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그림 에세이
이연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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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책 뽀개기는 계속된다. 이번 책은 나도 종종 챙겨 봤던 유튜버의 그림 에세이다. 내가 이분을 기억하게 된 건, 그녀가 평소 해오던 고민들과 내린 결론이 내 것하고 너무 많이 겹쳐서였다. 삶을 지탱하고 유지해 주는 것들이 가지는 의미. 현실 너머의 것들을 위하고 바라는 인생 방식. 이런 생각으로 가득한데 남들과 잘 섞일 수 있겠냐고.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은 평생 이방인으로 살게 된다는 거다. 그것은 곧 존재의 쓸모없음을 뜻하므로 어떻게든 부정하기 위해서 세상과 타협을 시도한다. 결국 같은 패턴의 무한 반복이다.


박살 난 인류애, 염세주의, 물질에 대한 인식 등등. 그동안 내가 리뷰에 적었었던 내용들이 줄줄이 언급된다. 과연 동족은 동족이다. 우리 이방인들의 삶은 나 자신보다 타인한테 맞춰져있다. 그래서 나를 먼저 돌보고 우선시하는 게 잘 안된다. 왜 그런 말도 있지.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그처럼 이타주의가 디폴트라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답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대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우리 이방인들은 남들이 내게서 어떤 에너지를 받아 갈 때 그렇게나 기뻐한다. 그러나 세상은 선한 사람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봤자 그거 가지고는 좋은 사람이 될 수가 없는 거다. 이 진리에 도달한 이방인은 둘 중 하나다. 끝없는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각성하고 흑화 되거나. 나는 후자다. 인류는 사랑해도 인간은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실는지.


회사의 팀원들과는 전부 내적 손절을 해버렸다. 맞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냥 묵언수행하고 있다. 해외여행, 맛집 탐방, 연예인 덕질, 스마트 기기, SNS 등 오직 플랙스와 쾌락만 좇는 것들과 있다 보니 왜 인간을 혐오하게 되는지를 알겠다.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라지만 1차원의 인간들과는 도저히 안되겠더라. 언론과 넷상에서 물가가 어쩌고 취업이 어쩌고 결혼이 어쩌고 노조가 어쩌고 하지만 현실은 잘만 놀고먹고 있으니 이거야 원 코미디가 따로 없다. 왜 나만 살기 바쁠까. 왜 나만 혼자 겉돌까. 습관적으로 자신을 탓한다. 이연 작가도 똑같았다. 사람들이 어렵지만 인정은 받고 싶어서 자신 있는 그림만 냅다 그렸단다. 그러다 문득 내가 좋아서 그리는, 나를 위해 그려온 게 아님을 알고부터 방황했단다. 알맹이는 싹 타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그 느낌, 갑자기 자아가 부재된 그 기분을 너무나도 잘 안다. 단 한 번도 성실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는데, 어째서 허랑방탕 허송세월을 보낸 것과 똑같은 결과일까.


책 내용의 절반이 가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난에 지배된 사람은 모든 게 조심스럽고 늘 극단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그건 주머니 사정이 나아져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힘들면 힘든 대로 잘되면 잘 되는 대로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그래서 늘 똑같은 일상과 한결같은 태도를 고집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고 저자가 그러하다. 회사를 나오고 수입이 없는 중에도 수영을 배우러 다닌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하여 상급반까지 올라간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점차 좋아지는 수영 실력이 텅 빈 마음에 평온을 채워주었다. 매일의 작은 노력이 나를 성장시키고 긍지를 갖게 한다. 그러니까 너도 도전해 봐,식의 응원과 격려를 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의 달라진 내가 되어, 울고 있던 과거의 나를 그만 놓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살림 걱정하는 부모님 눈치만 보며 살았던 과거에 아직도 갇혀있는 나. 가난해서 놓쳐버린 경험과 감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신이 가난을 모른다면 이 책을 읽지 말라 하고 싶다. 어차피 공감도 못할 거니까,라는 삐딱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다. 빈곤함이 반복되면 속이 깊어질 순 있어도 넓어지지는 않는다. 그릇이 커지는 게 두려운 나머지 성장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거든. 그렇지만 당신이 삶에 의미를 바라는 고차원의 이방인이라면 환영한다. 겨울밖에 없었던 나와 당신의 인생에 부디 봄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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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26 14: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리뷰가 자주 올라오니까 너무 좋다! 근데 물감님 리뷰만 말고 본인 얘기도 따로 가끔 해주시면 안되나요 저는 물감님이 좀 궁금한데 ㅋㅋㅋㅋ

