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밤돌에게선 드문드문 연락이 왔다. 한데 그날에 무슨 규칙이 있지도 않았다. 이를 테면 부모 중 하나의 생일, 어버이날, 결혼기념일, 심지어 엉뚱하게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제삿날 등과 같은 특별한 날을 골라 전화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화 내용에 이렇다 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냥 전화해서 수화기를 든 채 묵묵히 있다가 생뚱하게 안부를 묻거나 작별인사를 하곤 끊었다.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싸가지 없는 자식들과 세상의 모든 성스러운 부모들의 관계와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 아들은 싸가지 없음의 정도가 좀 심하여, 지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집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P시를 경유할 일이 있을 때도 그랬다.
그가 집에 전화를 한 날 중 하루는 P시의 여관에서 밤을 보낸 날이었다. 그때 그는 깊은 계곡으로 강 낚시를 갔다 오는 길이었고, 여독을 풀기 위해 아가씨 하나를 불렀더랬다. 부모의 집으로 다이얼을 돌린 그 순간은 그의 하룻밤 정사가 절찬리에 막 진행 중일 때였다. 하필이면 그때 부모의 존재가 너무나 그리워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떨림을 노부부는 전화선 너머로 또렷이 감지했다. 그리고 이제 곧 아들이 돌아온 탕자의 모습으로 귀향하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들은 오지 않았고 그들의 믿음은 시간 속에 파묻힌 화석이 됐다.
그 사이에 밤돌의 동생들은 다 시집 장가를 갔고 노부부에겐 다섯 명의 손자손녀가 생겼다. 어느덧 칠순도 과거의 나이가 되고 팔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저축해놓은 돈과 연금이 있었기 때문에 노부부는 이제 그냥 그대로 죽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딱 하나, 이대로 눈을 감을 수 없는 이유를 찾자면 바로 밤돌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 그런데 지금 밤돌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정작 이렇게 되자 노부부는 “아이고, 내가 이제 눈을 감겠다!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는 말 따위는 죽어도 할 수 없었다.
“아이고, 이 썩을 놈아! 그래, 어미아비 버리고 섬에서 혼자 사니 좋냐? 그것도 장남이란 놈이! 에라이, 이 후레자식 같은 놈! 누굴 닮아서 이 모양이냐, 엉?”
보시다시피, 아버지는 밤돌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처럼 구질구질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아들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쥐어 패기 시작했다. 아들과의 해후 덕분에 갑자기 회춘해버렸는지, 힘까지 불끈 솟는 모양이었다. 그는 실로 힘이 셌지만 아들의 근육으로 중무장한 몸 방패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체로 이 부자는 다들 기골이 장대했다. 그 힘을 그냥 눌러두는 것도 고통이었던 지라, 아버지는 이참에 몸도 풀 겸 아주 작정을 하고 아들을 손봐주었다. 아들은 아들대로 이것을 일종의 숙제로 생각하여 간지러움과 성가심을 참아주었다.
이 일이 끝나자 어머니의 성화가 시작했다.
“아이고, 우리 새끼, 보석 같은 내 아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살이 쪽 빠졌네. 세상에, 이마에 이 주름하며 새치까지! 폭삭 늙었구나, 폭삭. 네가 절대 늙을 얼굴이 아닌데,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어서 가자! 이 엄마가 우리 밤돌이한테 맛있는 거 해줄 게. 뭐 먹고 싶니? 광어 회? 해삼이나 멍게는 어떠냐? 아휴, 내 정신 좀 봐! 회는 질리도록 먹을 텐데, 그럼 갈비찜을 해주랴?”
노부부에게선 바로 ‘어제’ 집을 나간 아들을 맞이하며 부산을 떨었다.
떡붕어 아저씨, 아니 밤돌의 기분은 그랬다. 노숙자와 노인 무리에서 부모를 알아본 첫 순간, 내부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잡티 없는 감격이나 반가움,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주기적인 발작처럼 맛보는 죄책감, 애써 만들어준 생명을 곱게 키워가지 못했다는 회한 등등. 감정은 늘 연속적이고 뒤범벅이라 뭐라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 격정의 파고가 지나자 해묵은 구토감이 밀려왔다. 병아리 시절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다 늙은 병아리를 앞에 두고 세트로 설쳐대는 촌닭 같은 부모의 모습에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고향집까지 가고야 말았다.
*
그것은 세월의 흐름을 완벽하게 빗겨간 영차원의 공간이었다. 특별히 더 추레하고 후줄근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딘가는 조금씩 변화를 주고 단장했기 때문이리라. 사람은 늙는데 집이 늙지 않는다는 것도 얄궂었다. 이 공간에는 떡붕어 아저씨는 없었다. 그저 타임머신을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가 어처구니없이 자기 집에 불시착해버린 중장년의 백수 김밤돌이 있을 따름이었다.
어머니는 혼자 환희에 들떠 결정한 대로 갈비찜을 내왔다. 사실 어제저녁에 양념을 해 재 둔 것이 있었다. 믹서에 간 양파와 배, 밤, 단호박, 은행, 당근 등이 들어간 갈비찜은 척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하지만 밤 한 조각을 입에 넣자마자 밤돌은 인상을 썼다. 지나치게 달고 또 지나치게 짰다. 갈비 하나를 뜯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밤돌은 졸지에 과거로 회귀했다.
“엄마! 음식이 이게 뭐예요? 간도 안 맞아, 고기는 고무줄처럼 질겨, 어떻게 먹으라는 거예요?”
“이 놈이 지금 어디서 반찬 투정이야? 내 입엔 딱 맞구먼. 간도 적절하고 잘근잘근 씹으니 육즙도 많이 나오고.”
옆에서 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최근 그는 자식들의 돈을 자발적으로 갹출 받아 이빨을 왕창 새로 심었다. 그 비용은 실로 천문학적이었다. 어떻게든 뽕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질긴 음식에 열광하는 황당한 버릇이 생겼다. 음식의 간에 관한 한, 두 살 터울인 노부부가 공히 혓바닥이 맛이 갔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