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끝이 개운찮다.

이번 명절에는 소위 역귀성이라는 걸 했다.

차례를 지내러 가는 길은 수월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그런지 정체 구간도 없었다.

평소처럼 다섯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돌아올 때가 문제였다.

오후 한 시 쯤에 출발했는데 아홉 시간 넘게 도로에만 갇혀 있었다.

운전하는 남편에 대한 배려 없이, 원 없이 잠도 자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었지만 지루하기만 한 귀갓길이었다.

역귀성이 낫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향하든 명절 교통 체증은 당연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너무 늦은 귀갓길이라 중간에 어머님과 친정 엄마께 들른다는 계획은 포기해야만 했다.

예년에는 당일 찾아뵈어도 시간에 그다지 쫓기지는 않았는데 점점 이번 같은 현상이 잦아질 것 같다. 차가 많아지는데다 역귀성도 늘어나는 추세라니까.

 

다음날 두 분을 뵈러 다시 대구로 출발했다.

느끼한 명절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을 되살리자 싶어 회를 주문해갔다.

어른들이 좋아하기도 하지만, 따로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먹거리이기 때문에 자주 쓰는 효도법이기도 하다.

엄마께는 동네 친구분들이랑 나눠 드시라고 전해드렸고, 시댁에서는 간만에 방문한 사촌 동생 내외와 식구들이 회를 나눠 먹었다.

모두들 회 때문에 입안이 개운해졌다고 좋아했다.

 

기쁨도 잠시, 두어 시간 뒤 모두 난리가 났다.

구토, 설사, 오한, 근육통, 고열, 두통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회를 먹은 십여 명 대부분이 이런 증상에 시달렸다.

응급실에 실려 가거나 지사제와 항생제를 처방받거나 우리처럼 미련한 이는 밤새 움켜쥔 배를 안고 온 방안을 누벼야했다.

난생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회를 먹은 모든분들께 미안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효도한답시고 사 간 회가 두 어른과 친구분들께는 불효가 되는 매개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맘이 너무 불편했다.

시댁 형님과 친정 오빠 등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어른들을 병원에 모시고 가고 약도 처방해드렸다. 횟집에서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왔다.

의도적으로 폐를 끼치자고 한 것도 아닐 터이니 뭐라고 따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항생제를 덜 쓴 횟감을 쓰면 그럴 수 있다면서 양해를 구한다.

 

이틀 꼬박 앓으면서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하는 행동에도 오류가 따를 수 있다고.

그 오류는 우연에 의해 발생하지만 그 파장은 끝간데없이 커질 수도 있다고.

하지만 딱히 누구의 책임이라고 완전히 떠맡길 데도 없다. 

다만, 세상 일은 절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칠 뿐.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우리 일상은 휘어지고 꼬일 수 있다.

저마다 최선을 다하지만 그 우연과 우발이 야기하는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닥치면 당해야만 하는 치명적 우연이 가끔은 우리 삶을 관장할 때가 있다.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다. 조심만으로 안 되는 게 세상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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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3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3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10-0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 미안요... ㅋㅋ
태그에서... 우연이 '관장하는'... 을 저는 '관장(灌 물댈 관, 腸 창자 장)'으로 읽혀서 갑자기 뿜듯이 웃었다는... 거 왜, 대장내시경하기 전에 대장을 다 비워내는 그걸... 관장한다고 하걸랑요... ㅋㅋ

우연이 관장하는... 관장은 확실히 되셨겠는데... 추석에 고생을 하셨네요. 이제 회복되셨죠?

다크아이즈 2012-10-04 16:19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중의적이네요. 전 생각지도 못했지만 우연이 관장한 것 맞네요. 뿜을 만한데요.ㅋㅋ
 

 

 

            

  가수 김광석이 있었다. 감성적인 가사로 읊조리듯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덤덤하면서도 슬퍼보였다. 기타와 간주용 하모니카가 잘 어울리던 남자. 하모니카 그 목걸개 장치가 제 운명의 덫처럼 보이던 남자. 끝내 불운을 넘어서지 못하고 세상을 등져버린 남자. 너무 일찍 안타까운 전설이 돼버린 포크 가수.

