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논문을 통해 엘리엇의 쓴맛 단맛을 다 보았다고 판단한 삼촌은 일찌감치 주제를 바꾸었다. 파고 또 파도 마르지 않는 샘물, 셰익스피어였다. 주제 하나를 잡아 몇몇 작품을 연구해볼까, 아니면 한 작품을 골라 집중적으로 해부할까. 이 고민을 하는 동안 한 학기가 흘렀다. 아무래도 후자가 낫다는 결론에 도달, 작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비극과 희극과 로맨스와 역사극 중 어떤 걸로 할까. 돌고 또 돌아 저 유명한 햄릿으로 낙착되는 데 꼬박 세 학기가 지났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나는 삼촌 집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삼촌은 강의가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삼촌의 책상 위에는 원서들이 여보란 듯 펼쳐져 있었다. 책장에 입추의 여지도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도 전부 그렇게 두툼하고 묵직한 원서들이었다. 녹초가 되어 귀가하는 삼촌의 손에도 원서가 들려 있었다. 부질없이 손때를 탄 어딘가 처량해 보이는 <Hamlet>. “To be, or not to be.” 어느덧 삼십도 후반으로 접어든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도 아닌, 그 문구의 해석을 담은 무수한 논문과 연구서를 정리하느라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그 사이 삼촌의 시간의 돌쩌귀가 왕창 어긋나 버렸다. “The time is out of joint.”

몇 년이 지나도록 논문이 쓰이지 않자 삼촌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놈의 박사, 그놈의 교수는 남한테 주고 영어 강사로 살자, 그렇게 자본금을 모아 마흔 다섯이 되기 전에 학원을 하나 세우자. 그러고서 애매하게 발가락 몇 개를 걸어두었던 대학을 박차고 나왔다. 할아버지 수준의 지지부진한 늦깎이 연구생보다 여전히 젊은 축에 들어가는 관록 있는 강사가 몇 배는 더 상쾌해 보였다. 실제로도 그의 삶은 상쾌했다. 그럴수록 삼촌에겐 더 잘 사는 동네, 더 넓은 아파트, 더 질 좋은 음식이 필요했다. 그 요구를 삼촌은 간당간당 만족시켰고 그 간당간당함을 즐겼다. 다른 변수가 없었더라면 그의 한 세월은 그렇게 끝났을까.

유나이티드 킹덤에서 누군가가 날아왔다. 영문학도 아닌 영어학 전공에 교수법까지 공부한데다가 어엿한 박사였다. 그런 자가 대학에 자리 잡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학원 판에 뛰어든 것이다. 학원이 통째로 흥분했다. 삼촌은 자신의 성실함과 노회함,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입시제도에 대한 방대한 정보력을 믿었다. 그 자신감으로 네이티브 스피커나 다름없는 박사 강사와 맞섰다. 패배가 예정된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삼촌은 오랜 시간, 호기롭게 저항했다. 질기게 버팀으로써, 그리하여 참담한 파국을 맞이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듯. 정녕 서사는 몰락에서 시작된다.

 

 

사십대의 삼촌은 거창 군민이었다. 그는 영강 근처의 새 아파트에 살면서 고물처럼 낡은 엘란트라를 몰고 거창 일대의 소도시를 돌아다녔다. 교육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적어도 그런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부산에서 이름을 날리던 명강사의 출현은 가뭄의 단비였다. 게다가 바람을 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귀향한 것이라지 않나. 다들 나가려고만 하는 세상에서 다시 들어오는 데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는 누구나 알았고, 이 점을 높이 쳐주었다. 영어 선생으로서 그의 주가는 나날이 치솟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삼촌은 비교적 건강한 생활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숙모의 얼굴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커다란 두 눈은 허허로운 구멍처럼 덩그러니 뚫려 있었다. 부산 토박이인 그녀가 일거리도, 친척도, 친구도 없는 산간벽지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됐다. “너거 삼촌 평생 한 될까봐 들어가긴 했지만 애들 대학만 가면 나도 거창 나올라고.” 삼촌은 그녀 옆에 헐렁하고 엉성한 자세로 앉아 초연과 달관의 표정을 지었다. 각각 엄마와 아빠를 쏙 빼닮은 두 딸은 부모의 찬란했던 한 시절을 다부지게 보여주려는 듯 너무나 예뻤다. 인간의 몰락과 상승의 찰나적인 접점을 포착한 것 같은 풍경에 눈이 시려왔다. “거창에도 있을 건 다 있어요.” 큰 딸은 쌍꺼풀이 크게 진 영롱한 두 눈을 굴리며 이런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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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 어젯밤에 만들어둔 당근 브로콜리 진밥을 꺼낸다. 끓인 물을 부어 찬기를 없앤다. 엄마가 부산을 떨자 아이도 흥분한다. 그러나 쟁반에 담겨온 물그릇과 밥그릇을 보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밥숟가락을 입에 갖다 대니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는다. 한 손으로 머리를 쥐고 억지로 먹이려고 하자 소리를 지르고 몸을 비틀고 팔을 마구 내젖는다.