물감 2023-02-26 17:00   좋아요 2 | URL
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지는 않네요 ㅋㅋ
정 듣고 싶으시면 분당에 놀러 와요~ 희로애락이 뭔지를 보여드리겠음.

coolcat329 2023-02-26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수영으로 힘든 시기 이겨낸 얘기군요. 저도 한 때 수영에 광적으로 매달린 적이 있어요. 초급에서 연수반으로 6개월만에 고속 승급했고 아침 저녁으로 연습을 해댔습니다. 물속에 있으면 모든 걱정근심 다 사라지고 앞 사람 발만 보며 25미터 라인을 수없이 돌고나면 나중에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납니다 ㅋㅋ저도 당시 이래저래 힘든 시기였는데 수영으로 몸과 마음 다잡았네요.

물감 2023-02-26 17:06   좋아요 0 | URL
쿨캣님도 수영 다니셨군요. 맞아요. 뭔가에 몰두하면 잡생각이 사라지죠.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과, 나를 완성시켜주는 것은 정말 별개에요. 독서만 하는 것과, 읽고 쓰기까지 하는 게 다른 것처럼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3-02-26 16: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마음이 다 전달되네요. 얼마 전에 봤던 이성민 배우의 ‘버티기‘ 메시지가 생각나네요.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여행 유튜버들의 말들도 생각나구요. 겨울인 듯하지만 지구의 기울기를 바꿀 수 없기에 봄은 꼭 찾아올거예요^^

물감 2023-02-26 23:24   좋아요 3 | URL
버틴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평범하기가 제일 어렵다는 말처럼요. 어쨌든 계속 살아야죠. 저는 유재석씨가 절대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던 말이 생각나네요. 저도 그래요. 예나 지금이나 제자리지만 그래도 세월을 머금은 지금이 훨씬 좋아요. 언젠가 봄이 올거라 믿어봅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3-03-08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류는 사랑해도 인간은 사랑할 수 없지요.........ㅎㅎㅎ

물감 2023-03-08 14:2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저 그 문장 쓰면서 잠자냥님 생각했어요. 잠자냥 님은 백퍼 이해하시리라!
 
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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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문학비평가로 유명한 그의 글을 읽어볼 맘이 들지 않았던 건 어떤 직감 때문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이유가 분명해졌다. 정서나 가치관의 문제는 아니고 그냥 좀 과하달까. 그래, 이 자리를 빌려서 그동안 할까 말까 망설였던 잡설이나 풀겠다. 좀 억지스럽지만 알기 쉽게 mbti로 설명하자면, 나는 책이든 서평이든 작성된 글이 s성향인지 n성향인지를 먼저 분간한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그저 내가 s성향의 글을 선호하지 않기에 뇌가 자동으로 판단을 해버린다. 그러면 s성향의 글이 무엇이냐. 어떤 포인트에 팍 꽂혀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쉽게 말해 논문 같은 글들을 말한다. 그런 건 공부가 목적인 독서에는 어울리지만 그 외 장르나 목적에는 갑갑하다는 인상을 준다. 재밌는 사실은 본인의 mbti가 n이어도 s처럼 쓴다거나 혹은 반대 경우도 있고, n성향의 글만 쓰던 사람이 s성향의 글을 쓰기도 한다는 거다(이것 때문에 난 되도록 중립의 글을 쓴다). 아무튼 나의 시답잖은 생각과 달리 대중들은 장르 구분 없이 s성향의 글을 더 좋아하긴 하더라. <인생의 역사>는 전형적인 s성향의 글이다. 국내외 작가들의 시 한 편을 읽어주고, 그 시에 대한 비하인드 내용과 배경 그리고 본인의 해석을 첨언한다. 제목 따라 매 챕터마다 인생에 관한 이모저모를 알려주나 했더니 딱히 그런 건 없었다. 그리고 모든 글들이 내가 생각하는 ‘사유의 범위‘를 초과한다. 글쎄, 이런 글 성격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을 테지만, 내게는 독자와 함께 호흡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이것도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 싶다). 그러니까 이 분은 오직 나무 얘기만 하는구나, 숲을 얘기할 마음은 없구나, 하는 생각에 읽다 말고 책을 덮었다. 그래도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관심 있었는데 저자의 투머치함에 흥미가 뚝 떨어져 버렸다. 아무튼 호평이 그렇게나 많은데 비평 하나쯤 있어도 괜찮겠지 뭐. 다 쓰고 보니 책 얘기를 안 해서 비평이랄 것도 없네. 그만큼 인상 깊은 책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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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4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6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03-08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투머치! 단 한 단어로 요약! ㅎㅎㅎㅎ 공감합니다.

