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머니, 아들 전화 받고 서울나들이 가신다. 임신한 며느리 힘드니 아이 둘 좀 보살펴달란다. 고향 떠나 사흘 밤도 잔 적 없는 어머니, 난생 처음 일주일 예상으로 서울행 기차에 오른다. 아들의 두 번째 부인인 며느리는 덩치 크고 머리 큰 어머니에 비할 바 아니다. 황소 같은 몸집에다 성격은 착하다 못해 맹하기까지 하다.

 

 

  아들의 핏줄이 아닌, 며느리가 데리고 온 두 아이가 ‘할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를 어머니는 듣고 싶지 않다. 냉랭한 아들은 어머니를 살갑게 챙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장 깨끗하고 넓은 공간인 지하실에 어머니의 침실을 마련해드렸고, 당신도 그곳을 딱히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지만, 이웃들이 그런 자신더러 어머니를 지하실에 처박아 두었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다. 다만, 그 옛날 수학선생님이었던 어머니가 동료 교사와 사랑에 빠져, 자신과 아버지를 돌보지 않은 채 자주 신경질을 냈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잘못했다는 소리를 절대 하지 않는 어머니 때문에 아들은 유년 이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왔다.

 

 

  첫 결혼에 실패한 것도, 그 후 고향에 돌아오지 않는 것도 어머니 때문이다. 이혼 전문 사교 모임에서 두 번째 아내를 만났고, 상처 많은 두 영혼은 정신과 상담의의 도움으로 정신적 자립을 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오죽하면 상담의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갔을까.

 

 

  예정된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어머니 짐을 싸신다. 핏줄 아닌 손주가 부르는 ‘할머니’ 소리 때문도 아니고, 변할 것 같지 않은 아들의 냉정한 시선 때문도 아니며, 대책 없이 맹한 며느리 성격 때문도 아니다. 어머니를 서울로 오게 한 아들의 진짜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극도로 변덕스러운 어머니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입 다물고 살았던 아들은 커서도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들 부부는 상담의의 권유로 ‘용서하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어머니를 초대했던 것이다. 심리 치료 모임에서 아들이 이 모든 걸 재연할 걸 생각하니 어머니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아들은 어머니를 이용하고, 속수무책 상황에 처한 어머니는 수치심에 치를 떤다. 어머니는 사흘 만에 고향 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용서에 대해 생각한다. 용서하거나 용서받는다는 건 지극한 이기심의 발로이다. 용서하는 자는 준비가 필요하고, 용서 받는 쪽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편하고자 성급히 용서를 바라도 안 되고,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섣불리 그것을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급하면 체한다. 주고받는 용서의 방식은 어느 누구의 일방적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상호 합의에 도달했을 때 가장 명쾌하다. 당사자 둘 다 만족하는 이기심이어야 하는 용서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시간만이 그것을 해결해준다

 

 

** 여기 나오는 어머니는 뉴욕에 간<올리브 키터리지>의 서울 버전입니다.

    소제목 <불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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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12-2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 사람 이야기인줄 알았어요.^^
용서란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날 때만 할 수 있겠죠~
저도 내일은 서로 화해할 분과 점심을 먹기로 했어요.
먼저 손내밀지 않으면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꽁하고 있었는데 어제 오해를 풀자면서 청하더군요.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갈리는 거 같아요.
이 글을 읽고 내일 어찌해야 할지 답을 얻은 것 같아~ 고맙습니다!^^

다크아이즈 2012-12-28 12:0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주변 이야기라면 제가 여기 블로그 있는 거 아무도 모르지만 쓸 수는 없을 것 같아요.ㅋ 몸짓이 주는 상처는 견딜만하고(누구나 그 정도는 하고 사니까),말이 주는 상처는 그 사람 인품을 규정짓는 잣대로 삼으면 되니 그런 대로 필요악이지만,글이 주는 상처는 흔적을 남기니 그건 못할 짓이지요. 해서도 안 되구요.

먼저 손 내미는 것 진짜 중요해요. 잘 해결한 뒤 차 한 잔 하고 있을 순오기님 상상하옵니다. 서로 준비가 됐을 때 화해해야 후유증이 없거든요. 연말 잘 맞이하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12-12-2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서... 혜민 스님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남을 용서하라고 썼죠.
그런데 용서라는 것도 진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마음이 이성의 판단력에 따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려서요.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게 마음이란 거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변덕을 부릴 때처럼 갑자기 마음이 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너무 천천히 흐르는
마음 때문에 시간이란 간격을 필요로 하지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정신적인 상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좋은 글이에요.