건우 밥 먹기 싫어? 그럼 엄마도 건우 밥 안 줄 거야.”

모자는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대치한다. 잠깐 움직임을 멈추었던 아이는 한 손을 들더니 쟁반으로 가져간다. 그러고는, 엎을 줄 알았는데, 저리로 슬쩍 밀어내는 것이다. “으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기까지 한다.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엄마가 냉장고의 쪽문을 여는 모습을 보자 아이의 목소리와 표정이 금세 달라진다. “, !” 격렬한 기쁨 뒤에 어설프지만 ! !” 소리도 들린다.

치즈 한 장을 바닥내고 밥 반 공기를 비운 다음 나른한 포만감에 젖어 엄마 품으로 안겨드는 아이. 이 아이가 나의 둘째 아이 건우이다. 아들이다. 첫 아이는 딸이고 이름은 우진이다. 우진이는 예정일보다 두 주 빨리 태어났고 8개월이 지나면서 걸음을 떼고 돌을 넘기고는 뛰어다녔다. 건우는 예정일보다 닷새 늦게 태어났고 십오개월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기고 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생길까? 성별? 딸아이는 빠르고 남자아이는 늦다고들 한다. 순서, 즉 첫째냐, 둘째냐? 보통 첫째는 느리고 둘째는 빠른데, 그 이유는 말 그대로 둘째이기 때문, 즉 첫째의 행동을 모방하기 때문이란다. 몸집의 차이? 몸집이 작으면 발달이 빠르고 몸집이 크면 그 반대라고들 한다. 그러나 실제로 두 아이가 생겨나 자라가는 과정은 이런 인과론을 지지해주는 척하면서 의뭉스럽게 비켜간다. 아니면, 엉성하고 느슨한 우연론의 망 밑에 촘촘한 인과론의 고리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

 

4시가 훌쩍 넘은 시각, 건우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을 나선다. 우진이가 막 어린이집에서 나온다. 셋이 함께 근처 부동산에 들렀다가 놀이터로 간다. 우진이는 말을 탄다. 시커먼 때가 낀 노란 플라스틱 말인데 정말 볼품없는 생김새이다. 그 옆에는 시소가 하나 있다. 열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소녀가 한 쪽에 앉아 있다. 얼굴이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맞은편에는 늙은 엄마인지 젊은 할머니인지 헷갈리는 중년 여자가 앉아 있다. 둘이 함께 춤추듯 시소를 탄다. 그 소리에 맞추어 건우가 시나브로 잠이 든다.

우진이가 말에서 자동차로 옮겨간다. 역시나 시커먼 때가 낀 볼품없는 빨간 플라스틱 자동차이다. 시소를 타던 소녀가 큰소리로 엄마!”라고 외치며 뭐라고 옹알댄다. 순간, ‘다운증후군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임신 중에 받았던 각종 검사와 그때마다 정도의 차이를 두고 수반되었던 불안이 상기된다. 의학은 모든 것을 인과론으로 환원하지만, 본질상 그래야 하지만. 소년들이 돌멩이처럼 굴러와 파란 시소와 노란 말과 빨간 자동차를 몽땅 차지한다. 모녀의 행복한 시소 놀이도 끝난다. 여전히 자고 있는 건우도 깨울 겸 유모차를 조심스레 밀며 슈퍼마켓에 간다.

