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없는 집
얼 데어 비거스 지음, 유명우 옮김 / 한길사 / 1992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듣는 얼 데어 비거스라는 작가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다. 우선 탐정이 독특하다. 찰리 찬이라는 경찰이 등장하는데 그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하와이에 사는 사람이다. 또한 제목과도 연관이 있는데 작품의 배경이 하와이다. 하와이에서는 누구나 열쇠로 문을 잠그지 않는다. 아마도 그래서 제목이 <열쇠 없는 집>이 아닐까 싶다. 외부인, 특히 살인자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이 작품에서 피해자는 노예선을 운항했고, 남의 재산을 가로채 부자가 된, 그러나 출신은 보스턴 상류계급인 사람이다. 노예선 하니까 최근 읽은 <사라진 시간>이 생각났다. 그 작품도 노예 밀매와 관련 있는 이야기였다. 또, 단서 중 하나가 찢어진 신문이었는데 그것은 <몰타의 매>를 연상시켰다. 배와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는 것이.

이 작품은 한마디로 여러 가지 사건이 혼합된 작품이다. 그것들이 용케도 하나의 방향으로 아귀가 맞게 찾아갔다는 게 놀랍다. 중간에 용의자를 하나씩 제거하는 방식과 남은 자의 알리바이가 완벽했는데도 그것을 풀어낸 방식은 좋았다.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열의 열매들
다니엘 페낙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다니엘 페낙의 말로센 시리즈는 추리 소설이라고 해도 좋고 사회 풍자 소설이라고 해도 좋다. 어떤 이름을 붙여도 좋다. 사실적 환상 소설이라고 해도 좋고. 이 작품은 어떤 이름으로도 만족을 주는 대단히 재미있는 작품들이다. 한 권 한 권 읽어도 좋고 연대별로 읽어도 좋다. 개인적으로는 차례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야 중복되어 나타나는 인물들에 대해 이해할 수가 있다.

말로센 집안의 많은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 뱅자맹을 선두로 루나, 클라라, 테레즈, 제레미, 프티, 베르덩과 클라라의 딸 세터낭주, 뱅자맹의 아내 쥘리와 아들 무슈 말로센, 그리고 간질에 걸린 개 쥘리우스. 그리고 벨빌의 이웃들. 말로센 집안 주위에는 언제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반드시 뱅자맹이 희생자로 지목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의 동생 테레즈가 희생양이 된다.

말로센 집안이 또 한번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뱅자맹의 점성가 여동생 테레즈 차례다. 클라라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생각되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뱅자맹은 그 결혼을 말리려 하지만 실패한다. 다른 점은 클라라의 남편은 진짜 성자같은 사람이었던 반면 테레즈의 남편은 집안 내력부터 모조리 부유한 악당이다.  

뱅자맹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점술가인 테레즈는 자신의 앞날을 예견하길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간다.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예지력을 잃고, 자신의 예지력 때문에 결혼하게 된 거라는 사실을 안 순간 그녀의 결혼은 끝난다. 그와 동시에 그의 남편은 살해당하고 그녀도 살해될 위기에 빠진다. 하지만 살아난 대신 그녀는 살인자로 잡히고 만다.  

뱅자맹은 자신이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한다. 자신의 의지로 맞서 싸우는 일. 공권력과. 이 작품도 결말이 전작과 마찬가지로 풍자와 아이 이름 짓기로 끝난다. 이번에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 비뚤어짐과 살인의 결말은 유쾌하고 해학적이다.   

말로센 시리즈는 살인 사건과 함께 작품 전반에 깔리는 어떤 소재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정치다. 정치와 정치가, 그들의 두 얼굴. 또 하나는 지극히 프랑스적인 프랑스인들의 행동이다. 호모섹슈얼을 지향하는 두 남자가 자신들이 헤테로섹슈얼의 행동을 했다고 일부러 고발당하는 장면은 그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얼마나 자신의 행동에 당당하고 또 남의 일에 편견적 시각을 갖지 않은 사람들인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제목인 정열의 열매들은 제르베즈 수녀가 돌보는 창녀들의 아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테레즈가 낳은 아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프랑스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의 가치관에 놀라게 되고 그 가치관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된다. 아버지가 없는 자식들의 아버지 뱅자맹, 그의 엄마는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낳아 뱅자맹에게 맡기고 또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나고, 뱅자맹의 누이들은 유복자를 낳거나 아버지 자격이 없는 남자들의 아이를 낳는다. 요는 생물학적 아버지에 게 의미를 두어야 하느냐 아니면 문화적 아버지에게 의미를 두어야 하느냐 하는 관점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마치 SF 드라마에서처럼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문제다.  

