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센테니얼 맨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이영 옮김 / 좋은벗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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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한번 이런 영화를 보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다른 생명체를 부당하게 대우해도 좋은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처음 앤드류의 투쟁을 읽으면서 지난날 흑인 노예들이 이처럼 싸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에, 하인, 식민지인들이 그러했다. 흑인들은 옛날에 백인들에게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알지만 그때 백인들은 알지 못했다. 그런 것처럼 언제나 지배계층은 피지배계층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다수가 소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지금의 동성애자나 트렌스젠더들도 우리 사회의 소수로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언젠가 앤드류가 결국에는 인간으로 인정을 받았듯이 그들은 인정을 받을 것이다. 200년 동안 앤드류가 했던 것처럼 끊임없이 투쟁을 한다면 말이다.

앤드류 마틴! 위대한 로봇으로 태어나 위대한 인간으로 생을 마감한 진정한 인간의 표상이다. 이 작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편견에 대해서, 우리가 가진 것의 소중함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이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란다. 지금 어떤 것에 대항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편견으로 누군가를, 어떤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완고하게 자신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특히나 권하고 싶다. 언제나 세상은 변하고 인간의 가치관도 끊임없이 변한다. 그 변화를 늘 좋게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인간으로서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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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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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지금 막 탐정 사무소가 문을 닫아 혼자 된 남자다. 그의 이름은 기 롤랑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짜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어하던 일을 시작한다. 그것은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일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서 어떻게 살던 사람인지 그는 알고 싶었다. 그 남자는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 어쩌면 그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고 싶은 것은. 그리고 그것을 지금에서야 시작하는 것은.

그는 자신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그 남자의 입에서 자신과 같이 있던 것을 본적이 있다는 한 남자를 찾는다. 그 남자는 사진이 담긴 과자 상자를 준다. 그 속에는 자신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 그리고 늙은 남자가 있다. 게이 오를로프, 그 젊은 여자는 이미 죽었다. 그 여자의 첫 번째 남편을 찾는다. 그에게서 그녀의 두 번째 남편 이야기를 듣는다. 프레디 하워드 드 뤼즈, 그가 자신이었을까? 이제는 그 여자의 두 번째 남편이던 남자를 찾는다.

그는 드디어 그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그는 그 여자의 두 번째 남편은 아니었다. 그는 그의 친구였다. 이름은 페드로. 이제 그는 다시 사진을 받는다. 이번에는 네 명이 있다. 그와 그 여자와 그 남자와 처음 보는 여자의 젊은 시절의 사진이다. 드니즈 쿠드뢰즈, 그녀를 찾으면서 그는 서서히 기억의 단편들을 찾아낸다. 그 여자는 그의 아내였다. 그리고 그들은 몰래 국경을 넘다가 실종되었었다.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은 모두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자신밖에는. 

가끔은 그것은 꿈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골목길과 장미꽃이 피어 있는 파란 대문 집, 한 낮의 뜨거운 햇빛과 인적 없는 고요함. 어린 시절의 어느 즈음의 기억이다. 나는 그것이 내 기억임을 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추억이니까. 하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도 모르는 한 남자가. 그는 이제 자신을 찾으려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를 원한다.  

그는 그 길을 떠난다. 자신을 찾아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어렴풋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누군가와 같이 있던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그 누군가를 찾아간다. 그는 낡은 사진 한 장을 보여 준다. 그 속에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이 있다. 젊은 여자와 함께. 사진 속의 여자는 그가 사랑한 여자였을까? 그는 그 여자를 찾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또 다른 사람은 낡은 과자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기억의 찌꺼기들을 선물한다. 말린 네 잎 클로버나 망가진 장난감 병정 따위가 들어 있는. 그를 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거의 사라졌다.

그를 알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은 그가 모르는 이름으로 그를 기억하고 그가 모르는 시절의 이야기, 그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하여 떠들어댄다. 그렇게 사람들의 작고 희미한 기억 속에 의지해서 그는 결국 자신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을 되찾는다. 그 기억 속에 있던 가장 친한 친구도, 그가 사랑한 그의 아내도 존재를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마치 그 사람이 존재했었는지 어쨌는지도 확실치 않아질 때까지 우리가 이 땅 위에 남기는 그 자취의 무, 흩어지는 구름, 과거를 모두 기억할 수 없다면 살아서 무엇하나? 그러나 살지 않는다면 추억해서 무엇하나?  