다크아이즈 2012-12-29 17:19   좋아요 0 | URL
페크님 맞아요. 용서는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 같아요.
용서하고 용서받는 거야 말로 가장 이기적인 행위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편하려고 하는 거다 보니, 타이밍이 절절하게 맞아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보는 거지요. 어느 한 쪽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용서하겠다고, 용서 받겠다고 한다면 좀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는 거지요.
가장 이기적인 행위인 용서지만, 가장 필요한 인간 행동 양식이라고 생각해요. 페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녀고양이 2012-12-28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서 뿐만 아니라 충고도 마찬가지인거 같아요.
받을 상대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선물도요. 상대에게 필요없는 선물을 강권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기다림.... 저는 그게 참 필요하지만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새해 즐거운 일 가득하셔요.

다크아이즈 2012-12-28 17:4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오지랖 떠는 충고도 참 보기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충고랍시고 하는 모든 말들은 상처가 되지요.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달여우님 학문 닦는 틈틈이 공유하고 교류해요. 늘 응원하고 따를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어요.^^*

프레이야 2012-12-3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안', 아주 인상적이었지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사두고 못 읽었는데 그걸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올리브의 아들은 불안은 두려움이라고 했지요?^^
안나 카레니나,에선 이성이 있는 이유는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라는 구절이
나오더군요. 팜님, 저는 비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부쩍 더 들어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서 늘 그르치는 것 같아요. 새해엔 좀 더 이성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팜님, 저말이에요.^^
용서에 대해 용서에 필요한 시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전 불안만 얘길했네요.

다크아이즈 2012-12-31 15:15   좋아요 0 | URL
프레님처럼 이성적으로 참한 사람이 있을까요? 혹,비이성적인 면이 있더라도 전 그런 프레님을 더 좋아할 것이야요.

저야말로 비이성적인 사람이예요.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런 사람들 보면 자신이 이성적인 것에 대해 은근 자부심을 풍기는 듯해서 재미가 없는 걸요. 약간은 모자란 듯, 주책인 듯, 헬렐레한 듯 그런 사람이 되어도 좋을 듯해요. 프레님께 그런 면을 상상한다는 건 힘든 일이긴 하지만 ㅋ

프레님 새해에도 멋진 행보 기대할게요. 고맙고 사랑합니다^^*
 

 

 

 

 

  깊은 밤 자다가 깨는 시간이 잦다. 나이 탓도 있고, 생활 리듬이 변한 탓도 있다. 그간 글을 쓸 때는 웬만해선 늦은 밤까지 활용하지는 않았다. 변변한 직장이 있는 것도, 규칙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늘 있는 것도 아니라 글 쓸 일이 있어도 꼭 밤까지 미룰 이유가 없었다. 집에 있는 한, 직장인들 근무하는 셈치고 낮에 주로 글을 써왔다. 한데 어느 순간 체력은 달리는데 해야 할 일은 늘어나면서 밤 시간 대로 쓰는 일이 미뤄지기 시작했다. 너무 피곤하면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깨다 자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불면증까지는 아니다. 30분 이내로 다시 잠들기 때문에 재수면도우미로 텔레비전만 있으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시청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들곤 한다. 대개 무엇을 본지도 모르고 잠들 경우가 많은데 며칠 전 새벽에 본 특집 다큐멘터리는 마치 한 번 만났을 뿐인데도 강렬한 매혹을 남기는 그런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난 가을 오스트리아인 펠릭스 바움가르트너는 고도 39킬로미터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헬륨 가스 기구에 달린 캡슐을 타고 지구 성층권까지 올라가 단숨에 지상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중계되었다.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기압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펠릭스의 눈빛이 두어 번 흔들리긴 했다. 지상 관측소에서는 객관적인 정보 외에는 그 어떤 충고나 의견 없이 펠릭스의 결정을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인류 최초 최고의 높이에서 점프에 도전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는 펠릭스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펠릭스는 잠시 망설인 끝에 도전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초정밀 우주복을 입은 그가 캡슐 문을 열고 까마득한 지상을 향해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캡슐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잡은 공활한 무대는 장관이었다. 둥근 지구 표면이 보이고, 육지와 바다의 경계도 어렴풋이 보였다. 저 먼 지상을 향해 뛰어내리기 직전 그가 한 말은 보는 이의 가슴에 잔잔한 감흥을 일으켰다. ‘높은 곳에 올라와 봐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나는 지금 집으로 갑니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그는 주저 없이 캡슐에서 뛰어내렸다.

