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에 즐겨 가기 시작힌 지가 어언 스무해 남짓 되었다. 처음에는 근정전 회랑에 무턱대고 앉아 근정전 지붕의 곡선 맵시와 인왕산 마루금의 아름다움에 취해 볼려고 마냥 쳐다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한동안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서 새로이 개방된 창덕궁 후원과 낙선재 특별관람, 경복궁 집옥재  등을 보는 재미로 자주 갔다. 일반관람도 비 오는 날이면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좋고 눈이 오거나 아주 추운 날엔 도심 한복판에서 적막을 느낄 수 있어 그 또한 아주 좋았다.  

최근에 우연히 경복궁 경회루를 개방한다는 사실을 알고 두어달 전에 신청해서 관람하였다. 그런데 안내하시는 해설사의 설명이 영 마땅치 않았다. 원래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여러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는 그 분의 영향력을 감안해서 살짝이 지적아닌 지적을 하였다.  

그 분 설명에 의거하자면 경회루는 주역의 원리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는데 딱 보기에도 세 개의 다리하며 세 개의 방 등 그런 요소가 많이 보였다. 하지만 그 분 왈 음양 곧 양의가 4괘가 되고 4괘가 8괘가 된다는 것이었다. 과문한 탓에 4괘를 들어보지 못해서 그분에게 4괘가 아닌 사상인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경회루의 창이 48개인데 왜 48개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 또한 궁금증에 빠졌다. 처음에 시초 수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여러 모로 궁리하였지만 알 길이 없었다.  

책을 미처 찾아보지 못하고 있던 차에 담양 소쇄원에 들렀다가 제월당의 현판 설명을 들은 것이 의문점이 풀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근자에 제월당에서 두번이나 뵈었던 어르신의 설명에 조선 선비들에게 시 48수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경하자마자 뒤져보니 안평대군에게도 48수가 있는데 이는 주역 6효에다 8괘를 곱해서 얻어진 수라는 것이었다.  

80년대에 김성호씨의 <비류백제와 일본의 기원>을 읽으면서 각 종족에 따라 좋아하는 수와 즐겨쓰는 지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나는 늘 수에 관심이 많았다. 요사이 동양 고전을 다시금 제대로 공부하면서 내 나름대로 정리하며 새삼 크게 재미를 느낀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화두처럼 늘 머릿속에 그 궁금함을 담고 있으면 언제 어느 곳에서건 실마리가 풀리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인생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이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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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4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랫만에 들렀다가 이 글을 읽고 저 또한 궁금하여 검색해 보았더니,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의 글이 눈에 띄네요..기둥이 48개인 이유가 상세하게 나와 있어 옮겨왔습니다...경회루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한번 가보고 싶네요..좋은 가을입니다. 안녕히...

고종 때의 대신인 정학순(丁學洵)이 지은 <경회루전도(慶會樓全圖)>에서는 경회루 축조의 의미를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라 유교적 우주질서를 체계화하여 설명하려 하였던 역(易)의 원리에 따라 설명코자 하였다. 이는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의 건물들이 유교적 이념에 근거하여 하늘과 땅의 이치를 담으려고 했다는 것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경회루는 48개의 기둥을 사용하여 세웠는데 만들어지는 칸이 모두 35칸으로, 주역의 64괘와 밀접한 36궁 즉 육육궁(六六宮)과 관련이 있다. 건물의 칸수가 35로 36 중 1이 모자란 것은 비어있는 허공이 태극의 하나라는 뜻이 있어서 이를 합쳐 36이 되기 때문이다. 육(六)은 주역의 팔괘 중 감괘(坎卦)로 큰물을 상징한다. 따라서 경회루 축조의 뜻이 원래 불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복궁 전면의 관악산이 불타는 모습 즉 화형(火形)을 하고 있어 경복궁이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풍수지리설과 실제로 빈번했던 화재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런 상징성을 동원하여 경회루를 축조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동(銅)으로 만든 용을 연못에 집어넣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용은 8괘 중 건(乾)괘에 해당되는 것으로 금생수(金生水)의 오행(五行) 원리에 따라 불을 제어한다고 한다. 실제로 1997년 연못 준설 때 이 동용이 발견되어 <경회루전서>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 바 있다.