물감 2023-03-08 14:20   좋아요 0 | URL
근데 이분 원래 이런 스타일이었나요? 전에 인기 되게 많았던 걸로 언뜻 기억나는데 ㅋㅋㅋ 어느새 하나 둘 손절을...

잠자냥 2023-03-08 14:28   좋아요 1 | URL
여전히 인기는 많으신 거 같고.... 하나 둘 손절하는 분들은 실은 원래 이런 글 안 좋아하거나 관심 없었는데 하도 인기가 많으니 한번 읽어봤다가 학을 뗀 거 같고.... ㅎㅎㅎㅎㅎ

물감 2023-03-08 15:15   좋아요 2 | URL
제가 곧 그 케이스... 뭐라는지 들어나보자 했다가 낭패본ㅋㅋ

고양이라디오 2023-04-0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에 읽었는데, 저랑 딱 맞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초반에 좋은 부분이 있었습니다ㅎ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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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만 읽느라 몰랐는데 사내 도서관에 흥미로운 책들이 잔뜩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소설 읽기는 중단하고 회사에 있는 책들 위주로 읽어볼 생각이다. 이래저래 시간이 잘 안 나기도 해서 당분간은 가벼운 독서와 가벼운 글만 기록해야겠다. 이 책은 국내에 몇 없다는 천문학자가 쓴 에세이인데, 그쪽 지식을 곁들인 인문학 내용이 다수 포함돼있어 과알못들도 그럭저럭 즐길 수 있다. 간혹 저자가 본인 텐션에 못 이겨 딥해질 때가 꽤 있지만 애교로 봐주자. 그래도 명색이 천문학자의 에세이인데.


어느 특정 분야에 미친 듯이 빠져드는 일명 덕후를 볼 때마다 내심 부러웠었다. 재능이나 특기를 살려서 성공 가도를 달리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덕질 외에 일들은 관심 밖이라 삶을 아등바등 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욕심이나 열등감도 잘 없고 어떤 때에는 순수하기까지 하다. 그게 꼭 좋다고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좋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축에 속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이 밥벌이가 되는 게 양날의 검이라지만 굶어죽지 않을 정도만 된다면야.


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는다는 제목은, 별을 관측하는 건 잠깐이고 나머지는 관측 내용에 대해 정리하고 연구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다 쓰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워낙 비인기 과목이라 도움을 청할 선배들도 없어 연구하다 막히면 아주 난감하더라는 내용도 서슴없이 나온다. 이외에 천문학 전공을 하면서 겪었던 별별 일화를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과학자는 이런 덕후들이나 가능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원을 마치고 결혼도 하고 강사도 뛰면서 아주 바쁘게 살아온 심채경 박사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스케줄이지만 본인이 좋아해서 전부 해내고 마는 원더우먼 그 자체였다. 꼭 전공분야가 아니어도 좋으니 뭔가에 깊숙이 빠져보라는 메시지도 주고 있다. 극 내향인이라는 저자는 정말 공부밖에 모르던 분이었지만, 또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는 직업이었지만 강의를 하고 연구 주제를 따내고 자문을 구하려면 타인의 협조가 필요했다. 연구실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고 할 만큼 집순이지만 남들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대인관계에 힘쓰는 노력이 저자를 참 빛나게 만들어주었다. 과연 프로페셔널도 혼자서는 의미가 없다. 무인도에 사는데 명성과 위대함이 다 무슨 소용이랴.