 

 

  자유낙하는 거침이 없었다. 수초 만에 음속을 돌파했고, 최대 낙하 시속은 1100킬로미터가 넘었다. 낙하 초반, 의식을 잃은 펠릭스는 마치 바람에 종잇장이 흔들리듯 이리저리 허공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낙하 운동을 재개했다.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안도의 환호성을 질렀다. 뉴멕시코주 한 사막에 펠릭스는 허무할 정도로 안착했다. 감사의 인사로 대지를 향해 고개 숙일 때 세계인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극한 도전 중에 하나인 고공 점프를 생각해내고 실천한 인간 의지력에 무한한 경외심이 인다. 작은 일에도 힘겨워하고, 어려워하고, 마침내 포기하기 일쑤인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고만고만한 나약함을 공유한 사람끼리 그 나약함을 서로 위안하는 일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얼마나 나약한지 아무도 모른 채 다만 서로를 연민할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한 상황, 광활한 무대에서 들여다 본 스스로의 존재감은 평소와는 훨씬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지켜 본 사람들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드넓은 우주 공간에서 인간사 아귀다툼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따라서 내 삶의 현재가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를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존재의 근원을 찾아 지상 최대 낙하를 꿈꾸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말 - ‘나는 지금 집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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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2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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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 0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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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 2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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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8 1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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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8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는 '텃밭'이란 제목으로  쓴 누군가의 글을 합평했다. 평소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 글 자체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조언을 할 만한 것은 크게 없었다. 오히려 좋은 글 덕에 농사 관련 단어 몇 개를 확실하게 알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 날이었다. 회원 중에는 짬짬이 농사를 짓는 분도 있었고, 글쓴이처럼 막 텃밭을 일구는데 재미를 붙이는 이도 있었고, 나처럼 밭고랑 제대로 밟아 본 적 없는 이도 있었다. 농사의 나라 후예답게 우리말은 과히 농사 관련 용어들이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산업사회를 지나 첨단 글로벌 사회를 지향하는 지금에 와서 그것들을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다.

 

 

  처음 궁금증의 도마에 오른 말이 ‘사래’였다. 남구만의 그 유명한 시조에 나오는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할 때 나오는 그 말. 모두 앉은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한다. ‘이랑의 길이’나 ‘이랑의 옛말’로 그 가닥이 잡힌다. 사전의 예문에서도 ‘사래 긴 밭’이란 관용구가 나오는 걸로 보아 ‘사래’는 이랑이 좀 길 때 활용할 수 있는 낱말이란 걸 알겠다. 이랑이 길지 않다면 ‘두둑’이란 말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누군가 자연스럽게 ‘이랑’과 ‘고랑’에 대해 알아보자고 한다. 차고 넘치도록 들어온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 않던 용어였다. 잘됐다 싶었다. 이랑은 ‘고랑 사이에 흙을 높게 올려서 만든 두둑한 곳, 두둑’을 일컫는 말이다. 고랑은 ‘두둑한 땅과 땅 사이에 길고 좁게 들어간 곳으로, 이랑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그제야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해풍에 일렁이던 보리밭에도, 무서리 맞으며 단단해지던 배추밭에도 이랑과 고랑이 있었다. 다만 농사를 모르니 한 번도 의식해본 적이 없었을 뿐. 배수와 통풍의 길인 고랑이 없다면 씨앗과 열매의 길인 이랑도 보장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농사라면 고랑 없는 이랑도, 이랑 없는 고랑도 없다. 둘이 맞물려야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처한 상황이 고랑이라고 의기소침할 일도, 이랑이라고 의기양양할 일도 아니다. 이듬해 이른 봄, 밭갈이 한 번이면 지난 이랑과 고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오히려 그 둘의 운명은 바뀔 확률이 높다. 그리하여 현명한 조상들은 이런 속담을 남기지 않았던가. ‘고랑도 이랑 될 날 있다’라고. ‘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 된다’고.

 

  이 한 밤, 이랑 드높이기 위해 제 운명의 고랑에서 호미질 가열차게 하고 있을 모든이에게 메리크리스마스!

