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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솜씨가 없는 나로서는 서평이 많은 책을 보면 우선 주눅이 들면서 내용도 대동소이할 터인데 구태여 뭐하러 나까지 쓰레기같은 글을 써서 보는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멈춘다. 그런 내가 이 글을 쓴 것은 솔직히 과제이기 때문이다. ^^ 막상 과제로 쓸려니 그나마 못 쓰는 글이 더욱 진도가 안 나가고 머리를 지근지근 아프게 했다. 올릴려니 부끄럽고 뭐하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지적해 준다면 공부가 될 듯 싶어 낯을 두껍게 하고 올리는 바이다.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제목이 다소 과격하여 지은이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 일어났다. 흔히 얘기하는 좌파 성향의 386운동권세대가 아닐까 했는데 뜻밖에 나이가 지긋하신 53년생이셨다. 지은이는 왜 ‘반역’이라는 지나친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번역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안고 책을 읽어나갔다. 

 내가 번역에 대해 알게 되고 처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역시 도올 김용옥 선생의 책에서였다. 누구나 한번쯤은 느꼈을 터인 번역본들의 읽기 어려움은 쉬이 그 책을 내려놓게 만든다. 이 책 지은이 박상익씨도 대학생일 때부터 경험한 이러한 실정들을 적나라하게 털어놓고 있다. 

 단순함을 좋아하는 내 성정 탓에 박씨의 주장을 간략하게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정리하고자 한다.

1. 박씨는 일단 역사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찾았다. 가까운 중국의 불경 역경사업부터 시작해서 8,9세기에 이슬람이 그리스 과학과 철학을 아랍어로 번역한 일이며 르네상스의 계기가 되는 서유럽의 그리스 사상 번역과 가장 최근의 메이지 유신기의 일본이 얼마나 열심히 번역했었는지를 늘어놓았다. 

 북중국을 거의 통일했고 고구려에 불교를 전파했던 전진의 황제, 부견의 후원 아래 수많은 불경을 한역한 도안(312~385)으로부터 구역 구마라집(344~413), 길장(549~623), <서유기>로 유명한 신역 현장(602~664) 등으로 이어진 번역은 수백 년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국의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번역을 위해 바친 것이다. 

 알려진 소설『장미의 이름』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에서 수도사들이 아랍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세 초기’로 불리는 서기 7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약 5백 년 동안 이슬람은 서유럽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문명을 건설했었다. 아랍 세계는 8,9세기에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으로 자신들의 과학과 철학을 발달시켰다. 12세기 이후 서유럽은 아랍어로 번역된 이 그리스 고전 사상을 다시 라틴어로 번역하여 재수입하여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다른 문명권의 번역보다도 지은이는 특히 일본을 가장 주목하고 있다. 메이지 년간 일본은 서양 각국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그들의 우수한 점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일차적으로 수많은 서양 서적들이 대대적으로 번역되어 차곡차곡 쌓여 나갔다. 우리말에도 아직까지 큰 영향을 끼친 이 당시의 번역술어들에 그들만의 고민과 시행착오가 담겨져 있다. 영어 society를 사회(社會)로 번역한 예는 번역의 어려움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데 지금의 나로서도 어떻게 society를 사회로 번역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18세기 말, 스기타 겐파쿠 등이 네덜란드어 해부학서를『카이타이신쇼(해체신서)』라는 제목으로 번역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시작된 란가쿠는 초기의 의학에서 화학, 물리학, 천문학, 군사학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그 문화를 게걸스럽게 흡수하면서도 한자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공통유산 속에 완전히 녹여 새로운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해 나간다. 그 결과로 문을 닫고 있던 우리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압제에 시달리게 된다.   

