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스크바 북쪽, <베덴엔하> 역 주변의 햇볕이 따사로웠다. 한 시간이 넘도록 음습한 지하를 질주하는 동안 11월의 지독한 습설이 수그러들었다. 이곳에는 역의 명칭 그대로 소비에트연방 시절의 부귀영화를 보여주는 거대한 박람회장이 있었지만 나의 목적지는 반대쪽이었다. 고가 도로를 옆으로 낀 채 눈길을 쭉 걸어가니 아름다운 교회가 보였고 한참 뒤에 야트막한 주택가가 나왔다. 조금 더 걸어가자 P대학의 자연대 건물이 나왔다. 담배부터 피우려고 건물의 후문을 찾아갔다. 후미진 곳,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놓은 울타리 옆에서 담배를 꺼내는데 손놀림이 영 둔했다. 햇볕이 아무리 그윽해졌어도 장갑을 벗기가 겁날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다.

공터 한가운데에 한 중년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싸구려 보드카 병이 들려 있었다. 내가 담배를 한 모금 빨았을 때 그는 울타리에 어설프게 기대다시피 하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미 반쯤 벗겨진 바지를 마저 내린 뒤 엉거주춤 선 자세로 엉덩이를 뒤로 쭉 뺐다. 싯누렇고 두툼한 똥 덩어리가 모락모락 김을 풍기며 중력의 법칙에 따라 무던히, 서서히 눈 덮인 땅 위로 떨어졌다. 그는 뒤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대충 바로 세우고 배를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두 다리 사이에 헐렁하게 달려 있는 조그만 생식기에서 싯누런 오줌 줄기가 흘러 나왔다.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져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그는 벌벌 떨리는 두 손을 그리로 가져갔다. 햇볕을 가르는 이 고마운 오줌에 꽁꽁 언 두 손을 싹싹 비비며 혹한의 고통을 달래는 그의 표정이 천진난만하고 행복해보였다.

울타리 안 벤치에는 여학생들이 전깃줄의 참새들처럼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젊은 담배 연기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정신없이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흡연하는 동양인 여자에게 잠깐 호기심을 보였다.

에잇, 쳐다보지 마세요! 항상 저러는 걸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거기서도 여자애들이 담배 피워요?”

 

서류 하나를 처리하고 나니 오후였다. 한층 더 그윽해진 초겨울의 햇살이 얼굴을 간질였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거북이처럼 걷다보니 아침에 본 교회가 나왔다. 근처 벤치에 몇 겹의 누더기를 두른 카자크 노파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손짓을 했다.

이봐요, 아가씨, 조만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내 말 맞지? 아이쿠, 하지만 이를 어째, 마가 끼였어, 마가! 액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논문 심사를 앞둔 나는 낯선 노파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다. 노파는 내 두 손을 잡고 주문을 외우더니 조그만 실몽당이를 꺼내 손안에 꼭 쥐어주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소중히 간직하다가 사흘 뒤에 역시나 아무도 모르게 불로 태우라고 덧붙였다. 이어 복채를 요구하는 노파의 표정이 살벌했다.

안 그러면 아가씨 인생에 큰 재앙이 닥친다! 내놓으면 복 받을 거야. 좋은 신랑감도 나타나고 아들도 낳고. 많이 내놓으면 큰 복 받고 적게 내놓으면 작은 복만 받는 거야.”

노파의 말이 군데군데 썩고 빠진 잇새로 새나오는 바람과 함께 기괴한 주문이 되어 살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나는 노파에게 100루블짜리 지폐 한 장을 주고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만 해도 다시 이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

 

모스크바의 남쪽, <유고-자파드> , 다시 습설이 퍼붓고 있었다.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802호로 올라갔다. ‘은 지난달에 일본인 룸메이트가 이사를 간 다음 31실에 조카뻘 되는 대학생 과 둘이 살고 있었다. 빈 침대를 보며 불안 섞인 자유의 쾌감을 맛보는 것도 잠시,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새 룸메이트는 중국인이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방안에는 중국 대륙처럼 거대한 그림자가 깔렸다. 190센티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키에 둥그렇고 넙적한 배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각종 소가 가득 든 중국식 왕만두를 서너 배 부풀려 놓은 것 같은 얼굴, 조막만한 입과 얇은 입술, 끝이 둥글둥글한 조그맣고 나지막한 코, 새카만 검은 까까머리, 그리고 검은 깨 가루처럼 작은 두 눈에는 두툼한 오목렌즈가 끼워진 안경을 쓰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도피유학을 온 아이였다. 아이의 첫 번째 트렁크 안에서 화구가 와르르 쏟아졌다. 두 번째, 세 번째 트렁크, 몇 개의 가방도 속을 드러냈다. 10인용 전기밥솥, 믹서, 프라이팬, 식기국자주걱뒤집개 등 주방 용품이 마룻바닥과 비어 있던 침대를 가득 채웠다. 국수 뽑는 기계, 어묵 만드는 기계, 전자레인지까지 튀어나왔다. 각종 향신료와 양념, 밑반찬, 납작하고 쫄깃한 두부 전병과 육포, 죽순을 비롯한 밀봉된 나물 등 먹거리의 틈새에서 화구가 초라해졌다.

훙은 반쯤 혀를 끌끌 차며 이름을 물었다.

, , 리첸첸, --.”

중국 아이는 커다랗고 넙적한 얼굴 가득 웃음을 띠우며 한자도 또박또박 써주었다.

李沈沈. 이 침침한 아이는 겨우 열여섯이었다.

(...)

 

(- 2015년 ??호 <문학나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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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불문, 문제는 '사랑'이다.

 

세계사에 문제적인 인간이 많지만 나폴레옹은 과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법하다. 특히 19세기 소설을 전공한 나에게는 더 그렇게 여겨진다. 비단 러시아문학만이 아니다. 나폴레옹 이후 얼마간 문학(다른 예술도 그렇겠지만)은 이 이름, 이 신화에 무척이나 매달렸던 것 같다.

 

 

 

 

 

 

 

 

 

 

 

 

 

 

 

 

 

세 소설 모두 공히 '나-옹' 신화를 다룬다. 누가 제일 잘 썼나?^^; 이런 질문은 이미 무의미하고, 세 작가(소설)의 나-옹 신화에 대한 접근법을 논해야 할 것이다.