찬거리를 사는 동안 잠에서 깬 건우가 칭얼댄다. 허기가 진 탓도 있을 것이다. 진짜 허기가 졌고 자기가 허기가 졌음을 아는 우진이는 대놓고 짜증을 낸다. 애호박과 표고버섯과 두부를 유모차 밑의 광주리에 넣고, 칭얼대는 작은 아이는 등에 업고, 짜증내는 큰아이는 유모차에 태운다. 볼썽사나운 귀갓길이다.

 

9시를 넘긴 시각. 스무 평 남짓한 아파트, 우레탄 덮개 밑에 모래를 감춰놓은 놀이터, 공터와 잔디밭과 나무 벤치가 있는 구청 앞, 매일매일 축산물과 수산물과 채소 중 하나를 싸게 파는 슈퍼마켓 사이를 오가며 그리는 동선이 마무리되었다. 어둠이 내렸고 아이들이 잠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 움직임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이 상황이 너무 좋아 얼마간을 그렇게 있다. 인스턴트커피 몇 알을 뜨거운 물에 녹인다. 코를 간질이는 뜨거운 기운과 향기, 혀끝에 와 닿는 옅은 커피 맛. 다시금,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 움직임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상황이 너무 좋다. 너무 좋아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다. 아무 데도 가지 않고서 전주로 간 남편, 거창의 산골로 들어간 삼촌, 코알라와 캥거루의 나라로 떠난 69년생 우연이, 값싸고 질 좋은 커피콩을 찾아 우간다와 네팔과 페루를 오가는 69년생의 옛 남자 친구를 되는 대로 마구 생각한다.

 

3.

 

내 기억 속의 용태 삼촌, 즉 막내 삼촌은 항상 대학생이었다. 다른 삼촌들과는 달리 키가 훤칠 크고 몸매가 늘씬했으며 깨끗하게 면도한 얼굴에는 풍성한 턱수염과 구레나룻의 파르스름한 뿌리자국이 도드라졌다. 우리 집에 얹혀사는 처지임에도 삼촌은 왕자처럼 늠름하고 성주처럼 당당했다. 단층짜리 주택에 방 두 칸을 빌려 쓰는 우리 집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향긋한 비누냄새를 풍기는 미남의 영문학도. 이 초상화를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소품이 그의 손에 들린 한 권의 양서였다. 책은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햄릿맥베스였고 등대로떠나는 율리시스”,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었다.

영문학도는 대학에 오래 머물렀다.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얄궂은 작품이 그의 연구 대상이었다. 석사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삼촌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이년 쯤 뒤에는 얼굴이 계란처럼 갸름하고 쌍꺼풀이 크게 진 예쁜 언니와 결혼했다. 뽀얀 피부에 젖살이 다보록한 그녀는 삼촌 강좌의 수강생이었다.

숙모가 뱃속에서 둘째를 키우고 있을 때 삼촌은 거의 사오년간 붙들고 있던 석사논문을 끝냈다. 이른바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석사학위를 따고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그의 청춘도 저물어갔다. 처자식이 딸린 삼십대 가장, 육아와 가사에 시달리는 서른을 목전에 둔 아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망졸망 커가는 두 딸, 방 두 칸의 전세 연립 주택. 삼촌은 모든 희망을 박사논문에 걸었다. 일단 쓰기만 쓰면 박사논문이고 제출만 하면 학위를 따는 것이고 학위만 따면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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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저 편에서 건져 올린 연인과 가족의 초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뒤라스, <연인>

 

 

 

 

 

 

 

 

 

 

 

 

 

 

 

 

전쟁이 끝나고 몇 해가 흘렀다. 몇 번의 결혼과 몇 번의 이혼에서 아이들을 낳고 몇 권의 책을 펴냈을 즈음이었다. 그가 부인과 함께 파리에 왔다.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요. 그녀는 목소리에서 이미 그인 줄 알았다. (중략) 그는 겁을 먹고 있었다. 예전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리는 음성 속에서, 갑자기, 그녀는 잊고 있던 중국 억양을 기억해 냈다. (중략)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136-137)

