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느 모로 별세(이 단어가 서걱거린다!)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대학 초년 시절, 비디오방 죽순이 시절에 많이 봤던 얼굴. 프랑스 영화를 좋아했고 그녀는 (너무 판에 박힌 말인가!) '누벨 바그의 여신'이니 오죽했으랴.

언제부터인가 젊은 그녀보다 늙은(늙어가는) 그녀를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 어디, 두툼한 배와 몸뚱어리를 트렌치 코트로 덮고 있는 '할머니' 잔느 모로가 쭈글쭈글한, 전형적인(?) 할머니 입술 사이로 담배를 꼬나물고 서 있던 장면이 떠오른다. <니키타> 어느 장면에서도 나왔던 것 같다.

 

지금도 충분히 늙었는데 앞으로는(도) 더 늙을 일만 남았다. 지금 나의 나이는 항상 새로운, 그래서 놀라운 나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 같이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노년의 그녀를 영화 속에서 계속, 꾸준히 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담배와 참 잘 어울리는 듯. 설마, 흡연자로 89세까지 사셨나. 그 역시 부럽구나.

 

 

정신없이 바쁘던 와중에 그녀의 별세 소식을 알게 된 건 최근에 이런 산문집을 낸 분의 트윗을 방문했다가였다.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오는데 트레일러 챙겨(?) 보기도 힘들어 유감인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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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사과  한  알이 떨어졌다.   지구는  부서질  정도로  아팠다.  최후이미  여하한  정신도  발아하지  아니한다.

 

- 이상의 시를 다시 훑어보다가 이번에 발견(?)했다. 원래 일본어로 쓰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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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편의 시로 읽히는 수필(산문) [권태]의 한 부분 :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 

 

소는 잠시 반추(反芻)를 그치고 나를 응시한다. / ‘이 사람의 얼굴이 왜 이리 창백하냐. 아마 병인가 보다. 내 생명에 위해(危害)를 가하려는 거나 아닌지 나는 조심해야 되지.’ / 이렇게 소는 속으로 나를 심리(審理)하였으리라. 그러나 오 분 후에는 소는 다시 반추를 계속하였다. 소보다도 내가 마음을 놓는다. / 소는 식욕의 즐거움조차를 냉대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권태자다. 얼마나 권태에 지질렸길래 이미 위에 들어간 식물(食物)을 다시 게워 그 시금털털한 반소화물(半小貨物)의 미각을 역설적으로 향락(享樂)하는 체해 보임이리오? /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불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 본다.”(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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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날개>의 일절들. 한없이 퍼질러 자는, 그렇게 사는 삶, 권태의 극치. 정녕 '지하'의 이상 버전이다. 내가 잃어버린 낙원의 풍경을 다시 보는 것 같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처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2, 79)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도 싶었다. /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2, 82)

 

안해는 드디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자기 방에 재워주었다. 나는 이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편히 잘 잤다.”(2, 91)

 

나는 커다랗게 기지개를 한 번 켜보고 안해 베개를 내려 베고 벌떡 자빠져서는 이렇게도 편안하고도 즐거운 세월을 하느님께 흠씬 자랑하여 주고 싶었다. 나는 참 세상의 아무것과도 교섭을 가지지 않는다. 하느님도 아마 나를 칭찬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는 것 같다.”(2,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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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설들을 강의실에서 읽고 그걸로 밥벌이를 하게 될 줄은, 20여년전 학기 중에는 (러시아어 공부를 비롯하여^^;;) 열심히 학교 다니고 방학 때마다 자취방에서 최근 소설들을 걸신 들릴 듯 탐독하던 대학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다.

 

아무튼 이번에 새로이(!) 읽게 된, 알게 된 작가 중 단연코 마음에 드는 작가는 김금희였다. <너무 한낮의 연애> 외에 저기에 수록된 소설 몇 편을 쭉 들쳐 봤는데, 마지막에(?) 수록된 <보통의 시절>도 (제목과 더불어!) 무척 좋았다. 나는 유머가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녀의 소설이 그랬다. 작가가 생각보다 나이도 많고 소설이 의외로 고전적이라 또 한 번 놀랐다. 소위 '실험적인 것'이 항상 답은(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가 '실험'하면 꼭 상기하는 작가가 있는데, 여전히 소중하다. 신작소설집이 나온 줄 몰라(그래서 이건 다음에 보려고 한다) 이번에도 장편에서 일부를 뜯어내봤다. 소설가로서 그를 존경하고 애독자로서 그를 응원한다.

