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음모 1
데이비드 리스 지음, 서현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실체를 알 수 없는 거짓과 음모는 인간의 역사와 언제나 함께 했다. 하지만 인간은 종이를 발명하고 사용하게 되므로 인하여 더욱 교묘한 음모를 꾸미고 속임수에 빠지는 사람들 또한 많아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종이가 인간에게 어떤 위력을 가져 오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 속 배경이 되는 남해회사포말사건은 1720년 영국에서 수많은 투자가들을 파산시킨 투기사건으로 최초의 증권사기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것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주먹만 믿는 멍청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누구든지 거대한 힘 앞에서는 휘둘리게 마련이며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는 지는 당한 뒤에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벤자민처럼 바보에 힘만 센 주인공은 처음 본다. 한때 잘나가던 권투 선수였지만 부상을 당한 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아가게 되는데 이를테면 도둑질당한 물건을 되찾아주는 일 같은 것으로 요즘으로 말하자면 탐정으로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마이크 해머 이후로 이렇게 어리석은 탐정, 머리를 못 쓰는 탐정에 무조건 힘만 휘두르는 탐정은 또 처음 본다.


그것은 시대가 18세기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고 또한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감안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은 똑똑하다고 들었는데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벤자민이 증명하고 있다. 또한 벤자민의 이런 바보 같은 행동은 그가 늘 해오던 일과는 다른 일을 더듬고 있기에 나오는 당연한 모습이다. 나는 벤자민의 헤매고 속고 휘둘리는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지금 일확천금을 노리거나 자신이 하지 않던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바로 이런 안개 낀 런던 거리를, 불량배들이 넘쳐나는 길을, 똥물범벅에 위에서 요강을 비우는 좁은 골목을 걸어가는 그런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 작품이 지금의 시대에도 잘 읽힐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 그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증권 안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증권으로 망하고 자살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는 요즘은 그만큼 실체 없는 돈인 주식, 증권, 채권이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행복의 척도이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부를 쌓는 것, 쉽게 부자가 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가난한 자와 공유하려 하지 않고 가난한 자의 얼마 안 되는 부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까지 이용해서 그들의 부를 축적하기 때문이다. 부를 맛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알려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책을 읽다보면 18세기 런던의 커피 하우스가 밀집해 있던 곳이 마치 뉴욕의 월스트리트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들은 신문을 읽고 증권 중개업자의 소개로 주식을 사고팔고 우리 또한 전광판의 주가를 보며 스스로 또는 증권 회사 직원들을 통해 주식을 사고판다. 읽다보면 다른 점은 전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 뒤에 나왔지만 먼저 읽게 된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에서 커피 하우스가 곳곳에 생길 거라고 했던 것과 유대인들이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건너와서 이제는 증권 중개업자로 변신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이어지는 점이 있다. 1세기의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 작품보다 재미있는 주식투자 설명서가 있을지 모르겠다. 학교에서나 초보 투자자에게 딱딱하게 경제 이론이나 주식투자를 가르치는 것보다 이 책 한 권 읽고 안개 속을 더듬듯 실체 없는 돈을 알아가는 것이 더 재미있고 쉽게 와 닿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탄탄하게 쓰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증권을 하려는 분들, 시작하기 전에 이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 물론 이 작품이 주식투자요령을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그것보다 더 값진 누가 부를 가지고 누가 가질 수 없는지를 알게 해주고 있다. 왜 개미군단들이 주식 시장에서 계속 망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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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8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6-11-0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보탐정에 복잡한 주식투자 설명서....오묘한 조화로군요...^^

물만두 2006-11-0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사실 어제 다 읽었어야 하는데 요즘 안좋아서 오늘까지 걸렸습니다 ㅡㅡ;;;

물만두 2006-11-0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주식 모르는 사람이 그곳에 덤벼들면 벤자민같아지지 않을까요^^;;;

뽀송이 2006-11-08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우~~^^;;
그래도 주식은 넘 어려워서...
저같이 간이 작은 사람은... 흑흑~@@
개미군단은 영원한 개미일 수 밖에 없는지라... ^^;;

짱꿀라 2006-11-08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추천들어갑니다. 지금은 한가하네요.

