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던가, 콜럼버스 부분.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참 잘 모르는 역사의 한 장면인 것 같다. 그를 너무 신비화하지도 않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의 업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잘 짚어준 듯하다. 쭉 흘러, 흘러, 그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다음(물론 아시다시피 그는 극 신대륙인지 몰랐지만) 그가 남긴 기록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들은 훌륭하고 똑똑한 하인이 될 것이다. 우리가 해준 모든 말을 아주 빠르게 따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가 없어 보이므로 아주 쉽게 기독교가 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귀환할 때 그들 중 여섯 명을 잡아다가 국왕 전화께 데리고 가서 말하는 법을 배우도록 할 것이다."(196)

 

우선은 기록을 남겼다는 것. 콜럼버스는 나의 (무식한, 무지한) 편견과는 달리, 제법 학식이 있는 자, 공부를 참 많이 한 자였다. 하긴 지리 등등을 공부하지 않고 그 험난한 뱃길을 떠났을 리 없다. 그 다음, 제법 정치적이었다는 것. 왜냐면 황제를 알현 등등 하여 후원금을 받는 일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식으론 연구비 따내는 건데, 나는 2년 연속 줄줄이 낙방 ㅠ.ㅠ) 그 다음, 저자가 잘 정리하고 있지만, 이 탐험의 여정에는 돈이나 출세 같은 실리적 목적 외에(어쩌면 그보다는?) 거의 세계사적인, 또 심지어 종교적인 사명이 들어가 있다는 것. 저 말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말 가르쳐주고, 또 우리 종교 심어주고 나아가 우리 주님 기쁘게 해주고 등등. 이 마지막, 세 번째 항의 함정이란!

 

저자가 예의 그 평이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문체로 잘 정리해주신다.  

 

"자기네들과 똑같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언어가 없는 것이고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종교가 없는 것과 같다. 말을 빨리 따라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말을 금방 배울 것이니 곧 좋은 하인이 될 것이다."(198) 

 

아! 정말 할 말 없다... 내 말이 아니면 저건 말이 아니요, 내 종교가 아니면 저건 종교가 아니다... 이게 이후 제국주의(침략, 전쟁, 폭력 등)의 근거가 되는 생각인데, 그 출발점에 전혀(!) 악의가 없다는 것이 너무 무섭다... ㅠ.ㅠ 말 없는 저들에게 말을 주고 종교 없는 저들에게 종교를 주고. 우리가 이 좋은 걸 주겠다는데 왜 반항해, 병신들, 바보들, 죽어~! 흠, 이제야 정신을 좀 차리는군~. 그렇게서 16-17세기에는 스페인어, 그 다음에는 영어(프랑스어)가 그렇게 퍼져나간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기독교야말로 (십자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무서운 폭력과 함께 퍼져간 종교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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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울쩍할 때 이 책을 조금씩 본다.

 

 

 

 

 

 

 

 

 

 

 

 

 

 

주경철 교수의 주저는 <대행해시대>라고 하는데, 사놓고 들춰봤지만 완독은 못했다. 아무래도 책의 생김새와 양감과 출판사가 '공부'를 요구하는 책처럼 보인다. 그에 반해 이번에 나온 저 두 권은 어딘가 가벼운 느낌이 들어 아예 식탁에 올려놓고 읽는다. 너무 재미있다! 진짜 강추. 이번 책은 네이버-??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라는데, 격주 연재, 월간 연재를 해본 경험상(그것도 힘들었다!) 저자의 부지런함과 순발력에 감탄한다. 

