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서 쭉 읽지는 못하지만, 그때그때 읽는 부분마다 감동적이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간결하고 힘있는, 접속사가 거의 없이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만으로 이어지며 훌륭한 맥락을 만들어는 그의 놀라운 문체이다. 그런데 그는 의사이고 그것도 내과나 정신과가 아닌 외과의, 심지어 중증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외과의다. 아, 솔직히, 근래에 읽은 어지간한 소설(들) 보다 낫다. 몇 군데 옮겨온다.

 

"필사적으로 피를 막아내는 속도와 피를 부어 넣는 속도의 합이 파열된 장기로부터 터져 나와 쏟아지는 피의 속도에 미치지 못할 때, 핏물 속에서 환자의 장기를 더듬던 내 손은 서늘해졌다. 차갑게 식은 피와 굳어가는 장기가 손끝에 느껴지면 사신이 환자를 데려갔음을 알았다."(2, 11)

 

*

 

"내과와 외과를 구분 짓는 이유가 무엇이든, 외과를 업으로 삼는 우리의 일상은 갈라지고 짓이겨진 살과 부서진 뼈와 장기들, 끊어진 신경과 어긋난 조직, 솟구치는 핏물 속에 있었다.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삶은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나는 수술이 좋았고 수술방에 감도는 서늘한 감촉을 사랑했다."(1, 33)

 

*

 

"남자의 몸 안에는 이전에 받았던 큰 수술의 여파로 심한 유착이 남아 있었다. 복강 내 수많은 조직과 장기들은 다 엉겨 붙어 한 덩어리와도 같아 보였다. 복강 제일 얕은 곳에서 간 파열로 인한 피가, 쪼개진 간 조직 사이로 울컥거리며 뿜어져 올랐다. 환자의 피는 따뜻했다. 그것 하나가 그의 숨이 아직은 이상에 머물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 지루한 박리 수술이 끝나고 마침내 후복강까지 시야가 닿았을 때 나는 아연실색했다. 환자의 비장과 좌측 신장이 이미 적출되어 있었다." (1, 65)

 

수술 뒤 환자를 중환자실로 보낸 다음, 식사하는 장면, 이 챕터의 마지막인데, 이 정도면 소설작법 교본으로 써도 되겠다. 해맑은 어린아아와 사목하는(이런 표현 쓰나?) 목사의 대조. '나'(이국종)의 마지막 행위.   

 

그날 저녁 교직원 식당이 문을 당아 외래객 식당으로 갔다. 밥맛을 느낄 수 없었으나 그냥 먹었다. 지나가던 아이가 나를 보고 물었다.

- 밥 먹어요? 혼자?

아이의 눈은 맑았다. 나는 그냥 짧게 고개만 끄덕했다. 다시 숟가락을 들려 할 때 원목인 손덕식 목사가 다가와 프린트한 기도문을 주며 말하고 갔다.

- 제가 기도 많이 합니다.

나는 말없이 종이를 받아 식판 옆에 엎어두고 보지 않았다. (1, 68)

 

이런 부분 많지만, 읽으면서 울컥, 하는 대목.

 

"그는 예비역 해병이자 취업 준비생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오토바이 배달을 하던 중에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한쪽 다리를 잃었고 인공항문까지 달았다. 20대 청년이 받아들이기에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래 괴로워하지 ㅇ낳았다. 좌절하는 대신 살아있음으로 가질 수 있는 나머지 가능성이 집중했다. 그 긍정이 놀라웠다. 그런 삶의 태도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를 보며 나는 부끄러웠다."(1, 76) "얼마 뒤 그 환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1, 77)

 

 조직폭력배, "밤거리의 주먹들"을 수술하는 부분.

 

"나는 그들이 가진 적의의 근원을 알 수 없었고, 폭력과 살인의 명분도 이해하지 못했다."(79-80)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피의 박동을 느끼면서 나는 젊은 생명의 강한 힘을 확인했다. 죽어가는 환자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손끝에서 사람의 생사가 갈린다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그 무게감에 짓눌렸다."(84-85) 

 

*

 

 

 

 

 

 

 

 

 

 

 

 

 

 

 

외과의사의 이런 체험을 생생하게 담은 소설로 불가코프의 초기 소설을 소개한 적이 있다. 모의대 특강에서도 읽었는데, 이국종의 책을 보니 참 무의미하다 싶다. 그때 나왔더라면 같이 읽었을 텐데.

