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열이 났으나 오늘은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은 아이를, 소아과를 거쳐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그 맞은편 커피숍에  앉아 있다. 혹시 열이 또 나거나 손발에 반점이 보이면(그 공포의 수족구!-_-;;) 즉시 데려갈 참이었는데(완전히 벌 서는 기분이다!) 별 탈이 없나 보다.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나와 논문 쓰는 작업을 계속 해본다. 체호프의 <결투>.

 

 

 

 

 

 

 

 

 

 

 

 

 

 

러시아문학만큼 결투가 많이 나오는 문학이 있을까 싶다. 내가 번역하기도 한 <우리 시대의 영웅>의 작가는 본인도 결투에서 죽었다. <벨킨 이야기>의 첫 작품 <그 일발>도 결투에 관한 고전적 틀을 제공한다. 그 작가인 푸쉬킨 역시 결투에서 사망. 18세기, 남의 나라(유럽)에서 들어와 본토보다 더 인기를 누렸으니. 이것에 대한 문화사적 연구는 로트만의 책을 보면 된다. 역시 석학. 비단 결투뿐만 아니라 결혼, 청혼, 음식, 각종 풍습에 대한 연구가 돋보인다. 물론 전공자 아니면 굳이 읽을 필요, 이유는 없다 -_-;; 세상에 재밌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체호프의 <결투>는 배수아식 화법을 빌려 말하자면 <결투의 없음>에 관한 소설이다. 완전 웃긴 결투가 된다, 궁극으론 없는 결투, 성사되지 못한 결투에 관한 이야기. 주인공 라예프스키는 러시아문학 특유의 '잉여 인간', 그것의 세기말(덧붙여 체호프식) 버전이다. 후텁지근한 카프카스, 권태와 나태, 덧붙여 2년 전 사랑하여 이리로 꼬셔온 유부녀 나제쥬다에 대한 사랑마저 식은 상태. 언제 소설 얘기는 나중에 더 할 수 있으리라.

 

겸사겸사, 이 참에 이 소설에 대해 석사논문을 썼던 한 선배를 짧게 회상한다.

 

대략 '지식인(인텔리겐치아'와 패러디'라는 주제였고, [결투]에는 잘 맞는 얘기였다. 논문을 꼼꼼히 다시 읽어보니 그 무렵 그 선배가 갖고 있었을 나태감과 권태감, 열등감, 무력감 등이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은근히 배어나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주 잘 쓴 논문은 아니었으나, 그러나, 진정성(!)이 느껴지는 논문이다, 라는 평가를 독자로서 할 수 있을 법하다.

나보다 한 학년 높은 그 선배는 부산 사람이었는데, 대학 입학 직전, 1993년 1-2월, 다른 선배 두 명과 함께 나에게 전화를 하여 해운대 어딘가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다 같이 어딘가에서 자장면을 먹었지 싶고, 유람선을 탔다. 그런 인연도 있고 하여, 학창 시절 내내 항상 좋은 느낌을 주는 선배(오빠^^;)였다.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군복무중이었던 그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병문안을 가지 못했던(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차가운 장례식장은 또렷이 기억된다. 지금 생각하니 그의 나이는 만 28세에 조로의 포즈를 취하는 <결투>의 주인공보다 더 어렸지 싶다. 

그의 논문은 물론, 도서관홈페이지에서 다운받아 보았다. 사람은 죽어 없는데 한 시절 그가 쓴 글(책)이 이렇게 있다는 사실이 왜 이리 새삼스러운지...

 

