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남 J 미스터리 클럽 2
슈노 마사유키 지음, 김수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을 좀 더 일찍 나왔더라면 평가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너무 거창한 트릭들이 쏟아져 나온 상태에서 가위남이라는 연쇄살인범이 자신이 다음 피살자로 점찍은 여학생을 모방 살해한 범인을 쫓는다는 형식은 괜찮았지만 경찰과 같은 선상을 달리면서 어디선가부터 괜찮기는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닌 작품이 되어 버렸다.

경찰과 가위남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 방식, 즉 경찰과 범인을 모두 보여주는 방식은 새로울 것이 없다. 물론 작가는 여기에서 좀 독특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하지만 그 독특함이라는 것이 새로울 것이 없고 오히려 심플할 수 있는 구조를 복잡하게만 만든 경우가 되었다. 그러니까 독자에게 너무 쉽게 간파당하고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개운하지 않은 작품성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차라리 피해 학생의 주변 인물들에 좀 더 공을 들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가위남의 상황이 좀 더 자세히 전개되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트릭에 집착하지 말고 말이다. 아니면 가위남의 인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 의사의 말에 좀 더 의미를 부여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범죄에 왜는 반드시 있다고 한다. 사이코패스에게도 나름 왜라는 이유는 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 점이 좀 더 자세히 부각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나름 매력은 있는 작품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끼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뭐, 생각을 해본다면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고 할까. 아니면 인간은 모두 자신만의 생각 속에 갇혀 살게 마련이기 때문에 애초에 이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그런 점을 피력한 작품이라고 할까.

아무튼 가위남의 연속 자살 실패를 보면서 정신분석학자이자 기호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비잔틴 살인 사건>에서 말한 살인은 자살의 또 다른 형태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가위남은 그런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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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10-08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아 만두님 제 이벤트 참여해 주실거지요?

물만두 2007-10-08 13:06   좋아요 0 | URL
머리를 쥐어짜고 있습니다 ㅜ.ㅜ

비로그인 2007-10-0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죠. 만두님 리뷰를 읽고 읽고 싶어졌습니다. (웃음)

물만두 2007-10-08 13:16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그다지 빠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paviana 2007-10-08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날씨가 갑자기 쌀쌀하네요.감기조심하세요.^^

물만두 2007-10-08 19:11   좋아요 0 | URL
님도요^^

2007-12-14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14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Deja Dead (1997)  본즈, 죽은 자의 증언

 2. Death Du Jour (1999)  한낮의 죽음

 3. Deadly Decisions (2000)

 4. Fatal Voyage (2001)

 5. Grave Secrets (2002)

 6. Bare Bones (2003)

 7. Monday Mourning (2004)

 8. Cross Bones (2005)

 9. Break No Bones (2006)

 10. Bones to Ashes (2007)

작가 웹사이트 : kathyreich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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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지 않는 인생이라...
그건 어쩜 포기를 넘어선 달관의 경지?
하지만 너무 빠른데...
이것으로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 지 들어볼까?

마돈나라...
걸과 다른 무언가인가?
이 표지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뭔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 전달은 확실해 보인다. 매달린 남자에게서...

신화의 주인공과 40세기에서 떠나는 여행이라고?
신들의 사회도 거의 머리를 쥐어 뜯으며 읽었는데 이런...

정조와 열하일기, 그리고 김탁환의 백탑파가 등장하는 세번째 시리즈다.
조선 최고의 임금과 당대 최고의 작품에 대한 미스터리와 역사 팩션이라...
계속 기다린 독자들에게는 희소식이겠다.

얼 데어 비거스의 비찰리챈 시리즈의 첫권이라고 한다.
추리가 좀 약하다고 하는데...
새삼 찰리 챈 시리즈가 더 보고 싶어진다.
그래도 작가가 열쇠에 대한 집착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드는게 그 시대 작품의 희소성으로
볼 만 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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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7-10-05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닥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지 않는 인생...이라는 만두님의 문구를 보는 순간 보관함에 담습니다.
안녕하시지요?

물만두 2007-10-05 13:55   좋아요 0 | URL
건우와연우님 반가워요^^
컴이 안안녕해서 그렇지 저는 무탈합니다.
님도 추석 잘 보내셨죠?

BRINY 2007-10-0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쨋든 백탑파 시리즈는 재미가 있어요.