물만두 2006-11-0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어려운 책 아닙니다. 추리소설인데요^^;;;
santaclausly님 감사합니다^^
 
시소게임 작가의 발견 1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아토다 다카시의 단편 <나폴레옹광>을 본 독자라면 이 작가의 작품을 또 보기를 원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가는 엄밀하게 어떤 장르의 작가라고 말할 수 없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기에 특정 장르를 기대하고 보면 어떤 작품에서는 실망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작가의 국내에 소개된 단편집을 본 뒤 내가 내린 결론은 문학평론가 마사시노 지로의 해설과 같다. 그의 작품은 인간과 인생에 대한 관망을 담은 작품인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고 본다면 단편 하나하나가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 생각했던 일들, 갈망했던 것들의 표현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읽으면서 섬뜩해지는 것이다.


<사망진단서>를 읽으며 나는 조금 섬뜩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된다는 것은 짐이 되는 사람에게도,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 사람에게도 모두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해는 하지만 짐이 될 사람에게는 참으로 무정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자살균>은 다소 몽환적인 작품이었다. 자살이라는 바이러스가 전염된다는 것은 어쩌면 Gloomy Sunday를 듣고 자살을 많이 했다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누구에게나 건드리면 순간적으로 터질 뇌관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


<행복을 교환하는 남자>는 이런 소재의 작품은 많았지만 독특하지 않은 소재를 풀어내는 방법은 괜찮았다. 우표를 수집하는 남자와 골동품을 수집하는 남자가 만나 서로의 취미에 보탬이 되는 것을 주고받는다는 것. 있을 법한 일이지만 거기서 한발만 더 나아가면...


<시소게임>은 이 작품의 원 표제작을 제치고 표제작이 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우리는 늘 마음속에 시소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곳에 누군가를 올려 태우고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한다. 올라갈 때는 즐겁고 내려올 때는 아찔하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잊는다. 시소는 반드시 둘이 타야 한다는 것을. 둘 중 누군가 하나가 내리면 나머지 남는 사람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을. 이건 마음속에 저울을 가지고 저울질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언제나 한쪽에 타고 앉아있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환청이 들리는 아파트>, <꿈틀거리는 밤>, <천국에 가장 가까운 풀>은 미스터리적 작품이다. 그러면서 인간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단순한 추리 단편으로 치부할 수 없음을 지금에서야 느끼게 되어 다시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를 운반하는 다리>는 원작의 표제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감정이 슬프게 느껴진다. 진부하고 감상적일 수 있는 작품을 간결하고 아름답게 포장한 작품이다.


<얼음처럼 차가운 여자>는 마치 사고루 기담에 등장해도 좋을법한 작품이다. 범인은 바로 당신이다! 라고 말하지 않아서 더욱 섬뜩한 어린 시절 한 소년이 목격한 미스터리를 청년이 되어 알게 된 이야기다.


<절벽>은 세상에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세상에는 나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상대방은 언제나 또 다른 나일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언제가 간과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다.


<독을 품은 여자>, <바퀴벌레 환상>, <기호의 참살>, <부재증명>, <파인 벽>도 미스터리적 작품이지만 특히 <바퀴벌레 환상>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품이고 <부재증명>은 미스터리적 명제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 로알드 달이나 스탠리 앨린 단세이니 등 서양의 단편 대가들과 어깨를 겨뤄도 손색이 없는 동양의 미스터리 단편의 귀재의 작품들이었다. 모처럼 좋은 작품들로 그간 맛만 보고 말았던 것을 배부르게 한 상 잘 읽었다. 머리가 빵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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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로 2006-11-0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겁지겁 장바구니에 담습니다ㅎ

물만두 2006-11-0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 ^^;;;
 

황금가지, 밀리언셀레클럽

11월 출간 예정작품!

스티븐 킹 너무 자주 나온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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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11-0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듯..ㅋ^^;;

물만두 2006-11-05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미저리 한편 봤어요^^

수퍼겜보이 2006-11-0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샤이닝^^

물만두 2006-11-05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퍼겜보이님 의외로 안보신분들도 계시네요^^

물만두 2006-11-0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켈님 저랑은 안맞는지 진도가 안나가더라구요^^:;;
 
루시퍼의 눈물 1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코디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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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은 종교와 과학이 극단적으로 잘못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작품에서 과학에 대한 종교의 비판과 종교에 대한 과학의 비판을 만날 수 있었지만 이 두 가지가 비판받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작품은, 이런 충격적인 방법으로 나타낸 작품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릴 적 기독교를 믿던 내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그때가 중학교 때였는데 다니던 교회를 새로 지었을 때였다. “도대체 교회가 저렇게 크고 멋있어져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난 하느님께서는 저런 걸 원하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이 책을 읽으며 새삼 그때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어린 아이들도 아는 데 왜 어른들, 특히 성직자들은 그런 것을 모를까.