 

사실, 나폴레옹을 가장 객관적으로(과연? 러시아 작가가?) 그린 소설은 물론 <전.평.>이다. 아시다시피, 나-옹의 러시아 침공과 몰락, 러시아 입장에서는 대조국전쟁(1812), 특히 보로지노 전투 등을 다루니까. 그러나, 내가 괄호 속에 썼듯, 러시아 귀족 작가의 눈에 나-옹은 프랑스 군인도 아닌, 코르시카 섬 출신의 꼰질꼰질하고 천박한 출세주의자, 야만적인 살인자, 애면글면 아등바등 천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러시아의 총사령관이었던 쿠투조프는 허벅지 위에 얹힌 물렁물렁하고 두툼한 뱃살과 (늙어서!!!^^;) 작전 회의에 꾸벅꾸벅 조는(아마 침도 흘렸을^^;;) 모습까지 포함하여 러시아적, 민중적 '지혜'를 대변한다.

 

반면, <적과 흑>은 쥘리앙 소렐을 내세워, 나-옹 신화의 내면을 추적한다. 대처로 나가 성공하고자 하는 목수 아들(기억이 맞나?)의 야망, 그것이 문제다. 한편으론, 연애 소설이다. 남자나 여자나, 19세기나 지금이나, 밑천 없는 자가 소위 '성공'하려면, 일단은 공부와 학력(자신의 머리, 재주), 그 다음은 결혼(흔히들 '취집'이라고 하지만 남자에게도 적용될 법하다)이다. 아시다피, 이 소설은 소렐이 레날 부인이 쏘고 그 일로 인해 사형 당하는 걸로 끝난다. 뱃속에 그의 아이를 담은 남작의 딸(?) 마틸다는 승승장구, 이 점을 지적하는 소렐을 통해 당시 프랑스의 계급 갈등이 드러나기도 한다. 여기서도 나-옹의 흔적이 보인다.

 

나아가, <죄와 벌>. 러시아땅에 정착한 나-옹은 프랑스 본토의 그것(<적과 흑>)보다 더 신화스러운 신화가 된다. 이게 참 아이러니. 아마 러시아의 특성인 것 같다. 가령, E. T. A. 호프만은 독일 작가이지만, 러시아 작가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 바이런 역시 마찬가지. 그는 영국시보다 러시아 낭만주의 시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다들 그 자체로, 그 문학으로가 아니라, 뭐랄까, 아우라로, 요즘으로 치면 '브랜드 가치'라고 할까. (영국, 혹은 프랑스 브랜드라면, 일단 사본다, 그리고 입는다^^;)

 

그래서 <죄와 벌>에는 나-옹은 고사하고 그의 초상화조차 나오지 않지만(소렐은 그의 초상화(?)를 간직하고 있다)  주인공 라스-프의 존재 자체, 그의 욕망 자체가 통째로, 지라르의 분석대로, 나-옹에게서 오는 것이다. 천재 = 나폴레옹. '이'가 아닌 '천재'를 꿈꾸는 가난한 청년에게 '나-옹'은 훌륭한 매개자가 된다. 그리고 소설은 그의 '형이상학적 욕망'을 통렬하게 단죄한다.

 

문제는, '사랑'.

스탕달과 도-키는 나폴레옹을 좋아한 것 같다. 그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을 무척 싫어했고, 그 역시 대놓고 드러난다. 그를 반영한 세 명의 남자 주인공이 공히 그러한 신화에 빠졌다가 이내 환멸을 느낀다.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의 경우, 이런 욕망은 알렉산드르 황제에게로 향한다. 피에르(베주호프 백작), 안드레이(볼콘스키) 공작에게 있어 나-옹은 (극복되어야 마땅한) '청춘'과 거의 동의어이다.

 

 

 

 

 

 

 

 

 

 

 

 

 

 

(마지막 책은 지금 검색해보고 알았다, 사봐야지.)

 

주경철의 책에 묘사된 나폴레옹은 조금도 매력이 없다. 아마 저자가 나-옹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 않나, 추정해본다. 그래서, 그의 신화를 벗기는 데(탈신화화^^;) 도움을 받은 글이다.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나-옹을 얘기하면서, "눈꺼풀을 드는 데도 힘이 필요한(?)" 곳이라고 나-옹이 썼다는 말이 왠지 기억에 남는다. 어릴 때는 '세인트헬레나 섬'하면 유럽 근처 어디인 줄 알았는데, 말이 대서양이지, 뭐, 당연하지만, 아프리카. 아, 더웠겠다! 지난 여름의 폭염을 상기해보면, 정녕 눈꺼풀을 드는 데도, 눈을 뜨고 있는 데만도 엄청난 힘이 필요한 곳이리라.

 

다시금, 사랑.

나는 톨스토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음, 굳이 싫은 건 아니지만 음, 아무튼 좋지 않다. 이런 화법은 어째 시댁과 시댁 식구들에 적용되는 것 같은데(^^;) 역시나 비슷한 맥락에서 '도리'라는 것이 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그 '도리'를 다 해보려고 하는데, 연구서들도 썩 재미있지 않다. 이른바 '소련' 학자들의 연구서들은 심지어 서문부터 '레닌' 어쩌고 아주 참을 수 없는 수준이다. 곧 죽어도 제사는 자정에 드려야 하고 곧 죽어도 삼년상을 차려야 한다는 꼰대 느낌^^;; 하지만 이런 과정 없이는 논문은 또 쓰일 수 없는 것도 맞다. 이게 싫으면("인용과 각주", 흑 ㅠ.ㅠ) 논문을 쓰지 말아야...

 

  

 

 

 

 

 

 

 

 

 

 

 

 

 

그래서 다시 나폴레옹. 오래 전에 본 소설인데 읽지는 않았다. 아마 이제는 영영 못/ 안 읽겠다. 복지관 옆 헌 책방에서 싼값에 팔던데... 음.