그밖에, <애도와 우울증>은 푸쉬킨과 레르-프를 다루는데, 유감스럽게도 결투 얘기는 별로 없다. 그럼에도 참고할 만하다.(지금 내 상황에 딱 맞는다!) 요즘은 '서평가'로 굳어진 듯한데 아무튼 그 '로쟈'가 러시아문학박사라니,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놈의 '박사'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시절이 있었다니 이것도 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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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나보다 더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건 모든 부모의 마음이리라. 하지만 꿈 깨시라. 아이가 태어난지 겨우 5년이지만 아이의 삶은 부모의 삶을 고스란히 반복한다, 그러리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요즘이다. 혹시 잠깐 진보(!)가 보인다면 그야말로 잠깐, 혹은 착시나 환각 같은 것. 결론은 똑같다. 하필 지난 학기에 쭉 다시 읽은 톨스토이는 그 점을 여실히, 아주 문학적으로, 문학적 사실주의(진실!)가 가닿을 수 있는 극점에서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유서깊은 귀족 가문 출생이다. 아버지는 기껏해야(?!) '백작'이었으나 어머니는 공작, 더욱이 무척 부유한 볼콘스키 가문의 영애였다. 그의 데뷔작인 소위 자전 삼부작은 그런 환경에서 자란 유년, 소년, 청소년기를, 훗날 더 빛을 보게 될, 톨스토이만의 균형 잡힌 객관적인 문체로 찬찬히, 세세하게 그려낸다. <소년 시절>의 핵심 대목은 어머니의 죽음. 그렇다, 소위 '엄친아'의 그에게 최고의 상실은 이것이다. 소설에서는 열살 넘어 엄마가 죽는 걸로 되어 있지만, 실제는 아주 어릴 때(서너살?)였다.물론 이건 비극이다. 하지만, 저 정도의 집안이니 저 정도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가령 체호프처럼 (해방된) 농노의 아들이었다면??) 그럼 어느 정도의 집안이었나. 이후 톨-이가 쓰게 될 걸출한 장편들은 결국 자신의 집안과 그와 연결된 러시아 귀족 사회(이것도 은근 좁았으리라 생각된다, 우리의 재벌 사회가 은근 좁듯)를 그려내는 데 치중한다. 그의 소설은 90퍼센트 전기적(=자전적) 소설이다.

 

 

 

 

 

 

 

 

 

 

 

 

 

 

 

<전쟁과 평화>. 물론 나폴레옹 전쟁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하지만 톨-이의 입장에서는 우선적으로, 어머니 쪽 볼콘스키 집안 얘기를 대거 다룬 소설이기도 하다.  노 볼콘스키 공작의 '박색'(-임이 엄청 강조된다!) 딸 마리야 볼콘스카야가 대략 톨-이의 어머니, 그 다음 그녀와 결혼하는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이 그의 아버지. 이들의 결혼 스토리는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수적인 편이다.

 

이 긴 소설은 셰레르 고관 부인(안나)의 모임으로 시작된다. 사교계 살롱, 그녀는 귀족사회의 '여왕벌'쯤 되는 듯하다. 여기에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나오고 인물들의 성격, 관계, (예상되는) 갈등 등이 다 제시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모스크바 굴지의(!) 부호인 베주호프 백작의 와병, 임종, 죽음이다. 다들 그 유산을 받으려고 애쓰는데, 결국 재산은 사생아인(그리하여 원래는 상속 자격이 없었던) 피에르 베주호프에게로 돌아간다. 그는 톨스토이의 소위 구도적(=정신적) 자아를 반영하는 인물이다. 나중에 (옐레나와의 실패한 결혼 이후) 나타샤 로스토바, 즉 로스토프 백작 집안의 딸과 결혼한다. 둘이 엮어지는 건 물론 이들이 한 사회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나타샤 입장에서는 '피에르 삼촌'이었던 자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남자'로 보이고, 그들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이 긴 소설의 맨 마지막을 장식한다.(더 마지막은, 정말 지루하다, 역사와 전쟁에 대한 장광설로 장식된다..ㅠ.ㅠ)

 

 다 건너뛰고, 니콜라이 로스토프와 마리야가 만나는 장면은 어떠한가. 나폴레옹 침공, 마리야는 아버지가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피난도 못 가고 영지의 저택에 거의 갇혀 있는 상태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로스토프 백작(장교)이 그녀를 구출하게 되는 것이다. 마리야의 시점, 평생 늙은 아버지의 변덕을 받아주고 또 자신의 못생긴 얼굴로 열등감을 느껴온 그녀에게 니콜라이는 그야말로 백마 탄 왕자이다.

