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네일세상은 넓고 보는 눈은 다양하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순간 잘되던 일도 꼬여버린다. 경계를 치거나 단정을 짓는 건 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나와 다른 생각일수록 더 옳다는 자세로 세상일을 바라보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넓은 눈을 가지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 일상사는 늘 부딪힘의 연속일 뿐이다.

 

 

정치마당도 마찬가지다. 대선을 앞둔 여러 소식을 보자면 한마디로 저마다 옳다. 후보자 유권자 각각 저들만 바른 목소리이고, 저들만 나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일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된 정책은 나오질 않고 곡절 많은 정쟁만 넘쳐난다. 유권자들도 정책에 대한 서늘한 칼날보다 정쟁에 대한 영양가 없는 입씨름만 보탠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부추기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좀 더 창의적이고 느슨한 기운들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에드바르트 뭉크의「그다음 날」이란 작품이 있다. 이 그림이 20세기 초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걸렸을 때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가슴을 풀어헤치고 팔은 늘어뜨린 채 소파에 널브러진 술 취한 여인의 그림이 이해받기란 힘들었다. 술 마신 다음날의 번민어린 실체를 뭉크는 말하고 싶었겠지만 여론은 예술가의 진정성 따위는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잣대가 가리키는 현상만을 볼 뿐이었다.

 

 

취기에 젖은 이 못된 여자가 쉴 만한 장소는 국립미술관이 아니라는 냉소적인 기사에 여론이 열광할 때, 멋진 반전을 이끌어낸 미술관장의 한 마디가 가슴에 꽂힌다. ‘그림 속 여인이 깨어나면 물어보겠다. 이곳이 쉴 만한 곳이냐고. 그러나 지금은 자게 내버려 둬야 한다. 그녀가 있는 것이 미술관의 영예가 될지 치욕이 될지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라고.

 

 

옌스 티스 미술관장 같은 통 크고 열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식견 좁고 지혜 부족한 나 같은 사람의 눈을 틔게 했으면. 보는 만큼 알게 된다. ‘그다음 날’을 발견해내는 아량 넓은 견자의 시선이 부러운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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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10-21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르웨이 참사가 있던 날,
총리가 그랬대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응징과 처벌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애... 라고 했대요.

부럽죠. ^^
그런 넓은 시야가 말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10-22 22:16   좋아요 0 | URL
노르웨이 총리 같은 마인드 꼭 배우고 싶네요.
응징과 처벌이 아니라 더 많은 개방성, 인간애... 절실합니다.
 

 

 

 

입시철이 다가왔다. 대학 입학 전형을 들여다보려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수시와 정시로 원서 방식도 갈라지는데다, 수시전형은 입학사정관제, 국제 전형, 과학 전형, 학교장 추천 전형, 일반 전형 등 다양하고 복잡하기만 하다. 이걸 다 이해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을까 싶다. 대학 한 번 들어가기 어렵다는 생각만 든다.

 

우리 세대 입시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때는 학력고사 점수에다 내신 성적만이 평가 기준이었다. 기준 배치표를 보고 자신이 받은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 및 학과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만이었다.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단점이 있었지만 입시 절차 때문에 골치 아플 이유는 없었다. 융통성은 없었지만 단순 명쾌한 그때 입시 방식에 머물러 있는 수험생 학부모로서 요즘 대입 전형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한계가 따른다.

 

아들 녀석이 전하는 입시 관련 의견은 반은 이해하고 반은 알아듣지 못하겠다. 들을수록 헛갈리기만 한다. 결국 ‘니가 알아서 하라’는 다소 무책임해 보이는 말로써 완전 자율권을 부여하고야 만다. 고급 정보를 찾아나서는 열혈 엄마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그 대열과는 한참 먼 행보를 하자니 걱정과 후련함이 동시에 인다.

 

학생 스스로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주변을 살펴보면 커피 한 잔 마실 여유가 없을 정도로 자기소개서에 시달리는 엄마도 있다. 자정 넘어 학교에서 돌아오는 입시생은 그것을 쓸 시간도, 의지도 없다. 내신 성적을 따져가며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는 것도 학부모 몫이다. 비싼 돈 들여 전문가에게 자기소개서를 부탁하는 학부모도 있다.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학생과 학부모 나아가 학교까지 힘들게 하는 이런 입시 방식은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자녀와 학부모가 동시에 수험생이 되는 것, 이것이 대학교나 교육부가 원하는 입시방식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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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10-16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3 부장을 지낸 저로서도... ㅠㅜ 매년 바뀌는 입시를 어떻게 꿴답니까? ㅋ~
한국 입시의 결과는 점쟁이도 모른대요. ㅎㅎㅎ

다크아이즈 2012-10-16 22:55   좋아요 0 | URL
글샘님께 여쭤볼 걸 그랬네요. 근데 진짜 선생님들도 완벽하게 입시 전형 꿰차고 있는 것 아니지요? 넘 어렵습니다. 지가 알아서 한다기에 넋 놓고 응원만 할 뿐입니다.