이 말로센 시리즈는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적이다. 인간의 행복이란 살아가면서 자신이 찾고 얻는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정말 다니엘 페낙의 말로센 시리즈는 읽을 가치가 충분한 작품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라이즈 1
에릭 시걸 지음 / 김영사 / 1994년 7월
평점 :
절판


노벨상을 타는 세 사람의 이야기다. 이 작품도 <닥터스>와 마찬가지로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천재 물리학자 이사벨, 유전공학자 샌디, 면역학자 애덤의 사랑과 인생을 그린 작품으로 어린 천재의 고통과 못생겨서 무시당한 사람의 분노와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에 걸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의 절망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들은 그들의 고통의 대가로 노벨상을 받지만 노벨상의 단지 그들 인생의 작은 보상이다.

그들이 그들의 노력으로 받은 것은 사랑과 자신의 존재 가치의 확인, 그리고 꿈을 이룬 성취감이다. 학생들이 여름 방학을 통해 한번쯤 읽기를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하고 백날 외치는 것보다 그 야망을 어떻게 갖고 어떻게 이루는 지를 보여주는 이런 작품을 읽어보게 하는 것이 훨씬 그들의 꿈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란도
버지니아 울프 지음 / 창해 / 1997년 2월
평점 :
품절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를 중학교 때 읽었다. 그 시 한 구절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간 숙녀..."라는 글 속의 버지니아 울프만을 기억한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도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작품 속에 만연한 정신병적인 집착을 발견하고 이 여자는 정상이 아니었겠어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일까. 나는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가. 내가 알고있는 모든 사실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들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읽기에는 부담이 되는 작품이었다. 요즘 내가 즐겨 읽는 추리소설이나, SF소설과 비교하면 재미 면에서는 게임이 안 된다. 물론 대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이런 작품과 비교한다는 것이 교양 없는 짓이겠지만, 영화에서의 그 올란도의 무표정하고 창백한 얼굴이 뇌리에 자리잡지만 않았더라면 결코 손대지 않았을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페미니스트 문학의 선구자적 작품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올란도라는 인간이 4세기 동안 남자와 여자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당연하겠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올란도가 결국 여자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한다. 버지니아 울프 자신이 여자로서의 인생을 고통스럽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선택을 여성으로 결정한 것은 놀랍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여자보다는 남자의 삶이 더 가치 있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여자의 삶이 더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올란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가 4세기동안 간직한 '떡갈나무'라는 시의 의미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결혼과 출산은 무엇이고, 여왕의 영접과 달은? 나는 올란도는 자연과 결혼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성을 떠나 자연 안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정체성의 확인과 그 과정 안에서 올란도는 사람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의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콘스탄티노블의 집시의 말처럼 자연 안에서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말이다.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의 망막한 상념 하나가... 그러므로 내게는 올란도란 버지니아 울프의 분신이라는 생각만이 들뿐이다.

올란도처럼 극단적인 삶을, 남자로서의 삶과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보면 인간이 남자로서, 또는 여자로서 나뉘어 살아간다는 것이 무의미한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사는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페미니즘 문학이라기 보다는 자연주의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연 안에서 내가 많이 가졌다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이 한 문장에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앙의 거리 - 시그마 북스 001 시그마 북스 1
엘러리 퀸 지음, 정태원 옮김 / 시공사 / 1994년 5월
평점 :
절판


시공사에서 펴낸 엘러리 퀸 시리즈 제 1 편으로 라이츠빌 시리즈 1편이기도 하다. 이 작품과 <폭스 가의 살인>, <열흘간의 불가사의>, <일곱 번의 살인 사건>의 네 편이 이 시리즈에 속한다.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면 그것으로 범죄 요건은 성립된다. 왜냐하면 절대 어울릴 수 없는 것이 삼각 관계니까. 그런 관계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 그런 관계가 유지된다면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보다는 증오의 감정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살인을 부른다. 누가 살인자인가는 뻔하다. 셋 중 한 명일 테니까...

이 라이츠빌 시리즈는 트릭에 중점을 둔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나 XYZ 시리즈와는 달리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엘러리 퀸에게 이런 작품은 드물다. 그래서 이 시리즈가 특히 눈에 띄는 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