이외에도 <경회루전서>에서는 유교적 질서가 건축계획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즉 경회루 평면은 3중(重)으로 되어 있는데 제일 안쪽 3칸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의미하고 기둥 8개는 8괘를 의미한다고 한다. 내진(內陣) 칸은 12칸으로 1년 12달을, 기둥 16개에는 각각 4개씩의 문짝을 달았는데 이는 주역의 64괘를 의미한다. 외진(外陣) 기둥 24개는 24절기(節氣)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당대인들의 관점에서는 경회루가 유교적 철리(哲理)를 가득 담고 있는 상징이기를 염원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狂人 2011-10-04 17:16   좋아요 0 | URL
네, 이런 정보도 있었군요.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만 36궁을 위해 48이란 수를 썼다기 보다 6곱하기 8로 보는 것이 조금 나을 듯 싶네요. ^^
 

예전에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는 구하기 힘든 책이나 책 구경을 하러 갈 때는 교보나 2002년에 없어진 종로서적을 이용했었다. 시간이 없을 때는 물론 집 근처의 중소형 문고를 이용했었지만 교보나 종로서적 가서 몇 시간이나 서서 책을 봐도 체력이 딸리지 않아 그럭저럭 괜찮았다. 

인터넷이 생기고 책을 많이 사는 요즈음에는 이곳 알라딘을 애용한다. 물론 책을 사기 전에 책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이다. 다음으로 중고품이 없나 확인해 보고 알라딘에도 책이 없으면 교보나 다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게 된다.  

책이 많고 잘 진열되어 있는 교보문고는 어제 가보니 경쟁이 치열한 자리까지 마련돼 있어서 그나마 편히 예전처럼 바닥에 죽치고 앉아 간혹 지나가는 종업원들의 핀잔을 듣지 않고 조금이나마 마음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교보는 오래된 책이나 비싼 책들은 진열해 놓지 않기 때문에 확인하기 힘들다. 이에 반해 공공도서관이나 대학교 도서관들은 오래된 책들을 편하게 확인할 수 있지만 책 구입의 폭이 넓지 않아서 없는 책이 많다. 더군다나 공간이 좁은 공공도서관의 경우 진열서가가 많지 않아 서고에 책을 올려놓은 곳이 많다. 왜 서고까지 진열서가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관리상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짐작하면서 직원들을 번거롭게 서고까지 올려보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책 찾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래저래 간신히 찾은 책들을 보면 반갑다. 그나마도 없어서 아직까지 구경도 못한 책들도 제법 있으니 말이다. 책 내용을 최대한 재빠르게 훑고 우선 마음에 들면 책값이 적당한가 확인할려고 간기를 찾아본다. 간기가 간혹 뒤쪽에 없으면 다시 앞으로 넘겨서 찾는데 앞에도 없으면 뒷표지에 있을까 하고 찾는데 이도 없으면 황당하다. 순간 입이 삐죽 나오면서 '제발 간기를 예전처럼 뒤쪽으로 통일시키든지 아니면 앞쪽에 두든지, 이것도 통일이 안되다니 쩝'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책값이 분명히 뒤표지에 적혀있다고 하는데 공공도서관은 대부분 겉표지를 벗겨버리기 때문에 결국 책값은 인터넷에서 확인하게 된다.  

알라딘의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강호 고수들의 날카로운 서평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사기 앞서 내가 직접 확인하지만 아무래도 큰 도움이 된다. 그이들의 서재를 들락날락 하며  재미난 글을 정신없이 보다보면 어느새 눈이 뻑뻑해지지만 잘 시간이 훌쩍 지나있으리만큼 삼매에 빠져든다.  