 

 

 

 

 

 

 

 

 

 

 

 

 

 

주경철의 책을 간헐적으로 읽어왔다. 이런 것들. 어지간히 다들 재미있게, 무엇보다도 고맙게(!!) 읽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문화로...>는 책가방에 넣고 이동 중에 수시로 꺼내읽었던 기억도 있다.(아마 출산 전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의 책이 왜 고맙냐, 하면, 역사학자 중 거의 아무도 이렇게, 이런 책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야 많지만, 제일 짜증나는, 가당찮은 것이 '나 같이 위대한 역사학자가 어찌 저리 가벼운 책을~~' 이런 이유다. 이런 분들이 그렇다고 해서, 깊이 있는 논문이나 연구서를 쓰느냐?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것이 학계 전반의 현실이다. 소위 학술적인 연구논문이나 연구서의 적잖은 양이 대부분이 외국어 논문과 연구서의 번역, 요약, 짜집기, 그나마도 제대로 자기화되지 않아 독해에 어려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즉, 잘 써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못 써서 어려운 것이다! (소설만의 문제가 아니었고나..ㅠ.ㅠ )

 

이런 현상은 분야를 가리지 않을 것 같다. 러시아문학은 연구서를 내봐야 잘 안 팔릴/읽힐 것이 뻔한다. (올 초에 연구서 원고를 넘겼으나 <지바고>도 발효 중이니 아마 근일내에 출간되지 못할 터이다. 또 모르겠다, 노벨문학상 덕분에 내 원고들도 '창고대방출'될지^^;;) 이건 독자의 수준을 탓할 게 아니라 전공을 탓해야 한다.  역사서를 읽는 독자가 러시아문학연구서를 읽는 독자 보다 많은 것은 당연하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나. 그럼에도 잘 읽히는, 훌륭한 책을 쓰는 양반들이 있어 귀감이 될 만하다. (물론 '로쟈' 조차도 러시아문학 관련서가 제일 안 팔리는 것으로 안다 -_-;;)

 

 

 

 

 

 

 

 

 

 

 

 

 

 

 

 

 

 

 

 

 

 

 

 

 

 

아무튼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를 읽다가(아직 1권도 완독 못 했으나) 든 생각. 대체로 인간의 역사는 땅 따먹기(영토 확장, 권력 쟁취), 짝짓기와 번식(정략결혼, 아들낳기)의 역사, 라는 것. 역사야말로 사람 사는(살아온) 이야기일진대, 인간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토대로 엮어지는 건 당연하리라.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렵지, 혹은 어려웠지?^^;;  돌이켜보면 연대 외우는 것이 제일 힘들었던 듯하다..ㅋ 하지만 그뿐이랴, 학습, 공부라는 것은 언제나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사실, 역으로, 적절한 스트레스가 동반되지 않으면 학습, 공부, 나아가 평가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는 세계사가 아니라 세계지리를 선택 과목으로 골랐고, 때문에 세계사는 영원히 나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너무 유감이다. 그때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수능이 D-??일, 수험생들아, 더 열심히 공부하라!^^;;

 

*

 

 

통상 우리가 아는 헨리 8세. 키가 거의 2미터에 육박하고 체중이 188(?)kg인가, 정말이지 -_-;; 왕년의 그가 18세의 젊은 왕이었다는 사실이 정녕 중요하다. 결혼 여섯 번하기 쉽나. (정부를 그렇게 둘 수는 있어도 -_-;;) 이 정도 비주얼은 되어야 정치도 하고 짝짓기도 하는 것이지...

 

 

 겸사겸사, 영국 왕실에서는  부부도 공식 석상에서 손을 잡을 수 없다고 한다.(그래서 윌리엄 왕세자와 케이트 미들턴은 항상 뻘쭘하게(?) 나란히 서 있다.) 로열 패밀리의 존재 자체가 문화재다.