페크pek0501 2012-10-1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급 정보를 찾아나서는 열혈 엄마들" 안에 들어가지 못해 언젠간 아이에게 자율권을 부여하고 말 것 같아요. (둘째가 고1인데...)ㅋㅋ

다크아이즈 2012-10-16 22:58   좋아요 0 | URL
페크님 예비 수험생을 두셨네요. 시간 금방 간답니다.
학모 모임 가보면 열혈 엄마, 올인 엄마 수두룩한데 전 방임이 엄마랍니다.ㅋ
페크님도 동지라니 위안이...
저야말로 글 잘쓰시는 페크님 납시어서 영광인걸요. 크~

프레이야 2012-10-1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열혈엄마들이 전하는 정보에 귀닫고 사는 사람이라ᆢ 올해 수능 보나요, 아들이? 그렇다면 암튼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다크아이즈 2012-10-16 23:08   좋아요 0 | URL
넹,전부 수시 전형이라 수능은 안 본답니다.
알아서 잘 헤쳐가기만 바랄 뿐이지요.
프레이야 님 귀닫고 있었더니 손해는 좀 보는 것 같아요ㅠ
그래도 꿋꿋이 방임이 엄마 하고 있습니다.
엄마로서 도움 줄 수 있는 게 맘 속 응원 밖에 없네요.
 

제10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 청라언덕    <청라언덕 창작 오페라 및 선교사 집 이미지 컷>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 가곡 ‘동무생각’의 노랫말 시작 부분이다. 중학교 음악 교과서 맨 앞을 장식한 이 노래는 전 국민의 애창곡이라 할 만큼 친근하다. 이은상 작시, 박태준 작곡의 이 가곡은 언젠가부터 ‘청라언덕’이라는 지명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

 

학교 다닐 당시에는 청라언덕을 지척에 둔 채, 수없이 ‘동무생각’을 불렀어도 그것이 대구 동산동의 특정 지역을 지칭한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청라’라는 말이 그저 꾸밈새 정도의 관형어 기능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본격적인 근대 대구 문화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 전이어서 청라언덕이 조명받기에는 일렀는지도 모른다.

 

시립도서관에서 마련한 ‘근대 대구 골목 투어’ 문학기행에 합류하면서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청라언덕을 둘러볼 수 있었다. 청라언덕은 구한말 대구의 기독교가 뿌리내린 중심지였다. 지난 100여 년간 지역 문화 변천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호흡 공간이다.

 

청라(靑蘿)란 ‘푸른 담쟁이’를 말한다. 담쟁이는 미국 선교사들이 대구의 더운 날씨를 극복하기 위해 손수 갖고 와 심었다. 담쟁이 넝쿨은 여전히 선교사가 살던 붉은 벽돌집 주위로 휘감아 돌고 있었다. 대구가 근거지였던 박태준 작곡가의 학창 시절 연애사를 이은상 시인이 노랫말로 다듬어 만든 곡이 ‘동무생각’이었다. 여기에 백합 피는 청라언덕이 나온다. 흰나리꽃 향내 머금은 백합은 근처 신명여학교 학생이었다고 해설사가 전해준다.

 

최근 이은상 시인의 고향인 마산에서도 청라 언덕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청라(靑羅) 즉, ‘푸른 비단’이라는 뜻의 이 언덕은 마산만이 보이는 노비산을 지칭한다는데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는 자못 흥미롭다. 의미 부여만 제대로 한다면 대구인들 어떻고, 마산인들 어떠랴. 두 예술가의 정신만 오롯이 되살릴 수 있다면 문화 이미지로서 청라언덕은 둘이어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지명의 소유권 보다 청라언덕이라는 고유한 문화 이미지로서의 스토리텔링이 더 중요하다.

 

문화 상품으로 재탄생되는 청라언덕을 두 예술가도 반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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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0-15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라언덕이 푸른 담쟁이 언덕이군요.^^
팜므느와르님, 댓글 반가워 답글 달다가 뭘 잘 못 눌렀는지 글 전체가 날아가버렸어요.
제가 요새 이래요. 손이 완전 엉뚱해요. 그 페이퍼 살려야하는데... 님의 댓글이랑
추천도 아깝고. 흑흑... 님 댓글 보고 아! 김훈!! 이러다 뭘 눌렀던지..ㅠㅠ

다크아이즈 2012-10-16 01:12   좋아요 0 | URL
아, 어쩌지요. 프레이야님은 페이퍼 성의껏 길게 쓰시는데 투자한 시간, 열정 아까워서 어쩌지요. 서재기기께서 살려주실 거라 믿으며. 저 댓글 때문에 생긴 일이라 마구 미안해지네요.
 