 

 

그가 죽은 지 십 년도 훨씬 넘었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 가슴 속에선 언제나 부활 중이다. 시적 감수성과 편안한 음색의 조화 덕분에 그의 노래는 버리고 싶은 게 하나도 없다.「서른 즈음에」같은 경우엔 금세기 최고의 노랫말로 알려질 정도로 인기 있는 노래가 되었다. 그가 전설이 되고 그의 노래는 신화처럼 붙박이고, 대구 방천시장엔 벽화로 만든 그의 거리가 생겨나기까지 했다.

 

 

만인의 김광석은 거기까지였으면 싶었다. 나 혼자만의 욕망일 한 곡쯤은 숨겨두고 싶었다. 그의 사후 앨범 ‘노래 이야기’ 첫 번째 수록곡인「먼지가 되어」가 그런 노래였다. 노랫말도 그가 지은 게 아니고 작곡자도 그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가 부른 것도 아닌, 라이브 리메이크 곡이었다. 김광석 것이 아닌 노래가 김광석에게 와서 듣는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런 노래였다. 물론 가사와 멜로디도 그 느낌에 한몫을 했다. 수많은 그의 히트곡을 대중에게 양보하더라도 이 노래만은 혼자만 까먹는 알밤처럼 숨겨 두고 싶었다.

 

 

그 노래가 검색어 앞 순위를 다투고 있다. 한 케이블 방송 가수 발굴 프로그램에서 경쟁자끼리 듀엣으로 불렀는데 화제가 되었단다. 뒤늦게 동영상 화면을 찾아봤다. 난리 날만하다. 락 버전 편곡으로 부른, 두 도전자의 하모니에 눈과 귀가 뚫렸다. 김광석의 담담함도 좋지만 젊은 듀엣의 패기도 만만찮았다. 내가 먼저 발견한 책이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되어갈 때의 야릇한 서운함 같은 게 잠깐 밀려왔다. 하지만 누군들 이 노래를 진작 몰랐을 것인가.

 

 

혼자만 간직하고픈 것일수록 만인의 것이 되기 쉬운 게 세상 이치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적극 광고나 해야겠다. ‘시를 써 봐도 모자란 당신’이 생각나는 이들아,「먼지가 되어」를 다섯 번만 들어 보라. 물론 김광석의 라이브도 좋고, 젊은 듀엣의 도전곡도 상관없다. 가을맞이 선물로 이보다 맞춤한 감성 자극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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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9-2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먼지가 되어는 상상이 잘 안되네요. 한번 들어봐야겠습니다.

다크아이즈 2012-09-24 21:49   좋아요 0 | URL
이윤수 님의 먼지가 되어, 있습니다.
이윤수 것이 담백하다면 김광석은 좀 더 애절한 것 같기도...

참고로 작곡자 이대헌은 포크 가수인데 탤런트 이하나의 아부지.
노랫말도 좋네요. 감성적이지 못한데도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이 부분에서 여운이...

세 곡 다 좋습니다. - 이윤수, 김광석, 정준영 로이킴 듀엣
어느 것이든 이 가을 들을 만하네요.
 

 

 

 

내가 사는 도시에는 작은도서관이란 게 숱하게 많다. 적어도 스무 개 이상?

 

  시에서 마을마다 만들어준 도서관인데 우리 아파트 안에도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요것이 얼마나 편리한지 내 책방에 있는 책도 분류가 안 되 찾기 힘든 건 포기하고 도서관에 전화해서 있다고 하면 조르르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며칠 전 <토니오 크뢰거> 급하게 필요했는데 내 책방에는 어디 처박혀 있는지 모르겠고 막 도서관으로 달려갔더니 싱싱한 채로 책꽂이에 꽂혀 있다. 얼마나 요긴한지. 행정 당국이 모든 걸 잘 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런 머리 쓴 건 참 인정해주고 싶다. 각설하고

 

  며칠 전, 우리집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도서관에 볼일이 있었다. 우연히 내 눈앞에 보이는 책장에서 위의 책을 발견했다. 저자 이름이 낯익어서 한눈에 띄었다. 플라시보님의 필명이 독특해서 금세 눈에 띄었다. 도서관 오픈하면서 신간으로 사들인 것 같았다.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반가운 이름이다. 내가 알라디너로 입문할 시절 내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었던 ~디너들이 몇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플라시보님이다. 왠지 빌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볼일 보다 먼저 책을 빌렸다. 연애서적을 빌리는 중년 아지매를 담당자가 뜨악한 눈으로 쳐다봤다. 연애 따윈 관심도 없지만 없는 새초롬함을 빌려 왜, 아줌마는 연애에 대해서 좀 알면 안 돼? 하는 표정을 지어줬다.