 

*

 

또 하나. 워낙 세계사에 과문하여(그러게 중고교 시절에서 더 공부해야(!) 했다니까!) 소위 '합스부르크의 턱(주걱턱)'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거듭된 근친혼의 결과인데, 그의 손자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장애아다.(곱사등이에 지적 장애에...) 결국 씨가 마를 수밖에. 나중에 엮어 보니, 마리 앙투아네트의 엄마인 마리아 테레지아 역시 합스부르크 가의 후손이다. 마리 앙-트 역시 주걱턱이었다니, 그녀의 초상화는 포샵이었던 것이다 -_-;;  

 

*

 

또 하나. 중국은 제국(단일한 한 나라)으로  발전했는데 왜 유럽은 저렇게 크고 작은 다양한 여러 나라로 발전했을까. 저자가 던진 물음이 격하게 공감되었다. 그 물음 속에 또한 유럽의 본질이 들어있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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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노벨문학상을 누가 받을지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8시에 얼른 스마트폰을 봤는데, 에공, 모르는 작가였다. 헐, 이럴 수가! 일본계 영국인이라니. 출생지가 일본이고 부모가 일본인인 것이지, 영국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영어로 썼으니 실은 영국 작가라고 해야겠다. 자존심도 상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찾아보니, 헐, 이 영화의 원작자였던 것.

 

소위 신림동 비디오방 시절에 마구잡이로 봤던 무수한 영화 중, 어떻게 보면 참 기억에 남기 힘든 영화인데도 기억에 남는 그런 영화다. 왜 기억에 남기 힘들 법하냐, 하면, 아시겠지만, 사실 그렇게 극적인 영화가 아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보니 젊은 휴 그랜트도 나왔고, 전쟁이며 뭐며 복잡한 얘기들이 많이 들어있던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저 장면이 암시하듯, 두 인물의 미묘한 감정 교류,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 어긋나는(접촉과 오류!) 운명의 동선, 이런 것들이었다. 대략 여기서부터 엠마 톰슨을 무척 좋아하게 된 듯하다. (역시 여배우치고는!) 미모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녀만이 뿜어낼 수 없는, 지적이고 심오한 아우라가 있다. (음, 앤소니 홉킨스는 여기서도 너무 안 잘 생김 -_-;;) 대략 이런 느낌의 영화(소설)로 <전망 좋은 방>(젊은 날의 다니엘 루이스와 헬레나 본 햄 카터가 나왔던),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러티> 등이 떠오른다. 맨 마지막에서 큰 언니(이름 까먹음) 역을 또한 엠마 톰슨이 맡았던 듯하다. 그녀의 연인 역은 휴 그랜트였나. 

 

발표의 순간부터 노벨상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이게 만들어진 게 언제냐, 아무튼 문학 쪽만 놓고 보면 삼분의 일(어쩌면 절반??) 이상은 다 잊힌 작가이지만(반면, 토마스 만은 받았으나 카프카는 못 받은 상이자만) 그럼에도 이 상은 여전히 엄청난 권위를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정말 단순한데, 아무튼 잘 쓰는 작가, 읽히는 작가에게 상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 '작가'에는 베르그송, 러셀 같은 철학자-사상가, 심지어 밥 딜런 같은 가수 등 '쓰는 자'가 대거 다 들어간다. 나 역시 이 권위에 기대어, '동굴의 우상'(맞나?ㅋㅋ)에 빠져, 지금껏 영국 소설-영화인 줄 알았던 <남아 있는 나날>을 포함하여 두어 권 주문하려 한다.

 

 

 

 

 

 

 

 

 

 

 

 

 

 

곁다리로, 한 시절 일본은 '아시아의 영국'으로 불렸다, 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가 돈(국비 장학금) 받고 간(보내진) 곳도 영국이다. 섬 나라 잉글랜드의 엄청난 정복욕과 호전성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남한테 나쁜 짓 안 하고 돈 벌기 쉽나, 더욱이 '제국'이 착하게 살아서 만들어지나, 어디) 그 (역?)효과 중 하나가 영어임은 분명하다. 노벨상 유력 후보였던 응구기(와 티옹오?) 역시 말이 케냐 작가이지, 성장과 교육의 과정을 생각하면 절반 이상이 영국 작가다. 프랑스 정계에 진출해 있는 한국인(입양아)들 보면서도 느끼지만, 핏줄 만큼이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교육인 듯하다. 가즈이 이시구로는 (찾아보니-_-;;) 서른 살(?) 될 때까지 일본에 가지 않았다니, 정녕 영국 작가인 듯하다. 이것도 좋다!  나의 감각으론, 러시아에 사는 젊은 고려인들이 떠오르는데, 외양만 한국인이지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우리 쪽에서 질곡의 역사를 생각하여 그것을 강요하는 것에 가깝고, 그들 쪽에서 이것은 차라리 니체식 '원한'(르상티망: '과거에 그랬음') 에  가까운 지도.  

