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구라고는 단 둘 뿐이었지만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여전히 손이 컸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만들어도 온 동네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육개장을 끓여도 한 솥 가득이었다.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도 부전시장에 갖다놓고 하루 종일 팔아도 될 만큼 잔뜩 쪘다. 두 내외의 수입과 두 아들이 주는 용돈이 모두 식비로, 그것도 남의 식비로 들어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낙이기도 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왁자지껄 떠들면서 <훈이네 복덕방> 앞을 지나가는 해수와 친구들을 보자 아줌마는 또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해수야, 여 들어와서 수박 좀 먹고 가래이.”
“야들은요?”
“아이고, 딸아들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다 들어와라!”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아줌마는 선풍기를 그쪽으로 돌려주었다.
“이거 너거 집에서 산 수박이니까 실컷 먹으래이. 너거 아빠가 너거 먹여 살리려고 그래 고생을 한다 아이가. 날도 이리 더운데.”
형우라면 모를까 해수는 아빠가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게 딱히 부끄럽지 않았다. 더러 2반 반장은 과일장수 딸이라고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생선이나 연탄을 파는 것보다는 과일을 파는 것이 낫다는 게 해수 생각이었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달달한 수박이 해수의 생각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 같았다.
“좀 있으면 쌍꺼풀도 만들어준다던데.”
“해수 니, 나중에 진짜로 할 기가?”
“아이고, 야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이리 하노? 해수 니 눈이 어떻다고?”
“아줌마, 나 못 생겼죠? 언니도, 형우도 다 쌍꺼풀 있는데 나만 없어요….”
“아이고, 야 좀 봐라, 니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데.”
“사람들은 보통 안 예쁜 여자한테 귀엽다고 말해요.”
해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와중에도 입안에서 맴도는 수박씨를 혀를 놀려 추려선 톡톡 뱉어냈다.
“아이고, 훈이 아빠, 야 말하는 것 좀 봐요. 이것들은 지금 자기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니까요.”
“치이, 아줌마는 아줌마니까 그렇죠.”
진영이가 끼어들었고 다른 소녀들도 깔깔댔다. 기미로 뒤덮인 누리끼리한 얼굴에 뱃살이 두툼하게 찐 아줌마도 한 시절엔 열다섯 살 소녀였다는 걸 알기엔 다들 너무 어렸던 거다.
“아이고, 요것들아, 옛말에, 머리 좋은 여자 얼굴 예쁜 여자 못 따라 가고, 얼굴 예쁜 여자 팔자 좋은 여자 못 따라 간다고 했다. 사람은 다 타고난 복으로 사는 기다.”
“그래도 예뻤으면 좋겠다!”
“흠, 지금은 얼굴이 문제가 아니고 공부를 할 때 아이가? 중학생이 이래 놀아서 쓰겠나, 어?”
아저씨가 양손에 들린 신문을 살짝 내리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소녀들이 떠나자 아줌마는 수박 껍질을 치웠다.
“저녁엔 콩국수 어떻노?”
아저씨가 양쪽으로 펼쳐진 신문 뒤에서 말했다.
“그거 좋겠네요, 손도 많이 가고.”
“니도 참, 손이 많이 가서 좋을 건 또 뭐 있노?”
“그게 말이에요, 요새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딱 죽겠어요.”
“그래도 조금만 해라. 인자 먹을 사람도 없는데.”
“방금 왔던 얼라들은 뭐예요? 어차피 콩만 좀 많이 갈면 되는데.”
다음날 동네 사람들은 거의 다 <훈이네 복덕방>의 콩국수를 먹었다. 쫄깃쫄깃한 면이야 흔하지만 입안에서 아작아작 씹히는 고소한 콩가루가 이렇게 많이 든 콩국수는 돈 주고 사 먹으려 해도 힘든 거였다.
*
다음 해,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동생들도 다 한살씩 먹고 한 학년씩 올라갔다. 키도 조금씩 컸고 체중도 늘었다. 아니, 조금씩이 아니었다. 해수는 언제부터인가 나랑 키가 비슷해지더니 요 일 년 사이에 부쩍 커버려서 누가 봐도 언니처럼 보였다. 나는 기어코 150센티조차 넘지 못한 키를 원망했고, 해수는 키가 크면서 덩달아 불어버린 체중을 원망했다. 밤마다 <아이참>을 붙여도 도무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는 쌍꺼풀을 또 원망했다. 형우는 공부에 통 취미를 붙이지 못해 밖으로만 나돌았다. 마땅히 이 때문은 아니었지만 아빠는 주기적으로 술을 마셨고 그때마다 엄마는 바가지를 긁었다. 변변찮은 가재도구가 날아 다녔고 엄마가 울부짖었고 아빠가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는 나이를 잊고 엉엉 울었다. 집안은 늘 시끄러웠다.
