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혹은 젊은 날의 초상
-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
1. 요절한 천재 시인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1814년 10월 3일(현재력 15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나서 1841년 7월 15일(현재력 27일) 퍄티고르스크에서 죽었다. 일부러 운을 맞춘 것 같은 이 생몰년도와 그의 전기에서 유달리 문제적인 것은 죽음이다.
(작품의 특성상, 뭐, 여러 정황상, 완전 미남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흑흑, 아무리 봐도 좀팽이(?) 같이 생겼다는...-_-;;)
<우리 시대의 영웅>의 주인공 페초린은 그루시니츠키를 결투에서 죽였지만 소설의 저자인 레르몬토프에게는 다소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1841년, 당국은 레르몬토프의 방종한 생활을 종식시키고자 48시간 이내에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캅카스로 가라고 명령한다. 그는 죽음이 임박했다는 음울한 예감에 젖어 4월 14일 길을 떠나는데, 허약한 몸으로 긴 여행을 감당하다가 그만 열병에 걸린다. 완치될 때까지 퍄티고르스크에 머물러도 좋다는 당국의 허가가 떨어진다. 가뜩이나 그에 대한 반감과 질투가 만연한 가운데, 7월 13일 어느 저녁 모임에서 레르몬토프는 동창생이기도 한 마르티노프 소령과 말다툼을 벌인다. 마르트이노프는 그가 던진 “농담과 말장난”을 공식적 이유로 내세워 결투를 신청한다. 이틀 뒤인 7월 15일 저녁 6시에서 7시 사이, 마슈크 산비탈에서 두 명의 젊은 장교가 소설 속 한 장면처럼 결투를 한다. 그리고 레르몬토프는 마르티노프의 총을 맞고 죽는다. 그때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때문에 그의 전기와 연대기는 페테르부르크와 캅카스 사이의 이동을 비롯하여 온갖 소소한 사건을 다 동원해도 극도로 짧아질 수밖에 없다.
(중략)
1841년 2월, 아르세니예바의 집요한 청원 끝에 레르몬토프는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그만 퇴역하여 문학에만 전념하고 잡지를 간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곧 사교계 생활에 환멸을 느끼던 차 당국의 명령에 의해 다시 캅카스로 떠난다. 여로에서 주옥같은 시(「지루하고 서글퍼」, 「나 홀로 길을 나서네」, 「예언자」 등)를 남긴 채, 앞서 언급했듯 퍄티고르스크에서 사망한다. 그의 유해는 타르하니로 옮겨져 1842년 4월 23일, 아르세니예프 가족묘에 이장된다. 벨린스키는 “이 새로운, 막대한 손실로 인해 가뜩이나 빈한한 러시아 문학이 고아가 되었다.”라며 그의 죽음을, 또한 러시아문학을 애도했다.
(나보코프가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그가 쓴 서문이 참 마음에 듭니다...^^;)
2. 청춘, 혹은 젊은 날의 초상: <우리 시대의 영웅>
<우리시대의 영웅>은 당시 유행하던 연작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덧붙여 두 겹, 세 겹으로 이루어진 액자소설이기도 한데, 이는 단순히 검열에 대한 두려움 탓만은 아니다. 일찍이 시인으로서 명성을 날리던 레르몬토프였지만 소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바짐」, 「공작부인 리곱스카야」 등은 모두 수작의 징후를 보여주지만 어느 것 하나 완성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소설 습작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시대의 영웅>을 써가며 레르몬토프가 유달리 고민했던 것은 구성과 서사 구축의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작가는 총 세 명의 화자(여행자 ‘나’, 막심 막시미치, 페초린)를 등장시켜 ‘밖’에서 ‘안’으로의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고 각각의 단편을 창작 시기는 물론이거니와 작품 속의 시간과도 거의 어긋나게 배치한다. 두 개의 서문까지 포함하여 총 일곱 개의 텍스트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캅카스의 젊은 장교 페초린, 즉 ‘우리시대의 주인공(영웅)’이다. 말하자면 <우리시대의 영웅>은 제목과 구성이 보여주듯, ‘주인공(영웅)’을 찾아가는 소설이다. 그렇다면 페초린, 그는 누구인가.
(벨라)
「벨라」 속의 페초린은 우선, 비극적인 연애담의 다분히 신비화된 주인공이다.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 염증이 난 이 청년 귀족 장교는 캅카스의 자연을 상징하는 족장의 딸 벨라에게 반한다. 결국, 카즈비치의 말을 미끼로 벨라의 동생을 꼬드겨 벨라를 납치하도록 하고 벨라의 사랑을 얻는 데도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이내 시들시들해지고, 그 틈에 애마를 빼앗긴 분노, 벨라를 향한 해묵은 열정, 페초린에 대한 질투 등에 사로잡힌 카즈비치가 벨라를 살해한다.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이자 ‘순진’한 막심의 눈에 한없이 이상하게만 보이는 페초린에게서 여행객 화자는 당시 러시아에 만연한 바이런주의의 한 전형을 본다. 실제로 그의 눈이 포착한 페초린의 초상화(「막심 막시미치」), 특히 웃을 때조차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즉 웃지 않는 그 눈은 낭만주의 문학에서 공식화된 바이런주의의 표식(환멸)처럼 읽힌다. 막심과 조우한 페초린의 배은망덕한 태도와 냉랭한 반응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페초린의 일지」는 그의 치기어린 염세주의와 냉소주의의 실체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사교계의 한 장면(?). 레르몬토프가 그린 그림.)