 

*

 

연휴가 너무 길어 온 가족이 미치는 중이다-_-;; 

사교육, 다들 반대한다. 아이들 학원 보내지 말고 그냥 놀리라고. 암기식, 주입식 공부하지 말고 폭넓게 독서하고 창의력 키우라고. 아니, 취지야 좋지, 아이고 어른이고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뒹굴 컴퓨터-스마트폰 오락(나이와 취향에 맞게 어쩜 이리 다양한지!)에 심취,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 뒹굴뒹굴, 밥 먹는(해주는) 것도 귀찮아 또 뒹굴뒹굴. 

<뽀로로 놀이교실> 보는 아이를 다그치고 뭔가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놀이(뭐 레고든 징고든 젠가든 아니면 독서든)로 이끌려면 엄마/아빠도 같이 부지런해야 하는데, 아, 아무래도 인간도 원래 천성은 '나무늘보'(Sloth!)였나 보다. 이 게으른, 그 게으름 덕분에 적자생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고 있는) 동물에 대해서는 언제 또 쓰자. 넘 귀엽다! 너무 천천히 움직여서 오히려 천적들에게 안 잡힌다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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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라 우울하고 그 연휴가 너무 길어 더 우울하고 알고 보니 주변에 우울한 사람이 너무 많아 또 우울하다. 우울(증)의 연대, 를 구축해도 될 만큼 그렇다. 아,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웃긴다! 모두 다 정신과에서 만나야 할 판이라니. 썰렁한가, (교통사고로 몽땅 죽은 다음 저승에 만나서 얘기하는) "봉고 덕분에 다 모였네!"라는 고등학교(?) 시절 유행어가 떠오른다. 친구들과 봉고 한 대를 빌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가던 시절 얘기다.

 

명절이면 거의 모든 며느리들이 겪는 저 유명한 '공포의 전 부치기'('부치기'라고 쓰고 보니 '붙이기'가 아닌 게 새삼스럽다)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가만 보면 이건 그냥 내가 안 하면 되는 건데 어릴 적부터 몸 속에 새겨진 관습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공포의 전 부치기' 못지 않게 공포스러운 것이 봉지에 담아주(시)는 전 덩어리, 전 뭉치다. 아, 지난 설(추석) 때 것도 냉동실에 있는데, 라고 무슨 라디오 방송에 나오더만. 그 역시 그냥 안 가져 오면 되는 것을, 그 관습-습관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데도 몇 년이 걸린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말을 배우기 전부터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풍경을 봐 왔다. 전 부치고 조기 굽고 탕국 끓이고 잡채 만들고 등등 이런 냄새와 소리가 없으면 명절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또 어찌나 많이 모였는지. 제사상(차례상) 차려놓고 지방(!) 펼쳐놓고 향 피우고 어른-남자들이 쭉 서서 절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 다음에는 어린이-남자들이 들어가서 절했다. 어느 시점부터 "이제 너네들도(여자애들) 들어가서 절해라~~"라는 선언이 있었다. (경상도 치고는 그나마 깨인(?), 혹은 근본 없는(?) 집안이었나??) 하지만, 이제 정말 그만 해도 될 법하다, 어렵지 않다, 그만 하는 거, 그냥 안 하면 된다.