 

 

 

 

 

 

 

 

 

 

 

 

 

 

우라사와 나오키 <몬스터> 속의 외과의사 닥터 덴마.(일본 만화라, 일본인으로 설정^^;)

- 선생의 손은 사람을 죽이는 손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손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요한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덴마에게 하는 말이다. 덴마는 결국 요한을 못 죽인다, 오히려 다시 살려낸다. 외과의, 이 surgeon의  손은 참 신비로운 것이다. 그래서 더 매혹적인지도 모르겠다. 손에 든 메스만큼이나 붓-펜을 잘 휘두르다니, 거참.

 

 

 

*

 

 

 

 

 

 

 

 

 

 

 

 

 

 

 

 

루쉰 역시 원래 일본 유학을 갈 때는 의학도였는데 돌아올 때는 작가-사상가가 되어 있었다. 사람 몸을 고치는 것보다 머리를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고, 그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이른바 환등기 사건. 음, 그 머리 역시 실은 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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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동물은 태어나면 1년 안팎으로 걷는다. 2년 안팎으로 말을 한다. 여기까지는 대략 자연법칙이 정한 발달의 과정을 따른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왔거니와, '동물-사람'과 '인간-사람'의 차별점은 그 다음부터이다. 언제 글을 배우는가. 읽고 쓰기의 문제. 요즘은 대략 대여섯 살에는 어지간히 한글을 읽는 것 같고(하다못해 통글자라도) 초등 입학을 전후하여 몇 자씩은 다 쓴다. 1-2학년 때는 받아쓰기가 가능하다. 어지간하면 70점 이상은 받는 듯하다. 여기서 막히는 아이는 문제 있다.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바로 글쓰기이다. 받아쓰기가 아니라 '작문'. 문장, 문단을 만들어야 한다. 이 문단이 나름으로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가 되어야 한다. 두 세 문장도 하나의 문단, 텍스트가 된다. 그 완성도는 육하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졌는가에, 우선, 달려 있다. 문체고 나발이고 나중의 문제이고, 우선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했느냐가 표현되어야 한다. 판사의 판결문(가령 세간에 공개된 탄핵문을 떠올려보자)에서도 이게 제일(심지어 이것만!) 중요하다. 이쪽, 즉 법학자, 역사학자, 인문학자 등등이야 원래 문과생이니 당연히 노력해야하고, 이른바 이과생들의 글쓰기는 어떤가. <의학 세계사>를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마태우스'라는 필명(?)은 익히 알던 터. 그의 재미있는, 심지어 기상천외하다고 생각한 전공(기생충학)도 익히 알던 터. 하지만 책을 읽는 건 처음이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우리에게 의학은 항상 현실, 현재인데(당장 나를, 나의 아이를 낫게 해줘!) 그것에 역사가 있음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주 옛날로 거슬러가 고대이집트, 아랍, 중국, 인도 등 흥미로운 일화, 지식이 많다.

 

특히, 히포크라테스. '의사'의 사실상 첫 윤리로서 '환자의 비밀을 지켜줄 것!'을 언급했다니 놀라운 대목이다. 뇌전증(간질) 역시 소위 '신/악마 들림'이 아닌 자연(몸)의 한 현상으로 접근했다는 것, 역시 한 분야의 원조가 될만한 인물이었던 것. 한데, 많은 천재들, 위인들의 업적과 더불어 꼭 언급되어야 하는 것이 '기록 여부(유무)'이다. 써놓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ㅠ.ㅠ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알겠는 요즘, 정말 좀 써라! 써야지만 시간을 이길 수 있다. 가령 저 히포-스는(하다못해 측근이라도) 심지어 썼다, 쓰기도 했다.