 

  플라시보님 책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고, 그 때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알라디너 네 명 중 세 명이 알라딘을 떠난 것 같다. 차례로 그 네 분은 플라시보님, 주드님, 파란여우님, 로쟈님인데 로쟈님만 남아 있고 다른 분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휴지기 중인 것 같다. 그들의 글은 각기 특징이 있었다. 번득이는 상황 묘사에 능한 플라시보님 글은 재미를 주었고, 주드님 글은 깨질듯한 민감한 감성이 무기였다. 내가 편집자라면 주드님을 꼬드겨 다듬어서 책을 내게 하고 싶을 정도로 예민한 글을 썼었다. 파란여우님은 현장성이 뛰어난 전투적 문체를 갖고 있었는데 동년배인 님에게 공감하기가 쉬워서 내가 좋아했었다. 로쟈님이야 뵌 적 없지만 디너들이 인정하는 최고수이니 존경의 헌사 한마디로도 함축 될 수 있을 터고...

 

  그때 뭐 이런 괴물들이 활동하나 싶어서 신기했다. 지금은 더한 고수들이 득시글거리니 가끔은 책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정글인 알라딘이 무서울 때가 있다. 글께나 쓴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알라딘 서재를 많이 권한다. 글 안 쓰더라도 거기 가보면 무림고수들이 한 자리씩 꿰차고 있어 배울 게 많거나 스스로 초라하거나. 전자라야 견딜만한데 나는 후자의 감정이 많기 때문에 언제나 그들이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건데 알라디너들에게 지는 거야 영광이라 생각한다. 

 

  쉬다가다 하는 나야  떠날 일도 없지만  열심히 하던 분들이 사정상 안 보이니 많이 그립다. 실은 눈물나도록 그립다. 독자로서 그 글들이 내뿜는 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오직 글로써 그리운 것이다.

마을도서관에 꽂힌 낯익은 플라시보님 책 때문에 옛 생각이 나서 몇 자 끼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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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노트북 자판은 상처투성이다. 자주 눌린 글쇠판은 보호막이 사라져 뜯겨나간 벽지처럼 속살이 훤하다. 벗겨진 정도에 따라 어떤 글자판이 혹사를 당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각각 왼손 검지와 중지가 주재하는 ‘ㄹ’과 ‘ㅇ'의 위쪽 모서리는 허옇게 까졌고, 오른손 중지가 관장하는 ‘ㅏ’ 글쇠는 영어 자판 'K' 안내 표식이 사라지고 없을 지경이다. 모음이 몰려 있는 오른쪽 자판 보다는 자음으로 이뤄진 왼쪽 자판에 흠집이 더 많은데, 특별히 자판을 칠 때 왼쪽 손가락에 힘을 더 실어서가 아니다. 한글 자음이 초성과 종성에 다 쓰이니 왼쪽에 몰려 있는 자음 글자판이 더 빨리 닳아서 그렇다. 그러고 보니 한글자판은 왼손잡이에게 유리한 배치이다. 요즘 들어 왼쪽 오십견 증상이 심해졌는데 왼쪽 손가락을 많이 움직여서 그런가.

 

 

 

  각설하고, 사용한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노트북 글자판이 이렇게 흠집 난 것은 오래된 습관 때문이다. 나는 자판을 누를 때 손바닥을 노트북 바닥에 대지 않은 채 손가락을 곧추 세워 내리 찍는 편이다. 가파른 손가락 각도 때문에 타이핑하는 소리도 시끄럽고 손톱에 힘이 실려 글쇠판이 쉽게 긁힌다. 이런 방식은 수동식 두벌 타자기를 칠 때 유용하다. 내 이십대는 수동식 타자기의 나날이었고, 노트북에 생긴 상처는 그 시절이 남긴 유물 같은 것이다.

 

 

  대학시절 나는 한글 운동 모임 활동을 했다. 순우리말을 아끼고 퍼뜨리는 일이 주된 목적이었다. 한자어가 70퍼센트 이상 차지하는 게 우리 실정인데 순우리말을 사용한다는 건 거의 코미디에 가까웠다. 그래도 이십대의 열정과 우정으로 그것을 즐겼다. 한글 운동의 행동 강령 중 하나에 ‘글자 생활을 기계화하자’라는 것이 있었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예술적인 문자인가를 기계화로 실천해 널리 알리자는 취지였다.