 

이런 말로 끝나는 <연인>은 물론 연애소설이다. 두 연인 모두에게 이국인 베트남, 오직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중국인 거리의 집, 열다섯 반 나이의 가난한 프랑스 소녀와 삼십대 후반의 부유한 중국인이 만들어내는 대조의 효과, 무엇보다도 사랑에만 몰입하려는 의지 등. 상당히 절제된 문체에 간접화법이 주를 이루기는 하나,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애초부터 미래를 꿈꿀 수 없는(혹은 그러지 않으려는) 그들의 열애는 더욱더 낭만적인 색채를 띤다. 1984, 소녀는 이미 노인이 되었고, 이렇게 설정된 화자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첫 사랑, 아니 첫 남자의 추억은 극적이고 관능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나의 삶은 아주 일찍부터 너무 늦어버렸다. 열여덟 살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버렸다. 열여덟 살과 스물다섯 살 사이에 내 얼굴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갔다. 열여덟 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 (중략) 늙어 간다는 것은 가혹했다. 나는 늙음이 내 얼굴에 찾아와 내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했다. 얼굴 모양이 일그러지고, 두 눈은 더 커지고, 시선은 더 슬픈 빛을 띠고, 입 모양은 더 고집스러워 보이고,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었다. 그런 변화에 진저리치기는커녕 나는 오히려 내 얼굴의 노쇠 현상을 마치 이야기의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 하는 것 같은 호기심을 품고 지켜보았다.(10)

 

노인은 구태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엄정하게 배치하려고 하지도, 기억의 빈 곳을 메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추억은 펜을 따라 자유분방하게 흘러가 제멋대로 겹치기도, 엇갈리기도 한다. 소녀의 조숙을 넘어선 조로는 물론 엄밀한 의미의 늙음이 아니라 그 당시 소녀가 감당한 욕망경험’, 그 크기와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성장기의 기억 속에 외딴 섬처럼 자리 잡은 이 사랑의 추억은 실은 소녀를 옥죄던 현실과 얽혀 있다. 다름 아니라 가족이다.

 

안녕, 잘 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의 인사는 결코 나누지 않는다. 고맙다는 인사도.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말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말없이, 멀찍이 떨어져 산다. 돌로 된 가족이다. 어떤 접근도 불가능한 두꺼운 퇴적물 속에서 화석이 되어 버린 가족이다. 날마다 우리는 자살을, 혹은 살인을 기도한다. 우리는 서로 말을 걸지도 않지만 보지도 않는다.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시선을 돌려 버린다. 바라본다는 것은 한순간 그 대상을 향한, 그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불행에 빠지는 행위이다. 누군가를 바라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그 시선에 합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그는 불명예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다. 대화라는 단어는 허영이다. 이 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어휘는 수치와 자만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68-69)

 

심각한 도벽과 폭력적 성향에 아편까지 시작한 망나니 큰 오빠, 그와 정반대로 계집애처럼 연약한 작은 오빠, 무엇보다도 큰아들을 지나치게 편애하는 어머니. “나는 내 가족들에 대해 많이 썼다. 하지만 그렇게 쓰는 동안에도, 그들, 나의 어머니와 오빠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 주위에서, 다가가지 않고서 그 사물 같은 인간들 주변에서 글을 썼다.”(14) 그들로부터 공간적, 시간적 거리를 유지하며 글을 씀으로써 사물같은 그들을 인간으로 만들고 동시에 그녀 자신도 저 애증의 굴레로부터 벗어난다. ‘연인에 대한 그녀의 태도도 비슷하리라. 기억 속을 헤적이며 글을 쓰는 행위만이 우리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려줄 수 있으니까.