 

로스토프가 공작 영애 마리아에게로 안내를 받아 홀로 들어가 보니 그녀[마리야, 노공작 사망 직후]는 허탈감에 빠져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 때문에 왔는지, 또 자신이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인답게 생긴 얼굴과 그가 방안을 들어설 때의 태도나 처음 입 밖에 낸 말씨로 보아, 그가 자기와 같은 사회 계급의 사람임을 안 공작 영애 마리아는   깊이 있고 빛나는 눈빛으로 손님을 보면서 흥분 때문에 토막토막 끊어지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로스토프는 그녀와 만나는 순간 어쩐지 낭만적 환상을 느꼈다. ‘난폭한 폭도들 가운데 혼자 남겨진, 몸을 보호할 능력도 없는 슬픔에 잠긴 아가씨! 내가 이곳으로 온 것은 어떤 불가사의한 운명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로스토프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얼굴빛이고 표정이고 어쩌면 저렇게 부드럽단 말인가! 그리고 어쩌면 저렇게도 품위가 있어 보일까!’ 그는 겁에 질린 듯한 공작 영애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 468-469 / 3, 2편 --> 이 번역본은 <범우사판>, 손때를 탄 아끼는 책이다.)

 

부유한 상속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백작 집안이지만 사람 좋고 경영 못 하는 우유부단한 부모 때문에 재산이 거의 바닥인 상태, 그런데 그는 또 집안을 일으켜세워야 하는 장남이다. 한편 마리야는, 마침 오빠(안드레이 볼콘스키)도 전사했기 때문에(그의 부인인, 올케 리자는 둘째 낳다가 일찌감치 죽어줌), 거의 유일한 상속녀이다. 그 재산을 나눠 가질 유일한 사람은 오빠의 아들뿐이다. 얼마나 대단한 귀족인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영지 한 덩어리를 재산으로 받는다.

 

아무튼 시쳇말로 '땡잡았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니콜라이로서도, 무척 불쾌하다. 여기서 돋보이는 것이 톨-이의 현실감각, 내지는, 그가 정말 천생이 귀족이라는 점이다. 니콜라이는 돈 때문에 마리야를 사랑하는 것이 절대(!) 아니고, 정말로 마리야를 사랑하고 (겸사겸사!) 그녀는 부유한 상속녀이다. 그의 눈에 그녀는 미녀는 아니지만 우아하고 기품있고, 그렇기에 매력적인 여성이다. 겸사겸사, 마리야는 수학적 재주가 뛰어나다.(아비가 딸에게 가우스 정리인가, 이런 거 가르친다 -_-;; 요즘 같으면 어디 수학과 교수 쯤 됐을 지도^^;) 결국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다가 둘은 결혼하게 된다. 모든 결혼은 정략결혼이다. 그렇지만, 그 정략결혼도 사랑(적어도 사랑의 환상)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안나 카레니나>는 전 세계가 오랫동안 사랑해온(앞으로 사랑할!) 최고의 연애소설이다. 물론 소설이 이렇게 긴 걸 봐도 알겠지만, 이 소설을 연애소설로 읽는 독자는 없을 터이다. 연애가 이리 길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안나 카레니아와 브론스키가 처음 만나고 반하는 장면(1부)까지는 그렇게 읽어도 무방하리라. 많은 빛나는 문장들, 장면들을 빼고, 이번에 새로 읽으니, 이런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브론스키는 차장을 뒤따라 객차로 들어가다가 어느 부인에게 길을 내주고자 객차의 입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교계 사람의 감각이 몸에 밴 브론스키는 그 부인의 용모를 보고는 한눈에 그녀가 상류사회의 여성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양해를 구하고 객차 안으로 들어가려다, 한 번 더 그녀를 꼭 보아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녀가 대단히 아름다워서도 아니고, 그녀의 모습 전체에서 풍기는 우아함과 겸손한 기품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그의 옆을 지나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얼굴 표정에 유난히 상냥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뒤돌아보자, 그녀 또한 고개를 돌렸다. 짙은 속눈썹 때문에 검게 보이는 그녀의 빛나는 회색 눈동자가 다정한 빛을 띠며 마치 그를 알기라도 하듯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 누군가를 찾는지 가까이 다가오는 군중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짧은 시선을 통해, 브론스키는 그녀의 얼굴에서 뛰노는 절제된 활기를 포착할 수 있었다. 붉은 입술을 곡선 모양으로 만든 희미한 미소와 빛나는 눈동자 사이에서 차분한 생기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다녔다. 마치 그녀의 존재에서 어떤 것이 넘쳐흘러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짝이는 눈빛과 미소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일부러 눈 속의 빛을 꺼버리긴 했지만, 그 빛은 그녀의 의지에 반해 희미한 미소로 반짝였다.(1, 137 / 118)