그건 그들은 인간이고 인간에게는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권력에 대한 욕심과 과시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와 과학은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 인간에게 많은 것을 베풀지만 조금만 더 나아가서 그것이 과해지면 주체하지 못하고 부메랑처럼 인간을 망치고 만다.


이 작품은 그것에 대한 경고다. 종교와 과학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 어떤 것도 인간 위에 설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신을 방패로 삼아 행하는 모든 것들은 절대 신이 계시다면 그분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신 이외에 누가 신처럼 인간 위에 군림할 수 있을까. 그건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그래서 마지막 에필로그가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세계 곳곳의 높이 솟은 교회들과 성당들, 이슬람 사원과 절들의 모습은 마치 그 옛날 인간이 만들려는 바벨탑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의 종교로 인한 전쟁들도. 신의 민족이라는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일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신께서 그들에게 살인을 명령하지는 않으셨을 텐데 말이다.


‘시험에 들지 말라.’고 하셨던가. 아마 지금 인간들은 시험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종교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어떻게 믿음이 있는 자들이 더 잔인하고 지독할 수 있는지. 그래서 무종교인인 내게는 브래들리의 마지막 말이 더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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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03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음있는 자들이 전부 더 잔인하고
전부 더 지독하지는 않다는 말씀만 드리고 갈게요.
^^

물만두 2006-11-03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 그런 뜻이 아니고 이 책에서 그분들은 믿음없는 분들보다 더 좋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비로그인 2006-11-03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알아요~
제가 그냥 뜬금없는 소리 하고 간거죠~

물만두 2006-11-0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 새가슴이 놀랬다구요^^ㅋㅋ

비로그인 2006-11-0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지금 읽기 전에 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멈춤을 하고 잇다는;;;

물만두 2006-11-0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드님 그다지 무섭지 않은데 스릴은 있어요. 뭐, 헐리우드식 스릴이지만요.
 
체인지링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노벨상을 탄 작가의 작품은 안 읽는 편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도 <나의 나무 아래서>인가 하는 작품 한편밖에 읽은 것이 없다. 그 작품도 읽으려고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어쩌다 이 작품을 읽게 되었을까?


그것은 작품 속에서 처음 시작되고 작품의 큰 흐름이 되는 저자의 처남의 자살 사건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사생활을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영화감독이라는 위치에 나이가 예순이 넘은 남자가 단순히 스캔들 때문에 억울하다고 자살을 선택할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이 궁금했다. 나는 그 미스터리를 읽고 싶었던 것이다.


처남이기 이전에 오랜 동안 함께 했던 친구이기도 한 고로의 자살 이후 유명한 작가인 고기토는 매스컴에 시달리다 못해 베를린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묘령의 여인을 만나 암묵적 폭력 같은 매스컴 앞에 또 한 번 마주하게 된다. 베를린으로 쿼런틴하게 된 이유는 고로가 유언처럼 남긴 테이프를 고기토가 듣는 것을 부인 치카시가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저쪽, 바깥 세계 너머로 간 친구와 소통하는 유일한 그만의 방법이었다.


고기토는 어쩔 수 없이 봉인해두었던 소년 시절의 기억을 풀어 놓으려 한다. 그것은 그가 열일곱, 고로가 열여덟에 겪었던 일이다. 또 한 치카시가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것으로 인해 변했고 치카시는 그것으로 인해 고로가 체인지링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갑작스런 화자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고기토와 고로의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짐작하게만 한다. 폭력적이었을 거라는. 그들의 인생이 폭력에 휘둘러진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폭력의 시작점이었을 거라는 점만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장식은 죽은 자는 죽은 자의 곳에서 살게 하고 산자는 살고 있는 곳에서 살아가자고 체인지링을 엮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고로의 ‘그것’을 알 수 없기는 고기토도 마찬가지니 치카시가 화자가 되든 상관은 없다. 그렇다면 이 또 다른 화자 체인지링은 고로에 대한 고기토의 마침표 없는 회상에 치카시가 찍는 마침표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고기토가 어린 시절 겪은 이야기 속에서도 그에게 체인지링을 이야기해주던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으니 체인지링이란 어쩌면 여성의 전유물이고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그런 가슴 속에 묻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누구나 변화를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치카시에 대한 고로의 마음이다. 첫 아들을 낳을 때 아름다운 오빠를 다시 낳을 거라 생각하고 또 다시 다른 여자에게 고로심기를 결심한 누이동생의 마음은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이를 향한 어쩔 수 없는 마음 같다. 우상이었다고 해도 좋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희망이다.