 

 

 

 

 

 

 

 

 

 

 

 

 

 

*

 

(Avenue-Of-The-Baobabs-Madagascar-By-Todd-Gustafson-740x497)

 

아프리카 하면 아무래도 <어린왕자> 덕분에 바오밥 나무가 떠오른다. 저건 마다가스카르 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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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읽다, 쓰다

 

 

 

 

* ‘얕고 넓음에서 좁고 깊음으로: 학자의 책읽기

 

올해 출간될 독서에세이집의 서문을 구상하던 중 나의 44년 인생을 요약해보았다.

 

19751, 태어났다.

10, 공부했고, 자랐고, (부모) 집 떠났다.

20, 공부했고, 소설 썼고, 담배 피웠고, 연애했고, 번역했다.

30, 공부했고, 강의했고, 논문 썼고, 소설 썼고, 번역했고, 결혼했고, 담배 끊었고, 아이 낳았다.

40, 공부하고, 강의하고, 논문 쓰고, 소설 쓰고, 번역하고, 책 내고, 아이 키우고,

암과 치매와 실명 없는 노년을 꿈꾼다.

 

십대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는 것이 공부였다. 공부가 진척될수록 그 대상은 문학에 집중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하강일 수 있는 문학이, 경상남도 거창군의 으슥한 산골에서 의무 교육만 간신히 받은 농부의 장녀로 태어난 나에게는 시종일관 상승이었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여름, 부산에 사는 삼촌의 결혼식에 가던 길에 아빠의 손을 잡고 조만간 내가 다닐 학교를 구경 갔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해 겨울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부산의 어느 산동네에 단칸방을 얻었다. 이듬해 봄, 나는 학교에 들어갔다. 이 역사적인 1981년에 읽고 쓰는 법을 배웠고 책의 세계에 진입했다. 질 나쁜 종이에 조잡한 그림이 들어간 교과서가 전부였음에도 그것은 문학의 형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문학은 놀이가 아니라 공부였지만, 신통방통하게도, 공부가 곧 놀이이기도 했다.

이른바 책읽기는 대략 중학교 시절 문고판으로 시작되었다. 장학금과 과외비 덕분에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대학 시절에는, 과장하건대, 읽고 쓰는 일만 했다. 고전에 한정되었던 독서에서 이청준, 김승옥, 최인훈, 박완서 등 현대 작가로 영역을 넓혔다. 각종 사회과학 서적은 물론 명화집과 사진집도 많이 사보았다. ‘얕고 넓은독서의 절정이었다.

19973,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독서의 양상이 달라졌다. 3년에 걸친 유학 기간 동안에는 일부러 우리말 책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러시아의 도서관은 대부분 폐가제인데, 최대한 일찍 기숙사를 나서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빛바랜 원서를 읽고 요약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독서의 범위는 더 한정되었다. 러시아문학, 19세기 소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분신혹은 분신 테마. 2001, 레닌 도서관 귀퉁이에 앉아 서지를 훑어보는 데만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좁고 깊은책읽기의 쾌락을 최대한 만끽하던 시절이다.

20043, 처음으로 모교의 강단에 섰다. 이후 15년 동안 러시아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선생으로,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번역가로 살았다. 여전히 비정규직 신분임에도 어느덧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아이들 앞에서 강의하고 그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 스물다섯 살에 <악령>을 시작으로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등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번역한 것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년 초에 출간된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번역 역시 이 소설을 아끼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리라 생각한다.

 

* ‘좁고 깊음에서 얕고 넓음으로: 소설가의 책읽기

 

나름대로 아카데미즘을 고집하던 내가 대학 밖의 공간에서 틈틈이 강의를 시작한 것이 2010년쯤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카프카의 변신, 이광수의 <무정>과 염상섭의 <삼대>까지 다시 읽었다. 이런 식으로 좁고 깊은독서에서 얕고 넓은독서로의 회귀를 시도해보았다.

2016년부터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개설하는 소설 창작 강좌를 맡게 되었다. 커리큘럼의 절반 이상이 동서양의 고전 중단편인지라 여중고시절 같은 세계문학 공부의 쾌감을 다시 맛본다. 더불어, 대학 시절에는 방학 때 강의실 밖에서 읽었던 요즘 소설들을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는 호사를 누린다. 보르헤스 말마따나 읽기는 쓰기 후에 일어나는 행위”, “보다 체념적이고, 보다 문화적이고, 보다 지적인 행위이다. 요컨대 읽기가 지적노동이라면 쓰기는 육체노동이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1996년 소설가로 등단, 곧바로 첫 소설집(<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을 낼 무렵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작품의 수준을 떠나 일단 쓰고 보는 학생을 보면 이십여 년 마흔을 넘기면 소설이 한 줄도 쓰이지 않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라던 스승의 말이 떠오른다. 나 역시 마흔을 넘긴지 오래, 한 문청을 통해 내 꿈을 환기해본다. “꿈을 꿀 무렵의 나, 꿈속의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꿈꾼 것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다시, 스침들>(2018, )) 어쨌든 사람은 원래 자기가 원하던, 그래서 걸어가던 그 길의 끝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성취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기가 원하던 모습을 하고 있다. 소설가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죽을 때는 소설가로 죽고 싶다.

 

* 동물-인간에서 사람-인간으로: 아이 엄마의 책읽기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자. 2010121일을 맞이하는 새벽,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배냐, 아이냐.’ 열아홉 살부터 15여년을 하루 두 갑, 명실상부한 골초로 살아온 나에게는 사느냐 죽느냐수준의 문제였다. 결국 아이를 선택했으나 솔직히 담배가 피우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문제는 출산 이후였다. 담배를 안 피워도 나는 사람이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는 포유류의 암컷일 뿐이었다. 물론 이 역시 숭고한 실존이지만 그 와중에 책의 삶이 또한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조리원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읽었다. 9월부터는 강의 준비 차 러시아명작을 다시 훑었다. 2학년이 될 아이 역시 책을 읽기 시작한지 오래다. 동물-인간에서 사람-인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지금껏 공부는 내 인생의 거의 전부였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범생일 필요가 있다.

 

https://blog.naver.com/todayslibrary

 

지면이 좁아 많이 못 썼다. 나중에 책 나올 때 마저 써야지, 했는데 지금 보니 딱히 더 안 써도 되겠구먼. 그게 말의 본성이기도 한지.