    

브론스키가 소설에 처음 등장하는 대목이다. 그가 안나를 인지한 이유(?)를 설명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강조되는 것이 그녀가 상류 사회의 부인이라는 점이다. 아, 물론, 이건 사랑이고 첫 눈에 반한 사랑이다. 그리고 안나의 아름다움이야, 앞으로도 많이 나오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화학 반응이 일어나기까지, 저 요소가 들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작가가 이 점을 저렇게 지적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겸사겸사, 안나의 아들 세료쟈. 아이는 학교도 가지 않는다. 갈 필요가 없다. 과목별로 가정 교사(겸 보모 - 육아 도우미)가 다 있고 원어민(!) 교사가 다 딸려 있다. 아이가 9살이 되었을 때인가, '사회성' 함양을 위해 학교에 보낸다.

 

귀족 사회의 충실한 일원으로서, 또 부지런하고 경영 마인드가 (^^;;) 투철한 지주로서, 또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활동가로서,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톨-이는, 왜 소설을 썼던가, 굳이  왜 써야 했던가. 이것이 지난 봄학기 내가 제일 많이 던진 물음이었다.(영원히 답이 나지 않는 -_-;;)  실상 그는 엄청난 양의 소설을 썼지만(희곡도 썼다) 자신을 결코 '직업 작가'로 여기지 않았다. 그건 그가 충분한 '프로'가 아니어서가 아니고, 내가 앞에 썼듯, 다른 정체성만으로도 너무 멀쩡, 심지어 멀쩡 이상의 멀쩡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에 이렇게 재수 없는(!) 작가는 없을 법하다. 그에게 유일한 콤플렉스는 외모(얼굴)였지만, 중년 넘어가니 오히려 미남 작가들보다 더 낫다...^^;; 그가 문학-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철저한 환경결정론, 균형 잡힌 구성, 사물의 궁극을 추구하는 집요하고도 찬찬한 문체 등은 모두 이런 '신분-계급'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최고의 '갑'이었음에도 '베품'의 미덕까지 갖고자 했으니(재산도, 저작권도 결국에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남기게 되지만) 더더욱 재수 없나, 그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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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 얘기를 하고 싶었나. 그랬다. 하필, <톨스토이> 수업 전에 경제학 관련 수업이 있어서인지 PPT 파일이 떠 있을 때가 더러 있었는데, 한 번은 그 내용이 바로 저것이었다. 플래티넘 수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등. 다들 알면서 왜 그러나, 세상이 원래 그렇다! 다만, 보다 인간적, 문화적이려면 소위 '흙수저'도 먹고살만하게 사는 세상, 그게 멀쩡한 세상(=선진국)이다. 문제는 이 '먹고살만하다'의 정의가  참, 애매하다는 것.

 

부산의 허름한 동네, 불과 2킬로 정도의 거리를 두고 소위 흙수저로 사는 남동생 부부와 소위 핵금수저로 사는 여동생 부부를, 이렇게 멀리 서울의  역시나 허름한 동네에 살면서 지켜보는 마음이 참 묘하다. 우리 삼남매야 이미 인생의 절반을 지나왔지만, 그 아이들의 삶은 이제 겨우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임에도 너무도 다르게 전개된다. 고급한 영어 유치원, 그 다음, 아이가 힘드니 학원도 안 보낸다, 선생이 다 온다. 