 

이런 불멸성이 살아 있을 때에만, 삶은 불멸의 것이 된다. 불멸성이 삶 속에 있을 때, 그것은 길게 사느냐 짧게 사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또 다른 그 무엇인 것이다. 불멸성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하는 것도, 불멸성은 정신의 삶과 함께 시작되어 그것과 함께 끝난다고 말하는 것도 똑같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불멸성은 정신에도 관여하고 또 바람을 쫓아가는 것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사막의 죽은 모래들,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보라. 불멸성은 거기로 지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거기에 머물렀다가 우회한다.(125)

 

 

-- 네이버캐스트

 

-- 오랜만에 뭘 올릴까 찾아보니, 이런 것도 있더라. 뒤라스의 소설은 항상 기대 이하(?)였는데, 그녀의 (너무나 개성 있는!) 얼굴에서 풍기는 포스가 너무 강한 탓인지도 모르겠다..@_@

뒤라스의 <연인>은 저 글을 쓰려고 처음 읽었다. 그러니까 소설 이전에 영화가 먼저 있었는데, 대학 시절에 본 제인 마치 주연의 <연인>은 (학력고사 치고 나서 본 <원초적 본능>에 이어) 가장 '야한' 영화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소설을 읽은 다음 오랜만에 다시 보니 역시나 야했지만(^^;) 연애 라인보다는 가족소설적 측면이 더 눈에 들어오더라. 덧붙여, 유학 시절 만났던 베트남 친구들에 대한 기억(그 흔적은 <내 아내의 모든 것>에 수록된 한 단편에 좀 남아 있다) 때문인지 베트남의 풍경.

 

 

 

 

그리고 공간적 배경 때문에 비슷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이 영화! 카트린느 드뇌브는 <쉘부르의 우산> 시절보다 중년 이후가 더 멋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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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론과 인과론

 

 

 

1.

 

삼촌의 귀향에 대한 얘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집을 아주 예술적으로 지어놨더라.”

이런 말로 아빠는 운을 뗐다. 그 예술적인 집을 짓느라 6천만 원의 거금이 들어갔단다. 아이러니는커녕 동경이 십분 배어나오는 어조였다.

사는 것도, 뭐라 카꼬, 억수로 예술적이더만.”

삼촌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책상 앞에 앉는다. 최근에는 희랍어를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전에는 텃밭을 가꾸고 오후가 되면 차를 몰고 읍내로 나간다. 늦은 저녁, 텃밭에서 거둬들인 것을 다듬고 다시 책상으로 간다. 어둠이 내리면 기다렸다는 듯 잠자리에 든다.

용태가 돈도 어북(어지간히) 벌었놨는 갑더라. 딸들도 다 컸겄다, 차도 있겄다, 냉장고도 있겄다, 에어컨도 있겄다. 옛날에 우리 살 때랑 같나.”

그 옛날, 그 자리에는 우리 집이 있었다. 부산의 달동네로 올라가기 위해 정든 고향집을 버린 아빠의 눈에 삼촌은 해탈한 지식인, 진정한 영웅이었다.

엄마 얘기 속의 삼촌은 영 딴판이었다.

마누라도 없이 그래 혼자 불쌍하게 살더라.”

예술적인 집은 졸지에 귀신이라도 나올 법한 폐가로 탈바꿈했다. 먹을거리가 풍성한 초여름도 시련의 도가니가 됐다.

혼자 저카고 있으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안 카나. 보리밥이나 콩밥에 오이나 고추 같은 거 그냥 생 걸로 먹고. 나보고 반찬이라도 해다 주라 카지만

이어지는 엄마의 말은 시동생의 뒤를 봐줄 수 없는 형수의 가식적인 변명이었다. 시부모 봉양은 물론 중고교생 시동생들의 뒤치다꺼리까지 도맡았던 젊은 맏며느리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 끝에 일반론도 하나 도출되었다.

인생 다 살아봐야 안다 카더니, 용태가 저리 될 줄 우찌 알았겠노?”

첩첩산중에 혼자 방치된 괴상한 중년 기러기. 청승과 궁상도 저 정도로 떨면 나름 예술이려나.

 

삼촌의 운명에 우연론을 적용할까, 인과론을 적용할까. 옛 남자 친구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던져본 질문이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서 결혼과 동시에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가 학교를 다니는 대신 적도 한가운데로 떠난 남자. 우간다를 다녀온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위도 25도 안팎, 커피벨트의 몇몇 나라를 오가며 커피콩을 사왔다. 공정무역이 그의 방랑벽에 명분을 제공해 준 것 같았다.

 

2.