 

 

 

 

**태그의 '글로 쓰지 않은 좋은 것이 내게는 없다'(106쪽)

   황인숙 시인이 한 말인데, 이 글 출처인 김도언의 이 책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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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25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해피크리스마스 보내시고 계신가요? 우리들 마음에 늘 평강이 가득하길 빌어봅니다. 이 페이퍼는 나중 다시 잘 읽을게요. ^^

프레이야 2012-12-25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만사 새옹지마, 전화위복 이런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닌가 봐요. 고랑이라고 섣불리 기뻐하지도 이랑 이라고 쉽사리 슬퍼하지도 말아야겠지요. 작은 사람은 작은 일에 기뻐하고 흡족해한다고 하더군요. 마음속 중심 잘 잡고 살아야겠다 다짐해봅니다. 팜님 좋은글 고마워요~~♥

다크아이즈 2012-12-26 01:41   좋아요 0 | URL
프레님,맞아요. 새옹지마,이랑고랑~~이지요.
프레님도 새해 잘 맞이하시고, 건강 조심하시고, 여전히 빛나는 삶도 꾸려가시고... 어여쁘고, 글 잘쓰시고, 맘 드넓은 님을 알게 되어서 고마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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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꽃 중에 ‘데이지’가 있다. 색깔별로 키우던 데이지를 누군가의 창문 앞에 놓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까만 플라스틱 모종 화분에 담긴 싸고 깔끔한 데이지꽃을 구경하기 위해 봄이면 화원 근처를 서성이곤 했다.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창문 앞에 놓인 적 없는 나만의 데이지였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환상을 유지함으로써 실체를 맛보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 데이지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다시 못다한 혼자만의 데이지꽃 이야기를 만들어본다. 저 먼 언덕에 파수꾼이 있다. J·D 샐린저의 소설에서처럼 피비 같은 어린아이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도록 호밀밭 주변을 감시하는 파수꾼. 호밀밭 가장자리엔 데이지꽃 만발하겠지. 어린아이는 언제나 언덕을 향해 비행기를 날리곤 했어. 그런 뒤엔 해풍 부는 언덕을 향해 머릿결을 쓸어 올리거나, 덧니가 드러나도록 순진무구한 미소를 날리곤 했지. 파수꾼은 행복했지.

 

 

  어느 날 지천으로 피어난 데이지꽃을 뜯어 꽃다발을 만들고선 언덕 아래로 내려와 어린아이에게 건넸지. 꺾인 데이지꽃을 보고 어린아이는 파랗게 질려 울음을 터뜨렸지. 어린아이가 종이비행기를 날린 대상은 파수꾼이 아니었어. 낭떠러지 가장자리에 아득히 피어난 데이지꽃이 바람에 일렁일 때마다 그 잔물결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위로 비행기라도 날려 응원하고픈 맘 뿐이었어. 하지만 파수꾼은 어린아이의 작은 몸짓, 환한 미소가 자신을 향했던 거라고 착각했던 거지.

 

 

  언제나 환상과 실체의 경계에서 우리 삶은 진행된다. 그 둘은 눈곱만큼 정도의 교집합도 이루지 않을 때에만 서로의 존재 가치가 인정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환상은 언젠가는 실체라는 자명한 괴물 앞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 너머 어떤 것'은 내 식으로 존재해 줄 때만 우리는 믿음이란 활력소를 얻는다.

 

 

  데이지꽃이라면 저 먼 언덕 끝에서 바람에 살랑일 때 가장 아름답고, 종이비행기를 날린 뒤 머리칼 사이로 스미는 손과 천진한 미소는 파수꾼 자신을 향한 것일 때 가장 행복하다. 데이지꽃이 꺾여 꽃다발로 다가오고, 어린아이의 손짓과 미소가 파수꾼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때 우리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된다.

 

 

  착각에 빠져 있으면 미욱한 일상이 따르고, 실체에 놀라면 피폐해진 영혼이 날을 세운다. 환상과 실체, 착각과 현상 그 경계를 넘나드느라 까진 무릎의 생채기가 오늘 따라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으련다. 데이지꽃이 전하는 말은 ‘희망과 평화’란 걸 억지로 기억해야 하는 뇌가 있으니.

 

 

 

  선거는 끝났고, 어쩔 수 없이 나는 허무주의자로 돌아갈 뿐이다.