 

 

 

 

 

 

 

 

 

 

 

 

 

 

또 한 명 응원하고 싶은 작가는 권여선. 언젠가 우리 문단에 들어온 그녀의 소설은, 나로서는 참 읽기가 재미가 없는데(비문 아님!), 계속 사도록, 계속 읽도록 만드는 어떤 오기, 끈기, 그런 힘이 있다. 수업에서는 <안녕 주정뱅이>에 수록된 <봄밤>을 읽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 다음, 왜들 좋아하는지 알겠는 그 작가, 편혜영.

 

 

 

 

 

 

 

 

 

 

 

 

 

 

 

처음 만난 순간부터 항상 재미있게, 질투하게 읽어왔다. 그의 (경)장편을 이번에도 읽었지만, 다음 번에는 마침 신작 소설집도 나와서, 그 중에서 골라보려고 한다. 

 

 

 

 

 

 

 

 

 

 

 

 

 

 

반대로 너무 실망(ㅠ.ㅠ)한 소설은, 유감스럽게도, 너무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는 공지영의 신작. 그래도 대학 시절 그녀의 소설을 어지간히 읽었던 나로서는 그녀의 이름값과 실제 소설 사이의 괴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줄 하나 치지지 않고 고스란히 동네 헌책방에 갖다 팔았는데, 사장님도 너무 좋아하셨다^^;; "아이구, 웬일로 이런 새 책을!"

 

 

 

 

 

 

 

 

 

 

 

 

 

 

 

소위 문단 밖에서 가장 '핫'한 작가 정유정 소설, 드디어 읽었다! 너무 기대한 탓인지, 실망이 컸다. <종의 기원>을 읽었는데, 그녀의 기존 소설을 읽어온 한 학생의 말로는 <7년의 밤>이나 <28> 같은 작품이 더 괜찮은 것 같다고. 아마 범죄자-악의 심리를 파고 들기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정황, 인물들 간의 갈등 등을 그리는 데 더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 전자의 경우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좀비>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정말 살 떨리는 소설.

 

 

 

 

 

 

 

 

 

 

 

 

 

 

* 아이들이 너무 잘 써서, 부러웠다. 그리고 그들의 식욕이 부러웠다. 문자 그대로, 아이들이 밥을 너무 많이, 잘, 맛있게 먹어서 부러웠다. 이 식욕에는 성욕, 수면욕, 각종 성취욕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욕'이 없으면 이야기는 생겨나지도, 진척되지도 않는다. 존재의 최소치는 둘.(바흐친) 사건은 '함께-존재'. 

* 나는 영원토록 나 자신일 뿐, 이므로, 동어반복 같지만, 나는 언제까지 도저히 나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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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문학 좋아하지 않고 특히 미국문학은 거의 문외한이다. 그나마 영국 문학은 공부를 좀 해보려고 한 것 같지만, 프랑스나 독일 문학에 느낀 열정은 없었다. 돌이켜보니, 내 인생의 '짝짓기' 시즌이었던 이십대 중후반 이후(그때 만난 자와 10년 사귀고 결혼했으니, 조금만 더 채우면 20년이다!)  간만에 달뜸을 경험한 만큼 기념 삼아 내가 읽은 영국 문학을 정리해본다.

 

아무래도 1번은 셰익스피어. 대학 시절, 초록색 표지의 아주 조그만 책으로 된 셰-어 전집에 도전한 기억이 있다. 그래봐야 별로 접수하지 못한 것 같다. 나이 들고 비극부터 차근차근 읽어가고 있다. 책으로 읽지는 않아도 BBC 드라마와 수준높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희극, 로맨스, 사극 등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명불허전이다. 셰-어는 지금은 치매로 요양원에 누워 계신 큰아버지의 전공이기도 하(했)다.

