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치히로 세대의 요즘 아이들
야마나카 야스히로 지음, 김은진 옮김 / 사람in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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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에도 잘 나와 있지만, 이 책은 `요즘 아이들`의 무기력한 표정, 목표를 상실한 듯한 의욕없는 표정 아래 감추어진 실체를 들여다 보는 데 있고 마침 그 도구로서 '해리포터' 시리즈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택한다.

이 책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전사춘기`다. 전사춘기는 말 그대로 사춘기 기전 시기를 의미하는데 저자는 이 시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신분석학이나 임상치료에서도 아홉 살, 열 살 정도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심한 것이 현실이나 저자는 실제로 이 시기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점에 도달하'는 때라고 주장한다. 이 때 말하는 최고라는 것은 1차적인 위상이 아니라 직선적, 계단적인 것이다. '요컨대 전사춘기 무렵에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정신적 수준 내지 가장 심오한 차원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은 부분도 여기이다.

그러나 이 책은 가상의 청중과 필자가 대담을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치밀하고 체계적인 이론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 이런 포맷으로 다른 아이템을 가지고 책을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았더니 그런 허술함이 또 한번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그 전사춘기 시기가 인간 정신발달의 극점을 보인다고 주장하는 듯 하지만 더 읽어보면 그런 지점에 도달하는 것은 특정한 성향을 가진 일부의 아이들이라는 식으로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p.17을 보면 그렇다. '마음 속의 근원적인 세계에까지 도달해 버리는 아이들은 두 부류인데 하나는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아이와 또 하나는 자기방어 selfdefense가 매우 약한 아이다....'

아무튼. 이 책에 따르면 전사춘기가 중요한 이유는 '성 발달이 시작되는 사춘기 이전이기' 때문이란다. 성이 발달하고 아이를 낳고 사회성원으로 일해야 하기에 사춘기는 혼돈과 불안의 시기이지만 전사춘기는 그 시기를 지나기 전단계이므로 지극히 순수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여기서 필자는 '투철한 냉철함으로 가득차 있다'라는 말을 썼는데, 참으로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내가 늦되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중학교, 고등학교 때의 나는 순수, 순결에 대한 강박관념이 지나치게 강했던 것 같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에서 그려진 사랑이,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었던 것만 봐도 그렇다. 당시의 일기장을 들춰보아도 그런 생각이 든다. 소재와 주제 같은 것이 한정되어 있어 유치하긴 하지만 그 글을 쓸 때의 폭발적이고 강렬한 감정이란 건 그 이후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때 내가 세상을 대하는 감성만 말하자면 셰익스피어도, 김수영 시인도 쫓아오지 못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내가 좀 뻔뻔한가?)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정신분석자의 눈으로 다시 한번 '해리포터'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었다. 사실 후자는, 이 책을 덮자마자 비디오가게에 가서 빌려본 것이었다. 직접 내가 영화를 보고 나자 첫장면, 뒷좌석에서 흐리멍텅한 눈으로 누워있는 치히로를 `요즘 아이들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해석한 것이 좀 과한 거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요즘 애들, 옛날 애들 이렇게 가르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두배로 즐겁게 영화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중간중간 밑줄 치고 싶은 구절도 많았지만 오늘 나의 독후감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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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너무 무거웠어요 문지아이들 45
아르노 그림, 뤼카 글, 최윤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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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목과 서평을 보고 많이 기대하며 책을 펴들었습니다. 그런데 늙은 개 책방님의 말씀대로, 그런 시련과 성숙을 겪었음에도 마지막 결말에서 처음과 다름없이 예전의 (성)역할로 고스란히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불평등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소녀의 현실일 수 밖에 없더라도 실낱같으나마 희망의 가닥을 보여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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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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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의학계에 대한 책을 쓴다... 이것은 얼핏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들리지만 실은 굉장히 어렵고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자기가 종사하고 있는 '업' 그 자체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설령 빛나는 부분에 대해 말한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그림자에 대한 부분도 드러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는 자기의 과오는 물론 동료들, 선배들의 실수, 오류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글을 쓰기 전에 이 내부고발자에 대한 조직의 앙갚음, '따'라든지 '부당한 대우' 등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어떤 조직, 특히 그 조직이 사회적으로 신화화되어 어떤 비판적 잣대도 들이대기 힘든 권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그 조직의 문제를 말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명의식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필자는, '완벽한 기술'로 인식되는 의학, 시술이 사실은 완전한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 있음을 알리려고, 그 미신을 깨뜨려 애쓴 공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불완전한 의학을 완전에 한걸음 가깝게 다가가게 하는 길이다.