저자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대학 교육에 대한 일가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학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전공과 상관없는 수업을 듣는 아이들. 반대로 전공과목에 밀려 꼭 필요한 교양수업을 못 듣는 친구들. 배움이 즐거움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괴로움이 돼버린 청춘들. 이렇게 된 사회의 시스템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교육의 현실을 꼬집는다. 그 마음은 교육자의 입장이 아니어도 너무나 공감되었다. 어디 교육뿐인가. 사회생활은 더하지. 오직 먹고사는 걱정뿐인 근로자들도 취미를 갖고 여가생활을 즐기며 자신을 돌보고 싶어 한다. 그치만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눈앞에 산더미인데 즐거움이고 괴로움이고 신경 쓸 수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도 참 뼛속까지 세상때가 묻었구나 싶어진다. 여튼 천문학과 인문학의 콜라보치고는 무난무난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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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2-23 1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회사에 도서관이 있군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 게다가 흥미로운 책들이 잔뜩 있다니👍 심채경 박사님 얼마전 끝난 <알쓸인잡>에서 조금 봤어요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갖고있다는게 느껴지더군요.

물감 2023-02-23 13:17   좋아요 3 | URL
네네, 대부분 업무관련 도서지만요 ㅎㅎ
에세이, 인문학, 사회과학 등 이것저것 많아서 당분간 소설 리뷰는 없습니다 ^^
이 분이 tv에도 나오는군요? 거기 나오는 분들은 말도 잘 하시던데, 역시 한우물 파는 게 정답인가 봅니다ㅎㅎㅎ

잠자냥 2023-02-23 14: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로 책과 모니터만 보는 직업이라 (짠 월급에 비해) 굉장히 만족도가 높은데... 가끔 정말 역자 저자 등과 통화하거나 대면해야 할 일 생기면 며칠 전부터 스트레스 받아서 극....... 휴....
이미 죽은 저자의 책 일 할 때가 가장 좋습니다(동료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합디다ㅋㅋㅋ)

아무튼 저도 이분이 말씀하시는 거 트위터에서 보고 약간 호감이 생겨서 이 책은 한번 읽어볼 요량으로 보관함에 담아뒀더랍니다. 물감 님 리뷰 읽으니 꼭 읽어봐야겠군요.

물감 2023-02-23 15:02   좋아요 4 | URL
같이 계신 분들이 잠자냥 님과 비슷한 성향이신가봐요. 온통 기빨리는 직원들 뿐인 저로써는 넘나 부럽습니다. 하하핳... 스트레스 관리 잘하세요 ㅎㅎㅎ
글만 읽어봐도 대단한 분인 게 느껴지던데 오호 역시나였군요. 아니 근데 잠자냥님의 책 구매횟수가 점점.... 저의 예언대로 잠자냥 서재 추석특집 쯤에는 0.5배 늘어나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3-02-23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사내 도서관이 다 있군요
대단하네요.

전 소설 외에 다른 분야에는
관심이 부족해서리. 과학 계통
의 책도 사두긴 했지만 손이
가질 않더라구요.

물감 2023-02-23 16:44   좋아요 5 | URL
저도 소설파라서 다른 분야를 정말 안 찾긴 하는데, 그래도 유명한 총균쇠나 사피엔스 이런 건 읽어줘야 하지 않냐는 생각을 수년째 하고 있습니다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2-24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내 도서관! 부럽습니다^^
심채경 박사님 알쓸인잡에서 말씀하시는 것 보고 이 책 읽고 싶었어요.
웃으실 때, 심은하 배우 닮은 것 같더군요.
참 곱고 여리여리해 보이던데, 말씀 하시는 걸 들었을 땐 참 강단있어 보였어요.
여자 천문학자도 참 멋있어보였구요.

