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는 인정받는 소설가도 아니고 나 스스로도 아마 내가 하는 활동 중 제일 못하는 것이 소설쓰기라고 생각하는, 문제가 심각한 소설가이다. 그럼에도 소설 창작 강의를 기꺼이 맡은 이유는, (돈이 제일 크다마는 -_-;;) 좋은 소설이 어떤 것이냐, 어떻게 해야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나, 하는 고민을 그 누구보다도 많기 하기 때문이다. 통상 수업의 전반부에는 고전(단편)을 읽고 후반부에는 요즘 소설을 읽는다. 바빴지만 그래도 지난 7월, 수업 하는 김에 꼭 읽고 싶은 소설 몇 권을 챙겼다. 같이 읽으면 좋겠다 싶은 텍스트, 단연코 으뜸은 이것.
<사랑하는...>을 쭉 읽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소설 몇 편을 학생들과 공유했다. 우선은 짧아서 좋고, 그리고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많은 작품들이 소설-산문임에도 거의 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운율이 느껴졌다. 성석제를 오랜만에 읽는데, 그 특유의 사람과 사물에 대한 정겨운 사랑, 건강한 유머, 각종 부정적인 일에 대해 궁상 떨지 않음 등이 너무 좋았다. 이런 식의 소설을 쓰는 학생이 있었는데, 답안에 성석제 얘기를 많이 썼더라. 역시나 유유상종. 한동안 이만큼 좋은 콩트(엽편소설)는 나오기 힘들지 않나, 싶다. 왜냐면, 거듭 강조하거니와, 사람과 사물에 대해 성석제만큼 정겨운 말-이야기를 해주는 작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여전히 체호프를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리고 러시아문학이니 만큼 그 특유의 우수와 우울은 어찌할 수 없다.
지난 봄 학기 미뤄뒀다가 읽은 김영하는, 그가 여전히 우리 시대에 최고 작가임을 보여준다. (<알쓸신잡>에 나오는 김영하가 내 눈에는 여전히 젊어 보이는데, 이것 자체가 내가 이미 늙었음을 보여주는 슬픈 증거.) 개인적으론 그의 경장편 <살인자의 기억법>이 더 좋았지만, 이미 두 학기를 했고 또 신작이 나와서 단편 두 편을 읽었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 이상문학상 받은 <옥수수와 나>. 전자는 좀 지루했고(혹은 작위적으로 여겨졌고), 후자는 아, 난감했다. 이 작품은 예전에도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다는 기억을 갖고 있었던 건 완독을 안 해서였던 것이다 -_-;; 이번에 다 읽어보니, 후반부(소설가 주인공이 출판사대표-사정의 마누라와 어쩌고 하는)가 거의 파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최근 소설 중 제일 재미있는 축에 속하고,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고 또 공감을 보여 김영하의 힘을 절감했다. 한편, <살인자의 기억법>은 다들 아시겠지만, 영화로도 나왔다. 소설 속 김병수(?)는 어딘가 위트 있는 모습이었는데, 영화 속 설경구에겐 (적어도 스틸컷 상으론) 그게 안 보여서 약간 아쉽다. 아무튼 이 장편은 최근 10여년간 가장 잘 쓴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김영하의 제자(?)이기도 한 김애란의 신작도 읽었다. <침묵의 미래>, <어디로...>에 집중했는데, <달려라 아비>를 쓴 어린(!) 작가가 이토록 성장했음에 짧은 시간이지만 만감이 교차했다. 개인적으론, 지금의 김애란은 너무 감상적이지 않나, 싶지만, 우리 독자들은 이런 따사로운 감상을 원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어딘가 무라카미 하루키 냄새가 짙은데, 요즘 한국 소설 전반의 경향인가 싶기도 해서,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이미 삼십대도 중반으로 들어선(넘긴?) 그녀의 소설에 이십대 독자들이 호응한다는 점. 이 역시 좋은 일이다. 소설이란 혼자 읽으려고 쓰는 게 아니므로!
