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단편선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지음, 김세미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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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있었던 금성사 판 안데르센 전집.
엄마가 사 주셨는지, 누군가에게서 얻어다 읽혀 주신 것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 전집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가져다 읽었더랬다. 모든 이야기를 다 좋아하지는 않았다.
눈의 여왕이라든지,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 같은 분위기의 슬프고도 처연한 이야기는 어린 가슴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싸한 엔딩과 몇 장면 안 되는 그림 컷은내게 렬한 인상을 남겼다. 인생이란 불가사의한 것, 자기의 의지를 넘어선 어떤 운명이라는 힘과 관련이 있다는... 그런 어렴풋한 인상을 심어 준 듯도 하다.


올해가 안데르센 추모 몇 주기 되는 해라 한다. 그런데 그 어떤 안데르센 동화도 정확히 기억나는 것이 없어 부러 책을 사서 보게 되었다. 보니 수록된 14편 중 대부분은 어린이 책 판으로 읽었던 것이다. "그림자"나 "병목" 같은 작품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어른이 되어 읽으니 안델센이 어떤 감정에서, 어떤 느낌으로 글을 썼는지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아련한 사랑의 느낌, 신의 뜻을 거스르는 오만방자한 심성에 대한 경계, 쓸쓸하게 늙어가는 사물들의 처연한 심정...
책에 실린 모든 작품에, 똑같이 흐르는 어떤 정서가 분명히 있다.

특히, '죽음'이 데려간 자기 아기를 찾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생명의 온실'에 선 어머니가 "오, 하느님! 제 기도가 언제나 옳으신 주님 뜻에 어긋나거든 들어주지 마옵소서. 제 기도를 들어주지 마옵소서."하고 기도하는 장면에는 그의 사상과 철학, 종교심이 응축되어 있는 것 같다.

수십년을 살며 산전수전 다 겪은 '이 풍진' 샴페인 병과 난로의 부지깽이를 가슴 속에 심으로 박고 태어나 난로를 그리워 하는 '눈사람', 자기가 가진 행복을 누릴 줄 몰랐던 철없는 '전나무'나, 안델센의 눈에는 모두 영혼이 깃들인 생명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안델센은 의인화의 대가였고, 사물들의 정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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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노년
데이비드 스노든 지음, 유은실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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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인네 노망났네.' 할때 그 '노망' 혹은 '망령'이 구체적으로는 '치매'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돌아가신 외할머니 덕분이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감정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의식적으로 외할머니와 그 치매라는 병증과 자꾸 연결짓는 것은 외할머니에 대한 엄마의 마음 때문인듯 하다.

이 부분은 짧게 요약하기 힘든 오랜 감정이라 지금 꺼내놓기는 좀 어렵다. 여기서 밝힐 수 있는 것은 다만 치매라는 것이, 품위있게 늙을 수 있는 권리를 앗아가는 고약한 질병 중 하나임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질병을 앓는 당사자도 안 되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의식과 육신의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가족의 고통 역시 견디기 힘든 것이리라.

그리하여 치매, 알츠하이머 병 등을 다룬 책이 있으면 관심있게 보고 있고 아니면 나중에라도 꼭 구해 읽으려고 기억해 두고 있다.

그런 개인적인 관심에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는데, 이 책은 치매라는 구체적인 테마 외에도 여러 가지 점에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우선 이 책의 성격을 의학, 연구 등으로 분류하기 어렵게 만드는 인간적인 문체가 그러하다. 사실 이 책에서 치매 연구의 성과라든지 예방법의 명쾌한 방법을 취하려 한다면 무리일수도 있겠다.

