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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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가끔 뵈었던 분이다.
그의 너무도 방대한 지식에 감히 근접하지 못하고 멀리서 동경만 하다가 드디어 책으로 만났다.

책의 발문에서 천정환씨는 로쟈와의 만남에 대해 상당히 공감이 가는 글을 적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나가듯 적은 글귀인
"이 책은 '나=나'라는 기적, '로쟈=로쟈'에 대한 한 개의 진술서다. 즉 로쟈가 로쟈이게끔 하는 그의 글쓰기와 책읽기의 기본적 방법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좀 어렵다. 그가 자유자재로 섭렵하는 레퍼런스도 버거운 것일 테다.
이 책에 많이 인용되는 것만 보건대, 칸트, 마르크스, 레닌, 니체, 레비나스, 벤야민, 데리타, 라캉, 지젝..... 김기덕은 웬말이며 황혜선은 또 누구뇨?
하지만, 이 책이야말로 네티즌에세도 아주 좋은 기회인 듯 하다.
로쟈같은 박식가가 다다른 곳과 안 간 곳이 어디인지, 쌓아둔 긴 방죽의 한 점에 올라서, 그 구불구불하고 불가사의한 그 면선이 어디서 왔느지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

맞다, 읽는 내내 솔직히 나의 무지함에 부딪혀 상당히 힘들었다.
로쟈의 글은 니체를 해부하고 지젝을 탐구하고 있는데 나는 로쟈를 한자, 한 자 쫓아 가기에도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왠만한 책은 며칠을 끌지 않는데 이 책은 상당히 오랜 기간 읽었나 보다.
책머리를 읽고, 본문을 읽고, 에필로그를 읽고 또 다시 책머리를 읽고 이번에 본문의 각 Chapter 앞부분을 다시 읽었다.
처음보다는 조금 낫긴 했지만, 최소한 지젝에 대한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야 그의 글에 대해 공감을 하건, 비판을 하건 할 수 있을 듯 하다.
비록 그의 글을 쫓아가기가 버거웠던 시간이었지만, 그가 바라는 대로 내가 "이런 종류의 글을 너무 쉽거나 말랑하게 느끼게 되는 첫 걸음을 내딛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리뷰를 쓰려다 보니, 갑자기 인문학이 뭐였지? 하는 기본적 질문을 하게 된다.

인문학(人文學)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에서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 구별되는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또는 사변적인 방법을 넓게 사용한다.
인문학의 분야로는 철학,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정의를 보다 보니, 생각만큼 어려운 분야가 아니구나하고 가슴 한구석이 환해 진다.
철학에 대해서는 왠지모를 두려움(?)같은 것이 있을지 몰라도 역사학, 예술, 고고학, 종교학, 문학 등 대부분 영역은 나도 좋아하는 분야다. (분석과 비판이 들어 가면 인문학이 아닌게 없는 듯)
[인문학서재]는 1.문학 2.예술 3.철학 4.지젝 5.번역에 대한 비평을 하고 있으므로 인문학의 주요 영역은 조금씩 다루고 있다.
힘들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정말 내 머리가 조금 말랑해 진 느낌도 든다.
문학, 예술, 번역 편은 그래도 힘겨웠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재미를 느꼈고 철학과 지젝편은 워낙 관련 책을 보지 않아 힘들었던 것이구나하는 자위를 했더니 말이다...
언젠가 가벼운 철학책부터 접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고 나면 다시 로쟈의 서재에 문을 두드려 봐야겠다.

<참조>
* 한국일보(09.12.18)발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 부문, '로쟈의 인문학 서재' 이현우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저자 이현우(41ㆍ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라는 이름은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책깨나 읽고 영화깨나 본다는 사람치고 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동유럽의 털북숭이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얼굴을 아바타 삼아,
'로쟈'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는 자칭 "곁다리 인문학자"가 바로 그다.
이 책은 그의 왕성하고도 분방한 인문적 주유를 보여주는 문화 비평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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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드] 패브릭 북커버 - 그래니체크 - 와인(일반 사이즈)
하이디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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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햇, 책쟁이들이라면 가지고 싶다던 북커버~~
내가 책쟁이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너무 예뻐서 사 봤다.
그동안 책을 읽을 때 책갈피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 책 표지의 속 덮게를 많이 활용했었는데..
이제 책을 훼손(?) 없이 읽을 수 있다.
누구는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남들이 몰라서 좋다고 하나,
나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노출하는 건 그닥 껄끄러운 일은 아니라서
그런 장점은 잘 모르겠고,
예쁜 북커버가 생긴 것만으로 너무 행복~~
물론 책 사이즈가 안 맞을 경우 더 불편하겠지만
단돈 만원도 안들여서 나를 위한 예쁜 선물을 했다는 것이 뿌듯~~하다..