가령 「공작 영애 메리」에서 페초린은 스스로를 내부에 ‘두 명의 인간’이 들어 있는 이른바 분열된 인간으로 정의한다. 즉, “한 명은 삶이라는 단어의 온전한 의미대로 삶을 살고, 다른 한 명은 그에 대해 사유하고 그를 심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작 영애 메리」 속의 페초린은 일련의 사건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기록하는 작가로서 자기반성과 자기해부의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소설의 주된 골조인 연애와 결투도 그 나름대로 흥미진진하다. 페초린은 유희 차원에서, 말하자면 가짜 사랑을 진짜 사랑인 양 연기하며 메리를 유혹하지만, 뜻밖에도 오랜 연인이었던 베라가 나타남으로써 진짜 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진짜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 이젠 유희가 아니라 거의 목숨을 건 연극판을 벌인다. 이렇게 몇 개의 기만이 축적되어 크나큰 비극으로 이어진다.
(바이런은 정작 시보다는 이 인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것 같아요 @__@)
실상 그루시니츠키와의 결투에서 페초린이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마땅히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기 때문, 궁극적으로는 그가 이 소설의 주인공-영웅이기 때문이다. 페초린은 그루시니츠키에 대해 “그의 목적은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이 말은 그 누구보다 페초린에게 해당된다. 이른바 모방 욕망은 이 소설의 거의 모든 인물들을(심지어 바이런을 영어로 읽는 메리까지) 감염시킨 일종의 병이다. 물론 페초린은 자신의 이 모방 욕망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자신이 주인공-영웅인 양 굴지만 실은 운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애처로운 형리나 배신자의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 “5막에 꼭 필요한 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바이런 경”과 같은 ‘천재’가 되고자 하는 꿈을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타만」과 「운명론자」는 ‘천재’의 조짐을 보여주는 수작이기도 하다.
(결투. 역시 레르몬토프의 그림.)
특히 「타만」은 훗날 체호프가 극찬한바, 길지 않은 분량에 흥미진진한 인물들, 긴장감 있는 이야기 전개,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 등 단편소설 시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시대의 영웅>에 수록된 작품 중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다. 「타만」의 전반부는 낭만적이다 못해 거의 신비스럽다. 부정한 기운이 감도는 외딴 집, 불길한 ‘귀머거리’ 노파, 우울한 ‘장님’ 소년, 비밀로 중무장한 아리따운 처녀, 바람을 타고 저 세계로 떠나는 배, 달밤의 바닷가 주위로 펼쳐지는 모험들, 엿듣기-엿보기-미행 등은 하나같이 고딕소설을 연상시키며 예사롭지 않은 사건을 예고한다. 하지만 바로 그 이면에는 서로 모순되는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
(카프카스 추억. 유화. / 역시 레르..프의 그림. 재주가 대단하지요?^^;)
가령, 귀머거리 노파는 귀가 멀었건만 자기에게 필요한 말은 잘만 알아듣고, 장님 소년은 이름 그대로 눈이 멀었건만 야밤의 바닷가도 거침없이 잘만 걸어 다닌다. 페초린은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자기 스스로 만들어놓은 낭만적 코드에 매인 나머지, 또한 처녀의 아름다움에 홀린 나머지 겉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 결국 ‘루살카’에게 속아 물에 빠져죽을 뻔했을 뿐더러 물건마저 모조리 도둑맞는 어처구니없는 봉변을 당한다.
대체로 「타만」의 페초린은 「벨라」와 「공작 영애 메리」에서 환멸과 악마주의의 화신처럼 신화화됐던 그 페초린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타만」의 등장인물로서의 페초린이 바보-장님으로 전락하는 순간은 화자-관찰자로서의 페초린이 뛰어난 단편소설 작가로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즉, 스스로 ‘주인공-영웅’이기를 포기하는 순간, 오히려 그는 소설적 인물로서도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또한 작가로서도 더 뛰어난 지위를 확보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계속)
--- <우리 시대의 영웅> 역자해설
-- 비교적 절박한 필요에 의해, 낭만주의와 낭만주의의 언저리를 돌고 돌아, 다시 레르몬토프를 읽으려 합니다. '도.톨이'와 비교할 수는 없으나, 모든 작가, 작품은 다 자기만의 자리가 있는 듯합니다. 레르-프와 그의 <우리 시대의 영웅>을 상당히 잘 읽어낸 사람 중 하나가 시인 심보선인데요(문학동네 네이버 카페 ), 정녕 그의 말대로 레프-프는 소설을 일기처럼 쓴, 그게 매력적인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