원고료가 설 연휴 전에 들어왔다. 20만원 넘었다, 캬아! 너무 오랜만에 받아보는 것이라 무척 기뻤다.

 

*

  

 

 ландыш покупаем. 은방울 꽃. 할머니들이 근처 숲, 들에서 꺾어와 시장에서 들고 다니며(가만히 서서) 판다. 너무 약해 보여 산 적은 없는데, 지나고 나니 그립다.  들꽃을 많이 꺾어본, 그래서 집안까지 많이 가져와 본 경험상, 들꽃은 그렇게 피어 있을 때(만) 아름답다. 정말 금방 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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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서사의 매혹>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1812년 대조국전쟁)을 다룬 역사소설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로스토프 집안과 볼콘스키 집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집안은 각각 작가의 친가, 외가로서 그의 입장에서는 가 어떻게 생겨나 성장했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이 곧 소설 집필 과정이었다. 이 압도적인 분량의 책이 주목하는 것도 실은 남성적 서사인 전쟁’(국가의 역사)보다는 여성적 서사인 평화’(‘개인의 이야기’)이다. 특히, 열세 살 소녀에서 시작하여 네 아이의 엄마, 아줌마가 되는 여주인공 나타샤 로스토바는 톨스토이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오롯이 보여준다. 로스토프 백작 집안의 이 귀염둥이는 볼콘스키 공작의 두 번째 아내가 될 뻔했으나 결국 모스크바의 대부호인 베주호프 집안의 안주인이 된다. 볼콘스키 공작 집안과 혼인관계를 맺는 자는 그녀의 오빠인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이다. 그로써 나타샤는 남편(안드레이 볼콘스키)의 여동생이 될 뻔한 마리야 볼콘스카야와, 정반대로, 오빠의 아내로 다시 만난다. 이런 개인()의 성장의 이야기가 곧 일국의 역사이기도 한바, 개인사와 보편사의 총합에 관한 파노라마는 대하소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반면, 제목만 놓고 보면 가족서사의 전범처럼 보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작가의 독특한 시간 사용법이 돋보인다. 그는 대하처럼 흐르는 시간의 총체가 아니라 그러한 시간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 단면을 확대한다. 주인공들의 성장은 한 순간에 완성된다. 드미트리는 하루아침에 아비 죽은 패륜아로 전락하고 이반은 그로 인해 광인이 되고 스메르쟈코프는 자살하고 알료샤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모두 하루아침에 망하거나 흥한다. 톨스토이의 교과서와 비교하면 성장 없는 성장소설, 가족 없는 가족소설에 가깝다. 그럼에도 세계문학사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 이 독특한 서사 구조 덕분이다.

 

 

 

 

 

 

 

 

 

 

 

 

 

 

 

우리 문학의 근대소설사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성취인 염상섭의 <삼대> 역시 잘 쓴 가족소설의 전범이다.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 등 조 씨 집안 삼대를 대표하는 세 남자들의 흥망성쇠, 성장에 관한 기록은 동시에 그들이 속한 세계의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최서희의 성장소설인 󰡔토지󰡕 역시 그녀 주변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서사이자 역사대하소설로서 앞으로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을 법하다. 물론, 가치평가 여부를 떠나, 이미 이런 규모의 소설이 읽히지도, 쓰이지도 않는 시대가 왔음도 기정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성장소설을 쓰려는, 나아가 가족서사를 축조하려는 꿈이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등단한 이래 일곱 권의 소설책을 냈다. 지난 9월에는 작은 장편 <다시, 스침들>이 나왔다. 그동안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비롯하여 작년 말에 출간된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까지 굵직한 러시아 소설을 번역해왔다. 올해는 러시아문학 연구서와 독서에세이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한 달만 있으면 마흔 다섯 살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최근에 이 말을 곧잘 되뇌는 것은 가족 구도 속에서 나의 생물학적, 사회적 입지를 비로소 실감한 탓인 듯하다. 나에게 가족은 양친과 두 동생, 이렇게 다섯이었다. 서른여섯, 결혼한 뒤에도 그랬다. 서른일곱, 아이를 낳았을 때도 그랬다. 20183,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두 동생도 아이()의 부모가 된 지 오래다. 지금 나의 가족은 남편과 아이다. 과거의 가족은 문학적 현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 삼남매의 고향은 경상남도 거창군 수내 마을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19751월이다. 여동생은 2년 뒤 한창 바쁜 모내기철에 태어났다. 막내인 남동생이 태어난 이듬해인 19811,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이사 갔다. 11월생인 막내 동생은 문자 그대로 핏덩어리였다. 우리의 첫 정착지는 부산진구 전포동 기찻길 위 산동네의 단칸방이었다. 1920년생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인 2007, 당시는 육십 대였던 아버지와 함께 우리가 살았던 곳을 답사하며 쓴 소설 초고의 1장은 이렇듯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거창과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과거는 우주보다 더 멀고 낯설다. 성장소설은 그 시간을 상대해야 한다. 다시금 문제는 새로운 시간 사용법의 발견이다.

 (<월간에세이> 2월호: http://www.essayon.co.kr/kr/)  

 

*

    

어제 잡지 한 권이 배달되었다. 나는 "할 일 없는 사람"이라서 이 에세이 역시 언제 나오나 열심히 기다렸다. 원고료 10만원. 이렇게 '원고'에 대한 '료'를 받으면(아직 안 들어왔지만!) 작가(글쟁이, 혹은 매설(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실감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책'(=판매상품)과는 엄연히 다르다. 원고료는 진짜 한 자, 한 자 쓴 글에 대한 대가이다. 저 글은, 지난 학기 시간표가 애매한 탓에, 학교 커피숍과 도서관을 오가며 쓰고 다듬은 것이다.

솔직히 청탁 받을 때는 귀찮았다. 아, 이런 대책 없는 거드름, 좋아, 너무 글쟁이스러워, 잃을 것은 하나도 없고 얻을 것은 온 세상인 프롤레타리아-작가의 본성!