 

금요일 오후, 걸레질 하느라 바쁜 손에 메시지가 훼방을 놓는다.

전주 출장. 내일 일어나자마자 출발한다!^^”

둘째 출산을 전후하여 착실하게 곪아온 고름이 뭉툭한 손톱만 닿아도 터져버릴 것 같다. 말이 주오일 근무지, 영업사원에게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어김없이 일이 있다. 상무 아들 결혼, 거래처 사장 딸 결혼, 생산팀 부장 부친 사망. 인도네시아 검수단 도착, 일본 바이어 도착, 호주 바이어 긴급 방한. 합천 파이프 사고, 나주 파이프 사고, 홍성 파이프 사고. 왜 모든 파이프는 주말을 앞두고 터질까. 수사적 표현이지만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인생의 절반을 고속도로 위에서 보내는 남편이 딱한 것도 사실이다.

욕실 문을 닫고서 게슈타포에게 들킬 새라 조용조용, 조심조심 걸레를 빤다. 짧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후다닥 달려가 아직도 정신이 멍한 아이를 안아 올린다. 거의 동시에 핸드폰이 윙윙댄다.

새댁, 잘 지냈어?”

주인 할머니의 용건인즉,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 딸이 애들 교육 때문에 호주로 갔거든.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대. 추석 때 나오니까 그때 얼굴도 한 번 보고 계약서도 다시 쓰고 하면 좋겠는데.”

남편과 상의해보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그 참에 수압계 문제도 다시 꺼낸다. 세입자의 요구에 할머니는 예의 그 비굴할 정도로 불쌍한 저자세를 취한다.

그러게 내가 가서 한 번 봐야 하는데, 돈 들어갈 일이 좀 많아야 말이지. 자식 많으면 바람 잘 날 없다고 우리 작은아들도 지금.”

이어 할머니의 사정이 쭉 이어진다. 전부 딱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원래 우리 아파트의 주인은 중국에 살았다. ‘우연이라는 인상적인 이름에 복사된 주민등록증의 흐릿한 사진으로도 두드러지는 미모였다. 69년생 우연이가 캥거루와 코알라의 나라로 갔단다. 겸사겸사 커피콩을 사러 다니는 옛 남자친구가 69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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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화해와 상생을 위하여:

- 투르게네프(1818-1883), <아버지와 아들>(1862)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원래 제목을 직역하면 아버지들과 아들들’, 즉 복수이다)은 제목이 암시하듯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표층적으론 1860년대에 이르러 더욱더 첨예해진 사상 대립이 부각된다. ‘60년대 세대’, 즉 민주 진영을 대표한 젊은 지식인의 입장인 부정’(否定)니힐리즘이라 불렸는데, 이는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극히 정치적인 개념, 일종의 행동 강령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많은 니힐리스트들이 유형이나 추방, 망명까지도 감수한 혁명가였고 <무엇을 할 것인가>을 쓴 체르니셰프스키, 투르게네프와도 친분이 있던 바쿠닌은 대표적인 예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십분 반영할 뿐더러 이후 러시아문학의 큰 흐름 중 하나를 예고한 문제작이다.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은 이 작품에 대한 그 나름의 답변으로서 시작된 소설이다. 한편 사상적 갈등과 맞물린 세대 간의 갈등의 이면에는 계급간의 갈등이 깔려 있다. 심지어 파벨 키르사노프(귀족 - 아버지 세대)와 바자로프(‘잡계급’ - 아들 세대)의 반목이 소설의 구성적, 사상적 축을 이룬다고 볼 수도 있다.

 

 

 

 

 

 

 

 

 

 

 

 

 

바자로프는 친구 겸 후배인 아르카디의 정의대로 니힐리스트”, “모든 것을 비판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39)이다. 파벨과의 논쟁에서는 훌륭한 화학자는 그 어떠한 시인보다 스무 배는 더 유익”(44)하다며 유물론과 경험론, 공리주의를 역설한다. 니힐리즘의 근거도 유익함에 있다. 오딘초바와의 대화에서는 예술 무용론을 주장하는데, 그와 더불어 피력하는 인간관도 상당히 과격하다. 인간도 다른 동식물과 같아서 표본 하나만 있으면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인간을 따로 연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 이렇게 극단적이고 편협한 유물론은 물론 속류라고 비난받을 소지가 있으며 그가 대인 관계에서 보이는 날선 계급의식과 냉소주의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체로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개구리를 비롯한 각종 동식물 채집과 해부, 실험에 열을 올리는 부지런한 의학도이자 파벨과의 결투에서 보이듯 의사로서의 자부심이 무척 강한 청년이다. 이런 그를 작가는 두 번에 걸쳐 시험에 들게 한다.