 

 어느 날 여동생도 말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매달 건물세가 이렇게  들어오는데(액수가 너무 감이 없어서 까먹었다) 이게 멀쩡한 세상이냐, 고. 물론 그말도 맞다. (경제학자들, 사회학자들, 정치학자들 열심히 연구하시라.^^; ) 소위 부자의 삶을 전혀 몰랐던 내가 여동생네의 삶을 보며 가장 절감하는 건, 부가 죄가 아니라는 것, 이다. 부자라고 쉽게 살지 않는다. 펑펑 쓰지도 않는다. 마구 살아서는 그 부가 유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 부를 되물림하기 위해 무척 노력한다. (재벌사회의 룰은 더 엄격하리라 생각된다.)  

 

흔히들 쉽게 '가난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정말 부도 죄가 아니다.  부자가 띠껍냐? 그래, 띠껍다, 더럽고 아니꼽다! 하지만 배알이 꼴리는 순간 우리는 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억울하면 출세하라'라는 식의 태도로 나가는 것도 이미 우리 사회에는 맞지 않는다. 그거야말로 70년대, 새마을 운동 시절 얘기고. 또 출세하지도 못한다. 개천에서 난 용은 개천으로 돌아갑니다요^^;   

 

1975년 농부의 딸로 태어나 막노동꾼, 시장바닥 장사치의 장녀로 자란 나는 정말 배고프고 추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먹성이 유달리 좋은 여동생은 "밥 많이 주세요, 꾹꾹 눌러주세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듯.(그런데 지금 자기 말대로 "미꾸라지 용 됐으니" 로또인가?!) 대학 입학 전까지 삼겹살을 구워 먹어 본 적이 없다. 구워 먹을 고기가 어디 있나. 김치찌개도 호사였다. 그렇게 다니고 싶었던 피아노 학원을 못 다닌 것이 마흔이 넘은 지금도 아쉽다. 

 

가난한 남동생 부부와 부유한 여동생 부부를 속속들이 보면서 절감한다. 그래도 옛날과 비교하면 어지간히 먹고살만한 세상이다. 부자-갑의 횡포, 소위 '갑질'도 무섭지만, '을질'도 만만치 않다. 나 돈 없어, 어쩔래? 우리 애 띨빵해, 어쩔래? 나 성질 더러워, 어쩔래? 등등. 나도 요즘 '을질' 중인데, 좀처럼 착해지지 않는다.  인세가 들어와야지 착해질 듯, 에효.  돈의 노예인가?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돈을 많이 갖는 것 뿐이라는 슬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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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화요일인가, 애를 유치원에서 치료실로 데려가는 중, 엘리베이터 앞에서 찍었다. 여섯 살은 똘똘하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잘 논다. "야, 너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하면 내 자리에 못 안 게 할 거야!" "야, 그러는 너는?" 우리 아이의 '놀이 수준'은 아직 '탐색'의 단계(그 다음 대략 '역할' 놀이, '상상-환상' 놀이 등)에 머물고 있으니 여기에 못 끼는 건 당연하다.  혼자서 띨빵한 소리 한다. "**(친구 이름)가 키가 제일 커." 웬 뜬금없는 소리? 당사자인 **도 못 알아들음 -_-;; 그래도 별 탈 없이 다녀주는 것만도 고맙구료.

 

 

이건 작년초, 심지어 3월. 다섯 살임에도 몸놀림이 엉성해서(오죽하면 '뇌성마비'라고 했을까!) 바보 같은데도 왜 이리 이쁘냐. 제 딴에는 그래도 노래와 율동을 해보겠다고 애쓰는 모양이 너무 귀엽다. 겸사겸사 다른 친구들도 아직 네 살이라 만만찮다. 그리고 제 내복들의 압박ㅋ 작년에 찍힌 사진들 중 제일 아끼는 사진이다. 저 때 달고 있는 명찰, 이제는 읽을 줄도 안다. 잘 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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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소설 쓰기 >

    

 

 

 

 

 

 

 

 

 

 

 

 

 

 

 

  