 

 

 

 

 

 

 

 

 

 

 

 

 

 

 

 

 

 

 

 

 

 

 

 

 

 

 

 

 

 

우리 같은 평민은 접근할 수 없는 의학의 분야. 이렇게 좀 써주시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비단 의학 뿐이랴. 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등 다 그렇다. 하다못해 경제학도 문과의 학문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글쎄, <21세기 자본>을 읽으려다 포기했다, 너무 어려워서-_-;; 이미지를 중구난방으로 갖고 왔는데, 핵심인즉, 다 썼다는 것이다. 뉴튼도 다윈도 호킹도. <수학이 필요한 순간>의 서문인가 '수학을 하는 자는 많지만 수학을(-에 대해) 쓰는 자는 적다(없다)' 하는 식의 문장이 나온다. 바로 이 대목. 왜 그런지.

 

원초적인 대목이지만, 바로 글쓰기(-**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 또 귀찮기 때문이다.(다들 살지만 사는 것에 대해 말하는-쓰는 자는 적다.) 나이 들수록 느끼지만 귀찮은 것과 어려운 것이 은근히 동의어다. 굳이 필요 없어 안 하다 보니 귀찮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하기가 어렵고 숫제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은 다시 동어반복으로 불필요한 것이 된다. 내가 이 나이에(혹은 이 자리에서) 굳이... 이런 식. 그럼에도 이렇게 꾸준히 좋은 저작들이 나오는 것은 참 고맙고 고무적이다. 따라 읽기가 벅차, 그것이 좀 아쉬울 따름이다. <파우스트 박사의 오류>의 주인공도 원래 수학자로 구상했는데, 도무지 수학 공부를 할 수가 없어 말이다...ㅠ.ㅠ (아침에 아이가 소수가 뭔지 묻는데 이것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더라는 ㅠ.ㅠ)

 

다시 의학 세계사. 책 제목을 보고 기대한 것은 좀 쉽게 풀어쓴 이론서 혹은 교양서였는데, 내용의 일부가 이야기 형식이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보는 교양 만화의 느낌. 나는 이것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차라리 시종일관 지식-정보 전달 형식(실제로 많은 부분이 이렇게 기술되었다)으로 되어 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고, 작가의 이른바 '-끼'는... 소설로 풀어보시면 어떠실지.^^; 의학 소설 역시 전문가만이 쓸 수 있는 장르이니 말이다. 이 점에서, 잘 읽히는 훌륭한 연구서, 교양서의 전범은 역시나 유발 하라리.

 

 

 

 

 

 

 

 

 

 

 

 

 

 

 

 

*

 

- "어제도 안 썼다, 시작!"

- "일기 쓰기 싫은데? 작문하는 거 싫어...ㅠ.ㅠ"  

- "글을 쓸 줄 알아야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친구한테 카드나 편지도 쓰고... 굳이 소설이나 연구서를 쓸 필요는 없지만..."

뭔가 알아듣는 것도 같고 마지 못해 가서 쓴 일기인즉, 겨우 두 줄에다가....

 

"오늘 자유선택활동 시간에 아무튼 병원 놀이를 했다. 재미있었다."   

 

여기서 압권은 '아무튼'이라는 말. 얼마나 쓰기 싫으면!(ㅋㅋㅋ) 부사냐, 접속사냐, 아무튼. 보다시피 작문 실력이 거의 향상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 어제는 줄넘기 수업을 너무 잘 하고 와서(아, 진작 시도해볼 걸!) 쉬었지만 오늘은 꼭 강제하려고 한다. 쓰지 않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써야, 쓰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

 

 

 

шиповник финский залив. 쉬포브니크, 핀란드 만. 이렇게 검색했더니 떴다. 6월이란다. 대학 시절에는 사전에 쓰인 대로 '들장미'라고 외운 단어. 심지어 상징주의 계열 그룹 중 '들장미파'도 있어서 굉장히 고급한(?) 느낌의 꽃인줄 알았는데 바닷가에서 거친 해풍을 맞고 피는, 저런 들꽃의 모습이다. 화려해도 들꽃(야생화)은 들꽃. 우리말 역어는 '해당화'가 맞다. 실제로 서해안에 초여름(늦봄)에 많이 피는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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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재작년인가, 계절 수업에서 한 학생이 '나'를 대상으로 소설(초고)을 썼다. '헐'이라는 말을 참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 말고도 나를 미적(글의) 대상으로 삼는 자가 있다니. 나름 당혹스러운, 그러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시선은 권력이다. 사람을, 사물을 보고 그릴(쓸) 때 나는 권력자다.