반면, 이 분은 여전히 '나만의 소설'을 고집하는 듯하다. 여기에 어떤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서는 아닐 테고, 아마도 이렇게밖에 쓸 수 없어서, 일 거라고, 나 혼자 생각해본다. 아무튼 드디어 그의 신작을 읽었다. 시간에 너무 쫓겨 다는 못 읽고 표제작을 비롯하여 한 두 편, 때론 스킵. 정영문 소설의 장점-미덕 중 하나는 바로 이 '스킵'이 기법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움하하핫. 가령 <오리무중에 이르다>의 경우, '나'와 웬 여자(애인인지 아닌지 애매한)가 나와, 날도 추운데 어디 호숫가인가로 떠난다, 떠났다가 너무 추워 숙소로 기어들었다, 대략 이런 식의 스토리인데, 보다시피 스토리랄 것이 딱히 없어 아무 데나 펴서 아무렇게나 읽어도, 너무 좋은 것이다! 이 역시 정영문 식 유머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스토리가 제법 만져졌던 <어떤 작위의 세계>보다 더 재미있었다. '개의 귀', 이런 것도. 그리고 어떤 심심한-지루한 도시 얘기도. 경상도의 촌구석에서 자란 그에게, 어떻게 이토록 도시적인(?!) 공간 감각이 가능한지. 부럽다.
고전을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재미는 없을 지언정 그것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반타작은 한다. 하지만 현대 소설을 읽을 때는 얘기는 전혀 다르다. 나름의 실패(돈 아까워 -_-;;)라고 생각하는 책도 있다. 기대를 갖고 읽는 정지돈의 소설. 이게 문지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 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다음, 장르문학과 관련, 읽을 만한 단편이 마땅치 않아 도진기의 소설을 한 번 봤다. 아, 실망했다! ㅠ.ㅠ 작가가 법조인이라, 또 법조인이 쓰는 추리소설이라 너무 기대했던 것 같다. 두 부분 모두, 우리 머릿속의 전범에 비하면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법학도의 소설이라기엔 주제의식이 너무 약했고, 추리소설로 읽기엔, 님아, 스릴이 없었다오 ㅠ.ㅠ 후자와 관련하여 학생들이 추천한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 나는 읽은 게 없어 이참에 읽어보려고 주문해보았다. 요즘은 인기가 좀 시들한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쉽게도, 나는 많은 작품을 읽지 못했으나 매학기 열성팬이 있는 듯하다. 이 작가. 이번에 읽은 <식물애호>가 영어로 번역, 어느 잡지에 소개되었다는 기사를 본 듯하다.(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한 학생도 들뜨서 얘기하더라.) 번역으로도 그 진가가 발휘될 작품인 듯하다.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 시 몇 편을 읽었다. 심보선 시인의 신작 시집 출간 소식을 뒤늦게 들어 유감이었다. 언제 또 기회가 되겠지.
시뿐만 아니라 산문도 공유해볼 만한데, 마침 이런 책이 (헌책방에서 -_-;;) 걸려 들었다. 재미있더라, 왜 많이 읽히는지 알만했다.(이렇게 얇은 줄은 미처 몰랐다.) 중간에, 수업 시간에 읽은 카프카, <프로메테우스...>, 멜빌, <바틀비> 얘기도 들어 있어 더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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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잘 쓰기 참 힘들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때론 넘친다. 대상에 대한 묘사를 주문했으나 '이야기를 구성해도 됨'이라고 단서를 달아놓았더니 열 줄 안팎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그게 인간이다. 그리고 그 몇 줄에도 문체가 있다. 역시나 그게 인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이 되는 건 아니다. 솔직히, 책을 많이 읽는다고, 또 공부를 많이 한다고 소설을 잘 쓰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럴수록 더더욱 '오리무중'에 빠질 밖에. '오리무중'에 오리가 없다니,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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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을 한 지 오래됐음에도(게다가 요즘 계속 제대로 된 러시아문학 강의를 못 받고/얻고 있는데 -_-;;) 웃긴 꿈을 꾸었다. 수업 시간에 맞추어 강의실에 도착, 헐, 뭔가 이상하다. 의자와 책상의 배치가 바뀌어 있고 심지어 없어지고 매트 따위가 깔려 있다. 이건 뭐지. 그러고 보니 학생들이 죄다 유치원생들로 바뀌어 있다. 고**, 송**, 조**, 안** 등등 우리 아이의 친구들, 후배들이 즐비해 있는 것이다. "여러분, 고골은요~" 이렇게 운을 떼지만,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시끌시끌, 에공...-_-;;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참을 난감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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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알림장 내용은 뭐야?"
한참 삐대다가 말한다.
- "가을이 왔어요~ 입추~"
발음이 좀 엉성하지만, 엄마는 알아듣는다, 알아듣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이게 지난 주 월요일인가 그런데, '가을이 성큼', 이런 어구가 떠오르는 날씨다. 지구가 아무리 미쳐가도 음력은 역시, 칼, 같구나. 여름 원피스를 더 입어야 하는데 -_-;;
- "~ 너무너무 더워요 여름 하 / 곡식을 거두워요 가을 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