 

연휴 시작 되기 직전에 청탁이 들어와 소설 쓰고 있다. 워낙에 청탁도 잘 안 들어오지만, 대개는 써놓은 소설을 다듬어 보내는 쪽이었는데, 어째 이번에는 쓰고 있다. 아니, 쓰이고 있다. 이 정황 자체가 신통방통해서, 너무 고마워서 "내가 제일 예뻤을 때"를 검색해본다. 그래도 소설책 나오면 기사도  나가던 시절이다. 국민일보 인터뷰는 사당역 근처에서 했는데, 엄청 추웠던 기억이 있다! 인터뷰 가기 전에 머플러를 몇 번이나 다시 묶어봤던 기억도 난다, 사진 예쁘게 나오게 하려고.

 

(경향신문 2009년 ??)

 

(국민일보 2009년 ??)

 

(조선일보, 아마 2000년??)

 

정말 "내가 제일 예뻤을 때"라는 책이 생각나는 사진이다. (소설은 좀 지루하게 읽은 것 같은데, 요즘은 어떤 소설을 쓰시는지.) 누구에게나 '화양연화'가 있는데, 그것은 항상 좀 먼 과거가 될 수밖에 없다.

 

 

 

 

 

 

 

 

 

 

 

 

 

 비교적 최근, 이미 사십대. 흠, 하지만 사십대도 다 같지 않다. 아이 시절도 그렇지만 늙어갈 수록 정녕 '한 살'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한 생명체가 40년 넘도록 살았다는 것은 정말 너무 하잖아.(지하생활자가 생각난다^^;;) 그 동안 심장이 단 일초도 쉬지 않고 계속 뛰어왔음을, 또 뛰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건 진짜 징그럽다.  

 

 

 쓰고 싶은 내용을, 쓰는 손(!)이, 몸이 따라가지 못해 원망스러운, 그런 나이다. 논문 초고도 잡고 있는 중이지만, 쓰는 것이 참 힘들다. 아, 내가 언제부터 백지를 두려워했던가. 스승(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정녕 백지를 두려워할 때가 올 줄 몰랐건만.  

---

 

(바닷가에서 놀다와서, 노트북 켜놓고 한글 파일 열어놓고 있는 걸 보더니 엄청 웃으면서 묻는다.)

"엄마, ** 아파트에서도['집에서도' 이런 표현을 써주면 더 좋겠다만] 일하는데 왜 또 여기서도 일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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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도 연휴야?"

"엄마, 오늘도 놀아? 왜 또 놀아?" 

"엄마, 오늘은 평범한(그냥) 목요일 아니야? 조**, 배** 선생님 안 만나?"

 

--

 

더러 특이한(?) 표현을 쓰긴 하지만 종알종알 말을 참 잘 하는 아이를 보면서, 음, 이제라도 등급 심사를 취소해달라고 할까, 고민이 든다. 사실 공단은 아쉬울 게 없으니, 등급이 나온 뒤라도 취소는 정말 쉽더라. 내가 그 혜택 안 받겠다는 것이니. 음, 그리고... 검사는 검사일 뿐, 숫자는 숫자일 뿐. 아니, 저렇게 멀쩡한데 진짜 검사가 이상했던 거 아니야? -_-;; 아니야, 그래도 해야 해. 장애아 엄마가 될 준비를 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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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일이지만, 내가 번역한 책을 이렇게 정독하는 건 처음이다. 필요에 의해 더러 발췌독을 해온 정도.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건 2007년, 정확히10년 전인데(으악!) 초판에 오탈자가 너무 많아 정말 송구스러울 정도다. 그 사이 증쇄할 때마다 고쳤지만, 그렇게 고칠 것이 많았다는 점에, 또 한 번 송구스럽다. 