시간강사 13년차, 이 숫자 앞에서 응당 느껴야할 법한 환멸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강의하는 즐거움이 크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고전 읽기>, 이번 학기에는 <톨스토이>가 신설되었다.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도스토예프스키> 못지않게 반응이 좋아 50명 정원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초기작을 어지간히 잘 따라온 아이들도 <전쟁과 평화>에 이르자 주춤했다. 사실 요즘 책 판형으로 3천 쪽은 족히 될 대작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리라. 결국 발표자조차 구하지 못해 내가 따로 준비한 발췌 텍스트를 공유하며 수업을 했다. 그럼에도 중간고사 서술형에서 <전쟁과 평화>를 고른 아이들이 제법 있고 삼분의 일 정도는 읽었으리라 짐작이 되는, 괜찮은 답안이 많아 뿌듯했다. 수업의 후반에는 <안나 카레니나><부활>을 읽었다. 두 작품 모두 아이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문제를 다룬 소설임에도 적잖은 관심을 보였다. 역으로 말하면,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귀족사회라는 특수성을 빼더라도, 사랑과 결혼(연애와 불륜), 무엇보다도 생활’, 그리고 타락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주제에 대한 소설적 탐구는 21세기 우리의 청년들에게 여전히 호소력이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두 대작 사이,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비롯한 민화들을 읽었다. 언젠가 우리가 무너지려할 때 톨스토이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척 진부하지만 바로 그 진부함으로써 우리를 부축해줄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기에 더더욱 겸손하게 살아야 하고, 또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산다.’ 겸사겸사, 나와 톨스토이의 첫 만남은 이런 민화를 통해서였다.

 

 

 

 

 

 

 

 

 

 

 

 

 

 

러시아문학 박사로서 꾸준히 맡아온 이런 읽기강좌 외에 이번 학기에는 난생 처음 쓰기강좌를 해보았다. 서울대 국문과에서 개설한 강좌(<창작의 세계(소설)>)인데 놀랍게도 40명 정원이 금방 꽉 찼다. 강좌의 특성상 읽기에 비해 쓰기의 비중이 월등히 높았으며 도중에 많은 학생이 수강을 취소했음에도 한 학기 동안 인터넷 강의실(ETL)에 탑재된 글의 개수가 140에 육박했다. 비단 양뿐이랴. 기본적인 학력과 독서력, 소재와 주제와 문체의 다채로움, 영화와 오락과 만화 등 각종 문화콘텐츠의 경험을 활용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물론 이야기를 짜는 능력에 비해 문장력이 딸리거나 정반대로 정갈한 글임에도 소위 소설적 재미가 없거나 원고지 3백매를 썼음에도 도무지 마감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우든 후생가외다. 20여 년 전에는 나 역시 그렇게 가외되는 후생이었음이 학기 내내 씁쓸하게 곱씹혔다. 대학교 3학년 때 <대학문학상>(가작)을 받고 이듬해 정식으로 등단하여 다섯 권의 소설책을 냈음에도 가령 <고양이의 이중생활>의 작가가 아니라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역자로 더 알려졌으니 말이다.

 

 

 

 

 

 

 

 

 

 

 

 

 

 

 

 

소설의 신인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도 예외가 아닌바, 소설은 노동과 시간의 산물이다. 충분히 예상되는 인공지능의 승승장구 앞에서 읽고 쓰는 행위, 특히 소설을 읽고 쓰는 행위는 바로 그 시대착오적인 한심함, 심지어 백해무익함 때문에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딱히 소설을 염두에 둔 건 아니나 <구토>의 작가인 사르트르의 말을 되새겨봄직하다.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나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알고 있다. 그런들 어떠하랴. 나는 책을 쓰고 또 앞으로도 쓸 것이다. 쓸 필요가 있다. 그래도 무슨 소용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교양은 아무것도, 또 그 누구도 구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산물이다.”(사르트르, <말>)

 

 

 

 

 

 

 

 

 

 

 

 

 

 

 

 

(서울대 동창회보 7월호(?)

 

-- 학기 말에 청탁이 왔다. 워낙 드물게 오시는 청탁이시라 촌철살인의 콩트를 쓰고 싶었으나 지면의 성격이 바뀌었더라. (정여울, 배명훈 등 '핫'한 작가들의 산문이 실린 지면이다.) 그리고 성적 처리, 그 직후의 학기말 우울(^^;;)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좀 쓰기 쉬운 글을 썼다.  두 강좌 모두 사실상 신설이라 (누구에게??^^;;) '홍보'도 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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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만끽하며 '놀탱이' 모드로 사는 중이다. 좋다!

