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SF 걸작선
정영목 엮어옮김 / 도솔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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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구의 푸른산 - 로버트 하인라인
죽은 과거 - 아이작 아시모프
내가 당신들을 처음 발견했다 - 키릴 블리체크
용과 싸운 컴퓨터 이야기 - 스테니슬라프 램
모하메드를 죽인 사람들 - 알프레드 베스터
두 번째 변종 - 필립 K. 딕
짝 인형 - 마누엘 반 로겜
뮤즈 - 앤터니 버제스
변하는 달 - 래리 니븐
두 운명 - 시릴 M. 콘블러스
아홉 생명 - 어슐러 K. 르 귄

모두 11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보석 같은 SF 단편집이다. 이 중 필립 K. 딕의 <두 번째 변종>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아직은 냉전 시대 소련과 미국이 싸워 세계가 거의 망하고 남은 자들은 달로 모두 이주하고 지구에는 약간의 방사능 피해자들과 미국과 소련 군인이 전부다. 미국은 인간을 잡는 무자비한 살상 기계를 만들어 소련을 초토화시킨다. 그때 소련에서 대화를 요청하고 대화를 하러 간 핸드릭스는 기계가 변종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살아남은 세 명의 소련 병사를 통해 알게 된다.

첫 번째 변종은 부상당한 군인 모습의 기계, 세 번째 변종은 곰 인형을 안고 있는 어린 소년 데이비드, 타소라는 소련 여자와 함께 핸드릭스는 두 번째 변종이 그들과 같이 있던 소련 군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타소가 일인용 우주선을 타고 달로 떠난 뒤 두 번째 변종은 바로 타소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이 지구에서 멸종한 후 어떤 다른 종류의 것이 지구에 남아 살아갈 것인가... 스스로 만들어 내고 진화하는 기계는 어떤가. 그들을 인간 이후의 지구에 남을 종족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어둡고 절망적인 필립 K. 딕만의 미래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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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미스테리 걸작선
이규준 엮음 / 명지사 / 199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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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게 접할 수 없는 스터리 작품집이다. 두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크리스토프 고트발트의 <종신 피자>와 한스외르크 마틴의 <달콤한 죽음>이다. 이 중 정통 탐정물의 기본을 보이는 한스외르크 마틴의 <달콤한 죽음>은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어 시체의 신원과 살인범을 쫓는 형사의 이야기다. 알리바이를 알기 위해 시체가 발견된 회사의 직원을 조사하던 중 형사는 여자의 신원과 그 회사 직원과 사귀던 사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그 직원은 형사의 출현에 도망을 가고 그의 유죄를 확신하는 가운데 엉뚱하게도 치통이 사건을 해결한다.

리처드 데밍의 단편 <뻐꾸기 시계>를 연상시킨 작품이었다. 그 작품이 해결된 장소도 치과였다. 하지만 제목이 왜 <달콤한 죽음>인지는 의문이다. 치정에 의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별로 달콤할 이유는 없는데, 혹 목격자를 해치운 초콜릿을 입힌 빵 때문인 것은 아닐지. 어쨌든 드물게 본 독일 작품이라 재미있었다. 물론 <종신 피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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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의 고양이
미야모토 테루 / 삼문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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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과 탐욕과 무관심이 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작품이다. 여름만 되면 와서 피서를 즐기고 가는 부유한 가족과 별장에서 별장지기로 있는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은 음모와 협박, 그리고 살인으로 이어지는 일들...

카루이자와의 후세 별장에서 17년 동안 일어난 일이 소년 슈헤이에게 들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만다. 슈헤이의 아버지는 무능하고 한쪽 다리를 못쓰는 남자고 어머니는 젊고 미인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후세 긴지로는 애인 사이다. 또 슈헤이의 누나 미호는 단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긴지로를 유혹하고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아버지는 무관심한 척 산다. 어느 날, 자신들을 못살게 굴던 긴지로의 아내를 슈헤이가 의도적으로 살해하면서 모든 일은 수면 위로 떠올라서 감출 수 없게 된다.