책을 빨리 내기 위해, 10년 전, 편집자와 주말에도 집 근처에서(그 편집자도 이 근처 살았던 시절이구나) 만나 같이 죽 먹고 커피숍에서 담배 피우면서 교정지를 놓고 편집하던 기억이 난다. 교정 과정에서 원고는 전부 퀵서비스로 날랐던 것 같다. 앗, 커피숍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니, 정녕 10년 전이구나.ㅠ.ㅠ  

 

 

 

 

 

 

 

 

 

 

 

 

 

 

 

그저께 2권을 다 읽었다. 드미트리(미챠) 얘기가 제일 많다. 특히 초반부, 미챠가 3천루블을 구하기 위해 '대장정'을 떠나는 장면, 그에 앞서 화자가 지적하는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다. 수업할 때마다 강조했던 대목인데, 실제 소설을 보니 역시나 도스토-키답게 엄청 길고 장황하게 썼구나...-_-;; 옛날 같으면 다 손으로 썼겠지만 한 번 찍어(!) 와 본다. (앗, 내 손톱이 예쁘구나!^^;;)

 

평생 동안 제 손으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는 사람, 오직 남(아비)한테 공으로 받아 물처럼 펑펑 쓰는 법만 아는 사람에겐 정녕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다! 더러 우리 주변에도 있지 않나. 카드깡하고 그러다 망하고 그러면서 남 탓, 사회 탓 하고 등등 하는 사람. 좀 비약이지만, 지난 몇 년간 나의 소비 패턴도 미챠와 비슷했지 싶다. 거의 거지로 살다가 번역 인세가 많아져 거의 미챠처럼 돈을 뿌리며 살았던 듯하다. 뿌리는 게 귀찮아 통장에 박아둔 돈도 적은 돈이 아니었으니, 내 주제에는 엄청 많이 벌었던 것이리라. 그 영화가 영원하리라 믿었던 그 순진함과 어리석음 역시 미챠를 방불케 한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도 생각했지만, 미챠는 아무래도, 음, 지능검사 하면, 경계선급(70점대^^;;)이나 심지어 지적 장애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워낙 방대한 소설이라 내용 요약이 쉽지 않으나(그래도 그것을 하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이건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실패한 재판'(오판)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죄와 벌', 특히 '죄'를 단죄하는 사회적 시스템인 재판과 형벌에 대한 도-키의 관심은 <죄와 벌>에서 이미 본격화되었다. <카라마조프>는 예심, 공판 장면도 엄청나게 길고 상세한, 명실상부한 법정 소설로 읽어도 좋을 법하다. 이 경우 드미트리의 비중은 더 커질 밖에. 예심이 종료될 부분, 이런 식의 심리묘사도 많은 논의거리를 준다. (저 부분, 미챠의 발 모양 묘사에서 '병신 같은~' 이런 표현 참 마음에 든다.)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집 앞, 구청 도서관에서 이 책을 꺼내 읽었다. 무슨 살인 사건 있고, 그 다음, '피스'라는 이름의 남자(살인자)가 나와서 비행청소년(?) 여자애를 죽이는(햄버거도 주고 샤워까지 시킨다!) 장면 부분.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거의 100쪽 읽은 듯. 내가 읽은 건 2권이었던 듯하다.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소설-추리소설 쪽으로 명성이 자자한데, 조금만 읽어도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그녀의 소설로 완독한 걸로는 <이유>가 있는데, 부동산 사기(?) 이야기였나, 아무튼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한데, 이런 유의 소설과 '범죄소설'(추리소설, 법정소설) <카라마조프>가 명백히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모방범> 역시 만만한 소설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설경구 주연의 영화로 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된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정말 내 취향이다. 나는 김병수의 위트 넘치는 아포리즘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김영하는 아무래도 짧은 소설에 강하고, 이게 <검은 꽃> 등등의 장편보다 훨씬 나은 듯하다.  

 

 

 

 

 

 

 

 

 

 

 

 

이런 유의 소설을 쓰려면 필력이나 문재, 이런 것 외에, 진짜 머리가 좋아야 할 것 같다! 김영하는 딱 봐도 멘사 아이큐는 될 것 같지만(ㅋㅋㅋ), 도-키는 (톨스토이보다야 낫지만) 머리가 별로 좋았던 것 같지 않은데, 어찌 저런 소설을 썼을꼬. 그러게, 소설 자체가 기적이다! 작품 자체가 기적인 그런 작품이 있는 듯하다.