옮긴이 김화영의 말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아내, 아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같이 살면서도 그는 이방인이었고, 자신을 잘 알던 친구들이 옛날을 이야기해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치 유령처럼. 그는 단지 기억을 못할 뿐 자신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래도 그는 낯설어 했고 괴로워했다. 그런데 자신을 기억하고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 없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서 있다면 그의 심정은 어떨까? 

그 남자는 찾는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을, 그에 대해 말해 줄 사람들을. 그리고 차츰 기억해 간다. 어떤 때, 어떤 장소, 어떤 사람과 그 길을 걷던 자신의 심정을. 그는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된다. 아내의 이름과 친한 친구의 이름도. 하지만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은 많고 그는 다시 그것들을 찾아 나선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낡은 사진 속에 있는 낯 선 얼굴을 보며 이 사람이 누구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그 시대에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그는 소중한 사람이었던지.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더 이상 소중하지 않고 쓸모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잃고 있는 것,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한번쯤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모래는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으므로.

작가는 우리가 기억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참혹하고 불안하던 2차 대전의 기억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잊고, 그 잊었다는 기억마저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도대체 남자는 자신을 찾아 떠나면서 자신이 사랑한 아내를 찾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는 게 참 허무하다고 느끼게 하는 아주 서글픈 작품이었다. 

가끔 먼지 날리는 바람이 불 때 가슴이 쓸쓸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지난날의 잊어버린 기억 때문이다. 무언지 생각나지도 않는 어떤 것이 가슴에 남아 몸부림치는 것 같은 느낌. 죽을 때까지 이런 느낌은 따라다닐 것이고 그것은 아마도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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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시네피아
아서 클라크 외 지음 / 서울창작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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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영화 사상 최고의 영화로 뽑히는 <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 <에일리언>, <토탈 리콜>, <스타트렉>, <괴물>의 원작이 된 아서 C. 클라크의 <파수>, A. E. 반 보그트의 <진홍색의 불협화음>, 필립 K. 딕의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할란 엘리슨의 <영원의 끝에 있는 도시>, 존 W. 캠벨의 <거기 누구냐?>의 다섯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SF 소설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SF 영화 원작 소설집이다.

이 중 에일리언의 원작이 된 <진홍색의 불협화음>과 <괴물>의 원작이 된 <거기 누구냐?>는 모두 우주의 생명체를 다룬 작품이다. 특히 지구인보다 훨씬 진화하고 대단한 능력을 지닌 외계 생명이 등장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진홍색의 불협화음>은 우주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익스톨이라는 전 시대의 우주를 지배하던 생명체가 그 시대의 소멸에도 살아남아 이 시대에도 우주의 지배자가 될 날만을 기다리며 우주를 떠돌다가 지구인의 우주선을 발견하고 그들을 매개로 다시 종족을 퍼트리려다가 실패하는 이야기다.

<거기 누구냐?>는 반구에 2천만년 전에 도착해서 남극의 빙하 속에 얼어 미이라가 된 괴물을 인간이 발견하고 그것을 실험할 목적으로 녹이다가 괴물이 살아난다. 괴물은 주변의 생명체로 복제가 가능하다. 그는 개로 복제하려다가 인간에게 발견되어 감전 당해 죽지만 이미 괴물은 다른 인간으로 복제된 후였다. 문제는 누가 복제된 괴물이고 누가 인간이냐는 것을 가리는 일이다. 정말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작품은 극한의 상황에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심리를 나타내고 있는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 아주 좋은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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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아들
패트리샤 콘웰 지음 / 시공사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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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굴트라는 살인마의 최후가 담긴 작품이다. 템플 굴트는 패트리샤 콘웰의 작품 <흔적>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는 교도소에 살인죄로 들어가 있다가 교도 소장과 짜고 교도소를 나와 살인 행각을 벌인다. 그는 언제나 살인을 하고 시체를 앉혀 놓는 경향이 있다. <배반의 얼굴>에서는 다른 지역의 살인 사건을 굴트가 저지른 것으로 오인하지만 스카페타에게 굴트는 이제 잡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한 존재가 된다.