하지만 막상 쓰다 보면 또 글을 쓰는 그 행위 자체가 너무 좋은 것이다. 그 다음, 이렇게 잡지에 실린 내 글을 보면(실은 안 보는데) 또 기분이 묘하다.

종이가 재생지. 그 느낌도 좋았다. 요즘도 나오는지, <좋은 생각> 같은 잡지.

 

'에세이' 아닌 '수필'. 이 단어 역시, 어딘가 아늑한 데가 있다.  

하지만 저 글은 좀 많이 매정하다. - 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아닌가.

 

   *

 

게티이미지 뱅크에서 하나 찾아왔다. 모양새는 튤립과 비슷한데, 들꽃이고 왜 이름이 할미꽃인지. 아무튼 좋아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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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인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삶과 <닥터 지바고>

    

 

모든 일에서 /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 일에서나, 길에서나, / 마음의 혼란에서나,

재빠른 나날의 핵심에까지 / 그것들의 원인과 / 근원과 뿌리 / 본질에까지.

운명과 우연의 끈을 항상 잡고서 / 살고,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 발견하고 싶다.

, 만약 부분적으로라도 / 나에게 그것이 가능하다면 / 나는 여덟 줄의 시를 쓰겠네. / 정열의 본질에 대해서 /

오만과 원죄에 대해서 / 도주나 박해, / 사업상의 우연과 / 척골(尺骨)과 손에 대해서도 /

그것들의 법칙을 나는 찾아내겠네. / 그 본질과 / Initial을 나는 다시금 반복하겠네.

 

독문학자이자 수필가 전혜린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에 실린 파스테르나크의 시이다. 독일어 중역인데다가 시의 마지막 네 연이 빠져 있음에도 모든 일에서 / 극단에까지 가고싶은 서정적 자아의 차분한 집념 혹은 조용한 열정은 잘 느껴진다. <닥터 지바고>(이하 <지바고>)로 잘 알려진 파스테르나크는 실제로 소설가이기보다는 시인이었다.(...)

 

시인이었던 그가 산문 장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십대 후반부터이다. 1930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몇 편의 서사시와 운문 소설, 자전적 에세이 <안전 통행증>(1931), 중편소설(류베르스의 어린 시절) 등이 쓰인다. 이러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지바고>의 집필과 그 동기는 작가의 문학적, 내적 욕구와 더불어, 어쩌면 그보다는 시대적 정황과 연결되어 있다. 1940년대, 파스테르나크는 모스크바 근교의 페레델키노에 칩거한 채 일종의 내적 망명에 돌입한다. 침묵과 고독 속에서 십여 년(1946-1956)에 걸쳐 장편소설을 쓰는데, 그것이 <지바고>이다. 스탈린 사망 직후인 1954년에 이 소설의 말미에 실린 시 중 10편이 잡지(<깃발>)에 발표되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소설의 운명은 순탄치 못했다. <신세계>에 출간을 의뢰했으나 편집진은 꼼꼼한 장문의 퇴짜편지를 보낸다. 이 서간체 평문에서 우선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소설의 정신, 그 파토스, 삶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다. “당신의 소설의 정신은 사회주의 혁명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파토스입니다. 당신의 소설의 파토스는 10월 혁명, 내전, 그와 연결된 이후 사회 변화가 민중에게 고통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고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를 물리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파괴했다, 라는 주장의 파토스입니다.” <지바고>의 첫 독자-비평가들이 극히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 소설”, “소설-설교라며 내친 소설은 1957년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 번역으로 출간된다. 이듬해(1958) 노벨 문학상까지 받게 되자 파스테르나크는 작가동맹에서 제명되고 추방의 위협을 당한다. 결국 그는 상을 거부하고 사실상 거의 직후인 196070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이 소설을 둘러싼 일련의 스캔들, 그리고 친()소비에트와 반()소비에트 양진영의 평가를 두루 살펴볼 때 두 가지 점이 눈에 뜨인다. 첫째, 작품의 정치성 내지는 경향성인데, 그토록 무정치적인작가, 또 그런 경향의 소설을 그토록 정치적인 것으로 만든 문학 외적 정황이 놀라울 따름이다. 둘째, 작품의 문학성과 관련하여, 사실상 표층적 차원인 문체 외에는 장점이 없다는 식의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출간 이후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물의-스캔들은 가라앉았지만 이 작품이 정치적 정황 때문에 과대평가되었다는 식의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물론, 이런 혹평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소설의 의의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어떻든 2018년 현재, <지바고>는 고리키, 숄로호프, 솔제니친, 불가코프, 플라토노프 등 여타 20세기 러시아 소설과 비교할 때 가장 많이 읽히는 소설이다. 1960년대의 인기는 데이비드 린의 영화(1965)에 빚진 측면도 있겠다. 하지만 그 역시 과거지사, <지바고>는 비슷한 식으로 인기를 누린, 가령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1937 퓰리처 상)와는 달리 문학사의 심판에서 문자 그대로 살아남았다. 역사소설로 읽든 연애소설로 읽든 어쨌든 대중통속소설을 넘어선 맥락에서 작품을 평가해야 할 때이다.

 

2. <닥터 지바고> - 유폐된 지식인의 참회록

 

