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비극 - 시그마 북스 014 시그마 북스 14
엘러리 퀸 지음 / 시공사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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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은 그저 드루리 레인 최후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만 의의를 두어야 할 작품이다. X, Y, Z까지 아주 좋은 작품을 쓰고 나서 작가의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아이디어가 아니라 작품의 치밀함이 약간 떨어졌다는 말이 더 타당할 듯 싶다.

이것과 비슷한 작품은 엘러리 퀸의 다른 작품인 <킹은 죽었다>를 꼽을 수 있다. 물론 그 작품보다야 이 작품이 괜찮지만 결말부분이 유사한 느낌을 준다. 증거가 없어서 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범인을 바라만 보는 엘러리 퀸과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버리는 드루리 레인... 탐정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드루리 레인이 자살하는 면에서 보자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커튼>을 연상할 수 있다. 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탐정을 고민하게 하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그만큼 범죄자의 능력이 뛰어난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읽어주기 바란다. 그래도 엘러리 퀸의 작품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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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2-20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탐정들은 죽음까지도 극적이네요. 드루리 레인과 포와로 탐정은 자살, 셜록 홈즈도 라이헨바하 폭포에서 떨어져서 죽을 뻔했다 살아났고요.
 
Y의 비극 - 시그마 북스 012 시그마 북스 12
엘러리 퀸 지음 / 시공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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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 3대 추리소설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윌리엄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 그리고 엘러리 퀸의 <Y의 비극>이다. 이 작품 <Y의 비극>은 엘러리 퀸의 대표적인 탐정 엘러리 퀸이 아니라 드루리 레인이라는 나이 많고 귀가 어두운 은퇴한 연극배우가 탐정으로 나온다. 그는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의 탐정이다.

이 비극 시리즈는 <X의 비극>, <Y의 비극>, <Z의 비극> 그리고 드루리 레인 마지막 작품인 <최후의 비극>을 말한다. 그 중 이 작품을 최고로 꼽는 이유는 아주 독창적인 추리 기법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목격자가 3중 장애 즉 청각장애, 시각장애, 언어장애가 있어서 용의자를 잡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루리 레인은 사건을 해결한다.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비극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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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1-28 1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 속의 추리소설이라는 발상이 아주 기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상 최강의 뜻밖의 범인이었죠.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극한'을 추구한 걸작이예요. 그런데 이 작품 속의 설정 하나가 사실과 꼭 맞지는 않는다고 보지만...... 그래도 훌륭한 작품임에는 변함 없습니다. '비극'이라는 제목이 딱 맞는 내용이었어요.
 
낯선 들판에서의 유희
알렉산드라 마리니나 지음, 안정범 류필하 옮김 / 문학세계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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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신문의 선전이나 서평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아니 작가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을 때에는 그런 것에 의지하기도 한다. 알렉산드라 마리니나 라는 작가도 신문의 선전을 보고 알았다. 러시아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가라고... 러시아는 문화의 나라다. 톨스토이의 나라고 차이코프스키의 나라다. 그래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고 말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선전을 믿을 게 못된다는 것을...

작품은 미국의 추리소설과 다르지 않다. 그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러시아의 추리소설은 미국의 그것과는 뭔가 차별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대 문호 톨스토이의 나란데 말이다. 마치 시드니 셀던의 옛날 작품인 <벌거벗은 얼굴>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내용이 아니라 느낌이 그랬다.

변태적인 성욕의 사람들, 그들을 이용하는 사람들, 마피아, 당하기만 하는 여자... 러시아 추리소설은 이제 시작이라고 하는데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러시아가 러시아적인 문화를 버리고 미국과 같은 나라가 되어 버릴까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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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2-20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화' 시대라고 하니 러시아도 점점 더 서구화되겠지요. 나라마다 개성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예요. 하긴 뭐 우리나라도 음악시간에 국악보다는 서양음악부터 배웠으니.....
 
어린 왕자 비룡소 걸작선
생 텍쥐페리 지음, 박성창 옮김 / 비룡소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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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내가 했던 가장 지적인 놀이는 연습장에 모자를 그려놓고 아이들에게 이것이 무엇으로 보이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아이들이 모자라고 말을 하면 에이, 바보하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아주 거만하게 아이들에게 이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야 라고 말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는 나였는데 말이다. 내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냐구...