물감 2023-02-24 11:40   좋아요 1 | URL
다들 알뜰신잡 챙겨보시는군요? 저는 시즌2가 나온 줄도 몰랐는데 ㅋㅋㅋ
글을 생각보다 잘 쓰셔서 의외더라고요. 읽어보셔요 ㅋㅋ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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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피부 타입처럼 말투에도 웜톤과 쿨톤이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각자의 스타일을 인지하고 존중하자는 뭐 그런 거였는데, 그 작성자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자칭 인류학자인 내가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관찰하고 연구해 본 결과, 말이란 건 썩 믿을만한 게 못된다는 점이다. 이 말투라는 건 얼마든지 위장이 가능해, 쿨톤이고 메가톤이고 간에 그걸로는 상대를 판단할 수가 없다. 웃는 얼굴을 하면서 등 뒤로는 칼을 쥐는 것이 사회생활 아니던가.


하지만 글은 다르다. 말은 입술을 떠난 즉시 휘발되지만, 글은 손끝을 떠난 즉시 박제된다. 또한 머릿속에 떠다니는 조각들을 정제하여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글을 보면 필자가 어떤 사람일지를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람은 맘에 없는 말을 할 순 있어도, 맘에 없는 글을 쓰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가진 게 말뿐이다 생각되면 조용히 거리를 둔다. 반면, 글하고 가까운 사람에게는 저절로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어쩐지 나는 닫힌 사람이고 싶지 않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책을 잘 읽지 않는 한국인들이 그나마 읽는 게 자기계발서, 실용서, 과학도서다. 듣기만 해도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딱 그려지지 않는가. 그런데 간혹 이 척박한 땅을 뚫고 나오는 문학책들이 있다. 이번에 읽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그중 하나인데, 빨치산의 딸이 부친의 조문객들을 맞으면서 자신이 알던 것과 전혀 다른 아버지를 알아간다는 내용이다. 다소 무거운 소재를 작가는 덤덤하게 풀어놓는다. 빨치산의 집안 분위기는 어땠고, 바깥에선 어떤 대우를 받았으며, 출세나 결혼도 가로막는 꼬리표에 좌절했던 지난날들을. 십수 년의 옥살이에도 변함없이 빨갱이로 살다 가신 아버지. 불화와 탄식을 몰고 다니는 그의 사상은, 자식조차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의 철옹성이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다녀갔다. 아버지의 인맥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전혀 예상 밖이었다. 국가에 반기를 들고 민족을 팔아먹는다던 빨갱이의 죽음을 왜 다들 기념해 주는 걸까. 언제나 매정하고 인색했던, 주변과의 교류도 잘 없었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하나같이 아버지께 은혜를 입었다며 연신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 이제 딸은 ‘나‘의 아버지와 ‘모두‘의 아버지를 대조하여 기억의 오류를 찾아낸다.


출소 후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려던 아버지를 세상은 가만두지 않았다. 빨치산의 낙인을 찍고 연좌제를 시행해 집안 전체를 철저히 짓밟아버린다. 그렇게 온 가족이 피해를 입는데도 아버지의 신념은 아주 굳건했다. 다만 술에 취해 시대를 탓하고, 정권을 욕하고, 혁명 타령하는 게 전부였을 뿐. 이건 뭐 사회 부적응자의 구차한 변명 밖에 더 되는가.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조문객들은 아버지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상과 무관한 선행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래, 이 정도가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혁명 운동의 최선이었지 싶다. 여러 번의 배신과 상처에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아버지는 이 시대의 진정한 혁명가였다.