물만두 2007-10-05 14:27   좋아요 0 | URL
오, 전 안 읽어봤어요 ㅜ.ㅜ
읽을려고 하는데 자꾸만 안잡히더라구요.

비로그인 2007-10-0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탑파! 드디어 등장했군요! 물만두님, 읽으삼~

물만두 2007-10-05 16:17   좋아요 0 | URL
노력해보겠습니다^^

미미달 2007-10-0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오기 맨 밑에 원서예여?
알라딘에서 원서도 파나...

물만두 2007-10-05 18:57   좋아요 0 | URL
원서아닙니다.
링안에 한글 제목이 보이실 겁니다^^;;

레몬향기 2007-10-0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탑파 재밌어요 ㅋ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나왔네요~ 찰리챈 시리즈도 기대됩니다 ㅎ

물만두 2007-10-06 12:45   좋아요 0 | URL
아, 저건 찰리챈 시리즈 아닙니다.
백탑파... 고민됩니다^^:;;

프레이야 2007-10-06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튼 참 부지런히 읽으십니다.^^

물만두 2007-10-06 18:32   좋아요 0 | URL
이런 부지런이라도 떨어야지요^^;;;

레몬향기 2007-10-0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비찰리챈이라고 씌여져있군요; ㅠㅠ 바보입니다.. 백탑파는 두번째 열녀문이 더 좋지만 시리즈이니까 첫 권부터 읽으셔야겠어요. 저도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오는 케릭터가 좋아요. 화광이라는 케릭터가 너무 좋아서 ㅎㅎ

물만두 2007-10-07 20:01   좋아요 0 | URL
저는 추리가 약하다는 말에 망설이고 있답니다^^:;;
 
코로나도 밀리언셀러 클럽 69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모두 5편의 단편과 1편의 희곡이 수록되어 있는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미국이 배출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단편집이다. 다르면서 비슷하고 비슷하면서 다른, 그러면서 데니스 루헤인의 전작인 <미스틱 리버>,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와의 공통된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소꿉친구에 대한 세월이 지나 변하고 일그러진 모양으로 다시 관계가 형성된다 하더라도 그 시절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미스틱 리버>에서는 지미와 숀, 데이빗의 관계와 그들이 공유한 것들이 책 전반을 이끌어가고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인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는 켄지와 부바의 관계가 그렇다. 특히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도 켄지에 대한 부바의 우정은 그 작품을 읽는 묘미를 배가 시키고 있다.

<들개사냥>이 단편집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이런 전작들과 같은 맥락에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엘진이 소꿉친구 못난이 땅딸보 블루에게 갖는 감정은 어린 시절을 공유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정이고 연민이며 한 인간이 순수하게 한 인간을 걱정하는 측은지심이다. 그래서 엘진은 베트남에서 돌아온 뒤 계속 블루를 걱정한다.

엘진은 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일까? 아무 희망도 없는 트레일러밖에 없는 가난구덩이 속으로 왜 돌아왔을까? 고향이기 때문에? 친구가 있어서? 이 작품을 읽고 뒤에 <코퍼스 가는 길>을 읽으면 마치 코퍼스로 떠나려던 아이들이 남아 엘진이 되고 주얼이 되고 샐리가 되고 블루가 되어 행복보다는 절망을 먼저 알아버리고 그러다가 그 아이들은 <독버섯>에서처럼 우연히 만나 후회할 일을 저지르고 마약에 중독되어 떠돌고 다시 <그웬을 만나기 전>으로 끝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생뚱맞게 이질적으로 수록되어 있는 단편이 <ICU>다. 하지만 이 단편에서 작가가 추리소설의 한계를 넘어 순수문학과의 접목을 시도하려는 점이 엿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에 대해 묻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듣게 된 남자, 그는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들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그들 또한 자신을 드러내 놓고 감시할 뿐 그 외의 일은 하지 않는다. 실직으로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는 감시자를 피해 병원의 중환자실로 뛰어들고 만 남자는 그곳에서 쉬게 된다. 낯선 이들이 모여 있지만 그곳은 감시와는 또 다른 걱정을 공유하는 감정이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공유하는 자들과 공유하지 못하는 자들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을 묘하게 압박하며 보여주고 있다. 마치 내일을 알 수 없는 중환자실의 환자나 환자 가족처럼 자신의 뒤에 있는 자를 모른다는 것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듯이...