그런데 혹시 얼마 못가서 애물단지가 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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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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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그림인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가 이 책의 표지다.
[라스 메니나스]에 등장하는 이 깜찍한 공주는 스페인의 펠리프 4세의 딸인 마르가리타이다.
이 그림 속에는 벨라시케스 본인도 등장하지만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있는 곳에 펠리프 4세 부부도 함께 있어서 그림 저 뒷편 거울에 그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왕족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간 결혼으로 인해 후손이 부족한 탓에 마르가리타 공주는 세상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랐을 것이다.
빛의 중심에 위치하는 마르가리타 공주 주변에는 4명 정도의 시녀가 더 있다.
그 중 그림의 오른쪽에 있는 시녀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난쟁이"이다.
당시 왕가에서는 신체적 결함이 있는 사람을 이렇게 애완 동물 다루듯 데려다 놓았다.
그림 속 "그녀"도 멋진 드레스에 머리장식을 했지만 당시 사람들이 그러했듯 이런 저런 스트레스에 시달려 오래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루브르 미술관에서 본 벨라스케스의 그림, [라스 메니나스]에서 "왕녀 마르가리타"의 영감을 받아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이라고 한다.
소설 속에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라스 메니나스]는 스쳐지나가 듯 언급될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라스 메니나스]에서의 마르가리타 공주를 주목하지 않는다.
표지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건 깜찍한 마르가리타 공주 옆에 서 있는 "못생긴 그녀"다.
마르가리타 공주의 존재를 부각시켜 주는 듯한 "그녀"..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그녀"를 저자는 소설 속에서 또 다른 "그녀"로 등장시켜 절름발이 청춘들이 서로 상처를 어루 만져주게 한다.
"못생겨서", "학벌이 낮아서", "돈이 없어서" 이 시대의 불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녀의 마지막 말은 새로운 위로가 된다.
나이가 들어 가니, 예쁜 사람도 나이의 흔적이 묻어난 탓에 자신이 이전만큼 못생기게 느껴지지 않는 다는 말 말이다.
그러다 할머니가 되면 모든 사람이 다 비슷비슷 해질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왠지 공감이 간다.
하긴 비단, 외모만 그러할 까. 세월의 흔적에 가장 민감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외모"이기도 하지만, 현실에 대한 감각도 그렇지 않을 까?
더 이상 미에 대한 추구도, 돈에 대한 욕망, 자식에 대한 욕심도 둔해지는 "감각"말이다.

이 책은 여러가지 이야기가 공존하는 독특한 구성의 책이다.
사실 도입부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들이 오랫만에 다시 만난 연인인가? 다시 헤어지는 건가?
중반부는 과거의 회상처럼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와 "요한"의 만남, "그"와 "그녀"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헤어짐과 그리움이 주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처럼 소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속삭이 듯 전개 해 나가서 "그 아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때로는 읽는데 인내심도 필요했다.
"그 아이"는 최소한 세 명의 인물과는 달리 현실적이고 공감이 가는 인물이라 그런가 보다.
사실, 이 책의 진가는 후반부에 있다.
내가 지금껏 읽은 내용이 모두 "요한"의 소설이었다는 점.
(현실과 요한의 소설이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으나 도입부의 "그"와 "그녀"의 만남은 현실이 아니므로 모두 소설이라고 여겨도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요한의 소설에서는 "그"와 "그녀"는 현실과는 틀리게 두 번의 만남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고가 안 생겼을 때, 그리고 사고가 생긴 후.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요한과 "그녀"가 "우연히"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지만, 또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와 그녀를 아는 요한은 그 둘의 만남에 대해 적어도 헤어지라는 충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요한과 그녀를 이어 주는 존재는 지금껏 아이가 아니라 "그"였나 보다.
그동안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결혼 생활을 지속해 주는 끈이지 않았나 싶다.
그 끈이 요한의 소설로 인해 요한과 그녀의 딸로 슬며시 이동한다.
어린 딸의 웃음 소리를 듣는 사람은 이미 끝나 버린 요한의 소설 속 "그"다.
어디서인가 들려 오는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를 "그"는 아주 행복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소설 속 그들은 그 행복한 웃음 소리를 뒤로 하고 또 다른 그들만의 행복 속으로 사라진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 까지 읽어야 제대로 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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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맘 베타맘 - 엄마들의 교육전쟁
장윤정 지음 / 노마드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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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맘에 대한 방송이 나간 적이 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가 그 방송을 보고 좀 답답했다고 이야기 한 기억이 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알파맘들이 방송에 나왔던 분들과 같은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찾아 보니 대부분 파워블러거들이었고 정말 열성적으로 살아 가시는 분들이다.
먹거리 하나만 해도 얼마나 꼼꼼하게 챙기며 거기서 얻은 노하우를 어찌나 아낌없이 공유하던지.
맹모삼천지교의 말이 나올 정도로 현모양처의 으뜸으로 대변되는 맹자의 어머니도 사실상 엄청난 알파맘이다.
그 시절에 교육 때문에 이사를 세번이나 하다니, 우리나라 현시대에 살았다면 교육 때문에 대치동에 진작 입성하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알파맘에 대한 정의부터 하고 있다.
2005 알파맘 TV를 설립한 알파맘의 대명사 이사벨이 정의한 '알파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엄마가 되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2. 엄마가 되면서 겪은 어려움을 인터넷을 통해 해결한다.
3. 누구보다도 신속하게 정보를 수집한다.
4. 다른 엄마들과 정보를 공유한다.