연구대상, 데이터로서 수녀님들을 대하기 보다는 인간적으로 존중해야 함을 잃지 않는 역학자 데이비드 스노든의 태도 역시 이 책에서 배울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말로 연구에 동참하고 부검에 자발적으로 동의하신 수녀님들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수녀가 되면서 자식을 갖지 않겠다는 어려운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뇌를 기증함으로써 알츠하이머병의 수수께끼를 밝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새로운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생명의 선물을 줄 수 있습니다. - 리타 슈발베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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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우 이야기 눈높이 그림상자 3
클라우스 엔지카트 그림, 막스 볼리거 글, 송순섭 옮김 / 대교출판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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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대학'에 그림을 그렸던 바로 그 클라우스 엔지카트가 그린 그림책. 섬세하면서도 물리적으로 정확한 표현을 하는 것에 치우치지 않고 익살스럽고 다정다감한 기법이 돋보인다. 엔지카트는 자기 특기인 의인화(동물을 사람인양 만드는 것) 기술을 이 작품에서 마음껏 발휘한다. 분홍바지를 입은 용감한 여우와 집에 남기로 한 소심한 여우의 표정이라든지 동작 묘사가 재미있다. 특히 다섯째날 늙은 오소리와 싸움이 붙는 장면에서는 떼굴떼굴 구를 뻔 했다. 소심한 여우가 잠자리채를 들고 스프링처럼 통통 쫓아다니는 장면도 재미있다.

'용감한 자여, 세상으로 나아가라!'라든지 '주변의 작은 행복을 놓치지 말라!'라든지 구태의연한 교훈에 빠지지 않고 그 두가지 다의 매력과 필요를 자연스럽게 설득하는 텍스트 또한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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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1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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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을 다 읽었지만 아직도 질리지 않는다. 덕분에 지금까지 약 2주간 출퇴근 시간을 몽땅 귀신 이야기에 홀려 보내야 했지만... 예쁜도야지님은 모두가 다 자는 한밤중에 이 책을 읽어야 몇 배 진하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고 일러 주었지만 또록이를 재우려하다 늘 내가 먼저 잠자기 때문에 실현불가다. 그래도 상쾌한 아침 출근길에 귀신 이야기 읽는 재미도 나름대로 쏠쏠하다.

귀신을 소재로 한다지만 그렇게 엽기적이거나 공포 코드로 풀리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순정만화, 휴만드라마처럼 되어 있다. 어떤 에피소드들은 영화 이상의 구성과 감동을 주기도 한다. 회가 거듭될수록, 자신이 혼령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영령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만일 이 작품을 보고 영화 '식스센스' 를 만났더라면 콧방귀도 안 뀌었을지 모른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요소는 일본의 전설, 민담이다. 주변의 자연물과 집, 가구 등 인간이 아닌 모든 것에 혼을 불어넣고 의인화하는데 애니미즘이 이런 것이구나 싶을 정도다. 우리에게도 분명 그런 인간중심적인 설화, 야화, 전설 등이 풍부하게 있었을 텐대 지금껏 살아남은 것은 빈약해 보인다.

이 만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이 만화를 보면 성불하지 못한 원혼, 원귀들도 인간하고 거의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 원한, 질투, 사랑, 애증 이런 과잉된 감정, 에너지?, 기운? 이런 것들이 살아있는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고 돕기도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야기만 놓고 보았을 때 주인공인 리쓰와 할아버지의 관계도 아주 흥미롭다. 아버지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이거나 빈약하게 그려지면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밀착된 이런 관계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여기서는 할아버지가 리쓰에게 Super Ego 같은 존재가 된다.
반면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그 육신의 껍데기를 아오아라시는 요괴가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전혀 '아버지'답지 못하고 인간의 모습만 했지 완전히 굶주린 아귀다.
무병장수하라고 남자아이를 여장하여 길렀다는 점도, 순정만화의 단골인 동성애/양성애적인 요소로 장치되어 있다. (실제로는 성한 리쓰를 여자로 착각하고 남자귀신이 장가 들러오는 에피스드에서만 활용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일상에서도 판타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백귀야행을 읽으면서 아주 잘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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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아이들 동문선 문예신서 2002
니콜 파브르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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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장정, 뭔가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본문 편집디자인... 원서에 있었을 참고문헌도 임의로 잘라 먹은 것 같은 혐의까지...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제법 잘 읽힌다. 게다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정신분석의 좋은 점은, 정신분석의 치료법(혹은 정신분석가) 앞에서 누구나 고해성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이의 마음-무의식- 속에는 상처라고 부를만한 상채기가 없는 이가 없는데 정신분석은 그것을 스스로 들여다 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냉정하게 거리를 두면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잃지 않는, 필자 같은 사람이 있는 곳을 안다면 언제 나도 상담을 한번 받아보고 싶다. 내면을 비추는 거울 앞에 한번 서 보고 싶다.

이 책 속에는, 어린이의 마음을 읽는 아니 사람의 마음을 읽는 수많은 단서들, 상채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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