사진 찍힐 때는 어떤가. 오랜만에 당혹스러운, 그러나 신선한 경험을 해보았다. 맞아, 이런 것이었지. 왕년에는 잘 나갔다고.

 

이렇게 화보 수준으로 많이 찍어야 하는 지면인 줄 알았으면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워, 또 - 시간 맞추기도 힘들어) 안 갔을 것을, 일단 원고도 쓴 다음이라 가서 찍게 되었다. 몇 컷 올려본다.

 

(나는 얼굴의 정면이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구도와 배경은 좋았는데 '오브제'가 망쳤다.) 

 

  (전신컷은 싫어하지만 잘 나왔다. 내 마음에 드는 나의 익숙한 표정이다.)

 

(예쁜 배경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컷들.)

 

 

(책과 사람보다 빛이 좋다. 나에게 저런 표정도 있구나, 싶은 사진.)

 

 (나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자가 없어진 지 오래라, 이런 사진 건지기(!) 참 쉽지 않다. 어깨를 좀 내려야, 허리를 세워야 디스크가 심해지지 않을 텐데.)

 

*

 

의도하지 않았으나 내가 갖고 간 책이 제일 훌륭한 소품이 되었다. 이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예쁜 모습은, 파마도 염색도 하지 않은 원래 나의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흰색 셔츠 블라우스에 약간 짙은색 청바지, 트렌치코트를 입고 사시사철 감기를 예방할 머플러를 두른 모습이다. 날씨가 추워서 두툼한 스웨터에 패딩 입고 가야했지만 사진을 찍으려고 무리를 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어, 한 몇 년은 쭉 쓸 수 있겠다.

 

그럼 이제 문제는...

 

소설을 쓰는 것이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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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지만, 모차르트에 대한 글을 읽으며 이 고색창연한 낭만적 단어를 생각한다. 천재. 역사 속의 그는 분명히 천재였지만, 물론 살아서도 그 수식어를 별명처럼 달고 살았지만 확실히 생존시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그 단어의 느낌은 사뭇 달랐을 터이다. 우선 생김새. 정말 그냥 흔해빠진, 어쩌면 평균에 못 미치는 아저씨. 또한 달리 말하면, 모차르트-천재가 아니라면 전혀 문제 없을 그런 평범한 아저씨. (흡사 우리가 나폴레옹을 무슨 땅콩쯤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는 사실상 평균 신장이었다고 한다.) 그 다음 성격. 글쎄, 개차반은 아니었을 테고, 좀 경박했을까. 이 역시 '평범-일반'의 수식어에 부합할 것 같다. 워낙 '신동', 요즘 같으면 '영재'였던 것인데, 음악(피아노 연주, 작곡)에 몰입할 때 이외의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그 나이 또래 꼬마의 모습이었다고. 그랬을 테지.

 

문제는 성장. 마의 16세던가, 아무튼 여러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성장기를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즉, 그를 협박하는, 동시에 돈을 대주는 귀족들, 대략 그런 부류와 다름 없는 구세대(부모),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음악적 재능의 흐름에 있어서의 일련의 변덕, 굴곡 등. 특히, 그의 아버지. 어린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것을 키워준 것은 전적으로 아비였다. 나는 그가 그저 업계종사자 정도인 줄 알았는데, (하이든 작곡으로 알려진) <장난감 고향곡>을 작곡한 인물이라니. 헐, 모차르트 역시 '핵금수저', 유전자 부자였던 것이다!(피카소의 아버지 역시 화가, 미술 선생이었다고 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이 기존 어른의 세계로부터 탈출해야 하는데, 여기서 성공. 그리고 결혼도 한다. 흔히 우리가 세계 3대 악처라고 부르는 콘스탄체는, 천만의 말씀, 너무 사랑스러운 아내였다. 저 책에 이런 편지가 인용된다.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당신의 작은 보금자리를 깨끗하게 준비해둬. 내 귀여운 장난꾸러기는 사실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녀석은 아주 훌륭하게 처신하고 있어. 당신의 매혹적인 (    )을 소유하고 싶은 것 외엔 다른 희망이 없지. 내가 이 편지를 쓰는 동안 탁자 위에서 꿈틀거리면서 내가 질문을 해대는 그 악동을 생각해봐. 솔직히 말하면 나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튕겨주고는 해. 하지만 그 녀석은 그저 (   )할 뿐이야. 이제 그 못된 녀석은 더 뜨거워져서 통제할 수가 없어.(<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3)