2.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아프리카 다음으로 멀게 느껴지는 곳은 아랍지역일 것이다. 그 아랍세력의 한복판에 비집고 들어가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의 도서관에도 히브리어로 된 성서고고학의 연구 성과들이 일본어로 번역이 되어 있다고 한다. 기독교 인구가 총인구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인 일본을 생각해 볼 때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본과 우리는 번역에 있어 100년의 차이가 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자, 도서관에서 곧잘 눈에 띄는 성의 없는 날림 번역서들에는 외형상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우선 역주가 없는 책은 위험하다. -개인적으로 펼쳐서 찾아보기 힘든 미주보다는 각주를 선호한다.- 나 또한 평소에 느끼는 바이다. 또 ‘옮긴이의 글’이 없는 번역서를 지은이는 조심하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빠르게 터득할 수 있는 뛰어난 한글 덕분에 문맹이 퇴치된 지 오래 되었지만 요사이 새로운 문맹들이 출현했다. 다름아닌 인터넷 문맹들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뒤 뜻밖에 글쓰기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이 마당에 인터넷에 주로 글을 남기고 있는 젊은 층의 글쓰기 실력은 예전에 비해 오히려 아주 질이 낮고 천박하기까지 하다. 
 번역에 있어 많이 논란이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번역에 있어 원작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충실성’에 따를 것이냐 아니면 번역문의 ‘가독성’ 에 충실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손쉽게 둘 이상의 다양한 번역본이 나와서 독자 나름대로 입맛에 맞게 골라보면 해결된 문제지만, 개인 또는 출판사에게 한국어판 번역권이 독점적으로 주어지므로 복수의 번역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리는 선택의 자유와 기회가 없다. 더군다나 기본적인 고전 텍스트마저 제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우리의 척박한 현실에서 이런 바람은 요원하기만 하다.

3. 좀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대안은 필수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번역본들을 전공자인 교수가 대학원생들에게 맡기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와 교수 본인이 불성실하게 번역한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는데 이도 저도 참으로 창피한 노릇이다. 연구 업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으로 번역을 알려준 김용옥씨의 주장대로 번역을 연구 업적으로 인정하여 학위도 주면 이런 병폐가 없어질까. 지금이라도 석․박사 학위 논문이 연구번역으로도 가능하게 대학원 제도의 변화가 있어야 하겠다.

 전문적인 번역을 위한 실질적인 좋은 사전 얘기가 나온다. 너무나 유명한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1857년에 계획을 세워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1884년에 제1권이 간행된 뒤 43년이 걸려서 1928년에야 완성되었다. 그에 비해 문화민족인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번듯한 국어사전조차 없다고 한다. 제대로 된 국어사전조차 없는데 외국어 사전에 어떻게 알맞은 번역어가 실릴 수 있겠는가?

 이 모든 한탄보다도 더 현실적인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번역이 돈이 되지 않는 한 좋은 번역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냉혹한 현실은 번역가를 무력하게 한다. 생계유지도 힘든 번역 일로 더군다나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 돈벌이가 되지 않는데 ‘철밥통’이라고 부르는 교수 외에 누가 편히 앉아 번역을 하겠는가? 
 나도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책을 많이 날라 보았지만 이건 순 고역이다. 지니고 옮기고 다니는 일 뿐만 아니라 긴 시간 책을 보는 것도 몸을 혹사하는 고달픈 일이며 게다가 전문 번역가가 될려면 개인도서관이 필요하고 개인도서관이 있을 최소한의 공간이 요구된다. 이 모든 것들이 돈과 직결된다. 
 

 구걸하는 공공도서관도 번역가의 발목을 잡는다. 도서관에서 구매는 못해줄 망정 도리어 기증을 요구하기까지 하는 암담한 현실에서 우리의 고전번역은 언제쯤 완성될 것인가?

 지난 일본, 중국, 이슬람, 서유럽 이 네 곳의 문명권에서 이루어진 번역 사업은 한결같이 정부나 공공 단체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진행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정부에서는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마냥 정부 탓만 할 일도 아니다. 무릇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가 출현하기 마련인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는 인문학과 무너져 내리고 있는 우리의 독서 문화가 우리 국민들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번역을 통해 축적한 텍스트의 양은 경쟁국들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질 급한 우리 사회는 더 빠른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젊은 층은 점점 독서를 멀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선 이 빈약한 독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가? 당연히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국민들의 자각 없이는 이러한 난국을 극복하기가 힘들 것이다. 정부는 가시적이고 인기 영합적이며 단기적 정책을 수립할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고 초․중등 교육에서부터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독서가 생활화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또한 국민들에게 독서가 더욱 친밀하게 다가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홍보와 관심을  유발해야 할 터이다. 하루바삐 정부에서 해마다 늘어나는 신조어와 외래어를 순화시켜 계속적으로 새로운 말들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좋은 국어사전을 심혈을 기울여 편찬해야 한다. 