제목 그대로 닥터(의사) 지바고의 삶을 다룬 이 소설은 어린 지바고인 유라의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화려한 장례행렬에 관심을 보이는 자에게 주어진 답에서 이미 산 자를 매장한다’(‘지바고(Zhivago)’(zhizn', zhivoy)’의 의미가 들어 있다)라는 중의적인 의미가 생성되고, 다음 장면은 아예 아버지 지바고의 열차 투신자살을 포착한다. 조실부모한 지바고가 훗날 삶과 죽음의 친연성, 극히 기독교적인 의미의 부활과 불멸에 탐닉하는 것은 당연하다. 위대한 학자임이 수차례 강조되는 그의 외삼촌(니콜라이 베데냐핀)의 영향이기도 한바, 삶의 대극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부활이다. 이것이 임종을 목전에 둔 안나 이바노브나(토냐의 어머니)에게 들려주는 지바고의 얘기의 핵심이기도 하다. “죽음이란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거든요.”(1, 122.) 산 자들을 임박한 죽음에서 구해야 하되 그 때문에 또한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자주 접해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 역시 양가적이다. 이런 모순에 대한 인식과 수용이 현실 공간(의학)과 나란히, 그러나 외따로 존재하는 문학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의사이자 작가인 지바고의 실제 삶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소설의 시작과 함께 사라진 자신의 아버지를 그대로 반복한다. , 생활인-가장으로서 그는 예의 그 우유부단함과 나약함 때문에 퇴폐적이라는 말에 가장 걸맞은 행태를 보여준다. 라라와의 관계는 어떤 수사를 동원할지라도 불륜이고 파르티잔 생활 중에도 내연녀를 향한 그리움이 가족에 대한 걱정을 압도한다. 뿐더러, 라라는 사랑하되 그녀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타냐)에 대해서는 무심하고 사실상 세 번째 아내인 마리나와 두 딸을 낳았음에도 자기만의 세계로 도피한다. 불성실한 가장인 지바고는 사회적 존재로서도 퇴폐적’, 즉 다분히 무기력하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의 전형이다. 1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한 것은 징집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파르티잔이 된 것도 라라를 만나러 가던 길에 납치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바고는 자기에게 주어진 각종 의무를 저버리거나 마지못해 이행하다가 자기만의 골방에 틀어박힌다. 여기에 나름의 이론 내지는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떤 순간적이고 강력한 충격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고, 역사 위에 뭔가 더 높고 더 숭고한 원칙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그 전범이 <전쟁과 평화>의 작가 톨스토이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 통치자, 사령관의 선구자적 역할을 부정했으되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는 못했다.() 역사는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며, 풀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없듯,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 혁명, 차르, 로베스피에르 같은 자는 역사의 유기체적인 선동자, 즉 발효소일 뿐이다.”(2, 348) 역사의 크나큰 원칙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무조건적인 회피나 무기력한 수용이 아니라 운명과의 타협 내지는 경건한 운명애에 가깝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삶의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글쓰기에서 찾는다. 역으로, 오직 이것만이 그의 나태한 삶의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 특히 17. 지바고의 시의 첫 시 햄릿은 혁명의 가두리에 머물다가 불가피하게 그 물결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귀족-인텔리겐치아의 역사와 개인의 소명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일종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으로 읽힌다.

 

소요가 멎었다. 나는 무대로 나갔다./ 문설주에 기댄 채 아득한 메아리 속에서/ 나의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붙잡아 본다.

한밤의 어둠이 천 개의 쌍안경처럼/ 나를 향하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느님 아버지,/ 이 잔을 거두어 주옵소서.

저는 주님의 확고한 뜻을 사랑하며/ 기꺼이 이 역할을 맡겠나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극이 진행되고 있으니/ 이번에는 저를 면하게 해 주옵소서.

하지만 막()의 순서는 짜여 있고/ 길의 끝은 피할 수 없다./ 나만 혼자이고, 다들 바리새주의에 빠져 있다./ 삶을 사는 것은 들판을 건너는 것이 아니다.(2, 457)

 

여기서 서정적 자아는 정확히 햄릿도 아니고 햄릿 역을 맡은 배우이며 은연중에 스스로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한다. 러시아문학사와 지성사에서 행동보다는 사유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진 햄릿은 혁명기의 러시아에서는 긍정적인 인물상이 될 수 없었다. 말하자면 지바고는 19세기 이래 러시아문학이 창조한 잉여 인간의 20세기 버전, 최후의 잉여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 이 조용한 낭만주의자의 삶을 강타한다. 햄릿-그리스도의 처절한 고백은 인간 개인의 힘으로는 뒤바꿀 수 없는 절대 법칙에 대한 작가 지바고-파스테르나크의 심오한 통찰과 고뇌의 산물이다. 우유부단해 보이는 삶 역시 이 법칙에 맞서 그가 취할 수 있었던 가장 적극적인 대응 방식이었으리라.

 

파벨 안티포프(스트렐니코프)는 소설의 구성상, 주제상 지바고의 짝패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05년 혁명 때 철도 파업을 주동했다가 투옥되었고 1917년 혁명 이후에는 무자비한 관료가 된 파벨 안티포프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정치적 과업을 위해 가족마저 내팽개친,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지만(유형지인 유랴틴의 군법 재판소 위원임에도 아들의 가족을 외면한다는 점이 며느리 라라에 의해 강조된다) 섬세하고 여린 성정을 타고난 아들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좇아간다. 그런 그가 사실상 아버지 못지않게 잔혹한 혁명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반복의 비극’, 즉 개인사와 역사의 슬픈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 발발과 참전, 혁명에의 투신 같은 행동에는 물론 프롤레타리아로서의 계급의식이 개입되어 있다. 지바고 앞에 늘어놓는 기나긴 고백을 들어보자.

 

이 모든 건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죠. 당신이 이해할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다른 식으로 자랐으니까요. 도시 변두리의 세계, 철도 길과 노동자 숙소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더럽고 비좁고 죽도록 가난하고 노동자도 더럽혀지고 여자도 더럽혀지는 세상. 또 방탕, 마마보이들, 안감이 하얀 교복을 입은 대학생들, 상인들이 실실 웃어 대는 뻔뻔스러운 무법천지가 있었습니다.”(2, 358)

    