  쇠고기 사무면 뭐하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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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12-2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킹메이커]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정치에 대한 환상을 품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유는 팜님도 아실거에요.

데이지하면 개츠비 맞네요!!!ㅎㅎㅎ
덕분에 기분이 좀 풀렸어요.^^
오늘은 외동지라네요. 꼭 팥죽을 안 먹어도 되는 날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것도 몰랐어요.ㅎㅎㅎ

프레이야 2012-12-21 21:20   좋아요 0 | URL
나비님, 외동지는 뭐래요? 전 팥죽 못(안) 먹었는데
그럼 안 먹어도 서운해할 필요 없는 거에요? ㅎㅎ

다크아이즈 2012-12-23 00:42   좋아요 0 | URL
나비님, 바쁘실텐데 들르셨네요. 감사할 뿐. 팥죽 드셨나요?
전 식당에서 전식으로 나온 걸 먹었어요. 굉장히 맛났지요.
나비님, 데이지하면 개츠비, 프레님 데이지는 나빠요, 나빠2!

나비님 말씀은 애동지가 아닐까 싶어요. - 동짓달 초순에 든 동지를 일컫는 말. 동지는 양력 12월 21일 또는 22일로 그 날짜가 고정되어 있지만 음력 날짜는 유동적이다. 동지는 보통 음력 동짓달에 드는데 음력으로 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라 하고, 동짓달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라 하며, 동짓달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한다. (네이버)


라로 2012-12-24 02:57   좋아요 0 | URL
애동지군요!!ㅎㅎㅎ
그날 찬모님께 오늘이 동지니까 팥죽을 먹어야 하는데,,라고 궁시렁거렸더니 혀가 짧으신 찬모님께서 '애동지'라고 발음하셨는데 혀가 짧으시니 외동지를 애동지로 발음하시는 줄 알았어요. ^^;; 저에게 설명하시길 음력 15일 이전의 동지는 외동지고 그 후는 짝동지라고 하시더라구요. 팜님께서 네이버까지 찾아주시니 이제 동지에 대해서 실수는 안 할것 같아요,,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2-12-2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쇠고기 사무면 머하겠노! ㅎㅎㅎ
데이지꽃은 참 예쁘군요.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리..
개츠비의 데이지는 나빠요, 나빠.ㅋ

다크아이즈 2012-12-23 00:25   좋아요 0 | URL
프레님, 쇠고기 사무면 머하겠노, 기분 조켔제, 조으면 머하겠노,
쇠고기 사묵겠제.... 에휴~~~ 비겁한 허무주의자가 되렵니다.
데이지가 좀 단정하고 깔끔해요.

사람은 단정하고 깔끔한 사람도 좋지만, 너절하고 털털한 사람은 더 좋아요. 꽃이 너절하거나 털털하면 꽃답지 않을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요. ㅋ

프레이야 2012-12-23 10:56   좋아요 0 | URL
세가지 동지 잘 알게됐어요. ^^
너절한 꽃이라면 반쯤 시들어 꽃잎도 후줄근하게 떨어진 국화? ㅎㅎ ㅎ
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요 팜님, 무조건 위로의 하트 보냅니다~~♥♥
 

 

 

 

  매일 짧은 생각 하나씩을 글로 옮긴다는 게 쉽지는 않다. 공사다망하여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오늘 같은 날에는 더 막막하다. 귀가길 차안에서도 글감들만 궁리한다. 선거일이니 대선에 관해 쓸까, 아들 학교 축제에 대한 소회를 쓸까, 아니면 낮에 토론한 ‘솔직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쓸까, 여러 갈래로 생각이 뻗친다.

 

 

  이런 내 맘을 읽었는지 옆자리의 딸내미가 말한다. ‘휴학’에 대해서 한 번 써보란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딸내미와 입씨름 한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친구들 대부분이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 졸업하기 전에 한 번 이상은 휴학을 한다나. 자신도 그러고 싶다는 우회적 표현임을 금세 알아차리겠다. 딸내미에게 고리타분한 기성세대로 비치는 걸 원치 않지만 이럴 땐 나도 어쩔 수 없다. 학교를 쉬어가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는 순간, 이미 딸내미의 표정은 ‘세상 물정 모르는 엄마’라고 말하고 있다.