굴트는 뉴욕에서 한 여자를 발가벗겨 살해한 후 차가운 얼음 바닥에 앉혀 놓고 사라진다. 그 뒤 경관을 살해하고, 그와 마약 거래를 하던 보안관을 살해해서 버젓이 공시소에 갖다 놓는다. 그것은 쥐를 잡는 고양이의 몸짓이라고 정신과 의사는 말한다. 스카페타에게 시체를 선물하는 것이다. 고양이가 죽은 쥐를 주인에게 선물하듯이. 그는 이제 FBI의 컴퓨터도 마음대로 조작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프로그램 이름이 카인이다. 또 굴트가 살해한 여자는 굴트의 쌍둥이 여동생으로 밝혀진다. 여전히 스카페타는 범인을 죽은 채로 잡아 그에게 어떤 내막이나 살해 동기는 듣지 못한다.

스카페타는 모든 작품에서 피해자의 시신에서는 증거를 수집하지만 가해자의 죽음으로 어떤 이유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스카페타 시리즈를 읽으면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다. 원인이나 명확한 동기가 나오지 않는 연쇄 살인이 작품의 초점이 되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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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로운 왕 - 지오노 선집 6
장 지오노 지음, 송지연 옮김 / 이학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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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을에서 연쇄 살인 발생한다. 사람들은 헌병대에 신고를 하고 랑글루아라는 대장이 범인을 잡기 위해 온다. 그가 온 후에도 몇 명이 더 살해당하고 목격자에 의해 범인이 이웃마을의 V씨로 밝혀진다. 그는 그를 체포하지 않고 처형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살해한다. 아마도 그것은 그 V씨와 어떤 묵계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후 마을을 떠났던 랑글루아는 늑대 사냥 대장이 되어 돌아온다. 이제 그는 늑대를 잡는다. V씨를 살해하던 방법으로. 그리고 이제 랑글루아는 결혼을 한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시거처럼 피우면서 자살한다.

처음 작품을 읽었을 때는 연쇄 살인범을 잡는 추리 소설로 생각했다. 하지만 랑글루아는 V씨를 너무 쉽게 잡았고 V씨가 연쇄 살인을 한 이유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음 장면에서는 V씨로 상징되는 늑대를 추적해서 잡는 랑글루아의 모습이 보이고 마지막에서는 거위를 잡는 랑글루아가 나타난다. 


이 작품이 권태로운 왕이라는 제목을 단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은 현대인을 잘 묘사하고 있다. 단순히 재미나 기분 전환을 위해 살인을 하는 인간의 모습과 종래에 기분 전환 거리가 떨어지자 자기 목숨까지 살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V씨는 권태로움을 탈피할 생각으로 마을 사람들을 살해했고, 랑글루아는 그런 V씨를 단순한 기분 전환의 목적으로 살해했다. 늑대도, 거위도 그의 마음속에 있던 아내에 대한 살의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V가 불어로 Voisin이라는 이웃 사람이라는 것은 이 책의 모든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고 느껴진다. 이 작품은 추리 소설도, 환상 소설도 아니다. 이것은 사실적인 심리 소설이다. 인간의 내면에 늘 존재하는 권태로움, 기분 전화이라는 심리에 대한...  

 

64쪽에 랑글루아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50미터를 사이에 두고 한동안 이렇게 마주 보고 있었다. 이윽고 랑글루아가 한 발 한 발 걸어가서, 남자로부터 3보 떨어진 곳까지 갔다. 거기서 그 남자와 랑글루아는, 다시 한번, 서로 무언의 합의를 보고 있는 듯 했다. 거기 그대로 있는 것이 정말이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지려는 순간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하고 외치려는 찰나에, 커다란 파열음과 함께 남자가 쓰러졌다. 랑글루아가 남자의 배에 권총을 두 발 쏜 것이었다. 양손으로, 동시에. '이건 사고다'하고 랑글루아가 말했다.'

 

우리는 정말 이런 V씨 같은 사람인가? 랑글루아같은 사람인가? 우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V씨나 랑글루아는 권태로움 때문에 기분 전환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우리도 그런가?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은 단지 권태롭고 싶지 않은 단순한 이유 때문에 행해지는 것인가? 기분 전환으로 늑대를 사냥하고, 기분 전환으로 결혼을 하고, 기분 전환으로 거위의 목을 따고, 기분 전환으로 자살을 한다? 파스칼은 권태로운 왕은 불행으로 가득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행으로 가득한 사람인가? 내가 지금 이 작품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은 그것이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어쩌면 사람들은 권태롭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산다고 말하는 지도 모를 일이니까.  

 

마지막에 <그 누가 말했던 가? ‘권태로운 왕은 불행으로 가득한 사람이다’라고?>의 문장은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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