책을 사는 양에 비해 읽는 속도는 더뎌 심지어 읽고 나서도 내가 이런 책을 가지고 있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구매할려고 하는 멍청한 짓을 하는 지경이지만 그래도 어찌하랴 책만 보면 좋은 걸. 어려서는 책을 제법 읽었는데 다소 긴 군대생활로 인해 제대하고 나서는 흐름이 끊겨 한동안 책만 들면 바로 잠이 들곤 했다. 올해부터 다시금 책 읽는 속도에 힘이 붙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요사이 하루도 빠짐없이 알라딘에 출근하며 오늘도 여기저기 좋은 책 없나 살펴보며 돌아다니는 것이 내 즐거움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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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 5월이었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을 벌어서 돈을 받은 즉시 신사역 근처의 월드북문고인가에 가서 홍성원씨의 <남과북>을 비롯한 책 여남은 권을 사고서 버스를 타고 씩씩하게 집으로 향했다. 책을 보신 어머니께서 약간 섭섭한 빛을 내비치시자 그때서야 속으로 아차 싶었지만 그래도 책을 내돈 주고 샀다는 것이 그리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금을 주고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의 <한한대사전>을 샀다. 없는 살림에 무리한 거지만 그래도 기분이 참으로 좋다. 빨간 표지를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저 사전 덕에 얼마나 더 열심히 공부할런지는 알 수 없으나, 열심히 책 만드신 분들에게 나 또한 일조를 한 거 같고 그 기운이 책에 듬뿍 담겨 있는 듯 하여 더욱 좋다.  나중에 책 좋아하는 이들을 내 방으로 불러모아 조촐한 사전 입방환영연을 벌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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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달전부터 왠지 전집이나 사전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책이 많이 는 것을 보면 난 행복해진다^^- 그래서 아는이들에게 수소문하던 가운데, 드디어 <삼재도회>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삼재도회>는  값이 만만치 않은 탓으로 평상시처럼 또한 신중하게 보고 결정을 내리기로 마음먹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전에 얼핏 본 적이 있던 한국판 <삼재도회>를 훑어보고 나서 일본판 <삼재도회>를 보니 못알아보는 글도 글이지만 가격이 우선 걱정이 되었다. 가뜩이나 엔화가 많이 올랐다던데 어쩌나~~~. 어젯밤 아는 분에게 토오쿄대 앞 무슨 서점에서 나온 안내책자에< 화한삼재도회>가 실려있던 기억이 나 값을 물어보았었는데 두 종류의 <화한삼재도회>를 보면서 역시나 힘들겠다는 판단이  들어 그냥 참기로 하였다.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02년도인가 국학자료원에서 시라시마 료오안의 그 책을 70만원에 팔았다는 사실도 알았다.-  

도서관에 중국판 고서 <삼재도회> 도 있었지만 내 주제에 무슨 직원까지 번거롭게 하면서 보랴 싶어서 뒷날을 기약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마구 찾던 중, 결국 한국판 <삼재도회>를 우선 사기로 하고  알라딘에서는 팔지 않아서^^; 인터파크에서 샀다. 

또한, 중국판 <삼재도회>를 민속원에서  6권으로 찍었다는 것을 알게 돼서 눈요기라도 할려고 공공도서관을 검색해보았지만 거의 없었다. 결국 교보에서 판매한다길래 일부러 갔는데, 팔기는 하여도 진열하지 않아 보여줄 수는 없단다. 쩝 

어쩔수 없이 아는 민속관계자분께 여쭈어 보니 민속원에서 발간한 그 책은 가히 좋지 못하다는 정보를 입수하야 대만에서 나온 책을 구해 볼려고 하는 중이다.  

어쨌거나 난 지금 상,하 2권으로 된 <한국삼재도회>를 안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끝으로, <한국삼재도회> 머리말에 나온 <삼재도회>의 서지학 정보를 조금 인용하자면, 중국의 <삼재도회>는 명나라 신종35년(1607)에 왕기가 14개 분야로 106권으로 펴내었고, 일본에서는 정덕5년(1715)에 시라시마료오안이 중국의 것에 일본 것을 합하여 <화한삼재도회> 105권을 펴내었다고 한다.  

말이나 글만으로는 설명이 힘든 것들을 그림이나 표로  나타낸 이러한 사전이 하나즈음 있는 것도 가히 나쁘지 않은 듯 하다.  

* 이 책에 대한 추가정보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으시면 꼬리를 좀 달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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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人 2009-09-0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중국 삼재도회도 사서 우리나라 것과 비교해 가면서 대총 훑어 보았다. 아 책값이 장난 아니였다.ㅋ 약간의 후회와 책 식구들이 늘었다는 뿌듯함에 희비교차, 만감혼란이다.^^
 

언제인가 구한말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가 쓴 글을 읽었다. 그가 우리나라에 대한 느낌을 쓴 부분 중 이런 구절이 있었다.

 '조선은 너무나도 조용하여 간혹 개 짓는 소리가  들릴 뿐 평온하고 한가롭다고'

대총 이런 구절이였던 거 같은데 지금도 시골에 가면  간혹 느낄 수 있는 그런 풍경이리라. 물론 그렇게 드러난 모습이 다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조용함이 무척 그립다.

어젯밤 몇 년만에 다른 분들의 서재를 둘러 보았다. 가끔 인터넷에서 댓글 단 것을 읽어보지만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 쓴 글이라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는데 어제 본 서재들의 글들도 나를 심란하게 했다...............

때로는 시시비비를 떠나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면서........ 그런 힘들이 모여서 이 사회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간에 난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골목이나 쓸련다.

글 못 쓰는 내가 감히 남의 글을 비방하려는 뜻은 결코 없다.

그저 조용히 나를 觀하며 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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