<그웬을 만나기 전>은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아들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아버지와 기억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아들, 친구에서 벗어나 부자가 등장해서 보여주는 색다르면서도 이 시점에 너무도 울림이 강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다시 <코로나도>라는 희곡으로 각색이 된다. 한 작품을 단편에서 장편으로 쓴 작품은 봤지만 단편과 희곡을 같이 본 것은 처음이다. 단편은 단편대로 좋았고 희곡은 희곡대로 보태어진 인물들의 구성이 좋았다. 그곳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생의 도돌이표를 그리는 것처럼 돌고 돈다. 삶이 이렇게도 끔찍할 수 있고 사람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사랑이나 행복이라는 것들이, 기쁨이나 희망이라는 것들이 거추장스런 인생의 부스러기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제임스 M. 케인의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를 보는 느낌을 선사하고 있다. 데니스 루헤인의 또 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아 이 작가의 작품을 계속 기대하게 만든다.

들개사냥에서 너무 늦게 온 희망은 언제나 위험한 법이라는 말은 코퍼스 가는 길에서의 내가 슬픈 이유는 더 빨리 죽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과 왠지 닿아 있다. 너무 일찍 희망을 잃은 사람, 너무 늦게 희망을 가진 사람, 그리고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 그리고 희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 떠나려는 곳이 코로나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웨이트레스가 음악가와 떠났다는 곳... 코로나도를 찾는 것은 그래도 무언가 삶에서 움켜잡으려는 것 아닐까. 인생에서 희망이라는 저마다의 신기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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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05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잘 읽었습니다. 만두님. 서점에 가니까 있어서 데니스 루헤인이라 관심이 갔는데 만두님 서평을 읽으니 더 땡기네요 :)

물만두 2007-10-05 10:39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맨 마지막인 246쪽에서 온다 리쿠의 작품 전체의 존재 이유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 본인이. 이것이 온다 리쿠가 노스텔지어를 지향하는 이유고 그의 글 속에 학교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그것들이 어떤 성격으로 포장되는지에 관계없이 이것은 계속되는 그만이 가진 공통된 것이다.

   
  그리움, 그것만이 우리의 짧은 인생을 증명해 주는 증거다. 수많은 기억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든다. 기억 속의 그리운 사람들, 그리운 풍경,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 우리를 사랑한 사람들, 그것들이 우리에게 전부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운 것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단서니까.  
   

 

이것을 생각하며 한 작품씩 살펴보면 <봄이여 오라>는 반복되는 인연과 시간이라는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벚꽃에 대한 시구가 참 마음에 드는데 벚꽃이야 언제나 피고 지고 피고 지지만 인간, 더 나아가 인간의 관계는 너무 짧고 찰나적이라 더욱 그리움만 쌓이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무상함이 느껴졌다. 작가의 후기를 보면 이 작품을 보고 <구형의 계절>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갈색 병>은 미스터리적인 면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간호사가 되려고 간호대학을 나온 여자가 그냥 기업체에 들어온 이유가 뭘까?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 그녀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를 주시하던 인물은 결코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야 만다. 호기심도 그리움일까? 사람에 대한 맹목적 관심은 그리움이라기보다는 기억이다. 스쳐지나갈 수 있는 주변인에 대한 기억. 그것이 잘못되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니 기억도 조심해서 꺼내 봐야 하고 호기심도 적당히 넘겨야 할 것이다. 그녀의 미소는 오싹했다.

<이사오 오설리번을 찾아서>는 사진을 달랑 세 장 남기고 전쟁터에서 사라진 남자를 찾는 남자의 이야기다. 왜 그를, 아니 그에 대한 기억을 찾아다니는 것일까? 가끔 온다 리쿠가 전쟁을 묘사할 때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좀 난감하다. 작가에게는 전쟁도 노스탤지어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주 위험한 그리움인데 내 생각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다.

<수련>은 리세 시리즈의 한 장면으로 보면 된다. 리세의 가장 어린 시절이 등장하는 작품이니 리세가 등장하는 시리즈 중에 이 작품을 가장 먼저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리세 시리즈는 워낙 뒤죽박죽이 장기니 어떻게 봐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움이나 추억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두운 기억, 어두운 추억도 있게 마련이니까.