 

 

 

 

 

 

 

 

 

 

 

 

그 다음, 고등학교 때 읽으면 무척 -시피 봤지만 서른 넘으면서부터는 그 나름의 의미를 보게 된 작가. 제인 오스틴이다. 전집이 나온 건 지금 알았다, 깜놀. 책도 책이지만, 영화로도 익숙하다. <이성과 감성>에는 엠마 톰슨, 케이트 윈슬렛, 휴 그랜트, 알란 릭맨(지금은 고인이 된) 등의 배우들이 나왔던 듯하다. <오만과 편견>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영국의 사고방식, 생활 패턴, 성 모럴, 경제 관념 등등 모든 점에서 교과서인 것 같다.  

 

 

 

 

 

 

 

 

 

 

 

 

 

 

 

 

역시나 여성 작가들이지만 제인 오스틴과는 좀 다른 종류의(혹은 좀 떨어지는??) 재능의 소유자들. 그래도 우리는 이 두 소설을 아껴왔다. 헐, 앤 브론테가 번역된 건 지금 알았다.

 

 

 

 

 

 

 

 

 

 

 

 

 

 

 

 

그리고 19세기 문학, 혹은 소설사에서 빼놓으면 어딘가 미안한 작가, 찰스 디킨스. 살아생전에 그는 러시아 작가들에게도 모델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읽지 못한!) 그의 <픽윅(?) 클럽>은 도..키가 좋아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대표작인 <위대한 유산>은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고아소년 핍의 성장담, '젠틀맨-되기'의 드라마로 읽힌다. 귀국한 다음 30대 초반 어느 날, 도서관에서 <데이비드...>를 읽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19세기 영국 작가 중에 이런 자도 있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잊은 듯하다. 고등학교 때 읽은 <더버빌의 테스>를 쓴 토마스 하디인데, 언젠가 <주드>를 몇 장 읽다가 밀쳐둔 거 같다. 다시 보지는 못할 듯..ㅠ.ㅠ

 

 

 

 

 

 

 

 

 

 

 

 

 

 

 

그리고 요즘도 간혹 영화로 만드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연인)>과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아마 여고 시절 읽은 소설 중 최고로 야한 소설이었던 것 같다. 대학 들어온 뒤 <아들과 연인>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내친 김에 <무지개> 1권 읽고 유학간 듯.

 

 

 

 

 

 

 

 

 

 

 

 

 

 

 

 

20세기 영문학은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과 함께 나에게 알려진 거 같다. 박인환의 저 유명한 <목마와 숙녀> 덕분인데, 그녀의 소설("등대로/세월", 이런 책이었다)을 찾아서 열심히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지루한 소설을 너는 중교등학 때 읽었니, 라며 한 선배가 놀라워했다. 요즘 그녀는 오히려 에세이(강연문) <자기만의 방>으로 더 유명한 거 같다.

 

 

 

 

 

 

 

 

 

 

 

 

 

 

 

 

본인은 영국(잉글랜드) 작가 아니고 아일랜드 작가라고 생각하려나. 아무튼 싫지만 읽지 않을 수 없는 제임스 조이스도 떠올려 본다. 대학시절 영작문 시간에 <더블린 사람들>에 들어간 단편들을 영어로 강독하곤 했다. <율리시스>는 여전히 완독 못 했는데, 영원히 그럴 거 같다..ㅠ.ㅠ

 

 

 

 

 

 

 

 

 

 

 

 

 

 

 

그밖에 어린 시절 동화(<행복한 왕자>)로 제일 먼저 알게 된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이런 걸 고골의 <초상화>에 빗대어 보기도 했다. 이것도 영화로도 봤는데 헨리 경(?) 역을 중년의 콜린 퍼스가 잘 소화해냈다. 

 

 

 

 

 

 

 

 

 

 

 

 

 

 

 

 

왠지 느낌으론 20세기 작가인데, (지금 찾아보니-_-;;) 실은 19세기 작가에 스코틀랜드 출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보물섬> 등을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어릴 때 <지킬...>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 비교적 최근에 펭귄판으로 다시 봤는데 너무 시시해서 놀랐다 -_-;;

 

 

 

 

 

 

 

 

 

 

 

 

 

 

 