인간이란 이렇게 서로 잡아먹으려고 덤벼야만 직성이 풀리는 족속들일까. 서로의 속셈을 숨기고 이용하고 이용당하면서 파멸로 함께 몸을 던지는 존재들... 하나의 악의 씨앗이 싹트면 그 악으로 말미암아 악이 기하급수적으로 퍼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은 누가 먼저인가 라는 물음을 부질없게 만든다. 원인을 따지는 것은 더 이상 소용없다. 모든 것은 이미 소멸하고 난 후니까. 악도, 선도, 인간도... 인간의 탐욕이 여름과 안개 속에 어떤 결과를 낳는 지 너무도 자세하게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지 않고 타인의 허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면 이 여름, 인간은 스콜과도 같은 탐욕과 함께 떠내려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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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아래아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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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가 살해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베를락 반장은 병 때문에 사건을 찬즈 형사에게 맡긴다. 찬즈는 죽은 형사가 가스트만의 파티에 참석하고 오는 길에 살해된 것임을 알아낸다. 살해 방법도 나름대로 추측한다. 베를락 반장은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지만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알려 줄 수 없다고 한다. 가스트만은 현직 의원이고 전직 대령이며 그의 변호사인 사람을 보내 자신을 조사하지 말도록 압력을 넣는다. 그는 거물이었다. 하지만 찬즈는 그를 계속 주시하고 결국 그를 정당방위로 살해한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 말하는 재판하는 사람은 베를락이다. 집행하는 사람은 찬즈다. 그리고 재판 당하는 사람은 가스트만이다. 그 구도는 베를락과 가스트만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허름한 술집에서 토론하던 그들은 완전 범죄에 대해 내기를 한다. 그 후 가스트만은 많은 범죄를 베를락 앞에서 저지르지만 입증되지 못해 번번이 빠져나간다. 베를락은 이제 1년밖에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자신이 죽기 전에 가스트만을 재판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살해된 형사는 가스트만이 죽인 게 아니라고 베를락은 말한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죽였을까. 

 스위스가 낳은 거장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작품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은 간결한 문체와 단순한 구도를 가지고 놀랄 만큼 많은 문제를 제시하는 추리 소설이다. 이 작품을 단순히 추리 소설로 단정하는 것은 뭐하지만 사건을 통해 인간을 생각하게 하는 것, 그의 작품 전체에 흐르는 악의 응징은 엘러리 퀸의 <악의 기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세상에는 늘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중간적이다. 때에 따라 선할 수도 있고 악해질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선함을 가장하고 악함을 행하는 사람을 필사적으로 잡으려는 형사와 그 형사에게 잡히지 않고 악을 실행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결코 뻔뻔한 악을 잡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하는 식으로 악에는 악으로 맞선다. 그리고 악은 종말을 맞이한다.  

그리 긴 작품이 아니면서 이 작품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흔히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한다. 그것은 소시민에게 법은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을 뜻한다. 법을 행사할 수 있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권력자가 주먹도 함께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결과를 예고한다. 흔히 사이비를 조심하라고 한다. 그것은 현대에 양의 탈을 쓴 수많은 늑대를 경계해야 함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럴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또 그것 때문에 또 다른 늑대를 양산하지는 않을지. 

형사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작품이지만 사건의 발단은 인간이 얼마나 범죄를 저지르고 잡히지 않을 수 있는가를 토론하던 두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그 토론으로 한 사람은 영원히 완전 범죄를 꿈꾸는 악의 화신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를 응징하려고 몸부림치는 재판관이 된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도 범죄를 입증할 수 없어 하던 재판관 앞에 마지막 기회가 찾아오고 그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집행관으로 하여금 판결을 집행하도록 만든다.  

