배경으로 프랑켄슈타인이 서 있는 모습이다. 물론 내가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은 정확히는 <프랑켄슈타인> 속의 괴물, 피조물이었다. 어린 시절 집에서 보던 잡지 속에 <프랑켄슈타인>이 만화로 몇 달간 연재 된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두근두근하며 읽었는지 그 때의 만화 컷이 여지껏 선명히 각인 되어 있다. 아마 마르고 닳도록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알프스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이 각인 된 것은 어린 마음에도 괴물의 고독감이 절절이 와 닿았던 것 같다. 이번에 새로이 읽으며 보니 내가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은 '이름이 없는 괴물'이었고, 프랑켄슈타인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알프스 산의 이름은 몽탕베르. 프랑켄슈타인이 살던 곳은 스위스 제네바. 런던 태생인 작가 메리 셀리가 남편인 퍼시 셀리와 여행을 간 곳이 스위스. 그 곳에서 시인 바이런과 이웃하며 지내게 되고, 남편과 바이런의 대화에서 갈리아 전기등에 대해 알게 되고, 이야기의 모티브를 얻게 된다. 어린 시절 막연히 공상과학만화 같았던 <프랑켄슈타인>의 뒷 이야기들을 알게 되니 왜 그 때 내가 어린 마음에도 풍성한 공간감을 느꼈는지 알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프랑켄 슈타인>을 다시 읽게 된 계기는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때문이었다. <로쟈...>에서는 아이스킬로스의 <결박 된 프로메테우스>와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에서 지젝이 본 <프로메테우스>, 허먼 멜밀의 <모비딕>을 겹쳐 읽기 하고 있다.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는 제목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고전을 다시 해석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도 그런 관점에서 기존의 시각을 뒤집은 견해를 제시하고 있었서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지젝이 본 <프랑켄슈타인>의 한계에 대해서도 서너 페이지로 짧게 정리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이 쉽게 접해지지 않는 철학자의 견해도 더불어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은 청소년 잡지에 연재되는 글들의 묶음이기에 청소년들이 읽기에 맞춤하고 긴 글이 골치 아픈 중년들이 읽기에도 적합하다. 고전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판에 박힌 교훈을 주는 이야기라는 인식을 하기 쉬운데, 다시 읽고 뒤집어 생각하기 컨셉의 이 책은 그런 반전의 의미에서도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을만 하다.
지난 주에 갑자기 지인이 프랑켄슈타인 보고 왔는데 재밌다길래, 급하게 마지막 타임 NT live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왔다. NT live 란 영국 국립극장에서 제작한 연극들을 자체적으로 촬영해서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정본은 읽지 못한 채, 요약본과 희곡으로 각색된 것만 보게 된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본 만화도 1931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토대로 그려진 것 같다. 괴물의 이미지와 화면의 컷이 영화의 장면과 흡사하다
영국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연극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가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을 번갈아 연기했다. 그리고 그들은 2012년 런던 올리비에 어워드 최우수 연기상, 이브닝 스탠다드 최우수 연기상을 공동 수상했다. 연극을 영화로 본 셈인데, 수 년 전에 본 영화 <도그빌>이 잠깐 연상되었다. 영국 국립극장은 가보지 못했는데, 화면으로 보는데도 무대가 아주 확 와닿을 만큼 근사했다. 왠지 세익스피어 희곡이 공연되기 좋게 만들어진 듯한 국립극장의 원형무대를 카메라가 위에서 옆에서 찍어서 보여주는 NT live는 경험 해볼 만한 멋진 공연이었다. 사람의 몸이 만들어내는 말, 몸짓의 언어는 말로 하는 것 보다 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도 조니 리 밀러의 괴물 연기를 보면서 깨달았다. 미리 알았으면 두 배우의 두 가지 버전을 다 봤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로서는 조니 리 밀러의 괴물 연기가 퍼펙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 또한 이에 뒤떨어지지 않았으리란 짐작 때문이다.
<프랑켄 슈타인>은 1818년에 출간 된 소설이고, 1931년에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그 영화는 만화가 되어 어린 시절 내 유년의 기억 속에 들어왔고, 그리고 오늘 날 다시 '이야기'와 '몸짓'으로 만났다. 내가 살지 못했던 과거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시대를 흘러 흘러 내 삶 속으로 들어왔고, 그것이 다시 '떠오르게' 된 계기는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이다. 그래서 책 한 권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 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돌아보는 과거는 부정하기 어렵기에, 나로서는 좀처럼 가지기 어려운 긍정에너지가 생겨나고, 이 보다 더 한 힐링이 있으랴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