아버지의 해방은 죽음으로써 완성되었다. 빨치산의 사슬과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그리고 딸도 오해와 편견의 굴레에서 겨우 해방이 되었다. 당신의 뼈와 살이 재로 변한 다음에야 간과했던 사랑을 깨닫는 주인공. 화해를 시도하고 싶어도 아버지는 이제 여기에 없다. 하여 아버지께 바치는 소설로 용서를 구하는 빨치산의 딸, 정지아 작가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많은 독자들이 울컥한 건 이야기 자체로도 그렇지만, 문장마다 스며있는 작가의 열린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이 민감한 과거와 감정들을 하나로 엮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백의 시간을 가졌을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의하는 글을 쓴다. 그러나 정지아 작가는 자신에 대한 정의를 직접 내리기보다 독자에게 판단을 맡긴다. 난 이렇게 투명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참 좋다. 또 이런 분들이 각박한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는다. 부디 가정과 사회 모두 윈윈하는 언젠가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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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19 14: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류학자 물감님 제 mbti 나머지도 맞춰주세염

물감 2023-02-19 14:27   좋아요 1 | URL
istj요ㅋㅋ

은오 2023-02-19 14:32   좋아요 1 | URL
🫢 마지막 빼고 맞아요!! j처럼 보이는 요소도 꽤 있긴 한데 결국 제 하루와 지금까지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면 스스로 p라는걸 납득할 수밖에 없는.... 그렇습니다. 근데 세개 맞추신것도 신기하네요 인류학자 인정ㅋㅋㅋ

물감 2023-02-19 14:40   좋아요 1 | URL
방정리 잘 하시던데 p인 건 의외네요?
하긴 j들도 게으를 때 많죠 ㅋㅋㅋㅋ
자 그럼 잇팁만의 시니컬한 리뷰 자주 써주세요^^

공쟝쟝 2023-02-22 20:14   좋아요 1 | URL
난 방 정리 못하는 J ~~ !
물감님 투명한 글을 쓰는 저를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

물감 2023-02-22 21:11   좋아요 2 | URL
그럴게요!

은오 2023-02-22 21:1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02-19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요즘 엄청 읽히던데 좋은가봐요.
딸의 입장에서 끝까지 전향하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어요^^
투명하다, 좋으네요^^

물감 2023-02-19 18:36   좋아요 2 | URL
별 생각없이 읽었는데 의외의 감동이었어요.
화제가 된 책들은 거품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꼭 그렇지도 않은가봐요ㅎㅎ
원하지 않은 삶을 물려준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많았지만, 좋았던 기억마저 원망에 가리워있었다는 걸 깨달은 작가님의 라떼이야기 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승주나무 2023-02-19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의 해방이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뿌려졌기에 그 완성의 의미도 더 깊은 것 같아요. 저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리뷰를 쓰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글 잘 읽었습니다. 말은 휘발되고 글은 박제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물감 2023-02-19 18:52   좋아요 1 | URL
죽고서야 의미를 가진다는게 참 아이러니 하죠. 근데 세상은 더 아이러니에요. 자기밖에 모르는 자본주의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이웃과의 화평을 중시하는 아버지의 사상이 필요하다 생각도 들었거든요. 많은 생각들이 교차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승주나무 2023-02-19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자본주의적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삶은 희소가치가 매우 높은 반면, 실제 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많아서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할 것 같아요.

물감 2023-02-19 19:16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고것이 자칭 인류학자로서 풀어야 할(그러나 풀지 못할) 숙제입니다. 에휴...

coolcat329 2023-02-20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도 읽어보려고 했던 책이에요~~소문이 진짜였군요. 물감님 리뷰 읽고 꼭! 읽기로 맘 굳혔습니다.

물감 2023-02-22 20:15   좋아요 1 | URL
소문난 줄도 몰랐는데 운이 참 좋았네요.
작가님이 연배와 짬밥이 있어서 그런지 글맛이 대단했어요.
쿨캣님도 읽고 리뷰 써주세요 ㅎㅎ
 
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원래 벽돌책 다음은 얇은 책 읽는 게 국룰 아잉교. 그래서 사내 도서관을 갔다가 이 책이 있길래 빌렸다. 사실 나는 어린이/청소년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으나 문학수상작이면 볼만하겠다 싶더라고. 표지 그림대로 코뿔소와 펭귄의 이야기인데 이건 또 무슨 조합일까 해서 빠르게 읽어봤다. 어린이 책이라 유쾌한 내용을 기대했더니 오히려 어두워가지고 좀 의외였던.