엘러리 퀸의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악은 너무도 쉽게 인간에서 인간으로 퍼지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살인은 너무 쉽고 누구나 저지를 수 있으며 하나의 범죄, 한 명의 범죄자만을 잡는다고 절대 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악은 악으로밖에 단죄할 수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간결하면서도 완벽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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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자의 상속녀 캐드펠 시리즈 1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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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를 떠난 두 사람이 한 남자와 시체 한 구로 돌아온다. 죽은 이는 교회 묘지에 묻히는 것이 소원이다. 하지만 그가 이단의 생각을 가지고 성지 순례를 떠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이단의 논쟁에 불이 붙는다. 죽은 이는 이단의 혐의를 벗고 안장됐지만 산 자는 다시 한번 이단자로 몰리게 된다. 그것은 그가 돌아온 것으로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졌다고 생각한 서기와 그가 가져온 지참금을 갖게 된 처녀를 노리던 양치기의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서기가 살해된다. 이제 그는 이단자일 뿐 아니라 살인자의 누명까지 쓰게 되었다.

유아 세례를 부정한다고 이단에 몰린 죽은 남자 윌리엄으로 인해 평화롭던 수도원에 이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다행히 죽은 이는 이단의 혐의를 벗고 교회 묘지에 안장되지만 그를 수행했던 젊은이는 이단자로 고발당하고 수도원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한 남자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단자는 살인자의 혐의마저 쓰게 된다. 윌리엄은 조카 손녀 포츄너터의 지참금을 좋은 상자에 담아 왔다. 그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포츄너터와 그녀의 아버지는 은화가 가득 들은 것을 보지만 그것을 가져온 일리어스와 그것을 들어본 캐드펠은 그 안에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이 있었는데 사라졌다는 의혹을 갖게 된다. 그것 때문에 살인이 저질러진 것이라고.

이 작품은 일리어스의 이단적 생각이 문제인 것처럼 표면을 장식하고 있지만 실제는 탐욕이 원인이다. 살인도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엘러리 퀸의 <최후의 사건>은 세익스피어의 작품 때문에 일어난 살인을 다룬 작품이다. 또 다니엘 페낙의 <산문 파는 소녀>에서는 고서를 수집하는 사람들은 그 책을 갖고 싶은 욕심에 살인도 불사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일리어스가 포츄너터의 지참금으로 가져온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책이 문제의 원인이 된다. 너무나 귀중한 책이기 때문에 왕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살 수 없는 귀한 책. 그 책을 갖고 싶은 욕심. 그것이 무모한 살인의 결과다.

다시 한번 물건이 오래되면 귀신이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귀신이 되지 않고서야 인간을 홀려 살인까지 하도록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 책은 책이 소중한 것은 아니다. 그 책이 담은 내용이 더 소중한 것이다. 물론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면 보존하고 귀중히 여겨야 하겠지만 그것이 인간의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인간의 목숨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고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위해 탐욕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다니. 진정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는 사색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종교를 가진 자이건 아니건,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작품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랑과 그 사랑으로 이룬 가정과 그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과 믿음. 그런 보편적인 가치관을 되새기게 한다. 그래서 작품 속에는 언제나 선한 자는 억울함을 당하지 않고 악한 자는 반드시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리고 사랑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한다. 만약 세상이 이 작품에서처럼 공명정대하고 밝게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세상은 살만 할거라 생각된다.  

캐드펠 시리즈는 추리 소설로도 대단한 작품이지만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지침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드펠 시리즈는 모두 같은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곤경에 처하는 선한 사람이 등장하고, 그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캐드펠과 휴 버링가가 그 누명을 벗겨 낸다. 그 과정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은 언제나 사랑에 빠진다. 극적인 반전도 없고 스릴이나 서스펜스를 느낄 수는 없지만 진지하고 인생에서 무엇이 진정 중요한 것인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권선징악이라는 보편적인 진리와 모든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이 작품에서는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처럼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각박한 세상에서 아직도 아름다운 것을 믿는다면 한번 읽어볼 만한 작품이라고 권하고 싶다.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좋은 작품임을 알 수 있는 보기 드문 명작이다. 캐드펠 시리즈는 두고두고 아껴 가며 읽고 싶은 대단한 작품이다. 시리즈 한 권 한 권이 모두 걸작이다. 추리 소설이고, 역사 소설이고, 또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인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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