소년 파샤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인 역사의 차원으로 확대하고 그 구현을 라라에게서 발견한다. “, 소녀 시절, 김나지움 학생이었을 때 그녀는 정말 예뻤어요!() 이 시대의 모든 주제, 모든 눈물과 모욕, 모든 충동, 그동안 축적된 모든 복수와 오만이 그녀의 얼굴과 자태에, 처녀다운 수줍음과 자신만만한 날씬함의 혼합 속에 쓰여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으로, 그녀의 입으로 이 시대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할 수 있을 정도였죠.”(2, 359-360) 이어 그는 자신이 그녀를 위해 대학에 들어가고 또 교사가 되었다고, 결혼 후에는 그녀를 새롭게 쟁취하기 위해 전쟁에 나갔다고 고백한다. 혁명에 투신한 것 역시 그녀의 복수를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녀를 위해서저 모든 것을 했다기보다는 저 모든 꿈을 이루기 위한 동력으로서 라라-순수(이상)’를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닐까. 라라는 한층 객관적으로 안티포프를 정의한다. , 그는 시대의 징후를, 사회적인 악을 가정적인 현상으로 착각하고 부부의 관계가 망가진 것을 자기 탓으로 돌려 자기가 벽창호이자 중치, 상자 속의 인간이라고 생각했으며(2, 265) 전쟁에 나간 다음에는 그저 치기 어린 자존심 때문에 역사에 심통을부리고 계속 역사와 셈을 치르는 중”(2, 266)이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안티포프의 저돌적인 움직임의 저변에 깔린 것은 프롤레타리아 해방과 같은 거국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사적인 것(특히 첫날밤에 완전히 확증된 라라와 코마롭스키의 관계)이다. 동기가 어떠했든 그것은 가정으로부터의 도피인바, 생활인-가장으로서의 무책임함에 있어 정녕 지바고와 비슷하다. 그러나 죽은 혼이 된 안티포프를 확인사살하고 스트렐리니코프로 부활한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저 구시대 러시아의 악의 대변자들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방관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에 가깝다. 혁명이 완성되자 정식 당원이 아님에도 수뇌부와 너무 가까웠던 그가 최고형을 선고받고 쫓기는 신세가 되는 것 역시 혁명(이상)과 정치(현실)가 찰나적으로 결합했다가 영원히 결렬되는 역사의 보편적인 현상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는 라라가 떠난 이후 바르이키노로 숨어들었다가 자신의 아내와 한 시절을 보낸 남자와의 대화로 지새운 밤이 끝나기 전에 자살한다. 아침녘에 지바고의 눈에 포착된, 하얀 눈밭 위에 번진 선혈은 라라의 비유인 빨간 마가목 열매처럼 혁명과 열정과 순수와 파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런 그야말로 혁명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의 주인공-영웅이 되어야 마땅할 법한데 실상은 햄릿의 짝패를 이루는 돈키호테로 형상화된 측면이 있다. 지바고와는 달리 역사의 흐름을 한 인간의 의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신념, 그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이라는 선민의식은 비극적 패배를 낳았을 뿐이다.

 

닥터 지바고라는 제목이 붙은 소설에서 주인공만큼이나 비중 있는 인물이 라라이다. 어떤 인물과 관계하느냐에 따라 그녀의 형상은 넓은 스펙트럼에서 진동한다. 또래 친구인 올랴(데미나)와의 관계에서는 야무진 중고생(김나지움 여학생)인 그녀가 거의 동시에 코마롭스키에게는 어린 요부의 전형이다. 라라 입장에서도 독자들의 손쉬운 오독과는 달리 일방적인 성폭력의 도식이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그에게 종속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녀에게 종속된 것이었다. 정녕 그녀는 그가 자기 때문에 얼마나 애를 태우는지 모른단 말인가?”(1, 87) 라라의 성장기가 끝난 모스크바 시절 이후에도 그들의 관계는 유지된다. 코마롭스키는 이미 다른 남자(파벨)의 아내가 되었을 뿐더러 심지어 또 다른 남자(유리)의 정부로 살고 있는 라라를 구하기 위해 유랴틴까지, 이어 일부러 며칠을 낭비한 다음 바르이키노까지 찾아온다. 코마롭스키의 감정의 진정성이나 그 전개 방식(가령 정식으로 청혼하지 않음)은 문제 삼을 수 있어도 그가 그녀의 삶에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준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바고는 심지어 그녀의 남편보다도 코마롭스키에게 구제불능의 질투를 느낀다고 고백한다. 끝으로, 타냐의 말을 통해(에필로그) 라라가 말년에도 코마로프 부인으로서 코마롭스키의 그늘 아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어린 지바고에게 라라는 음란한 욕망과 타락의 상징이었다. 토냐, 미샤(고르돈)와 함께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와 솔로비요프의 사랑의 의미를 읽으며 금욕과 순수를 논하던 시절, 라라는 다른 세계에서 온 소녀’, 그만큼 신비스러운 존재이기도 했다. 이후 1차 세계 대전, 사회주의 혁명과 내전 등 운명은 군의관 지바고와 간호병 라라를 한껏 미화된 낭만적 사랑으로 묶어놓는다. 지바고에게 있어 그녀는 신비한 아름다움의 육화인 나의 마가목 아가씨임과 동시에 편안한 자세로 독서를 즐기는 지식인이자 청소와 빨래와 요리 등 각종 가사의 달인-주부이기도 하다. 어느 경우든 라라는 여성에 대한 유구한 표상인 성녀-탕녀20세기 버전으로서 지바고-파스테르나크의 성적 판타지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 본원이 막달레나 마리아인데, 23. 막달레나 (I)에서는 육욕과 타락의 이미지가 강한 반면 24. 막달레나 (II)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 전날 마리아를 포착한 만큼 희생과 구원의 이미지에 방점을 둔다. 이 시들을 소설 텍스트와 병치하면 파르티잔을 탈출하여 유랴틴, 이어 바르이키노로 돌아온 지바고를 간호하고 돌보는 라라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을 씻기던 마리아의 소비에트적 변주로 읽힌다. 비단 지바고 뿐만 아니라 혁명기 세 유형의 인물(햄릿-지바고, 돈키호테-안티포프, 고등 속물 코마롭스키)의 운명을 정리해주는 것도 그녀이다(15).

 

*

 

1940년대 후반, 파스테르나크는 자신에 대한 비우호적 분위기가 만연한 가운데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 시대>(그리고 <수업시대>), 디킨스의 소설에 맞먹는 작품을 쓰고자 한다. 이런 야망을 갖고 구상한 소설의 첫 제목은 <소년소녀들>이었다. 혁명과 전쟁을 겪으며 어른이 된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는, 그러나, 전통적 의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의 외피를 쓴 서정적 비망록이 되었다.