 

 

  개인용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전인 80년대 초중반이었으므로 그때의 기계화란 타자기를 활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창하고도 멋진 슬로건이었지만 주변에 글자 생활을 기계화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당시 학생들 주머니 사정이 타자기를 구입할 만큼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토가 내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타자기로 글을 쓰고 싶었다. 탁탁, 경쾌한 리듬이 안내하는 대로 손가락을 맡기면 글 너울이 몸 안으로 퍼져, 저 발끝부터 쓸 거리가 되어 되번져 나올 것만 같았다.

 

 

  타자기 마련은 멀기만 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학교 정보센터의 타자 교실에 등록을 했다. 강의가 없는 빈 시간마다 들러 자판을 익혔다. 개별자였던 자모음이 손가락 끝에서 유의미한 문장이 되어 꼬리를 잇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타자기를 갖고 싶은 소망은 큰오빠가 들어주었다. ‘열심히 써봐라.’  크로바 두벌식 중고 타자기를 구해주면서 큰오빠가 한 말이었다. 그렇게 타자기는 내 보물 1호가 되었다. 종이를 롤러에 끼우고 자판을 두드리면 글자 쇠막대가 잉크 묻은 리본 위를 덮쳤다. 새겨진 글자는 써야하는 자의 운명을 예고하는 낙인처럼 내 가슴에 박혔다. 그 크로바 타자기로 나는 리포트를 작성하고, 단상을 끼적이고, 시를 갈무리하고, 소설을 썼다. 타자기 덕분인지 졸업할 때까지 크고 작은 문학상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타자를 치려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손가락 각도를 가파르게 하고 손끝에다 힘을 주어야 한다. 계단식 글쇠판이라 글자를 누르는 동안 손바닥은 항시 허공에 떠있어야 했다. 이런 오래된 습관이 타자기 시대를 접은 지금도 남아 있어 생채기를 내는 것이다.

 

 

  버리기 좋아하는 나는 이사를 핑계로 많은 물건들을 버렸다. 크로바 타자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버린 것에 대해 좀처럼 후회하지 않는 편이지만 부쩍 그 타자기가 그리운 나날이다. 큰오빠의 정성보다 홀가분하고 싶은 내 성정이 앞서, 내 곁을 떠나게 된 그 크로바 타자기가 떠오르는 건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타자기는 버렸지만 그 자리엔 고귀한 유물처럼 자판을 내리친 흔적이 남아 있다. 삼십 년이 다 되어 가는 그 시절을 불러 모아 나는 지금도 탁탁탁, 상처투성이를 내리찍는 중이다.

 

<이미지는 네이버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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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

 

 

  사람은 몸으로 말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그 주제와 맞닥뜨렸다. 평소대로 나갈 준비를 했는데 약속 시간보다 많이 남았다. 내 오전 스케줄은 주로 열시에 시작한다. 그것이 일이든 취미 생활이든 대개 그래왔다. 주부들이 짬을 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오전이 그 시간일 것이다. 한데 오늘은 열시 반에 약속이 잡힌 날이다. 젊은 엄마들은 아이 유치원 보내고, 집안 치우고 나면 그 시간이 되어야 모일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내심 열시를 기대했던 스스로가 머쓱하고 미안했다. 오래 길들여진 내 생활 패턴일 뿐인데 그게 가장 합리적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이래서 역지사지가 필요한 거다.

 

 

 

 

  시간을 쪼개가며 바지런 떠는 형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만, 스텐바이 된 상태의 비는 시간이 아까웠다. 마침 화장실에 남편이 보던 책이 있길래 집어들었다. 지겨운 자기 개발서라니! 하면서 아무 데나 펼쳤다. 맘에 쏙 드는 구절이 나온다. 메라비언의 법칙이란다. '메라비언은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이미지는 시각이 55%, 청각이 38%, 언어가 7%라는 사실을 발견한 심리학자다.(중략) 이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할 때 말의 내용보다 그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요소가 93%의 영향력을 갖는다는 의미다'『 마음으로 리드하라 』-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127쪽)

 

 

 