8년간의 레지던트 경험에서 나온 풍부한 자료와, 실제 자료와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발로 뛴 흔적들을 보면서 -게다가 현장에서 의사로서의 일까지 하고 있으니- 대단한 작가의 열정 앞에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은 핑계거리도 못 된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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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 개정2판 창비아동문고 4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트 그림 / 창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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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기열라에 계신 린드그렌님

아니, 당신은 캬틀라가 포효하는 낭기열라가 아니라 사자의 심장을 가진 사자왕 형제가 뛰어내린 저 아름다운 빛의 나라 닝길리마에 계실 지도 모릅니다. 어디에 계시든, 카알과 요나탄 형제를 가끔이라도 만나실 테지요? 소피아 아줌마처럼 아름다운 둘에게 염소젖과 따뜻한 빵을 전해 주러 가시는 길이면 지구 소식을 전하러 날아간 흰 비둘기를 보았느냐고 물어주세요. 흰 비둘기 발목에 달린 편지에도 젖혀있겠지만 지구 사람들이 그리워한다고 다시 한번 말해 주세요.

참, 참. 사랑스런 카알한테는 이 말도 덧붙여 주세요. '너는 스스로가 연약하고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너야말로 진정한 사자왕 이야. 잘생기고 늠름한 요나탄도 물론 훌륭하지만 넌 늘 요나탄 곁에서 위험한 모험을 겪었고 모든 걸 지켜보았잖아. 두려웠지만, 무서웠지만 형과 함께 뛰어내린 너야말로 진정한 사자왕이야. 낭길리마에서 형과 함께 늘 행복하기를...'

린드그렌님, 우리도 곧 낭기열라에서 만나겠지요. 지구 시간으론 몇 십년이 걸릴지 몰라도 거기 시간으론 겨우 며칠이라면서요? 지구에서도 그러했듯이 자유는, 그곳에서도 거저 얻어지는게 아니라는 것 잊지 않겠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쓰레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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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스러운 토끼책 - 꿈을 키우는 책꽂이 6
야노쉬 글 그림, 김서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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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고 허술하다고만 생각했던 야노쉬의 그림이 텍스트에 녹아들어 있다. (그럼에도 그림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생각은 들지만) 왜 유럽사람들이 야노쉬, 야노쉬 하는지 몰랐다. <Das grosse Panama-Album>을 아마존에서 구입했지만 슬쩍 넘겨보곤 여태 책꽂이 속에 있었다. 회사 자료실에 신간으로 <내 사랑스러운 토끼책 Mein liebes grosses Hasenbuch>가 들어와 있길래 한번쯤 읽어 보자하는 마음으로 들고 왔다. 퇴근길에 따로 들고 나온 것이 없어 기대없이 책을 펴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지 재미있었다. 아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이거 이거 챙겨봐야 할 작가가 늘어났잖아? 야노쉬의 이름으로 번역된 우리나라 책들을 찾아서 주문해서 사서 봐야겠다. 번거로운 일이 늘어났지만 이건 아주 기꺼이, 행복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감이겠다. 야노쉬는 참 '뻔뻔한' 화자다.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간다. 엄청난 자신감이다. 동시에 아이들에게 먹히는 이야기 기술을 간파한 놀라운 본능이다.

야노쉬의 그림도 놀랍지만 그의 화술 또한 대가급이다.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2인용 자전거가 좋은 건, 친구를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거야. 나쁜 건, 그것도 역시 친구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거지.' 허걱, 뒤통수를 맞는 것 같다. 정말 쉽게 쉽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엄청시레 계산된 말법이다.

야노쉬의 장기는 또 있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잠깐 등장하는 케릭터들이지만 그 성격을 아주 분명하게 설정해 놓았다는 것. 그래서 이야기는 저절로 흘러간다. 예를 들면 <토끼 엔진은 공짜>에서 친구 말은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루디가 자청해서 자전거 앞자리에 안자 생고생을 하는 것은, 루디의 성격상 자연스런 일이다. 페달을 밟느라고 너무 힘이 들어 다음날까지 누워만 있는 루디에게 슈누델이 '오늘도 튼튼한 사람이 앞에 앉아야 하는데, 어떡하니, 넌 이제 안 튼튼하잖아.'하고 약간 놀림조로 말한다. 슈누델은 이때에도 루디가 '아냐, 난 튼튼해.'하고 우기며 자리를 털고 일어날 줄 알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루디는 '네 말이 맞아. 난 안 튼튼해. (그러니까) 내가 뒤쪽에 앉을게.'하고 한발 물러난다. 루디의 이 답은 얼핏보면 지금까지 루디가 보여준 말법과 반대인 것 같다. 하지만 루디는 늘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 남의 말을 부정했던 케릭터였다. 어거지를 피우고 그렇게 자기 과시하는게 낙인 거다. 그런 식으로 자기애(自己愛)를 표현하는 애다. 그러니까 제 몸이 아픈 상황에서 무리해서 봉사를 자청할 리가 없다. 선선히 슈누델의 말을 수긍하는 척 하면서 제 몸 편한 자리에 앉겠다는 거다.

이런 식의 반전은 독자들에게 또 엄청난 즐거움을 준다. 130km를 가던 자동차가 140km로 가도 그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느릿느릿 움직이던 것이 단 1초만이라도 빠르게 움직이면 그 차이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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