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낭비
칼바람 부는 겨울날, 손님 하나 없는 허름한 식당
중년의 주인 내외만 덩그러니 앉아 낮술을 마신다.
심드렁한 노년 남자가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아줌마가 유일한 손님의 술상을 차리는 동안
아저씨는 혼자서 묵묵히 술잔을 기울인다.
샤시문이 옆으로 밀리면서 찬바람이 훅 들어온다.
“형님, 일 안 나오고 뭐하십니까!”
마치 사이렌이라도 울린 양
일용직 노동자의 아내이자 식당 사장인 여자는 양 날개를 퍼덕이며 선혈을 토해낸다.
"당장 안 나가, 엉! 내가 당신한테 일을 나가라는 건 자존심 구기면서 돈 몇 푼 벌어오라는 게 아니야. 그깟 돈, 백 만원 벌고 그 백 만원 다 술 퍼 마셔도 돼. 사내가 밥 숟가락 놓으면 냉큼 나가야지, 집구석에서 이러고 있는 게 뭔지 알아? 이건 영혼을 낭비하는 짓이야!"
12색 크레파스로 마구 칠한 것 같은 화장은 촌티가 풀풀 나고
푸석푸석 라면 파마 머리는 추의 미학조차 느껴지지 않고
피로와 궁핍이 밴 주름과 기미는 남루와 비루를 시전하고
한파에 부르트고 갈라진 입술 틈새로 터져 나온 낱말은 바로,
영혼,
그렇다, 영혼이다.
중년은 못 이기는 척 '형님' 노릇을 하러 나가고
샤시문이 밀리며 다시 찬바람이 훅 들어오고, 노년은
안빈낙도 소주 한 모금에 얼큰한 선짓국 한 숟가락,
진리는 바로 술국에 있노라고 생각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은 영혼의 문제
영혼을 낭비하지 말고
건전하게 소비하며
영혼의 형식을 만들어 갈 것.
<영혼의 문제> 15-23.
“형님, 일 안 나오고 뭐하십니까!”(16)
“당장 일 나가! 내가 당신에게 일을 나가라고 하는 건 자존심 굽히고 돈 벌어 오라는 게 아냐. 일 안 나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뭐하는 짓인지 알아? 이건 영혼을 낭비하는 짓이야!” / 나는 밥을 뜨다 말고 아주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치 색색의 크레파스로 함부로 칠한 것 같은 촌티가 풀풀 나는 화장, 미용을 목적으로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싸구려 파마, 인생의 피로와 궁핍이 잔뜩 찌든 남루한 인상. 그런 아주머니의 입에서 나온 ‘영혼’이라는 단어의 울림은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16-17)