 

종강할 때만 해도, 번역 인세도 줄었는데 앞으로는 뭘 하고 먹고 사나, 강의라도 하나 더 해야 돈을 벌 텐데, 하는 걱정에 여기저기 강의를 구걸(!)했으나, 아이쿠, 이게 웬떡이냐, 방학은 이토록 좋은 것이다. 때문에 지난 학기가 아주 까마득한 옛날로 여겨진다. 그때 한 강의도 그런데, 그 중 하나가 <러시아 예술과 문화>이다. 적성에 맞는 강의는 아니지만(나는 문학주의자다!!!) 몸에 밴 고루한 성실성, 뭐, 이런 걸로 공부는 쭉 해왔다. 강의 주제 중 한 파트는 응당 회화이다.

 

 

 

 

 

 

 

 

 

 

 

 

 

 

러시아미술사는 중세 아이콘(성화)부터 보는데, 아무래도 19세기 이동파, 그리고 레핀 정도가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모더니즘, 추상화 계열, 그 다음 소비에트 시대 소츠아트 등. 냉혹하게, 내리막, 이라고 해도 좋을 법하다. 아무튼 누구나 알 법한 추상화 한 점을 보자. 칸딘스키보다 더 극단으로 나간,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선언문이라고 할 만한 <검은 사각형>(1915)이다.

 

 

1915년에 이 그림은 엄청 혁명이었을 터. 소비에트 시대, 이런 건 어떤가. 미래파 시인으로 유명한 블라지미르 마야콥스키가 참여한(?? 로드첸코와 같이 그린) 포스터이다. 젖꼭지 광고이다. "더 좋은 젖꼭지는 없었고 (지금도) 없다. / 늙을(-어 죽을) 때까지 빨 테다." 대략 이런 문구. 1923년 작이다. 

 

레핀 같은 거장(!)이 보면 이건 정말 똥이냐, 된장이냐 싶은 그림이다. 하지만 이것도 미술사의 한 획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문학에 살어리랏다, 를 외치는 문학주의자다. 그밖에 그림, 음악, 영화 등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아마추어라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하지만, 요즘 미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거의 무지하고 관심도 없었다. 한데 최근 논란이 된 (천경자, 이우환과 맞물려) 소위 '조영남 화투 대작' 사건 때문에 갑자기 귀가 쫑긋 섰다. 그 덕분에 알게 된 이런 작품들. 회화는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충격이었다, 여러 모로!

 

데미안 허스트, <살아 있는 자의 마음 속에 있는 물리적 죽음의 불가능성>

(제목, 너무 문학적이다!!)

 

데미안 허스트, <천년>.

(이것은 작품의 설명이 정말 후덜덜. 저 시뻘건 것이 소의 머리, 그 옆에 있는 검은 점들(?)은 그를 먹으러 왔다가 감전 돼서 죽은 파리 시체, 옆칸(방)에 있는 건 알까는 구더기들.)  

 

이런 걸 알게 된 건 물론 조영남한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나는 그보다는 차라리 그의 전처인 배우 윤여정에게 관심이 있다. 어릴 때는 "저 아줌마는 못 생겼는데 왜 텔레비전에 나오지?"하고 생각했다. 요즘 그녀는 '한국의 이자벨 위페르'(혹은 한국의 카트린느 드뇌브) 정도 되는 듯하다. 젊은 윤여정은 김기영 감독의 <충녀>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뽐낸 바 있다.) 그 때문에 몇(세??) 차례에 걸쳐 연재된 진중권의 글을 열심히 읽으면서이다. 나는 구구절절이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는다. 그는 나에게 무엇보다도 <미학 오딧세이>의 저자인데, 이후에도 간헐적이지만 그의 미학서를 사본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25714#dvOpinion

(이렇게 하면 링크되나??)

 

크람스코이, 레핀, 그리고 아주 모던한 그림으로 피카소, 마티스 이런 거 보다가 잠시 졸고 나니, 현대 미술은 여기까지 와 있다. 앤디 워홀도 이젠 할아버지(=클래식)인 거다. '개념'과 '실행'의 분리. 저 작품들을 보면 실감이 된다. 회화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과거 도제 시스템으로의 회귀든, 후기산업사회에 걸맞는 공장형 시스템의 확립이든 아무튼 뭔가가 엄청 달라졌음은 분명하다. 정녕 미학적 충격. 그 사이 문학은 어디까지 왔는지.