 

 (딸내미는 딱히 취업 때문에 휴학해야 할 이유는 없다. 토익도 그 업종 기준점을  지나 900은 가벼이 넘겼고, 어학연수는 갔다 오면 좋겠지만 안 간다고 취업에 불리할 것도 없는 전공이다. 학점 관리나 잘하지 그건 신경 안 쓰고 엉뚱한 휴학 드립이다.  보아하니 취업 순간을 늦추고 싶어한다. 산업 현장에 빨리 나가면 청춘이 억울하다나. 내가 청춘일 때는 빨리 졸업하고 취업하고 싶었다! 한 세대 차이일 뿐인데, 우리는 확연히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어쩌랴, 우리세대의 업보인 것을.) 

 

 

  어학연수, 인턴, 봉사활동 등 스펙 쌓기란 이유로 대학가의 휴학은 일종의 유행처럼 되어가고 있다. 취업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유예시키고, 공부 압박을 느끼는 청춘을 잠시라도 놓아주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렇단다. 대학생이란 신분이 주는 암묵적 보호 그늘을 조금이라도 늘여 사회로 진출하는 시간을 그만큼 미루고 싶어 한다. 취업하기 어려운 이유가 가장 크겠고,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세대라 전반적으로 자신의 물질적, 정신적 성장 속도를 인위적으로 늦추려 하는 점도 없지 않다. 

 

 

  상대적으로 덜 여문 이십대를 양산한 책임은 기성세대에게 있다. 학력․학점․토익점수․어학연수․자격증 등으로 청춘을 줄 세우는 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줄을 늦게 서는 걸로 저항하는 수밖에 없다. 스펙은 이 땅을 사는 청춘들이 안아야 할 커다란 부담이다. 기기나 시스템의 성능 제반을 말할 때 씀직한 스펙이란 말이 인간에게도 접목되는 걸 보니 참으로 비인간적이라는 생각만 든다. 인간 상세 설명서를 메우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며, 더러 휴학까지 생각하는 청춘들에게 뾰족한 답을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계적인 이력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를 실현하기 위한 휴학이라면 백만 번이라도 좋으련만.

 

  어미로서 할 수 있는 말이란 게 고작, 휴학은 안 돼, 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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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1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큰애도 내년에 휴학을 한다고 해서 헐~, 하고 놀랐답니다.
스펙을 위해 또 에너지 충전을 위해서라나요. 말릴 수도 없고...

이렇게 소재를 정하고 나면 척~ 하고 쉽게 글을 뽑아내시는 팜 님을 우러러 봅니다.
저는 여유롭게 글을 쓸 시간도 없는데, 게다가 순발력마저 없으니 말이죠.
오늘도 투표하고 친정에 가니 글 쓰기는 틀렸네요. 끄응~~
그래도 팜 님으로부터 힘을 얻어 내일은 꼭 글을 써야징, 하고 있어요.ㅋㅋ

다크아이즈 2012-12-20 02:52   좋아요 0 | URL
페크님은 휴학 허락해주실 것 같은 분위기.
당위성이 있으면 휴학하는 게 옳아요. 하지만 청춘이 억울하다는 이유로 휴학한다고 그 누명이 쉽게 벗겨지간디요?
모든 생은 다소간 억울한 거잖아요. 그렇다고 동조해주시는 거지요? ^^*

프레이야 2012-12-19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ᆢ그렇군요. 전 신입생을 둔 엄마로서 처음 들어본 추세에요. 제가 정보에 좀 어두워요. 휴학 이유가 씁쓸하군요. 에효ㅠ

다크아이즈 2012-12-20 02:53   좋아요 0 | URL
야무진 프레님 따님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그래도 혹 4학년을 앞두고 그런 말 하거들랑,
청춘이 억울한가 보다, 하고 이해해주시어요. 크~

이지연 2013-02-04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대학교 3학년을 앞두고 있는데요. 휴학을 하고 문학스터디를 1년간 해보고싶은데 부모님께서 휴학은 절대안된다고 반대하시네요ㅜㅜ 그냥 학교다니면서 혼자 글쓰는 것으로 보낼까요?

다크아이즈 2013-02-06 11:05   좋아요 0 | URL
지연님, 필요에 의한 휴학은 강추이지만 문학스터디 때문이라면 굳이 휴학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열정만 있다면 학기 중에도 문학스터디를 충분히 이끌어 갈 수 있잖아요. 그리고 문학은 근본적으로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게 더 옳은 답이지, 스터디가 완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아요. 참고하시고 현명한 판단하시어요.
이 서재에서 지연님을 자주 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