<어느 영화의 기억>은 이 단편집에서 <작은 갈색 병>과 <국경의 남쪽>과 더불어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미스터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생각난 어린 시절 본 영화의 한 장면으로 인해 자신의 봉인된 기억을 찾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다. 묻어둔 채로 때론 그냥 놔두는 것이 좋은 기억도 있다. 그리움이라도 무조건 끄집어내는 것은 상처만을 남긴다. 그저 가라 앉혔다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어쩜 이 남자에게 그 시점이 온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가끔 기억 상실에라도 걸리고 싶은 심정이 되는 때가 있음을 아는 까닭에 뒷맛이 쓰다.

<피크닉 준비>는 읽어보고 <밤의 피크닉>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안 읽기 잘 한 건지, 읽고 읽는 게 나았을지는 읽어보면 알겠지.

<국경의 남쪽>은 나이가 들어 대학 때 친구 자취방 근처 커피숍을 그리워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나이가 들면 새록새록 그리움만 늘어가서 별게 다 그립게 마련이지만 친구의 죽음이라는 것보다 더한 그리움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 자리를 찾아 그 자리에 생긴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회상에 잠긴 남자,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으로 남은 사건도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가끔 내 그리움에만 잠겨 망각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그때 찾아오는 것이 바로 이 안에 들어 있다.

<오디세이아>는 마치 한편의 SF를 보는 느낌이었다. 온다 리쿠가 SF 작품도 쓴다더니 단편도 썼구만. 그런데 여기에도 그리움은 있다. 잃어버린 모든 것에는 항상 그리움이 따르게 마련이니 어찌 예외가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SF라는 장르가 더 그리움이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너무 흔한 스토리였다.

<도서실의 바다>는 사요코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여섯 번째 사요코>를 이 작품 뒤에 읽으면 된다. 안 읽은 분들은. 표제작이고 제목은 참 멋있었는데 내용은 뭐, 학창 시절의 마지막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미련이랄까 그런 것뿐이다. 시작은 장대하였으니 그 끝은 미미하였다.

<노스탤지어>는 첫 번째 작품 <봄이여 오라>와 비슷하다. 제목 그대로 모여서 친구들이 돌아가며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그리움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 같은 작품이다. 그러면서 자꾸만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기억을 재생하라고 요구한다. 추억을 잃어버리지 말고 간직하는 것만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게 ‘나’라는 존재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거라고. 맞다. 나이가 들면 점점 과거에 대한 추억에 매달리는 자신을 볼 때가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리움, 추억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산다는 건 어쩌면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는 만큼 아래에 쌓이는 그리움이 있어 견딜 만 한 건지도 모르겠다.

단편들이 나름대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연관이 있어 온다 리쿠가 어떤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 알고 싶다면 간단하게 맛볼 수 있는 책이다. 노스탤지어에 너무 치이게 하는 감이 있어 때론 싫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온다 리쿠의 작품을 보면 내 과거 한 귀퉁이의 그리움 한 조각을 생각할 수 있어 좋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이 작가에게 이리도 매여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서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를 흥얼거리는 나를 본다.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 버렸나 그리움만 남겨놓고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 멀리 떠나가는가 ...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 어떤 그리움이든 정말 그리움, 쌓인 그리움을 돌아보게 한다. 오늘도 두둥실 그리움이란 바다로 나는 항해를 했다. 노를 저어 스스로 간 그 바다에서 내 그리움이란 바다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는 걸 보면 역시 작가의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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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0-04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까지 온라리쿠의 책은 한 줄도 안읽어 본 메피스토..^^

물만두 2007-10-04 18:35   좋아요 0 | URL
오오 경이로운 매피스토님^^

홍수맘 2007-10-04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의 피크닉> 이후 모자란 제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는 작가중에 한 사람입니다. 요즘 너무 일본소설에 치우쳐 있지 않나 싶어 자제할려고 했는데...
이번만 허락할래여. 다 님 때문이양~.^^;;;

물만두 2007-10-04 18:36   좋아요 0 | URL
쬐송함다^^;;;

paviana 2007-10-05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밤의 피크닉 읽었어요.ㅎㅎ

물만두 2007-10-05 10:39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저는 못 읽었어요 ㅜ.ㅜ

BRINY 2007-10-0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일본에서도 꽤 평가가 좋았던 걸로 기억해요. 온다 리쿠도 가려서 읽어야할 거 같은데, 이건 읽을만한 가 보네요.

물만두 2007-10-05 14:28   좋아요 0 | URL
오, 전 뭐 온다 리쿠의 전반을 알려준다고나 할까 뭐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