 

(러시아 작가 중에서는 체호프와 더불어 빛나는 미모인데...-_-;;)

 

바자로프의 이론에 따르면 사랑은 호르몬의 작용일 뿐이다. 오딘초바에 대해 그 귀부인이 어떤 종류의 포유동물에 속하는가 두고 보세.”(120)라든가 참 실한 몸뚱이야.() 지금 당장 해부대에 올려놓고 싶은 걸.”(125)과 같은 냉소적인 말을 던지지만,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랑을 신경이 약한 구세대의 낭만주의자나 부유하고 나약한 귀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온 만큼 그의 사랑 고백은 증오와 닮은, 아마도 증오와 비슷한 강하고 고통스러운 욕망”(163)의 분출처럼 읽힌다. 다시 오딘초바를 찾아갔을 때는 사랑의 감정과 사랑에 빠졌다는 분노에 덧붙여 부유한 귀족 부인을 향한 잡계급 출신 청년의 열패감마저 보인다. 너무 오랫동안 나와 인연이 없는 세상을 돌아다닌 것 같아요. 날치는 얼마 동안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지만, 곧 물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282)

 

(바자로프. 이렇게 온순한 이미지??)

 

바자로프의 사랑보다 더 극적인 것은 바자로프-죽음이다. 성실하고 명민한 의학도가 전염병으로 사망한 농부의 시신을 해부하던 중 감염이 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한다는 결말을 두고 말이 많았다. “죽음은 오래된 농담이지만 누구에게나 새롭지요.”(306)라고 말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의연해 보이기도 하다. 실연 이후의 우울과 무기력증을 생각한다면 반쯤 의도된 자살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어떤 경우든 그가 추구한 이익과는 무관한 죽음이, 니힐리즘(허무주의)’의 아이러니한 변용인 허무한죽음이 돼 버렸다. 과연 온건파 귀족 작가의 손으로 그려낸, 야망에 사로잡힌 잡계급 청년의 형상과 운명은 아이러니에 귀속될 수밖에 없다. 그의 죽음과 흡사 그것을 대가로 성취된 것 같은 키르사노프 집안의 행복(아르카디와 카탸(오딘초바의 여동생)의 결혼, 니콜라이와 페냐의 결혼, 파벨의 출국, 오딘초바의 성공적인 재혼 등)이 씁쓸한 대조를 이룬다. 자식을 앞세운 바자로프의 부모들이 자식의 무덤을 찾아 흐느껴 우는 마지막 장면이 주는 여운도 오래 지속된다. 결국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316)이었으리라.

 

 

 

 

 

 

 

 

 

 

 

 

 

 

 

 

투르게네프는 다소 방탕했던 아버지와 그보다 연상인 다소 히스테릭한 성격의 어머니의 불화, 그로 인한 심리적 상처에도 불구하고(이런 가정사가 첫 사랑에 표현된다) 19세기 러시아 귀족의 일반적인 특권을 두루 향유하며 자랐다. 작가가 된 후에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유럽에서 보냈으되, <아버지와 아들>이 보여주듯, 조국의 현실과 젊은 세대의 사상적, 문학적 동향을 꾸준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인텔리겐치아’(지식인)와 민중의 화합 문제에 대한 관심 역시 그의 문우이기도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비롯하여 19세기 러시아 지성계의 보편적인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가 말년에 쓴 산문시 거지늙은 거지의 화합을 통해 총체적인 형제애를 강조한 작품인데, ‘와 세 명의 소년 거지의 서늘한 엇갈림을 보여주는 윤동주의 투르게네프의 언덕에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 <책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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