코끼리 보육원에서 나고 자란 코뿔소 한 마리. 때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가정을 이루지만, 얼마 못 가서 밀렵꾼들에게 아내와 딸을 잃는다. 이후 어찌어찌해서 옮겨진 동물원이 정체 모를 폭발로 불바다가 된다. 그곳을 가까스로 탈출한 코뿔소와 펭귄 한 마리, 그리고 알을 담은 양동이. 이들의 발걸음은 어딘지도 모를 바다로 향했고, 결국 펭귄의 죽음으로 또다시 혼자가 된 코뿔소. 다행히 부화한 새끼 펭귄과 여행을 이어가지만 이번에는 코뿔소가 걸음을 멈추고 만다.


먼저 알아둘 것은, 집단생활하는 코끼리나 펭귄과 달리 코뿔소는 혼자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종마다 차이는 있어도 대개 그렇단다. 이 같은 태생의 코뿔소가 코끼리들과 지내면서 공동체를 배웠다는 점이 핵심이라 하겠다. 독립을 선언한 뒤로도 코뿔소는 더불어 사는 삶을 꼭 기억했다. 그래서 소중한 이들이 죽어 방황도 많이 했지만, 그때마다 곁을 내어준 누군가로 인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동물원을 떠나온 코뿔소와 펭귄. 두 친구는 종을 초월한 우정을 다진다. 그러나 펭귄은 죽고, 코뿔소는 또다시 혼자 남겨진다. 무엇보다 알을 맡아달라는 부탁은 코뿔소에게 난처한 과제였다. 그럼에도 그는 정성으로 알을 부화시킨다. 자신이 친구에게 입었던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고마운 마음을 새끼 펭귄에게 전해주게 된다. 보다시피 이 작품의 화두는 유대관계를 말한다. 코끼리와 코뿔소, 코뿔소와 펭귄. 모습이 전혀 다른 서로가 애정을 나누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다. 그것은 마음이 여유롭고 풍족한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힘없고 소외된 사회의 약자들까지도 얼마든지 사랑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랑에는 적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문구인데, 오래전에 들었던 이 말의 진가를 이제서야 깨닫고 있다. 코뿔소와 펭귄이 다르듯이 남들도 나랑 다르다는 걸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사랑의 모양과 방식은 전부 제각각이지만 유대감은 다 같은 성질이다. 지구상에 혼자 남은 흰바위 코뿔소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오늘은 나에게도 긴긴밤이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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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2-16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유명하죠~어린이 문학상 받았지만 어른들의 동화라고... 들었어요. 😊

물감 2023-02-16 10:08   좋아요 0 | URL
북플에서 자주 보이던 이유가 있었네요 ㅎㅎㅎ
짧고 굵은 임팩트의 작품들하고 다르게 담백해서 좋았어요.
자꾸 기분이 센치해지려 하네요. 봄이 와서 그른가... ^^

페크pek0501 2023-02-16 1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이민자들과도 화합하며 잘 지낼 수 있음을 상상할 수 있는 좋은 책이네요.
젊은이들의 노동력이 적은 한국으로선 이민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화합이 언젠가는
시대의 화두로 떠오를 수 있겠다 싶어요.
알라딘의 좋은 점 하나.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정보를 알 수 있음, 이에요. 잘 읽었어요.^^

물감 2023-02-16 14:16   좋아요 1 | URL
제가 생각한 범위는 글로벌하지 않았는데, 페크님의 댓글에 또다른 시각을 얻었네요. 역시 인생 선배님이십니다 ^^ 그렇죠, 타국인과의 화합에도 의미를 가지지요. 한국도 이제 단일민족이 아니니까요.
말씀하신 좋은 점은 양날의 검입니다. 구매비용이 계속 나간다는... ㅎㅎㅎ

북깨비 2023-02-16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런 국룰이 있었나요? 다독도 단짠단짠이 비결이군요. ㅎㅎ

물감 2023-02-16 16:44   좋아요 1 | URL
두꺼운 거 연속으로 읽었다가 슬럼프에 자주 빠져봐서요. 건강한 독서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입니다 ㅋㅋㅋ네박자 인생에는 강약 중강약 아니겠어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