 

*

 

몸과 마음과 머리를 아이에 관한 근심으로 채우는 건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아, 바람이라도 피우고 싶지만 이거야말로 정말 불가능한 일이고, 몸을 써야 하는 일, 즉 강의가 좀 많으면 좋겠지만, 어디나 남아도는 강의 자리 없어 이 역시 여의치 않다. 다들 옷 입고 있는데 나 혼자 병신 같은 몸뚱어리를 드러내놓고 있는 그런 기분. 더 안타까운 건, 모든 것이 점점 악화될 뿐, 하나도  좋아질 건 없으리라는 암울한 전망. 사실이 그런 것이, 정말 더 좋아질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나. 그나마 희망이라면 '뇌병변'의 정의처럼 '기왕지사 더 나빠질 것도 없다'라는 것.

 

작년 가을부터 '지진'을, 심지어 낮에도, 경험하는 일이 잦고("서준아, 방금 땅 흔들렸니?" "아니, 서준이는 괜찮은데?") 최근에 불안 강도가 너무 높아져 거의 대학 3-4학년 시절 같다. 그 무렵에 심리 상담을 받고 밤에는 무슨 전화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지금도 뭔가 그런 외적인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 진단해본다. 

 

오랜만에 절친한 선배한테 전화를 걸어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20여년(!)을 그래왔듯 무던히 들어주던 그의 답인즉, "에, 나는 (그런 쪽이 아니라) 몸이 피곤하다." ㅋㅋㅋ 비교적 안정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지방출장이 잦은 남편 역시 그런 듯하다. 몸을 써라,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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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대디 2017-10-0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하신 분이군요. 민음사 책으로 정말 몰두해서 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니체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킨 것은 아니었는지 추측도 해 보았구요. 다만 민음사도 이젠 하드커버로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도 듭니다. 책장이 자주 뜯어져서 말이지요.

푸른괭이 2017-10-05 13:07   좋아요 0 | URL
니체가 도-키보다 많이 젊고(어리고) 두 사람 사이에 사상적 연관성이 적잖이 발견되지만, 그럼에도 영향 관계를 지적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니체가 어디서 스탕달과 함께 도-키 칭찬해 놨지만 그 오만한 독일 철학자가 러시아 작가의 소설을 그리 탐독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그리고 <죄와벌> 정도까지만 읽은 것 같아요.) 참고로 유학 시절에 이 주제로 보고서 썼던 기억이 있네요 -_-;;

빅대디 2017-10-05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니체를 존경했던 카뮈도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중 몇몇 책은 비판을 많이 했던 것 같군요. 여하튼 제 기억으로는 2권중의 일부 내용이 니체의 사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표절은 안했겠으나 또 모르죠, 뇌리의 잔상을 본인의 독창적 생각으로 착각했을지도요.

푸른괭이 2017-10-05 13:55   좋아요 0 | URL
앗, 카뮈는 진짜 열혈 독자였어요! 세대가 아무래도 다르잖아요. 그 무렵 도-키는 이미 고전 반열에 올랐으니까요. <카라마조프> 연극도 올리고(카뮈가 직접 이반 카라마조프 역을 맡았다던데요), <악령>도 각색했는데 이 각색본이 아주 유명합니다.

그랜드슬램 2019-02-16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에게 자식일만큼 큰 일이 있을까요, 엄마라면 더 하시지요!저도 비슷한 어쩌면 더 안 좋은 상태일

그랜드슬램 2019-02-16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라 생각되지만 힘내시라고 감히 위로합니다.

그랜드슬램 2019-02-16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론 시간이 다 해결안될 일들도 많아서요. 항상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번역하신 이 책은 더욱도요. 좋은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