이런 고딕의 원조는 18세기 영문학인데, 그 대표자인 앤 래드클리프는 조신한(^^;;) 레이디였다. 유감스럽게도 국내에는 소개가 안 되었지만, 도스토예프스키 초기작을 연구하며 러시아어본으로 몇몇 소설을 읽고 탄복한 바 있다. /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 역시 마찬가지. 심지어 아주 어릴(젊을) 때 쓴 작품. 여기서 잠깐 어릴 때 읽은 영국의 추리 소설도 떠올려 본다. 요즘 베네딕트 컴버비치가 열연 중인 <셜록>이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와 유관한지 모르겠다. (볼 시간이 없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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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편집자가 최근 영국을 다녀와, 사진을 투척해달라고 졸랐다. 아, 정말 따끈따끈한 사진이다! 흐리멍덩하고 꿉꿉해 보이는 날씨가 런던스럽다. 그 덕에 빨간 색이 돋보인다. 사진 속에 보이는 둥근 지붕의 건물이 세인트폴대성당, 저 다리가 밀레니엄 다리, 뭐 그런 모양이다. 원래 영국에 관심이 많지 않아, 지금 찾아보고 알았다. 실제 런던을 가면, 두 세 달 동안 내 시야를 어지럽힌, 젊은 날의 랄프 파인즈와 콜린 퍼스를 섞어 놓은 듯한 청년보다는 저런 노인들이 더 많을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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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4월도 중순. 내 인생의 운이 바닥을 치다못해 바닥을 아주, 마구 뚫어버릴 것처럼 되는 일이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같은 것이 쓰이면 딱 좋겠는데, 나는 지금 지층 생활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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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신작 영화를 보지는 못했으나(못 볼 듯하다ㅠ.ㅠ) 어느 리뷰에서 이런 글귀가 읊어지는 장면이 있음을 알게(보게) 되었다. 사랑에 빠진 여자(배우)를 앞에 두고 남자(감독)가 책의 한 구절을 읽어준다.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땐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이나 불행,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선함과 약함의 분류보다 더 고상한 것, 더 중요한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 소설은 수업 시간에는 잘 다루지 않으나 체호프의 단편 중 하나이다. 보다 더 대표작이고 교과서에 가까운 <상자 속 사나이(인간)>에 이어 '소(작은) 삼부작'으로 쓰인 소설 중 하나. 국내 번역본 중 하나는 아예 이 소설을 표제작으로 내걸었다. 표지 그림, 뜻밖에도(!) 추상화의 대가 칸딘스키가 그린 수채화이다.

 

 

 

 

 

 

 

 

 

 

 

 

 

 

사랑. 연애. 결혼. 쉽고도 어렵고, 또 어렵고도 쉽다. '개나 소나' 다 하는 것이면서(그야 짝짓기, 번식 이런 거니까 지렁이도 한다) 동시에 너무 고등한(!) 동물은 인간은 의외로 (잘) 하기 힘든 어떤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체호프의 저 아포리즘 같은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나 체호프의 재능은 실제 이야기를 써나갈 때 더 돋보인다. 아마 그가 쓴 최고의 연애소설, 즉 멜로는 이 작품이리라. 민음사 체호프 단편선에 실린 <공포>도 나름 재미있다.

 

 

 

 

 

 

 

 

 

 

 

 

 

 

 

이 소설은 수업 시간에도 많이 다루지만, 사랑-불륜에 대한 체호프 나름의 성찰이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체호프 나름의 화답이고, 중년에 바투 다가선 나이에 젊은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진 작가 자신의 자전적 기록이기도 하다. 소설에는 유부남으로 설정되었으나 그는 기실 미혼이었다. 이 소설이 상기된 것은 어젯밤에 (요즘 나쁜 버릇이 생겼고나 ㅠ.ㅠ) 또 영화를 본 탓이다.

 

 

 

 

 

 

 

 

 

 

 

 

 

 

 

다들 보셨겠지만, 소설도 꼭 한 번 읽어보도록 만드는 영화다. 막상 보니 '사랑-성장(늙음)'보다는 오히려 법과 정의, 죄와 벌의 문제에 더 천착한 듯도 싶었다. 작가가 법학자에 판사니까 더 그럴 듯. 한나와 마이클(미하엘?)의 사랑은 후자의 문제를 더 도드라게 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 그럼에도 이 부분 역시 무척 절절하고, 덧붙어 문맹(눈멂, 까막눈!)이 지니는 의미가 전체적인 주제와 너무 잘 어우러졌다.(결과적으로 "잘 몰라서"(무지) 행해진 범죄 역시 바로 그 '모름' 때문에 처벌받아야 마땅하다는 요지니까.) 나와 동갑인 케이트 윈슬렛의 훌륭한 연기로 표현된 한나의 고뇌(생계의 압박, 고독, 젊은-어린 연인에 대한 사랑과 질투, 열등감, 그럼에도 사랑 등)에 마음이 얼얼해졌다. 그럼에도 이건 독일이 배경이니까 독일 배우들이 연기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독일 특유의 거침, 척박함, 깊음, 이런 것들이 좀 더 부각되도록.