 

처음엔 축자적으로 읽었는데, 밑에 저자가 써놓은 글을 보가 다시 읽었다. 헐, 엄청 야한 얘기였구나. 괄호 부분은, 훗날 모차르트 전기 작가이기도 한, 공교롭게도 콘스탄체의 두 번째 남편이 된 자가 지워 놓은 부분이라고. 비슷하게, 도-키의 두 번째 아내도, 도-키가 첫번째 아내에게 쓴 편지 중 일부를 열씸~히 지웠다. 거참, 죽은 배우자까지도 질투하는 그런 사랑이라니, 부럽다.

 

10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콘스탄체는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 중 성년에 이른 아이는 둘 뿐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알콩달콩, 티격태격, 옥신각신 좋은 부부였다. 아내와 아이를 사랑해도 "씀씀이가 헤픈" 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도박도 마찬가지. 쓰면 쓸수록 어쩜 도-키와 이렇게 비슷한지. 모차르트가 급사할 때도(진짜 돼지고기 식중독이었는지) 그의 옆을 지킨 건 막 출산한 콘스탄체였다.

 

 

 

 

 

 

 

 

 

 

 

 

 

 

 

 

 

그 다음 교우 관계, 특히 살리에르. 그가 모-트의 재능을 질투하여 사십대 중반의 그에게 <레퀴엠> 작곡을 의뢰, 과로사를 유도했다는 식의 얘기는 진짜 사실무근인 것 같다.  이 스토리는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졌지만, 원작은 푸시킨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소비극)이다. 푸시킨도 말하자면 모-트형 천재였는데 은근히, 자기를 여기에 빗댄 듯하다. 그 다음, 여기에 기반한(그런 것으로 나는 아는데) 피터 셰퍼의 저 희곡이다. 오히려 그는 멀쩡한 인격의 소유자였고 사실상 유복자나 다름없는 모차르트 아들의 음악 교육에도 관여한다. 물론 그 아들은 아버지 같은 음악가로는 자라지 못한다.  

 

주경철의 책에서 새로 알게 된 것, 혹은 새로운 해석. 당시 살리에는 상당히 잘 나가는 작곡가였다. 심지어 모-트와의 이른바 '작곡 배틀'에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정도로 더 인정받은 측면도 있었다. 요컨대 음악적 재능 때문에 모-트를 저렇게 질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 싶은 대목이었다. 동일자끼리 알아본다, 라는 것. 차라리 모-트의 선배인 하이든은 모-트를 질투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넘을 수 없는 산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의 평가를 참조한다면, 살리에르는 모-트의 재능을 알아볼 만한 눈/귀조차 갖고 있지 않았을 법하다. 새삼,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기형도의 시구가 떠오른다.

 

 

 

 

 

 

 

 

 

 

 

 

 

(자유로운 지식인의 밥벌이 문제는 실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겠으나.)  

 

18세기, 세계는 변하고 있다. 귀족(궁정)의 하수(이른바 후원-패트로니지 시스템)로 살지, 아니면 곧이어 베토벤이 보여줄 굶주린, 그러나 자유로운 예술가로 살지. 모차르트가 그 중간에 있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시대는 많이 다르지만, 나와 내 주변의 '프리랜서들' 역시 자주 생각하는 대목. 자유는 좋지만 배가 고프고, 배도 채우고 내 맘대로 쓰려면 귀족(^^;)보다 더 무서운 대중을 만족시켜야 한다. 즉, 책이 팔려야 한다. 참 냉혹한 현실인데 이걸 무시하고는 천재성이고 나발이고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모차르트는 돈도 많이 벌었고 그 아버지가 놀랄 정도의 사업 수완도 있었다. 문학계의 셰익스피어, 괴테랄까. 