  긍정의 에너지

 

    다양한 게 사람 캐릭터이다. 잇속만 챙기는 사람, 자기 것을 한없이 퍼주는 사람, 자신을 포장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자신을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사람, 소견이 좁은 사람, 아량이 넓은 사람, 착한척하지만 의뭉스러운 사람, 냉정하게 보이지만 속 깊은 사람, 냉소적이고 경계가 있는 사람, 한없이 밝아 경계가 없는 사람 등 저마다의 주어진 개성으로 사람들은 사회적 한살이를 꾸려나간다.

 

  사람이란 동물은 오묘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에 위에 열거한 여러 캐릭터 중 어느 한 쪽만 가진 사람은 없다. 신이 인간을 이중인격자로 설계해놓고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대체로 우리는 양면성을 지닌다. 하지만 유독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잇속만 챙기는 치는 아니지만 냉소적이고, 배려는 잘 하지만 소견이 좁고, 나사 몇 개씩 풀린 허점투성이 생활 패턴이지만 경계 또한 분명한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 그들은 신기하고 존경스럽기만 하다.

 

  인격이란 게 어느 정도는 훈련과 수련을 통해 연마할 수 있다. 하지만 보편성을 넘어선 천사표를 가슴에 단 사람들은 훈련과 수련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 같다. 궂은일, 힘든 일을 자처하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안 해도 되는 일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놓고 생색조차 없다. 자연히 모임의 실질적 리더가 되는데, 사람 마음을 얻는 것보다 귀한 선물은 없기에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아무나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하루에도 열두 번 변덕이 끓었다 내렸다 하는 나 같은 이에게 그들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가만히 보면 그들은 제 맘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한다. 작은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고, 큰 짐이 밀려와도 의연하기만 하다. 맘 속 주인이 원하는 대로 웃고, 베풀고, 배려한다. 괜히 그들에게 좋은 기를 얻기 위해 바람결을 빌려 옷소매 한 번 스쳐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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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프다

 

 

몸 아픈 것과 맘 아픈 건 많이 다르다.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면, 몸 아픈 건 물리적 처방과 시간이 주어지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하지만 맘 아픈 건 심리적 처방과 시간이 주어져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몸 아픈 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거지만, 마음 아픈 건 몸 아픈 것과 달리 그 사이에 사람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예계 절친 두 명이 불화설에 휩싸였다. 싸이와 김장훈이 그들인데 단순한 연예계 가십으로 치부할 수 수 없는 것이 그들 일련의 행보가 자신들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인의 위상으로 넘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한 명은 ‘강남 스타일’ 노래 한 곡으로 세계를 제패하는 중이고, 다른 한 명은 노래와 콘서트로 번 돈 대부분을 세상 약자 및 독도와 위안부 문제 등에 할애하는 기부 천사로 활동 중이다.

 

 

  둘 사이가 불편하게 된 건 공연 문제 등 지극히 개인적인 것 때문이지만 인간관계 갈등에 대한 전형을 보는 것 같아 공감이 절로 된다. 한 사람이 너무 잘나가면 남아있는 다른 한 사람은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잘나가는 한 사람이 꿈에도 그려보지 못했던 빌보드 차트 일위를 넘볼 때 다른 한 사람은 뉴욕 타임스퀘어 거리 광고판에 ‘기억하시나요’라는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위안부 문제 광고를 올렸다. 보험금까지 깬 돈으로 24시간 돌아가는 광고를 연말까지 진행한다니 대단한 선행이다. ‘강남 스타일’이 언론에 도배될 때 진작 ‘기억하시나요’ 에 관한 보도는 단신으로 겨우 나올 정도였다.

 

 

  사람은 이기적 동물이다. 일반적으로 선행을 할 때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 선행은 온전히 타인을 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을 뿐 실제로는 자신을 위해서 선행한다. 자신의 자존을, 자신의 만족을, 자신과의 약속을 위해 선행을 한다.

그런 면에서 어느 한쪽은 너무 띄워주고, 다른 한 쪽은 무관심으로 반응한 언론이 이 둘의 갈등을 부채질한 꼴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위안부 광고 문제에는 그토록 인색했던 언론들이 SNS에 올린 김장훈의 민감한 글들은 도배하다시피 보도한다. 쌈을 부추길 뿐, 마음이 아프다는 개인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다.

 

 

  갈등 당사자 어느 한쪽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인간관계에는 항시 존재한다. 인간은 오묘한 동물이라 갈등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야기시키는 이도, 해결할 자도 갈등 당사자들일 뿐이다. 맘이 아프다는 약자에게 잘못 없는 강자가 손을 내미는 것 또한 인간적인 모습일 것이다. 사람 곁에 사람 있는 한 위안이지 고통이다.

 

  그게 인간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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