<어린 왕자>는 내게 그런 의미였다. 중학생이 읽은 그 책은 어쩌면 이해하기 힘든 말장난에 불과 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읽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 즈음에 자신을 뒤돌아보는 여유를 갖기 위해서. 셍 떡쥐베리도 이것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친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19세미나 구독 불가라고 빨간딱지를 붙여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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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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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봤을 때 이 여자들도 남자만 잘 만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그럴듯하게 자기 자신을 포장한 페미니스트에 지나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는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삶을 지탱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기로 버티게 해준다. 삶을 산다는 것은 내가 산다는 뜻이다. 누군가에 의해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진다면 그것은 자신을 자신이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나오는 바보 세 친구. 혜완, 영선, 경혜는 단지 자신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것을 남자의 탓을 하고, 아버지 탓을 하고, 가정과 사회를 탓하는 것은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나약함의 표현일 뿐이다. 그래서 제목이 주는 허망함은 그럴듯한 포장지처럼 느껴져서 작가에게 많이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혜완은 셋 중에서 가장 그럴 듯이 똑똑해 보이지만 가장 자신감이 없는 여자다. 애써 맞서지도 못하고 비켜서서 자신 안에 숨기 바쁘다. 경혜는 속물처럼 나오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진실하다. 그녀는 적어도 자신을 속이려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선의 자살은 유치의 클라이막스였다. 만약 남편이 영선을 공주처럼 떠받들었더라면 그녀는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살을 한다는 것, 자신의 삶의 가치를 남자에게 두고 남자에 의해 상실한다는 것, 이런 발상이야말로 역겨울 정도의 여성모독이다.  

여성이 세상의 피해자로 살아가는 것은 그들 자신이 피해자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아니면 가해자가 될 것 같이 느끼는 이상한 이중성 때문이다. 누구도 모순되고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을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 개척하려 애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자이기 때문에" 라는 유치한 굴레를 방탄조끼처럼 입고 있기를 원하는 한 여성이 부르짖는 평등한 세상은 요원하기만 하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던 자신만의 방이라는 의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났다. 여자는 자신만의 방조차 갖지 못하고, 그런 작은 공간만을 원하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페미니즘으로 서구사회는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지만 우리가 나아갈 길이 서구적 페미니즘일지 그것도 의문이다. 아직도 이 정도가 페미니즘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아마존을 형성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런 방조차 갖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에 절망했다.

한 3000년쯤에는 남자와 여자의 구별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여자는, 혹은 남자는, 이런 기분 나쁜 말없는 세상 말이다. 아마도 버지니아 울프의 방은 그런 방일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무소의 뿔도 이런 의미겠지. 우리 여성을 벗고 스스로 '나'를 위해 살아봅시다. 

이 작품의 제목은 숫타니파타 중의 말이다. 다음은 숫타니파타 중 일부분이다. 

동반자와 함께 있으면, 몸을 쉬거나 일어서거나 걸어가거나 여행하는데 언제나 참견하게 된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갖지 말고, 무엇이든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온갖 고난을 견디며, 두려움을 갖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잘 협조하며, 행실이 올바르고 영민한 동반자를 얻게 되면, 모든 재난을 극복하여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걸어가라. 그러나 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잘 협조하며 행실이 올바르고 영민한 동반자를 얻지 못하면 마치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듯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고귀한 경전이다. 비록 이 작품에서는 세 여자의 인생을 이 경전에 비유해서 이 말을 사용했지만 이 말이 비단 여성의 독립과 평등에 대한 추구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 경전을 읽어보면 말 한 마디 한 마디, 글귀 한 구절 한 구절 와 닿지 않는 것이 없다. 인생이란 혼자 가는 길이다. 동반자가 있건 없건 누구나 혼자 나서 혼자 살다 혼자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기대도 부질없고 원망도 부질없다. 우리는 한낱 뜬구름만 잡다 갈 뿐인 것을. 그러니 모두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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