 

요컨대 천재성이 여러 병리적인(각종 정신질환) 요소를 정당화주지 않는다. 천재는 다 미친놈이었을 것 같은가? 그랬으면 좋겠지.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범인들의 속된 바람일 뿐, 천재는 생활인으로서는 그냥 생활인(심지어 더 뛰어난)이고 그리고 자기 분야에서는 천재인 것이다. 세상 참 불공평한 것이다. 그러니 빌 게이츠의 말이던가,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라."

 

*

 

"다들 ‘돼지’라고 하면 살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돼지 다리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돼지에 개 정도의 다리만 달아줘도 비대해 보이지 않는다. 다리가 짧으니까 몸집이 뚱보로 보인다. 시점을 바꿔 보면 대상이 달라진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한다. 이 삼색을 통합할 때 젊음의 삶은 변한다.”
([출처: 중앙일보] “암 걸리고 나니 오늘 하루가 전부 꽃 예쁜 줄 알겠다”)

 

이어령 선생의 최신 인터뷰 기사를 반복해서 읽는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극찬하시던 분인데, 참 왜 이어령인 줄 알겠다. 어떤 주제를 들이대도 귀 기울일 만한 말을 쏟아내는 자, 새로움과 젊음에 대한 열린 태도(안티-꼰대의 전형이랄까),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어쩜 저렇게 운이 잘 맞는지. 저건 단순히 문체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 사람 자체의 문제이다. 검색, 사색, 탐색. 비교적 최근에 그가 쓴 이상에 관한 논문(에세이)를 어느 모음집에서 읽었다. 너무 현학적이고 시건방지고(?) 저돌적이어서 좀 놀랐는데, 무려 대학교 1학년(?)인가에 쓴 글... 역시 천재ㅠ.ㅠ

 

어릴 때 천재인 아이는 많아도, 가령 모차르트처럼 죽을 때도 천재인 사람은 잘 없다.(주변에 영재는 왜 이리 많은지, 그냥 '겨우' 상위 2~3프로니까 많은 게 당연할 지도^^;)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잘 늙는 일이 참 힘들다. 

 

'소설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좀 끄적여 보았다. 나한테도 재능을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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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역사서를 더 보면 좋겠지만, 나도 생업이 있는지라 한 2, 3년 전 수업 준비차 읽은 책들을 떠올려 본다. 하나 같이 지리멸렬한, 오직 의무감에 의해서만 읽을 수 있는 그런 망할 책들이었다. 비단 역사뿐이랴. 문학도 그렇지만 이런 망할(^^;) 책들이 참 많다. 그나마 '콘텐츠'라도 튼튼하면 고마울 텐데...

 

 

 

 

 

 

 

 

 

 

 

 

 

 

우리가 어릴 때 읽은 책은 랴자놉스키 역사서였다. 이번에는 새로 나온 플라토노프의 저서를 읽어보았다. 여기서 놀라운 것이, 가령 (어제 주경철 책을 읽다 상기된)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대제, 정확히 그 시기를 서술하는 관점이었다. 표트르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호적인 반면(그야 당연한 것이, 그가 극악한 인물인 것은 맞지만 그런 동력 없이는 역사는 한 발도 진보하지 못하니까) 예-나에 대해서는 굉장히 경멸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이념이나 사상, 업적이 아니라, 근본적인 요소, 즉 '여자-사람', '외국인'이라는 것 등인 것 같다. 다시금, 외국(적국)에 시집 온 왕비는 인질이나 다름 없다, 라....  