인터넷이라는 매게체만 제외시키면 알파맘의 특성은 어느 엄마들이나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의가 어찌되었건 최근의 알파맘은 "극성 엄마"의 또 다른 표현으로도 종종 사용된다.
그래서 다들 스스로를 알파맘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책 속에 등장하는 고수엄마들보다 나는 저자의 글이 더 공감이 간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 엄마들은 소신있게 살자!라고 굳게 다짐하면서도
어디서인가 들려오는 "카더라"통신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고,
나는 베타맘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조금씩 알파맘을 닮아가고 있지 않던가.
알파맘이건 베타맘이건 중요하지는 않다.
그 경계를 칼로 두부 자르듯 자를 수도 없고, 굳이 그런 언어적 표현으로 정의하지 않아도 그들 모두 "엄마"임에는 분이미지넣기명하다.
자신이 어떤 모습의 엄마로 살 든지 다 본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지면 된다.

저자처럼 나도 출산 직전 까지 프로젝트 open때문에 야근을 했었고,
업무 복귀 후 2년간 유축기로 젖을 짜서 모유수유를 악착같이 했다.
물론 내 아이에게 맞는 교육법에 대해서는 "스스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좋은 사교육 기관이 있다면 솔깃해 한다.
(아이에게 시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대부분 엄마들이라면 그런 정보에 대해서는 궁금해 한다.)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행위"만 놓고 알파맘과 베타맘을 구분짓는 것은 오판의 소지가 있는 듯 하다.

이제는 엄마표 교육도, 방임주의형 육아도 죄다 비판을 받는 묘한 시대가 되어 가서...자기 스스로를 알파맘이라고 말하는 분들의 용기도 멋있어 보인다.
저자의 말처럼, 워낙 고학력 엄마들이 늘어가고 있어서, 기업을 경영하듯 자녀교육과 가정생활을 효율적으로 이끄는 신현모양처가 앞으로 계속 더 늘어날 것 같다.
그만큼, 현재의 알파걸들이 엄마가 되었을 때 감당해야 할 무게가 더 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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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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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사도세자의 고백]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책을 읽는 맛이 조금 느껴져서 이번엔 [조선 왕 독살사건]을 골라봤다.
이 책은 구판으로 현재 [조선 왕 독살사건 1, 2] 의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듯 하다.
제목만으로 이 책을 골랐을 때는 조선 시대 어떤 왕의 죽음을 심층적으로 파고든 책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서 독살설이 나돈 대표적 왕들을 언급하고 있다.
500년이 넘는 조선 왕조는 모두 27명의 왕을 배출하는데 이 중 독살설에 연루된 왕은 모두 7명, 소현세자까지 포함하면 자그만치 8명이다.
조선 후기로 갈 수록 당파싸움이 치열했고 그로 인해 왕권이 약화가 야기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책에서는 조선의 왕 중 "왕"으로서 절대권력을 휘두른 이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급기야 조선 중후반으로 가면 왕이 태어나면서 부터 당파가 결정되어 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참 개탄할 일이다.

세계 역사상, 200~300년 정도 왕조가 지속되면 새로운 나라가 건국된다고 한다.
조선처럼 500년 이상 유지되는 경우는 희귀한 케이스 이며 특히 임진왜란을 고비로 이미 쇠퇴기를 맞이한 나라가 그 후로도 오랜기간 유지되는 것은 비정상적 나라의 생명이 유지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이렇게 유독 왕의 독살설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12대 임금인 인종, 14대 선조, 소현세자, 17개 효종, 18대 현종, 20대 경종, 22대 정조, 26대 고종에 대해 그 당시 배경을 중심으로 이 들의 독살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읽다 보면 12대 인종 이후로는 조선의 왕으로 한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역사와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조선 왕들의 독살설에 대한 각종 증거를 제시하면서 우리에게 만약 이 때 왕이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무능력하지 않았던 조선의 왕들의 생명이 하나씩 꺼졌을 때 사라진 희망이 소제목으로 적혀 있다.
사라진 북벌의 꿈, 개혁군주의 좌절 등으로 말이다.

조선의 왕의 힘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강한 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리더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알 수 있다.
소현세자의 죽음 처럼 구심점이 되는 한 명의 죽음으로 인해 후대 입장에서는 전 나라의 나아갈 바가 조금씩 틀어진 것 같은 아쉬움이 있으니 말이다.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분명 열심히 정치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TV나 뉴스를 통해 접하는 소식들은 실망스러운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선시대 보다는 낫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조선시대는 당론과 어긋나는 것 자체가 멸문지화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세력이 권력을 잡느냐에 따라 반대파가 숙청되어 나갔던 시절에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이름도 없이 사라졌을까.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 봤으면 좋겠다.
* 개정판에는 5대 문종, 6대 단종, 8대 예종, 10대 연산군과 사도세자의 후예 및 효명세자가 더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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