 

시인이 쓴 소설답게 서사 원칙, 즉 인과성과 개연성보다는 우연과 연상이 지배적이다. 많은 인물들, 심지어 주인공들조차 상징성이 너무 강해서 형상성이 다소 떨어진다. 특히 지바고의 이복동생 예브그라프는 기계 타고 내려온 신’(Deus ex Machina), 즉 인물이 아니라 기능에 가깝다. 더 근원적으로, <지바고>의 전범처럼 여겨지는 <전쟁과 평화>와 비교할 때 인물 구도도 단순하거니와, 파스테르나크 특유의 온화한 귀족주의와 엘리트주의의의 반영인바, 혁명(전쟁) 소설에 일반적인 갈등의 증폭과 해결(파국)의 서사 구조가 구축되지 않는다. 차라리 소설 전체가 서사화를 원하지 않는 파편적 사건과 서정적으로 유려한 풍경 묘사와 적절히 철학적인 아포리즘의 향연에 가깝다.

 

이런 독특한 문학적 구조물을 그는 왜 만들어야했을까. 그 답은 그의 절친한 사촌이자 신화학자였던 올가 프레이덴베르그에게 보낸 편지의 일절에서 찾을 수 있겠다. 굳이 혁명이 필요 없었던, 심지어 혁명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죽는 순간까지 자기 식으로 시대정신에 화답하고자 한 작가-인텔리겐치아의 조용한 고백이기도 하다.

 

나는 모든 사람들 앞에 죄가 있어. 하지만 내가 뭘 어쩌겠어? 그러니까 이 소설은 나의 빚의 일부, 내가 조금이라도 노력했다라는 것의 증거야.”

 

* * *

 

<닥터 지바고>를 번역하는 데 딱 3년이 걸렸다. 출간까지는 2년 정도가 추가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 겨울방학이었지 싶다. 범우사판(오재국 번역)을 통해 이 소설을 읽었다. 사실상 단칸방이나 다름없는 집, 새벽에 시장에 나가던 부모님과 국민학교다니던 두 동생이 잠든 밤에 카세트라디오로 <라라의 테마> 같은 영화음악을 즐겨 듣던 시절이다. 노르스름한 스탠드 불빛 아래, 빼곡히 들어찬 자잘한 글자들 속에는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혁명, 문학, 불멸, 사랑, 비극, 관념. 책을 읽는 동안에는 비루하고 옹색한 현실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월하고 나 역시 그런 다른 존재로 변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읽기, 특히 문학이 그런 것임을 그 무렵에는 꽤 난해했던 이 소설을 읽으며 배웠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흘렀다. 강조하건대, 파스테르나크는 시인이고 <지바고>는 시어로 쓰인 소설이다. 나는 소설가이고 러시아문학박사로서도 주로 소설을 연구해왔다. 훗날 이 소설을 더 많이 아끼는 역자가 나타나 더 좋은 우리말본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현재로서는 그래도 이 책이 우리 독자들에게 가장 마땅한 번역본이 되리라 자부한다.

끝으로, ‘여고시절전혜린의 번역으로 즐겨 읽은 파스테르나크의 시를 마저 옮겨본다. “모든 일에서 /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정원처럼 시를 가꾸겠네. / 잎맥을 파르르 떨며 / 보리수들이 잇따라 / 연이어, 일렬로 꽃을 피우리.

시 속에 나는 장미향과 / 박하향을 넣겠네, / 풀밭과 사초와 풀베기와 / 천둥번개를.

언젠가 쇼팽이 소담한 영지와 / 공원과 숲과 무덤, / 그 살아 있는 기적을 / 자신의 에튀드에 넣었듯.

다다른 승리의 / 유희와 고뇌 - / 팽팽한 활의 / 당겨진 시위.

 

 

*

 

 

마드무와젤 플레리의 밀짚모자에 카밀레(캐모마일)과 함께 꽂힌 꽃 수레국화. васильки. 'синий'가 어떤 색인지 궁금하면 이 꽃을 보면 될 듯하다. 오래 전, 젊은 헬레나 본 햄 카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나왔던 <전망 좋은 방>에서도 본 듯한 꽃이다. 대단히 서구적으로(?) 느껴졌는데, 이 역시 들꽃, 서구적인(^^;;) 들꽃이다. 노발리스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파란꽃(!), 파란색도 독한 색인데 빨간색(양귀비) 앞에서는 여지없이 배경이다. 

 

 

*

 

딱 하루만 기다렸어도 '할 일 없는 사람'이 되지 않는 거였다. 버티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 것이다. '닥터 지바고'에 '지바고'가 없어 놀랐으나 표지의 감각은 편집부를 믿는다. <죄와 벌> 표지도 편집부에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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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1-26 0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KBS_클래식 FM 방송에서 일주일 내내 파스테르나크의 생애를 들려주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음을 읽다>라는 코너에서였죠. 잔잔히 흐르던 <라라의 테마>와 함께요.

그때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로는, 아버지는 유명한 화가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여서 어려서부터 톨스토이니 라흐마니노프니 하는 댕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자주 집을 들락거리는 걸 보고 자랐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작곡가가 되기 위해 애쓰다가 독일로 건너가 철학을 공부하고 난 뒤에야 문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도 하고요. 그러면서 그가 숨어살다시피 하면서 쓰게 된 작품이 <닥터 지바고>라고 소개해 주더군요. 노벨상 수상소식이 오히려 그를 힘겹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고요. 암튼 <닥터 지바고>를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작가님이 새로 번역한 책은 어떤 모습일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오랜 기간 번역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고요.

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을 때, <학원세계문학전집> 판으로 나온 책의 앞부분에 붙어 있던 이런저런 그림들을 구경하다가 파스테르나크가 그렸다는 설명이 붙은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나네요. <바실리 공작과 엘렌의 댄스>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그 그림도 알고 봤더니 <닥터 지바고>를 쓴 파스테르나크가 아니라 화가였던 그의 아버지가 그린 그림이더군요.^^

푸른괭이 2019-01-26 09:57   좋아요 1 | URL
파스-크는 당대 최고의 문제적 작가 중 하나였습니다. ˝숨어살다시피 하면서˝ 정도가 아니고요, 사실상 유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나마 덜(?) 찍혀서(혼자서 조용히 또라이짓 하니까 그냥 두라고-_-;;) 숙청 안 당한 거죠.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입니다.

<학원...>이라니, 헐, 세월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