언젠가 한 아이가 암에 걸렸다. 그 아이는 엄마에게 말을 한다. “엄마, 내가 죽으면 다시 나를 낳아줘.”이 작품을 덮으며 그 아이가 한 말이 생각났다. 바깥 세계로 갈수밖에 없는 아이의 절실함과 함께 체인지링이 아니더라도 그렇게라도 다시 한 번 못다 한 삶을 살고 싶은 어린 아이의 마음이 이 작품 속의 폭력에 의해 자기 파괴로 맞서고 다시 그 파편 주어 담기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보다 더 와 닿는다.


결국 내가 읽고자했던 미스터리는 파악하지 못했다. 아마 그건 미스터리인체로 남겨두어야 할 것인 모양이다. 남편은 부서진 인간을 고치는 일로 완성된 인간 만들기를 하고 아내는 부서진 인간을 체인지링으로 믿고 새로운 탄생으로 또 다른 체인지링을 감행하려 한다. 부부가 같은 것을 바라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도 놀랍다. 아마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 작품에서 그래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고로가 고기토에게 백년에 대한 의미를 고기토의 나이와 고기토의 아들 나이를 합쳐서 말하는 장면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가 합쳐서 백 살이었다. 부자는 합쳐서 백년을 서로를 완성해가며 나아갔다. 이것이 바뀐 아이라 생각하고 또 다른 체인지링을 꿈꾸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체인지링을 모르는 지도 모르겠다. 무에서 유의 근원적 창조와 유에서 유의 변화의 차이가 체인지링일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서는 그 체인지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모든 불완전한 우리는 완벽과 체인지링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은 아니다. 인생의 목표도 아니다. 다만 살아감 자체가 그런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절망과 희망은 늘 반복되는 일이다. 큰 틀에서 봐도 작은 틀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때론 그것으로 묻어두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가슴 속에 담아 온 것을 풀어내는 것도 또 다른 묻어두기의 다름이고 희망을 이야기하며 나아가는 것도 묻어두기일 뿐이다. 이 작품은 고로 묻기 그 자체였다. 아직 가슴속에서 묻지 못했던 것까지. 하지만 완전히는 여전히 아닐 것이다.


나는 체인지링을 행복에 대한 환상의 대체물로 보고 싶지 않다. 희망의 메시지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인간의 이어짐이 끝없는 생명의 탄생에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죽음에서 탄생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체인지링이 아니어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죽은 고로가 원한 것이 자신에 대한 이런 체인지링이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작가에게 묻고 싶다. 왜 체인지링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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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1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1-0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점점 리뷰쓰기 힘들어요. 이해력도 떨어지고 말만 많아지고 걱정입니다 ㅜ.ㅜ

똘이맘, 또또맘 2006-11-01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춤볼냐~ 리뷰읽으랴 ~ 숨찬니다. 헥헥 되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만두님 책방에서...

물만두 2006-11-0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이맘또또맘님 쬐쏭함다^^;;;

2006-11-02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1-0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그러면서 또 읽어야 하는 저는 정말 죽겠습니다 ㅡㅡ;;;

sayonara 2006-11-0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들 자꾸만 속삭이시는지... ^^;
체인지링은 새로 나온 컬러링인가... 아님 휴대폰이 나오는 스릴러인가 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노벨 문학상 작가들과 친하지 않아서...
그들의 깊이있는 문학성이 오히려 장황함으로 느껴질 정도로 소양이 낮은가 봅니다.
그래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만은 좋더라구요. ^_^

물만두 2006-11-0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 저도 안친하죠. 뭔가 미스터리스러운건가 싶어 봤어요^^;;; 저는 토니 모리슨은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