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아래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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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늘 죄를 짓고 사는 중생들이다. 그 죄는 법으로도 신판 받지 않고, 양심에도 거리끼지 않는 그런 너무도 무서운 죄다. 이 작품은 그런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전직 법조인들의 모의 재판 놀이에 참가하게 된 평범한 시민. 그는 그곳에서 밤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건 계획적으로 의도된 놀라운 완전범죄였다. 그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 그래서 시민은 사형을 선도 받는다.

읽으면서 시민이 자신의 무의식적인 죄를 부끄러워하고 뉘우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처럼 기뻐했고 그 기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듯 자살로 그 행복한 가운데 생을 마감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희극말했다. 정말 끔찍한 희극이다. 우리가 이런 존재라는 사실이 슬프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이나 정의, 선 같은 것은 만들어진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치관도 인간이 만든 것이니 환상적인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정말 이렇게 적나라한 글을 쓸 수 있다니 뒤렌마트는 놀라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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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벌 1
이현세 / 팀매니아 / 1994년 1월
평점 :
절판


이현세의 작품을 보면 언제나 여자가 무조건적인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트기 이 작품에서는 그런 경향이 심하다. 여동생이 위안부가 되었다고 여동생을 살해하는 오빠라니... 이런 일은 역사적으로 머리에 뿌리 깊게 박힌 잘못된 관념이다.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고향에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가 된 말이 화냥년이다. 왜 나라가 지켜 주지 못해 포로로 끌려갔던 여자가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해야 하는가.

연약한 여자도 지켜 주지 못하는 이 땅의 남자들은 그래도 여자에게 완벽한 순결만을 요구한다. 이 작품은 그래서 아직까지 우리 나라 남자들이 얼마나 잘못된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가치관을 피력해야 할 작가가 이러니 나머지 대중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요즘 나온 게임 <임진록 2>를 보면 이 작품을 연상하게 된다. 지나간 역사, 어쩔 수 없는 역사에서 이미 실패하고, 패배한 자들의 역사의식은 이래야만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한 만큼 되 갚아 준다는 발상일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면 슬프고 우스운 일 아닐까. 마치 역사의 패자의 꼬인 근성이 나타나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참담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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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5-13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와 여자의 시각이 이렇게 판이하군요.
남자들은 그런 깊이있는 관념과 가치관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지요. 대부분이 그저 '강함에 대한 동경' 뿐이거든요. 마치 무협지를 읽는 것과 비슷하죠.
하긴... 생각도 못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무서운 걸테지만... -_-+

물만두 2004-05-1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이런 것에 민감한 편입니다. 여자라서 그렇기도 하지만요. 제 남동생도 처음에는 좋다고만 하다가 저한테 맞고 정신 차렸습니다... 사실 이현세 만화에서 그려지는 대부분의 여성상이 좀 마음에 안 들거든요. 그건 작가 개인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비로그인 2004-05-2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 저도 여자라서 이런 이야기 하는거 아니거든요..이현세처럼 영향력있는 작가라는 점이 더 맘에 걸려요..

물만두 2004-05-21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처음 뵙네요...
 
노란방의 비밀 팬더추리걸작 시리즈 20
가스통 르루 지음, 한국추리작가협회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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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 세상에... 이런 작품을 어린이용으로 읽었다니... 이 작품을 좀처럼 어린이용 추리 소설은 읽지 않는 내가 어린이용이라도 먼저 읽은 것은 이 작품의 명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 나라에서 이 작품을 읽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렇게 완전한 작품이 나올 줄 알았다면 절대 어린이용은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 열악한 우리 나라의 출판 현실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다. 좋은 책을 출판한다 해도 팔리지 않으면 출판사는 더 이상 출판하지 않을 테니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 지 깨닫기도 전에 너무 많은 것을 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어린이용은 너무 많은 것을 편집해서 추리 소설의 묘미를 거의 없애 버린다.  

세계 10대 추리 소설이고 최고의 밀실 트릭을 구사하는 작품이라는 명성을 어린이용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다. 단지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어린이용임을 감안하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장님이 더듬거리듯이 내용을 더듬어야 한다. 물론 어린이용을 읽는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빛을 바래는 것은 아니겠지만 추리 소설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약간 서운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이 작품이 재판되지 않고 어린이용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면 나는 결코 이 작품의 완벽한 묘미를 알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니 제발 추리 소설은 어린이용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 제대로 완전하게 출판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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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가는 길 - 슈퍼로맨스 SR-71
저스틴 데이비스 지음, 이영욱 옮김 / 신영미디어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푸쉬킨의 시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아내와 딸이 자살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강간을 당한다는 것도 끔찍한 일이다. 그래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 봐야 자신만 손해라고. 아니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만드는 거라고. 그래서 아마도 정말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해서도, 분노로 절망해서도 안 되는 것인가 보다. 불타 모든 것이 사라진 대지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싹이 트고 꽃이 피는 법이다. 슬픔과 분노로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니 자연이, 운명이 변하는 대로 좇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거스르려 하는 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므로 우리는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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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돈을 위해 산다 현대세계추리소설선집 5
자넷 에바노비치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2월
평점 :
절판


자넷 에바노비치의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다. 보석금을 떼먹고 도망친 범인을 잡는 일을 하게 된 스테파니 플럼이 자신의 평생 원수인 조 모렐리를 잡으려고 노력하다가 뜻밖에 그의 무죄를 밝히고 범인도 잡게 된다는 이야기다.

로맨스 작가 출신이라 근사한 로맨스가 곁들여져 있을 줄 알았는데 약간만 비치고 만다. 그리고 많은 부분 스테파니가 처음으로 겪게 되는 도주 범인 검거 요원으로의 일들을 쓰고 있다. 아주 사실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마약과 관련된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대부분 읽는 이를 부담스럽게 하게나 불쾌하게 만드는데 이 작품은 아주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주인공 스테파니와 모렐리의 정직한 성격 탓일 것이다. 아무런 가식 없이 돈을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다고 나선 스테파니와 자신을 잡으려는 스테파니를 당당히 이용하는 모렐리에게서 현대인의 인간미를 느껴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스테파니 플럼이 수 그라프튼의 킨지 밀흔과 같은 여성 탐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출판사에서 이 시리즈를 계속 출판해 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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