 

곁들어, 저 '관행'. 돌이켜 보니 나도 대학원 시절 번역 제법 했다, 내 번역 말고 선생님들 번역. (뭐, 강의도 더러 대신 했다, 그것도 신 나서 했다.) 아예 초고를 잡았든 종이로 뽑아 교정을 봤든 컴퓨터 파일 형태로 교정 봤든. 후자는 어디까지나 교정이니까 번역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기엔 단순히 윤리니 악덕이니 하는 손쉬운 말로는 설명 안 되는 것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 점도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에서 진중권이 잘 풀어 놓았다. 학계도 사정은 비슷하니까. 우리는 모두 '그' 밑에 줄서서 서로 '그 일'을 하고자 했고, 어쩌면 '박사급 인력 - 시간강사'인 지금은 더 그런가...? 

 

진중권 트위터에 들어가 보려다가 '계폭'이라는 말도 알게 되었다.  빨리 돌아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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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이 나올 것이다. 무척 행복하다.

 

교정지를 보다가(헐, 이것도 이제는 PDF로 보다니!) 한 소설 속에 묘사된 일본 여행의 경험이 상기되었다. 2009년 여름. 연구비를 받아(이런 좋은 시절이 있었구나!) 자의반 타의반, 원래 좋아하지 않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일본어를 초급만 간신히 배운 터라 여동생과 같이 갈 계획이었는데 그 해 여름 동생이 임신이 되었고(그 조카는 다음해 2월에 태어났다) 그래서 나 혼자 떠났다. '혼자'를 소유, 전유할 수 있었던 시절이 그렇게 끝났음을 실감하는(그럴 여유가 있는!) 요즘이다.

 

어느덧 7년 전, 여름으로 돌아가 본다. 숙소는 <신오쿠보> 역 어디 허름하고 눅눅한 모텔이었고, 제일 가까운 번화가는 <신주쿠> 역이었다. (<기노쿠니야> 서점이 있는.)

 

 

타임스퀘어에서 맞은편(서든테라스인가?)을 내려다 보며 찍은 듯.  

 

 

내가 있었던 위치는 아마 여기, 화장실. 너무 더운 도쿄 거리에서 화장실과 백화점만큼 시원하고 또 군데군데 자주 있는 곳이 없더라. 44사이즈도 헐렁해 옷 입기 무척 힘들었는데, 출산의 이력과 마흔을 넘긴 나이는 어쩔 수 없다. 40킬로 훌쩍 넘기도록 들러붙은 살들, 절대 빠지지 않는다. 누구의 우스개소리대로 "헐 아직도 아이가 뱃속에 있는 건가?!"

 

 

동경 시내 어디 한복판.

 

 

마음에 들었던 도시, 요코하마. 저기 가서 이상의 권태의 첫 구절을, 그리고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의 일절을 떠올렸더랬다.

 

도쿄에 가면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 좀 지루한가, 동경 대학이다.(홍고 캠퍼스) 의도한 건 아니고 길을 잘 몰라(?!) 뒷문으로 들어간 셈이 되어 의대, 도서관, 학교 정문, 이런 식으로 보게 되었다. 여기 의대(병원)는 이상이 죽기 직전 입원했던 바로 그곳인 걸로 안다.   

 

대학의 핵심은 역시 도서관. 내부도 구경했는데 의외로(?!) 고풍스러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모든 명문대는 대부분 정문이 촌스럽다. 그 유명한 '아카몬'(붉은문, 이냐).  '극혐'할 만한 서울대 정문^^;

 

동경대학 가기 전에 들렀던 우에노 공원의 잉어들. 혼토니 코히가 잇빠이!

 

연못에 연꽃도 너무 예쁘오!

 

 

귀국하는 날(8월 초) 나리타 공항. 비가 많이 왔다.

 

등가방에 디지털카메라 하나만 들고 떠난 여행, 이런 자유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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