하지만 우리 집과 겨우 몇 발짝을 사이에 둔 <훈이네 복덕방>은 조용하다 못해 고즈넉했다. 그곳은 숫제 시간을 먹지 않은 공간 같았다. 수험생이 된 나에게는 특히나 더 그렇게 여겨졌다. 엄마와 아빠는 새벽별을 보며 시장에 나갔고, 나는 그 새벽별이 사라지고 해가 뜰락 말락 할 때 아직도 자고 있는 두 동생을 버려두고 학교에 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을 학교에서 보내고 야간자율학습까지 마친 뒤 집에 오면 거의 자정이었다. 나와 친구들이 세 낸 봉고차는 정확히 <훈이네 복덕방> 앞에 섰다. 그 시각이면 복덕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래도 토요일에는 9시면 집에 오는 날도 있었다. <훈이네 복덕방>이 슬슬 문 닫을 채비를 했다. 아줌마는 안쓰러운 듯 혀를 끌끌 찼다. “인자 오나? 아이고, 공부가 뭐라고, 아를 잡네 잡아….” 내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목소리를 죽여 가며 아저씨에게 속닥댔다. “이래 캄캄한데 딸아 마중도 안 나오고 진수 엄마는 잠이 오는가…. 나는 저런 딸 있으면 밖에도 못 내놨을 거 같아요.” “오죽 피곤하면 그렇겠나?” “하긴….” 두 내외는 서글픈 눈길을 주고받으며 느릿느릿 집으로 들어갔다.
서울 가서 학력고사를 보고 돌아온 날, 나를 맞아준 것도 <훈이네 복덕방>이었다. 코끝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날씨가 매서웠다.
“진수야, 야야, 시험 잘 봤나? 여 들어 와서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먹고 가래이. 엄마는? 엄마가 같이 안 갔더나?”
아줌마는 나를 안으로 들이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복덕방 안의 훈훈한 공기 때문에 안경에 뽀얗게 서리가 끼였다. 나는 안경을 벗어 소맷자락으로 렌즈를 닦았다.
“같이 갔었는데요, 역에서 곧장 시장으로 갔어요.”
“그래, 너거 엄마가 억척이다, 억척. 몸보다도 마음이 더 피곤할 긴데. 우리 훈이 시험 볼 때도 내가 서울까지 안 갔나. 시험 보는 날은 해마다 와 이리 춥노! 택일을 영 잘 못하는 기라.”
“참, 여편네, 미신하곤. 어차피 다 끝난 거니까 진수 니도 오늘은 고마 푹 쉬래이. 진인사대천명이라고 그만큼 공부했으면 결과도 안 좋겠나.”
아저씨, 그만큼 공부 안 한 아이들이 어디 있어요!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왔지만 커피만 꿀꺽 삼켰다. 열아홉 살의 겨울은 그런 거였다. 어차피 아직 내 것도 아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애가 끓었다.
이듬해,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조그만 배낭을 짊어진 채 집을 나섰다. ‘상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내 짐도, 집안도 썰렁했다. 아빠는 사과를 사러 김천인지 상주인지 어디 산골에 가 있었고 엄마는 시장에서 어제 떼 온 과일을 팔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는 동생들은 일찌감치 어디론가 놀러 가버렸다. 골목을 나와 큰길로 들어섰을 때 <훈이네 복덕방>의 유리문이 열렸다. 아줌마가 기다렸다는 듯 조그만 꾸러미 하나를 들고 튀어나왔다.
“오늘 가제? 어제 저녁에 너거 가게에 갔었다 아이가.”
오지랖 넓고 인정 많은 아줌마는 꾸러미를 건네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줌마의 뽀얗고 작은 손은 마냥 따뜻했다. 하지만 정작 아줌마는 스웨터 하나만 달랑 걸친 채 잔뜩 움츠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집 떠나는 게 애초 꿈꾸었던 것과는 달리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던지, 나는 어젯밤부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어색하게 고맙다는, 어서 들어가시라는 말만 하고서 얼른 몸을 돌렸다. 봄이 언제 오려는지 바람은 차기만 했다.
통일호가 밀양을 지났을 때 꾸러미를 풀어보았다. 삶은 계란 세 개, 종이에 곱게 싼 소금, 반짝반짝 윤이 나는 사과 하나. 말로는 싱싱한 과일을 싸게 사려고 우리 가게에 간다고 했지만, 그 역시도 같은 동네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돈벌이를 해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음식과 술 냄새를 풍기는 시끌벅적한 객실 안에서 나는 계란을 까서 소금에 찍어 먹었다. 세 개를 연거푸 먹고 나자 목이 메서 사과를 아작아작 씹어 먹기 시작했다. 아빠가 김천인지 상주인지 어디 산골에서 사온 사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