  모임 장소에 도착해서 열심히 수다를 떤다. 이름하여 건전한 책 수다. 눈빛이 형형한 한 멤버 차례가 되었다. 그미는 눈동자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단다. (그 때 우리는 이태석 신부님의『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토론하고 있었다.) 그미는 사람을 볼 때 눈동자를 눈여겨본다고 했다. 자신이 밑줄 그어 온 부분을 성심껏 읽어 주었다. 가난과 전쟁 때문에 신뢰를 잃은 아이의 탁해진 눈빛을 묘사한 장면이었다. 환경에 따라 순한 사람의 눈망울이 얼마든지 살기 서린 눈빛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안타까운 장면이 계기가 되어 그미는 사람의 눈동자에 대해 떠올린 모양이었다. 상대의 눈동자를 보면 대충 어떤 스타일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단다. 백퍼센트 확신할 순 없지만 통박(?)으로 알 수 있다나. 맞는 말이다. 아침에 읽은 메라비언의 법칙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라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이 심리학자들은 메라비언과 같은 결론을 숱하게 내렸다. 사람은 혀가 아니라 몸으로 말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모 작가는 눈빛이 참 불편하다. 직접 뵌 적은 한 번도 없는데 화면 속에 비치는 그의 눈빛을 볼 때 안타깝기만 하다. 대담이나 인터뷰일 경우 자연스러운 화면을 위해 카메라를 주시할 필요는 없는데, 그 때문인지 작가는 눈길을 어디다 둬야 될지 몰라 눈치를 보는 듯한 포즈를 취한다. 인터뷰어가 여성일 경우, 옆으로 훔쳐보는 듯한 그 부자연스런 눈길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화면 속으로 들어가 시선을 적당한 어딘가에 고정시켜 주고 싶을 정도다. 어여쁜 인터뷰어나 아나운서를 자연스럽고도 당당하게 쳐다보는 연습을 시켜드리고 싶은 것이다. 옆 눈길로 자꾸만 훔쳐보는 듯한 그 모습을 보면서 작가가 특정 미인에게(어쩌면 여성 전반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작가의 불편한 시선을 의식하느라 정작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미인을 똑 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작가의 고지식한 성정 탓이라면 귀엽게 봐줄 만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연스레 상대와 시선을 맞추는 연습을 하라고 주변인이 조언 좀 해줬으면 좋겠다. 자고로 사람은 몸으로 말하고, 특히 그 몸 중 눈빛의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을 터인데 삐딱한 시선으로 훔쳐보는 모양새는 신뢰감을 반감 시킨다. 아무리 좋게 봐줘서 쑥스러움 때문이라 하더라도.

 

 

 

  상대와 자연스레 눈길을 맞추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 숫기 없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가정 방문 오신 선생님을, 놀러 온 오빠 친구를, 잘 생긴 이종사촌 오빠를 당당하게 쳐다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사람을 키우는지 지금은 그런 울렁증이 없어졌다. (시간의 때가 묻은 거겠지.) 아직도 외모 콤플렉스가 심하지만 될 수 있으면 상대방과 눈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몸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혀 언어 매너가 좋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배울 게 많다. 동의를 구하는 상대에게 리액션으로 장단 맞춰주기, 기발한 아이디어나 조언 요구에 필터링해주기, 진정성 밴 눈빛으로 동정을 호소하면 더한 연민의 눈빛으로 화답하기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상대방도 그 정도가 적당해야 나의 몸 언어도 좋은 쪽으로 발동하게 되는 거다. 뭐든 지나치면 거부 반응이 이니까.

 

 

 

  어쨌거나 말보다 몸이 더 많은 말을 한다니 말 조심 뿐만 아니라 몸 조심도 해야 겠다. 좋은 언어 습관도 연습이 필요하듯 몸으로 하는 말도 갈고 닦아야 한다. 우선 부정의 몸 언어부터 버릴 일이다. 혀에 든 욕보다 눈에 든 욕이 더 무섭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일견 고고해 보이는 리액션 없는 무표정에는 탄력 있는 입 꼬리를 덧 올려보자. 타인의 약점을 못견뎌하는 냉소적인 눈빛에는 힘을 조금만 덜고 눈두덩이부터 웃어 보자. 찌들고 탁한 눈동자를 갈고 닦는 데 이태석 신부님 같은 분이 곁에 있다면 한결 도움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쉽게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니 주변에서 그 모델을 찾는 게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오늘도 나는 내 탁한 눈빛과 이지러진 표정을 맑고 밝게 해줄 멘토를 찾아 길을 나선다. 그것이 책이든, 사람이든 도처에 있을 것을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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