 

우리가 아는 예-나 여제는 보다시피 전형적인 관리가 아주 잘 된, 포샵질도 많이 한 중년 아줌마 왕비이다. 그녀 스스로 연출하고자 한 이미지는 우아하고 관대한 여성 계몽 군주.(그녀에 관해 공부할 때는 항상 그녀가 볼테르와 서신 교환을 했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역시나 여자에게 붙일 수 있는 각종 나쁜 걸 다 붙인다. 특히 '음탕'이 꼭 붙는다. 그가 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실은 다른 남자의 소생이라든가(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정신 지체에 성불구였던 듯하다) 정부(이른바 총신들)가 많았다든가 등등. 남-왕이 후궁을 거느리는 것은 극히 정상, 심지어 장려되지만 여자-왕비는 정반대인 것이다.

 

아무튼 예-나의 이른바 방종이 설령 사실일지라도, 44년을 살아보니 그 역시 이해되는 것이다. 그녀가 러시아에 온 건 대략 열 일곱(?)살 때인가 그렇다. 러시아어도 모른 채 왔다. 러시아에 온 뒤 그녀가 제일 먼저, 아마 무척 전투적으로 한 일이 러시아어 및 풍습 습득이었던 것 같다. 젊은 날의 초상화를 보라. 정녕 봄날이다! 이번에 처음 본 초상화인데, 헐, 역시 젊음이 미모의 동의어이다. 그냥 여자-사람으로서 그녀에게는 권력, 사랑, 미모 등등 뭐든지 다 필요했으리라. 사랑도 플라토닉러브, 현실적 사랑(결혼), 열정적 사랑, 육체적 사랑 등등 종류별로 다 필요했으리라. 그 역시 우리 인생의 한 시절에만 허락되는 소중한 것. 그때 향유하지 않으면 그냥 없어지는, 허무한 것이다. (덧붙여, 딴 얘기지만, 그런 식으로 임신, 출산되는 아이를 이제 다 받아서 키우지 않으면 정말 나라가 풍비박산나게 생겼다. 외국처럼 이른바 미혼모, 때론 어린 미혼모와 그들의 아이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 유학 시절, 유모차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러시아 엄마들을 많이 목격했는데, 그런 장면에 대해 천박한 생각을 하지 않을 의식이 우리도 필요하다. 돌이켜보니 어쨌든 그녀(들)는 아이를 낳는 쪽을 택했고 남편 없이(혹은 유명무실해도) 키웠다.)    

 

 

러시아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 출신의 여자가 자기 나라를 쥐고 흔든 것이 무척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 심사가 곳곳에서 느껴져 읽는 독자(즉, 나)가, 이른바 페미니스트가 아님에도(!), 무척 불편했다. 역사학자는 어떤 입장, 관점을 물론 가져야하지만, 시쳇말로 너무 '꼰대'스러워서 말이다. 러시아에서 방영된 이 역사 드라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도무지 볼 시간을 내지 못했다) 적어도 비주얼만은 멀쩡에 가까워보인다. 아마 젊은(어린) 예카테리나(캐서린, 카테린느)도 실은 저런 이미지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나아가 어지간한 강단과 독기가 없었으면 그 무서운 러시아의 궁정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터. 아, 물론 세상의 모든 궁정은 다 살벌하겠지만.

 

 

한편, 표트르 대제가 왕이 되기 전에, 그의 왕위를 빼앗으려던 자가 있었다. 소피야 알렉세예브나라, 라는 이름의 이복누이이다. 나중에 정권을 잡은 다음 표트르는 정적을 다 처리하고 그녀를 소도원에 가둔다. 동생의 왕좌를 뺏으려 했고 또 못된 짓도 많이 했으니(세조^^;;) 벌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할 때, 저 삼엄한 18세기에 그토록 담대한 여자-사람이 있었음은 좀 놀랍긴 하다. 레핀은 그녀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수도원에 갇힌 모습. 그녀가 남자였다면 제 아무리 표트르라도 그렇게 쉽게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해본다. 아, 물론, 표트르의 위대함이야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누구라도 저 얼굴 한 번 확대해보고 싶지 않은가. 이렇다! 후덜덜

 

 

 

이렇게 추운데, 그래서 또 작년 이맘때처럼 독감에 걸릴까 무서운데 벌써 봄신상품이 나온다. 아울렛에도 작년 상품들이 대거 넘어오기 시작한다. 추워서, 빨리 봄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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