 끝으로 오문과 비문, 오타 등과 같은 오류를 지적한 이 책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하고 끝맺고자 한다. 지은이 전공이 서양사라서 그런지 동양사상 쪽의 오류가 눈에 띄는데 그 가운데 32쪽의 삼장법사 현장의 한자이름이 玄乍(현사?)로 되어 있어 너무나도 평범한 실수라 혹여 내가 과문한 탓인지 아리송하기까지 하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지은이도 강조한,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국어 측면에서 ‘불구하고’란 표현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 덕분에 맞춤법에 대해 평소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이오덕 선생님이 생전에 지적한 ‘불구하고’가 이 책에서도 자주 눈에 띄어 다소 눈에 거슬렸다.

 이 책을 읽은 뒤 두 가지가 참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도서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를 다 읽어내고 말리라’라는 구절을 읽고 실소를 금치 못한 것이다. 나 또한 드러내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모처의 공공도서관 서가를 훑은 적도 있고 지금도 그런 환상을 품고 도서관을 드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어이없는 결심을 하는 줄 알았더니 같은 부류가 있다는 사실에 동질감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른 하나는 장정일씨의 독서법이다. 십분 공감이 가는 내용인데 폭풍처럼 책을 읽는 것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읽는 것이 엄연히 다른 것임을 나도 체험을 통해 알았다.

 언제나 책 욕심에 허덕이는 나에게 이 책은 소중한 정보를 많이 알려 주었다. 책을 읽자마자 난 또 책들을 주문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독립인문학자들인 강유원씨와 표정훈씨, 그리고 제대로 된 전공번역가라고 소개한 김산해씨, 천병희씨, 박종현씨, 곽차섭씨 등의 책들 가운데 선별해서 조금씩 사고자 한다. 덕분에 내 개인도서관이 더욱 늘어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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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人 2009-09-25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안 보이니 이것으로 족하도다! ^^
 

 도서관을 뒤지다 아는 분의 추천으로 이 책을 받아 보았다. 오랫만에 보는 누런 종이에 국한문 혼용의 책으로 먼지가 많이 쌓인, 오자가 많아 조금은 보기 힘든 70년대 책이였다. 

 지은이 두분중에 한분은 친일파에 대한 저술과 한단고기로 유명한 임승국 선생님이셨는데 내가 80년대 중반에야 알기 시작한 이론들이 70년대에 벌써 논리정연하게 많은 출전을 대면서 시원스럽게 정리되어 있는게 놀라웠다.

 특히 활공부를 하는 나에게  숙신(=조선)의 활과 화살, 화살촉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보는게 제법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아  출전을 받아적어 놓았다. 본문 중에 고려도경과 고려사에 나온 낭가(=재가화상)에 대한 부분은 궁금함을 자아냈다. 오늘날의 기독교회가 겉만 기독교지 속은 무당의 기운이 넘쳐 난다고 하는데 지난날, 절에 우리 식의 불교가  융성하게 꽃피웠으리라 생각하니 자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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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를 다시금 제대로 공부할려고 고대부터 훑어보던 중 우연히 민음사판의 조금 낡은 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인가 하는 책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이참에 전부터 부분적으로 대충 보았던 산해경도 보고 신화에 대해서  공부할려고 손에 잡히는대로 신화에 대해 대여섯권을 사나흘동안 집중적으로 읽었다........

오행설에 의해 짜맞춘 오제와 그 밑에 신들. 동이의 명궁 인예,  단군신화의 풍백 우사 운사를 연상케 하는 바람의 신 비렴, 구름 신 풍륭, 비 신 평예, 운우지정, 정위전해 등.......

중국 신화에 우리 동이족으로 알려진 상(=은)족들의 신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았고 우리 신화에 대해서도 좀 깊이 있고 새로운 해석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게 되었다.

신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건 무엇일까? ..........................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쓴 '백두산 이야기'란 동화책의 서문에 나온 신화에 대한 글을 떠올리며 도올이란 호가 초사(楚史)를 기록한 사서의 이름인 줄로만 알았는데 산해경인가에 도올이란 괴물이 나와서 씩 웃어 보았다...........머릿속에서 신들과 괴물들이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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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5-02-2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광인님 서재를 훔쳐봅니다. 페이퍼보다는 깊이있는 리뷰로 서재를 알차게 채운 것에 경외심마저 듭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