 

아무튼 이 영화에서 거의 뒷부분, 한 10년째(?) 감옥에서 책 낭독 테이프를 받아온 한나가 글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감옥 내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책의 이름. 바로 "The Lady with a Dog"였다. 자막 없이 알아듣는 둥 마는 둥 보다가(덕택에 재판 내용을 잘 접수 못함 -_-;;) 여기서 귀가 번쩍 뜨였다. 한나는 대출한 책을 펼쳐 놓고 열심히 글을 배운다.(처음 줄 친 단어는 the.) 그게 바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 ...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라는 소설이다. 그 다음, 유부남이자 소위 '선수'인 구로프와, 아이 없는, 아담한 체구의 유부녀 안나 사이에 연애가 전개된다.  

 

우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 돈과 여자(남자). 즉, 돈이 아니라면 사랑이다. 물론 연구할 만한 주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가는 이광수, 염상섭, 이상이다. 이 세 작가는 각각 지사적 주체, 장인적 주체, 예술적(미적) 주체 등으로 정의되고 그들의 소설도 그 맥락에서 분석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상을 제외하면 대개가 장편인 실제 작품들에 대한 분석이다.) 앞부분에서 조금만 옮겨놓는다.   

 

이광수는 계몽적 계기를 민족주의와 이상주의라는 형식으로 실천했고, 염상섭은 현재에 대한 성찰의  방식으로, 또 이상은 투철한 예술가 의식으로 구현해 냈다. 이광수에게 중요한 것은 문학적 글쓰기가 어떻게 민족적 주체의 보존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인지의 문제 곧 정당성의 문제고, 염상섭에게 중요한 것은 글쓰기를 통해 포착되는 개인의 진정성이며, 이상의 경우는 미학적 모토로서의 새로움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척도가 된다.” (28-29)

 

<무정>, <삼대>, <날개>(요것만 짧고나)만 읽어 봐도 세 작가의 사랑 묘사법이 그들의 개성만큼이나 또렷이 구분된다. 5월에는 <무정>을 꼭 완독하도록 한다!^_^

 

 

 

 

 

 

 

 

 

 

 

 

 

 

 

 

*

 

아무리 노파 분장을 해 놔도 영롱한 눈동자가 아직 노년은 멀었음을 보여준다. "너, 다 컸구나..." 여기서 손 좀 더 오래, 정성껏 잡아주지..ㅠ.ㅠ 랄프 파인즈의 매몰찬(내적으로야 복잡하겠지만) 표정과 어투, 한 대 때려주고 싶더라.ㅋ  

 

 

케이트 윈슬렛. 보통 <타이타닉>으로 기억하지만, 내가 본 그녀 주연의 첫 영화는 토마스 하디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주드>였다.

 

 

여배우  치고는 참 안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삼십대 이후부터 돋보이는 듯.  강단 있고 자존심 강하고 어딘가 이지적으로 보이는(실은 문맹인데!) 얼굴이 (역시나 편견인가!) 영국 배우 같다. 백인의 장신이라  파란색 꽃무늬 민소매 원피스,  예쁘다. 남자 친구랑 같이 있으면 엄마 소리 듣고 미래의 변호사가 될 모범생 앞에서 문맹이라...ㅠ.ㅠ 애들도 다 읽는 메뉴판도 못 읽으니..ㅠ.ㅠ 나 역시 두 번의 호된 연애에서 비스므리한 경험을 (때론 역으로) 해본 터라 더 격하게 공감되었던 듯.  본의아니게(?) 스무살 연하를 사랑한 탓에 졸지에 늙은 연인이 되어버렸지만, 이 무렵엔 케이트 윈슬렛도 삼십대 중반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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